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 유럽사 속의 전쟁 현대의 고전 9
  • 지은이 | 마이클 하워드
  • 옮긴이 | 안두환
  • 발행일 | 2015년 06월 10일
  • 쪽   수 | 400p
  • 책   값 | 23,000 원
  • 판   형 | 160*220
  • ISBN  | 9788967352196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산맥을 관찰하는 독수리의 시선 같은 책, 유럽사 속의 전쟁
전쟁으로 1000년의 유럽사를 묘파한 마이클 하워드의 역작

“해당 사회의 문화를 공부해야만
한 사회가 무엇을 위해 싸웠으며,
왜 그러한 방식으로 싸웠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유럽사 속의 전쟁』을 포함한 하워드의 전쟁사 연구는 전쟁의 발발과 과정 그리고 영향에 대한 단순한 기술이나 분석이 아니다. 이는 칸트의 역사철학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문학으로서, 폭력의 역사 속에서 인류의 도덕적 진보를 찾아내고자 하는 야심찬 시도다. 곧 하워드의 ‘전쟁과 사회’라는 테제의 기저에는 무엇보다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계몽의 씨앗’만은 언제나 살아남아주기를 바라는” 염원이 굳건히 놓여 있다고 하겠다. _옮긴이 해제

이 책의 저자 마이클 하워드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전쟁사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75년에 처음 출간되어 2009년 개정된 이 책은 마이클 하워드가 ‘전쟁과 사회’라는 관점으로 1000년에 이르는 유럽 전쟁사를 연구해온 결과물로, 단순한 ‘군사사military history’가 아니라 전쟁을 전쟁이 치러진 사회·문화·정치·경제적 배경의 관점에서 살핀 명저이다. 노르만족 침략에서부터 21세기 ‘테러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치러진 전쟁의 변화를 훌륭히 써내려간 개론서이며, 유럽 사회 전체의 발전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계몽적인 개관이다.

 

전쟁은 인간 경험의 총체성의 한 부분이다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 전쟁은 어느 시기에나 늘 존재했다. 특히 유럽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온 사회다. 한편으로 미래에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을 위한 불변의 원칙을 발견하고자 전쟁에 대한 분석적 연구는 필요하다. 그러나 전쟁은 단순히 ‘싸우는’ 문제, 즉 ‘군사 작전의 역사’이기에 앞서 전쟁이 치러진 사회, 문화, 정치, 경제의 모든 측면과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어떤 무기를 들고 싸우는지, 누가 전쟁에 나가는지, 그들이 왜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이유로 전쟁을 하는지와 같은 것들은 전쟁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렇듯 전쟁은 한 사회의 성격을 바꾸어버리기도 하고, 반대로 사회가 전쟁의 성격을 결정짓기도 한다.
저자 마이클 하워드는 “전쟁을 전쟁이 치러진 사회·문화·정치·경제적 배경으로부터 분리해서 따로 생각하는 것은 전쟁을 이해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측면을 간과하는 것”이라며 좁은 의미의 전쟁사에서 벗어나 ‘전쟁과 사회’라는 관점으로 1000년의 유럽 전쟁사를 연구했다. 처음 유럽에서의 전쟁 발전에 대한 간략한 소개서를 작성하는 일에서 시작된 이 글은 곧 유럽 사회 전체의 발전을 그려내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 책의 초점은 전쟁의 승패를 분석하는 일이나 시대별 전쟁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에 맞춰져 있지 않으며, 유럽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전쟁과 사회’의 복합적 상호 영향관계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한마디로 하워드의 전쟁사 연구는 “전쟁을 사회 현상의 하나로 다루는 인문학적인 연구”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하워드는 군사 전문가라기보다는 ‘전쟁이 사회 일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전문 역사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워드의 전쟁사 연구는 과거는 물론 오늘날의 국제정치를 이해하고 여러 난제를 푸는 데도 그 열쇠를 제공한다.

 

이전까지 군사사는 없었다

‘전쟁과 사회’라는 테제로 요약되는 하워드 전쟁사 연구의 출발점은 무엇보다 자신의 연구를 비롯한 전쟁사 분야 자체의 역사화에 있다. 하워드는 해당 사회와는 분리된 채 군사 행동에만 착목하는 좁은 의미의 전쟁사로서 ‘군사사’의 탄생을 18세기로 추적해 내려간다. 하워드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형태의 군사사는 18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인즉 유럽은 줄곧 전사들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중세 기독교 유럽에서 귀족의 지위는 기사의 지위와 맞먹었고, 이 시기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라기보다 전쟁의 종교에 가까웠다. 18세기까지 유럽에서 ‘전쟁과 사회’는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별개로 생각되지도 않았다. 이에 마이클 하워드는 “전문 연구 분야로서 ‘군사사’는 특별나게 평화로운 사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사치 중 하나다”라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 독립적인 연구 분야로서 전쟁사의 등장은 16세기 중반 이래 유럽 전역을 무대로 했던 종교 전쟁(1560~1648)의 종식 이후 국내적인 평화와 안정의 확립과 궤를 같이했다. 따라서 오늘날의 군사사는 유럽 대륙 전체를 포괄하는 일종의 내란의 성격을 띠었던 종교 전쟁이 1648년 ‘웨스트팔리아 평화 조약’에 의해 종결되고, ‘주권국가의 원칙’에 입각한 국가들의 체제가 정립되면서 탄생한 대단히 근대적인 연구 분야라 할 수 있다.

 

혁명을 거쳐 총력전의 시대로 

구체적으로 영국의 경우를 들여다보면, ‘군사사’는 스튜어트 왕조에 맞선 한 세기에 걸친 내전이 1688년의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으로 일단락된 후, 9년 전쟁(1688~1697)과 곧이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2~1713)의 일환으로 말버러Malborough, John Churchill 경의 영국군이 유럽 대륙에서 루이 14세의 프랑스군과 대적하여 치른 전투에 대한 기술로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1815년 웰링턴 경이 이끈 영국군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대군을 격파했을 때 그 틀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19세기 중반까지 군사사는 영국 육군이나 해군이 치른 전투의 기록에 그치며, 19세기 후반 모든 역사학 분야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주제, 저자, 독자 모든 측면에서 ‘군대’라는 극히 한정된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경제 발전이나 정치 변동이 전쟁의 형태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사가들에게 분석은커녕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전쟁의 사회적 여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국은 섬이라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프랑스 혁명 전쟁(1792~1802)과 잇따른 나폴레옹 전쟁의 폭풍을 피할 수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프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대륙 국가들과는 달리 군사 문제 전반에 걸친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을 맛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19세기 영국 제국의 산업경제력과 전 지구적 차원의 군사력의 상징으로서 대영 해군의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군사 문제는 여전히 전체 사회와 분리되어 논의되었다.
이를 바로 양차 대전이 완전히 뒤바꿔 놓았으며, 바로 그 중심에 하워드의 선구자적인 연구가 자리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에야 영국의 군인과 관료, 학자들은 서서히 전쟁의 승패뿐만 아니라 군사 전략, 심지어는 세부 작전까지도 다양한 요인?정치, 경제, 기술, 행정, 사회,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19세기 산업혁명은 사회의 모든 분야가 승리를 위해 철저히 동원되는 ‘총력전total war’의 시대를 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교훈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확인시켰다. 이와 동시에 양차 대전으로 인한 영국 사회의 대변동은 ‘전쟁과 사회’라는 테제의 중요성을 한층 더 부각시켜놓았다. 이렇게 볼 때, 하워드의 전쟁사 연구는 18세기 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양차 대전을 통해 급기야는 영국까지도 집어삼킨 ‘국민전’의 지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워드의 관점으로 보는 오늘날의 전쟁 

뿐만 아니라 하워드의 전쟁사 연구는 오늘날 국제정치 상황을 이해하고 여러 난제를 푸는 데 있어서도 사려 깊은 조언을 제공한다. 특히 오사마 빈라덴(1957~2011)이 이끈 이슬람 극단주의 국제 조직의 테러에 대한 미국의 혼동에 찬 대응은 하워드의 성찰적인 전쟁사 연구에 힘을 더하고 있다. 하워드는 뉴욕에서의 9·11 테러 이후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즉각적으로 선포된 ‘테러와의 전쟁War against Terror’을 매우 잘못된 개념이라 비판한다. 미국 정부와 국민의 분노는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초래할 ‘되돌릴 수 없는 큰 실수’라고 경고했다. 다시 말해, 그의 입장에서 테러는 시민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특별 수사권을 위임받은 경찰과 정보 당국이 처리해야 할 ‘위급 상황’이지 ‘전쟁’이 아니었다.
하워드에 따르면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면 무엇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분노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더불어 이를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반성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하워드는 이미 베트남 전쟁 직후 발표한 「전략의 잊혀진 차원들」이란 논문에서 똑같은 조언을 미국의 전략가들과 정치가들에게 한 바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반세기가 흘렀음에도 문제는 다시 하워드 자신이 ‘전쟁과 사회’라는 테제에서 도출한 전략의 사회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옮긴이의 말

『유럽사 속의 전쟁』을 포함한 하워드의 전쟁사 연구는 전쟁의 발발과 과정 그리고 영향에 대한 단순한 기술이나 분석이 아니다. 이는 칸트의 역사철학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문학으로서, 폭력의 역사 속에서 인류의 도덕적 진보를 찾아내고자 하는 야심찬 시도다. 곧 하워드의 ‘전쟁과 사회’라는 테제의 기저에는 무엇보다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계몽의 씨앗’만은 언제나 살아남아주기를 바라는” 염원이 굳건히 놓여 있다고 하겠다.

목차

초판 서문
2009년판 서문

 

제1장 기사들의 전쟁
제2장 용병들의 전쟁
제3장 상인들의 전쟁
제4장 전문가들의 전쟁
제5장 혁명의 전쟁
제6장 국민들의 전쟁
제7장 기술자들의 전쟁

 

에필로그 / 유럽 시대의 종언

더 읽을거리
옮긴이 해제 / 전쟁과 사회: 마이클 하워드의 전쟁사 연구와 평화의 발명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미리보기

17세기에는 지상에서든 해상에서든 화력이 지배적인 요소가 되었다. (…) 한동안 화물‘도’ 적재할 수 있고 전투‘도’ 치를 수 있는 배가 아니라면 굳이 바다에 띄울 가치가 전혀 없었다. 이 시기는 전쟁, 발견, 무역이 동의어와 같았던 시기였다. _「상인들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을 믿은 이들은 오늘날 유럽이 다시 전쟁에 휘말려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평화는 안정적이며 적어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 주장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레온 트로츠키가 지적했듯이, “당신은 전쟁에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매우 관심이 많다.” 이는 자신들이 전쟁을 뒤로하고 있다고 믿는 유럽인들이 심각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더 이상 유럽인들은 스스로 전쟁을 키우거나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이를 수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스스로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부분이 된 국제체제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으로부터 자신들의 경계를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다. _「에필로그」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

1922년 영국 출생. 옥스퍼드대 근대사 분야 명예 교수. ‘전쟁과 사회’라는 관점으로 계속해서 전쟁사를 연구해온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전쟁사학자 중 한 명이다. 런던 킹스 칼리지 전쟁 연구 담당 교수, 옥스퍼드대 치첼리 전쟁사 담당 교수, 예일대 군사 및 해군사 담당 교수로 재직했다. 대표 저서로는 더프 쿠퍼상을 받은 『보불 전쟁』(1961),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사』 중 제4권으로 집필되어 울프슨재단역사상을 받은 『대전략』(1971), 『역사의 교훈』(1991) 등이 있다. 은퇴 후 현재까지도 자신이 설립한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평생 고문으로 왕성한 강연 및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옮긴이

안두환

2012년 케임브리지대 역사학과에서 ‘18세기 영국 외교사 및 지성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3년부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국제관계사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마이클 하워드의 『평화의 발명: 전쟁과 국제질서에 대한 성찰』(2002), 편저로는 Fenelon in the Enlightenment: Traditions, Adaptations, and Variations(2014)가 있다. 국제관계사 관련 논문으로는 “The Anglo-French Treaty of Commerce of 1713”, “European Great Power Politics in British Public Discourse, 1714~176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