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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정, 거절당한 정부
  • 지은이 | 이해영
  • 옮긴이 |
  • 발행일 | 2019년 04월 05일
  • 쪽   수 | 224p
  • 책   값 | 15,000 원
  • 판   형 | 140*210(무선)
  • ISBN  | 9788967356101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임정의 기나긴 항쟁사는 강대국의 권력정치라는
‘악마의 맷돌’에 갈아 뭉개져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가슴 아프고 원통한 하나의 에피소드를 보자. 1945년 11월 1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은 웨더마이어 주중 미군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나와 최근까지 충칭에 주재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이 항공편으로 입국하는 것과 관련하여 나와 동료들이 공인 자격이 아니라 엄격하게 개인 자격으로 입국이 허락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패전국 일본을 쫓아낸 그 자리로 돌아올 때 임시정부 요원들은 ‘공인’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입국이 허용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사회로부터 하나의 정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가 펴낸 『임정臨政, 거절당한 정부』는 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사회로부터 정부로서 승인받지 못했는지를 각국의 내부 문건을 통해 철저히 파헤치고 있다. 알다시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의 직접적인 결과다. 집회 횟수 1542회, 집회인 수 202만3098인, 사망자 수 7509인, 부상자 수 1만5961인, 투옥자 수 4만6948인……. 임정은 그러므로 실로 거족적 반일항쟁에서 표출된 전 인민적 의사의 위임을 받아 수립된 것이다. 하지만 1919년 3.1혁명으로 ‘전 국민의 위임을 받아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도 불승인된 정부였고, 귀국해서도 임정은 민중의 열렬한 승인의 갈채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정부가 아닌 독립운동 지도자들 중 유력한 인물들로만 간주되었을 뿐이다. 이 책은 따라서 열강, 특히 미국과 조선 민중 사이의 현격한 인식 격차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왜 임정은 승인받지 못한, 처음부터 끝까지 ‘거절당한 정부’였는가에 대한 책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성격

임정은 대한제국의 황제 혹은 핵심 권력자가 일제 군대의 불법적인 ‘위협이나 무력 사용’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해 새롭게 정부를 구성한 것이 분명 아니다. 단지 정치적으로 유력한 망명 인사들이 3.1운동의 성과를 계승한 새로운 차원의 독립운동을 위해 집결했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헌법 등 정부의 요건을 마련해 대외적으로 정부 수립을 선포한 것이다. 외적의 침략이나 내부의 혁명 등 급변 사태로 인해 정당성을 갖춘 적법한 정부가 일시적으로 권력 행사의 장소를 이전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임정이 국제법적 승인에 매달린 이유

이 때문에라도 국제법적 승인recognition은 임정계 독립운동 노선의 핵심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를 위해 임정은 상하이 시기는 물론이고 특히나 충칭 시기에 거의 모든 역량을 투입했다. 여기에는 열강의 승인을 통해 부족한 대표성을 보완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특히 열강의 재정 및 군사적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는 점도 있었다. 지금까지 임정 승인 문제를 다룬 선행 작업들이 없지 않으며 다들 언급하고 있는 주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연구 대상을 좁혀 본격적으로 승인 문제에만 집중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을 중심으로 임정 승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유럽 8개국의 런던 망명정부와 ‘자유프랑스’ 사례를 2장에서 살펴본다. 3장에서는 미국의 전후 질서 구상과 기획을 따로 정리했다. 특히 미국만 별도로 살펴보는 이유는 다른 열강과 비교해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때부터 미국은 전후 세계 질서를 기획해왔고, 또 이미 그 당시부터 실질적인 글로벌 초강국으로 등장했던 터라 전후 구상에 있어 미국의 규정력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4장에서는 미국, 영국, 중국, 소련, 프랑스의 임정 정책을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한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2005~2011)에 수록된 각종 외교 기밀문서를 통해 살펴본다. 5장은 현대 국제법상에서 승인에 대한 이론을 일반론적으로 다룬 뒤 임정 불승인으로 인한 우리의 외교적 이해 대변상의 실패를 짚어봤다.

 

미국의 전후 구상에서 ‘임정’의 자리는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눈물겨운 임정의 국제 인정 투쟁은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상하이 임정 수립으로부터 26년, 1910년 병합으로부터 35년, 외교권을 상실하고 사실상 식민지화된 을사조약으로부터 따지면 40년이다. 이쯤 되면 ‘해방될 줄 몰랐다’는 변명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임정의 독립 투쟁 노선, 특히 그 승인에 목매는 외교 노선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 청원請願주의적인 방식 말이다. 결국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었다. 미국은 독립을 승인했지만 그 독립도 즉각적인 것이 아니라 일정한 국제 공동 관리하의 군정을 거친 후에 어쨌든 독립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미·영은 프랑스에 대해서조차 군정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임정은 끊임없이 승인을 간청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무리 계산해도 임정을 승인해줌으로써 얻을 실익이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특히 임정 승인을 통한 ‘군사적’ 실익, 대륙의 반일 전선에서 균형추를 움직일 만한 실력이 임정에겐 없었다. 그것이 핵심이었다.
임정 승인 문제는 국제‘법’적이라기보다, 국제‘정치’적인 것이었다. 그나마 그 시대의 국제법은 철저히 국가중심적인 것이었다. 미·영이 드골의 프랑스 임시정부를 정식으로 승인했던 이유는 파리에 입성한 드골이 실력, 곧 힘을 획득하여 승인 말고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할과 그 한계

이런 상황에서 ‘동아의 영수’를 자처하던 중국은 일찌감치 미국에 주도권을 내주고 눈치만 살피는 형세였다. 미·영보다 먼저 임정을 승인하겠다는 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합국의 지원 없이 중일전쟁을 끌어가기도 벅찬 현실에서 미·영보다 먼저 임정을 승인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특히 소련의 남진이 무엇보다 두려운 현실이었다. 중일전쟁도 벅차고 심지어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는 중국 공산군과의 국공 내전까지 염두에 둔다면 운신할 공간이 별로 없었다. 임정에 ‘공동 작전 단체’, 즉 국제법상으로 ‘교전국’의 지위를 부여할 구상이 제기되었고, 임정을 조선 ‘민족해방위원회’로 개조할 구상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국민당 정부가 이를 관철할 힘은 없는 상황이었다.

 

인민자결권으로 본 임정의 국제법적 위상

만약 2차 대전 후 국제법의 본질적 원칙이 된 ‘인민자결권self -determination of peoples’ 등으로 살펴보면 망명정부에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결권 원칙에 의거하여 모든 인민은 외부의 간섭 없이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를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 그래서 민족 해방 단체에 의한 독립 주권국가 선언은 당연히 인민자결권의 유효한 행사로 간주된다.
현대 국제법의 확립된 법리이자 강행 규범으로서 인민 자결권 원칙을 임정에 소급 적용하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종의 사유 실험thought experiment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다. 임정 혹은 임정을 포함한 민족 해방 단체를 유엔 혹은 그에 상응하는 국제기구가 ‘인민의 정당한 유일 대표’로 승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터이다. 그리고 당시 조선 인민들의 ‘자유롭고 진정한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국민 투표를 일제가 폭력적으로 저지할 것이 명백하다면 이 해방 단체는 해외에서 조선의 주권적 독립국가를 선언할 수 있고, 이때 이 선언은 인민자결권의 정당한 행사로 간주된다. 그리고 여기에 동의하는 국가들이 이 민족 해방 단체를 조선 인민의 정당한 망명정부로 법적·사실적으로 승인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외 없는 강행 규범으로서의 인민자결권이라는 현대 국제법의 법리만으로도 임정은 ‘조숙早熟한’ 민족해방 단체였다.

 

‘법’이 아니라 ‘정치’였다

임정에 대한 미·영·중·소 등의 국제법적 불승인은 정치적 측면이 주요인이다. 물론 그 내적 요인만을 보자면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임정의 실력, 특히 군사적 실력에서 찾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본질적인 것은 미국의 전후 구상, 곧 신탁통치안이었다. 물론 여기에 당대의 철저한 국가중심적 국제관계와 더불어 보수적이고 경직된 국제법 해석이라는 외피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현대 국제법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의 신탁통치안은 ‘인민자결권’이라는 국제법적 ‘강행 규범’을 현저히 위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불승인이 임정을 폄하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이를 근거로 ‘1945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것은 더더구나 과도한 것이다. 왜냐하면 ‘건국’의 본질은 ‘법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그것은 인민의 집단적 자유의지의 표출에 달린 것이기에 해외의 승인은 단지 하나의, 물론 중요한 필요조건 이상은 되지 않는다. 임정은 합법성Legalitat이 아니라 정당성Legitimitat이라는 코드로 읽혀야 한다. 3.1혁명의 정당한 계승자로서 임정은 그래서 무능한 왕정을 대체할 새로운 공화정을 통한 인민의 집단 의지 실현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제국주의의 극복, 곧 민족 해방을 선도적으로 영도했다는 것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

목차

책머리에

1장 서장
2장 제2차 세계대전 중 런던 망명정부와 ‘자유프랑스’ 승인 문제
3장 미국의 전후 구상과 임정
4장 열강과 임시정부 승인 문제
4.1. 중국 국민당 정부와 임정 승인
4.2. 미국과 임정 승인
4.3. 영국과 임정 승인
4.4. 자유프랑스와 임정 승인
4.5. 소련과 임정 승인
5장 임정 승인, 국제법 대 국제정치
맺는말

참고문헌

미리보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 혹은 정명을 따져 ‘3.1혁명’의 결과다. 집회 횟수 1542회, 집회인 수 202만3098인, 사망자 수 7509인, 부상자 수 1만5961인, 투옥자 수 4만6948인……. 임정은 그러므로 실로 거족적 반일항쟁에서 표출된 전 인민적 의사의 위임을 받아 수립된 것이며, 스스로 정체를 민주공화제로 결의함으로써 이 전 민족적 항쟁은 공화주의 혁명운동으로 자리 잡는다. _「서장」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이해영

1962년 마산에서 나고 부산 혜광고등학교를 나왔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마친 뒤 독일(당시로선 서독) 마부룩(Marburg) 대학교에서 철학박사(Dr.Phil.) 학위를 받았다. 그 뒤 서울대학교 지역종합연구소 특별연구원을 거쳐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로 지금에 이른다. 이 대학에서 국제평화인권대학원 원장을 맡은 적이 있고, 그 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스크린쿼터 영화인대책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투기자본감시센터, 참여연대,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KNCC, 국제통상연구소등 다수의 시민단체에서 직간접적으로 활동해 왔다. 산업통상부, 몇 개의 국회상임위, 국회입법조사처 등에서도 오랫동안 자문을 한 바 있다. 21세기정치학회 이사를 했고, 한국안보통상학회, 국제지역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그람시와 하버마스: 시민사회, 생활세계 그리고 정치』 (독문, 1994)를 상재했고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 독일통합 10년의 정치경제학』(2000), 『낯선 식민지, 한미 FTA』(2006)를 저술했다. 이 밖의 공저로 『한미 FTA 하나의 협정 엇갈린 진실』(2008), 편저로 『1980년대: 혁명의 시대』(1999), 『한미FTA 국민보고서』 (2006), 『한미FTA는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2007)가 있다. 논문으로 「칼 슈미트의 정치사상: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중심으로」(2004) (『21세기 정치학회보』 14(2)호), 「역사문제와 ‘동맹의 논리’: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를 중심으로」(2016) (『씨알의 소리』 2016년, 11·12호) 등 다수가 있다. 주된 연구 영역은 서양정치사상과 국제정치경제다. 대학에선 마키아벨리, 그람시, 슈미트, 하버마스 등을 강의한다. 국제관계에서는 국제통상을 주되게 하면서 한미관계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리엔탈리즘과 지정학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