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아
2020.04.29
편집자를 위한 네 번째 원고

*이 글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 ‘편집자의 책 소개’에 처음 실렸습니다.

 

 

‘편집자의 책소개’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 <네 번째 원고>는 글쓰기에 관심이 있거나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수많은 사람에게 성찬과도 같은 책이지만, 사실 편집자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책이기도 합니다. 1965년부터 지금껏 <뉴요커> 전속 작가로 글을 쓰고, 굴지의 출판사 패러, 스트로스 앤드 지루와 수십 권의 책을 펴낸 맥피의 곁에는 늘 전설적인 편집자(와 팩트체커, 교열자, 오케이어)들이 함께했습니다. 이 글에선 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할까 해요.

<뉴요커>는 비속어와 상소리에 대단히 보수적인 잡지입니다. ‘씨*[f***]’ 같은 단어는 이 잡지에 어울리지 않았죠. ‘우리와는 안 맞아요.’ 편집자들은 좋게 표현했지만, 이 말은 문제의 단어를 삭제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존 치버를 거쳐 앨리스 먼로도 이런 원칙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편집장을 지낸 윌리엄 숀은 피임기구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무려 필립 로스의 <굿바이, 콜럼버스>를 거절했다고 해요. (지금은 ‘씨*’이나 ‘젠장’ 정도는 허용된다고 하니 다행일까요?) 그런 <뉴요커>에 맥피는 글 한 편을 송고합니다. 이 글엔 ‘니***[motherf***]’라는 단어가 등장인물이 실제 한 말로 인용되어 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원고를 읽어내려가던 편집자 로버트 고틀립의 눈은 문제의 자리에서 멈춥니다. 그리고 맥피를 사무실로 불러들이죠. “선원의 대사를 재고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완고한 맥피는 답합니다. “그 말을 한 셰퍼드는 재고하지 않았는데요. 어떻게 제가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어요.” “그대로 뒀으면 좋겠는데요.” … 말이 통하지 않는 이 상황. 편집자는 어떻게 했을까요?

고틀립은 포스트잇을 한 장 떼내더니 그 위에 문제의 단어인 ‘MOTHERFUCKER’를 검은 매직으로 북북 써갈깁니다. 그러다니 자신의 셔츠 주머니에 그 포스트잇을 척 붙이죠. “오늘 중으로 다시 이야기 나누시죠.” 그러고는 이 편집자, 포스트잇을 학회장에서 달고 다니는 이름표처럼 가슴에 붙인 채 잡지사 건물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며 온갖 부서를 기웃거립니다. 그걸 보고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얼굴을 붉혔고, 누군가는 깜짝 놀랐으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죠. 맥피에 따르면 “그는 필자들에게 잠시 숨 돌릴 여유를 (…) 편집자들에게는 저자 말고 잠시 다른 걸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었습니다. 딱히 의견을 묻지 않고도 거의 모든 사람의 관점을 흡수한 그는, 끝으로 맥피를 부릅니다. 그러곤 말하죠. “<뉴요커>는 ‘motherfucker’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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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틀립 말고 또 한 명의 로버트가 있는데, 그도 만만치 않습니다. 16년간 맥피의 편집자였던 로버트 빙엄이죠. 맥피는 <뉴요커>로 옮긴 초창기에 쓴 글에서 “진실한sincere 콧수염”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빙엄은 이 구절을 읽더니, 원고를 들고 맥피의 사무실을 찾아옵니다. “진실한 콧수염이라, 미스터 맥피, 진실한 콧수염? 이게 무슨 뜻이죠? 그럼 내가 진실하지 못한 콧수염도 있다는 암시라도 주고 있었던 건가요?” 정말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군요. 우리의 맥피는 이번에도 수세에 몰립니다. “이보다 더 명확한 표현은 상상할 수 없는걸요.” 진실한 콧수염은 (‘니***’과 달리) 살아남았을까요? 결과는 맥피의 글로 확인해보시죠.

그 콧수염은 성공적으로 지면에 안착했고 이로써 나는 『뉴요커』의 논픽션 콧수염 전문가로 자리 잡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후로 ‘허튼수작이 먹히지 않는 콧수염’을 가진 사람, ‘자이로스코프 콧수염’을 가진 오대호 배의 선장, ‘산림조사관의 정직한 콧수염’을 가진 북부의 산사람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메인주의 한 가정의학과 의사는 ‘진통 효과가 있는 콧수염’을, 또 다른 의사는 ‘환자를 진정시키는 콧수염’을, 또 다른 의사는 ‘입꼬리 너머로 반듯이 펼쳐져 있으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어떤 예후도 암시하지 않는, 의학적으로 생긴’ 콧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콧수염 묘사는 그에게 고된 글쓰기의 소소한 낙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맥피의 콧수염을 참 좋아합니다.

 

 

맥피는 1970년대에 카누 여행을 하다 본의 아니게 기르기 시작한 이 수염을 지금껏 기르고 있다고 해요.맥피 식으로 말하자면, 구조에 집착하는 논픽션 작가의 비범함을 딛고 자란 수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로 50년을 자라고 깎이며 숱한 표정과 말을 따라 움직여온 그의 수염들은 가닥가닥이 삶의 단층을 보여주는 지질학적인 구조로 자리를 잡았다.’ 무슨 말일까요? 빙엄이 제 사무실 문을 열고 걸어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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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가 ‘확인’ 버튼을 눌러 이 글을 등록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건, 빙엄의 방문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 글이 맥피의 진가를 단 1퍼센트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존 맥피의 이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책으로 그를 직접 만나보세요. 왜 그처럼 많은 사람이 흠모를 넘어 사랑을 고백하는지, 왜 논픽션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하고, 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맥피의 언어 안에서 발견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