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아
2020.02.28
엘리너 굴드를 위하여: 일물일어一物一語를 찾는 탐색

사진: 엘리너 굴드 패커드Eleanor Lois Gould Packard, 1917–2005. 『뉴요커』에서 문법 전문가로 54년간 일했고 2005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한 통신원에게 쓴 편지에서 남긴 말은, “나를 잊어주세요.” David Remnick, Miss Gould, The New Yorker, 21 Feb, 2005.

BITCH. 원서에 이 단어가 나올 때마다 참 난감하다. 『뉴욕은 교열 중』에 ‘굴드 교정지’의 그 굴드로 등장해 유명한 『뉴요커』의 전설적 편집자 엘리너 굴드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25년, 막 창간한 『뉴요커』를 읽던 20대 초반의 굴드는 모든 페이지에서 콤마 하나까지 포함한 온갖 오류를 체크해 시퍼렇게 물든 잡지를 초대 편집장인 해럴드 로스에게 보냈다. 붉은 펜으로 교정을 보는 우리 편집자들끼리 이따금 쓰는 속된 말로 ‘피바다’를 만들어 보낸 것이다. 해럴드 로스는 이걸 받아들고 고함쳤다고 한다. “Find this bitch and hire her!”
지금 작업 중인 논픽션 작가 존 맥피의 글쓰기 과정에 관한 에세이 『네 번째 초고Draft No. 1』에 소개되는 일화다. 이 책 원서에는 bitch라는 단어가 총 다섯 번 등장한다. bitch들은 빌어먹을 황소의 어미도 됐다가(son of a bitch), 주정뱅이 개자식의 엄마도 됐다가(drunk fucking son of a bitch), 엄청나게 부유한 개자식들의 모친도 됐다가 한다(sons of bitches).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그냥 bitch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위풍당당한 bitch가 바로 저 괘씸할 정도로 비범해서 해럴드 로스를 열 받게 한 엘리너 굴드다.
로스가 고함쳤다는 문제의 문장은 처음에 이렇게 옮겨져 있었다. “이 마녀를 당장 찾아서 채용해!” 마녀? 마녀…… 마녀? 마녀라는 단어에 그런 뉘앙스가 있던가? 사전을 찾아보니 “악마처럼 성질이 악한 여자”(『표준국어대사전』)라는 뜻이 있다. 일단 그대로 두고 다른 번역어가 없겠느냐는 의견을 달아 역자에게 보냈다. 얼마 뒤 날아온 교정지에는 “이 괘씸한 인간을 당장 찾아서 채용해!”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괘씸한 인간……?
bitch에 관한 고민을 밥 먹으면서 동료 편집자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신박한 대안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우리 식탁을 평정했다. “또라이는 어때?!” “오……!” “또라이 괜찮은 듯?”
신이 나서 ‘또라이’를 제안한 그녀는 지금 일본어 번역서를 마무리 중인데, 피칭할 때마다 강속구를 던져 ‘즈방! 즈방!’소리가 난다는 야구 투수 ‘즈방ズバン 씨’의 적절한 대역어를 못 찾아 한 달 넘게 고민 중이다. 이번에는 그녀를 위한 대안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화지끈 씨, 콰광 씨, 쾅쾅 씨, 탁탁 씨, 팍팍 씨…… 별별 소리가 난무하는 식사가 끝난 후 자리로 돌아와 ‘또라이’에 대한 신상털기에 착수했다. 여기서부터 bitch에는 없던 뜻이 생겨난다. 또라이: 생각이 모자라고 행동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고려대한국어대사전』) 이건 아니네. 돌아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우리말샘』) 이건 괜찮은가? 고민은 다시 원점이다.
이렇게 세상에 하나뿐인 특정한 대상에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를 찾는 과정이 『네 번째 초고』에도 자세히 언급된다. 저자 존 맥피는 이것을 “일물일어一物一語를 찾는 탐색the search for the mot juste”이라고 부른다.(‘the mot juste’는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가장 적확한 단어 하나le mot juste’를 찾아 머릿속을 뒤졌다는 일화에서 가져온 말이다.) 단어를 찾는 과정에 이름까지 붙일 정도로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수십 개의 단어를 곱씹고 견주는 그에게 뜻이 통하면 눙쳐도 될 단어란 건 있을 수 없는 듯하다. 초고를 세 번이나 고쳐 쓰고도, 그의 네 번째 초고에는 언젠가 더 나은 단어로 대체될 수 있는 사소하고도 중대한 단어들이 수많은 네모 안에 갇혀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원고이기 때문에, 편집자인 나도 현재로서는 ‘돌아이’인 bitch를 계속 네모 안에 가두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