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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데이[절판]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 지은이 | 앤터니 비버
  • 옮긴이 | 김병순
  • 발행일 | 2011년 12월 12일
  • 쪽   수 | 872p
  • 책   값 | 36,000 원
  • 판   형 | 160*230
  • ISBN  | 9788993905816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추천의 글
책소개

세계 전쟁사는 디데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영광과 상흔에 대한 보고서의 결정판

– 오늘의 세계를 있게 한 지상 최대의 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 6개국 30종이 넘는 방대한 양의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전투 장면들과 민간의 피해 상황
– 전쟁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핍진한 묘사와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
– [밴드 오브 브라더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작전명 발키리] 그리고 개봉을 앞둔 [마이웨이]의 배경이 된 역사적 실제를 다룬 전쟁 다큐
– 이해관계 얽힌 각국 수장뿐 아니라 희생된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전쟁의 이중성에 주목
– 연합군과 독일군의 교전과 대치 상황을 그대로 옮긴 19장의 지도와 42장의 사진 수록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연합군의 독일군 격퇴에 최대 분수령이 되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생생하게 재현한 역사서 [디데이](원제 D-Day). 전직 군인 출신의 탁월한 전쟁사학자 앤터니 비버가 방대한 양의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추적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핍진한 실상이 독자를 긴박한 전장으로 안내한다. 각 군 진영의 교전 상황을 번갈아 조망한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는 전쟁의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딱딱한 논픽션의 한계를 뛰어넘는 흡입력으로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해관계로 얽힌 각국 수장들의 암투와 갈등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되는 가운데, 영웅을 앞세운 거대 서사가 간과하기 십상인 ‘역사 속 개인’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인 저자의 공력은 밀리터리 마니아뿐 아니라 역사에 관심 있는 이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곳곳에 배치되어 전쟁의 추이를 보여주는 지도와 사진은 보다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거대한 스케일을 압도하는 디테일의 드라마
[디데이]는 블록버스터다. 그럼에도 전시의 비참한 실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드러내는 디테일로 완성한 드라마라는 점이 [디데이]의 최대 강점이다. 이는 46쪽에 달하는 주석의 출처가 6개국에서 수집한 30종 이상의 참고문헌이라는 사실을 통해 넉넉히 입증된다. 연합군의 승전보와 비례해 더욱 잔인해져가는 독일군의 보복, 해방이라는 선물과 함께 시작된 비정한 부역자 색출 과정 그리고 그러한 혼란상에서도 피어나는 로맨스와 휴머니즘… 이러한 파노라마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시도는 소수의 영웅과 결과 중심의 역사 서술이 은폐하는 전쟁의 본질과 진실에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더불어 지루한 암기과목으로서의 역사가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감동하는 삶의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재탄생한다. 이것이 [디데이]의 디테일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디데이 1944년 6월 6일. 작전명 오버로드(Overlord).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작전명은 오버로드였다. 나치 독일의 손아귀에 들어간 유럽 대륙을 해방시켜 오버로드(‘옛 지배자’라는 뜻의 영단어)에게 되돌려 주기 위한 계획이라는 뜻일 터. 스탈린은 처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버로드 작전에 대해 “전 세계의 전쟁사에서 지금까지 이러한 작전은 시도된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썼다. 12개국에서 파견된 5000대의 함정과 11개국 소속의 70개 비행 중대, 제1차 선봉부대만 13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이 영국해협을 건너는 이 대대적인 공습은 연합군에 제2전선 개시를 강력하게 요청하던 스탈린조차도 성공을 반신반의할 정도로 전쟁사상 최대 규모의 작전이자 일면 무모한 시도였다. 당시 동부전선에서 독일군과 대치하던 소련은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등지에서 독일군과 맞서고 있던 미?영 연합군에 제2전선 즉, 서부전선을 개시하여 협공할 것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이에 대한 연합군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의 응답이 작전명 오버로드로 명명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던 것이며, 승리를 위해 이미 5월 22일부터 독일군 암호 해독을 위한 최첨단 도청장치인 ‘얼트라’라는 새로운 감치 체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었다. 또한 연합군은 독일군을 상대로 철저한 기만술을 진행 중이었다. 그중 포티튜드 작전은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야심만만하게 기획된 기만술로, 마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영국 본토에서 가장 가까운 프랑스 북부 해안 지역인 파드칼레에 주둔한 독일군 예비 병력을 유인하기 위한 속임수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독일군의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초 연합군이 정한 디데이는 1944년 6월 5일 월요일이었다. 하지만 기상상황이 악화하자 아이젠하워는 하루 뒤인 6월 6일을 디데이로 삼는다. 디데이 변경 과정은 제1장 ‘결정’에서 드라마틱하게 소개되는데, 역사적 사건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저자의 솜씨가 그대로 드러난다.

 

전쟁의 스펙터클은 참혹한 민간 피해의 다른 이름
오마하, 유타, 골드, 주노, 소드 해변 상륙을 시작으로 8월 25일 파리 해방까지, 연합군과 독일군 양측은 승리를 위해 민간인의 희생을 담보로 크고 작은 전쟁의 스펙터클을 양산해 냈다. 그 대표적인 예가 7월 7일 칼바도스의 주도 캉을 향한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 노르망디에서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생긴 원성을 가라앉히기 위해 영국군의 수장 몽고메리는 캉을 향해 정면 승부를 걸어야 했다. 물론 미군의 아이젠하워도 전폭적으로 지지한 이 공습은 캉 북부 외곽의 독일군 방어진지에 시한폭탄을 투하해 캉을 점령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어떤 장교는 ‘장엄한 광경’이라 불렀고 또 다른 병사는 정말 끔찍한 광경이라고 기억한 이 공습은 엉뚱하게도 캉의 외곽이 아니라 도심에 집중됐다. 진격을 기다리고 있던 영국군 부대에 오폭할 것이 두려웠던 영국 공군이 2300톤에 달하는 폭탄 투하 위치를 남쪽으로 조정해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캉에 남아있던 무고한 주민 상당수가 희생되었고, 도시 전체를 파편 덩어리로 만들어 오히려 독일군이 방어하기 좋은 지형으로 만들어준 셈이 되었다. 후에 한 노인은 캉 공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가 대항 축구 시합을 하고 있는데 축구공 안에 생쥐 한 마리가 들어 있다고 생각해보시오. 그 생쥐가 얼마나 녹초가 되었을지 상상할 수 있겠소?”

 

‘정치와 군사는 분리될 수 없었다.’
처칠은 스탈린의 소련군이 유럽의 중부 지역을 점령할까봐 두려워했다. 반면 자신이 제안한 국제연합(UN) 조직을 기반으로 한 세계 평화 체제 구축을 희망했던 루스벨트는 스탈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랐다. 한편 처칠과 루스벨트는 드골의 정부를 프랑스의 공식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드골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프랑스 내에서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누구보다 먼저 파리에 입성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상징적 행위’였던 프랑스군에게는 특히나 저자가 지적하듯이 ‘정치와 군사는 분리될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간 연합군에 힘을 실어주었던 레지스탕스가 해방을 맞은 파리에서 봉기를 일으키면 공산주의자들이 그 성과를 가로챌 것이며, 그리하여 내전이 일어나면 미군정이 강제로 시행돼 점령군만 바뀌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 드골의 ‘애국적 이기심’은 종종 돌발행동으로 이어져 연합군 지휘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각국 수장들은 이처럼 ‘동상이몽’의 불편한 동거 중이었다. 여기에 더해 ‘해방구’ 파리의 혼돈을 새로운 혁명의 동력을 삼고자 하는 세력도 존재했다. 공산주의자들이 이끄는 전투적인 프랑스 빨치산 FTP는 프랑스의 귀족들과 부르주아 계급이 모두 나치의 부역자들이라고 선전했다.
한편 독일군 내부에서도 거대한 음모가 은밀히 진행 중이었다. 제20장에서 다루는 히틀러 암살 음모가 그것이다. 자신이 보려는 것만 보는 히틀러의 맹목적인 자기 확신과 아집은 한때 그를 추종했던 세력들까지 돌려세우고 말았다. 히틀러의 총애를 받았으며,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사막의 여우’라는 별칭을 얻은 로멜까지도 히틀러에게 반기를 들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음모를 꾸미고 있던 사람들 중 누구도 자신들의 봉기가 서방 연합군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패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쿠데타에 성공한 후 그들은 연합군과 협상해 오스트리아 합병 체제를 유지시키며 제2독일제국을 복원하려고 했다. 이와 같은 제안은 서방 연합군에게도, 독일 국민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구상이었다.

 

폐허의 기록에서 복원한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 다큐
저자는 몇몇 영웅 위주의 거대 서사가 주는 유혹에서 한발 물러나 사건을 구성한다. 오히려 지휘관들의 무책임과 판단 착오를 강조한다. 모니터함을 통해 함포 발사하는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간 처칠은 ‘위험한 유희’를 즐기기 위해 전함에 승선하려고 고집을 부렸으며 독일군 기갑부대를 한곳에 묶어두기 위한 굿우드 작전은 고위 지휘관의 안일한 태도와 판단 착오로 무려 5537명의 사상자를 냈다. 공명심이 대단한 한 지휘관은 불필요한 사상자를 내면서 전투를 이어가는 이유를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모든 사람들이 기억할 것은 이름이기 때문이지요.”
옮긴이가 밝히듯이 앤터니 비버의 [디데이]는 ‘공식적인 전쟁사에서 그저 숫자로만 표시되는 전쟁의 희생자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부활시켜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오늘날 다시 생생하게 재현’하며 ‘그것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을 새삼 되새기게 만든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희생자들의 가려졌던 목소리는 전쟁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다음의 인용문이 열 마디 부연을 부질없는 것으로 만든다.

서로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말싸움을 멈추고 독일군이 자기 약혼녀의 스냅 사진을 보여주었다. 중위는 자기 아내의 사진을 보여주며 서로 공감대를 만들었다. 그들은 바로 30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이려고 했던 사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로 자기 자신을 떼놓고 생각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군인으로서의 직분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대포를 쏘고 나서 프랑스 주민들이 멀리 도망가 있기를 신에게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 영국군 제30군단 소속의 한 포병장교

‘서부에서의 전투가 이제 시작되었어요. …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버리고 지내는 법을 배웠어요. 우리는 주어진 운명을 달갑게 받아들였어요.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마음속으로 동경하는 것들을 놓지 않으려고 해요. 그것들은 우리의 신념과 인내를 지탱해주죠. 하지만 당장이라도 옆에서 폭탄이 터지면 우리 생명은 영원한 무의 세계로 사라져버릴 거예요. 우린 지금 전투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어요.’
– 독일군 제2기갑사단의 한 부사관이 집에 보낸 편지에서

목차

1. 결정
2. 로랭의 십자가를 품고
3. 해협을 바라보다
4. 침공 지역의 봉쇄
5. 공습
6. 함대, 해협을 건너다
7. 오마하 해변
8. 유타 해변과 공수부대
9. 골드 해변과 주노 해변
10. 소드 해변
11. 해변교두보 확보
12. 캉 탈환의 실패
13. 빌레르보카주
14. 코탕탱 반도의 미군
15. 엡섬 작전
16. 보카주 전투
17. 캉과 골고다 언덕
18. 생로를 탈환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
19. 굿우드 작전
20. 히틀러 암살 음모
21. 코브라 작전-방어선 돌파
22. 코브라 작전-포위 돌파
23. 브르타뉴와 블루코트 작전
24. 모르탱 역습
25. 토털라이즈 작전
26. 망치와 모루
27. 죽음의 땅, 팔레즈 협곡
28. 파리 봉기와 센 강을 향한 질주
29. 파리 해방
30. 전쟁의 여파

 

주석 약어 설명
주석
사진과 지도 목록
참고문헌
찾아보기(인명)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미리보기

오마하 해변의 서쪽으로 상륙한 제116보병연대 소속의 한 병사는 ‘배의 출구가 열리자 우리를 향해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왔다’고 썼다. ‘내 바로 앞에 있던 분대장 3명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이 총에 맞았다. 일부는 배 옆으로 기어올라왔다. 해군 2명도 총에 맞았다. 발목 높이밖에 차오르지 않는 바닷물 속으로 뛰어내려 앞으로 달려나가자 갑자기 물이 엉덩이 높이까지 올라왔다. 몸을 수그리고 기어서 해안에 설치된 강철 장애물 뒤에 숨었다. 총알들이 날아왔지만 다행히도 배낭을 맞고 비껴갔다. 하지만 많은 동료 병사들이 총에 맞았다.

_179쪽

 

많은 미군 병사들은 프랑스에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 프랑스 사람들을 크게 의심했던 듯하다. 제29사단의 한 대위는 “프랑스는 적국과 다름없었다”라고 말했다. 프랑스를 다른 언어를 쓰는 또다른 나라라고 생각하는 병사는 많지 않았다. ‘적이 점령한 나라’와 ‘적국’을 구분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어떤 병사들은 “노르망디 주민들을 믿을 수 없다”고 대놓고 이야기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한 미군 전차 소대가 노르망디의 어느 농장에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다. 그곳의 농부가 사이다와 칼바도스 술을 들고 나타나자 모든 병사들이 한 모금씩 마셨다. 그 농부는 병사들이 다 마시고 나자 한 젊은 미군 중위에게 100프랑을 내라고 했다. 중위는 자신들이 프랑스를 해방시켰다고 말하며 이에 항의했다. 그러자 농부는 “아니 뭘 그깟 걸 가지고 불평하시오? 독일군에게 팔 때보다 싸게 파는 건데”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_276쪽

 

어쨌든 바이외에서 군중이 드골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은 특히 드골이 곧바로 자신의 정부를 세우려고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처칠은 드골이 프랑스를 방문하기에 앞서 프랑스 국민들과 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를 갖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방문을 허락했는데, 드골은 그 일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드골은 군청 밖에 급하게 마련된 연단 위에 올라가 군중에게 연설했다. 그는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에서 첫 번째로 해방된 바이외를 환영합니다”라는 선언으로 연설을 마쳤다. 드골이 선언한 정부가 임시 정부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_332-333쪽

 

제100후송병원 소속의 군의관인 한 대위는 석 달 반 동안 무려 6000회 넘게 수술을 집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난 부상자의 유형만 보고도 현재 아군이 진격하고 있는지 퇴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서로 대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해한 부상병이 누군지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 한편 제2후송병원의 방사선 검사 책임자는 부상자들 대부분이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인간에게 가장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이 전쟁에서 지상 최고의 자기희생과 극기, 이타심이 나타난다는 것은 실로 역설 중의 역설이다.’

_470쪽

 

에버바흐는 “동부와 서부전선 모두에서 엄청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우린 전쟁에서 졌습니다. 하지만 사능한 한 서방 연합군들에게 최대의 타격을 입혀 그들이 휴전을 하게 만들고 붉은 군대가 독일 국경을 돌파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로멜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히틀러가 우리의 지도자인 한 적들이 우리와 협상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에버바흐도 그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로멜이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현 상태로 그냥 놔둘 수는 없네. 히틀러는 사라져야 하네.”

_521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앤터니 비버 Antony Beevor
영국의 전쟁사학자이자 역사 저술가. 윈체스터 대학과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 1967~1970년 영국 제11경기병대 장교로 복무했다.
1975년 첫 소설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4편의 소설과 8권의 역사서를 출간했다. 치밀하고 객관적인 학자적 시각과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의 힘을 두루 갖춘 그의 역사 저술은 발표하는 책마다 찬사를 받았다. 스페인 내전 연구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스페인 내전》은 2005년 스페인에서 먼저 출간되어 12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켰으며, 같은 해 스페인 최고 권위의 ‘라 방과르디아 상(La Vanguardia Prize)’을 받았다. 스페인 내전 70돌인 2006년 봄, 영국과 미국을 비롯해 9개 나라에서 출간된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비버는 1941년 독일군의 크레타 침공을 다룬 《Crete》(1991)로 ‘런시맨 상’을 받았으며,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재조명한 《Stalingrad》(1998)는 ‘새뮤얼 존슨 상’과 ‘울프슨 역사상’, ‘호손든 상’ 등 권위 있는 상을 잇달아 받았다. 2002년에 출간한 《Berlin : The Downfall 1945》 역시 돌풍을 일으키며 전쟁사학자로서 비버의 역량을 확인해주었다. 1997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저술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999년에 영국왕립문학회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현재 런던 대학 버크벡 칼리지 교수로 있다.

 

옮긴이
김병순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주로 사회과학, 인문교양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빈곤자본』, 『21세기 시민혁명』,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양심 경제』, 『자본주의의 기원과 서양의 발흥』,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성장의 한계』, 『탐욕의 종말』, 『월드체인징』(공역), 『그라민은행 이야기』, 『경제인류학으로 본 세계 무역의 역사』,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 경제, 공정무역』, 『제자 간디, 스승으로 죽다』, 『인재 쇼크』, 『선을 위한 힘』, 『귀환』, 『젓가락』,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 『달팽이 안단테』, 『과학자의 관찰 노트』, 『디데이』,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여우처럼 걸어라』, 『사회·법체계로 본 근대과학사』, 『생명은 끝이 없는 길을 간다』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추천의 글

“비버는 홀로 군대 역사의 명성을 바꾼 사람으로 인정받을 만한다.”

_데이비드 에드거, 『가디언』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일반일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비버의 탁월한 능력을 토머스
매콜리, 토머스 칼라일과 같은 거장들이 이끌었던 영국 서사문학의 황금시대를 연상시킨다.”

_보이드 턴킨, 『인디펜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