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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전쟁의 나라 7백 년의 동업과 경쟁
  • 지은이 | 서영교
  • 옮긴이 |
  • 발행일 | 2007년 10월 30일
  • 쪽   수 | 432p
  • 책   값 | 15,000 원
  • 판   형 | 152*223
  • ISBN  | 9788954604185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고구려, 전쟁의 나라-7백년의 동업과 경쟁』은 제목처럼 7백년 고구려사를 전쟁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고구려전쟁사에 대한 개성적인 시각의 인문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가 전쟁의 나라라는 것은 일반의 상식이다. 요즘의 사극열풍 때문에 고구려는 ‘전쟁의 달인’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구려가 강성 한민족이라고 하기 전에, 왜 고구려라는 나라는 그렇게 박터지게 싸울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어볼 만하다. 고대의 전쟁은 거의 대부분 생존을 위한 전쟁이다. 이것은 고구려나 주변 유목민, 고구려 당시의 중국 5호16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고구려만큼 밥숟가락 들듯이 칼을 들어야 했던 나라는 없었다. 척박한 산악지대에 터를 잡은 고구려는 주변이 온통 산으로 막혀있고 땅은 대개 돌밭이었다. 농사를 지어도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초원의 유목민들조차 고구려보다 조건이 풍족했다. 그들은 가축을 길러 고기와 우유를 정기적으로 공급받는 윤택한 사람들이었다.

고구려는 수렵민족이었다. 움직이는 밥(짐승)을 며칠씩 쫓아다녀야 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짐승들을 몰아서 한꺼번에 잡는 법을 배워야 했고, 화살을 아끼기 위해 한방에 급소를 쏘아야 했다. 주몽이 활을 잘 쏘았다는 것은 그가 수렵민 출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고구려에게 싸움은 생활이자 생존 본능이다. 고구려는 있는 것을 지키는 나라가 아니라, 국경을 열고 무언가를 찾아다녀야 하는 나라였고, 그것이 고구려 영토 확장의 동기였다는 게 이 책의 가장 기본적인 시각이다. 그래서 저자는 고구려의 영토 확장이 결코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구려는 사자의 발톱과 여우의 교활함을 갖춘 나라였다. 굴욕스럽더라도 이익이 되지 않는 싸움에서는 한수 접었고, 먹고사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 영토를 거느리려 하지 않았다. 고구려가 한강 이남으로 진출한 것은 지속적인 식량보급을 보장하는 곡창지대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밑에서 집적거리는 백제와 신라를 손봐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 책은 역사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고구려를 보고자 했다. 그래서 나온 틀이 “유목민과의 동업과 경쟁”이라는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본 사람들은 이 공식에 익숙하다. 그것은 바로 다민족국가 로마가 주변 야만족들과 공존하는 지혜였기 때문이다. 고구려라고 해서 상황은 다르지 않다. 고구려는 제국까지는 아니지만 동방의 강소국이었기에 주변 부족들을 위성도시처럼 거느려야 했다. 거란족 몇 만 명을 끌고 와서 영토를 내주고 먹을 것을 제공하는 대신, 중국과의 전쟁에 그들의 기병과 말을 동원했다. 또한 거란, 말갈, 해, 돌궐, 회흘 같은 ‘이중인격자들’(다 마찬가지긴 하지만)이 중국에 포섭되는 걸 막아야 했다. 그래서 그들과 무역을 하고 때론 무력으로 진압해야 했다.

대륙을 통일한 수나라와 당나라 입장에서 고구려는 ‘공존할 수 없는 타자’였다. 수와 당이라고 왜 로마제국처럼 주변 부족들을 잘 다독이고 길들여 ‘팍스 수?당’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래서 헐값에 비단과 금을 하사하는 출혈교역을 마다하지 않았건만, 이익에 밝은 야만족들을 힘들게 꼬드겨서 밥이 다 지어질 때쯤 되면 꼭 고구려가 와서 이간질했다. 고구려가 가장 많이 써먹은 수법이 “당신들은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충고였다. 수나라 양제가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약속한 돌궐 계민가한의 천막궁전을 방문했다가, 자기보다 먼저 와있던 손님(고구려 사신)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그 얼마 후 수양제는 유목기병을 동원하는 데 실패하고 농민잡동사니만 대거 이끌고 고구려 땅을 밟았다가 대참극을 당했다. 당태종도 고구려의 초원정치 때문에 몇 번의 원정에 실패하고 결국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과로사하고 말았다. 당고종에게 내려진 아버지의 유언은 “고구려를 반드시 정리하라” 정도가 아니었을까.

저자 서영교는 중국대륙의 눈엣가시이자 유목민들의 맏형쯤 되는 위상을 지닌 고구려의 성장과정과 패망과정을 통사이야기 식으로 다뤘다. 7백년 기간의 일을 다루기 때문에 스토리가 번다해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이 시기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가 인과관계로 꽉 짜여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그녀가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을 쓸 때는 주변에 읽을 자료들이 넘쳐났고, 손에 만져질 것 같은 흔적들이 도처에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는 문서기록도 없고, 몇 개의 비석문,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일본서기』에 인용되는 『백제사』, 그리고 중국의 28사가 거의 전부다. 얼마나 기록이 없었으면 돌궐제국에 대한 동로마역사학자의 기록에 지나치듯 언급된 ‘Moukri’(무크리=맥구려=고구려)라는 단어 하나가 실마리가 되어 이야기가 풀려나오겠는가. 안악3호분에 그려진 고구려 군대의 행렬은 이런 비참한 수준의 기록과는 너무나 대비될 정도로 환하고, 구체적이고, 손에 잡힐 것 같아서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중국과 일본의 기록을 샅샅이 뒤져 고구려에 대한 모자이크식 정보를 섭렵하고 인과관계에 따라 재배열하는 이 책은 그러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 또한 전쟁광이라고 할 만큼 해박한 저자의 전쟁지식이 고구려와 중국 사이에 벌어진 싸움을 구체적으로 복원하는 데 유감없이 발휘됐다. 중장기병의 장단점, 장창보병의 위력과 아킬레스건, 습격과 농성전, 성의 함락과정, 싸움의 시기와 진군의 방법 등 전쟁의 진행과정에 대한 세세한 복원은 이 책의 중심적인 읽을거리다. 특히 고구려 국마(國馬)를 다루고 있는 제6장은 고구려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전마(戰馬)를 관리했는지, 말에 대한 고구려인의 지식수준은 어떠했는지, 왜 『삼국유사』에 나오는 평강공주가 국왕친림사냥대회에 참석하는 온달에게 “시장에 가서 병들고 파리한 말을 사오라”고 했는지에 대한 해답도 제시된다.

목차

책을 펴내며
서론- 중장기병에 대한 오해

제1장 약탈전쟁의 동반자 선비족
-도망자 주몽
-유리왕의 선비족 격파 : 사냥 습속과 군사력
-까마귀 전쟁
-교활한 사냥꾼
-국왕 주최 사냥대회
-선비족과 연합해 한군현을 약탈하다
-납치와 인신매매

제2장 선비족, 골리앗으로 성장하다
-조위의 침공과 용병 선비족
-추격자 선비 기병과 도망자 동천왕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세계
-동천왕과 그 부하들
-폭군 봉상왕과 모용씨의 공세
-소금장수 미천왕
-진의 내란과 한사군의 멸망
-고구려, 선비족의 내전에 개입하다
-압록강으로 들어온 곡물운반선
-전연으로 간 소금장수 국왕의 사신
-비운의 고국원왕
-후연의 부활과 모용수
-선비 탁발부의 부상과 고구려

제3장 광개토왕의 강소국 고구려
-담덕의 무기력한 아버지들
-행동의 천재, 광개토왕
-초원에서 낙동강까지
-신라에 몰려온 왜군의 선단
-후연에 들어선 고구려인 정권
-패배의 두려움에 떤 고독한 군주

제4장 장수왕의 초원 진출
-창고에 들어가지 못한 쥐, 북위의 딜레마
-약탈자의 덫
-힘의 균형추가 낳은 암묵의 약속
-내실 있는 음모꾼 풍태후
-유산된 정략결혼과 의도된 사산
-기만 위의 누각
-아차산의 비극

제5장 북위의 분열과 경쟁자 돌궐의 등장
-약탈자가 된 고구려의 거란 기병
-북위의 해체
-폭행당한 고구려 국왕
-경쟁자 돌궐의 등장
-초원에 불어닥친 살육의 광풍
-북주의 침공과 온달의 등장

제6장 고구려의 전마戰馬 생산과 유목민
-고구려의 귀중한 재산 국마
-“병든 말을 사와야 합니다”
-국마의 치밀한 관리와 훈련
-“우마를 죽인 자는 노비로 삼는다”
-국마의 수급과 유목민
-토번과 싸우는 당에 말을 수출하다

제7장 돌궐을 둘러싼 수와 고구려의 대결
-고구려의 반격과 수의 통일
-내홍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사람들
-고구려의 돌궐 포섭과 수의 침공
-협상의 귀재, 을지문덕
-세상의 끝을 향한 수양제의 진격
-당고조, 돌궐을 업고 장안에 입성하다

제8장 유일 강대국 당의 등장과 고구려의 초원 정치
-돌궐의 자체 붕괴
-가련한 고구려 국왕, 건무
-포획된 전쟁기계
-당에 이끌려온 전쟁기계들
-피안개 속의 안시성
-역사 속에 박힌 가시
-단명한 유목제국 설연타
-고슴도치 장창보병의 위력
-소정방의 백제 침공과 신라왕 김춘추
-총알받이부대, 방효태 군단의 전멸
-독재자의 무능한 세 아들
-허수아비의 선택
-난파선에서 내린 대조영

결론-공존할 수 없는 타자, 고구려

부록1 고구려 왕위계보
부록2 5호16국 시대 유목민족 일람표
참고문헌

미리보기

고구려의 산성을 농성장으로 한정해서 볼 수 없다. 성이란 기병들의 격납고와 같은 존재였다. 싸움을 하다 지친 기병들은 성에 들어와 먹고 쉬었고 다음 전투의 준비를 했다. 말도 역시 그러했다. 배후에 성이 없이 기병전을 벌이는 것은 어렵다. 당이 이끌고 온 유목 기병들은 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는 고구려 기병을 평지에서 차단했다. 고구려 기병들은 돌궐기병과 평지전을 피할 수 없었다. 고구려기병이 패하면 성은 포위되었고, 공성기의 공격을 받고 함락되었다. 산성은 기병 전력의 뒷받침 없이는 지킬 수 없다.

_「유일 강대국 당의 등장과 고구려의 초원정치」

 

고구려는 당시 결코 고도화된 문명을 가진 국가가 아니었다. 만일 그러했다면 조위의 관구검이 침입했을 때 타격을 입고 멸망했을 것이다. 덜 완성되고 덜 발달되어 있었기 때문에 회복이 훨씬 빨랐다. 판자집 군락에 불이 번져 모든 것을 태웠다고 한들 판자집은 금방 다시 지을 수 있다. 초호화 고층빌딩에 불이 난다면 폐허가 남고 철거비용도 만만치 않아 예전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다. 관구검 이후 고구려는 342년 모용씨의 침입을 받고 한 번 더 수도가 초토화됐다. 그래도 고구려는 금방 살아났다. 그것은 분명 보다 작고 덜 발달된 사회의 원시성이 주는 이점이었다.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추신경이 머리에만 집중되지 않았고, 팔과 다리와 몸통에 골고루 퍼져 있었다. 그래서 일부가 파괴되어도 금방 복원이 되었다.

_「선비족, 골리앗으로 성장하다」

 

어느 날 완전무장한 중장기병이 초원을 행군한다고 생각해 봤다. 하중 때문에 말도 사람도 심장에 부담을 느낄 것이다. 무거운 갑옷과 마갑은 수레에 실어야 할 것이고, 지구력이 있는 소, 수레, 마부가 필요하다. 그렇게 보급 행렬이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하중을 잠시 면했다고 해서 유리한 것도 아니다. 갑옷과 무기가 수레에 있는데 유목민 기병이 습격을 한다면 속수무책이다. 전투 시 빛이 내리쬐는 여름이라면 갑옷을 입은 사람이나 짐승은 스팀을 받아 퍼질 것이고, 겨울이라면 추워서 갑옷 속에 더 많은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장기병은 마음대로 전투시간을 선택할 수 없다. 유목민들은 중장기병들이 지치기를 기다린 후에야 덤벼들 것이다.

_「책을 펴내며」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서영교

1967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동국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사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현재 중원대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유적과 고문헌, 사서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 근거해서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벌어진 전쟁이 초래한 동아시아사, 더 나아가 유라시아사의 실상을 추적해왔다. 박사과정 중 「신라장창당의 신고찰」이란 논문을 발표하면서 전쟁사 연구에 몰입했다. 박사논문을 수정하고 보강한 저서 『나당전쟁사 연구-약자가 선택한 전쟁』(2007)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한국 고대사학자 중에서는 보기 드문 전쟁 전문가로, 고구려 700년사를 유목민과의 ‘동업과 경쟁’으로 살핀 『고구려, 전쟁의 나라』(2007), 전쟁사로 시장과 이익의 메커니즘을 살펴본 『전쟁기획자들』(2008), 고문서의 혜성 기록을 통해 신라사와 궁중 암투를 새롭게 고증한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2010)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