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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을 禁하다 금제와 욕망의 한국 대중문화사 1945-2004
  • 지은이 | 김성민
  • 옮긴이 |
  • 발행일 | 2017년 07월 24일
  • 쪽   수 | 260p
  • 책   값 | 15,000 원
  • 판   형 | 142*205
  • ISBN  | 9788967354350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일본 대중문화 금지!’ 아톰에 담긴 의미

저자는 우리 생활 속 일본 문화 유입에 대표적인 사례로 1970~1980년대를 풍미한 애니메이션 [우주소년 아톰]을 들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철완 아톰]의 한국어판 [우주소년 아톰]은 일본 문화가 정식 수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전까지 많은 사람이 ‘국산’으로 알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한국어로 된 주제가가 나왔고 허리를 젖히면 바퀴가 튀어나오는 멋진 장난감에는 한글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홍명보가 소속되었던 축구팀 ‘포항 아톰스’의 마스코트가 아톰이었던 것도 그런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철완 아톰]의 정식 수입이 금지되어 있던 사이 [우주소년 아톰]이 대신 고도성장과 개발독재기 한국의 하늘을 날아다녔던 것이다.

아톰의 사례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한일관계의 문화적 측면을 나타내주는 역사적 산물이다. 1998년에 실시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한일 간 문화적 단절과 교류의 전환점으로 보는 ‘공식적인’ 한일관계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금지와 월경이 공존하는 수십 년간의 일본 대중문화 금지 메커니즘이 아톰의 사례에도 깊숙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지의 시대’에도 한국사회와 일본 대중문화는 줄곧 만나왔다.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 등을 접했던 경험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지역과 세대를 관통하는 집합적 기억으로까지 자리 잡고 있다. 20세기의 한일관계는 구舊일본 제국 지배에 의한 1945년까지의 ‘식민지 체제’와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1965년부터의 ‘65년 체제’를 통해 구축되었다. ‘65년 체제’는 미국이라는 압도적인 권력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하에서 일본과 한국은 동서의 체제 경쟁과 산업적 근대화를 수행하는 우방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성가신 인접국으로서 끊임없이 포스트식민적 관계를 재구축해왔다.

이 책은 일본 대중문화 금지를 전후 한일의 문화적 역동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현상으로 설정, 그 양상을 구조적·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이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양국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조건들이 생산한 역사적 구성물이며, 뒤틀린 양국의 문화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대중문화 금지와 월경을 둘러싼 ‘금지의 구축 과정’(1부), ‘금지 메커니즘’(2부), ‘금지의 해체 과정’(3부)으로 한일의 문화적 관계의 성격을 살펴본다.

 

일본어로 쓰고 한국어로 옮기다

이 책은 지은이와 옮긴이가 동일하다. 일본 홋카이도대 교수인 저자 김성민이 일본어로 쓴 자신의 책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2014년 일본에서 [戰後韓國と日本文化-倭色禁止から韓流まで]라는 제목으로 먼저 출간되었다. 제목 그대로 옮겨보면 “전후 한국과 일본 문화-왜색 금지에서 한류까지” 정도가 될 텐데, 한국어판 제목은 [일본을 禁하다: 금제와 욕망의 한국 대중문화사 1945―2004]로 새롭게 붙였다. 일본에서 출간되었을 당시 일본 언론과 독자들은 식민지 시대의 기억과 냉전 체제의 질서, 개발의 욕망과 뒤틀린 한일관계 속에서 복잡하게 얽힌 두 나라의 문화적 관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마디로 “해방 후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관계”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형성된 ‘65년 체제’는 매우 복잡한 것이었다. 미국이라는 압도적인 권력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하에서 구舊식민자 일본과 구舊피식민자 한국은 동서의 체제 경쟁과 산업적 근대화를 수행하는 우방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성가신 인접국으로서 끊임없이 포스트식민Postcolonial적 관계를 (재)구축해왔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65년 체제의 문화적 성격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65년 체제가 문화의 영역은 공백으로 남겨둔 채, 정치적·경제적 관계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가 영향력을 발휘할수록 식민지 시대를 떠올리게 되고, 이러한 ‘문화적 위협’ 속에서 ‘일본 대중문화 금지’라는 정체성 정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밀접해지는 경제적 의존과 교환 속에서 문화적 습합과 길항은 점점 복잡미묘해졌다. 저자는 이걸 풀어헤쳐서 미국의 압도적 작용, 남북 간의 긴장관계, 개발독재와 국민동원, 산업적 근대화라는 흐름 속에서 살펴본다. 즉 한일의 문화적 관계는 식민지 시대에 규정된 관계의 프레임으로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색, 해방 이후 척결 일변도에서 중층적 의미로 변모

해방 이후 한국의 언론들이 중심이 되어 척결에 나선 ‘왜색倭色’은 일본화의 잔재를 총칭하는 말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간판과 상표, 민중의 일본어 사용, 음반과 영화 등에서 ‘민족적인 것의 투명성을 해치는 요소’인 왜색이 구분되고 철거, 압수되었다. 당시의 신문들에 따르면 그것은 ‘식민지 시대의 습관을 버리고 새 나라의 새 백성이 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을 거치면서 왜색 일소 운동은 단순히 ‘일본 제국으로부터의 탈식민화’라는 프레임만으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성격을 갖기 시작했다. 식민 지배 협력자들을 국가기구의 핵심적인 세력으로 등용했던 것이다. 이로써 일본 대중문화 금지에서 ‘국가’는 그 정당성을 보증하는 주체가 아님이 드러났다. 이때부터 왜색 금지의 정당성은 금지를 엄격하게 수행하는 것보다 말하고 주장하는, 즉 ‘명령하는 것’ 자체에 의해 보증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 일본문화 밀수 척결로 정권지지 도모

일본 상품의 유통과 소비를 가능하게 했던 주된 루트 중 하나는 부산항을 경유한 밀수였다. 의복, 문구류, 보석, 화장품, 음반, 피아노, 파친코(일본식 슬롯머신) 등이 한국인은 물론 일본의 업자들과 미군 등에 의해 흘러들어왔고, 이런 외래 사치품들이 백화점 등에 진열되어 있는 광경은 ‘애국적인 각성’을 필요로 하는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졌다. 박정희 정권은 대대적인 단속과 처벌에 나섰는데, 이는 ‘자립 경제’라는 정권의 목표를 선전하고 동시에 밀수에 대한 사회적 불만을 군사 정권 지지로 끌어오기 위해서였다. 반일주의가 다시 군사 정권의 중요한 통치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그런데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를 전후로 일본 대중문화와 일본 상품이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정식 수입된) 라디오에서 일본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그 곡이 수록된 음반은 밀수되어 레코드 가게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모순’을 내포한 ‘일본 대중문화 금지’의 구조가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식인들이 나섰다. ‘천박’이라는 코드를 통해 비판담론이 본격화 된 것이다. 주요 프레임은 ‘해방 이후 매스미디어를 통해 새롭게 침투하여 식민지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까지 유혹하는 문화적 침략’이라는 것이었다. 1965년 즈음 대학생, 시민이 주체가 된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은 일본 대중문화 월경의 실체를 감시하고 고발, 검열하는 주체가 정부의 차원을 넘어 다중화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일 관계는 미국의 냉전 전략에서 매우 중요

하지만 점차 민족 순결주의, 계층화를 부르는 문화자본, 저속한 대중문화 확산 등에 포섭될 수 없는 새로운 주체의 욕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깐 미국을 생각해보자. 한국 대중문화의 형성 과정에서도 특히 미군부대로부터 유입된 미국의 문화적&, 제적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역시 미군 병사를 위한 클럽과 극장, 기지 주변의 카바레와 바 등이 성행했는데 그곳에 고용된 한국인 뮤지션과 매니저들에게 지불된 금액은 연간 100만 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규모는 1950년대 한국의 대외 수출액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다. 한국 미디어, 도시 공간은 미군을 중심으로 미국화되기 시작했다. 외국 문화의 침투에 머물지 않고 한국인의 생활양식 그 자체를 재편했다. 이는 동아시아의 ‘일본 제국에서 미국 제국으로의 재편 과정’을 통한 정치적&, 화적 동질화이기도 했다. PX를 통해 유통되는 미국 담배와 위스키, 커피, 코카콜라 등이 한국의 도시 공간과 소비생활을 구성하는 중요한 물질이었다면, AFKN은 일반 대중을 가장 쉽게 외국의 선진적인 대중문화로 연결하는 미디어였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강조한다. 한일의 문화적 관계의 배경에는 ‘냉전’이라는 보다 절대적인 구조와 미국이라는 보다 압도적인 제국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이다. 즉 한일의 문화적 관계는 미국의 냉전적 전략상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미디어의 문제, 텔레비전과 영화

반일과 반공 모두 유효한 통치 이데올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반일에 의한 금지에는 반공에 의한 금지를 명령하는 미국과 같은 강력한 검열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반공과 반일은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것이었다.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전략의 주된 내용은 일본을 ‘중핵국가’로 하는 안보 체제와 경제 협력의 구조를 구축하고 그 안에 한국과 대만을 배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소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적인 것’이 유입된 것은 공적이고 공식적인 공간이었으며 ‘일본적인 것’이 유입된 것은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두 공간은 냉전적 문화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교착하며 공통의 경험과 기억으로서 축적되어갔다.

일본이 미국과 함께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텔레비전 방송이었다. 군사 정변 직후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KBS(한국방송) 개국을 통해 시작된 본격적인 텔레비전 방송은 일본에서 수입한 수상기 2만 대를 기반으로 했다. 프로그램의 포맷과 내용 역시 다양한 형태로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무선용 기재를 갖춘 TBC(동양방송)가 1964년에 개국한 뒤로는 일본의 유명 TV드라마의 포맷을 모방하기 시작했고, 당시 방송 현장에서 일본 NHK, TBS, N-TV(니혼 TV) 방송 시스템은 중요한 학습 대상이었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 [해저소년 마린]이 [마린보이]라는 타이틀로 MBC의 개국 프로그램으로 방영되는 등 어린이 방송에서도 일본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1956년에 미국의 MGM 사가 제작하여 1957년에 일본에서 공개된 영화 [8월 15일 밤의 찻집The Teahouse of the August Moon]이 1962년에 한국에서 상영된 것은 왜색의 침투가 ‘미디어 보급’의 문제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였다. 어떤 작품에 왜색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도 그 작품이 ‘Made in USA’인 이상 수입을 규제할 수 있는 법 제도적 장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지 메커니즘: 부산을 통한 전파 월경

일본 문화를 둘러싼 경험은 내재하고 있던 일본을 말소시키고자 하는 ‘탈식민화’의 과정만이 아니라 인접국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현대적인 경계를 구축해나가는 현상이기도 했다. 부산에서 경험한 전파 월경은 그러한 일본 대중문화 금지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현상이었다. 즉 부산은 하나의 ‘경계적 공간’이었다. 식민지 조선과 해방 후 한국, 전쟁이 가져온 피해와 특수特需, 그리고 서울이라는 중심과 주변으로서의 부산 등 중층적 경계가 부산이라는 도시 공간 안에서 구축되고 교착했다. 그리고 이 경계적 공간에서의 가장 현대적인 ‘경계 침범Trans-bordering’이 바로 일본으로부터의 전파 월경이었다. ‘전파 월경Spill over’이란 ‘월경하는 정보 및 방송에의 국가의 감시와 규제의 권리를 둘러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힘겨루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미디어 보급 과정의 보편적인 문화 현상 중 하나다.

1950년대, 전파와 함께 부산으로 넘어온 것은 일본의 라디오 방송이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규슈 지방의 라디오 방송이 제도의 제약 없이 부산을 포함한 남해안에 닿았다. 특히 1951년에 개국한 RKB 라디오 규슈와 1954년에 개국한 KBC 규슈 아사히방송 등의 상업 라디오 방송이 부산의 미디어·도시 공간에 영향을 끼쳤다. 라디오에 이어 텔레비전 문화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1970년대에 들어서자 텔레비전 수상기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일본 방송은 좀더 일상적인 대중문화로 수용되었다. 한국에서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1981년보다 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 시민들은 AFKN과 일본 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앞다투어 수상기를 구입했다. 1975년 부산시 문화공보실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컬러텔레비전 수상기는 4만 대 정도 보급되었다. 금액도 전년까지 대당 38~50만 원이었던 것이 대당 120~150만 원까지 급등할 정도로 그 수요가 늘었다.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던 식민지 시대부터의 연속적 맥락, 한국전쟁의 경험, 밀수에 의한 블랙마켓의 형성, 국내 라디오·텔레비전 산업에 대한 영향 등은 부산이 가진 역사적·지리적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 대중문화 금지’의 맥락에서도 매우 큰 의미였다. 일본 방송의 전파 월경을 중심으로 잡지, 서적, 대중음악, 비디오, 가라오케 등 다양한 일본 대중문화가 유입되어 부산의 일상적 미디어 문화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타이거마스크]도 [마징가제트]도 미국산으로 둔갑

1970년대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미디어는 텔레비전이었다. 1968년에 12만 대에 불과했던 텔레비전 수상기의 보급 대수가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보급 정책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해 5년 후인 1973년에는 120만 대, 1978년에는 500만 대에 달했는데, 이와 함께 어린 이들의 관심도 만화에서 텔레비전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우주소년 아톰]이나 [타이거마스크] 등의 TV 애니메이션은 새로운 텔레비전 시대의 대표적인 아동&, 소년 문화였다.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은 작품의 배경이나 주인공의 이름을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왜색의 제거’를 시도했다. 첫 번째 방법은 ‘국적 변경’이었다. [타이거마스크] 방영 개시 당시의 신문기사가 보여주듯, 당시 다수의 작품은 미국산 혹은 국산 만화영화로 소개되었다. 또한 1971년 [한국 만화 실태 조사 보고서]는 “심사를 받은 만화들 가운데 한국 국기를 달고 있는 일본 운동선수가 나오는 것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일본 만화의 국적을 가리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사진에서 보듯 [마징가Z]도 처음에는 ‘미국산 공상 과학 만화영화’로 소개되었다.

텔레비전 방송은 1970년대 이후 직접적인 법적 규제가 작동하지 않는 일본 대중문화 금지의 구조 아래에서 ‘일본’을 은폐한 채 일본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유입하는 미디어’로 기능했다. 거기에는 시청률과 함께 비용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외국산 애니메이션의 수입 가격은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35~70만 원 정도였는데 이런 콘텐츠를 놔두고 1500만 원에 달하는 제작비용을 감당하며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선다는 것은 당시 방송국들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 카세트테이프, 미국산 가격보다 10배 높아

비디오와 오디오, 카세트테이프리코더 등의 복제 미디어의 보급은 폐쇄적이고 일방적이며 수동적이었던 1970년대까지의 소비문화 패턴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해적판 테이프를 판매하는 거리의 풍경은 1980년대에는 도시 공간의 일부였다. 당시 한국음반협회의 집계에 의하면 부정 불법 음반의 적발 수는 1978년 118건에서 1979년 397건으로, 1979년 한 해에만 40만 장 이상의 해적판 음반이 압수되었다.

특히 일본 대중음악을 녹음한 해적판 음반의 인기가 높았다. 당시 길거리에서 판매되던 카세트테이프 중 일본 유행가의 가격(3000~5000원)은 미국 팝 음악(300~700원)보다 열 배 가까이 높았다. 그 배경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일본 유행가 붐이 있었다. 그 유행은 당시 한국에 들어온 ‘가라오케’로 일본 유행가를 부르던 기성세대(일본어 세대 혹은 일부 산업화 세대)가 아니라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확산된 새로운 현상이었다.

신촌이나 충무로와 같은 대학가와 번화가에서는 곤도 마사히코近藤眞 나 사이조 히데키西條秀樹,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 등 최신 유행가를 트는 다방이 유행했는데, 서울 음악다방 14곳 중 반 이상이 일본 유행가를 틀었다는 영화 잡지 [월간스크린]의 르포도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해적판 시장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해적판 카세트테이프의 가격은 600원에서 3000원까지 폭등했다. 젊은 세대가 주도한 일본 유행가 붐은 새로운 소비문화를 원하던 당시의 움직임 중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여자 고등학교에서 한 반 60명 중 35명이 일본 잡지를 애독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여주듯 번역되거나 각색되지 않고 직접 유입되는 일본 미디어는 해외의 새로운 트렌드 정보원이었다. 이 시기의 10~20대 젊은 층은 그 ‘국적’을 인지한 상황에서 국내의 제재를 받지 않는 일본의 문화상품을 기존의 한국 문화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대중문화로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일본 대중문화의 소비가 젊은 층에게만 한정된 현상은 아니었다. 젊은 층이 음악다방에서 곤도 마사히코의 [긴기라긴니사리게나쿠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를 듣는 사이, 그와 같은 새로운 소비문화를 문제시하던 기성세대도 가라오케에서 이시다 마유미 いしだあゆみ의 [부루라이토요코하마ブル-, ライト, ヨコハマ]를 불렀다. 컬러 TV방송을 개시한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군사 정권의 ‘황당무계한 공상 만화영화 방영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샛별공주魔法の妖精ペルシャ] [들장미소녀 캔디キャンディ, キ, 술공주 밍키魔法のプリンセスミンキ-モモ]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적을 가린 채 방영되고 있었고 [non-no] [an·an] 등과 같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패션 잡지 이외에도 [분게이 슌주文藝春秋] [슈후토세이카쓰主婦と生活] 등의 잡지가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던 상황에 대한 신문의 비판도 계속되었다. 즉 ‘소비’가 새로운 키워드로 부상한 1980년대 한국사회에서 일본 대중문화의 새로운 소비 패턴이 이미 구축되어 있던 일본 대중문화 금지의 공간과 활발하게 교착하면서 새로운 전개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금지에서 개방으로… 금지는 어떻게 해체되어갔는가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글로벌화와 더불어 ‘금지’ 프로세스에서 ‘개방’ 프로세스로 전환되었다. 동시에 의식과 무의식이 복잡하게 섞인 ‘부인의 프로세스’ 또한 집단의식에서 개개인 의식의 영역으로 이행해갔다. 수십 년간 유지된 ‘금지’의 중층적 정당성은 새로운 미디어 공간에서 ‘교류’의 정당성으로 교체되었다.

빈약한 법 제도적 장치가 가장 먼저 부각되었다. ‘저작권’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미국의 압력 아래 1987년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하게 된다. 이렇듯 미국을 통한 글로벌화가 가져온 갈등에 의해 기존의 금지와 새로운 개방의 프로세스가 본격적이고 격렬하게 갈등하기 시작했다. 즉 한일이라는 양국관계의 틀에서 전개되던 금지의 명령이 글로벌화의 틀에서 개방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를 국가 수준에서 공식화한 것이 1998년 10월, 김대중 정권에 의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었다. 동시에 한일 간의 문화적 관계는 새로운 인식과 시선, 전략을 요구받기 시작했다. 1998년의 개방을 시작으로 1999년 2차, 2000년 3차, 2004년 4차 개방을 거치며 일본 대중문화는 단계적으로 개방의 단계를 밟아나갔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제1부 ‘일본 대중문화 금지’의 역사적 조건
1장 ‘왜색’의 의미와 ‘금지’의 형성
1. ‘일본 대중문화 금지’의 원점
2. 탈식민화와 근대화의 기호로서의 왜색
3. 규율과 동원의 수단으로서의 왜색

2장 미디어로서의 미국과 ‘금지’
1. 미국의 헤게모니와 냉전적 문화지도
2. 미군 기지를 통한 ‘안으로부터의 문화 월경’
3. 한일국교정상화와 일본 문화

제2부 ‘일본 대중문화 금지’의 시대
3장 ‘전파 월경’의 중층과 ‘금지’의 메커니즘
1. 경계 공간으로서의 부산
2. 일본의 전파와 한국의 방송 문화
3. 경계의 중층과 ‘경계 구축’의 테크놀로지

4장 미디어를 둘러싼 욕망과 금지의 재생산
1. ‘일본 대중문화 금지’의 메커니즘
2. 일본 애니메이션과 한국 텔레비전 방송
3. 비디오의 보급과 해적판으로서의 일본 대중문화

제3부 금지는 어떻게 해체되었는가
5장 글로벌화의 확장과 ‘금지’의 전환
1. 포스트냉전적 문화지도의 재구축
2. ‘일본 대중문화 금지’를 둘러싼 법 제도적 편성 전환
3. 일본 대중문화를 둘러싼 새로운 전개

6장 문화 교류의 수행과 금지의 향방
1.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프로세스
2. 문화와 역사의 충돌
3. 한일 문화 교류를 둘러싼 새로운 시선과 전략

맺음말 ‘금지의 메커니즘’을 넘어서
일본어판 후기
주 / 참고문헌

미리보기

아무리 힘을 들여 경계를 긋고, 바깥의 존재를 ‘위험하고 불결한 것’으로 규정하고 공고한 방어 장치를 작동시켜도, 어느새 뒤섞여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과 만나게 되는 그 과정이야말로 문화이며, 삶의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대중문화 금지’라는 현상은 한국 대중문화의 형성 과정이자, 경계를 사이에 둔 일본과의 문화적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사적 산물이다.

_「한국어판 서문」

지은이/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