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경
2019.11.12
천 년을 이어져온 책방 그리고 책

제목만 보고서는 여행기이겠거니 했는데, 읽다 보니 미시사 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단테, 나폴레옹, 이탈리아 독립운동, 활판인쇄의 등장 등 이탈리아 문화와 역사가 말 그대로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 나왔다. 중세 때부터 대대로 이어져온 유랑책방에 대한 이야기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나귀도 수레도 없이 광주리에 책을 짊어지고 전국을 돌아다닌 도붓장수들의 의연함과 단단함에 뭉클해지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책을 둘러싼 인간의 몸짓이었다. 쓰고 엮고 나르고 읽는 사람들.
활자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안경 너머의 눈, 책을 집어 들고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 손바닥 두 개를 맞붙인 것보다 겨우 조금 클 뿐인 작은 세계로 빨려 들어간 사람의 옆얼굴… 천 년 넘게 이어져온 ‘책을 만드는 몸짓’, ‘책을 읽는 몸짓’을 본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그 모습을 떠올리면 아득해졌다.

나는 왜 책을 만드는 사람이고자 할까? 책이 안 팔린다, 안 팔린다 하지만 여전히 책을 쓰는 사람은 많고, 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 또한 꾸준히 있다.
그 속에 있고자 하는 나의 욕망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생계를 위해 시작했지만 책이 가져다줄 수 있는 기쁨, 해방의 힘에 이끌려 적극적으로 책을 팔기 시작했던 몬테레조의 도붓장수들. 새로운 지식에 대한 목마름,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그들을 먹여 살렸고, 그들이 또한 그 욕망을 먹여 살렸다. 책을 둘러싼 이 오래된 욕망의 역사를 살피는 책이기도 했다.

저자 우치다 요코 선생님이 몬테레조 마을에 한국어판 출간 소식을 전해, 몬테레조에서도 이 책을 구매하고 싶다고 알려왔다. 책을 만져보기만 해도 ‘이 책은 안 팔리겠군’, ‘분명 히트할 것’이라며 읽지도 않고 맞히기도 했다는 도붓장수들. 그 후예들이 이 책을 받아보고 어떤 말을 할지 몹시 궁금하다.

나는 왜 책을 만드는 사람이고자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명료한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이것에 대해 생각할 때면 몬테레조 도붓장수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묵묵히 길을 떠나는 뒷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