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 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는가[절판]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비판
  • 지은이 | 슬라보예 지젝
  • 옮긴이 | 김영선
  • 발행일 | 2016년 01월 29일
  • 쪽   수 | 124p
  • 책   값 | 9,000 원
  • 판   형 | 130*210
  • ISBN  | 9788967352943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생각하라, 질문하라, 행동하라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길을 잃게 될 것이고, 또 길을 잃어도 싸다.”
하이데거의 나치 가담에서부터 그리스 국민투표까지,
지금 우리 눈앞에 놓인 문제들에 대해 말하다
“오늘날 정치적 열정은 왜 극단주의자의 몫이 되었는가?”

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는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마르틴 하이데거는 나치에 동조했다.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당혹스러운 침묵, 혹은 행보. 하지만 이 사실은 서서히 잊히고 있었다.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 한들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나지 않았던가.
하이데거의 나치 지지에 대한 논쟁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2014년 봄에 출간된 [검은 노트Schwarze Hefte]가 그것이다. [검은 노트]란 1931년부터 하이데거 자신의 내면적 성찰을 담은 수기手記로, 출간 즉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곧 쏟아져나온 것은 거부 반응과 혐오감이 뒤섞인 서평들이었다. [검은 노트]는 하이데거 사상의 핵심인 반유대주의를 드러낸다, [검은 노트]는 하이데거가 순진한 나치주의자가 아닌 심각한 반유대주의자였음을 암시한다, 등등. 특히 [뉴욕 북 리뷰]에 실린 피터 고든의 서평 중 한 대목이 압도적이다. “철학은 하이데거를 지혜롭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하이데거가 여기저기서 반유대적이고 나치에 동조하는 말을 발언한 데서 그의 사상의 ‘숨겨진 진실’을 보는 것, 그가 ‘내심으로는 나치당원’이었다는 증거를 보는 것, 혹은 (에마뉘엘 파예가 쓴 책의 부제를 인용해) 그의 이름이 그야말로 ‘철학으로 들어온 나치즘’을 직접적으로 상징한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지젝은 하이데거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판단을 유보하는 것에 가깝다. 즉각 쏟아져나온 서평들이 보여주듯이 하이데거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범죄화하는 것, 학술 문헌 목록에서 그를 완전히 배제해버리는 것은 쉽다. 그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을 외면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문제 자체를 봉합해버린다.
여섯 편의 글을 가로지르는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나 쉬운 해결책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이데거를 축출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그토록 비상하고 진정성 있는 철학자가 어떻게 나치에 가담할 수 있었”는지, 인간 존재를 탐구했던 철학자가 어떻게 유대인 절멸에는 찬성할 수 있었는지 물어야 한다. 하이데거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블랑쇼는 한때 굉장한 극우파였으며, 독일 지성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93인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 담긴 내용은 반전反戰이 아니라 전쟁 지지였다. 그들 모두를 범죄화하고, 그들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그들의 저작을 잊을 것인가? 그것이 해결책인가? 문제는 표면에 드러난 것보다 더 복잡하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덫

가령 난민들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들은 어째서 유럽을 향해 오는가? 그들에게는 왜 집이 없는가? 그들은 어쩌다 난민이 되었는가…….
마지막 물음은 결정적이다. “리비아가 혼란에 빠진 것은 유럽이 개입한 탓이었다. ISIS가 부상하도록 상황을 조성한 것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남부의 기독교도와 북부의 이슬람교도 사이에 계속되고 있는 내전은 단순히 종족 간 증오가 폭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북부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촉발되었다.”
현재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터키와 그리스,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궁극적으로는 북유럽)을 향해 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따뜻하고 안락한 쉼터가 아니다. 값싸고 불안정한 일자리, 이마저도 빼앗긴 지역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이다. 난민들은 전 지구적 경제의 대가다. 새로운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독일을 보라. 이미 “난민 출입금지” 팻말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구멍 뚫린 벽, 밀려드는 외국인들의 위협이라는 논제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분명히 내재하며,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허위를 보여주는 지표다. 다시 말해서 난민이 생겨나는 궁극적인 원인은 오늘날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 자체와 그것이 벌이는 지정학적 게임이다. 문제는 그들을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가,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 즉 우리가 얼마나 관용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우리는 상황을 도덕화하는 불평(“유럽은 동정심을 잃었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다” 등등)을 멈춰야 한다. 단순한 관용 너머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 문제가 그리스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듯, 난민 문제 역시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젝의 파란 잉크

하지만 이는 너무나 원론적인 말, 너무나 이상적인 말이 아닐까? 이 모든 게 유토피아는 아닐까? “어쩌면. 하지만 우리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로 길을 잃게 될 것이고, 또 길을 잃어도 싸다.”
지젝 스스로도 “어쩌면”이라고 수긍한 이 말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유토피아란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니 그저 흘려보낼까.
여기서 우리는 꼭 1년 전에 출간된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글항아리, 2015)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지젝은 2015년 1월에 있었던 샤를리 에브도 사태를 중심으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고찰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서구사회의 질서와 이슬람 근본주의 간 갈등은 이슬람 내부의 모순에서 오는 것이며, 그 모순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전근대적이기보다 도착적 근대화의 한 형태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지젝이 얼마나 도발적인 의문을 제기했는가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이슬람보다 서구에 더 가까운 생활 방식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은 서구사회에 속한 곳이 아니며 이슬람사회에 속한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로부터 오는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도 ‘나는 샤를리다’라는 문구가 빠르게 퍼져나갔고, 많은 이가 애도 물결에 동참했으며, 각종 이슬람 관련 서적이 출간됐다. 그리고 두 사람이 IS로 들어가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깨달음이다. 난민 문제가, 중국의 자본주의(적 사회주의) 발전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 세계를 보라. 상품들은 마치 전 세계가 한 나라라는 듯이 자유롭게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아니다.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여권이, 비자가, 혹은 세계 최악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에서 왔다는 난민증이 필요하다. 이제 여섯 편의 글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들이 가리키고 있는 각기 다른 주제, 이를테면 ‘자기 자신과의 결혼’이라는 발상, 적극적인 동의 프로젝트, 유럽을 향해 가는 난민 등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것인가.

목차

서문_지젝의 파란 잉크
1장│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는가
2장│정치적 올바름의 덫
3장│노르웨이는 있고 노르웨이는 없다
4장│중국의 자본주의적 사회주의
5장│그리스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
6장│그리스의 대재앙: 베르사유 조약인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인가?

미리보기

우리 시대의 이념적 회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징후는 새로운 유럽 우파가 두 “극단주의”,즉 극우파와 극좌파에 대해 좀더 “균형 잡힌” 관점을 요청한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극우파(패배한 파시즘과 나치즘)를 대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극좌파(공산주의)를 대해야 한다는 말이 거듭 들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새로운 “균형”은 지극히 불균형하다.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동일시는 일련의 주장들에서 알 수 있다시피 파시즘에 은밀히 면책특권을 준다.

_「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는가」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현대 철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꼽힌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태어나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파리8 대학교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컬럼비아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파리8 대학교, 런던 대학교 등 대서양을 넘나들며 세계 주요 대학에서 강의했다. 2017년 현재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냐 대학교 사회학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급진적 정치이론, 정신분석학, 현대철학에서의 독창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꿰어내며 전방위적 지평의 사유를 전개하는 독보적인 철학자다.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과 그와 대비되는 독특한 유머 감각 때문에 언론에서는 “문화 이론의 엘비스 프레슬리” “지적인 록스타”라고 불린다. 스스로 “정통적인 라캉주의적 스탈린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며, 사그라진 ‘혁명’에 대한 논의에 끊임없이 불을 붙이고 있다.

라캉과 마르크스에 대한 저자만의 관점을 담아내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첫 책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시작으로『신을 붙쾌하게 만드는 생각들』『새로운 계급투쟁』『매트릭스로 철학하기』(공저) 등 다수의 저작을 펴냈으며, 단순한 지식인이나 학자라기보다는 실천하는 이론가로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옮긴이

김영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를 수료했다. 출판편집자, 양육자를 거쳐 현재는 전문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 《자동화된 불평등》, 《투 더 레터》, 《망각의 기술》, 《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 는가》, 《부모인문학》, 《지능의 사생활》,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괴짜사회학》, 《왼쪽-오른 쪽의 서양미술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