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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비 묘보설림 2
  • 지은이 | 루네이
  • 옮긴이 | 김택규
  • 발행일 | 2017년 11월 20일
  • 쪽   수 | 364p
  • 책   값 | 14,000 원
  • 판   형 | 133*200
  • ISBN  | 9788967354596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신세대 리얼리즘 문학의 기수, 루네이!
산업화시대 중국 공장지대와 노동자들의 삶

“루네이 소설의 장점은 청춘에 관해 쓰는 동시에 알게 모르게
1990년대 사회 변동기에 공장에서 나타난 모순과 세태와
인심을 다루면서 그것들을 관념의 선행이나 인위적 의도 없이 여유로우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한 데 있다.”
-왕안이王安憶”

 

사람보다 생산장비가 더 중요한 사회

공장 안에는 서기가 있고 보안과가 있으며, 노동자들의 노무 관리자가 있다. 빠듯한 임금과 고된 노동, 엄격한 규율, 더로운 기숙사와 체벌실도 있었다. 냄새 나고 힘든 그곳에서 묵묵한 사람, 약아빠진 사람, 고자질쟁이, 음흉한 놈, 가슴이 큰 여자 등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다. 중국 어딜 가든 마찬가지였다. 철저히 통제된 당 중심의 사회가 절정에 이른 문화대혁명 시기, 페놀 공장은 중국 사회의 한 축소판이 되어 우리에게 ‘살아남기 위한 존재로서의 인간’ 혹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려는 인간’들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사람보다 생산설비가 더 중요했다. 쉬성이 입사하자마자 한 사람이 발로 밸브를 여닫는 걸 들켜 감옥에 갔다. 1년형이었다. 30대 과부 왕싱메이와 정을 통하다 들킨 작업장 주임인 리테뉴도 감옥으로 향했다. 그를 고발한 자가 작업장 주임이 되었다. 얼마 뒤 쉬성의 친구 건성이 발로 밸브를 찼다가 들켰다. 그는 성격이 모나서 평소 사람들의 미움을 많이 받았다. 그는 일단 죽도록 맞았다. 건성은 왕싱메이와도 관계를 맺었다. 왕더파가 이를 눈치 챘다. 쉬성이 왕싱메이를 찾아가 도망치라고 했다. 사람들이 오고 있다고. 왕싱메이는 갈 데가 없어 그냥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벌을 받겠다고 했다. 쉬성은 그러면 건성은 사형을 당할 거라고 했다. 왕싱메이는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문을 나섰다. 다음날 아침 왕싱메이는 구정물 속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건성은 10년형을 받고 채석장으로 끌려갔다.
공장의 사람들은 많이 아팠다. 퇴직 후 3년 뒤 간암에 걸려 죽는 것, 이것은 일종의 코스였다. 하지만 퇴직도 하기 전에 골육종에 걸려 죽기도 하고, 허리가 작살나기도 했다. 집안의 누군가가 항상 아팠다. 고아인 쉬성만 이것에서 자유로웠다. 그는 간염에 걸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위성과 결혼했다. 골육종에 걸려 죽은 그의 고참의 딸이었다. 그는 업무능력이 뛰어났고 포용력이 있었다. 차츰 공장 안에서 인정받아 관리자급으로 성장하게 됐다. 소설은 쉬성의 입사 초기부터 그가 늙어 퇴직한 후 프리랜서 기술자로 활동하기까지 매우 긴 시기를 다루고 있다. 40년 정도의 세월로 보인다. 그러니 감옥에 다녀온 건성이 공장에 적응하다가 실패해 결국 목매달아 자살하는 일, 퇴직자가 몸이 아프자 옛 직장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일, 악명 높은 관리자가 퇴직 후 장례에 쓰는 대련 장사꾼으로 거듭나는 모습이 휙휙 지나간다. 작가의 어조는 시종 담담하며 묘사도 상세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 속의 비참함, 치열함, 고통과 슬픔 등을 아주 먼 것으로 느끼게 된다. 작중 인물이 내뱉는 말을 통해 우린 현실이 그들에게 가한 고통의 종류와 정도를 어렴풋이 실감할 수 있을 뿐이다. 쉬성의 숙모는 자신의 남편이 술에 취해 길에서 죽었을 때 말했다. “천씨 집안은 많은 사람이 시체도 못 남겼지. 네 삼촌은 그나마 시체가 있으니 잘 죽은 셈이야.”

 

인센티브의 자본주의, 보조금의 사회주의

보조금은 이 소설을 감상하는 하나의 포인트다. 공산주의 사회인 중국은 최소생활이 가능한 월급을 주고 집에 환자가 생기거나, 이사를 해야 하거나 여타 일들이 생기면 ‘보조금’ 형식으로 이를 해결해줬다. 직공들은 늘 보조금이 필요했고, 그때마다 심사가 있었다. 한번은 보조금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 돤싱왕이 명단에 포함됐다.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내막을 아는 이가 그를 불러 따졌다. “네가 어떻게 열사 가족이 됐지? 네 아버지는 그냥 불에 타 죽었잖아. 열사가 아니잖아.” 돤싱왕이 말했다. “대신 우리 어머니는 젊어서 과부가 됐는데도 재혼을 안 했으니까 열녀야. 열녀 가족도 열사 가족 못지않다고.” 또 다양한 형식의 보조금이 있었다. 가령 직공이 죽었을 때 장례비로 12위안이 주어졌다. 그러나 골육종에 걸려 죽게 된 쉬성의 사부는 자신은 유독물질 작업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16위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관리자는 유독물질 작업장 직공은 “좀더 오래 살라고” 영양비로 2위안을 더 주긴 하지만 죽을 사람에게 줄 돈은 없다고 말한다. “자네는 땅에 들어가잖아. 더 돈 들어갈 게 없다고!” 그런데 이 관리자의 이름은 쑹바이청이다. 쑹바이청은 과거 직공이었을 때 배수로를 파다가 식량배급표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열 근 두 냥짜리였다. 쑹바이청은 밥을 먹지 못해 쓰레기통까지 뒤졌다. 그러나 음식물 쓰레기통도 텅텅 비던 시절이었다. 쑹바이청은 보조금을 신청하러 달려갔지만 사람들을 뚫고 들어갈 기력이 없었다. 창고 대들보다 밧줄을 매고 죽으려 했지만 걸상 위에 올라갈 기력도 없었다. 그는 창고 안에서 울었고, 그때 쉬성의 사부가 그것을 지나다가 보고 대신 보조금을 신청해줘서 쑹바이청은 5위안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 사부는 죽음을 앞두고 장례비를 신청하러 이런 과거를 환기시켰다. 쑹바이청은 그의 입을 막았다.

 

자비慈悲, 그 역설의 인간학

이러한 장면에서 이 책의 제목인 ‘자비慈悲’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자비란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다. 불교적으로는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페놀 공장에 자비를 베풀 부처님 따위는 없다. 국가는 자비 대신 착취를 베풀었다. 자비는 오히려 그 아비규환을 직접 통과해가는 자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이다. 즉, 푸코 식으로 말하자면 자비는 노동자들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자신의 심리를 보전하고, 인간적인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도구, 자기의 테크놀로지다. 다 죽어가는 걸 구해준 사람에게 보답은 못할망정, 단돈 4위안을 더 올려서 사인해주지 못하는 걍팍한 마음 앞에서 분노와 공포로 반응할 경우 그것은 다시 엄청난 고통으로 변해서 그 스스로를 옭아매리라.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너그럽게 그를 이해하고 세상의 이치를 인정에 반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하는 기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자비는 지극히 시대적인 개념이며, 특수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고통이 넘치는 곳에서 그 개념은 보편성을 얻으리라.

아래는 옮긴이가 쓴 후기이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루네이라는 작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귀 기울이게 만드는 작가, 루네이

1
2014년 초, 41세의 늦깎이 소설가 루네이는 오랜만에 고향인 쑤저우蘇州에 가서 혼자 사는 고희의 아버지와 환담을 나누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때 국영 페놀 공장의 설계사였던 아버지가 젊은 시절의 경험담을 들려준 것이다. “옛날에 내가 공장에서 동료들에게 보조금을 많이 타주었지.” 아버지 말에 따르면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이어진 ‘대기아’ 시대에도 그 보조금 덕분에 그의 공장에서는 굶어 죽은 사람이 없었다. 당시 많은 이가 매달 5위안, 10위안씩 나오는 보조금에 의지해 그 힘든 세월을 버텨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에 직공대표자협의회가 생기면서 보조금을 받는 직공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1990년대가 돼서는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보조금이라는 것도 없어져버렸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서 루네이는 줄곧 고민했다. 보조금이라는 이 특수한 시대의 특수한 제도가 도대체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을까? 이 협소해 보이는 소재에서 결국 그는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소설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커다란 난제에 부딪쳤다.
어떻게 직관적이면서도 방대한 이 소재를 처리하느냐는 방법상의 문제였다. 보조금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어마어마한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었다. 그는 전 세대 직공들을 취재하면서 그들이 보조금에 관해 저마다 장편소설 한 권 분량의 사연을 털어놓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결국 그가 본래 능했던 ‘대하소설식’으로 30~40만 자의 장편을 쓸 것인지, 아니면 최대한 간추려서 중단편을 쓸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루네이는 절충해서 12만 자 분량의 경장편을 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아버지 세대의 50여 년에 걸친 역사는 그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과거였다. 그 시대의 국외자로서 상상력만으로 어떻게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그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었다. 결국 루네이는 절제된 방식으로 그 시대와 거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대기아 시대에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와 동생의 실종을 겪은 주인공의 처참한 기억을 루네이는 과장도, 선동도 하지 않고 담담히 따라가는 방식을 택했다. 장편 [자비]는 그의 이런 기술 방식에 따라 쓰였고 이로 인해 형성된 이 작품 속 이야기의 스타일을 훗날 문단에서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는 참혹함’이라고 명명했다. 이 ‘낯빛’은 작중 인물들의 것이기도 하고 루네이의 분신인 숨은 화자의 것이기도 하다. 인물들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자신들을 휩쓸고 가는 개인적·역사적 비극의 조류 속에서 미처 ‘참혹한 낯빛’을 표출할 새도 없이 스러져가고, 화자 역시 조용히 경건하게 그들의 족적을 좇는 것만이 마치 자신의 종교적 소임인 듯 시종일관 무표정한 필체를 유지한다.
그런데 아무리 아버지와 다른 늙은 직공들의 증언을 풍부히 취재했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 속 공장과 직공들의 삶은 지나칠 정도로 선명하다. 평론가들에게 “루네이가 그리는 공장은 지난 시절 중국의 축도”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깊이 있는 전형성까지 확보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때 공장은 작가
루네이의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2
루네이는 직공, 영업 사원, 창고 관리자, 경리, 웹디자이너, 라디오방송국 앵커, 광고 회사 직원 등 10여 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그중 진정한 ‘직업’이라고 할 만큼 오래 일한 것은 직공과 광고 회사 직원이었다. 고향 쑤저우의 설탕 공장에서 5년, 쑤저우와 상하이의 광고 회사에서 12년을 일했다. 하지만 여섯 권에 달하는 그의 장편소설은 모두 공장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으며 그의 광고 회사 경력과는 무관하다. 그가 청춘의 대부분을 보낸 공장에서의 경험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단에서는 그를 ‘공장소설가’혹은 ‘성장소설가’라는 닉네임으로 부르곤 한다.
1989년 중학교 3학년이었던 루네이는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다. 하지만 평생을 공장에서 보낸 아버지는 그에게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가라. 그러면 내가 야간 대학에 보내주마. 야간 대학을 나오면 어쨌든 대졸자가 아니냐?”라고 권했다. 당시 공장들은 대부분 국영 기업이었고 사람들은 국영 기업에 다니는 것이 대학에 가는 것보다 못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루네이는 자기가 베이징 대학이나 칭화 대학에 들어갈 실력도 못 되니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해준 공업고등학교 입시에서 그는 커트라인을 넘었는데도 떨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뒷문’으로 들어온 다른 학생들에게 밀린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직업 기술 학교에 가야 했고 그곳을 나오자마자 아버지의 옛 동료가 부공장장인 설탕 공장에 들어갔다.
그 낡은 설탕 공장은 어딜 가나 폭발의 위험이 있었다. 나중에 그는 “모두가 군사 전문가처럼 폭발의 규모를 계산하고 있었어요”라고 회고했다. 어떤 동료는 대형 가마의 뚜껑을 수리하다가 가마가 폭발하는 바람에 200~300미터를 날아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는 주로 전기 설비의 수리와 관리를 맡아 일하면서 점차 생활에 적응했다. 한번은 멀리 떨어진 배전실에서 밤샘 근무를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공장 간부가 근무 확인을 하려고 담을 넘어왔다가 그를 적발했다.
“왜 근무 시간에 잠을 자는 거지? 공장 수칙을 어겼으니 수당을 깎겠다!”
하지만 간부의 날선 위협 앞에서도 그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배전실 담을 넘는 것도 수칙 위반인 걸 모르세요? 당신도 수당을 깎아야 해요!”
이처럼 루네이는 닳고 닳은 직공이 되었지만 문학은 늘 그의 벗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세계 명작을 읽었고 공장에 다닐 때는 무료할 때마다 문학잡지를 들추곤 했다. 마침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은 중국 현대문학의 생명력이 가장 왕성했던 시절이었다. 독서 이력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는 시와 소설을 끼적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공장을 그만두었다. 문학이라는 것에 자신을 걸어보기로 하고 일 년간 집에 틀어박혀 장편소설 쓰는 일에 매진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아무것도 쓰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방향으로 써야 할지도 몰랐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적막함이었다. 그가 살던 쑤저우에는 그와 교감을 나눌 만한 젊은 작가들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원고 더미만 앞에 두고 끙끙대고 있으면 가끔씩 어머니가 등 뒤에서 몇 마디 물을 뿐이었다. 게다가 생계에 대한 압박이 점점 심해지면서 그는 결국 최초의 글쓰기 시도를 포기해야만 했다.
1998년, 루네이는 광고업에 입문했다. 영업 사원이 되어 매일 일을 따내려 출장을 다니면서 자연히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4년 뒤, 직장도 쑤저우에서 상하이로 옮겼다. 그런데 당시 상하이에서는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해 그는 친구를 사귈 필요가 없어졌다. 매일 게임방에 가듯 회사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면서 시와 소설을 쓰는 네티즌을 무수히 사귀었다. ‘루네이’도 원래 그가 자주 이용하던 문학 사이트의 아이디였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글쓰기를 해봐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와 단편소설을 습작하면서 점차 감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6년 6월, 어머니가 그를 보러 상하이에 왔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는 6월 한 달을 꼬박 어머니의 상을 치르며 보냈다. 그리고 7월에는 독일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에 푹 빠졌다. 잠을 설쳐가며 단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관전했다. 그리고 8, 9월부터 어떤 희한한 상태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자꾸 옛날 일들이 떠오르더군요. 아내에게도 얘기해본 적이 없는 일들이 냄새, 색깔까지 되살아나서 글을 쓸 때면 하나로 뭉쳐졌어요.”
그는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해의 남은 시간을 한 권의 소설을 쓰는 데만 매달렸다. 매일 출퇴근길의 버스와 지하철에서도 그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막 집을 샀고 또 어머니의 장례까지 치른 터라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집에 컴퓨터가 한 대밖에 없었는데 아내도 그것으로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내가 잠든 뒤에야 담배를 피우며 그 낡은 컴퓨터를 두드렸다. 이미 잊고 있던 많은 기억이 글쓰기를 통해 되살아났다.
두 달 만인 12월 초, 18만 자짜리 장편소설 [소년 바빌론]이 탄생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두 번째 장편인 [그녀를 쫓는 여정]은 더 빨리 썼다. 이듬해인 2007년, 그는 유명 문학잡지인 [수확]에 그 두 권의 장편소설을 연이어 연재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이 신예 작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많은 사람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3
그 후로 8년간 루네이는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하지만 고료와 인세 수입은 보잘것없었고 사실 그 자신도 작가로서 생계를 유지할 만한 수입이 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기에 계속 직장을 다니면서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사이 문단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계속 높아졌다. 예를 들어 중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인 왕안이王安憶는 루네이 소설의 장점이 “청춘에 관해 쓰는 동시에 알게 모르게 1990년대 사회 변동기에 공장에서 나타난 모순과 세태와 인심을 다루면서 그것들을 관념의 선행이나 인위적 의도 없이 여유로우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한 데 있다”라고 칭찬했다.
이런 평가의 배경에는 당시까지 그가 발표했던 소설들이 거의 예외 없이 청춘과 공장을 키워드로 삼아 1970년대 생인 한 젊은이가 기술학교를 다니다가 공장에 들어가 일하는 방황의 세월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끈질기게 자신의 성장기를 소설화하며 그 시절의 기억과 그 청춘의 에너지를 문자로 남기려 했다. 그것은 동시에 여느 다른 작가들처럼 창작 초기에 성장소설의 방식으로 자신의 경험과 기억의 트라우마를 다 해소하고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준비의 과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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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루네이는 자신의 소설 입문 10년을 기념하는 여섯 번째 장편 [자비]를 발표했다. 이 소설에서 그는 처음으로 글쓰기의 초점을 자신의 세대가 아닌 아버지의 세대로 돌렸다. 반세기에 걸쳐 전개되는 쉬성, 건성, 위성 등 평범한 인물들의 결코 평범치 않은 삶을 간결하게 절제된 문체로 묘사하여 시대의 변화와 사회 운동의 충격 속에서 중국과 중국인이 겪었던 성장과 아픔을 들춰냈다.
루네이의 이런 문학적 변화를 중국 문단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2016년 중국어문학매체상의 ‘올해의 소설가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마오둔 문학상, 루쉰 문학상과 함께 오늘날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뜻밖의 영광임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자비]의 글쓰기가 비교적 절제되어 있고 실험적인 서사와는 거리가 멀며 제재도 리얼리즘의 틀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보통 문학계는 문체나 서사 면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저는 주목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가 좋았고 이것을 쓰고 싶은 욕망에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떨지는 그리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과거에 쓴 ‘성장소설’과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택했느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자비]의 제재 자체가 기발한 서사적 기교와는 맞지 않아 스스로 절제된 방식을 택한 듯합니다. 작중 인물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듯 소설도 자신의 적합한 언어를 선택하는 거죠.”

이제 루네이에게 글쓰기는 문학을 애호하는 한 직장인의 ‘취미’나 ‘중독’이 아니다. 2, 3년 전에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비로소 문학에 삶과 생계를 동시에 걸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자비]가 스스로 적합한 언어를 선택한 것처럼 비로소 그의 인생도 스스로 적합한 삶의 형태를 찾아갔다.
2015년, 그는 유수한 영화사와 감독 및 극작 계약을 맺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의 첫 장편 [소년 바빌론]의 영화화 작업이었다. 그는 영화 연출이 소설 쓰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이라면서 “글쓰기는 개인적인 일이고 형식적으로 단순하지만 감독은 형식적으로 복잡해요. 때로는 예술가 같고, 때로는 공장장 같죠”라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2015년 상하이 국제영화제 최우수신인감독상, 2016년 베이징 대학생영화제 최우수 데뷔 작품상을 수상했고 2016년 최종 박스오피스 309만 명을 기록했다. 소규모 문예 영화로서는 작지 않은 성과였다.
루네이는 그것이 소설이든 영화든 다음 행보를 통해 어떤 작품 세계를 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다. 그는 간단치 않았던 자신의 삶의 역정과 중국인들의 지난했던 과거 속에서 인상적인 제재를 택해 숨을 불어넣고 스스로 입을 떼게 만드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그 입에서 나오는 유장한 숨결과 다채로운 이야기에 나는 계속 가만히 귀 기울이고 싶다.

목차

자비 006
후기 347
옮긴이의 말 353

미리보기

“나는 가난하고 능력이 없어서 텔레비전은 살 수 있었지만 배는 곯고 있어. 벌써 두 달이나 아침밥을 못 먹었다고. 그래서 보조금을 신청한 건데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_「본문」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루네이路內

1973년생이며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다. 잡지 『GQ 차이나』 선정 올해의 인물 중 ‘2012년의 작가’로 뽑혔으며 최근 몇 년 사이 문학잡지 『수확』 『인민문학』에 연이어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연재했다. 대표작으로 ‘추적 3부작’(『소년 바빌론』 『그녀를 쫓는 여정』 『천사는 어디에 추락했나』)과 『구름 속의 사람』 『꽃 거리의 과거』 등이 있다.

 

옮긴이

김택규

1971년 인천 출생. 중국 현대문학 박사.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중국 저작권 수출 분야 자문위원. 출판 번역과 기획에 종사하며 숭실대학교에서 번역을 가르치고 있다. 『번역가 되는 법』을 썼고, 『이중톈 중국사』, 『암호해독자』, 『논어를 읽다』, 『단단한 과학 공부』, 『사람의 세상에서 죽다』, 『이혼지침서』, 『죽은 불 다시 살아나』, 『아큐정전』 등 50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