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아
2019.06.21
노터리어스 RBG: 2년 9개월간의 업데이트
올바르고 간명하게. 묵묵히, 그러나 치밀하게. 승리에 현혹되지도, 패배에 침윤되지도 않은 채 터무니없는 부조리와 맞서면서도 나날의 행복과 먼 미래의 전망을 포기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 이른바 노터리어스 RBG의 악명은 몇 마디 위대한 말과 잘 고안된 카리스마, 뜻밖의 팬덤으로 어느 날 갑자기 얻어진 게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긴즈버그의 생애 곳곳에 뚜렷한 흔적으로, 세밀한 무늬로 새겨진 ‘악명 높은 시대’와 맞물려 특별한 조화를 이룬다. 이 책은 베일에 가려졌던 그의 삶을 날것 그대로, 세밀하게 펼쳐놓는다. 변호사 시절 대법관들 앞에서 “여성도 헌법상 동등한 인민이며, 남성과 마찬가지로 평등한 시민적 지위를 누려 마땅하다”고 주장한 지 40여 년, 대법원 수장으로 여든이 넘도록 그의 이름은 의미가 퇴색되기는커녕 점점 더 단단하고 견고한 힘으로 개인들을 연결시킨다. 그러나 RBG도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반유대주의를 정서적으로 체험했고, 대학에 들어갔을 땐 매카시즘의 광풍이 캠퍼스를 휩쓸었다. 코넬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 로스쿨에 단 아홉 명뿐이던 여성 신입생 가운데 한 명으로 입학한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화장실도, 도서관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었다. 또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1963년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로 럿거스대 로스쿨 정교수로 취임했고, 1972년에는 컬럼비아대 최초의 여성 종신교수가 되었다. 그사이 학생들의 요청으로 ‘여성과 법’을 주제로 한 강의를 개설했는가 하면, 1972년에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여성권익증진단Women’s Rights Project, WRP을 공동 창립하는 등 꾸준히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의 지명으로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취임했으며, 1993년 빌 클린턴 정권 때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임명됐다. 변호사 시절부터 연방대법관을 역임하는 동안 임금차별, 부당한 처우, 이중 잣대, 임신중절 금지, 사회보험 등 여러 분야에서 젠더 평등과 여성 및 남성의 해방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사실상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당선을 의미한 부시 대 고어 사건 판결에서 “역사의 심판을 받고야 말 것”이라는 소수의견을 낭독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연방대법원에서 민주주의와 젠더 평등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했다. 수많은 청년 페미니스트와 진보주의자가 그의 이름으로 자유와 평등을 외쳤고, 그가 내놓는 소수의견에 열광했다. 같은 무렵, 로스쿨 재학생이던 셔나 크니즈닉은 긴즈버그에게 바치는 텀블러 블로그 ‘노터리어스 RBG’를 만들어 그에 관한 기록과 그를 기리는 전 세계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을 아카이빙하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이름을 재조명했다. 이제는 타투에서 웹툰, 핼러윈 코스프레와 (제작 예정인) 할리우드 영화에 이르기까지 법정을 넘어 대중매체에서도 RBG의 이름이 중요한 가치의 상징으로서 오르내린다. [전문 읽기]

 

…라고 신간소개문을 써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지 2년 9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나, 이 책의 삶과 시대에는? 간단히 전하는 업데이트.

 

1. 중쇄를 찍게 되었다!

2. 아주 특별한 독자들을 만났다. (이 책은 작업하면서나 펴낸 뒤에나 나를 포함한 내부의 다른 누구도 아닌, 독자들에게 가장 커다란 응원과 힘을 받았다.)

3. 한국어판 출간 당시 근간이었던 My Own Words가 출간되었다. 한국어판도 어디가 되었든 곧 나오지 않을까 하는 근거 있는 기대를 품고 있다.

4. RBG의 삶과 시대에 관한 두 편의 영화가 한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정식 개봉했다.

5. 임신중단과 재생산권 문제가 한국과 미국에서ㅡ특히 법률적으로ㅡ중요한 쟁점으로 논의되었다.

 

 

여기부터는 1~5에 붙이는 주석.

 

1.

영화들에 힘입어(?) 손꼽아 기다리던 중쇄를 찍게 됐다. 표지부터 본문 전체를 읽으며 군데군데를 수정했다. 오탈자 수준에서 바로잡은 곳도 있고, 의미를 생각해 고친 곳도 있다. ‘양성평등 → 성평등’ ‘같은 → 동등한’ 등. 문장도 몇 군데 손보았다. 책 사양도 바뀔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초판을 사준 독자들은 좀 특별한 책을 소장하게 될 것 같다.

 

2.

페미니즘으로 분류되는 책들의 생애는 페미니스트들의 페미니스트로서의 나날만큼이나 험난하고 불투명하다.

RBG는 내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할 때마다,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라는 암시를 끝없이 받았다고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강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만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성적이 안 좋으면 사람들이 이것을 ‘나’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여자라서 못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만 같았다.”

페니미즘 책은 종종 단독성을 가진 ‘단 한 권’의 책으로 판단되고 전망되고 평가받기보다 ‘페미니즘 책’으로 대상화되어 싸잡아 취급되고는 한다. 이 책도 처음 나왔을 때부터 그런 부담을 져야 했고, RBG라는 ‘현존하는’ 전설적 인물의 중요도와 이 책 특유의 빼어남, 마침맞은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액션을 취하기 어려운 상황과 무관심 속에서 잊혀가는 듯했다. 그러면서 나도 똑같은 잣대를 이 책에 들이댔다. 이제 페미니즘 책은 내기 어렵겠구나,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무엇을 경유해 설득하겠는가 따위의.

그렇게 좀 의기소침해 있던 차에 마케터인 여성 동료가 ‘페미니스트 북클럽’이란 이름으로 작은 독자 모임을 하자고 제안해주었다. 거기서 몇 명의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이 책을 대상화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럼으로써 다른 페미니즘 책들을 기획하고 펴낼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간의 무심한 시간이 흘렀다. RBG를 주인공으로 한 두 편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한국 독자들에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란 인물이 좀더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아마도 영화로 긴즈버그를 알게 된/될 분들이 책도 찾아주었다. 다시 여러 경로로 홍보나 노출, 판매를 고민해보았지만 신간일 때도 그랬던 상황이 2쇄 때라고 달라질 리는 없었고 오히려 더 시의적절한 기회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사기만 꺾이는 희한한 경험을 익숙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이때 또다시 구원자 같은 여성 독자들이 짠 하고 나타나 이 책이 있는 자리를 밝혀주었다. ‘새로운 태도와 관점으로 대담하게 일하며 성장하고 성취하는 여성들의 멤버십 커뮤니티’(!)라고 하는 빌라선샤인에서 이 책으로 북클럽을 열어준 것이다. 진행을 맡아준 최지은 작가는 전작 『괜찮지 않습니다』(RHK, 2017)에서도 『노터리어스 RBG』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구절인) 여섯 글자─“아홉 명입니다”, 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몇 명이면 충분하겠느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를 인용해준 적이 있어서 북클럽 소개에서 이름을 발견하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자리를 마련해준 빌라선샤인 분들과 북클럽을 찾아준 독자들도 모두 RBG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성장하고 성취하는 동시대 여성의 아우라를 물씬 풍기는 멋진 분들이었다. 이런 분들이 부러 시간을 마련해 읽어주는 책이란 사실, 이 책을 매개로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단 사실이 새삼 반갑고 고마웠다.

독자 피드백을 받다 보면 책과 독자들은 닮아 있을 때가 많다고 느낀다─깐깐하고 엄격하던 조선 선비 책에는 그런 독자들이 모여드는 것처럼. 『노터리어스 RBG』를 둘러싸고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그랬던 것처럼 일에 자기 삶과 분리되지 않는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훌륭히 해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전달하는 분이 많은 것 같다. 나를 제외한 첫 독자였던 디자이너와 추천사를 써준 김영란 전 대법관 두 분도 그렇게 해서 이 책에 힘을 보태주었다. 또 그런 분들 중 한 사람인 동료 마케터의 제안으로, 요즘엔 유튜브 채널에서 이 책을 함께 읽을 준비를 하고 있다.

 

3.

 

『노터리어스 RBG』에서 일부 맛볼 수 있었던 법률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글을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교내 잡지에 실은 글부터 남편 마틴과 동료들에 대해 쓴 글, 법학자로서 쓴 글, 대법관이 되어 쓴 글, 여성과 법철학, 주목할 만한 재판들에 대한 코멘트와 직접 작성한 판결문, 헌법의 미학에 이르기까지 긴즈버그의 관심 분야 전반을 아우른다. 문체는 언제나처럼 정교하고 우아하면서도 시기와 성격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 부디 이런 점들이 잘 재현된 훌륭한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RBG는 ‘나 자신의 말My Own Word’이라고 이름 붙인 이 책의 서문을 샌드라 데이 오코너의 말로 끝맺는다.

“남성과 여성 모두 권력을 얻는 데 있어 첫 단계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뒤엔 인상적인 쇼를 보여주는 거죠. 여성이 권력을 성취할 때,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사회가 여성 스스로 보는 만큼만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을 볼 수 있다면, 곳곳에 일하는 여성이 더 많아질 겁니다. 그리고 그게 우리 모두에게 더 좋을 겁니다.”

나는 진심으로 이 전망에 동의한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긴즈버그가 대법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최초의, 유일한 여성 대법관으로 12년간 자리를 지켜온 인물이다. 『노터리어스 RBG』에 나오는 대목. 우리가 몸담은 일터, 리부트 이후 생겨난 많은 여성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지지와 우정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오코너는 모든 여성을 대표했던 자신의 재임 기간을 뒤돌아보는 자리에서 RBG가 처음 대법원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나는 그를 엄청난 기쁨으로 맞이했습니다.” 대법원장이 RBG에게 처음으로 무미건조한 판결문을 쓰라고 해서 안절부절못할 때도 오코너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RBG가 대법관석에서 그 판결문을 낭독하려는데 소수의견을 냈던 오코너가 쪽지를 건넸다. “이번 판결문이 대법원에서는 처음 쓰는 것이지요. 매우 좋습니다. 앞으로도 훌륭한 판결문을 많이 쓰기 바랍니다.” RBG는 신경이 바짝 곤두선 그날, 이 쪽지가 주었던 위안을 마음에 새겼다. 그리고 다음에 대법원에 취임한 두 여성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와 엘리나 케이건에게 같은 친절을 베풀었다.

 

4.

다큐멘터리가 먼저 세상에 나왔고, 펠리시티 존스가 긴즈버그로 분한 극영화가 다음에 나왔다. 한국에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가 좀더 정면으로 관객을 맞이했던 듯한데 두 편이 소개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의 원제는 RBG.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 제목을 그대로 따르거나 우리처럼 풀네임으로만 바꾸었다. 포스터나 홍보 과정에서도 원작과 RBG의 삶을 왜곡하거나 배반하는 일은 없었다. (국내 첫 상영은 여성영화제였다.) 그런데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개봉 전부터 말이 많았다. 문제가 된 홍보물[관련 기사]은 이미 많은 지탄을 받기도 했고, 한국 배급사도 이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 관객의 눈높이를 인지는 한 것 같다.

 

 

사실 제목을 못마땅해한 관객들의 불만도 많이 보았다. 나도 내내 제목이 거슬렸다. 홍보는 시의적이고, 조정되며, 잊히는 ‘과정’인 데 반해 제목은 ‘결정’에 가깝다. 번복되기가 굉장히 어렵고, 오랫동안 인용되는. 원제 On the Basis of Sex는 왜 「세상을 바꾼 변호인」 같은 흐리멍덩하고 거창한 제목이 되어야 했을까? (일본에 소개된 제목도 만만치 않다. 빌리브: 미래로의 대역전ビリーブ 未来への大逆転.) 전적으로 성차별에 관한 영화인 이 작품은 적어도 한국 내에선 제목과 영영 불화하게 됐다. 언뜻 위대하게 치켜세운 것처럼 들리지만 RBG의 생애와 업적을 참 뻔한 방식으로 축소하고 저평가하는 이 제목에 맞서며 기억되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으니.

세상을 바꾼: 페미니즘에 온갖 종류의 인권과 정의 문제를 짐 지우려 했던 기나긴 목록, 거기에 이 제목도 이름을 올리게 되지 않을까. 변호인: 영화는 긴즈버그가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해 여자 화장실도 없는 본관에서 수학하며 온갖 황당한 결례와 부당함을 겪고, 컬럼비아대 수석 졸업에도 여성이란 이유로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다, 스스로 그토록 원했던 ‘법정’이 아닌 대학 강단에 서야만 했고 거기서도 여성과 법 강의를 만드는 장면 장면을 상세하게 다룬다. 학생들과 딸 제인같이 다음 세대 페미니스들과 상호작용하며 자기 일을 의미화하는 중요한 과정도.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은 RBG 본인이 카메오로 출연한 마지막 신이다. 그런 삶과 시대를 살아오며 마침내 미국 법조계에서 가장 높고 막강한 자리인 연방대법원 대법관까지 된 키키가 하얀 대리석 계단을 총총 올라서는 장면에 본인으로 출연해 열연(?)했다. (오페라 무대에서 연기하는 영상들을 보면 확실히 열연 맞는 듯.) 그러니까 영화 속 RBG는 단지 변호인이 아니라, 하버드대 법학도 시절부터 연방대법원 대법관 시절까지의 그 모든 RBG인 것.

 

5.

지난 4월 11일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한 해쯤 전인 2018년 5월엔 아일랜드에서 낙태죄가 폐지되었다. 많은 사람이 아는 것처럼 1960년대 대대적인 폐지운동이 있은 후 수십 년간 많은 나라에서 낙태죄 관련 법이 폐지되었다. 단지 폐지를 넘어 안전한 임신중단이 의료서비스의 일환으로 편입되고 그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는 게 선진국 그룹에선 세계적인 추세인 듯하다. 헌재 판결이 있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OECD 36개국 가운데 낙태를 범죄로 간주하는 5개국 중 하나였다.

그런데 트럼프 이후 미국에서 재생산권 논의는 역행 중이다.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임신중단이 여성의 헌법적 권리로 인정되면서 미국 전역에서 합법화된 지 반세기쯤 흐른 시점에, 아칸소주 같은 곳에선 ‘생부에 의한 낙태 반대권’이란 법적 권리가 인정되었다. 이에 따라 경우를 막론하고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은 생부와 이를 합의해야 하는데 이론상으론 강간범도 생부의 자격으로 임신중단에 반대할 수 있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평등권이 아닌 프라이버시권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 외에도 전면적이고 불가역적인 재생산권 인정으로 가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거나 불완전한 구석이 많았는데, RBG는 판결이 내려지던 50년 전에도 이 점을 우려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미국에선 낙태죄 논란이 있었다 하면 그것은 곧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기로 통했다. 공화당과 극우 기독교 단체를 비롯한 보수 진영은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로 대 웨이드 뒤집기를 시도해왔고 지금 상황도 그간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  RBG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클래런스 토머스 같은 확고한 보수주의자들에 맞서 재생산권의 헌법적 기반을 견고히 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가 어떤 엄격함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논쟁을 쌓고 또 다지고 있는지 보면 지난함을 적절히 견뎌내는 한결같음이 느껴진다. 논쟁 중에 클래런스 토머스가 “중절된 아이aborted children”란 말을 쓰면, RBG가 “임신을 중단하는 데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행사한 여성은, ‘어머니’가 아닙니다”라고 바로잡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