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슬
2020.03.09
『중력의 키스』 편집 일지

2015년 9월 14일, 개량형 라이고(advanced LIGO, aLIGO)의 시험 가동 중 훗날 중력파로 확증되는 GW150914가 관측됩니다. 라이고-비르고 협력단에 유일한 비과학자로 소속된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는 GW150914의 탐지부터 논문 발표와 그 이후의 파급력까지, 전 과정을 민족지학적으로 탐구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분석한 역작 『중력의 키스Gravity’s Kiss』를 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글항아리사이언스는 『중력의 키스』 한국어판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라이고 공동체에서 발표한 이 ‘중력파 최초 탐지’ 논문은 당시 큰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2016년 노벨물리학상은 중력파 연구에 기여를 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고, 이 사건은 21세기의 거대 과학이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 중 첫 번째, 혹은 두 번째로 꼽힙니다. 이 책은 이 과정을 따라가며 ‘과학 지식’이 어떻게 관측되고 선언되며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살펴봅니다.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해서는 정말 거대하고 복잡한 기계 설비가 필요한데, 이 거대함 때문에 개인이나 연구실 규모로는 중력파 검출 간섭계를 제작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국가 단위의 예산이 투입되어도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중력파 연구는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이 연합한 라이고 공동체에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라이고-비르고 공동체를 제외하고서 이 연구의 결과를 재현replication을 통해 ‘검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공동체가 내부적으로 어떤 과학적 기준을 (또 가끔은 사회적인 기준을) 적용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파를 ‘검출’하고 이것이 잡음이 아니라 중력파임을 어떻게 확증하는지, 1000명이 넘는 과학자 집단에서 단 한 편의 짧은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얼마나 분주하고 복잡한 갈등이 있는지, 이 책은 무척 흥미롭게 서술합니다. 

모르던 세계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많이 알아가고 있는 편집자의 기쁨을 담아 틈틈이 써둔 편집 일지를 함께 나눕니다. 4월에 출간될 『중력의 키스』 를 기다려주세요.

 


 

 

2020년 1월 13일

후에 중력파로 확증된 ‘그 신호’를 감지하고 발견한 후 연구단이 가장 먼저 의심하는 것은 이것이 ‘은폐 인젝션(injection)’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중력파 연구 공동체의 일원은 누구든지 한두 명의 연구자로 팀을 구성해 중력파 검출을 의심하게 할 만한 신호를 의도적으로 주입(inject)할 수 있다. 그것이 은폐 인젝션인지 아닌지는 그것을 주입한 사람과 라이고 공동체의 최고위급 인사가 아니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것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공동체가 어떤 노력을 쏟든지 인젝션의 정체는 비밀로 부친다. 이런 시스템을 운용하는 이유는 중력파 공동체가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구성원들은 모든 검출에 대해 과학적으로 엄정하게 판단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만약 그 신호가 중력파라고 내부에서 판단한다면 논문을 발표하고 피어 리뷰를 거쳐서 학계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만약 피어 리뷰까지 거쳐 학계의 공인을 받았는데 이후 그것이 은폐 인젝션이었다는 점이 밝혀지면 어떨까? 콜린스의 전작 『중력의 유령과 빅 독』에서 그런 사건을 다루는 듯하다.) 한 공동체 내에서 (1)어떤 비밀이 아주 국지적인 규모에서 생성되고 (2)그 작은 비밀이 공동체 전체를 흔들 만큼 큰일이 될 수 있으며 (3)그것이 마지막까지 기밀로 유지된다. 그 공동체는 유기적이고 통합적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시스템이 아니라 언제든지 그 자신에 의해 교란되면서 그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내부로부터 닫혀 있는 자기폐쇄적 시스템이고, 분열과 불안을 동력으로 하는 독특한 공동체로 보인다.

은폐 인젝션이란 은밀히 탐지기에 주입되는 가짜 신호를 말한다. 한두 명의 연구자로 이루어진 팀이 가짜 신호를 만들어서 진짜 신호처럼 보이도록 간섭계에 집어넣는다. 취지는 공동체를 이룬 연구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진짜 신호를 탐지할 준비를 갖추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신호가 진짜라고 믿고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오직 신호를 주입한 팀과 공동체의 지휘자만이 신호가 은폐 인젝션인지, 아니면 잠재적인 진짜 신호인지 알기 때문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 젠장. 또 은폐 인젝션이로군!” 꽤 강경한 일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은폐 인젝션 프로그램을 지속한다는 계획이 정해진 이래로 어느 정도의 반감이 퍼져있는 상태다. 과학자들은 은폐 인젝션으로부터 무언가 얻기는 하겠지만, 은폐 인젝션을 분석하는 작업은 소득 없이─적어도 과학자로서의 명성은 얻지 못하면서─고된 노동을 하는 것과 같다.(본문에서)

 

2020년 1월 14일

맹검법이라는 방법론과 그 방법론에 대한 집착. 중력파가 아닌 신호를 중력파인 쪽으로 편향 해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분석 절차를 확정하고 ‘동결’하면, 동결 이전에 고려되지 않은 원인은 절대 고려될 수 없다. 가끔은 이것이 바보 같은 상황을 낳기도 하는데 중력파라고 생각했던 신호가 낮게 날아가던 비행기의 신호였던 것이 동결 이후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결 이전에 그 원인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무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엄격한 방법론을 고수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에게서 진지하게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2020년 1월 28일

계획한 만큼 진도를 나가고 있지 않아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어깨가 무겁다. 오늘 읽은 흥미로운 것들. (a)저자 해리 콜린스는 중력파를 탐지하고 연구하는 라이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과학 발견의 연구 과정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다. 중력파로 추정되는 ‘그 사건’이 탐지된 후 공동체는 이것이 의도적으로 주입된 신호나 잡음이 아니라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 아주 긴 토론 과정을 벌이는데 이 과정에서 콜린스는 ‘그 사건’이 중력파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의심하게 하는 증거가 발견되기를 내심 바란다. 혼란스러운 사건의 발생이 그 공동체의 특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물리학자 동료들을 생각하며 ‘그 사건’이 별탈없이 중력파로 확증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말이다. (b)라이고-비르고 공동체는 간섭계를 이용해서 중력파를 탐지한다. 간섭계가 중력파 탐지의 대세로 자리잡기 이전에는 저온 막대라는 것이 사용되었는데, 조 웨버라는 중력파 탐지의 선구자가 저온 막대를 사용했다고 한다. 조 웨버의 중력파 연구는 지금 보면 무척 허술한 점이 많고 현재 물리학계가 허용하는 오차 범위보다 훨씬 더 넓은 오차를 가지는 연구였지만, 중력파에 대한 그의 공상이나 무리한 해석이 없었더라면 중력파 탐지 기술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도 없었으리라는 점에서 그를 간과할 수는 없다.
무척 빠른 속도로 교정을 보느라 머리에 남아 있는 내용이 별로 없다. ‘그 사건’이 중력파가 아닐 수도 있을 가능성이 거듭해서 제기되고 기각되는 과정이 반복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1차 교정을 보내기로 한 날짜가 있어서 초조하다.

 

2020년 1월 29일

웜홀을 뚫어서 순간이동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친구와 나누다가 그가 블랙홀을 이동시킬 수 있냐고 물었다. 블랙홀은 물질이나 대상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알맞지 않나 싶었다. 공간 자체를 이동시킨다는 것은 넌센스일 것이다. 그러다 블랙홀에 가까이 가면 어떻게 되는지 얘기가 이어졌고 작년쯤 있었던 블랙홀의 ‘직접 관측’에 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작년쯤, 광자들이 내는 빛에 둘러싸여 있는 블랙홀의 모습이 찍힌 사진과 함께 블랙홀을 ‘직접 관측’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블랙홀은 모든 빛을 흡수하므로 눈으로 볼 수 없는데, 블랙홀 주변의 빛이 나는 모습을 가져다놓고 블랙홀을 ‘직접’ 관측했다고 하는 것이 바보 같은 표현이 아니냐”고 흠을 잡는 트윗들이 있었다고 하며 그것에 대해 친구가 거론한 것이다. 그런데 그날 교정하느라 본 중력의 키스 일부 부분에서 이 ‘직접’ 관측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그 부분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2015년 9월 14일에 첫 관측된 중력파 GW150914의 파형은 (1)블랙홀 두 개가 (2)축소 나선운동을 하며 충돌할 때 생기리라고 예측된 중력파의 파형과 일치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블랙홀의 충돌, 중성자별의 폭발 등 여러 천체학적 사건들이 일으킬 중력파의 파형을 이론적 모형을 적용해 미리 계산해두었고 이를 파형 뱅크(template bank)에 저장해두었다. 뱅크에는 약 2만여 개의 가능한 조합이 저장되어 있다.
GW150914의 파형은 블랙홀 쌍성이 축소 나선운동을 하며 충돌할 때 생기리라고 계산한 중력파와 파형이 일치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중력파’를 처음으로 검출한 사건인 동시에 ‘블랙홀’을 처음으로 관측한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당시 블랙홀 역시 이론적 가능성으로만 존재하고 있었고 일부 간접 관측 이외에는 확증할 수 있을 만한 관측이 없었던 듯하다.) 만약 이것을 블랙홀의 관측이라고 확증할 수 있다면, 이것이 과연 ‘직접’ 관측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도 협력단 공동체 내부에 인다. 결론적으로 GW150914는 중력파의 검출로만 공표되었고, 블랙홀의 (직접)관측이라는 과학적 확증을 받지는 못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년 있었던 블랙홀의 ‘직접’ 관측과 그 사진은 블랙홀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았다는 뜻의 ‘직접 관측’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블랙홀의 존재가 ‘직접적으로 증명’된 사건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융합하며 축소나선 운동을 하는 블랙홀 쌍성계의 모습. GW150914를 일으킨 사건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