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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예, 부, 권력에 관한 사색 무미건조한 세계에서 저자와 독자가 살아남으려면
  • 지은이 | 탕누어
  • 옮긴이 | 김택규
  • 발행일 | 2020년 06월 25일
  • 쪽   수 | 504p
  • 책   값 | 22,000 원
  • 판   형 | 135*200
  • ISBN  | 978-89-6735-794-8 03100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타이완 최고의 문화비평가이자 전방위적 학자

명예가 없는 세상에서 명예를 회복하고자 부와 권력으로 에둘러간 탐험길

 

명예, 부, 권력이라는

인간 세상의 세 비구름 중

대체 어느 것이 땅(혹은 행복)에 가장 가까울까?

이 책은 한 인간으로서의 선택과 분별과 이해에 관해 이야기한다

운명의 판도 위에서 명예, 부, 권력이 작동하는 방법

 

★2019년 타이완문학상 진취金曲상 수상작

★2019년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수상작

 

이 책은 인간 사회의 가장 노골적이고도 본질적인 세 가지 차원인 ‘명예, 부, 권력’을 탐구한다. 저자 탕누어는 ‘부’가 모든 사람의 목표가 된 것을 보면서, 한나 아렌트가 벤야민 사후에 벤야민을 재조명해 ‘명예’를 되돌려줬던 것처럼, 그 역시 돈의 세계에서 명예의 올바른 몫을 되찾아주려고 이 책을 썼다. 명예를 향한 여정은 부의 속성을 들추는 데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며 길을 에둘러 가는 것이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해당 주제에 대한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토크빌, 존 스튜어트 밀 등 사회과학자들의 논거와 통찰력을 살핀다. 그러면서 내밀한 소통을 기대했던 독자의 기다림을 배반하지 않고 마르케스, 보르헤스, 포크너, 발자크 등 페이지마다 문학 대가들의 빛나는 구절로 작은 길을 내고 사유를 유도한다. 『좌전』 깊이 읽기를 저술한 저자답게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의 고전들을 교차시켜 검토한다.

돈과 명예를 논하는 이 책은 또한 특이하게도 그 구체적 사례로 끊임없이 ‘책’을 끌어들인다. 오랫동안 편집자와 독자, 저자로 살아온 탕누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독자, 저자, 편집자가 명예를 지킬 방법을 알려준다. 읽지 않은 책은 우리 주변에 가득하고 현대의 인간들 대부분은 ‘예비 독자’라 할 수 있다. 독자는 어떤 책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실추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 그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논의가 탕누어의 화법으로 펼쳐진다.

 

벤야민에게 사후명예를 돌려주기 위하여

 

발터 벤야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때문에 한나 아렌트는 ‘사후명예’라는 것에 대해 몹시 분노했다. 벤야민 사후 수년이 지나서야 몰려온 때늦은 찬사와 숭배가 그의 생전에는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랬다면 벤야민은 굶주리지 않았을 테고, 쉰 살이 되기도 전에 국경지역에서 자살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렌트는 벤야민을 향한 마음을 로자 룩셈부르크에게도 주었는데, 벤야민보다 용감하고 생명력 강했던 룩셈부르크는 비참하게 살해당했다. 그녀 역시 사후에 명예를 얻긴 했지만, 그것은 벤야민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이었고 정확하거나 후련하지도 않았다.

탕누어는 말한다. “정확하고 정당한 명예에 의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떤 기억할 만한 사람과 그들의 행동, 작품을 기억하고 찾아낼 수 있다.” 이루는 늘 이렇게 아쉬워한다. “좀 더 서둘러 살아생전에 명예를 안겨줌으로써 그들이 마음 편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했어야만 했다”고.

명예, 부, 권력 중에서 가장 종잡을 수 없는 것을 꼽으라면 ‘명예’다. 부와 권력은 산 사람의 것인 반면, 명예는 역사의 거대한 강 속에서 결정을 이루고 마모되어 나온 눈부신 빛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후명예’라는 것도 이제는 사라지는 중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역사’는 정치경제에 비해 인기가 급락했으며, 명예는 더 이상 역사에 귀속되지 않고 매스미디어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패배나 무력감에 빠질 수는 없다. “예란, 제자가 선생을 찾아와 배우는 것이지 선생이 가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우리는 좋은 것이 스스로 우리를 찾아오길 바라면 안 된다. 좋은 것이 먼 곳에서 가까스로 우리 쪽으로 오면 그것은 이미 변질되고, 부패하고, 빛을 잃은 상태이기 쉽다. 그러니 우리가 그것을 찾아서 다가가야만 한다.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파고들 명예란 ‘이익과 무관한 기본적인 위치에 인간을 되돌려놓는 것’으로, 그럼으로써 인간의 특정한 격정, 편견, 광기, 집단적으로 귀신에 들린 듯한 부분을 씻어내며 권력과 부를 잠재우는 것이다.

 

부를 견제할 만한 것은 이제 없다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재물’은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사물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시 부는 언뜻 보면 권력과 명예 밑에 꼼짝없이 깔려 있는 듯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영감의 두 딸은 아비의 돈을 물 쓰듯 쓰면서 권력과 명예를 쌓아올렸는데, 만약 돈이 없었다면 이것은 신기루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렇다. 부야말로 지진을 막는 하부 구조이면서 권력과 명예보다 대지에 더 가까웠다. 이 진상은 훗날 더 명확해지고 더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부는 권력과 명예 밑쪽에서 위로 떠올라 사람들의 주된 목표가 되었다. 그리하여 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거꾸로 권력을 통제하게 되었다.

사실 화폐는 아주 오래전부터 간계를 써왔다. 돈에 쫓겼던 한 무제도 한 차례 화폐의 간계를 쓴 것으로 유명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구 반대편 유대인의 성지 예루살렘에서도 유사한 화폐의 간계가 사용되었다. 즉 사제와 상인들이 손을 잡아 성지를 찾은 참배객들에게 봉헌하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이로써 신전은 시장통처럼 번화해 사방에 돈이 굴러다녔는데, 이때 예수가 나타나 이 볼썽사나운 광경을 보고는 좌판을 뒤엎고 채찍을 휘둘렀다.

탕누어는 “분수를 모르고 질서도 안 지키며 심지어 충성스럽지도 않은 부가 전 지구적으로 날뛰는 것”에 대해 인류는 제어할 힘을 상실했으며, 부는 훼손되거나 소모될 리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다층적으로 묘사한다. 부의 전 지구적 지배로 인해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느냐가 다시 핵심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생존한계선 아래쪽에 있는 이들이 느끼는 방식

 

경제 문제는 경제 문제의 모습과 형식으로 폭발하지 않고 밑바닥에 깊이 들어가 불안 요소로 편재하여 마치 지뢰밭에 있는 것처럼 매사가 불편하고 면역력이 모자란 인간의 현실 조건을 구성한다. 그래서 약간의 불똥만 튀어도, 약간의 바이러스만 침투해도 사달이 난다.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경제 수치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더 형편없으며 실망, 자기연민, 시도 때도 없는 울분과 공격성이 사회 전체의 기본 정서가 되곤 한다. 전형적인, 실의에 빠진 이들의 사회인 것이다. 즉 경제 문제에서 패한 이들은 가정, 일, 학업, 건강, 연애 등에서 끊임없이 문제에 직면하고, 대체로 화를 참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실의에 빠진 이들이 편재하는 사회에서 가장 막아야 하지만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인 것은 ‘희생양 찾기’ 게임이다. 사회의 가장 저렴하면서도 불공정한 이러한 자기 치유는 동시에 심하게 사회를 망치고 상처 입힌다.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유대인 박해와 같은 역사적 경험은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잔인한 모습이 이 게임의 참여자들에게서 나타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기심, 잔인함, 살인 충동, 난무하는 거짓말과 집단적 광기는 인간의 본성이 야만과 무지를 향해 뒷걸음질치도록 했다.

 

권력의 도저한 동물성

 

권력은 자신의 경계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 채 횡포하거나 순식간에 전락한다. 이 점은 권력의 도저한 동물성을 보여준다. 욕망은 항상 권력이 증가하고 시간을 장악함에 따라 부단히 자라나며 나이든 권력은 꼭 나이든 사람처럼 나태해져 각양각색의 향락에 이끌리고 자제력을 잃곤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즉 권력과 부가 주도하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행위와 사유, 말이 상당히 단조롭고 반복된다. 권력·부가 매혹하는 힘이 일상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미쳐 알아서 제한받고 또 알아서 협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공자의 지적을 새겨볼 만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생물적인 면, 즉 욕망의 많고 적음이 인간의 강인함과 반비례를 이루며 인간의 가능한 행동, 사유, 말의 양과도 반비례를 이룬다는 것이다. 인간의 강인함은 대단히 중요해서 처한 상황이 위험할수록 더 많이 필요하다.

탕누어는 타이완의 한 인기 작가에게 솔직한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한 안 좋은 행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돈 많은 사람을 보자마자 바로 무릎이 풀리더군요.” 이 비겁한 이야기를 들은 탕누어는 곧바로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떠올렸다. “세상에는 당신이 그것 앞에서 큰소리로 진심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권력은 없다.” 물론 큰 권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권력에 무릎 꿇는다면 우리는 그 작가에 대한 기대를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또 무슨 배짱으로 조금이라도 그럴듯한 작품을 써내겠는가? 처음에는 감히 말하지 못하다가 점차 그것이 내면화되어 감히 생각하지 못하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생각할 줄 모르게 되어 사람이 텅 비어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동료 작가에 대한 탕누어의 평가다.

 

왜 명예가 중요한가

 

탕누어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개인적인 삶의 신념이나 선택과 무관하게 나는 이 명예라는 것을 변호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다. 왜일까? “우리가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할 때 명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부분적인 보완일 뿐이긴 하나, 이것은 자기 성찰과 반성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이 단조로워지지 않게, 사람들이 한꺼번에 어떤 관성이나 생물적 본능에 끌려가지 않게 하고 현실 논리가 지배하는 이 무미건조한 세계에 조금이라도 당위적인 것을 남기고자 노력하게 된다.”

이런 명예를 되찾으려면 기나긴 시간을 축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르헤스의 『알렙』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느 시대든, 어느 곳에서든 많을 리가 없다. 다만 그 흔적은 이상할 정도로 깊어서 몇몇 사람은 계속 그것을 떠올리고 깊숙한 기억 속에 간직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먼 미래에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묵묵히 주워 담은 결과다. 벤야민의 극적이고 감동적인 사후명예만 해도 결코 후대인들이 뜻밖에 발견한 게 아니다. 누군가 세밀하고 신중하게 그의 책과 말, 역사적 실마리를 빠짐없이 그 특수한 시간의 소로에 보내주어 지켜낸 결과다. 만약 누가 이 시간의 우호적 효과를 이용하려 한다면 지금 당장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생활 습관을 만드는 것으로, 권력과 부의 눈부신 광선 속에서도 어렴풋하고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찾아내 “소유하고 보존해야” 한다. 보르헤스가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이 될 의무가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권력과 부 바깥의 또 다른 사람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왜 명예를 좇아야 하는가

 

탕누어는 명예에 관한 이야기를 독서의 세계로 곧장 이어간다.

만약 명예에 대한 보상 체계가 현재처럼 계속 미비하고 점점 불가능해진다면 세계는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로는 괜찮을 것이다. 조금 괴롭고 쓸쓸하기는 하지만, 정말로 훌륭하고 진지한 현역 저자들을 동요시킬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가 시간의 단계마다 글쓰기의 성취를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하는 것은 역시 최고의 필력에 의한 성과이기 때문이다.

탕누어는 “저자들의 인격적인 부분을 신뢰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들도 유혹에 흔들리며 버틸 수 있는 생명력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진정으로 신뢰할 만한 것은 글쓰기와 사람의 기본적인 관계다. 이것은 글쓰기의 매일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굴레’가 됨으로써 그 안에 원망의 요소가 담기긴 하지만(빌어먹을! 내가 왜 애초에 이런 길을 택했을까) 그래도 충실하고 흡족하며 정말 포기하기 힘든 것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를테면 글쓰기 자체가 인간에게 주는 보답인데, 그것은 일종의 은밀하면서도 뒤늦게 전달되는 진정한 보상인 동시에 형언하기 힘든 삶의 귀속감이다. 이것은 바로 보르헤스가 말한 ‘행복’일 것이다.

즉 글을 쓰는 이라면, 막스 베버가 조언한 것처럼, 그것이 자기 삶의 유일한 마신임을 인식하고 온 마음을 집중해 헌신해야 한다. 작가의 현실적 형편의 좋고 나쁨은 기본적으로 그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 살고,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운명의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저자들이 신경 써야 할 다음 단계는 현실과의 극단적인 단절 같은 게 아니라 침착하고 합리적인 자기 가치의 순서를 정해 더 잘 쓰려 하는 것이다.

 

무미건조한 세계에서 편집자와 독자가 살아남는 방법

 

오늘날 책이 읽히지 않는 것은 책이 힘을 잃었다기보다는 사람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대학 캠퍼스에 키르케고르나 니체의 책을 들고 다니며 적어도 몇 페이지는 읽으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그들은 키르케고르와 니체를 읽는 것이 훌륭하다고 믿었다. 탕누어는 그 시절 그 사람들의 바람직함을 회상한다. “세상에는 우러러보고 경외심을 품어야 하는 훌륭한 것들이 있다는 것도 믿음으로써 그 훌륭한 것들이 기회를 가져, 삶의 경관이 밋밋하고 황량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도록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랜 세월 저자는 편집자로 지내왔다. 그는 자기가 큰 매출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가장 흥분되었던 일은 어떤 작가, 어떤 책을 알아보고 그것을 부와 시장의 세계에서 빼내 시간과 명예의 네트워크로 돌려보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재 출판 시장은 그때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무너졌다. 타이완에서는 10~20년 전만 해도 2000부를 찍던 책을 지금은 500부만 찍는다. 이런 출판업의 소멸은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질까?

탕누어는 세상의 다양한 업종 중에서 출판의 특별하고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최전선’에 자리하여 생존을 위한 책도 만들지만 동시에 명예를 위한 책도 만드는 이중성에 있다고 본다. “여러 신이 관할하는 애매한 교차지에 거주하면서 도적이 오면 도적을, 관군이 오면 관군을 환영한다.” 편집자의 가장 훌륭하고 현명한 태도는 부와 명예를 구분하면서 그 둘을 동시에 다룰 줄 아는 것이다.

편집자들은 사실 책이 안 팔리는 상황에서 한숨을 쉬고 낙담해 있다가 부정적인 에너지가 계속 쌓이면 이것이 시간 낭비임을 깨닫고 힘을 낸다. 그래서 그들은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책 목록을 꺼내 시장에 두꺼운 책들을 줄줄이 내놓는다. 그러면 이어서 이를 악물고 책을 읽는 독자들이 출현한다. 이것이 바로 부의 세계에서 독서세계가 갖는 기이한 힘이다.

탕누어는 독자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부드럽게 설득한다. “인간은 역시 착실하게 힘껏 판별하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거듭 훌륭한 것을 생각해내고 말해야 하며 옳은 일을 한 사람에게 갈채를 보내거나 적어도 미소를 지어주는 한편, 때때로 진지하게 잘 쓰인 책을 사기도 해야 한다.” 그렇게 정당한 저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며 그들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마침내 자신만의 우호적인 시간의 소로도 만들게 될 것이다.

목차

설명

시작은 한나 아렌트의 분노로부터

소멸 중인 사후명예

체호프의 웃음소리

어느 예언적인, 시대의 진상

갈수록 빠져들기 어려운 함정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절대 수요라는 것

절대 수요와 자유

공자, 자로, 안연

즉시 부각되는 두 가지 문제

절대 수요에 관한 어떤 실험

인간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 없다

구부러지고, 모호해지고, 사라지는 생존 한계선

굶어 죽은 사람도 얼어 죽은 사람도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

그저 다른 사람과 똑같아지려는 것일 뿐

실행되지 못할 승인

부를 견제할 만한 것은 이제 없다

마르케스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권력은 정말 필사적으로 지킬 가치가 있는가

국가 단위의 권력과 세계 단위의 부

돈을 계승하는 것이 권력을 계승하는 것보다 쉽다

억상

상홍양이 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프라 윈프리는 무엇을 꺼냈을까?

부의 힘은 눈에 보일 뿐 아니라 계속 더 강해진다

민첩해진 부

화폐로 쓰기에 알맞은 것

왜 더 쓸모 있는 철이 아니었나?

화폐의 간계는 신용에서 생기고 신용 속에 숨어 있다

화폐가 창출하는 이익

한 무제가 쓴 화폐의 간계

쓸데없는 일이 사활이 걸린 일이 되다

아편이 아니라 화폐여야 맞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진정한 복음

사들인 하늘

전혀 모순적이지 않은 자본주의의 모순

오직 자본의 형성을 위하여

돈이 어떤 점을 넘어서면

하늘에 쌓아둔 보물

화수분

물론 기업은 여전히 실패하기는 한다

커야 안 망한다

어쨌든 물어봐야 한다, 한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버는지

부귀열차

명예는 밧줄일 뿐

보상 체계

명예의 독립에 관하여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쇠락한 종교와 역사 그리고 대시간

우호적인 시간의 소로를 만들자

우리는 두 번 살 수밖에 없다

명예는 부와 권력 중 어느 것을 더 두려워할까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승인

이상하고 또 이상하다

죽은 사자와 산 사자

마음대로 고객도 못 택하는 일본 국철

스미스 대 스미스

똑같은 손

보르헤스의 「나의 일생」

특별한 인간과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인간

국가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여등과 여붕

잃어버린 기예

조밀성과 완전한 느낌

지식의 총량과 분업만 문제가 아니다

아마추어화되는 세계

국가를 중간 층위로 보려는 시험

편집자와 독자의 위치에서 보면

세습화의 민주 정치

민주 선거는 ‘권력 세탁’과 같다

현실의 또 다른 두 가지 가능성

민주 정치는 돈이 많이 든다

1968년, 내 어린 시절의 민주 선거

갈수록 부가 더 필요한 권력 구조

돈으로 권력을 사다

권력의 세계로 통하는 새로운 좁은 문

더는 자기 돈으로 선거하지 않는다

현세에 성불하기

대시간

또 다른 ‘치명적 자만’

장엄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고, 찬양받지 못한다

백화점 천국

등에

멈춰라

실의에 빠진 인간

경제가 안 좋아지면 무엇이 우리를 지켜줄까

부와 권력이 명예와 다투는 위치에 서 있다면

2000권의 기적은 지금 별고 없을까

2000권에서 500권으로

더는 시늉하지 않고 돌아올 리도 없는 독자

독자에서 소비자로

책의 발자국을 좇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죽었다

명예의 보상에 의지하지 않는 글쓰기

마지막으로, 작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미리보기

왜 계속 글을 쓸까? 지금 나는 인간의 글쓰기와 인간의 지적 성과를 작은 연못으로 상상한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한 세대, 한 세대, 계속해서 자신들의 글쓰기 결과를 그 안에 집어넣기만 했다. 일방적이었고 그 뒤에 어떻게 될지는 따지지 않았다. 그 효과는 우리 개개인과 개별 작품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더 크고 더 장기적인 순환에 속한다. 그런데 어쩌면 진실은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예외 없이 독자이고 우선은 독자였다. 우리는 모두 먼저 보상을 가져갔다.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그 연못에서 자기가 필요한 것을 계속 가져갔고 그로부터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주는 것이 아니라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일종의 의무에 가깝다._19쪽

 

그렇다. 부야말로 지진을 막는 하부 구조이면서 권력과 명예보다 대지에 더 가까웠다. 이 진상은 훗날 더 명확해지고 더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부는 권력과 명예 밑쪽에서 위로 떠올라 사람들의 주된 목표가 되었다._93쪽

 

우리가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할 때 명예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역시 어떤 부분의 보완일 뿐이지만, 그것은 곧 자기 성찰과 반성을 가리킨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이 단조로워지지 않게, 사람들이 한꺼번에 어떤 관성이나 생물적 본능에 끌려가지 않게 하고 현실 논리가 지배하는 이 무미건조한 세계에 조금이라도 당위적인 것을 남기고자 노력한다._95쪽

 

이것은 분명 선량함을 증진하는 상태는 아니며 흔히 기존의,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아온 것들까지 더 지키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잠복해 있던 것들이 반복적으로 건드려지면서 본래 본분에 만족하던 이들이 보수적이고, 어리석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나아가 무분별한 사람으로 뒤바뀔 것이다. 그토록 빈번하면서도 강렬한 수축과 확장의 격차를 못 견디고 사람들은 천천히 마모돼갈 것이다. 이것은 또한 악인들이 떵떵거리는 사회이기 쉽다. 가장 문제인 것은 아마도 나쁜 사람이 걸핏하면 착한 사람을 혼내고 이기적인 자가 정의로운 자를 혼내며 누구나 어떻게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이 될지 배우려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_212쪽

 

이 모든 것은 마찬가지로 머나먼 미래에 뜬금없이 생겨날 리 없다. 그것은 사람들이 묵묵히 주워 모은 결과이지, 고대의 유물처럼 출토된 게 아니다. 벤야민의 극적이고 감동적인 사후명예만 해도 결코 우리 후대인들이 뜻밖에 발견한 게 아니다. 누군가 세밀하고 신중하게 그의 책과 말과 필요한 역사적 실마리를 빠짐없이 그 특수한 시간의 소로에 보내주고 일찌감치 벤야민의 훌륭한 가치를 알아본 몇몇 사람이 지켜낸, 감사하고 감동적인 결과다. 만약 누가 가능하면서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 시간의 우호적 효과를 이용하려 한다면 지금 당장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 권력과 부의 갖가지 눈부신 광선 속에서도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 그 어렴풋하고 버려진 것처럼 보이게 마련인 것들을 찾아내 “소유하고 보존해야 하며”(움베르토 에코의 당부다) 또 사람들의 죽음 같은 망각이 도래하기 전에 그것들을 주워 경건하고 희망 어린 마음으로 시간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 벤야민이 ‘넝마주이’라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곤히 자고 있을 때 일하며 허리를 굽혀 줍는 자세가 마치 넝마주이 같기 때문이었고 또 그래서 보르헤스가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이 될 의무가 있다”고 말한 것은 권력과 부 바깥의 또 다른 사람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_251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탕누어唐諾

1958년생으로 타이완 이란에서 태어났으며 타이완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다. 전문 스포츠 평론가가 아닌데도 젊은 시절 NBA 농구 칼럼으로 유명해졌고, 전문 추리소설 평론가가 아닌데도 ‘탕누어’ 스타일의 추리소설 가이드를 내서 같은 해에 타이완 3대 출판상을 받았다. 또 『끝』은 진딩상 문학도서상을 받았다. 유일한 ‘전공’은 작가 겸 프로 독서가로서, 지은 책으로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역사, 눈앞의 현실』 『한자의 탄생』 『끝』 『세상의 이름』 『독자시대』 『탕누어 추리소설 가이드 1』 『탕누어 추리소설 가이드 2』 『커피숍에서 14명의 작가를 만나다』 등이 있다.

 

옮긴이

김택규

1971년 인천 출생. 중국 현대문학 박사.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중국 저작권 수출 분야 자문위원. 출판 번역과 기획에 종사하며 숭실대학 대학원에서 번역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이중톈 중국사』 『죽은 불 다시 살아나』 『암호해독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