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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엄마와 나 도무지 나일 수 없었던 삶에 대하여
  • 지은이 | 김문음
  • 옮긴이 |
  • 발행일 | 2019년 12월 13일
  • 쪽   수 | 208p
  • 책   값 | 14,000 원
  • 판   형 | 135*188
  • ISBN  | 9788967356873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덫, 수치심, 유폐, 그리고 빛……
어떤 삶은 짓밟히면서 자라난다
난폭한 엄마를 겪어야 했던 딸의 투명한 기록
엄마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피어난다

엄마는 25년 전에 죽었다. 첫딸인 작가는 그 후 엄마에 대한 글을 쓰고 지우고 계속 다시 썼다. 애초에 초고는 이 책의 세 배 분량이었다. 하지만 여행이란 겉옷을 둘러입고 마음속 엄마를 만나러 간다는 설정은 엄마 때문에 아팠고 슬펐고 무서웠던 시절을 직면하지 못하게 했다. 똑바로 직시해야만 엄마를, 그리고 어린아이인 나를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아 겹겹의 이야기를 지우고 다시 썼다.
여러 작가가 자기 부모에 대해 기록할 것을 다짐하며, 내가 겪은 일이고 디테일이니 저절로 풀려나올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부모는 서슬 퍼런 눈빛으로 한때는 자식을 집어삼키려 했던 존재다. 자녀인 나의 마음은 그와 달라 끝끝내 미워하지 않고 이해해보려 하지만, 그 집요한 사랑의 마음은 내 상처를 먹고 자라난 것이기에 쉽게 내보일 수 없다.
엄마는 실향민으로 북에서 내려와 서울의 공동주택 단칸방에 정착했고, 일 없이 ‘밥만 축내는’ 남편을 원망하며 삼남매를 키웠다. 아득바득 일구는 삶은 쩌렁쩌렁 동네를 울리는 목소리와 남의 집도 내 집 드나들듯 하는 몰염치, ‘다라이’를 이고 두부장수를 하며 밤에는 시장 사람들 상대로 일수놀이를 했던 거친 돌덩이에 비유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죽고 나서 염을 할 때 자식들은 알게 된다. 조선백자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죽어서 그 온전함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이제 노년에 막 들어선 저자가 도무지 나일 수 없었던 삶을 기록하며 엄마와 나의 관계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회상한 것이다. 장례를 치른 지 수많은 세월이 흘렀고 작가는 이제 엄마가 죽은 그 나이에 들어섰지만 열 살 때 생을 포기하려고 갔던 한강의 물결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생과 사는 어떤 경우 결코 삶의 매듭점이 되지 못한다. 마음이 그걸 흘려보내지 못하는 데다, 몸 구석구석에도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30년간 방송 구성작가를 하면서 여러 다큐 프로그램의 대본을 쓰고 제작도 했다. 타인의 삶은 내 삶이 아니니 좀 쉽게 쓰고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삶에 관한 한 그렇게 안 된다. 울고, 지우고, 다시 썼다. 이 책을 내놓는 이유는 결국 그런 엄마지만 사랑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엄마와 얽혔던 나를 한번 정리해내지 않고는 내 삶의 더 큰 한 발짝을 내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물단지 같은 년, 써먹을 데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구나”

엄마는 한국전쟁 중 남으로 휩쓸려 내려와 무능력한 남편과 자식 셋을 먹여 살리던 여자였다. 거친 삶의 파괴력은 애초 그 인간의 형상이 어떠했는지 짐작도 못하게끔 위력을 떨친다. 아무도 엄마에게 태초엔 부드러운 과육이나 생명의 씨앗 같은 게 있었으리라 상상도 못했으리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목격한 것은 괴물처럼 변해가는 한 여인이었으니까.
엄마가 유년 시절 자기 첫딸에게 가장 많이 지었던 표정은 ‘치를 떠는’ 것이었다. 치를 떤다. 위아래 입술을 약간 앞으로 내밀고, 소름 끼치는 듯 고개를 좌우로 부르르 떤다. 그리고 말한다. “네 머리를 깨서, 가루를 만들어 마셔도 내 분은 안 풀린다.” 그러면서 때린다, 자기 울화가 풀릴 때까지. 거기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애비 닮은 년.” “미물微物!” “약 맞은 파리 같은 년.” 어려서부터 살림을 돕고, 여섯 살 아래 여동생을 거둔 큰딸이지만, 엄마에겐 써먹을 데라곤 아무 데도 없는 존재였다.
어쩌다 큰딸이 공부나 글짓기를 잘해서 상이라도 타오면, 엄마는 코웃음을 치며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고 말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아이에게 그건 창피하고 죄스러운 일이었다. 그건 덫이었다, 하나의 존재를 옭아매는. 딸은 기록한다. “엄마의 절망, 엄마의 붉은 울화, 나의 슬픔,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 시간도 증발해버리는 새하얀 공허, 그리고 슬픔.”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넌 평생 사람 구실 못 한다. 알간? 니가 사람 구실하게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이!” 어느 날 이 말을 듣는 순간 저자는 자신을 버렸다. 그냥 ‘어떤 나’이길 포기한 채 투명인간, 허수아비가 되었다. 알맹이는 버리고 쭉정이가 되었다. 그런 채로 육십 평생을 살아왔다.
 
나를 밟아라! 그래야 네가 산다

이 에세이의 첫 부분은 암투병으로 몸져누운 엄마가 자식들의 정성으로 비행기에 태워져 연변의 용하다는 의사에게 보내졌고, 그 엄마를 문병하러 가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여행은 저자를 과거로 이끌어 열 살 전후의 유년 시절로 데려다놓는다. 저자는 성장기에 경멸하는 엄마의 눈빛을 피하며, 짓밟히는 가운데 피어나는 자기 생을 그리는 가운데, 엄마와 함께한 결정적 순간들을 빛나는 글로 써낸다.
엄마에게 어느 날 ‘담낭암’이라는 병이 난입했고, 그 증세는 가팔랐다. 단 두 달 만에 천하 여장군 같던 엄마는 알갱이 빠진 마른 옥수수 대처럼 변했다. 엄마는 스스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맑고 투명한 가을날이었다. 멀쩡한 대낮에 엄마와 딸 단둘이 있게 되자 결연한 어조로 엄마는 불쑥 말했다. “내가 널 평생 무서워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엄마, 길을 막고 물어봐. 내가 엄마를 무서워했지, 그게 무슨 말이야? “니가 잘난 사람이다. 이걸 명심해라. 내가 머리털 나고 여태까지 너처럼 대 센 사람을 못 봤다.” 그러더니 믿을 수 없는 말을 입 밖으로 흘려보냈다. “문음아, 나를 밟아라. 나를 밟으라고!”
이건 물리적으로 엄마를 폭행하라는 뜻이었고, 딸은 울기 시작했다. 밟으라니? 엄마, 몸도 안 좋은데 왜 그래? “빨리 날 밟아라. 그래야 니가 산다.” “엄마 나 행복하게 잘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엄마가 다시 말했다. “문음아, 꿈속에서라도! 내가 나타나거든 눈 딱 감고 나를 밟아버려. 알겠니?”
엄마는 이 말을 뱉은 뒤 맥을 탁 놓았다.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작가는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니가 잘난 사람이다. 명심해라’라는 말 한마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딸이 자기 삶을 헤쳐나가는 데 ‘나를 밟아라’라는 이 한마디는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엄마의 저주의 에너지에 맞설 만큼 힘이 셌다.
 
어여쁜 아낙이 연탄 짊어지고 걸어온다, 장차 자신이 어떤 모습이 될지도 모른 채

꽃같이 예쁜 젊은 아낙이 머리에 까만 연탄을 이고 사뿐사뿐 걸어온다. 아직 생떼같은 새끼 삼남매, 무능한 남편과 오빠, 남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생존의 압박에 치여 자신이 장차 얼마만큼 괴수처럼 변해갈지 모르는 얼굴이다. 그저 한 가닥 불안을 머금고, 입술을 꼭 다문 채 행여라도 정신이 흐트러질세라 한곳만을 응시하는, 골몰한 얼굴이다.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있다.
작가는 이미 미래의 엄마 모습을 아는 전지적 관점에서 젊은 날의 여인이 어떻게 삶의 마수에 걸려 흉측하게 변해갈지 짐작한다. 그러나 그런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서 적는다.

엄마.
버리면 버리리라.
밟으면 밟으리라.
엄마를 짓밟아주리라.
짓밟아 버려주리라.
엄마. 김은덕金銀德 여사님. 전주 김씨. 여성 무사님, 어디 내게 와보시지요.
미워할 수 있나?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미워하라고 하는 당신들의 알량함이 싫다.
내 엄마의 과부하를 알겠는가?
광증과 싸워가며
너무나 외롭게
자기 과업을 감당해야 했던
운명을 모르겠는가?
생生이란,
우리가
태어나겠다고
맘먹고 태어난 게 아니듯이.
그렇게 쉽게
판단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목차

머리말
 
1부
나 이제 어떻게 해야 돼
미워하는 병
사라지고 싶어요
열 살의 한강
사랑하고 ‘싶음’
열 살의 글짓기

2부
떠돌이들
어머니의 집을 떠나다
가출 시대 1
가출 시대 2
가출 시대 3

3부
팬티 사건
라일락 이야기
얼굴
나를 밟아라

4부
두부장수 아줌마
엄마 목소리
엄마의 눈물

5부
성찬식聖餐式
삼키다
빚과 빚과 빛
얼굴 2
가만한 눈빛
 
맺는말: 피어라 꽃

미리보기

아, 생각났다. 나의 ‘슬픔’이라 하는 게 적당하겠다. 엄마의 절망, 엄마의 붉은 울화, 나의 슬픔,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 시간도 증발해버리는 새하얀 공허, 그리고 슬픔…….
“애비 닮은 년.” 아마도 이것이 폭언 중의 대표였겠다. 쌍년…… 이런 건 너무 단순하니 빼도록 하자. “미물微物!” “미물단지 같은 년.”
“약 맞은 파리 같은 년.”―오빠는 이 말이 나를 기막히게 표현하는 말이라며 감탄하곤 했다.
“써먹을 데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구나.”_26쪽
 
나에겐 ‘얼굴’이 없다. 아니 ‘얼굴의 어떤 핵심적인 부분’이 없다고 하면 맞는 말일까? ‘어떤 부분을 제쳐두었다’라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 아니, 보통 사람이 갖고 있는 수많은 표정 중 ‘흔한 몇 종류의 표정’이 내게 결여되어 있다고 하면 맞을 것 같다. 난 내게 빠진 그 흔한 표정을 갖추고 싶다. 난 나의 ‘당연한 얼굴’을 되찾고 싶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리라. 실패하더라도 가능한 한 정직하게. 돌이켜보면 아득히 오래전부터 난 ‘예뻐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생각? 글쎄. 이런 단어나 표현도 적절치 않다. 그런 내부로부터의 강렬한 리듬, 에너지원原 같은 것이 있었다. 이유나 기원을 추적하기도 쉽지 않고 복합적이지만, 엄마의 영향이 지대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언젠가도 말했듯,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대표적 얼굴의 하나는 ‘치를 떠는’ 표정이다. 나를 향해, 치를 떤다._123쪽
 
그러나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유치하다 여겼던, 그날 엄마가 던졌던 화두인지 숙제인지 모를 것들이 하나둘 나의 현안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고 엄마의 말들이 큰 힌트가 되었다. 그리고 살다가 많이 힘들 때, 똑똑한 내가 찾아가 받았던 최상의 가족치료, 심리치료의 도움과 지지가 아니라, 쪼다 같은 내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들었던 ‘니가 잘난 사람이다. 명심해라’ 말 한마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정말이다. ‘나를 밟아라’—엄마의 짧은 한두 마디는 수십 년에 걸친 저주의 에너지에 맞설 만큼 힘이 셌다._134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김문음

1958년 서울 달동네에서 실향민의 딸로 태어났다. 1982년 어린이 독서 권장 프로 KBS TV <꿈나무>로 방송 구성작가 일을 시작한 후, KBS <인간가족> <르뽀 사람과 사람> <생방송 여성> <한민족 리포트> <낭독의 발견> <다큐 3일> <걸어서 세계 속으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명시기행> <우리 시대의 명인> 등에 참여하며 밥벌이를 해왔다. 2009년 <수요기획> ‘예지가 인도로 간 까닭은?’으로 방송문화진흥회 구성작가상을 수상했다. 1인 제작사 등록을 하고 수요기획 성탄특집 ‘다시 보는 예수’ ‘동무생각,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현絃의 대화> <나비 여행> <김교신, 우리가 가보지 못한 길> <명지의 노래> 등 제작에까지 이르지 못한 아이템이 훨씬 많다.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멀쩡한 척하며 버텨오던 삶이 10년 전쯤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첫 책 <나의 엄마와 나>를 써내면서 나의 내부와 바깥세상을 연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앞으로 더 탄탄하고 새로운 글쓰기의 걸음마를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