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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이 의로움인가 의로움과 이로움의 갈림길에서
  • 지은이 | 임종진
  • 옮긴이 |
  • 발행일 | 2015년 12월 28일
  • 쪽   수 | 324p
  • 책   값 | 16,000 원
  • 판   형 | 152*217
  • ISBN  | 9788967352844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의, 의로움, 의리, 의무, 책임의식, 정의, 공평성……
동서양을 넘나들며 의義가 갖는 개념과 그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을 정리하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의義와 관련된 여러 단어가 다양한 분야에서 흔하게 사용되어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의는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사회와 가장 연관이 큰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의가 구현된 사회, 즉 정의로운 사회를 꿈꾼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은 의라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 의는 곧 실천이다
· 이利는 의를 가로막는 것인가, 아니면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 [논어]의 질적인 측면을 담당하는 개념으로서의 의
· 의와 사회적 이익인 공리公利의 관계
· 예로써 가르치고 의로써 격려하다
·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의의 실천적 측면이 강조된 까닭

[예기]에서는 성왕의 정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로 예를 강조하는 한편 예와 의, 인의 긴밀한 관계에도 주목했다. 먼저 ‘예는 의에서 비롯되는 열매다禮也者, 義之實也’라는 말은 ‘의가 예의 근본이다’라는 뜻이기보다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의라는 것이 예라는 규범을 정립할 수 있는 선행 과정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의에 의한 실제적인 가치판단이 예를 세우는 추동력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에 맞추어 합당하면 비록 예가 선왕 때는 있지 않았더라도 의로써 일으킬 수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본문 중에서)


모든 이가 의義를 갈망하는 사회에서

2010년 한국사회에는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불었다. 이 인문학 책은 200만 부 판매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고, 그로부터 4년여 뒤에는 ‘의리’라는 단어를 내세운 배우가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사회 현상에서 뽑아낼 수 있는 핵심어는 무엇일까? 바로 의義다. 정의와 의리는 모두 ‘의’에서 파생되어 나온 단어다.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의를 욕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의, 그리고 의로운 사회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의는 인간이 꿈꾸는 이상사회에 가장 가까운 개념이다. 그렇기에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한자문화권에서 자주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이런 의를 한마디로 정의하려면 막상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예상외로 의라는 단어 안에는 다양한 의미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의로움인가]는 의를 정의하기 위해 초기 갑골문자의 형태를 뜯어보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동양 고전을 원전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동양 문화권에서 의가 어떤 의미를 띠었으며 또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는 실천적 개념”이라는 유학에서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저자는 실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의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고 실천되어왔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사기] 등 여러 역사서 속 사례를 살펴본다.
그러나 이 책은 동양에서의 의의 뜻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서양철학에서 나타났던 의의 개념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또한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나누었던 의에 대한 논의와, 실제 역사에서 나타났던 의의 실천에 대해 말하며 의를 기대하는 현대사회의 분위기와 과거를 연결지어 ‘오래된 미래’를 이야기한다.
노자는 [도덕경]을 통해 “큰 도道가 없어지니 인의仁義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즉 “도를 잃어버린 뒤에 덕德이 나타나고 덕을 잃어버린 뒤에 인이 나타나며, 인을 잃어버린 뒤에 의가 나타나고 의를 잃어버린 뒤에 예禮가 있으니, 예라는 것은 믿음이 사라지고 혼란으로 가는 시초다”라는 이야기다. 한국사회가 의를 좇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많은 현대인들은 도와 덕, 인이 이미 사라졌다고 느끼고 있다. 의, 그것은 우리 사회가 믿음이 사라지고 혼란으로 가고 있다는 위험 신호이자 다시 인간다움을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다.


세계의 동쪽에서 의를 말하다

먼저 [상서]에서 등장하는 의는 제어·규제라는 의미가 확실히 드러난다. 스스로를 제어하고 규제하여 외부적으로 올바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중요시한다. 의가 지니고 있는 실천적 측면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주역]도 마찬가지이나, 여기서 다뤄지는 의는 [상서]와는 다르게 이利와 연계되어 있다. 이를 경시하는 경향이 다분한 유학에서 보기 드문 경우로, [주역] 이후 이와 의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예기]에서는 의와 예, 그리고 인을 나무에 빗대어 설명한다. 의는 인이라는 뿌리를 바탕으로 예라는 열매를 맺는 나무의 줄기다. 즉 의가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인은 비로소 결실인 예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의가 유학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논어]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인이지만, 의는 도덕뿐 아니라 정치, 경제 등과 관련된 서술에서 결정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이때 의는 대체로 당위성과 정당성, 도덕 원칙이나 준칙, 합리성 등의 의미가 강조된다. 다만 [주역]과 달리 [논어]는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라는 말을 통해 이를 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선진시대 유학자 중 가장 의에 큰 관심을 가졌던 인물은 맹자다. [맹자] 첫머리에 등장하는 ‘인의仁義’는 맹자가 유학에서 최고의 가치로 치는 인과 의를 동등한 위치에 두었음을 보여준다. 맹자가 말하는 의는 도덕적 정당성 및 당위성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기에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당위적 실천성을 갖게 된다. 때문에 맹자에게 있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의였고, 의의 실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이였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는 차원에서 파악했던 순자 역시 맹자와 비슷하다. 순자에게 의는 사회의 질서 유지와 안정을 실현할 수 있는 가치였다. 이를 거치면서 의는 사회 정의라는 뜻을 부여받게 되었다. 다만 의가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고 여겼던 맹자와 달리, 성악설을 주장했던 순자는 성인의 인위적인 노력으로 생겨난 게 의라고 보았다. 주자는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수렴하여 내재적 의미와 외재적 의미를 절충한 형태로 의를 이해하고자 했다.
묵자는 의와 이를 연결시킨 공리公利적 입장을 내세웠다. 여기서 공리란 백성의 이로움이었는데, 이것을 추구하는 원칙이 곧 의라고 여겼던 것이다. 즉 묵자에게 있어서 의란 이타적 실천의 원리였다. 한편 법가 사상가인 한비는 공리적 원칙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며 도덕규범으로서의 인의를 지양했다. 대신 사회에서의 위치에 따른 책임을 다하는 행동, 또는 그 행동의 원칙으로 의를 제시했다.


의리와 사회 정의 사이에서

본래 동양사회에서의 의리는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사상이었으며 사회윤리적 덕목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현대에서 의리란 정正이 아니라 정情이라는, 지나치게 일상적인 의미로만 남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의리의 퇴색된 본뜻을 찾아내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예기]에서는 의리에 대해 “충신은 예의 근본이고, 의리는 예의 표현 방식이다. 근본이 없으면 세우지 못하고, 표현 방식이 없으면 실행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즉 의리는 의의 실천적 측면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중국을 통해 유교가 들어오면서 의리 사상 역시 널리 퍼져나간다. 이는 신라의 화랑도부터 시작하여 [삼국사기] 「해론전」에 등장한 “성이 위태로워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의가 없는 것이다. 의가 없이 사는 것은 의가 있어 죽는 것만 못하다”라는 구절, 그리고 [삼국유사]에서 이차돈이 순교 직전에 발언했던 “나라를 위하여 몸을 죽이는 것은 신하의 큰 절개이며,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의 곧은 의리입니다”라는 문장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의리 사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부터였다. 고려가 멸망한 뒤 건국된 조선은 국가 이념으로 성리학을 채택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성리학을 장려하기 위해 조선 왕조는 고려의 충신이었던 정몽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정몽주가 보인 군신 간의 의리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하나의 귀감으로 작용하여 크고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조선 중기의 선비였던 남명 조식은 누구보다도 의리를 강조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늘 지니던 검에 “내명자는 경이요, 외단자는 의內明者敬, 外斷者義”라는 글을 새겼으며, 기거하던 방에 의義와 경敬이라는 문자를 써서 붙여놓았다. 이러한 남명의 행동에는 경을 통해 마음을 밝고 올바르게 유지하고, 의를 통해 이러한 마음을 단호히 실천하겠다는 마음가짐이 깃들어 있었다. 한편 남명과 같은 해에 태어났던 퇴계 이황은 군신 간의 의리를 벼슬길로 나아가는 것으로 해석했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곧 의를 실천하는 길이라 여겼던 것이다. 율곡 이이 역시 퇴계와 비슷한 사고를 했으나, 현실적인 경제 상황을 살피는 등 그 나름의 중용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선비들의 의리정신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임진왜란 당시 금산성 전투를 치르던 중봉 조헌은 “오늘은 한 번 죽음이 있을 뿐이니, 의義 한 글자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는 외침으로 병사들을 지휘한 뒤 장렬한 죽음을 맞았다. 그로부터 300년 뒤인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성리학자였던 연암 최익현이 항일무장투쟁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나라를 위해 순국했던 그의 행동을 두고 매천 황현은 “인仁을 이루고 의義를 취했다”고 평가했다. 즉 동양사회에서의 의리는 인간 사이에서 이뤄지는 사사로운 관계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올바르게 실천하는 하나의 정신에 가까웠던 것이다.


동양철학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를 지혜, 용기, 절제라는 세 가지 기본 덕목이 조화를 이룰 때 성립되는 최고의 덕목으로 보았던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공정성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를 논했던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에서는 정의를 경제·사법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왔다. 그렇다면 동영철학에서의 정의 개념은 무엇을 중심으로 두고 있을까?
동양사회에서 이야기되던 정의는 지금 받아들여지고 있는 서양사회의 정의와 분명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공자가어]에는 의로써 생산한 이익을 통해 백성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부분이 등장한다. 즉 동양사회에서의 정의 역시 분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유교에서 이利가 부정적으로 다뤄지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유학에서는 물질적 이익 추구가 사회 구성원 사이의 조화를 깨어 공평하지 않은 관계를 만들어낸다고 봤다. 때문에 많은 유학자가 이윤 추구는 항상 도덕성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공자의 [논어]와 [대학]을 필두로 [맹자] [순자] 등을 거쳐 [예기]에 이르기까지, 경제적인 민생 안정을 위한 분배의 공평성은 계속 강조되고 있다. [예기]를 살펴보면 유학에서 바람직하게 여기는 이상사회가 어떤 형식을 띠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대동大同이라 불리는 이 이상사회에는 복지사회, 소유의 공공성, 노동의 보편성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는 현대의 존 롤스가 주창했던 정의론과 놀랍도록 닮은 형태다. 즉 유교에서의 사회 정의란 의를 통한 보편적 이의 분배였으며,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상가가 함께 꿈꾸던 가장 이상적인 가치였다.

목차

책머리에

1장 풀이하는 글
1 의의 기본 의미
2 의리의 의미
3 동양적 정의의 의미
4 맺는 말

2장 원전과 함께 읽는 의

3장 원문

미리보기

‘의義’라는 것은 글쓰기와 관련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부담이 가는 주제다. 왜냐하면 의는-적어도 한자문화권에서는-다른 어떤 개념보다 실천의 뜻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하면 곧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를 말하면 하나를 실천해야 하고, 열 마디를 말하면 열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공자는 오직 의에 따라 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그런데 ‘똑똑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의 그런 생각에 따른 공자가 얼마나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는가를! 그러하기에 우리는 간으하면 그렇게 사는 것을 피하고 싶다.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마음속으로 반론하면서! 그러나 어쩌랴,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사람답게 사는 길인 것을! 힘들어서 좀 투덜대면서라도, 맨 뒷줄에 서서 미적대면서라도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의義는 이 책에서 때로는 ‘의’ 그대로, 때로는 ‘의로움’ ‘울바름’으로 문맥에 따라 자유롭게 표기했다. 사실상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무엇이 옳은가 하는 문제의 ‘정답’이 명료하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답’을 못 찾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계속해서 던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는 한 희망의 불씨는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다 우리의 이성을 바탕으로 자기 절제와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원칙을 끊임없이 가다듬어나간다면, 가야 할 길의 시계視界가 마냥 흐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일종의 덕德으로서의 개인의 의로움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회와 국가, 국제사회의 구조적 정의正義가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정의의 틀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러한 정의의 핵심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이익의 문제다. 그 사회가 이익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 정의의 척도가 된다. 공자가 이익의 문제에 초연하라고 말한 것은 사회 지도층을 향한 경고다. 권력을 지닌 지도층이 물질적 이익마저 독점하려들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은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가뿐만 아니라 묵가도 마친가지 입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의와 이익을 결부시킨다면, 결국 ‘백성을 위한 참된 이익’이 바로 정의다. 그리고 각 개인이 이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하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정당한 이익 추구’라는 원칙을 고수하려는 노력은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지키려는 정신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의와 관련해서 이 책에 포함된 내용 가운데 개인적으로 좀더 관심이 쏠리는 것은 사제관계인 유가의 순자와 법가의 한비자가 함께 사용한 ‘공의公義’라는 개념이다. 법가적 사유가 개입되면서 공사公私의 엄격한 구분이라는 측면이 강해지긴 하지만, 유가적 사유를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이 개념을 통해 서양의 정의justice와 동양의 의가 서로 만나 소통하고 공감할 만한 대화를 더 많이 나눌 수 있을리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의라는 것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서술 방식보다는 ‘의와 관련된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서술 방식을 주로 활용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통시적인 서술이 많은 부부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게 한 것은 이 책을 읽은 이들이 구체적인 예화나 내용을 통해 의미를 스스로 이끌어내도록 하는 일종의 귀납적 방법을 쓴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독자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좀더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일 되로록 하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이 능동적으로 의미를 찾을 기회를 제공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필자의 ‘게으른 글쓰기’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 책은 앞서 나온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시리즈에 포함된 임헌규 교수의 [소유의 욕망, 이利란 무엇인가]으 자매편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같은 시리즈물인 데다 동양의 전통에서는 의를 말하면 자연스레 이利를 말하게 되고, 이를 말하게 되면 또 의를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과는 지리적인 인접성이나 전공과의 연관성 등으로 이미 여러 차례 인연이 있었기에, 이곳의 김미영 박사로부터 제안이 왔을 때 의라는 것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덜컥’ 하겟다고 했다가, 우여곡절을 조금 겪고 난 뒤에야 원고를 완성해서 넘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이 나올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김미영 박사 덕분이다. 감사드린다. 또한 시리즈를 기획한 한국국학진흥원과 책을 마느는 데 수고한 글항아리 출판사에도 감사의 뜻을 정한다.
이제 이 책을 통해 필자는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의, 의리, 정의를 많이 말하게 된 셈인데, 이론과 실천은 별개의 문제라고 우겨대면서 실천과 마냥 거리를 둘 수도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이래서 말빚을 지면 안 되는 것인데…

2015년 12월 달구벌 복현골에서

임종진

_ 「머리말」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임종진

경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명 임창순 선생께서 세운 태동고전연구소에서도 공부했다. 현재 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생활하는 곳인 영남의 유학, 그중에서도 근대 시기의 영남 유학에 좀더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는 『증점, 그는 누구인가』 『한강 정구』(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성와 이인재의 성리사상: 『고대희랍철학고변』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대구권 성리학의 초기 정착 과정에 관한 기초 연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