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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향견문록 이조시대 탁월한 서민들 이야기
  • 지은이 | 유재건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 옮긴이 |
  • 발행일 | 2008년 02월 11일
  • 쪽   수 | 960p
  • 책   값 | 42,000 원
  • 판   형 | 157*232
  • ISBN  | 9788954605045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중인 및 서민 연구의 영원한 고전

최근 조선시대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조선의 아웃사이더』 『조선의 방외지사』 『조선이 버린 여인들』 등은 조선 비주류들의 삶의 흔적을 복원하고 있는 책들이다. 이 책들은 연전에 나온 『조선 최대의 갑부 역관』『미쳐야 미친다』『조선의 프로페셔널』 등과 이어지면서 지배 엘리트의 역사에서는 제외된, 자기만의 퍼스낼리티를 탐구한 조선의 단독자들을 역사의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18세기는 농밀하게 구축되었던 성리학적 지배질서의 기반이 흔들리면서 ‘지식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거대한 모순이 용트림’한 근대의 발아 시기였다. 사회적으로 수많은 문필가와 예술가들이 생겨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세분화하면서 문어발처럼 뻗어나가던 시대이기도 했다. 여기서 공통된 흐름은 삼강오륜으로는 보듬을 수 없는 개별적이고도 소중한 ‘자아’에 관한 재발견이다. 앵무새나 담배에 관한 기록을 모아 책을 내면서 경經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에서 보듯, 이 시기 지식인들은 기존의 문자 질서를 해체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들은 망해가는 조선, 식민지로의 귀결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에 따라 아직도 수많은 문헌들 속에서 이 시대의 다양한 지적 시도들이 제대로 해독되지 못한 채 잠들어 있다.

이런 인식 속에서, 조선시대 탁월한 서민들 308명의 삶을 전傳 형식으로 수록한 『이향견문록』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고전과의 뒤늦은 만남이라고 할 만하다. 중인 연구의 실록이라 할 만큼 방대한 양과 체계적인 서술을 자랑하는 『이향견문록』은 조선후기에 이름을 떨친 비주류들에 대한 색인집이면서, 양반들의 이름에 가려져 잊고 있던 사람들의 존재를 보존하고 있는 사전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이향견문록』이 최근 조선시대를 다룬 단행본들에서 압도적인 인용 빈도를 자랑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에 새롭게 나온 개정판 『이향견문록』은 우리 한문고전에 대한 정밀한 독서를 통해 많은 성과를 일궈내온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가 지난 1997년에 펴냈다가 절판된 민음사 판의 오류를 바로잡고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내용으로 가다듬었다. 10년 전 이 책을 읽을 만한 독자대중의 층은 미약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막강해진 교양서 시장을 거쳐온 수준 높은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이 책은 조선시대를 풍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진귀한 이야기들을 가득 담고 있는 네버엔딩스토리의 매혹마저 그 속에 감추고 있다.

 

이조시대 탁월한 서민들에 관한 방대한 기록

이 책은 겸산兼山 유재건劉在建(1793~1880)의 편저의 하나인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우리말로 옮기고 주석을 붙여 낸 것이다. 1974년 아세아문화사에서 나온 영인본을 대본으로 삼았다. 그 원본은 서울대 중앙도서관 소장 필사본이다.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에서 벽사 이우성 선생의 지도하에 1993년부터 번역해 1997년에 책으로 펴냈고, 10년이 지난 올해 개정판을 펴내게 되었다. 개정판에서는 초판에서의 번역상의 오류, 원문 오류 등을 많이 바로잡았으며 각 인물마다 특징이 되는 제목을 달아 독자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19세기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시기였다. 안으로는 지배층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거세어져 1811년의 홍경래란, 1860년의 진주민란, 그리고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규모의 민란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밖으로는 서구 열강이 세력을 뻗쳐와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가 일어났다. 유재건은 바로 이 시기를 살았던 중인 출신의 지식인이었다. 이 격동의 시기에 그가 여항인의 문학과 일반 서민층의 삶을 기록한 『풍요삼선風謠三選』(1857) 『고금영물근체시古今詠物近體詩』(1861) 『이향견문록』(1862)을 편찬한 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유재건에 대해 별반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것은 위의 3종의 책 이외에 유재건과 관련된 자료가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보수적 성향의 인물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기존의 논의를 보면, 겸산과 그가 편찬한 책에 대하여 각기 이해하는 시각의 차가 상당히 드러나고 있다. 임창순 선생은 겸산을 “철저히 봉건체제의 윤리에 맹종하는 정신”의 소유자이며 『이향견문록』 역시 그 결과로 나타난 산물이라고 파악하는가 하면, 윤재민 교수는 “특별히 보수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은 인물이다. 중인 문학의 작가들을 크게 예교주의적 인물과 낭만주의적 인물로 나누어본다면, 유재건은 그 중간”이라고 파악했고, 정옥자 교수는 “유재건은 직접적이며 강경한 방법을 배제하고 온건하나 객관적 타당성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스스로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 계층의 신분 상승을 도모”한 인물로 보았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평가되고 있는 유재건과 그가 편찬한 책에 대해 그 실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편저자 겸산의 인간 면모

현전하는 겸산의 글은 『이향견문록』에 재수록한 『겸산필기』 80항과 『고금영물근체시』의 ?序? 1편, 그리고 근체시 17편이 전부이다. 그의 글이나 그에 관한 글이 매우 적기 때문에 그의 인적 사항 및 의식 성향에 대해 자세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겸산이 선집한 3종의 책이 19세기까지의 여항의 문학과 인물전을 가장 방대한 규모로 집성한 것인 만큼, 그는 여항 문인들 사이에서 그 문학적 안목을 인정받았으리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역사상 시문 선집을 편찬한 사람을 보면, 대체로 그 방면의 일정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겸산은 『호산외기』(1844)의 저자 조희룡, 『희조질사』(1866)의 저자 이경민, 『풍요삼선』을 함께 편찬한 최경흠 등과 ‘직하시사稷下詩社’를 결성(1853년)한 이로서, 당대 여항의 시인·예술가들과 폭넓게 교유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다른 사람의 시詩나 글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규장각의 서리를 지냈고 『열성어제列聖御製』(고종 2년, 1865)를 편찬하는 일에 공이 있어 상호군의 은전을 입었다고도 하는데, 구체적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겸산의 인간 면모를 알 수 있는 글로는 오직 조희룡의 『이향견문록』서문과 장지완의 『고금영물근체시』서문이 있다.

“겸산은 흉금이 바다처럼 깊고 넓어 남의 좋은 일을 즐거워하여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을 모두 그물질하듯 끌어  았고, 그 언행 그 시문詩文의 밖에 한 가지 재주 한 가지 능력이라도 모두 특별히 기록하였다. 그 뜻의 부지런함이 어찌 공연한 일이겠는가?” (조희룡, ?이향견문록서里鄕見聞錄序?)

“겸산자는 겸허하게 스스로 분수를 지키고 물物과 더불어 다투지 않았다. 나이가 지금 칠십인데, 문을 닫고 맑게 앉아 날마다 문묵文墨으로 업業을 삼는다. 젊어서부터 시詩의 편찬에 종사하였는데, 이는 모두 이전에 읊조리기를 끊임없이하여 외운 것이다. 그러므로 친구들의 시편도 왕왕 유형별로 편입시켜 놓았다.”(장지완, ?고금영물근체시서?)

조희룡의 글에는 겸산이 당시 사람들의 시문뿐 아니라, 갖가지 예능인을 널리 기록하는 자세가 나타나 있고, 장지완의 글에는 겸산이 분수를 지키면서 맑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가 『풍요삼선』을 편찬하고, 『소대풍요』를 중인重印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 것도 이런 자세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이향견문록』 또한 겸산의 이러한 자세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향견문록』의 편찬 동기

『이향견문록』에 조희룡이 쓴 서문을 보면 조희룡 자신의 『호산외기』와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의 편찬 동기는 일치한다. 모두 ‘역사적 평가’를 의식한 기록 행위인 것이다. 이런 의식은 겸산이『이향견문록』의 ‘의례’ 부분에서 언급한 편찬 동기나, 『고금영물근체시』의「서문」에서 “장차 태사씨의 채택을 위하여 갖추어둔다”고 밝힌 데서도 똑같이 확인된다.

매우 상투적인 저작동기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역사적 평가를 기다리는 의식’을 19세기의 겸산에게서는 좀더 의미 깊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양반이 아닌 중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정도의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 자기 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널리 수록하고 자세히 기술했다는 점, 역사의 방향 자체가 ‘여항 서민층’의 역할이 차츰 증대되던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매우 긍정적으로 주목해야 할 의식이 아닌가 한다.

그가 여항인의 삶이 지닌 의미와 역량을 역사적으로 평가받게 하려는 의식이 뚜렷했다는 것은  『이향견문록』을 편찬하며 인용한 서책이 여항인들의 문집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이 직접 쓴 『겸산필기』에서 84항을 옮겨온 것은 물론이고, 조희룡의 『호산외기』에서 29항, 장지완의 『비연상초』에서 15항, 『심우담초』에서 11항, 정래교의 『완암집』에서 12항, 작자는 미상이지만 그 신분은 아마도 서리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휘속고』에서 14항, 조수삼의 『추재기이』에서 10항, 신광현의 『위항쇄문』에서 10항, 이경번·이진흥의 『연조귀감』에서 9항, 고시언의 『성재집』에서 4항, 그리고 『소대풍요』에서 5항, 김희령의 『소은고』에서 4항, 김낙서의 『호고재고』에서 3항, 홍세태의 『유하집』에서 2항, 박기설의 『국은고』에서 1항, 박영석의 『만취정집』에서 1항, 이상적의 『은송당집』에서 1항 등인데, 이상으로도 이미 『이향견문록』 총 287항 중 215항으로 전체의 74%를 차지한다. 그리고 작자 미상의 『범곡기문』에서 6항 · 『청구야담』에서 16항 · 『좌계부담』에서 3항 등을 인용했고, 별도로 관찬인 『춘조 삼강록』에서 13항을 인용했다.
양반 사대부 문집에 있는 여항인에 관한 기록을 1, 2항씩 인용한 것으로는 허목의 『미수기언』, 채제공의 『번암집』, 홍량호의 『이계집』, 남공철의 『금릉집』, 윤행임의 『방시한집方』· 『석재고』를 들 수 있다. 양반 사대부의 문집에서 인용한 것은 『이향견문록』 전체의 10%의 비율도 되지 않는다.

또, 겸산은 사대부의 문집과 여항인의 문집에 공통으로 입전되어 있을 경우에는 여항인의 글을 옮겨 싣고 있다. 예를 들면, 홍량호의 『이계집』에는 『이향견문록』 권2 에 효자로 실린 ?문기방?이나 권 9에 실린 ?조광일? 외에, ?홍차기? ?이몽리? ?피재길? 등의 전이 실려 있는데도 그것을 인용하지 않고 ?홍차기? ?피재길?은 『청구야담』에서, ?이몽리?는 『완암집』에서 인용해 싣고 있다. 그런데도 『이향견문록』을 “그 인용서부터가 양반층의 기록을 많이 채록했으며, 충신·충복의 기사를 여러 항에 걸쳐 싣고 있다(임창순 선생說)” 고 한다면, 그것은 실상을 벗어난 지적이다.

 

목차와 내용

『이향견문록』은 중인과 여항 서민층 인물들의 삶을 모은 전기집이다. 비슷한 내용의 책으로 조희룡의 『호산외기』(1844)와 이경민의 『희조질사』(1866)가 있지만, 『이향견문록』이 입전 대상 인물 수가 가장 많고 인물 분류가 체계적이다.

목차에서 ‘학행’이 ‘충·효·열’이라는 봉건적 윤리 이념보다 더 앞서 1권에 와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덕행과 경술이 있는 선비로서 일세의 사표가 될 만한 사람들’이 중인층에서 나온 것을 자부하는 마음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실무적 기술을 익히는 중인층의 신분에서는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0권에서 유학자뿐만 아니라 승려 및 도가류의 사람들을 많이 수록한 것도 주목된다.

입전된 인물의 신분을 보면, 2권의 충효나 4권의 열녀, 9권의 잡예의 항목에는 일반 서민이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중인들이다. 그들은 대개 문학과 서화, 의학, 음악에 종사하며 재능을 발휘하고 개성적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는 벼슬길에 진출하는 데 명백히 한계가 있었던 중인들로서는 필연적인 선택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그들의 생활 특징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입전된 인물 중에서 겸산이 직접 기술해 넣은 인물의 수를 보면, 문학에서 35인, 서화에서 16인, 지모에서 10인, 승려 도가류에서 10인의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학행과 충효열의 항목은 매우 적은 수의 사람을 입전해 넣었다. 실제 중인들의 재능이 그러했던 까닭도 있겠지만, 겸산이 중인층의 문학적, 지적 능력과 재능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주력한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전은 입전대상의 선정 자체가 이미 대단히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겸산이 당대의 윤리 규범에 합당한 인물을 기록하는 데 주력하지 않고 중인의 재능이나 개성적인 삶에 중심을 두어 대상을 선정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중인들을 포함하여 일반 서민은 늘 양반들에게 교화의 대상으로 비쳤을 뿐이어서 그들의 문화와 생활이 전해지는 것이 드문데, 이 자료는 실존 인물의 일생을 통해 중인 및 서민의 삶과 재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준다.

 

『이향견문록』 서술의 특징

겸산은 인물을 입전할 때 기존과 다른 수법을 쓰고 있다. 사실을 되도록 요약해서 전함으로써 간명한 기사체를 구사하는 것이다. 이런 서술 수법은 19세기와 같은 격동기에서는 그 의미를 주목할 만하다. 격동의 시기에 오직 간명한 사실 전달만이 필요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겸산 자신이 인물을 직접 기술해 넣었을 경우에는 글 끝에 ‘대체로 사실을 적은 것이다’라고 부기하여 ‘사실’임을 굳이 밝히고 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했을 경우는, 문학적 수식과 윤리적 훈계가 담긴 부분을 삭제하여 간명한 기사문을 만들고 찬이나 논평을 삭제해버렸다. 사대부의 글을 인용하면서도 그런 식으로 삭제한 것이 많다. 이계 홍양호가 쓴 ?조의사광일?은 글의 분량을 반으로 줄여서 인용했고 주인공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찬조차 삭제했다. 중인신분으로서, 사대부가 높이 평한 찬을 기꺼이 옮기지 않고 삭제한 것이다.

중인이 쓴 글을 인용하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였는데, 정래교의 『완암집』에서 효녀와 효부의 전을 인용하면서 ?효녀 취매?는 그 논찬을 그대로 옮겨왔으나, ?오효부전?에서는 전체 글의 반 정도 분량이나 되는 논찬을 완전히 삭제해버렸다. 『호산외기』 42편의 전 가운데서 29편을 인용하면서 ‘평’이나 ‘찬’을 그대로 둔 것은 12편이고 나머지는 평과 찬을 모두 삭제했다.

겸산의 이러한 서술 태도는 조희룡이 주관적 판단을 뚜렷이 하여 문학성 짙은 글을 쓴 점과 비교해보면 대조적이다. 겸산은 사대부의 관점에서 평한 것을 따르거나 중인의 처지로 구구하게 울분을 토하는 것보다 사실만을 제시하는 것이 객관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이러한 편집과 서술은 우연의 소산이 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행한 일인 듯하다. 겸산이 직접 기록한 인물의 경우, 한결같이 논찬 없이 서술하고 사실 요약 위주의 기사문체를 구사한 것과 다른 사람의 글에서 논찬을 삭제한 태도에 공통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겸산은 기존의 윤리 규범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싫을 때 논찬을 삭제하고 사실만 남겨두어 평가를 유보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내용이 모두 ‘인물전’인데도 책의 제목을 ‘이향견문록’이라고 정한 것에서도 ‘전’ 양식에서 오는 가치판단의 부담을 줄이고자 한 것이다.

겸산의 이러한 서술 태도는 전통적인 전 양식의 해체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경향이『이향견문록』의 전체에 일관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 해체가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전’에서 교훈적 서술을 지양하고 논찬을 삭제한 의미는 자못 크다. 특히 논찬 부분은 형식적 구속력이 강한 전의 종합적 결론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조후기에 수많은 전 작품이 야담적인 성향을 띠었지만 그러나 이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목차
□ 초판 서문 『이향견문록』을 내면서 5
□ 재판 서문 8
□ 해 제 10
□ 일러두기 22이향견문록서 37
이향견문록의례 40
인용서목 42

권1 학행
01 구리 그릇 만들어 판 도학자 | 시은 한순계·증손 섬 46
02 상제喪制에 밝았던 얼자 시인 | 촌은 유희경 51
03 양반 선비들의 스승이 된 천민 학자 | 고청 서기 56
04 『주역』의 일인자 | 고두표 59
05 반촌의 습속을 바로잡다 | 죽헌 안광수 60
06 위기지학에 힘쓴 수학자 | 율촌 한이형 63
07 “봄의 뜻을 가장 먼저 알겠네” | 퇴정재 김항령 67
08 뛰어난 학행으로 명성이 대궐까지 | 만취정 박영석 69
09 세 번 밀쳐 넘어뜨려도 평심을 잃지 않다 | 학관 이몽리 72
10 경전과 성리에 통달한 고아 출신 선비 | 무성자 박상우 75
11 충청도의 인물, 학서선생 | 학서 이지화 79
12 중국인이 만 리 밖에서 사모한 사람 | 판향 함진숭 81
13 천체의 운행에 통달한 주역선생 | 석천 김영 82
14 미수 허목의 스승, 불우한 문장가 | 총산 정언옹 87

권2 충효
1 육십 년을 기다린 시묘살이 | 효자 박태성 92
2 얼굴빛을 따라 뜻을 받들다 | 공참 안태신 96
3 그 아버지에 그 아들 | 동추 박수천 98
4 채마밭에 참기름 주다 | 정효자 100
5 아버지의 출옥과 아들의 죽음 | 동자 홍차기 102
6 강의 신神이 아버지 시신을 찾아주다 | 효자 이병연 105
7 진정 예를 아는 사람 | 치옹 송규휘 106
8 필운대 아래 신동 | 동자 김중진 109
9 문익점의 후손 | 판윤 문중욱 113
10 불량배가 피하다 | 효자 김익춘 115
11 위항의 예학 군자 | 학고당 백윤구 118
12 남편은 효자, 아내는 열녀 | 판윤 이사룡·처 고씨 123
13 계모를 친어머니처럼 | 동추 최도식 126
14 효성의 감응 | 취수당 최정헌 128
15 손가락을 태워 어머니를 살린 기적 | 연지 효자 129
16 호랑이에게 개를 얻다 | 연기 효자 132
17 저승에서 아버지를 돌려보내다 | 효자 이종희 134
18 부디 효행을 포상하지 마세요 | 효자 오천송·손 철조 136
19 호랑이가 지켜준 산삼 여덟 뿌리 | 효자 박사신 138
20 봄마다 비단 자리 펼친 듯한 묘 | 효자 권재중 139
21 어머니를 십 년 더 살게 하다 | 효자 홍명관 141
22 눈물인가 앵두인가 | 효자 오태관 142
23 효천에 고기가 많은 이유 | 효자 김치린 143
24 호랑이의 보호와 눈밭의 뱀 | 효자 이근 144
25 겨울의 자라탕 | 효자 이방익 145
26 가을 앵두와 가물치 | 효자 신옥 146
27 허벅지를 베어 약으로 | 효자 이제극 147
28 밭도랑에 내려온 자라 | 효자 박주국 148
29 하루에 칠백 리를 달려오다 | 효자 황재 149
30 열한 살의 효심 | 효자 옥종손 150
31 왼손 무명지를 약으로 | 효자 유석진 151
32 집은 모선당, 호는 효사재 | 효자 이탁영 152
33 희민연의 어원 | 효자 신희민 154
34 좋은 나무와 기이한 풀 | 효자 김원명 155
35 아내에게 두 번 절하다 | 임효자 156
36 사량의 집만 불타지 않다 | 효자 백사량 158
37 아들 대신 동생을 기르다 | 효자 윤명상 160
38 해동검루 | 효자 김창국 162
39 좋은 것은 어머니 먼저| 효자 이익삼 164
40 상복을 입지 못한 한 | 판윤 오인식 166
41 풍수風樹의 슬픔 | 교관 윤민성 169
42 머리털을 잘라 편지에 넣고 | 좌윤 강효원 173
43 고사리로 먹고살다 | 은사 전만거 175
44 폐위된 인현왕후를 호위하다 | 검률 이진화 177
45 지혜로운 성환 역리成歡驛吏 | 최노 179
46 갈대밭을 태워 어가의 길 밝히다 | 애남 181
47 아전이 선무공신으로 | 제흥군 고언백 183
48 전등신화를 가져오다 | 수호자 임기·자 우춘·부 홍씨 184
49 “허리의 옥룡검은 알리라” | 수문장 문기방 185
50 네 살배기 세자를 업고 수천 리 길을 | 장사 오효성 188
51 “너는 종이 아니지 않느냐” | 원수 유극량 190
52 혀를 뽑힌 좌수座首 | 이술원 193

권3 지모
1 은화 천 냥으로 미인을 구제하다 | 역관 홍순원 196
2 밥 지으며 『주역』 읽는 선비에게 30냥 | 역관 환원 199
3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다 | 역관 김지남·자 경문 201
4 종묘사직을 김상궁이 망치니 | 옥호 김충렬 203
5 평양의 대협객 | 오위장 이충백 204
6 책을 함께 순장하다 | 동리 정윤 208
7 은 열 냥의 인연 | 염시도 212
8 청렴결백한 호조 서리 | 지부 김수팽 216
9 부모 상중에도 서리는 평상복 | 주사 유세통 219
10 주막에 들려오는 곡소리 | 천관 이연 221
11 가난할수록 사양하라 | 혜국 김연 222
12 극형 받은 자의 시신을 훔치다 | 학록암 윤수하 224
13 죽었다가 살아난 자가 있느냐? | 문김생원 225
14 의심받고도 태연한 약주릅 | 이달문 228
15 죽을 때까지 술을 끊다 | 동추 유후택 230
16 책 사이의 금은도金銀刀를 돌려주다 | 석사 홍윤수 232
17 권공정權公井 | 동추 권정일 233
18 노래박자 매화점을 만들다 | 풍죽헌 장우벽 234
19 궁 안이 물 끓듯 하더라도 | 만취헌 유광진 236
20 『종저방』으로 구황작물 재배법 전파 | 학포헌 허경창 239
21 이불에 난 칼자국 | 동추 박원묵 241
22 선친의 뒤를 잘 계승하다 | 노촌 유한겸 243
23 담배통을 팔고 부채를 수선하다 | 연박 244
24 책상 위에 국조 전례 | 동추 배광옥 246
25 집을 팔아 김부제학의 장례를 | 송간 서의석 247
26 마음 심心자 세 개 | 무구자 김경직 248
27 은 또한 그대의 물건이다 | 홍이양금 250
28 천재가 죽다 | 진종환 251
29 팔뚝만 한 산삼 | 김채삼인 254
30 조상에 대한 끈질긴 사랑 | 최규현 257
31 게으른 자 일어서게, 탐욕한 자 청렴하게 | 김완철 259
32 아전을 보고 피하다 | 오위장 이흥윤 261
33 평양 황고집 이야기 | 황순승 263
34 들라 하오리까 말라 하오리까 | 김대섭 267
35 무슨 일로 옥황상제 노릇을 하랴 | 김중진 268
36 신부의 치마 반쪽 | 김육지 272
37 도적을 변호하다 | 향인우도 279
38 약사발을 차버린 의리 | 홍동석 281
39 진정한 보답 | 노동지 283
40 민간 신앙이 된 뱀을 죽이다 | 박만호 288
41 면천을 거부하다 | 이유성 290

권4 열녀
1 낙숫물이 쨍그랑하는 소리 | 정부인 임씨 296
2 제사상 음식이 약소한 이유 | 김씨 298
3 오직 며느리의 길을 | 안협 효부 299
4 오직 딸의 길을 | 이효녀 302
5 미망인의 생사가 무슨 큰일이기에 | 절부 하씨 307
6 돈을 맡긴 뜻 | 고절부 310
7 독을 마셔 남편을 살리다 | 엄열부 312
8 어머니가 될까, 못 될까 | 변의고 315
9 이에 헤어지기를 청합니다 | 영동 열녀 317
10 남편을 따라 물속으로 | 포천박씨 319
11 유방을 베어버리다 | 창녕 열부 320
12 말을 탐하느냐 나를 탐하느냐 | 청풍 의부 322
13 저는 죄수의 딸입니다 | 효녀 취매 325
14 원수를 갚은 자매 | 박효녀 328
15 신주를 구하러 불길 속으로 | 오효부 332
16 기어이 남편의 뒤를 따라 | 절부 최씨 334
17 좋은 일은 원래 천천히 | 절부 이씨 336
18 채소밭의 돈항아리 | 노과녀 338
19 호랑이 등에 업혀 달리다 | 홍주 최씨 340
20 시아버지의 원수를 갚다 | 희천 효부 343
21 묘지 소유권 싸움 | 숙천 김씨 344
22 가락지를 빼 소매에 매어두고 | 단인 장씨 346
23 넓적다리를 베어 남편을 살리니 | 시흥 이씨 348
24 너마저 따라 죽는다면 | 철원 한씨 349
25 처녀가 호랑이를 잡다 | 단천 조씨 350
26 슬피 울다가 죽다 | 절부 김씨 351
27 서방님 옷을 입고 | 향단 352
28 만덕의 소원은 무조건 들어주라 | 만덕 354
29 계월향의 사당에 배향되다 | 연홍 358
30 꽃다운 이름 달과 나란히 걸려 | 면성월 360

권5 문학 I
1 문장은 장자, 시는 황산곡 | 조총 홍유손 364
2 바빠서 봐줄 틈이 없다 | 시은 박계강 366
3 명예와 이익, 바람 앞의 등불 | 넉헌 정치 367
4 흰머리 휘날리는 전함사의 종 | 백대붕 369
5 최고의 중국통 | 역관 최세진 370
6 홍세태가 아낀 시인 | 귀곡 최기남 371
7 한미한 벼슬이 내게 장애가 되니 | 창애 최대립 373
8 유행을 뛰어넘은 재주와 운치 | 남천 석희박·자 만재 375
9 입신의 바둑 덕원군을 이기다 | 춘곡 유찬홍 377
10 어찌 세상사에 골몰해 지내랴 | 서헌 임준원 382
11 추위도 깜빡 잊게 하는 이야기꾼 | 죽재 이득원 386
12 당대 일류와 시를 겨루다 | 노주 강취주 389
13 말을 하면 그것이 곧 글이 되네 | 유하 홍세태 391
14 협사俠士인가, 시인인가 | 남곡 김만최 395
15 문장 중의 문장 | 성재 고시언 398
16 여윈 학이 노래하듯 | 완암 정래교 401
17 붓이 말을 달리는 듯 | 한천 정민교 404
18 사람은 정성으로 사물은 어짊으로 | 금곡 현덕윤 408
19 삼계고사를 잇다 | 항은 최태완 409
20 한 편 시에 담은 역사 | 담옹 박창원 413
21 가을, 거지를 슬퍼함 | 매곡 송규빈 416
22 흥해를 선비의 고향으로 | 농수 최천익 421
23 세상사 말하기 어려워라 | 간취자 이수익 424
24 과거에 열 번 합격 | 장와 이성중 428
25 자리가 뚫어지도록 책 읽기 | 분진 김규 430
26 기억이 바로 사문부고事文府庫 | 도선암 전홍서 431
27 뜻이 통하면 그만 | 시한재 김순간 433
28 정감이 통하면 그만 | 동계 최윤창 434
29 나무꾼 시인 | 초부 정봉 435

권6 문학 II
1 삼대로 이어진 학예 | 국산 엄계흥 438
2 시와 글씨로 이름을 날리다 | 백화자 홍신유 440
3 요절한 천재 시인 | 송목각 이언진 442
4 매화시광梅花詩狂 | 김석손 445
5 목숨과 바꾼 시구 | 필재 이단전 447
6 시상詩想의 높고 큰 뜻 | 쌍백당 임광택 449
7 풍요속선에 제를 하다 | 진우당 이덕함 451
8 육상산을 배워 일가를 이루다 | 동애 김환 453
9 강세황을 감동시킨 화훼 그림 | 삼양재 김덕형·손 건식 455
10 ??전운옥편??을 저술하다 | 동추 유명표 457
11 곤궁해야 글을 잘한다 | 어산 정이조 459
12 내 뱃속에 시가 있는데 | 해상자 이양필 461
13 분방한 기질을 중후하게 | 호고재 김낙서 463
14 위항문인들의 기개 | 송석원 천수경 468
15 서당에 가지 마라 | 이이엄 장혼 472
16 아버지가 남긴 시를 찾아 | 연소 지덕귀 475
17 열 가지 장점 | 추재 조수삼 477
18 토굴에서 들리는 낭랑한 글 소리 | 수리 왕태 480
19 마음속 정원을 노래하다 | 송월헌 임득명 483
20 『시종詩宗』 간행을 기념하여 | 경재 이경연 486
21 『훈자유의』와 『운해』 | 약고 태화 493
22 나이 육십에 『주역』에 심취 | 노인 전문조 496

권7 문학 III
1 고난 속에 신의를 지키다 | 존재 박윤묵 500
2 스무 살 아버지의 자화상 | 백취 방효일 504
3 『천자문』을 하루 만에 | 정광윤 505
4 의술과 시를 임금에게 | 대산 오창렬 506
5 왕세정과 이반룡을 좋아하다 | 벽산 정민수 508
6 성서시사城西詩社의 창도자 | 소재 김양원 512
7 패관소설에 통달하다 | 이자상 514
8 섬돌 위에서 배운 큰 공부 | 박돌몽 515
9 터득하지 못하면 그치지 않아 | 죽원 유한렴 519
10 가르침이 있으면 사람의 종류 따로 없나니 | 국은 박기열 521
11 의리를 실천한 김낙서의 아들 | 소은 김희령 524
12 폐지더미에서 한유韓愈를 만나다 | 치재 박기연 527
13 추사 김정희의 삼십 년 친구 | 묵재 유정주 528
14 『풍요삼선』 편찬을 주도하다 | 감재 최경흠 531
15 직하시사를 주도한 박영석의 손자 | 박응모 533
16 추사 김정희도 길들이지 못한 기인 | 하원 정지윤 536
17 널리 이롭게 하고 떠난 사람 | 두은 고진원 540
18 앞사람이 말한 것은 답습하지 않다 | 사포 유기 542
19 익종의 지우를 입다 | 각감 이동신 545
20 정수동과 이름을 나란히 | 희암 현기 547

권8 서화
1 문장도 뛰어났던 제일의 명필 | 석봉 한호 550
2 한석봉과 이름을 나란히 | 북악 이해룡 556
3 서른여덟 가지 전서체 | 학관 김진흥 557
4 홀로 진체晉體를 이루다 | 정곡 이수장 558
5 청 옹정제가 감탄한 글씨 | 만향재 엄한붕 561
6 『원교서결』로 가르치다| 동추 신의칙·자 야급 563
7 글씨로 정조의 지우를 입다 | 자정재 김학성 565
8 초서와 해서에 독보적 존재 | 우천 김성후 566
9 신지도에 들어가 이광사를 사사하다 | 사관 이명예·자 의중, 의겸 567
10 동국 명필 | 눌인 조광진 568
11 해와 달의 운행을 계산하다 | 김제원 571
12 형제 명필 | 김취성·제 취영 573
13 중국 사신이 찬탄한 대나무 그림 | 현동 안견 574
14 덕종의 초상화를 그리다 | 별제 최경·안귀생 576
15 대대로 어진을 그린 집안 | 화사 이상좌·자 숭효, 흥효·손 정 577
16 주량을 채워야 붓을 들다 | 화사 김명국 579
17 정조가 사랑한 화가 | 단원 김홍도·자 양기 582
18 천하 명인은 천하 명산에서 죽어야 | 호생관 최북 584
19 강세황보다 난을 더 잘 친 역관 | 수월 임희지 588
20 지두화의 오묘한 깊고 얕음 | 장생 591
21 돌을 사랑한 노인 | 석당 이유신 592
22 일본에서도 인기 높은 화가 | 소당 이재관 593
23 숨을 내뿜으면 난초의 향기가 | 단계 김영면 595
24 유묵을 거둔 어진 아들 있으니 | 불염자 김희성 596
25 어찌 역적을 그릴 수 있겠는가 | 화사 진재해 597
26 단원 김홍도의 맞수 | 복헌 김응환·손 화종 599
27 한 조각 종이에 천 리의 기세가 | 고송류수관 이인문 600
28 임금이 인정한 화가 삼부자 | 긍재 김득신·자 건종, 하종 601
29 물고기와 게를 잘 그리다 | 화사 장한종·자 준량 602
30 문방도병풍의 명수 | 화사 이윤민·자 형록 603
31 옛 그림 속 인물을 닮은 화가 | 고람 전기 604
32 그리지 못한 가슴속 그림 | 화사 김시 605
33 대동여지도를 만들다 | 고산자 김정호 607

권9 의학 잡예
1 호랑이의 답례품 주천석 | 태의 양예수 610
2 동의보감을 편찬하다 | 태의 허준 612
3 증세가 변하면 약도 바꾼다 | 의사 안덕수 613
4 숙종 임금의 마마 치료 | 지사 유상 614
5 침술 신의神醫 | 태의 백광현 618
6 백호탕을 쓸 수 있는 용기 | 의원 이익성 621
7 글을 모르는 신의 | 의원 김응립 624
8 곽향정기산 세 첩을 복용하시오 | 노학구 626
9 웅담고 | 의원 피재길 631
10 원리침과 삼릉침 | 신침의 633
11 정조의 치질을 치료 | 종의 의동 635
12 격물치지로 의학을 터득하다 | 의원 최운·손 륜·증손 종진 638
13 장경악에게서 깨닫다 | 동추 이희복 640
14 별난 의술 | 의원 송학천 642
15 만 명의 목숨을 살리리라 | 의사 조광일 643
16 바둑의 일인자 | 국기 김종귀 645
17 바둑계의 군자 | 국기 김한흥 648
18 새 악보를 유행시키다 | 금사 김성기 649
19 임진왜란을 예언하다 | 남사고 652
20 아들을 살린 점쟁이| 홍계관 654
21 백번 점치면 한 번의 실수도 없다 | 유운태 655

권10 승려·도가류
1 전우치가 형님으로 모신 장도령 | 장도령 658
2 나이를 알 수 없는 책장수 | 조생 665
3 장을 씻는 신선 | 신선 김가기 669
4 토정 이지함을 살린 이인 | 동해거사 672
5 이곳에서 밤을 지내서는 안 됩니다 | 벽란 노인 674
6 금강산에서 서로 만나세 | 신두병 676
7 물맛 감별의 신선 | 수선 678
8 홑베적삼으로 한겨울을 나다 | 문유채 681
9 술병 하나와 파초 한 잎 | 유생 684
10 내외금단결을 짓다 | 이생 686
11 묘향산의 김신선 | 김세휴 687
12 유불도에 통달한 승려 | 휴정 689
13 국서를 받들고 일본에 가다 | 유정 691
14 육조六祖가 서로 전한 염화미소 | 언기 692
15 오뚝하게 30년 앉아 성불하다 | 희언 693
16 진무鎭撫의 목숨을 구해주다 | 수일 696
17 붓을 잡고 새로 시 한 수를 | 처능 700
18 판서가 승려의 시집에 서문을 | 돈인 703
19 금강경에 대한 논쟁 | 율봉 704
20 소금과 장을 먹으면 정신을 모을 수 없다 | 안경창 705
21 제사상에 어육을 올리지 마라 | 노인 장상현 707
22 불경을 보지 않은 것이 없다 | 처사 김리경 708
23 담배 몇천 근을 불태우다 | 권생 709
24 골짜기를 밭으로 일군 승려 | 덕천 납자 711
25 권왕가를 짓다 | 성기 713

원문 716
인용서목 해설 866
표제 인명 찾아보기 901
찾아보기 907
각 권별 번역자 955

 

미리보기

학고당 백윤구는 자가 이맹이다. 효도와 우애가 타고난 천성이어서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한 정성으로극진히 하였다. 예학에 조예가 깊어 상례와 제례를 반드시 옛사람의 법도에 합치되게 하였다.김퇴정재,박만취정과 친하여 끊임없이 오가며 연구하고 탁마함이 많았다. _118쪽

 

존재 박군은 나보다 한 살이 적다. 열여섯 살 때부터 나와 글공부를 함께 한 지 삼십년이 되었다. 내가 가화를 만나 깊은 산으로 도망해 숨은 지 팔 년 동안, 한때 내 문정에 드나들던 사람이 모두 팔을 흔들며 돌아보지 않았으나, 군만은 홀로 앞장서서 위로하고 보호하며 따뜻이 돌봐줌이 예전보다 배나 더하였다. _500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유재건

자는 덕초德初, 호는 겸산兼山, 본관은 강릉江陵. 규장각 서리로 근무하며 『열성어제列聖御製』를 편찬한 공로로 왕의 은전을 받았고, 고종 때는 상호군上護軍의 직함을 받기도 했다. 시문에 능했으며, 특히 전서와 해서에 뛰어나 규장각에 오랫동안 보직되었다. 1857년(철종 8) 최경흠崔景欽과 더불어 『풍요삼선風謠三選』을 패냈으며, 또한 『고금영물근체古今詠物近體』를 펴냈는데, 여기에는 7000수가 넘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벽사 이우성 선생과 젊은 제자들이 모여 우리의 한문 고전을 정독하고 연구하는 모임이다. 1993년부터 매주 한 차례씩 독회를 열어 고전을 강독해왔고, 그 결과물의 일부를 《이향견문록》《조희룡 전집》《변영만 전집》《완역 이옥 전집》 등으로 정리해 출간하였다. 고전 텍스트의 정독이야말로 인문학의 기초이자 출발점임을 명심하여 회원들은 이 모임의 의미를 각별히 여기고 있다.

· 이우성 대한민국학술원 회원·퇴계학연구원 원장
· 김용태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김종민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박사과정
· 김진균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
· 신익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 손혜리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 윤세순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연구교수
· 이신영 한국고전번역원 전문 역자
· 이현우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연구교수
· 장유정 세명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강사
· 최영옥 재단법인 실시학사 연구원
· 한영규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
· 한재표 세명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