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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세기 조선, 마음의 철학 송시열 학단의 마음에 관한 탐구
  • 지은이 | 이선열
  • 옮긴이 |
  • 발행일 | 2015년 07월 20일
  • 쪽   수 | 360p
  • 책   값 | 19,000 원
  • 판   형 | 152*223
  • ISBN  | 9788967352264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왜 17세기 조선을 주목해야 하는가
성리학 논쟁에서 송시열 학단의 위상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마음’에 매달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혼돈에 빠진 17세기 국제질서에서 조선의 지식인들이 펼친 사상적 분투를 다루다
사칠론과 호락논쟁을 잇는 사상사의 흐름을 밝히다
송시열과 그 학단의 철학을 재조명하다

이 책은 조선 지식인 사회에서 숭배와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송시열과 그 주변 인물들, 즉 송시열 학단 사이에서 벌어진 마음에 관한 담론을 다룬다. 그는 율곡의 학문을 주류의 반석에 올려놓은 주역일 뿐만 아니라 18세기 호학과 낙학의 사유 근거를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대의 학문 공동체를 들여다보는 이 글은 그러므로 사상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기보다 어느 특정 국면을 클로즈업해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에 가깝다. 말하자면 조선 사상사의 한 단층을 잘라내 최대한 정밀하게 복원해내는, 일종의 ‘사유의 고고학’이라 부를 수 있다. 이는 고고학자가 땅속에 감춰진 유물을 발굴해 먼지를 털어내는 일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사유의 고고학자는 땅속이 아닌 정신세계 속에 묻혀 있는 무형의 유물을 찾아내 먼지를 터는 작업을 수행하는 점만 다를 뿐이다. 이 책에서 찾아내고자 했던 유물은 바로 17세기 우암학단의 학자들이 사용했던 ‘사유의 지도’다.

이런 작업은 자연히 ‘과연 구시대의 낡은 전통을 복원해낸다고 해서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현대성과 동시대성이 긴급 화두인 오늘날, 전통 사상은 수세적 위치에 놓이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우리가 현대라는 맥락을 괄호 속에 넣고 과거를 바라보는 건조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버린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마는, 그럼에도 현대적 관점을 착색시키지 말고 과거를 읽으려고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이 책은 17세기 율곡학파에 속한 일군의 학자 사이에 오갔던 담론의 실제를 찾아내는 일, 거기에 두껍게 끼어 있는 먼지를 털어내는 일, 그리하여 가급적 그 본래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에 집중했다. 이는 곧 책의 주제인 ‘마음의 철학’을 환히(완벽하진 못하더라도) 드러내기 위한 작업인데, 17세기의 사유 지도에서 21세기 한국의 마음을 똑같이 발견할 수 없을지언정 전혀 딴판인 것만도 아님을 믿기 때문이다.

 

17세기 조선 철학을 다시 읽는 법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17세기 조선이라는 특정한 시공간 내에서 활동한 특정한 인물군 간에 논의되었던 특정한 담론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어째서 다른 시대가 아닌 17세기의 조선을 주목하는가? 둘째, 왜 송시열 개인이 아닌 그 주변 인물들까지 연구 대상에 포함시키는가? 셋째, 성리학을 구성하는 여러 범주 가운데서 굳이 마음에 관한 담론, 이른바 심론心論을 문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세 물음은 각각 독립적인 의의를 지니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어째서 17세기 조선인가? 이 물음은 17세기의 조선 사상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된다. 오늘날 한국철학계에서는 조선시대의 양대 학술 논쟁으로 16세기의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사단칠정에 대한 해석을 두고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전개된 논쟁)과 18세기의 호락논쟁湖洛論爭(조선 후기 성리학에서 인성과 물성이 같은가 혹은 다른가에 대한 논쟁)을 들곤 한다. 특히 호락논쟁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기호학파라는 특정 그룹 내부에서 벌어진 학술 논쟁이었지만 그 담론은 특정한 시기와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철학적 보편성과 깊이를 갖추고 있었다. 비록 송·명·청의 왕조 교체를 거치며 리학-심리학-고증학이 흥기했던 중국에 비해 역동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주희 성리설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조선 후기 성리학만큼 치밀함과 깊이를 갖춘 사례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만큼 호락논쟁은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조선의 신유학이 이루어낸 독보적인 지적 성취였다.

그렇다면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16세기도, 18세기도 아닌 17세기인가? 사상사의 맥락에서 볼 때 17세기 조선은 16세기와 18세기의 두 논쟁 사이에 끼어 그 독자적인 시대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경향이 있다. 17세기 조선 학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주로 예학禮學과 경학經學 등에 치우쳐 있고, 성리학 이론의 측면에서는 특색이 결여된 시대, 사상적인 침체기로 간주하는 듯한 인상이 있다. 그러나 17세기를 이렇게 읽는다면 16세기에 발단한 사단칠정 담론이 어떠한 철학적 전변을 거쳐 18세기의 호락논쟁으로 이어지게 됐는지, 송시열의 직전제자와 재전제자군을 중심으로 깊이를 더해간 호락논쟁은 무엇을 토대로 가능했던 것인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다시 말해서 호락논쟁의 철학적 문제의식을 온전히 복원하고 그로부터 보편적 의의를 발견하는 작업은 17세기를 경유해서만이 가능하다. 호락논쟁이 단지 특출난 몇몇 개인의 창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유 노선의 연속선상에서 만개한 사상사적 성과라고 본다면, 17세기는 16세기에서 18세기로 건너가는 디딤돌이었을 뿐만 아니라 18세기 호락논쟁의 서곡이었다.

17세기 조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당시 학계에서는 서양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방불케 할 만큼 복잡하고 사변적인 이론적 심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17세기 조선은 흔히 예학의 시대라 일컬어지곤 하지만 경학이 본격화된 시점이기도 하다. 경학의 수준이 깊어짐에 따라 경전의 자구에 대한 치밀한 고찰이 행해졌고, 교학화된 주자학에 대한 철두철미한 추구가 대세를 이뤘다. 예컨대 김장생은 『경서변의』에서 사서삼경에 대한 주석을 전면적으로 검토했을 뿐만 아니라 사서집주에 기재된 소주小註까지 검토하는 상세한 분석을 시도했다. 이러한 철저함, 이러한 경학적 관심의 증대는 신유학의 중심 개념을 하나하나 숙고하고 재검토하게끔 만드는 해석학적 토대를 마련했고, 조선의 신유학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중국이나 일본 같은 주변국과 구별되는 독특하고 심도 있는 사유를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첫 번째 질문(어째서 17세기 조선을 주목하는가?)에 대한 이 같은 답변은 동시에 세 번째 질문(어째서 마음을 주목하는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17세기에는 두 차례의 커다란 난亂이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휩쓸고 간 후의 사상사적인 지형은 이미 이황, 이이와 같은 선유들이 활동하던 시대와 같은 것일 수 없었다. 이 시기 주자학은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중국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한 대외정책)과 결합하여 극명한 이론적 색채를 띠었고, 이는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구분하는 것에서 나아가 정학正學과 이단異端을 엄격히 변별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더불어 지적할 만한 사실은 17세기에 학파의 분기가 본격화되었다는 점이다. 퇴계학파는 퇴계학파대로, 율곡학파는 율곡학파대로 그 이전과 다소 다른 각도의 문제의식과 논의 범주가 구성된 것이 17세기였다. 이러한 분기는 그러나 단순히 학문적 견해차에 그친 것이 아니라 남인과 서인의 정치적 대결과 맞물려 전개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학문은 이제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고, 학파는 곧 당파와 동일시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파 간 학문적 헤게모니를 차지하려는 움직임은 정학의 구축이라는 논리와 이어졌다. 이후 율곡학파와 퇴계학파는 자기 학통의 정체성을 주자학의 정통으로 위치 짓기 위한 사상투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학파의 분기와 학문적 헤게모니 장악 싸움에 휩쓸린 16세기의 사단칠정논쟁은 더 이상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했고, 그에 대한 견해 역시 학파적 동질성 안에 용해되었다. 이에 따라 율곡학파 내부에서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한 것은 16세기에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미발未發(희로애락의 정감이 발현하기 전의 상태)이나 지각知覺(심心이 가지고 있는 감각, 인식, 판단 등의 제반 능력을 통틀어 가리키는 개념) 등과 같은 ‘마음心’의 구조와 역할에 관한 논의였다. 호락논쟁에서 치열하게 논의되는 이러한 심론의 주제들은 이미 17세기부터 그 단초가 발견된다.

 

마음공부를 둘러싼 문제의식들

그러나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본래적 특성은 무엇이며, 마음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기氣(천변만화하는 운동 작용을 통해 세상만사를 이루는 모종의 에너지)에서 비롯되는가 리理(우주를 이루고 만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절대적인 법칙 내지 원리)에서 비롯되는가? 마음은 지각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

17세기에는 이처럼 마음을 둘러싼 수많은 학문적 논의가 있었고, 그 중심엔 송시열이 있었다. 17세기 이후 조선의 지식인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송시열은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할 인물들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렇지만 송시열이라는 이름이 지닌 존재감에 비해 그를 둘러싼 학계의 논의는 일정한 한계를 노정해왔다. 현대 연구자들에게 송시열은 특정 학파의 창도자로 각인되지 않으며 그에 대한 연구 역시 저조한 편에 속한다. 송시열의 정치적 처신과 행적에 대한 포폄, 방대한 저술 양, 제한된 연구 시각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송시열의 성리설을 해명하려는 기존의 여러 시도는 이기론, 사칠론, 예론 등 몇 가지로 한정된 설명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처럼 특정한 몇몇 논의 범주에 한정하여 송시열의 사유를 정형화한다면, 기존의 담론 체계로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사유의 맥락을 읽어내지 못한 채 이미 익숙한 평가와 논리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 책에서는 기존 연구와 달리 송시열 개인에 시야를 한정하지 않고 이른바 우암학단으로 통칭할 수 있는 학자 집단의 담론을 통해 17세기 기호학파를 고찰할 것이다. 송시열 개인의 사상적 편력보다는 그와 큰 틀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했던 17세기 기호학계의 철학적 관심사를 복원하는 데 일차적인 중점을 두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질문이었다. 어째서 송시열 개인이 아닌 그 주변 인물들까지 연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우선 송시열은 학술활동의 중심을 각종 성리서를 정리하고 간행하는 데 놓았다(바로 이 때문에 저술 양이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이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 제자군이 수행했던 연구활동의 성격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는데, 당시 상당수의 제자가 송시열이 추진한 주자서 출간사업에 동참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 따라 송시열 집단의 학술활동 또한 성리서의 편찬과 교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의견 교환이 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할 때, 송시열의 문제의식을 온전하게 파악하려면 ‘송시열이 무엇을 말하였는가’가 아닌 ‘송시열이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인 접근법이라 여겼다. 물론 ‘대화’이므로, 이로부터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송시열 개인뿐만이 아니라 당대 노론계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된 공동의 문제의식이라 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또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17세기에는 학파의 분기가 본격화되었고 학파와 당파가 연동하기 시작했다. 주자학의 도통 승계권을 놓고 학문적 헤게모니 경쟁이 벌어졌다. 이때 송시열의 견해가 단지 그 한 사람만의 것이었을까? 과연 한 개인의 유별난 신념이나 성향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일까? 송시열은 물론 이이의 학설을 모태로 주자학을 재현코자 한 선봉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지만, 이는 그와 정치적 학문적 지향을 같이했던 일군의 정파 또는 학자 집단과 본래 일치하는 것이었다.

 

17세기 사상의 분투들
그렇지만 이는 17세기 조선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겠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미시적인 관점에서 논의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펴볼 것이다. 오늘날 한국 학계에서는 조선 유학사를 흔히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라는 두 가지 조류로 일별한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대체로 타당하며 역사적 사실에도 부합한다. 그렇지만 그처럼 거시적 구분을 지나치게 일반화한다면 각 학파 내에서 분기하는 미시적인 시각차와 입장 변화 등을 읽어내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같은 학파 내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이 오갔고, 송시열과 그 제자군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가 충돌했다.

제1장에서는 마음의 본래적 특징을 가리키는 허령虛靈(허는 마음의 본래적인 모습이 텅 빈 상태임을, 령은 마음이 신묘하게 작용하고 움직이는 것을 가리킨다) 개념을 둘러싸고 당시 기호학파 내부에서 전개된 논변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진순과 노효손에 명제에 대한 이이의 비판에서 촉발된 논쟁의 쟁점은 허령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마음의 허령한 속성은 과연 리와 기가 결합해서 생겨난 것인가 아니면 기 자체에 내재한 고유한 성격인가) 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허령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의 관심이 적었던 문제인데, 이이의 비판적 독해를 계기로 우암학단에서 본격적으로 토론되었다.

제2장에서는 마음의 고요한 때를 지칭하는 미발에서 과연 지각의 실질적인 작용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주희는 미발을 ‘사려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나(사려미맹) 지각이 어둡지 않은 상태(지각불매)’라 정의했다. 그런데 이는 형용모순이 아닌가? 지각이 어둡지 않다면 그 자체로 마음의 활동動을 함의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려미맹·지각불매는 미발의 고요함과 상충하는 개념이 아닌가? 이러한 지각의 활동 여부에 관한 문제는 이후 호락논쟁의 쟁점으로까지 이어졌다.

제3장에서는 미발과 기질(세계를 구성하는 질료적 요소)의 관계라는 논제를 둘러싸고 송시열과 박상현 간에 형성됐던 이론적 대립 구도를 검토했다. 주희는 미발을 현상 너머의 초월적 본체가 아니라 현실세계에 속한 심의 한 국면으로 규정했는데, 여기에 심을 기로 규정한 율곡학파의 인식이 강하게 투영되자 심의 한 부분인 미발 또한 결국 기의 조건에 영향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박상현은 이에 동의를 표하면서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의 기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미발에 있어서도 서로 같지 않다는 성범부동론聖凡不同論의 견해로 이어진다. 반면 송시열은 기와 무관하게 도덕적 이상태로서의 미발의 위상을 확립하고자 한다.

제4장에서는 송시열의 미발설을 좀 더 심도 있게 검토하며 그가 미발의 특징 및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분석하였다. 논의의 실마리가 된 것은 「봉산어록」에서 보이는 “보통 사람에게는 미발의 때가 없다”는 송시열의 발언인데, 이는 앞서 박상현과의 논쟁에서 성인이든 범인이든 미발 체험에 있어 동등하다고 주장했던 것과 모순된다. 그러나 이 발언은 ‘범인은 끊임없이 존양 공부를 하지 않는 한 미발의 중中을 견지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함축한다. 즉 송시열에게 미발이란 마음이 대상과 접촉하기 이전이라는 시간상의 한 시점이 아닌 공부와 노력을 통해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 도덕적 이상태에 가깝다.

제5장에서는 마음의 주재를 가능케 하는 근거로서 ‘지각’ 개념에 주목했던 우암학단의 논의를 상세히 다루었다. 당시 학단 내에서는 호병문의 지知 개념에 대한 규정이 타당한지 여부가 하나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호병문은 지를 설명하면서 마음이 지닌 주재자로서의 역량을 강조했는데, 여기서 본성에 해당되는 지와 마음에 해당되는 지각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김창협이 호병문을 비판하였는데, 김간은 김창협의 비판을 역비판했다.

이처럼 논쟁은 늘 여러 갈래로 뻗어나갔다. 율곡학파의 한 구성원이었던 송시열과 그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우암학단, 그리고 다시 그로부터 분파된 호학과 낙학을 살펴볼 때 우리는 같은 학파 안에서도 여러 사유가 혼재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본격적인 호락논쟁이 시작된 후에는 호학파 가운데 낙론의 경향을 띠었던 이와 낙학파 가운데 호론의 경향을 띠었던 이가 또다시 갈라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사상사의 흐름은 미시적으로 들여다볼수록 단선적이 아닌 복선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한 언어를 그 형태소에서부터 분절해 볼 때 언어의 형태가 달리 보이듯, 이 같은 미시적인 연구가 우암철학의 성격과 호락의 분기를 해명하는 데 약간의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

목차

지은이의 말
들어가는 말

제1장 허령虛靈, 텅 비어 영활한 마음
주희가 말하는 마음의 허령함과 그에 함축된 쟁점
마음의 허령함은 어떻게 가능한가
진순의 견해와 초기 논의들 | 가장 정밀하고 빼어난 기이기에 허령하다 | 리와 기가 결합하여 허령하다
허령함은 마음의 어느 국면에 속하는가
허령을 허와 령으로 나누어 본다면 | 학단 내부의 비판과 송시열의 대응 | 허령에 관한 송시열의 재해석

제2장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마음에서 지각이 가능한가
미발에서의 지각 문제와 그 연원
김장생은 미발지각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미발시에도 지각은 활동한다 | 고요한 가운데 무언가가 있다
송시열은 미발지각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미발에는 두 층차가 있다 | 깨어 있는 마음, 주재하는 마음

제3장 미발과 기질은 어떤 관계인가
마음의 본원인가, 기질의 국면인가―미발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
미발과 기질 관계의 쟁점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 미발은 기질의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 미발은 기질과 무관한 중中의 상태를 의미한다 | 기품氣稟의 작용과 선악의 발생 시점
성인과 보통 사람의 마음은 같은가
성인과 보통 사람의 미발은 같지 않다 | 미발의 중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이다

제4장 움직이는 마음과 고요한 마음
미발과 고요한 때靜時를 구분하다
성인과 보통 사람의 미발을 다시 생각하기 | ‘환히 밝아 혼란스럽지 않은’ 고요함
마음의 안정과 공부
마음의 고요함과 움직임, 그리고 평정심定 | 미발과 공부―마음의 주인됨을 지켜가는 것

제5장 지각의 성격과 그 연원에 관한 문제
지각에 관한 호병문의 학설에 대응하다
호병문 지각론의 기본 논점 | 김창협과 당시 노론 학계의 비판 | 김간이 호병문을 옹호하다
지智와 지각에 관한 대립적 견해
김창협―지각은 지와 무관한 마음의 본유능력이다 | 김간―지각은 지로부터 연원하는 마음의 기능이다
명덕明德, 내면의 밝은 덕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김창협―명덕은 마음의 능력을 가리킨다 | 송시열―주객主客의 구분 못지않게 허실虛實의 구분이 중요하다 | 김간―명덕은 본성, 마음, 감정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나오는 말 

부록 1 개념어 설명
부록 2 주요 인물과 논변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미리보기

물었다. “영활한 것은 마음입니까, 아니면 본성입니까?” 답하였다. “영활한 것은 단지 마음이지 본성이 아니다. 본성은 다만 리일 따름이다.” _「허령, 텅 비어 영활한 마음」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이선열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한국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및 한국사상의 기초를 쌓았고, 재학 당시 전공이 나뉘어 있던 서양철학을 부전공으로 이수했다. 학부 졸업 후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북송시대 정이의 성즉리설 연구로 석사학위를, 조선시대 송시열과 우암학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공군사관학교 역사철학과 전임강사로 근무했고 2004년에는 베이징에 있는 중국사회과학원의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숭실대, 명지대, 한신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남당 한원진의 김창협 지각론 비판」, 「잠야 박지계의 인심도심설」, 「타자 대우의 두 원칙: 관용과 서恕」 등이 있고, 저서로는 『동방사상과 인문정신』(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