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아
2020.01.10
우아한 편집

*이 글은 2019년 12월 『출판문화』 647호 ‘에디터스 초이스’에 실린 글입니다.

 

붉은 펜을 든 냉철한 완벽주의자. 영화 「지니어스」는 실존 인물인 전설의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를 그린다. 전설의 편집자라더니 과연 달라 보이기는 한다. 출판 물정은커녕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예술가를 빛나는 신예로 발돋움하게 하는, 그것도 몇 마디 야무지고 간결한 말로 그런 일을 해내는 듯한 모습은 그야말로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우아함이란 것을 보여준다. 과하고 쓸데없고 우왕좌왕하는 것들 위로 그의 펜이 지나가면, 종이 위에는 마침맞고 유용하며 정연한 것들만이 남아 있다. 더구나 그런 우아함은 피츠제럴드나 헤밍웨이 같은 이들과 함께할 때나, 무려 ‘첫 책’을 낸다는 일대 사건을 눈앞에 두고 잔뜩 들뜬 저자와 함께할 때나 그대로인 것 같다.

‘철학 편집자들의 주임’이라고 불렸던 또 다른 전설의 편집자 테런스 무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휘해 폭으로 보나 성취로 보나 독보적인 출간 목록을 구축하며 새로운 편집자 세대의 탄생을 알렸다. 생전에 그는 원칙에 있어서만큼은 뜻을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언제나 타인에게 공감하고 자기를 비판할 줄 알았다고 한다. 고집과 공감과 비판이 엉뚱한 곳에 있지 않고 정확히 있어야 할 그 자리에, 그것도 충분히 오래 있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책을 한 권이라도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우리의 일을 우아하게 만드는지도. 무어와 여러 책을 함께 작업한 누스바움은 『정치적 감정』을 그에게 바치며, 그의 자질들을 칭송했다. “그는 철학을 믿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철학을 믿도록 설득할 줄 알았으며, 적극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아함은 늘 겉으로 보이는 것이어서, 결코 그 과정을 시시콜콜 토로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독자의 바람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멀쩡함 뒤에 감추어진 비화는 늘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법이니까. 감히 거장의 원고를 새빨갛게 난도질했다던 퍼킨스도 늘 그런 비화의 주인공이었던 듯싶다. 그는 모든 좋은 것은 골칫거리를 동반한다고 했다. 모든이라니. 그렇게 우아한 편집자에게도 우아한 편집은 귀하디귀한 것이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우아한 편집은 다른 동료들이 만들어주는 환경에 가까우니까. 하지만 말은 저렇게 해도 저자를 비롯해 훌륭한 이들과 함께 일하며, 그 귀한 것을 숱하게 누렸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갖은 뒤치다꺼리와 헛된 일을 하면서도 뭔가를 배우지만,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훨씬 더 깊고 넓은 것들을 배운다. 각자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조화로운 환경 안에서 뭔가 느긋하고 효율적이며 균형이 잘 잡힌 것을 만들기. 어쩐지 이렇게 탄생했을 것 같다는 예감을 주는 책들이 있다. 나도 그렇게 만들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
이원영 지음│2017

이따금 올리버 색스의 첫 책 『편두통』을 읽는다. 나중에 나온 작품들과 어딘지 모르게 좀 이질적인 그 책은, 하나의 좌표가 되어 다른 책들의 위치를 파악하게 해준다. 삶을 시간에 따라 주기율표의 원소들에 비유하곤 했던 취미와 참 어울리게도, 그의 모든 책과 글은 고유한 주기와 원자량, 밀도와 함량, 녹는점과 끓는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를 편집할 때 어렴풋이 이 책의 고유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이 책은 저자의 첫 책이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올 많은 작품 중 하나가 되리라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편집 과정에서 그 예감이 맞을 것 같다는 또 다른 예감을 했다. 원고를 고치고 가다듬는 과정은 무의미한 적이 없었고, 저자는 언제나 자연에 대한 애정과 학문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그것을 정확하고 섬세한 언어로 전달하려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영역을 존중하고, 의견이 다를 때는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했다.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는 애초에 저자의 펭귄 연구에 관심이 있었던 내게 새의 아름다움이라는 더 큰 세계를 보여준 작품이 되었다.
첫 책을 함께한 저자가 다음 작품, 그다음 작품을 내며 활동을 이어가고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보람된 일도 드물다. 한 권 한 권 책이 더해지고, 그의 전작주의자가 되어가는 동안 우정을 나누고, 학문적·개인적 관심사를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색스가 첫눈에 탁월함을 알아보았던 편집자 케이트 에드가가, 훗날 자신을 그의 “협력자, 친구, 연구자이자 편집자”로 소개할 수 있었던 것처럼.

 

 

 

HOLY SHIT: 욕설, 악담, 상소리가 만들어낸 세계
멀리사 모어 지음│서정아 옮김│2018

『HOLY SHIT: 욕설, 악담, 상소리가 만들어낸 세계』는 영어 욕설의 역사를 다룬다. 많은 번역가가 까다롭다 여기는 게 해당 언어의 비속어인데, 이 책은 정말이지 그런 말들로 점철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상스러운 말들의 향연이 4000년에 걸쳐 펼쳐지는데, 그 세계는 속되고 난삽하기도 하지만 속 시원하고 멋들어진 구석도 있다. 그래서 사실 겁도 났다. 어떻게 이 세계를 정확하게 적으면서도 그 맛을 살릴 것인가.
책에는 shithead, ‘똥대가리’처럼 똑 떨어지는 번역어도 있었지만, bugger처럼 ‘망할 자식’ ‘저 새끼’ ‘조져놓다’ ‘돌았구나’ ‘비역쟁이’ 등 여러 가지로 변주되어야 하는 말도 있었다. 이런 말들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학문적으로 성실하기까지 해서 고대 라틴어에서부터 중세 영어를 거쳐 트위터에 등장하는 최신 비속어까지 전 시대의 상소리를 대단히 맥락적으로 소개한다. 이 책의 한국어판을 편안하고 재밌게 읽은 독자가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번역가의 노고 덕분이다. 그는 탐색과 저울질과 되새김을 도맡아주었고, 평범한 단어들은 물론 (혼자 있을 때조차 험한 말을 입에 담지 않는 분이라지만) 씹할과 시발과 씨발 사이에서도 입에 착 감기는 것을 골라내는 탁월한 감각을 발휘해주었다. 「옮긴이의 말」에 그 고민의 흔적이 일부나마 남아 있다.
“다양한 영어 상소리와 같은 무게를 지닌 우리말 비속어를 찾아내야 했다.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상이한 두 언어 사이에서, 꼭 같지는 않더라도 유사한 의미와 효과를 지닌 어휘를, 그것도 비속어를 찾아내는 일은 당초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 막연히 색다르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번역 제의를 덜컥 수락해버린 과거의 나를 조용한 곳에 따로 불러 따끔하게 혼내주고 싶을 때도 있었다.”
번역가의 복잡한 심경을 읽으며 웃음도 났지만, 그럴 수 있다면 막아서서 말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혼내지 마세요. 이 고마운 분을!’ 이 책 「감사의 말」에는 새뮤얼 존슨이 사전을 편찬하면서 했다는 말이 인용되어 있다. “정확성에 대한 욕망이 불필요한 설명을 양산하고, 장황함에 대한 두려움이 꼭 필요한 설명을 누락시킬 수 있다는 불안감.” 독자들은 이와 비슷한 감정을 「옮긴이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성실히 고민해 옮긴 책이니까.

 

 

 

세계불평등보고서 2018
파쿤도 알바레도, 뤼카 샹셀, 토마 피케티, 이매뉴얼 사에즈, 게이브리얼 주크먼 지음│장경덕 옮김│2018

“대부분 이런 책들의 결론이 소득불평등의 주범으로 생산적인 자본가들의 이윤을 지목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오히려 고용 창출 같은 거 없고 노동조합, 분배나 공정거래 시비 없는 임대주업의 자산가나 투기적 자본가들이 더 문제이다.” 『세계불평등보고서 2018』의 알라딘 독자 서평 중 하나다. 이분이 꼭 책을 직접 읽어봐주기를 바란다. 넘겨짚은 내용과 완전히 다른 책이라는 걸, (사실 거의 모든 책은 인상비평과 다른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는 걸) 첫 문장만 읽어도 알 수 있으리라고 약속드린다. “경제적 불평등은 서로 다른 지표와 자료원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는 복잡한 현상이다.” 『세계불평등보고서 2018』은 전 세계의 경제학자 100명이 모여 각국의 불평등 데이터를 망라해 분석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주택자산과 임대경제, 부의 재분배는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불평등의 심화 요인이다. 또한 지역 간 불균형, 교육 불평등, 조세 정책의 재분배 기능도 두루 살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키워드들이 아니다.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이 책이 제공하는 구체적인 수치로서의 데이터다. 이 책은 가난이라는 단어와 가난의 실체 사이의 간극을 뚜렷이 체감하게 해준다. 불평등을 지적하는 데 있어 데이터가 앞에 나열한 키워드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책을 다 읽으면 인용한 인상비평 같은 것은 그만두고 싶어질 정도로.
출간 후 프랑스는 물론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에 소개된 『세계불평등보고서 2018』은 토마 피케티의 전작 『21세기 자본』보다 좀더 건조하면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데이터를 나열하고, 그것을 도표로 보여주는 형식을 취한다. 숫자가 중요한 책인 만큼, 편집자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책은 원서 대조를 완벽하게 한다고 해서 안심할 수도 없는 종류의 책이다. 데이터 오류라는 건 번역과정에서 저절로 바로잡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책의 번역 저본인 영어판과 대조본이자 원서 격인 프랑스어판에도 그런 오류들이 있었다. 원서를 함께 의심해야 하는 책을 교정할 때 믿을 구석이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인데, 이 책에선 번역가가 그런 존재가 되어주었다. 역자 교정 과정에서 번역가는 웹사이트에 공유된 연구자들의 로데이터까지 직접 열람해 일일이 대조해주고, 엄격히 구분해야 할 수치와 용어들을 지적해주었다. 덕분에 저자의 확인을 거쳐 우선 우리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한국어판을 출간할 수 있었다. 책 작업이 끝나고 만난 저녁 자리, 번역가의 상쾌한 소회가 아직도 기억난다. “원서보다 더 정확한 한국어판이죠.”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걸 몸소 알려주시곤, 별일 아니라는 듯이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