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
2020.06.10
불평등한 세계에서 팬데믹을 응시하다
  •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 실린 우석균, 「불평등한 세계에서 팬데믹을 응시하다」 전문을 카피레프트로 공개합니다.

 

불평등한 세계에서 팬데믹을 응시하다

_우석균

 

청도대남병원

 

코로나19로 인한 첫 번째 사망자는 청도대남병원에 입원한 63세 환자였다. 이 환자에 대해 정부가 발표한 것은 담배를 많이 피워 폐기종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부였다. 환자가 어렸을 때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 폐렴에 걸려 사망에 이를 때까지 단 한 번도 의료진의 진찰과 치료가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20년 동안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몰랐다.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그런데 이 청도대남병원의 5층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던 102명의 환자 중 102명 전원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모든 환자가 코로나19에 걸린 것이다. 반면 그 바로 아래층의 요양병원과 또 그 아래층의 일반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에서는 단 한 명의 감염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5층 폐쇄병동의 전원 감염과 다른 층의 감염 0명[나중에 요양병원에서 노인 두 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도대체 얼마나 밀집된 환경에서 생활을 했길래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흔한 운동 시간조차 없었다는 걸까? 잘 알려진 사실대로 청도대남병원은 환자를 더 많이 수용하기 위해 침대를 치우고 온돌방 병실에 6~8인의 환자를 밀집 수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신과 환자가 입원하면 병원은 환자 수만큼의 정액입원료를 정부로부터 받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환자들의 집단 발열은 2월 15일 이미 시작되었고 첫 사망자가 나온 것은 2월 19일이었다. 이후 사망자가 쏟아졌다.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2월 25일 일곱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그때까지도 보건당국의 방침은 5층 밀집수용 상태 그대로 환자들을 ‘코호트 격리’하는 것이었다. 바이러스 부하가 높고 환기도 충분히 안 되고, 응급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도 없는, 지극히 위험한 병원 환경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장애인들을 다 죽일 셈인가’라는 장애인 인권단체들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성명 등이 나오고 나서야 겨우 전원 이송 결정이 내려졌다. 2월 27일이었다. 여기까지도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일은 그러고도 실제로 환자 이송이 끝난 것은 3월 5일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서울 국립정신건강센터, 국립부곡정신병원 등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입원했다. 애초에 발생 자체도 황당한 일이었지만 사태가 발생한 뒤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그 병원 그대로 환자들을 코호트 격리하기로 한 결정은 이 사회가 정신장애인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고, 결정이 내려진 이후로도 전원 이송 조치가 이루어지는 데 거의 열흘이나 걸렸다는 것은 문명국가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그 병원에 어엿한 집 자식이 입원해 있었더라도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5층 환자들이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기까지 정신장애인 일곱 명이 병원도 못 가보고 죽어야 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40명이 이송된 국립정신건강센터에는 당직을 설 수 있는 내과계 의사가 없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국가 중앙 정신병원이다. 그런 곳에 당직을 설 의사가 없다니. 결국 시민단체인 인의협에서 의사들이 자원봉사를 나가 야간 당직을 서야만 했다.

 

요양원과 요양병원

 

코로나가 희생을 강요한 집단들이 또 있다. 코로나 감염에 가장 취약한 노인들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집단도 70대 이상 노인들이었으며 이들은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한다(60대 이상으로 따지면 83.4퍼센트다).[중앙사고수습본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국내 발생 현황, 2020년 5월 19일 0시 기준]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집단은 요양원과 요양병원 등에 있는 노인들이다. 신천지 집단감염cluster infection이 지나간 후로 계속된 집단감염이 발생하는 곳도 이곳이다.

요양원 15만 명, 요양병원 25만 명으로 약 40만 명이 여기에 있다. 요양원은 복지시설이고 요양병원은 병원이지만 사실 그다지 차이는 없다. 시설마다 환경도 천차만별로, 비싼 곳은 서양이나 일본의 너싱홈을 연상케 하지만, 서민들이 찾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돈이 부족하면 요양원이고 돈이 조금 더 있으면 요양병원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이 평균 머무는 기간을 보면 요양원이 2년 5개월, 요양병원이 1년 4개월이며 사망으로 퇴원하면서 입원이 끝난다는 점은 거의 같다. 문명화된 고려장 제도라고 부르면 너무 지나칠까. 생산인구가 아닌 노인들에 대한 사회보장은 형편없다. 한국사회는 노인 빈곤률이 49퍼센트다.

여기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수가 없다. 요양원은 환자 2.5인당 1인의 요양보호사를 두도록 되어 있으나 이를 지키는 곳은 거의 없다. 요양병원은 1인의 간병사가 8인의 환자를 본다는 실태 조사가 있다. 당연히 이들 돌봄노동자들이 환자들을 다 돌볼 수가 없다. 그래서 요양병원에선 환자 보호자들이 간병을 해야 한다. 아예 노부부가 함께 들어가 남성 노인은 입원을 하고 여성 노인은 간병을 하며 지내는 일도 드물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요양원이든 요양병원이든 현실에서는 지켜지기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코로나19가 발병하면 당연히 집단감염이 일어난다.

대구 대실요양병원에서는 94명이 집단으로 감염되었고 같은 건물의 미주병원에서도 134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대구 한사랑요양병원에서는 77명이 감염되었다. 대구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다. 군포 효요양원에서도 집단감염이 있었다. 문제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의료 수용능력의 부담을 심각하게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군포의 예를 들면 네 명의 환자는 일반병실로 입원했지만 열 명의 노인은 중환자실로 가야만 했다. 이렇게 되면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병원의 부족한 중환자실을 이 환자들이 다 채우게 된다. 다른 병으로 중환자실을 가야 할 환자들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다. 결국 병실이나 중환자실 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보던 바로 그 광경이 펼쳐진다. 악몽이고 야만이다.

대구·경북에서는 수백 곳의 요양시설에 대한 ‘예방적 코호트 격리’ 조치로 병원노동자와 의료진, 간병인과 노인 들을 병원에 가두어 바깥과 차단했다. 이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가족을 둔 사람들은 아직도 면회를 할 수 없다. 1인당 월 수백만 원씩 하는 실버타운에서 코로나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바 없고 이들이 코호트 격리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바 없다.

전국의 5000개에 가까운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노인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사회복지시설이나 요양시설 거주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좀더 넓은 공간이지 사회로부터의 격리가 아니다. 정부는 이들이 밀집수용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또 정부가 나서서 더 많은 돌봄노동자를 고용하고, 그 비용 또한 부담해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성소수자와 이태원 클럽

 

클럽 운영 재개가 허용된 것은 4월 19일이었다. 그리고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 감염인이 확인된 것은 5월 6일이었다. 이 환자는 5월 2일부터 5일까지 클럽을 들렀다고 했다. 그리고 이태원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5월 7일 순복음교회가 운영한다고 알려진 『국민일보』가 「[단독] 이태원 유명 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라는 제목의 보도를 내면서부터 발생했다. 불필요하게 성적지향을 밝힌 보도에, 뒤따라 많은 언론이 자극적인 보도를 내놓았다. 성소수자를 낙인찍고 불필요하게 성적지향을 공개하는 것은 방역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해가 된다는 정부와 시민단체의 질타에도 이 신문은 5월 9일 「“결국 터졌다”…… 동성애자 제일 우려하던 ‘찜방’서 확진자 나와」라는 보도를 이어갔고, 원색적인 표현을 써서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겼다.

이러한 보도는 이태원 클럽의 접촉자들로 하여금 검사를 두려워하고 기피하게 만들었고, 검사를 받거나 감염이 되면 곧 자신의 의사에 반해 성적지향이 밝혀지는 ‘아웃팅’의 위험에 맞닥뜨리게 했다. 한국사회의 편견을 고려하면 이런 보도는 코로나19를 이용한 노골적인 성소수자 혐오 선동이다. “언론은 성적 소수자에 대해 호기심이나 배척의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경우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보도준칙 참조, https://www.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7] 해당 기사는 이런 기본적인 인권보도준칙을 정면으로 어겼다.

한 인권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안 좋은 학습효과가 진행된 상황에서 중국, 신천지보다 더 큰 낙인이 이태원 방문자들, 특히 성소수자들에게 가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혐오를 쏟아내고 있는 언론들은 정말 코로나 종식을 방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냥 잠깐 와서 검사받으면 되는 걸 왜 안 나오냐고요? 검사를 받으면 음성이건 양성이건 자가격리 대상자가 됩니다. 최소 하루 이틀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합니다. 직장이나 지인들에게 자신이 나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 자체로 인생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실제 인천의 대학생이자 학원 강사였던 분은 초기 조사 때 무직이라고 속여 결국 직장 동료와 가르치는 학생들까지 감염됐습니다. 그는 “졸업과 취업에 불이익이 생길 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코로나를 전파한 책임이 정말 ‘온전히’ 그에게 있습니까?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해온 우리 사회, 이태원 클럽 방문자는 성소수자이고 사회에서 배제돼야 할 존재라는 등식을 만든 언론, 그리고 이것을 방치한 정치인들이 평범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2차, 3차의 코로나 확산을 부추긴 것은 아닐까요?[2020년 5월 14일 광화문광장에서 전국 인권시민단체가 주최한 ‘코로나19 인권대응 시민사회 기자회견’ 당시 최규진 건강과대안 운영위원·인의협 인권위원장의 발언.]

 

사회적 거리두기와 노동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규범, 뉴 노멀이 되고 있다. 이때의 거리두기는 서로 팔을 뻗어 맞닿지 않는 거리다. 우리 정부는 1미터를 이야기했고, 외국에서는 1.8~2미터를 이야기한다(최근에는 우리 방역당국도 2미터를 기준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제로 가능한지를 생각해보자. 당장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려면 1~2미터는커녕 양팔을 펼칠 수도 없을 정도로 밀접 접촉을 해야만 한다. 대중교통만 그러한가? 일을 할 때 서로 2미터씩 거리를 두는 직장이 얼마나 되는가. 공간 이용이 곧 이윤인 이 자본주의사회에서 감염병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당장 이번에 문제가 된 서울 구로의 콜센터를 생각해보자. 콜센터는 경력이 없는 젊은 청년들이 가장 많이 취직하는 직장이자, 감염 위험이 가장 높은 곳으로 이미 지목되어왔던 곳이다. 한 곳에서만 137명이 감염된 것으로 알려진 구로의 콜센터는 어느 손해보험사의 외주회사였다. 한 층에 207명이 근무했다는 이 직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에게 2미터의 거리는 월급―한 가족의 생계와 맞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콜센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직장들도 마찬가지다. 대기업들은 여유 공간을 쓸 여유가 있겠지만 그 바깥의 많은 직장인, 즉 노동자에게 2미터의 거리는 방역당국의 지침에나 나오는 말이다.

아프면 쉬라는 방역지침 1번도 그렇다. 아프면 쉴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아예 없는 곳도 많다. 유급휴가가 제도화되지도 않았고, 가뜩이나 경제위기라고 야단인데 아프면 쉰다는 지침을 실천하면 곧바로 해고에 맞닥뜨리기 십상이다. 사회보장이 엉망인 미국에서조차 직장에 유급휴가 제도나 상병수당이 있다. 유럽에는 일주일 동안은 진단서 없이 유급병가를 낼 수 있는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나라가 많다. 직장에서 임금을 주지 않으면 사회보장제도에서 상병수당(질병수당)을 준다. 이런 제도가 있고 나서야 방역준칙 준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유급병가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유급돌봄휴가도 당연한 노동자의 법적 권리다. 학교 휴교의 사회적 영향평가에 관련한 논문들은 휴교가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돌봄휴가로 인한 의료 대응능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라는 점을 당연하다는 듯이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Bayham et al., 2020).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린이집이 휴원을 하고 학교도 휴교를 했는데, 그 아이들을 누가 돌볼 것인지가 큰 골칫거리다. 학교를 보내도 문제, 안 보내도 문제다. 유급병가도 주어지지 않는 이 사회에서 유급돌봄휴가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꿈일 뿐이다.

코로나19로 많은 나라에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했다. 셀 수 없는 일터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집 바깥에도 나가지 못했다. 이른바 봉쇄lock down라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일터가 쉼 없이 돌아갔고, 유통부문 역시 쉬지 않았다. 사회적 서비스부문(예를 들어 대중교통)도 그대로 작동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봉쇄는 교회나 클럽, 노래방, 헬스클럽 등 문화시설과 유흥시설, 즉 비생산부문에서만 시행되었다. 식당이나 레스토랑 등 타격을 입은 분야도 넓게 보면 비생산부문이다. ‘K-방역’의 중요한 요소인 한국형 사회적 거리두기는 ‘비생산분야에서의 엄격한 거리두기와 생산·유통·사회적 서비스 등 핵심 생산부문에서의 느슨한 거리두기 내지 포기’를 모델로 삼았기에 가능했다. 저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다. 이것은 세계의 자본가들이 기존의 자본주의적 생산 형태를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부분적으로 실천하는 모델로 보였고(Bodenstein et al., 2020), 이는 이른바 ‘K-방역’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콜센터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가족 간 감염만큼이나 직장에서도 밀접 접촉으로 인한 감염이 많이 일어났다. 다행히 2020년 5월 현재까지는 택시 이외의 대중교통에서 감염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생활방역’에 들어가게 되면 조만간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한국형 사회적 거리두기는 유통부문 노동자들이 감염 위험을 감수하고 초과노동을 했기에 가능했다. 외신에서는 한국의 온라인 유통망을 방역 성공의 비결로 꼽았다. 자본가 입장에서는 유통부문의 오프라인 수요 감소를 온라인으로 메꾸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온라인 유통이 인간의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과정임을 망각하게 만든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려면, 그 거리를 누군가 메꿔야 한다. 그 간격을 메꾸는 이는 노동자다. 배달노동자들의 일을 두고 ‘살인적인 노동’이라고들 한다. 이 표현은 은유가 아니다.

3월 12일 40대 온라인 쇼핑몰 배달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그는 새벽 배송을 하던 중 경기도의 어느 빌라 건물 4층과 5층 사이에서 심정지 상태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생전에가족들에게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가기 어렵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도 1년 미만 퇴사자가 96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초과노동에 시달리던 배달노동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달 물량에 초초과노동을 한 결과다. 밤 10시에 출근해 이튿날 아침 7시까지 배송일을 하던[김종훈, 「입사 한 달도 안 된 쿠팡맨의 죽음…… “1년 미만 퇴사자 96퍼센트”」, 오마이뉴스, 2020년 3월 18일 자] 그 노동자의 사망은, 한국형 사회적 거리두기의 결과였다.

그리고 얼마 뒤 또 한 명의 배달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택배기사로 일하던 그는 토요일이던 5월 2일 배송을 나가기 전 동료에게 한 주 뒤로 다가온 가족여행 계획을 알렸다. 코로나19 여파로 급증한 물량에 지난 몇 달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던 차였다. 그러나 그는 이틀 뒤인 4일 새벽 자택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른 후 돌연사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 숙련된 택배노동자가 한 달에 소화하는 물량은 7000~8000개였다고 한다. 고인은 2월에 9960개, 3월에 1만1330개, 4월에는 1만288개를 배달했다. 그만큼 노동 시간도 늘어 하루 15시간씩 쉼 없이 일했다.[이효상, 「‘언택트’시대의 과부하…… 또 스러진 택배기사」, 『경향신문』, 2020년 5월 6일 자]*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K-방역의 빛과 어둠

 

K-방역의 성공이라고 한다. K-방역이 세계적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첫째 섣부르고 둘째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기모란 예방의학회 코로나 대책위원장은 “한국의 상대적 방역 성공은 한국이 50점인데 반해 다른 나라는 30점이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50점은 성공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점수다. 많은 공중보건학자와 감염학자가 한국의 상대적 성공에는 천운도 따랐다고 말한다. 물론 상대적 성공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상대적 성공으로 수천수만 명의 목숨을 살렸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한 달 내지 한 달 반 정도 미리 대응했다. 타이완과 한국이 그러했고 싱가포르도 처음엔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세 나라가 중국과 가까이 위치한 덕분(타이완은 미리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이다. 1월 20일, 한국에 첫 번째 감염자가 발생했다. 한국은 중국과의 왕래가 잦아 하루 평균 3만 명이 양국을 드나들고 있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를 매우 빨리 시작했다. 초기부터 광범위하게 접촉자를 추적했고, 빠른 진단을 위해 코로나 진단키트를 개발하도록 승인 절차도 신속하게 진행했다.[이를 한국 바이오산업의 규재 완화 덕분이라고 발하는 것은 과장이다. 규제 완화가 아니어도 신속승인제도는 있었고, 이러한 기술은 다른 나라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단지 대응이 늦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빠른 대응에는 신천지 집단발병이 역설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봉쇄 조치를 내리면서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자 수가 크게 줄어들고 국내 감염자도 아직 없었던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월 13일 “방역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2월 17일 이른바 31번 확진자가 발생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집단발병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31번 환자가 처음으로 확진을 받은 것은 2월 17일이지만, 이후 이뤄진 역학조사에 따르면 그는 4~5차 감염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31번 환자의 증상이 나타난 시점을 고려해볼 때 한국에서도 이미 1월 중순 무렵부터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조용히 퍼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신천지교회 신도는 25만 명가량의 규모로 한국 전체 인구의 0.5퍼센트를 차지할 만큼 그 규모가 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흥종교였고 매우 폐쇄적인 집단이었던 까닭에 상대적으로 대구·경북 지역 감염에 머문 측면도 있다. 신천지교회 내부에서는 재생산지수가 7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그만큼 폐쇄적인 신흥종교였다. 그런가 하면 호남 지역 신천지 신도들 사이에선 한 명의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았을 만큼 코로나19의 유행 양상은 지역적이기도 했다.

젊은 여성들도 감염인 중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가장 취약한 성별·연령 집단이기도 하다. 이처럼 젊은 층이 많은 신천지교회 신자의 인구학적 특성도 한국의 사망률이 낮았던 중요 요인이었다. 이른바 ‘신천지 착시효과’다. 게다가 이들은 추적하기도 쉬웠다. 신도 명부는 검찰의 평가대로 나중에 압수수색을 통해 찾아낸 것과 실질적인 차이가 없었다. 한편 교인들은 신흥종교의 특성상 일상적인 외양을 갖추지 않았기에 범죄인 취급당하고 낙인찍히기도 쉬웠다. 마지막으로 신천지 감염 폭발은 대구·경북의 지역 감염으로 이어져 사회적 경각심을 대폭 강화했고, 사회적 거리두기나 개인 방역의 실천을 초기에 사회적 규범으로 만들었다.

둘째, 디지털기술을 이용한 감시체계가 큰 사회적 저항 없이 작동했다. 휴대전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통한 위치추적과 통화내역 조회, CCTV 모니터링, 신용카드 사용처 조회를 통한 동선 추적은 K-방역의 주요한 성공 요소였다. 이는 초기 신천지교회 신도들이 범죄화되면서 상대적으로 큰 사회적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또한 한국은 모든 개인이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고, 국가가 전 국민의 사진과 지문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이런 시스템은 역학조사가 시작되면 10분 안에 모든 자료가 도착할 정도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기술감시체계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고도화한 디지털 감시체계에는 당연히 인권침해 요소도 있었다. 심지어 한 지자체는 안면인식 열측정기를 도입하기도 했다.[진보네트워크센터, 「서울시 성동구청 인공지능 얼굴인식 체온 카메라 설치에 대한 공개민원 및 질의」, 2020년 5월 15일 자]

셋째,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이 있었다. 의료현장이 대표적이었다. 한국은 간호사의 1인당 환자 수가 유럽 국가의 3배 수준이다. 그런데 대구·경북에 집단발병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간호사 1인이 많게는 환자 20명까지도 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구·경북에는 4만 개의 급성기 병상이 있었지만, 이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공공병원과 일부 민간병원에서 쓰일 수 있었다. 의료 인력도 모자라 공보의, 군간호장교를 포함해 전국의 자원봉사 의료진이 동원되어야 했다. 그나마도 공보의 등은 초임 의사가 많아 선별진료소에 활용할 수밖에 없었고,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의료진은 그야말로 자신을 ‘갈아 넣는’ 노동을 했다.

이는 주로 국공립병원의 절대적 부족에 더해 초기 중증환자 분리에 실패했던 까닭인데, 의료인들은 초과노동으로 대응능력의 부족을 메꾸었다. 대구의료원, 경북대학교병원, 대구보훈병원, 대구산재병원, 심지어 국군대구병원까지 환자들을 내보내고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사용됐으나 여전히 대구 국공립병원의 1200병상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 이사를 가고 남은 200병상을 빌려 썼고, 영남대학교병원·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도 100병상씩을 활용했으나 결국 전국의 국공립병원이 동원되어야 했다. 경남의 마산의료원, 창원산재병원, 결핵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국립마산병원까지 환자를 내보내면서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어야 했다. 여기에 충남대학교병원, 충북대학교병원은 물론 전남대학교병원, 서울 국립의료원, 서울의료원, 서울대학교병원까지 동원되었다. 10퍼센트의 국공립병원이 대구·경북 환자의 77퍼센트를 맡았고 나머지 환자들을 민간병원이 맡았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 특히 간호사들의 노동은 원래도 과부하였지만 코로나 사태로 그 정도를 넘어섰다. 방호복을 입으면 숨이 막히고 땀이 나 보통은 2시간마다 교대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간호사들은 5시간까지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보아야 했고, 심지어 소변을 보러 화장실조차 갈 수 없어 방호복 안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건강과대안·보건의료단체연합·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현장에서 듣는다」, 2020년 5월 8일 발표] 간호사들뿐만이 아니다. 응급구조사, 소방서 노동자들도 환자 이송을 위해 초과노동을 해야 했고, 병원 내에서 환경미화와 간호보조를 담당하는 노동자들도 똑같이 방호복을 입고 초과노동을 해야만 했다. 접촉자 추적에는 공무원 경찰노동자들이 동원되었고, 디지털 감시에도 수많은 사람의 노동이 필요했다. 한국의 놀라운 추적 속도와 진단 건수는 이들의 초과노동에 힙입은 것이었다.

넷째, 시민의 높은 안전감수성과 대처능력도 한몫했다. 이는 한국 시민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데, 멀리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시위에서부터 가깝게는 2015년 메르스 사태의 경험이 있었다. 또 2014년 세월호 참사의 경험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세월호 사건이 시민들의 안전감수성에 미친 영향은 복합적이었는데, 무엇보다 당국의 미흡한 대처가 가장 큰 실정으로 남았다. 이런 국가재난의 경험은 정권을 교체하고 새로 선출한 정부에 대한 믿음의 바탕을 이루기도 했으나, 반대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자도생 정신이 개인의 안전감수성에 반영되게도 했다. 이것이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쓰기 등 개인 방역의 준수로 나타났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크게 보아 이 네 가지가 K-방역의 실체다. 그 성공 여부는 살펴본 대로 체계적 성공이라기보다는 ‘천운’과 함께 조기 대응, 기술 감시체계, 노동자 갈아 넣기, 시민의 대응 등 복합적 요인에 의지해 겨우겨우 버틴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방역능력과는 별개로 의료 대응능력의 처참한 수준이 드러났다. K-방역은 상대적으로 성공했지만 ‘K-의료’는 실패했다. 공공병상과 중환자실의 부족, 훈련된 의료인력의 부족, 개인 보호장비와 필수 의료장비의 부족,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지금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코로나 2차 파고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불평등을 넘어 포스트 코로나 체제로

 

흔히 바이러스는 누구에게나 평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이러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닐뿐더러, 코로나바이러스는 10만 분의 1센티미터 정도로 아주아주 작디작은,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무엇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전파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바이러스는 인간으로부터 인간에게로 번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회는 사회적 약자들, 노동자와 소수자, 소외된 사람들에게 언제나 더 가혹하다.

많은 전문가와 경제기구의 분석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는 18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야말로 불평등이 가장 심화되는 시기다. 인류는 지금 공중보건위기와 경제위기를 동시에 겪어야 하는 비상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더욱이 현재와 같은 탄소경제를 운영하면 10년 내에 기후위기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돌입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는 3중의 위기에 처해 있다. 앞으로 몇 년간의 대처가 인류의 멸종인가 문명의 지속인가를 가르는 운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한 세기 전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라는 질문을 인류에게 던졌다. 인류는 결국 제1차 세계대전 후 닥친 1930년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야만의 길로 내달렸다. 지금은 그때와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야만인가 자본주의의 극복인가가 아니라, 멸종인가 아니면 다른 길인가를 물어야 하는 시점에 있다. 어떻게 하면 불평등을,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자본주의의 불평등 재생산을 온존하는 방법으로 나아간다면, 더욱이 이 재난을 빌미로 불평등을 심화하는 ‘재난자본주의’의 길로 나아간다면 인류는 멸종의 길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인류는 노동자와 소수자에게 짐을 떠넘기지 않으면서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을 찾아야만, 불평등을 넘어 기후위기 속에서 생존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은 새로운 사회를 꿈꾸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이것이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 이 글은 2020년 3월 11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바이러스는 평등한데, 인간은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진실의힘’ 뉴스레터로도 발행되었다)를 보완하고 확장한 것이다. 집필 과정에서 앞의 글의 상당 부분을 별도의 인용 표시 없이 가져왔으나, 두 글은 분량도 내용도 다름을 밝혀둔다. 전문은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82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