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하
2019.06.18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기죽는 그 친구

이 세상의 공장에서 만드는 제조품에는 수만 가지가 있을 테고 나는 가끔 어떤 물건의 발주자가 궁금할 때가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니 플라스틱 컵 뚜껑이 그동안 봤던 평평이도 아닌, 돔형 동그란 뚜껑도 아닌, 볼록 튀어나온 하트 모양이고 꽂혀 있던 빨대도 마찬가지 분홍색 하트였다. 즐겨먹는 사탕도 타원형에서 하트 모양으로 바뀌었다. 하트, 하트, 하트. 하트 모양 뚜껑과 빨대를 새로 만들기 위해 다시 만들었을 플라스틱 금형, 하트 모양으로 사탕을 만들기 위해 다시 만들었을 거푸집. 그리고 그것을 발주했을 사람들. 하트 물건은 어떻게 환영받을 수 있었을까?

 

사랑이 밥 먹여주지 않을 거라는 숱한 가설에도 불구하고 사랑 물건(이 경우 하트 모양)과 사랑 얘기는 너무 많다. 당연히 밥만 먹고 이 세상을 살 순 없으니까! 사랑이라는 말로 혐오도 하고, 사랑을 아무리 해도 이 세상은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이니 나는 한때 섬을 하나 사서 공동체를 세우는 꿈도 꿨다. 하지만 도피나 회피로 해결될 기미가 없어 보여 차라리 함께 여기서 싸우고 공부하는 편이 아무래도 훨씬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옮기는 작품의 주인공이 그렇다.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기죽는 그 친구는 누적된 시무룩함과 슬픔을 밟아 강해진다. 그 친구는 자신이 강해졌다고 말하고, 나는 본인 사랑의 취사선택 요령이 늘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랑이 밥 먹여주는 줄 알았다가 그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이 친구도 도피를 원했지만 공교롭게도 세상은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더 이상 이 친구가 사랑으로 시무룩하지 않길 바라며,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