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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르타쿠스 전쟁[절판] 야만과 문명이 맞선 인류 최초의 게릴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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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들어가는 글
탈출
1. 글라디아토르
2. 트라키아 여인
복수
3. 프라이토르
4. 길잡이
5. 알프스 산맥
후퇴
6. 크라수스
7. 시칠리아
8. 멜리아 능선
최후
9. 켈트 여인들
10. 스파르타쿠스
11. 승리자
나가는 글
주요 인명 해설
참고문헌 해제
후주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검투사들은 포도주 음주량을 제한하고 보리죽을 많이 먹는 등 고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해야 했다. 일본의 스모 선수들처럼 허리에 살찌우라는 충고를 들었는데 부상에 대비해 보호막을 형성하는 차원이었다.
_47쪽
검투사들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자기편, 경쟁자, 두목, 부하, 좀도둑, 스파이, 물건을 조달해주는 사람, 배신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새로 온 검투사는 누구를 신뢰하고 누구를 조심해야 하는지, 누가 자기 등 뒤를 지켜줄지 누가 자기 음식을 훔칠지를 배웠다. 그는 힘센 사람, 민첩한 사람, 거친 사람, 가차 없는 사람, 약한 사람, 서투른 사람, 부드러운 사람,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 등으로 재빨리 주변 사람들을 평가한다.
_ 51쪽
스파르타쿠스가 실제로 귀족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스파르타쿠스라는 이름은 트라키아 왕족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고대 문헌은 반란군 가운데 소수가 “고귀한” 이들이라고 말하는데 아마도 귀족 출신의 노예나 귀족의 후손을 말하는 것이리라. 검투사들 사이에서도 고귀한 신분이라는 후광은 스파르타쿠스가 지지자를 끌어 모으는 데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_53쪽
검투사의 기대 수명은 짧았다. 터키 에페수스의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검투사들의 유해 120구는 대부분 35세 이전에 사망했고 그 중 다수는 25세 이전에 사망했다. 유해의 3분의 1에서 2분의 1 가량은 뼈가 부서지거나 잘릴 만큼 심각한 부상으로 사망했고 그러한 부상을 입은 자 가운데 3분의 1은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다른 유골들은 배가 갈라지거나 동맥이 절단되거나 감염된 상처 부위가 썩는 것과 같은 끔찍한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_ 56쪽
전직 검투사들과 농장 일꾼들, 도망친 노예들, 트라키아인과 켈트족, 이탈리아인과 잡다한 사람들은 베수비우스 산 인근의 부유한 빌라들을 습격했다. 식량과 술 그리고 실속 있는 음식뿐 아니라 타조 알이나 상등품 포도주와 같은 진미들도 찾아냈다. 은과 금, 상아, 호박, 유약을 바른 테라코타,, 색유리, 귀고리와 팔찌, 큰 메달과 둥근 접시, 사자 발 모양의 은제 탁자 다리, 왕들의 얼굴이 새겨진 카메오 세공품 등등 한 사람이 모두 들고 갈 수 없을 만큼 사치품이 많았다. 도망자들은 전리품을 똑같이 나눴다. 스파르타쿠스는 균등한 분배를 주장했다. 정의감인지 신중함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어쨌든 더 많은 추종자들이 산으로 올라왔다.
_ 90쪽
기원전 73년 지중해 양쪽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던 로마에게 검투사들의 반란은 사소해보였다. 카푸아에서 온 소식(검투사들의 반란소식)은 철저하게 파악되고 분석되고 분류되었다. 그것은 카이사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예들의 투물투스[tumultus]”이었다. 투물투스는 긴급 대응이 필요한 갑작스러운 폭력 사태가 일어난 것을 말한다. 심각한 문제지만 조직적인 전쟁, 벨룸[bellum]은 아니었다.
_ 95~96쪽
로마군은 공격을 자랑으로 했기 때문으로 진지의 방어는 보통 두텁지 않았다. 참호는 일반적으로 너비와 깊이가 1미터에 불과했고 방호벽은 흙을 낮게 쌓아 위에 나무 말뚝을 밖은 것뿐이었다. 보초는 적의 공격을 알리고 접근을 늦추도록 방호벽 바깥에 세웠다. 물론 위험하고 약삭빠른 적에게는 더 튼튼한 방어가 필요했다. 그러나 글라베르는 스파르타쿠스를 너무 얕잡아봤다. 어느 문헌은 로마인들이 “이 사건을 아직 전쟁으로 여기기보다 일종의 습격, 도적떼가 이끄는 공격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말한다.
_ 106~107쪽
전투를 앞두고 술을 마시는 것은 켈트족과 트라키아인 모두에게 관례였다. 로마군은 로마 최상의 포도가 빚어낸 산물로 용기백배한 공격자들에 직면했다.
_ 108쪽
스파르타쿠스가 부하들에게 죽 경고해온 일이 이제 현실이 되고 있었다. 그의 병사들은 투지가 넘쳤지만 스파르타쿠스는 정면충돌에서 로마군의 압도적 우위를 알고 있었다. 앞선 로마 병사들은 돌아서서 도망쳤지만 크라수스의 부하들은 기꺼이 싸울 것이다. 이전에 로마 지휘관들을 상대로는 언제나 매복과 각종 계략을 쓸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크라수스는 그렇게 쉽게 걸려들지 않으리라.
_ 202쪽
지은이
배리 스트라우스Barry Strauss
코넬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배리 스트라우스 교수는 저명한 고대 군사사 전문가이다. 코넬 대학교 평화연구 프로그램 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자유와 자유사회 프로그램 소장을 맡고 있다. 국내에도 소개된 전작 『살라미스 해전』(2004)과 최근작 『스파르타쿠스 전쟁』(2009)이 많은 찬사를 받았다. 「워싱턴 포스트」, 「로스엔젤레스 타임스」등 유수 언론에 칼럼을 발표했고, 히스토리 채널,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BBC 방송 등에서 역사 해설자로 활동했다.
옮긴이
최파일
서울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과 서양사학을 전공했다. 역사책 읽기 모임 ‘헤로도토스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역사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의 좋은 책들을 기획, 번역하고 있다. 축구와 셜록 홈스의 열렬한 팬이며, 제1차 세계대전 문학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옮긴 책으로 『백년전쟁 1337~1453』 『마오의 대기근』 『내추럴 히스토리』 『제1차세계대전』 『인류의 대항해』 『시계와 문명』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근대 전쟁의 탄생』 『스파르타쿠스 전쟁』 『트로이 전쟁』 『대포 범선 제국』 『십자가 초승달 동맹』, 버트런드 러셀의 『자유와 조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