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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년 현대의 탄생, 1945년의 세계사
  • 지은이 | 이안 부르마
  • 옮긴이 | 신보영
  • 발행일 | 2016년 02월 03일
  • 쪽   수 | 464p
  • 책   값 | 23,000 원
  • 판   형 | 157*230
  • ISBN  | 9788967352950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추천의 글
책소개

현대 세계의 ‘0년=1945년’을 주축으로 풀어낸 전후戰後의 인류문명사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뭇사람의 눈물겨운 ‘세상물정의 역사학’

1945년이라는 한 해를 대상으로 세계사를 써내려간 독특한 역사서이자 논픽션 다큐멘터리가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이안 부루마의 [0년](원제 Year Zero)이 그것이다.
‘현대세계를 이해하는 데 창문’ 격인 이 책은 “전후 1945년에 대한 매우 인간적인 역사”로, 현대의 많은 성취와 상처가 응징-보복-고통-치유로 이어진 ‘0년(1945년)’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다면적이고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은 “국가가 아닌 인간에 대해 집중하면서 승리와 패배, 혼돈과 수모의 결정적 해에 대한 뛰어난 재현”을 이뤄내며 “20세기 결정적 연도의 공포와 희망, 앞으로 다가올 문제의 근원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생생한 묘사, 훌륭한 구성과 문체가 합쳐져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저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뉴욕타임스 북리뷰] ‘2013년 주목할 만한 도서’에 뽑혔고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일본, 중국, 브라질 등 여러 국가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원래 ‘0년’은 없다.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는 ‘예수 탄생’은 ‘서기 1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0년]의 저자는 1945년이 ‘0년(원년)’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현대세계가 탄생했기에 그렇다. ‘0년=1945년’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인류 문명을 새로 재건하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해로, 글로벌 차원의 세계체제 전환이 일어난 때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의 학문과 활동 이력답게 전 세계적 시각에서 균형을 잡으며 ‘동시대사 역사서’를 기술해나간 것이 특징이다. 더욱이 엄청난 양의 실증 자료는 주로 각종 사료와 사병 및 일반인의 증언, [베를린의 한 여인]이라는 익명 여성의 체험기, 나가이 가후와 노사카 아키유키의 소설,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 사가구치 안고의 일기, 보부아르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회고록 등으로 이뤄져 권력자의 역사가 아닌 역사서임을 입증하고 있다.

 

해방 콤플렉스, 환호, 기아와 보복, 성적 해방, 매국노 처벌 등 1945년의 퍼레이드

0년의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나치 지옥의 불구덩이’가 유럽을 덮칠 때 네덜란드에서 독일로 끌려갔다가 종전 직후 연합국의 폭격과 기아, 소련 병사에게 처형될 뻔한 봉변을 당했으나 영어를 아는 러시아인 사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아 귀향한 저자의 아버지가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 그것은 단연코 특별한 게 아니며 전 세계의 뭇 사람이 겪은 전쟁 체험이었다. 아버지의 개인사에 대한 저자의 연민은 ‘1945년의 세계사’에 대한 지적 탐구의 열정이 됐고 세계적 변혁에 대한 공시적, 국제적인 관점으로 뻗어나갔다. 현대 문명과 폐허의 상처가 이 운명적인 해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걸 파헤치는 이 책은 저자 아버지의 개인사적 휴먼 드라마에서 시작하지만 ‘전후戰後의 세계사’로 뻗어나간다.
저자는 종전 뒤에 따라온 해방 콤플렉스, 기아와 보복의 만연, 성적 해방, 귀향, 매국노 처벌, 인민재판식 숙청, 전범 재판의 불완전한 정의, 평화와 인권에 대한 희망, 야만의 문명화 등과 같은 결정적 주제들을 비범하게 다뤄나간다. 히틀러 제3제국의 인종말살 정책과 일본 천황제 파시즘의 태평양전쟁, 그리고 미국의 승전으로 이어지는 거대 서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승전국의 행패와 패전국 국민이 겪었던 고난까지, 세계인의 삶의 다양한 층위에 영향을 미친 ‘1945년의 여파’를 세세하게 묘사한다. 전쟁과 전후의 주역은 히틀러도 처칠도 루스벨트도 스탈린도 김일성도 이승만도 히로히토도 아니고 바로 혹독하고 참담한 꼴을 당한 동시대인 모두였다는 사실을, 이것이 과연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응시하는 용기로 역사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겸비한 ‘전후’의 기억을 되살려낸다.

 

전쟁은 끝났지만 계속되는 살육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 수용소를 해방시킨 연합군 장교의 발아래서, 엉덩이를 들 힘조차 없어 그 자리에서 대변을 봐야 했던 유대인 여성, 재생산을 위해 문란한 성행위에 본능적으로 집착했던 유대인 생존자들, 폐허의 도시에서 돈 몇 푼과 담배를 쥐여주는 군인들 대상으로 몸을 팔았던 ‘폐허의 생쥐’ 베를린 성매매 여성들, 일본군 공창의 성노예가 되어버린 한국 여성들, 바닥이나 급조한 매춘굴의 홀에서 매춘을 해야 했던 일본 여성들……. 현대세계의 등장에는 사악한 권력 투쟁이 뒤따랐다. 스탈린에 의한 유럽의 분단은 전쟁이 남긴 가장 지독한 상처였다. 세계의 거대 도시들이 폐허가 됐고, 인구는 대량 살육당했으며, 뿔뿔이 흩어지고 기아에 허덕였다. 가혹한 보복이 대규모로 가해졌고, 보복을 위한 명분이 쌓이면서 훨씬 더한 공포가 예고됐다. 연합군도 점령지 여성을 성폭행했다.
유럽에서는 5월에, 아시아·태평양은 8월에 전쟁은 끝난다. 하지만 그 뒤에도 막대한 숫자의 인간이 살해되었다. 불결한 상태에서 창궐한 전염병과 ‘기아’에 의해 죽은 목숨도 있지만 ‘보복’으로 생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 “보복하는 데 가장 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해서 전시에 걸출하게 용기 있는 행동을 했던 자들도 아니었다. 피점령국이 해방되자 모든 남자는 자신이 레지스탕스 일원이었다고 주장하거나, 새로 획득한 완장을 찬 채 (영국제) 스텐 경기관총을 들고는 배신자와 나쁜 여자들을 사냥하는 영웅인 척하면서 으스대며 걸어다녔다. 복수는 위험한 시절에는 과감히 떨쳐 일어나지 못했던 데 대한 죄책감을 덮는 일종의 방편”이었다.

 

동족에 대한 경멸, 부의 격차와 인종주의로 인한 악순환

독일과 일본 전쟁포로는 국가적 패배라는 사실만으로도 버거웠을 테지만 동족의 경멸, 증오와 맞닥뜨려야 했다. 재앙을 초래한 전쟁의 책임이 있다는 것, 오만한 전사로 국가 위에 군림하더니 비굴한 패자로 돌아왔다는 냉대와 무시의 대상이 되었다. 평화가 찾아오자 사람들은 군인들이 전시 폭력에서 범죄로 신속히 갈아타는 것을 목격하면서 제국 군대에 대한 자부심은 더욱 손상되었다.
대중의 분노는 불평등하게도 ‘매춘 협력’ 혐의로 고발된 여성들에 집중되었다. 사실 이 여성들에 대하여 “눈치 없고, 이기적이며, 외설적이며 모욕적”이라고 비난할 순 있어도 이는 엄연히 반역죄와는 달랐음에도 이들 여성은 “국가적으로 사기를 떨어뜨린 자로 가치 없다”며 유죄를 선고받고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적과 동침하는 것은 충분히 나쁘지만, 남들보다 잘사는 것은 더 큰 범죄였다. 만주와 유럽에서 소련 적군은 민간인 약탈, 성폭력 등 최악의 행동을 해도 된다는 분명한 지시를 받았다. 부富의 격차와 인종주의가 서로 적대적인 선전·선동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낳았고, 이는 독일에서 소련의 행동을 특별히 잔혹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소련 군인에게 성폭행당할 위험이 중단된 것은 1947년 군대가 기지에만 머물게 된 뒤였다.
왜 이따금 피의 복수가 히틀러의 주요 피해자를 대상으로 행해졌는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마저 금이 갔기 때문이다. 전쟁은 끝나고 나치는 물러났지만, 귀향한 유대인들은 위협받았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폴란드인들은 다른 많은 유럽인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받았던 고통을 훨씬 더 크겤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풀려고 했다. 1000명 이상의 유대인이 1945년 여름과 1946년 사이 폴란드에서 살해되었다.
반反독일 폭력은 비도덕적인 인사들로 급조된 민간 무장조직이 저질렀다. 강제수용소를 운영하고 죄수들을 고문, 무작위로 죽였으며, 아무 이유 없이 죄수들을 공개 비판대에 세웠다. 피에 대한 욕망은 물질적이면서 계급적인 질투로 인해 더 거세게 타올랐다. 교사나 교수, 사업가 그리고 기타 상위 부르주아 계급이 인기 있는 목표물이었다.
한편 프랑스 드골의 경우 전쟁 전의 엘리트에게 최소한의 타격만 가하는 방식으로 전후 처리를 했다. 사업가와 재정가, 법률가, 교수, 의사, 관료의 전문 지식과 기술이 필요했다. 페탱은 대서양 연안의 작은 섬으로 추방되었다. 다른 나라처럼 기업과 산업 엘리트들은 대개 제재를 받지 않았다. 향수회사 로레알 창업자와 같이 악명 높은 나치 동조자들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악행에 대한 처벌은 다른 나라 사례처럼 프랑스에서도 상징적인 것이었고 처벌도 공정하지 않았다. 기득권층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봤다.

 

포스트 1945년의 세계사’와 냉전의 참혹한 희생양

저자가 신랄한 문체로 보여준 가장 중요한 통찰은 전쟁이 양측의 깔끔한 충돌이 아니라는 것이다. 승자 중에도 악한이 있고, 패자가 모두 나치인 것은 아니었다. 많은 전선(특히 유고슬라비아)에서 많은 집단이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 승리의 결과에도 여지없이 암울함이 드리웠다. 승전국은 도쿄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으로 법치를 실현하고자 했지만 정의는 불완전하기 짝이 없었고, ‘포스트 1945년의 세계사’는 강대국의 정치 편의에 따라 움직였다. 샌프란시스코 협정으로 한국은 승전국의 지위도 누리지 못하고 좌우 진영 논리에 포박된 내전이라는 냉전의 참혹한 희생양이 되었다.
비록 비관주의로 흐를 수 있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영구 평화와 민주주의 정착에 대한 인류의 심원한 낙관주의가 반영된 상당수의 제도(유엔과 유럽 복지국가, 국제 전범재판 체계, 일본의 평화헌법, 유럽연합)가 전쟁 직후에 확립되었다. 승전국은 패전국에 전례 없는 규모의 비무장화, 탈나치화, 민주화를 시행했다. 상당수는 잘못된 조언에 기초했지만, 장기적 차원에서는 꽤나 계몽적이고, 인도적이며, 효과적이었다. 1945년의 공포를 과거 속으로 밀어냈던 사람들의 기개와 결단 덕분에 수십 년 만에 정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파시즘과 군국주의 유령이 배회할 때 떠올려야 할 1945년

1945년 8월 15일 쇼와 천황이 항복하자 한국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본의 전시 제복, 즉 여성은 보기 흉한 농부바지, 남성은 울로 만든 카키색 반바지를 벗어던지는 것이었다. 흰색 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 독립이여 영원하라!”라고 외쳤다. 친일파는 ‘사대事大’의 죄를 저질렀다. 이제는 사대라는 수치는 영원히 없어져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은 이승만의 반민특위 해체로 그럴 기회를 빼앗겼다.
미군정은 좌파를 불신했기에 영어를 할 수 있거나 미국 기관에서 교육받은 옛 엘리트 계급의 보수적 인사들에 크게 의존했다. 그들은 민족주의자이지만 확고한 반공주의자이기도 했다. 하지 장군은 기독교인 이승만을 “한국의 독립과 자유에 바친 위대한 사람”이라며 과대포장했다. 평양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바가지 머리를 한 다소 뚱뚱한 삼십대 남자가 소련 최고사령관의 환영을 받았다. 소련 적군은 북한의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을 한반도에서 일본군을 한손으로 몰아낸 위대한 “국가 영웅” “탁월한 게릴라 지도자”로 묘사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사실 카바로프스크 인근의 소련군 훈련장에서 전쟁 대부분 기간을 보냈다. 반쪽자리 대표자들에 의해 한반도는 분단이 되고, 남침으로 끔찍한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에도 다소 온전한 모습이었던 서울은 폐허가 되었으며, 북쪽의 평양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압제적인 유사 제국주의 왕조의 지배가 온존했다. 남한도 수십 년간 군부 지배를 받아야 했다.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61년 남한에서는 강력한 반공 인사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곧 군부 지배하에서 일본의 전시 계획경제 모델을 도입했고, 정부와 협력한 재벌로 남한 경제는 급성장했다. 문제의 독재자는 1942년 신교의 만주국 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일본 관동군의 중위 출신이었다. 1948년 그는 이승만에 반하는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남한 군대에서 쫓겨난 적이 있는데, 전쟁 기간에 그의 일본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였다. 본명은 박정희다. 박정희를 지지한 일본의 거물급 인사가 기시 노부스케였으며, 노부스케는 만주의 괴뢰 국가 건설을 주도한 사람이었다.

 

배회하는 유령은 사라졌는가

이 책은 체험자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논픽션으로 패전을 당한 독일과 일본만이 아니라 유럽 각지, 미국, 동남아, 중국, 중동 등 세계 각지, 각국과 민족이 겪은 ‘0년’을,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기술 등을 통해 풀어나간다. 불탄 자리, 암시장, 기아, 전염병, 매춘……. 이것들은 일본만의 전후 풍경이 아니었다. 폭격과 살육, 수용소의 결과로서 세계 각지에서 벌어졌다. 일본에서는 천황을 위해 명예롭게 죽도록 훈련받은 군인들이 한국과 대만계 조직폭력배나 일본 하위계층의 건달, 그리고 파괴된 사회의 부랑아들처럼 재빨리 암시장 매매자로 변신했다.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제3국 국적자’로 불린 100만 명이 넘는 한국인과 중국인, 대만인들이 최악의 범죄자로 간주되었다. 독일 암시장의 유대인과 난민들처럼 한국과 대만의 폭력배들도 전리품 확보를 놓고 일본인과 경쟁했다. 그들도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다면 정의가 실현됐는가? 정의가 실현됐다고 확신할 만큼 숙청과 재판이 충분했는가? 답은 ‘아니다’이다. 전쟁 직후 가장 기괴한 장면 중 하나가 난징에서 발생했다. 오카무라 야스지 장군의 부대는 1938년 화학 무기로 셀 수 없이 많은 민간인을 살해했다. 1942년 그의 삼광작전三光作戰(모두 죽이고, 모두 불사르고, 모두 약탈하라)으로 200만 명 이상이 죽었다. 일본은 조직적으로 젊은 여성들을 주로 한국에서 납치해 일본군 매춘굴에서 성노예로 일하게 했는데, 이는 오카무라가 제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카무라가 1945년 9월 9일 난징에서 국민당 허잉친 장군에 항복했을 때, 허장군은 오카무라를 ‘센세이(선생)’라 부르며, 굴욕을 주는 방식으로 불명예를 겪게 한 것을 사과했다. 오카무라는 난징의 외무부 건물을 그대로 점유했다. 오카무라가 3년 뒤 난징에서 전범으로 기소된 뒤에도 장제스는 오카무라가 더는 수모를 겪지 않도록 방어했고, 오카무라를 국민당 정부의 군사고문으로 삼았다. 오카무라 야스지는 1966년 자신의 집 침대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
유사 이후 처음으로 전쟁을 법정에서 심판한 뉘른베르크 재판, 도쿄 재판이라는 연합국의 전쟁 범죄 재판에 결함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지만, 도쿄 재판에서 히로히토 천황은 처벌을 받지 않고 도조 히데키만 처벌 받았듯이 뉘른베르크 이상으로 결함이 있었다. 너무 많은 범죄자가 무죄방면되어, 몇몇은 화려한 경력을 쌓으면서 죄가 훨씬 가벼운 사람들이 희생양으로 처벌됐다.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최악의 일본 전범 중 한 명은 이시이 시로라는 의사였다. 그 역시 1959년 도쿄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장례위원회 위원장은 이시이의 직속 부하였다가 나중에 731부대 지휘관 자리를 승계한 기타노 마사지 중장이었다. 기타노는 혈액실험 전문가였는데, 일본의 첫 번째 상업 혈액은행인 ‘녹십자’ 회장이 되었다. 기시 노부스케도 아유카와 기스케와 함께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다. 하지만 기시 등이 일본에 건립한 제도는 거의 손상되지 않고 온전하게 남았다. 1940년대 말부터 일본은 서독처럼 공산주의에 맞서는 요새로 변했다.
연합국은 정의를 재건하는 것보다 경제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빠르게 인지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히로히토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고 일본 천황을 체제 지속의 상징으로 활용하며, 본인은 임시 쇼군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다. 맥아더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천황이 필요하고, 천황은 모든 죄로부터도 면책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현인신顯人神으로 추앙받는 천황이라는 “강력한 지배자에게 복종하는” 일본인의 집단주의적 전통을 간파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 전문가인 만큼 한국의 위안부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그는 “일본군 치하의 국가에서 납치된, 이른바 위안부는 사실 일본군 공창의 성노예”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아베 내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 책임은 고사하고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조차 명확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와중에 2015년 12월 한일 정부는 기괴한 위안부 문제 합의를 했다. 일본군 일각의 일탈일 뿐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은 아니라는 듯, 일본은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지원금으로 무마하려 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하고,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로 상호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약속을 일본에 해주었다. 2015년 9월 아베 총리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11개 안보법안을 통과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70년 만에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저자는 아직도 세계에서는 전란이 끊이지 않아 유엔이 기능 부전에 빠지는 경향이 있고, 일본에서도 평화주의를 과거의 유물로 작심하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으며, ‘0년’의 소득인 일본의 평화주의는 일본을 정복했던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속해 있었다고 일갈한다. “70년이 지난 지금조차도 여태껏 가슴이 아파 읽기조차 어려운 이 책은 오늘날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악의 힘에 의한 일상적 공포를 심도 있게 반영하고 있다”고 한 브라이언 우어카트 전 유엔 사무차장의 말마따나 파시즘과 군국주의 유령이 배회할 때 떠올려야 할 것은 1945년인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_ 폐허의 0년, 결코 끝나지 않을 우리 모두의 이야기

1부 해방 콤플렉스

1장 환호
아른험 폭격과 몬티의 파티 | 파리 여성의 미군 사냥 | “립스틱은 신이 내린 선물” | 베를린의 성매매 여성, 폐허의 생쥐 | 일본의 ‘수치’와 독일의 ‘명예’의 정체

2장 기아
라마단 식단과 먹거리 암시장 | 야수를 먹여 살리라고?

3장 복수
폴란드인들이 가한 보복의 성격 | 적은 독일이 아니었다 | 종전은 해방이 아니다: 동인도제도, 인도차이나, 말레이 반도의 복마전

2부 잔해를 걷어내며

4장 귀향
드골주의자의 전쟁포로 무시 | 암시장 깡패가 된 가미가제 특공대 | ‘유럽의 하수 처리장’ 대참사: 오스트리아 케른텐 | 동유럽의 독일인 추방과 히틀러 프로젝트 | 유대인 난민, “우리는 어디에도 없다”

5장 독소 제거하기
미국의 어설픈 독일 탈나치화와 나치 과거 세탁 | 미군정의 오류: 경제 관료 전범에 대한 면죄부 | 필리핀의 항일인민군 ‘후크발라합’을 배신한 맥아더 | 일본군, 장제스를 위해 복무하다 | 기득권층에게 최소한의 타격만 가한 드골

6장 법의 지배
최악의 일본 전범, 이시이 시로 | 마닐라 학살의 전범 ‘야마시타 도모유키 재판 논쟁’| ‘친나치 부역자’ 라발과 무서르트의 코미디 | 최악을 공부하는 게 문명화 과정 | 뉘른베르크 재판, “권태의 성채”

제3부 네버 어게인

7장 자신만만한 희망의 아침
폐허의 ‘0년’: 희망의 조건 | 보수주의자 드골의 타협 | 유럽 기술 관료들과 독일 계획가들의 협력 | 기시 노부스케와 괴뢰 국가 ‘만주국’| 사대’의 수치: 한반도의 비극 ‘분단’| 핵폭탄 투하로 날아간 케인스의 희망

8장 야만의 문명화
동독 문화로 이어진 나치의 수사학 | 할리우드와 파리 문화의 각축 | 독일, 프랑스와 미국 문화에서 배울 것 | 집단주의 기질과 위로부터의 일본 개조

9장 하나의 세계를 위하여
루스벨트가 처칠에게: “유나이티드 네이션스!” | 샌프란시스코 회의의 실망스런 결과 | 평화: 스포츠와 음식 이야기 그리고 0년의 성과

^6에필로그 _ 우리에게 자유와 연대, 하나의 세계는 가능한가

미리보기

연합군은 무너진 히틀러 제국 치하의 독일 집단수용소와 강제노동수용소, 포로수용소에 갇힌 수백만 명을 해방시키면 그들이 기뻐하면서 순순히 협력할 거라고 믿었다.

_「본문」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이안 부루마Ian Buruma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아시아 연구자, 저술가, 저널리스트다. 1951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네덜란드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에서 중국 문학과 역사를 전공했으며, 1975~1977년 니혼대 예술학부에서 일본 영화를 공부한 뒤 중국 문화, 20세기 일본사 등 아시아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저술활동을 해왔다. 홍콩의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문화 담당 편집자, 런던의 『스펙테이터』 해외 담당 편집자로 근무한 바 있다. 2003년부터 뉴욕 바드 칼리지의 민주주의·인권·저널리즘 교수로 재직 중이다.

6개 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2008년과 2010년에 선정한 ‘세계 100대 사상가’에 이름을 올렸다. 『중앙일보』 『뉴욕타임스』 등 한국, 미국, 일본 매체에 정치와 문화에 대한 칼럼을 지속적으로 써왔다. 2008년 유럽의 문화, 사회, 사회과학에 중요한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에라스뮈스 상, 또한 아시아의 복합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이바지한 저술로 쇼렌스타인 저널리즘상을 받았다. 2012년 프린스턴 신학대학은 신학과 공적 생활에 기여한 공로로 에이브러햄 카이퍼 상을 수여했다. 저서로는 『근대일본』 『옥시덴탈리즘』 『신을 길들이다: 세 대륙의 종교와 민주주의』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독일인과 일본인의 전쟁 기억』 『일본의 반사경: 일본 문화의 영웅과 악한』 등이 있다.

 

옮긴이

신보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정관리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취득했다. 연합뉴스와 『문화일보』 정치부·경제부·사회부·국제부 기자로 근무해왔다. 미국 워싱턴 아메리칸대 연수를 마치고, 지금은 『문화일보』 워싱턴 특파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추천의 글

“세계가 공포에서 깨어난 1945년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 공포가 다시 일어날 수 없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_『뉴욕타임스』

 

“세상물정에 밝은 현실 감각을 장엄하게 드러낸 역사학이다. 세부적 사실에 무감각하거나 현학적 언설에 빠지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주의를 끄는 인간 군상의 배열과 가슴 아픈 사연들에 대한 지구적 차원의 묘사를 통해 고통의 다양한 측면과 도덕적 혼돈의 깊이, 그리고 결국 1945년과 함께 찾아온 희망의 맹아를 암시해주고 있다.”

_『월스트리트저널』

 

“’0년’ 즉 1945년은 현대 세계가 탄생한 해이다. 생생하고 연민이 풍부하며, 흥미진진하다. 주인공은 부서져버린 폐허의 조각을 주운 뒤 다음세대를 위해 다시 짜 맞춘 뭇사람들인데, 저자는 그들의 노력을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_마이클 이그나티에프, 『하버드대』 교수

 

“국가가 아닌 인간에 대해 집중하면서 승리와 패배, 혼돈과 수모의 결정적 해에 대한 뛰어난 재현이다.”

_프리츠 슈테른, 『컬럼비아대』 명예교수

 

“20세기 결정적 연도의 공포와 희망, 환상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문제의 근원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생생한 묘사, 훌륭한 구성, 멋진 문체.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훌륭한 저작이다.”

_이언 커쇼, 영국『셰필드대』 현대사 교수

 

“전후 체험을 ‘쇄국’적으로 닫아 버린 일본에게 이 책은, 충격 그 자체이다.”

_가와무라 미나토(川村湊), 문학평론가, 『호세이대』 교수, 『도쿄신문』

 

“전후 70주년, 평화헌법 제9조의 장래를 생각할 때 [0년]을 읽는 일은 꼭 필요한 작업이다.”

_나카지마 교코(中島京子), 소설가, 『마이니치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