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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복왕 윌리엄 노르망디 공작에서 잉글랜드의 왕으로
  • 지은이 | 폴 쥠토르
  • 옮긴이 | 김동섭
  • 발행일 | 2020년 04월 13일
  • 쪽   수 | 608p
  • 책   값 | 30,000 원
  • 판   형 | 148*220(양장)
  • ISBN  | 978–89–6735–764–1 03920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바이킹은 어떻게
잉글랜드의 기원이 되었나
노르만 민족들이 서유럽을 위협하고 프랑스와 영국을 점령한 10~11세기
정복왕 윌리엄의 놀라운 생애를 통해 본 중근세 유럽 질서의 형성

폴 쥠토르의 『정복왕 윌리엄Guillaume le Conquérant』은 정복왕 윌리엄이 1066년 영국(정확히는 잉글랜드다)을 정복하고 영국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상세히 추적하고 영어에 미친 프랑스어의 영향 등 역사와 문화 교류의 내용을 풀어 쓴 책이다.

사생아 출신 바이킹의 입지전적인 삶

정복왕 윌리엄은 중세 유럽의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입지전적인 군주다. 그의 조상은 덴마크에서 건너온 바이킹이었고, 911년에 노르망디 지방에 정착하여 프랑스 왕의 봉신이 된 롤롱Rollon이 그 시조다. 그는 노르망디 공국의 제1대 공작이었다. 윌리엄은 노르망디의 장엄공 로베르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중세 사회에서, 특히 노르망디 공국에서 제후의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덴마크 바이킹의 후손인 노르만인들은 ‘덴마크식 풍습more danico’이라는 독특한 관습을 지키고 있었다. 이들의 풍습에 따르면 비록 서자라고 해도 아버지의 지위와 재산을 적자처럼 물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작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아버지의 지위를 당연히 물려받을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윌리엄의 위대함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어떻게 윌리엄이 서자 출신으로 노르망디 공작이 되었으며, 훗날 영국을 정복하고 위대한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중세 영국과 노르망디 공국의 역사를 아울러 조망한 책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정복왕 윌리엄이 있다.
그런데 윌리엄에 대한 평가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프랑스에서는 그를 노르망디 공작에서 영국의 정복왕이 된 위대한 군주로 칭송하지만, 정복을 당한 영국의 입장은 다르다. 단순히 왕국이 공국에 의해서 정복되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일까? 물론 영국 입장에서 보면 정복왕은 20여 년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냉혹한 통치를 펴기도 했다. 인구 2만 명 정도의 노르만인이 200만 명의 영국인을 통치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 쥠토르는 노르망디 공국이 영국 왕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필연성에서 찾는다. 이 책은 그 이유를 다양한 분야의 예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폴 쥠토르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소르본대학의 중세문학 교수 귀스타브 코엔Gustave Cohen과 함께 연구했으며, 유명한 프랑스어 학자 발터 폰 바르트부르크Walther von Wartburg와 함께 프랑스 어원론을 연구했다. 그는 중세 프랑스 문학과 중세사에 관한 다수의 저술을 남겼다.
이 책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축은 공시적인 문화의 축인데 정복왕 윌리엄이 태어난 11세기 서유럽의 공간적 특징을 기술한다. 저자가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은 인간이 주변 환경, 특히 자신이 사는 시대의 사상과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윌리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던 11세기의 중세 프랑스 사회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쥠토르의 생각이었다.

중세 봉건사회에서 왕과 신하의 관계

이 책은 한 개인의 전기를 다루는데, 그가 살아간 시대는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시대였다. 학교도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이었으며 교회와 수도원이 학교 역할을 했다. 사회 제도 역시 현대 사회와 비교할 때 극히 이질적인 제도, 다시 말해 봉건제에 얽매여 있었다. 중세 초기에 봉건제는 모든 구성원을 피라미드 구조에 묶어놓았다. 그 정점에는 왕이 있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대제후, 소제후, 기사, 농민의 순으로 구성원 수가 많아진다. 이들의 관계는 신하서약이라는 오마주Hommage에 묶여 있었는데, 오마주는 쌍방의 의무를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즉 주군은 기사에게 무기와 토지를 하사하고, 봉신인 기사는 주군 앞에서 평생 충성을 서약하는 의식이었다. 둘의 관계는 결코 저버릴 수도 없고 배신해서도 안되는 관계였다.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하나 살펴보자. 윌리엄이 아버지의 사후에 공작에 오르자 노르망디 공국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그런데 윌리엄과 반란군이 전장에서 조우하는 장면을 보면 반란군은 모두 윌리엄의 봉신들이다. 다시 말해 오마주를 바쳐 충성을 맹세했던 바로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목숨을 내놓고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서약행위 때문에 목적을 포기한다는 게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11세기 서유럽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의 사회는 명분이 실리보다 우선하는 사회였던 것이다.

‘물’과 ‘불’로 심판하는 재판 등 당시의 사회상

당시의 특이한 제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사법권의 소재에 관한 것이다. 지금이야 재판이 공정한 법률과 절차에 따라 이뤄지지만 중세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현대 사회와 중세 사회를 구분할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재판권은 본질적으로 영주의 세습권이었다. 재판권을 가진 영주는 자유롭게 그것을 다른 이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도 있었다. 재판권을 가진다는 것은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분쟁이 있을 때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의미였다. 재판권의 소유는 사실 영주들의 금전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 이 밖에도 신명재판ordalie이 있었는데 물과 불로써 심판을 하는 재판이었다. 이 재판은 먼저 피고가 손바닥에 뜨겁게 달군 쇠를 가깝게 가져간다. 그리고 덴 손을 붕대로 감고 다음날 붕대를 풀었을 때 심한 화상을 입지 않았으면 그는 무죄로 석방된다. 신명재판이 놀라운 것은 재판의 최종 결론을 내릴 때 이 방법을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행정가의 역량, 뛰어난 적응력, 배우고자 하는 욕망

2부와 3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통시적인 관점에서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이것이 이 책을 구성하는 두 번째 축이다. 아버지 로베르 공이 성지 순례를 가던 중 터키에서 죽자 일곱 살밖에 안 된 소년 윌리엄이 그의 후계자가 된다. 하지만 윌리엄은 사생아, 즉 서자였고 그의 어머니는 무두질하던 집안 출신이었다. 윌리엄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했을까?
당시 사회는 대가족 제도가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노르망디에는 적자와 서자들이 한집안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공작 집안에는 배다른 형제가 얼마나 많이 살고 있었을까? 일곱 살 소년 윌리엄은 자신을 경멸하던 수많은 숙부와 당숙, 사촌의 반대를 잠재워야 했다. 이 부분에서는 영웅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죽은 아버지가 든든한 후견인을 지명했다 하더라도 본인의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결코 아버지의 뒤를 이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윌리엄의 장점을 쥠토르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숙부들과 사촌들의 반란을 차례로 제압한 윌리엄은 이제 장년이 되었다. 공국의 정세는 안정되었으며 주변의 다른 제후국들에 비해 정치적·경제적으로 거듭된 발전을 이룬 상태였다. 그렇다면 발전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먼저 윌리엄 자신이 가진 결단력과 굳은 의지를 꼽을 수 있다.

충동적이지만 자제심 있고, 결단력과 냉정함

윌리엄은 충동적이긴 했지만 이성이 지배하는 경우에는 자제할 줄 알았다. 그리고 결코 이유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의 결단력과 냉정함은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며, 또 그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 줄 알았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경험과 사상도 효과적으로 이용할 줄 알았다. 그는 균형 감각과 합리적 사고의 소유자였으며, 규율을 존중하는 계산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격한 분노에 사로잡힐 때는 드물게 실수도 범했다.

왕의 폭력성을 잠재운 랑프랑이라는 조력자

윌리엄은 용감했지만 다소 폭력적인 군주였다. 하지만 그는 항상 현명한 참모들을 가까이 두었다. 그중에서도 평생 윌리엄을 보필한 수도사 랑프랑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 수도사였는데, 학문과 지식이 출중하고 분별력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랑프랑은 윌리엄이 죽을 때까지 평생 주군을 보필한 핵심 참모였다. 그는 지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고 신앙심이 올곧은 성직자였다. 게다가 성격도 겸손했다. 그는 다혈질인 윌리엄 공에게 로마법에 퍼져 있던 법적 개념을 소개하고 당시로서는 낯설었던 자연법과 평등에 대한 개념들을 윌리엄에게 소개한 인물이다. 평생에 걸쳐 랑프랑이라는 지적 완충 지대가 없었다면 윌리엄은 영국 정복을 완수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노르만국의 근대적 국가 시스템이 영국 정복과 통치의 밑거름

윌리엄이 공작이 된 후 정치적 안정기를 구가한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이 책의 3부는 영국 정복에 관한 이야기다. 윌리엄의 일생은 세 구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구간은 1035년 윌리엄의 아버지인 장엄공 로베르가 죽고 불과 7세 때 노르망디의 공작이 되는 시기다. 이 시기는 후견인들 덕분으로 안전하게 성장하는 단계다. 두 번째는 성년이 되어 공국의 제후들이 일으키는 수많은 반란을 제압하는 1065년까지의 시기다. 그리고 마지막은 1066년 영국 정복에 성공하고 영국 왕이 된 후 사망할 때(1087)까지의 기간이다. 영국 왕이 된 후에도 윌리엄은 사방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노르망디보다 인구는 2배, 총생산이 3배 더 많았던 거대한 영국을 통치하기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국력이 영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노르망디 공국은 어떻게 영국 정복에 성공할 수 있었는가? 저자 쥠토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정리해보면 소수의 노르만인이 영국을 통치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노르만국이라는 당시로서는 근대적인 국가 시스템을 들 수 있고, 엘리트 계층의 고급문화와 발달된 제도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에 없었던 요새성의 건축을 통해 피지배 계층을 효과적으로 통치한 것도 정복에 성공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정복사업의 잔인한 학살, 70×180킬로미터에서 생명체 사라져

윌리엄의 영국 정복기는 피정복민에게는 가혹한 시간이었다. 요크를 중심으로 북부 지방에서는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때마다 미봉책을 쓰던 윌리엄은 마침내 영국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반란지역을 초토화했다. 가로 70킬로미터, 세로 180킬로미터의 땅에서 생명체가 사라질 정도로 반란 지역을 초토화한 곳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프랑스에서 정복왕으로 불리는 윌리엄의 이미지가 영국에서는 결코 좋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영국은 윌리엄의 정복으로 바이킹 세계와 절연하고 대륙의 본류에 들어오게 된다. 물론 1066년 정복 전에도 영국은 경제적인 번영과 찬란한 문화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항상 문화적으로 열등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먹잇감이었다. 그런 점에서 1000년부터 1066년까지 영국은 두 번의 외침을 받는다. 한 번은 덴마크의 크누트가 영국의 왕이 되어 영국을 크누트 제국에 편입시킨 일, 또 한 번은 1066년 윌리엄의 정복으로 앵글로색슨 왕조가 종말을 고하게 된 일이다. 노르만인들은 영국을 정복한 마지막 이민족이었다. 저자는 영국에서 덴마크의 크누트 왕조가 끊어지고 노르만 왕조가 흥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영국이 50년의 간격을 두고 1016년과 1066년에 정복당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크누트의 정복은 군사적 우위를 확인하는 데 그쳤지만, 윌리엄의 정복은 국가 기구의 우월성과 정치체제의 지속성,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두 체제의 조화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래서 후자의 정복이 오래 지속되었던 것이다.
정복 이후 영국에서는 앵글로색슨 왕조가 사라지고 노르만 왕조(1066~1154)가 들어선다. 영국이 게르만 세계에서 라틴 문화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영국 문화는 이후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언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후 등장하는 플랜태저넷 왕조(1154~1399)의 마지막 왕인 리처드 2세에 이르기까지 영국 왕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였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윌리엄이 영국 왕조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왜 앵글로-노르만 제국이 서유럽에서 가장 발전하게 되었는가

이 책은 중세 봉건 제후의 영웅담이 아니다. 윌리엄이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노르망디 공국보다 몇 배나 더 큰 잉글랜드 왕국을 정복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가 일구어놓은 앵글로-노르만 제국이 어떻게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다.
서양사의 주도권은 여러 나라를 거쳐 영국에 정착했다. 영국은 프랑스와의 애증 관계를 끊고 세계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현재 영국 왕실의 뿌리인 정복왕 윌리엄이 다져놓은 노르만 왕조, 즉 노르만 제국이 그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1987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노르망디의 옛 도시 캉을 찾았다. 그는 정복왕 윌리엄이 묻혀 있는 생테티엔 성당을 찾아 프랑스인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윌리엄! 당신들의 공작, 우리의 왕, 그리고 나의 조상…….”
찰스 왕세자는 정복왕 윌리엄의 33대손이다.

목차

서문
옮긴이 해제

제1부 1000년, 유럽의 인간

1장 노동과 일과
삶과 주변 환경

2장 봉건 세계
사회 질서
경제 구조
직무와 계층

3장 연대기의 기준점
재편성의 축
유럽 세계의 팽창

제2부 노르망디 공

4장 이중의 유산
노르망디와 노르만족
앵글로색슨족

5장 서자庶子 1027~1035

6장 권력을 향한 정복 1035~1047
쇄도
사상과 예술의 원천에서 찾은 평화의 환상
대반란

7장 권력의 집중 1045~1055
브리온을 포위하다
공의회와 결혼의 역사
에드워드 왕의 약속
앙주, 노르망디의 적수

8장 수장과 그의 신민 1055~1065
교회의 역할
일시적으로 매듭을 풀다
건축가 윌리엄과 로마네스크 양식
노르만 국가
인구의 팽창
전쟁의 부활
서사시 『롤랑의 노래』와 노르만인
해럴드의 서약

제3부 영국 왕

9장 웨스트민스터로 가는 길 1066

10장 어려운 정복 1067~1076
승리의 모습
불과 피
멘의 제2차 전쟁과 자치도시
최후의 반란

11장 균형을 찾아서 1076~1089
영광 그리고 역경
교황과 왕
고독으로 들어가다

12장 통치의 말년 1084~1087
조사표
새로운 세계로
최후의 전투

에필로그
찾아보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미리보기

영국 정복(1066) 이전 10년 동안 노르만국État normand은 그 형태를 완전히 갖추었다. 한 세기 전부터 이미 많은 분야를 통해 공국은 주변의 제후국과는 달리 체계와 제도의 틀이 잡혀 있었다. 노르망디 공은 젊고 총명했으며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제후국과는 차별화된 역할을 하는 체계적인 제도를 정착시켰는데, 정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 시기의 노르망디 공국은 유럽의 발전에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제후국 중에서 가장 먼저 국가의 단계에 도달했다. _177쪽

그는 청년 시절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당대의 어떤 문제도 회피하는 법이 없었고, 비록 지식에 대한 욕구를 잘못 이해했어도, 그는 항상 깨어 있는 정신 상태로 문제의 핵심을 직시했다. 행정가의 역량, 뛰어난 적응력, 배우고자 하는 욕망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난폭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청년 시절부터 돋보였다. _197쪽

한편 반란군의 진영에서는 140명의 기사들이 기세등등하게 언제라도 전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반란군의 수장首長 라울 테송Raoul Tesson이 갑자기 주저하기 시작했다. 반대편에서 움직이는 무리 가운데 자신의 주군인 윌리엄 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갑자기 향후 저지를 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주군을 죽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윌리엄 쪽으로 가까이 갔다. 그리고 장갑으로 살짝 그를 쳤다. 공작을 때려눕히기로 맹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살인자가 되지도 않았고 맹세를 배신하지도 않았다. _240~241쪽

지은이/옮긴이

김동섭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과를 나와 파리5대학에서 언어학 박사를 취득했다. 1990년 이래 수원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에서 프랑스어학, 신화학, 문화인류학, 라틴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하루 3분 세계사』(2017),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2016), 『베이비부머의 추억일기』(2014), 『신화의 이해』(2013), 『언어를 통해 본 문화 이야기』(2013)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서양 중세의 삶과 생활』(2000), 『불어사』(199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