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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이 버린 여인들 實錄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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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사와 관련된 책들은 대개 왕비와 후궁을 다루는 ‘왕실 엿보기’와 일탈적 삶의 표상으로 분류되는 ‘기생 이야기’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두 흐름 뒤에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같은 현모양처 이야기들이 뒤따른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사회의 상층부에 위치한, 관련 기록이 풍부한 여성들을 다뤘다는 점이다.
반면 사회의 밑바닥에서 힘들게 살아간 여성들에 대한 책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계집종, 천첩, 무녀, 비구니 등으로 나뉘는 하층민 여성들의 일반적인 삶의 형태를 우리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 개개인이 사회와 갈등하고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내밀한 개인사에 대한 지식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즉,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모두 한 번씩 왕의 입장에서, 양반의 입장에서, 그도 아니면 남성의 입장에서 역사를 생각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여성들에게조차 핍박받아야 했던 천한 여성의 자리에서 역사를 생각하고 조선시대를 느껴본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조선이 버린 여인들』은 하층민 여성들 개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그들이 각자 주인공이 되어 33건의 흥미로운 사건이 재구성되어 펼쳐지는 최초의 단행본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엽기적인 사건과 잔인한 비극
그 외에 이 책엔 수많은 남자들이 거쳐가는 기생들의 고단한 삶이 홍행紅杏, 초요갱礎腰?, 연경비燕輕飛, 재춘再春 등의 사례를 통해 소개된다. 기생들의 삶은 자못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성종 대 기생인 홍행은 청풍군 이원李源을 거쳐 당대의 풍류남인 김칭金?과 동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원이 술이 취해 김칭의 집으로 홍행을 찾아왔고, 집 앞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홍행은 김칭을 도운다고 이원이 꼼짝 못하게 끌어안았고 그사이 김칭은 이원의 손을 물어뜯었다. 이 사건으로 세 사람은 조정에 불려가 벌을 받는다. 문제는 홍행이 오늘날로 따지자면 이 사건의 부장검사쯤 되는 사헌부 대사헌 김승경과 나중에 눈이 맞아 동거하고 애까지 낳았다는 소문이 왕에게 보고되면서 김승경이 곤욕을 치른다는 점이다. 이때 홍행의 아이가 김승경의 아이인지 아닌지를 두고 조정에서 대대적인 논의가 벌어지지만 친자감식을 위한 과학적인 도구가 없었던 당시로서는 판결이 명확하게 나지 않았다.
그 외에 이 책에는 남성적인 외모로 왕비의 사랑을 받아 결국 죽음을 맞아야 했던 여인 소쌍, 결혼 문제로 아들과 다투다 결국 아들의 손에 비참하게 살인되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마치 사건의 첫 목격자처럼 관아에 신고한 아들이 결국 범인으로 밝혀지는 아강지 , 내시와 사랑에 빠졌다가 풀려나왔으나 다시 어미와 다퉈 머리채를 잡았다는 이유로 교형에 처해진 강덕, 연적과 모의해 또 다른 연적을 살해했으나, 남자를 감싸고 자신만 능지처참당한 비구니 정인 등 엽기적인 사건들이 잇따른다.
1 판관에게 강간당한 사노비 무심 15
2 비단 사기꾼 일당에게 살해된 백이 23
3 꿈에 남자를 봤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고읍지 32
깊이읽기 – 조선의 형벌 제도와 노비
노비는 움직이기만 해도 잡아넣었다 46
4 상중에 아이를 낳은 옥루아 52
5 배다른 남매를 결혼시키려 한 소근 60
6 홍행, 꽃의 고단함이 여기에 있다 68
깊이읽기 – 기생들의 남성관과 현실 인식
“돈 많은 남자가 으뜸이라” 80
7 여장 남자를 사랑한 비구니 중비 84
8 두 남자 사이에서 억울하게 죽은 근비 93
9 다섯 번 버림받은 아름다운 연경비 103
깊이읽기 – 관아를 이탈한 기생들
도망간 기생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 112
10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 아강지 116
11 세 명의 왕자에게 사랑받은 초요갱 123
12 아들의 아비를 밝혀야만 했던 재춘 131
13 음흉한 중의 아이를 밴 과부 연비 138
깊이읽기 – 여성에 대한 봉쇄는 어떻게 이뤄졌는가
남성의 집단 이기주의와 성리학적 윤리 146
14 재산 다툼에서 매 맞아 죽은 서가이 152
15 아들에게 청부살인을 시킨 흔비 160
16 간부를 보호하고 능지처참 당한 정인 170
17 첩의 몸으로 궁녀가 되려 했던 각신 179
18 두 재상이 목숨 걸고 다퉜던 철비 187
19 두 남자와 동시에 간통한 동백 195
20 판서의 비호를 받은 무녀 진주 202
21 남편을 조롱하고 본처를 학대한 첩 경비 211
깊이읽기 – 강상 윤리란 무엇인가
신분질서 확립 위한 건국 엘리트들의 고뇌 216
22 난봉꾼의 첩으로 살아야 했던 소근소사 222
23 주지와 주지의 간통, 비구니 해민 228
24 아들에게 간통 현장을 들켜버린 강덕 238
25 호적에 종으로 올려진 첩의 딸 사덕 247
26 아내의 계집종에서 남편의 첩이 된 약비 256
깊이읽기 – 조선 양반들의 은밀한 뒷거래
선물 받아 일가친척에 첩까지 먹고살아 262
27 공주의 남편에게 강간당한 가섭 266
28 집을 빼앗으려는 남편을 고소한 경이 274
깊이읽기 – 양반들의 노비 재산 침탈 실태
지방관의 보호 아래 빼앗고 되팔아 차익 챙겨 284
29 본처의 학대로 살해당할 뻔한 덕금 290
30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간통한 여인 파독 297
31 태자를 폐위시킨 미모의 여인 어리 308
32 여자가 사랑한 여자 소쌍 318
33 간통한 남자를 잔인하게 죽인 막비 328
깊이읽기 – 족보의 정치학
부끄러운 조상들의 흔적 없애기 338
에필로그 –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여성을 이해하는 것 343
참고문헌 350
옥루아는 결국 시골로 쫓겨났다. 고향으로 간 다음 관에 소속되어 새끼를 삼든지 얼음을 나르든지 서울로 올려낼 생선을 다듬든지 웬만한 잡일을 다 떠맡아야 했다. 옥루아가 떠나는 날은 겨울이었다. 고향이 울주군이었기에 따뜻한 남쪽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평생 노래로 남자에게 의지하며 산 그녀에게 강제 노역의 미래는 너무나 암울했다. _58쪽
연비의 삶은 계속했다. 그러던 중 아이를 낳았다. 과부인 그녀가 아이를 낳자 축하하는 살마도, 금줄을 달아주는 친정어머니도 없었다. 오히려 손가락질만 받았다. _139쪽
지은이
손경희
경남 밀양 출생으로, 현재 계명인문역량강화사업단(CORE)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이 버린 여인들』(2008, 글항아리), 『왜 조선시기에는 양반과 노비가 있었을까』(2011, ㈜ 자음과 모음), 『왜 신여성은 구여성과 다른 삶을 살았을까』(2012,(주) 자음과 모음), 『공주』(2013, 꿈꾸는 달팽이), 『한국 근대 수리조합 연구』(2015, 선인)가 있다. 공저로는 『한국사』(2014, 경북대출판부), 『달성군지: 달성을 되짚다』(2014, 달성문화재단), 『달성군지: 달성에 살다』(2014, 달성문화재단), 『국사편찬위원회수집 지역사 자료 편람』(2016, 국사편찬위원회) 등이 있다. 논문으로 『일제시기 경북 경산군의 이주일본인 증가와 농업경영』, 『역사와 경계』 100(2016), 『일제시기 경산수리조합의 설립과 운영』, 『대구사학』 129(2017)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