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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고문이란 무엇인가 철저한 이해를 위한 입문서
  • 지은이 | 왕카이푸
  • 옮긴이 | 김효민
  • 발행일 | 2015년 10월 12일
  • 쪽   수 | 368p
  • 책   값 | 18,000 원
  • 판   형 | 136*202
  • ISBN  | 9788967352547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왜 팔고문인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비춰

비교적 근세를 다룬 역사책을 읽다보면 끊임없이 나오는 단어가 하나 있다. 팔고문八股文이란 단어다. 명·청시대에 과거시험의 답안 작성에 사용하도록 규정된 특수한 문체를 일컫는 이 말은 시문時文, 사서문四書文, 제예制藝, 경의經義, 정문程文 등으로도 불렀는데 14세기 초반에 처음 시행되고 1902년 폐지될 때까지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족쇄로 작용한 거악巨惡으로 인식돼 왔다. 오죽하면 현대의 지식인조차 “팔고문은 전족과 변발, 아편담뱃대 같은 부류인 터라 생각만 해도 거북하다”라고 말할까. 그러나 역사상 발생했던 것이나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우리는 과학적으로 ‘왜’라는 의문을 던져야 하며, 또 얼마만큼 장단점이 있고 과연 쓸모가 없는지를 물어야만 한다. “아편과 아편담뱃대라도 모조리 내버려서는 안 되며, 제약공장에 보내 약을 만들고 약간 남겨서 박물관에 보존해야 한다”라고 루쉰이 말했듯 잊고 싶은 유산일수록 되새겨야 하는 게 역사공부의 필연이리라.

특히 어떤 시대를 관통하고 횡행한 특별한 지배의 수단은 후대의 누군가에게는 늘 모방과 유혹의 대상일 수밖에 없으니, 국가에서 정해준 역사지식만 배우라는 작금의 역사 국정교과서 논란을 볼 때, 우리는 그 되풀이되는 역사의 한 가운데에 있는 셈이다. ‘팔고’가 그랬듯 ‘국정’이라는 형식이 내용을 어떻게 제압하고 심지어 파탄시킬 수 있는지를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팔고문은 사상의 편협함과 진부함을 낳았다

명청시대에 서구는 문예부흥에서 자본주의로 급속히 발전했고, 과학기술과 경제와 문화에서 전면적 발전을 이루어 세계 선두에 올라섰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중국의 지배계급은 팔고취사제를 포함한 문화전제 정책을 추진했고 수많은 지식인이 성리학 외에 다른 학문이 있는지, 또 팔고문 외에 다른 문장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이를 통해 그 사상이 놀라울 만큼 편협하고 진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당시 중국사회가 선진국에서 점차 후진국으로 전락하게 된 기본 원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팔고문의 가증함은 그 내용에 있다. 팔고문은 ‘성현을 대신해 말을 함’으로써 통치자에게 이바지했다. 또 팔고문은 전통 왕조가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시험의 문체였기에 전통 왕조가 사상을 속박하고 통치를 강화하는 정치적 도구로도 이용되었다. 따라서 팔고문이 깨어 있고 진보적이며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모든 지식인에게 극도로 증오를 산 건 당연한 응징을 받은 것이다. 팔고문은 격식이 엄격하고 틀에 박혀 사상의 자유로움을 구속하고 글쓰기의 생기를 억압했다. 이러한 문체는 이미 도태된 만큼 되살아나서는 안 된다.

 

절대 위배해서는 안 되며 과거시험 낙방은 물론 처벌까지 받는 법규

팔고문은 명청대 과거시험에 쓰인 문장 형식이다. 팔고문 명칭은 문장 조직구조의 독특한 형식에서 비롯했다. 팔고문은 형식에 엄격한 규정이 있어 보통 파제破題, 승제承題, 기강起講, 입제入題, 기고起股, 출제出題, 중고中股, 후고後股, 속고束股, 수결收結 등으로 구성된다. 기고와 중고, 후고, 속고는 또 대구를 써서 서로 짝을 이루는 두 고股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글 전체로는 기이고起二股, 중이고中二股, 후이고後二股, 속이고束二股 등 총 8개 고가 있게 되어 팔고문이라 부른다. 팔고문이 가지고 있는 명칭은 매우 많다. 팔고문은 글 제목이 ‘사서四書’에서 출제된다고 해서 ‘사서문四書文’이라고도 한다. 고염무顧炎武는 ‘고’란 곧 ‘비比’라 보았는데, 문장이 대구比偶를 쓰기에 어떤 이는 팔고문을 ‘팔비문八比文’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문時文, 제의制義, 제예制藝, 시예時藝 역시 팔고문을 부르는 이름이다.

팔고문은 형식에 엄격한 규정이 있으며 내용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가혹하다. 작자는 팔고문을 쓸 때 마음대로 자기 견해를 드러낼 수 없으며, 문장은 반드시 ‘성현을 대신해 말해야代聖賢立言’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문장 내용이 유가의 사상적 풍모를 드러내야 하고 유가 관점으로 ‘사서’ 중의 ‘의리義理’를 설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공자의 “부모가 살아계시면 멀리 다니지 않는다父母在, 不遠遊”를 제목으로 글을 쓴다면, 작자는 반드시 유가가 제창하는 부모 봉양이나 부모 장례를 극진히 모시는 것과 같은 측면에서 유가의 ‘효도’를 설명해야 한다. 이와 상반된 주장을 해서는 안 되며 유가의 효도 관념에서 벗어나 임의대로 자기 견해를 펴서도 안 된다.

문장에 드러나는 ‘사서’에 대한 견해에도 일정한 기준이 있는데, 곧 주희朱熹의 [사서집주四書集注]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가령 주희는 앞서 언급한 공자의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멀리 다니면 어버이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날이 길어지게 되므로 조석으로 문안드리지 못하고 소식을 전하는 일도 뜸해진다. 그리하여 스스로 어버이 생각을 버리지 못할 뿐더러 어버이가 나를 생각하며 잊지 못하심이 두려워지게 된다.” 팔고문을 쓸 때는 반드시 주희가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 써야 하는데, 이를 벗어나면 규정을 위배하게 된다.

또한 글을 쓸 때 ‘말투를 넣어주어야入口氣’ 한다는 것인데, 이는 곧 [작자는] 고인古人의 어투를 모방해 마치 연극을 하듯 고인을 무대에 등장시켜 고인으로 하여금 설법을 하고 대사를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이 책 제16장 ‘팔고문 선독’ 가운데 한담韓의 [공자께서 안연에게 말씀하셨다子謂顔淵曰]편에서, 작자는 바로 공자가 제자 안연謂顔에게 말하는 어투를 쓰고 있다. 문장을 쓸 때 고인의 어투를 모방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정한 상상력과 예술적 수양이 없다면 잘 쓰기 어렵다. 옛날 수많은 팔고문 시험관과 작자들은 머릿속이 온통 유가의 도학으로 가득했다. 취추바이瞿秋白가 한 말처럼 “그들의 머리는 태반이 화석이었다.” 이른바 ‘말투를 넣어준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종종 빈말일 뿐이었다. 동양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명대 유명한 극작가 탕현조湯顯祖 역시 당대 팔고문의 대가였는데, 그는 천부적 예술 재능 덕분에 팔고문을 쓸 때 어투를 매우 잘 모방해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일반적으로 ‘말투를 넣어주기’를 잘할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 같은 각종 제한은 법으로 규정된 격식으로 시험관과 응시자가 반드시 엄격하게 준수해야 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규정을 ‘공령功令’이라 불렀다. 여기서 ‘공’은 학업을 시험·평가하는 것을, ‘령’은 법령을 가리킨다. 공령이란 곧 학생을 심사하는 법규를 뜻하며, 지방관청과 조정에서 인재를 선발하고 심사할 때 자주 쓰인 용어다. 팔고문 격식은 나라에서 정한 법규였다. 따라서 글을 쓸 때 절대 위배해서는 안 되며, 위배하면 과거시험에 떨어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심할 경우 처벌까지 받았다.

 

왜 팔고문이 등장했을까 : 폭력만으로는 다스릴 수 없다

명나라는 농민기의農民起義의 거대한 희생 위에 세워진 정권이었다. 명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은 원말의 농민운동을 이끌었었기에 민중의 반항이 통치자에게 위협이 된다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황위에 오른 후 원나라 멸망이 주는 교훈을 받아들여 생산을 발전시키고 계급모순을 완화하는 일과 동시에 자신의 통치 지위를 강화하는 정책을 많이 시행했다. 이러한 정책은 한편으로는 국가기구를 강화하며 강대한 군사기구를 조직하고, 법전 ‘대명률大明律’을 제정하고 금의위錦衣衛와 동창東廠 및 서창西廠 같은 특무기구를 만들어 민중을 감시하고 탄압하려는 의도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상과 문화 영역에서 민중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문화전제 정책을 추진하고자 했다. 명대 초기에 문화전제 정책 조치로 조정은 1.유가의 도통道通과 정주이학程朱理學(성리학)을 대대적으로 제창. 2.당근과 채찍으로 지식인 통제를 강화. 3.팔고문으로 지식인을 선발하는 과거제도를 실시했다.

청조 통치자가 중원을 점령한 이후에는 기존의 사회모순 위에 소수민족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생겨난 첨예한 민족모순이 더해졌다. 청 정부는 민중의 저항을 무력으로 잔혹하게 탄압했고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문자옥文字獄을 여러 차례 일으켜 엄혹한 수단으로 지식인들의 불만 정서에 맞섰다. 그러나 폭력적 수단만으로는 자신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통치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팔고문과 팔고취사제는 전적으로 통치자가 문화전제주의를 추진하려 한 조치였으며, 사람들의 사상을 억압하고 통치를 유지하는 데서 폭력적인 탄압이 해내지 못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팔고문과 팔고취사제는 사람들의 사상을 경직되게 하고 창조정신을 심각하게 억압해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현대에도 ‘팔고문’은 엄연히 살아 있다 : 학계의 정형화된 글쓰기와 입시교육

오늘날 학자들은 내용도 별 볼일 없고 형식도 진부한 논문을 가리켜 자조 섞인 목소리로 ‘팔고문’이라고 부르곤 한다. 내용은 둘째 치고 우선 심사위원이 보기에 최소한 갖춰야 할 형식적 요건들이 있고, 그 같은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아야 비로소 논문으로서 공인을 받고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논문의 정형화된 틀에 대한 회의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장기간에 걸쳐 학술적 글쓰기의 관습으로서 굳어져 이제 좀처럼 동요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것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제도권 내에서는 사실상 모험에 가까운 일이어서 누구도 섣불리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더욱이 논문의 질보다는 양적 경쟁이 우선인 오늘의 우리 학계에서, 논문의 글쓰기에 대한 반성적 모색은 언제나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 학술논문뿐인가. 요즘 국내에서 소위 명문대에 입학하려면 논술시험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때문에 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생, 심지어 취학 전 아동부터 ‘논술’ 관련 공부를 시작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 서열화로 인한 과도한 입시경쟁, 공교육과 대입 논술 간의 괴리 탓이 클 터다. 아무튼 이런 현실이다 보니 수험생의 고등사고력을 평가한다는 애초의 이상적 취지가 무색하게 주어진 논제에 대하여 유형별로 일정한 패턴을 따라 답안을 서술하는 ‘논술’이라는 특정 유형의 문제풀이식 글쓰기 교육이 난무한다.

목차
서문
1 팔고문이란 무엇인가

2 팔고문의 구조와 작법
3 팔고문 생성의 사회적 배경
4 팔고문과 과거시험
5 팔고문과 정주이학
6 팔고문과 고대 시문
7 각양각색인 팔고문 제목
8 팔고문의 변화와 발전
명대 팔고문 | 청대 팔고문
9 명청 조정에서 벌어진 팔고취사제 존폐 논쟁
10 명청 학교의 팔고문 교육 방식
11 팔고문이 명청 시문에 끼친 영향
12 명청 문인학자들의 팔고문 비판
13 청대 소설의 팔고취사제 묘사와 비판
『유림외사』의 팔고문 비판 | 『요재지이』의 팔고문 비판 | 『홍루몽』과 가보옥, 그리고 팔고문
14 팔고문 관련자료 소개
15 팔고문의 공과
16 팔고문 선독

부록
『흠정사서문』 편찬에 관한 건륭제의 ‘성유聖諭’
「응시문자서應試文自敍」 _애남영
「팔고문, 시첩시, 해법 시험을 폐지하고 책론 시험으로 바꿀 것을 주청하는 상소문」 _캉유웨이

저자 후기 (1) (2)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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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고문은 명청시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깊이 있게 접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극소수의 중국 과거제도 관련 서적과 논ㅁ분을 통해 제한적으로 소개되거나 다루어졌을 뿐, 팔고문에 관해 상세하고 소개된 적이 없어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이 책은 팔고문이란 어떤 것인지를 그 형식과 내용은 물론이고 연원과 형성배경, 변화발전 과정, 교육 방식, 문화적 영향 등 다방면에 걸쳐 체계적으로 개괄해주고 있어 국내 독자들의 이해를 넓히는 데 적잖이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_「옮긴이의 말」

 

“일찍이 중국 역사상 수백 년을 횡행했던 팔고문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지녀야 할 실사구시 정신을 결핍한 맹목적 부정의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상 발생했던 것이나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우리는 과학적으로 ‘왜’라는 의문을 던져야 하며, 또
얼마만큼 장단점이 있고 여전히 쓸모가 있는지를 물어야만 한다. 루쉰의 말처럼 아편과 아편담뱃대라 해도 모조리 내버려서는 안 되며, 아편은 제약 공장에 보내 약을 만들게 하고 아편담뱃대는 약간 남겨서 박물관에 보존해야 한다. (…) 명청시대에 서구는 문예부흥에서 자본주의 급속히 발전했고, 과학기술과 경제와 문화에서 전면적 발전을 이루어 세계 선두에 올라섰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중국의 지배계급은 팔고취사제를 포함한 문화전체 정책을 추진했다. 수많은 지식인이 성리학 외에 다른 학문이 있는지, 또 팔고문 외에 다른 문장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으니 그 사상이 놀라울 만큼 편협하고 진부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_「본문」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왕카이푸王开复

중국 수도사범대首都師範大 중문과 교수. 허베이 성 런추任丘 출신으로, 1959년에 베이징사범학원(현 수도사범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중국 고대 문장학, 명청 산문, 글쓰기 등을 주로 연구했고, 주요 저작으로 『청대산문사淸代散文史』 『대련의 응용과 글쓰기對聯的應用與寫作』 『글쓰기개론寫作槪論』 『동성파문선桐城派文選』 『고금문총론古今文叢論』 등이 있다. 중국글쓰기학회中國寫作學會 부회장, 중국고대글씨기이론연구회中國古代寫作理論硏究會 회장 등을 역임했다.

 

옮긴이

김효민

고려대 중어중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베이징대 동방어문학부 초빙교수를 지냈고, 현재 고려대 세종캠퍼스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중국과거문화사』와 『의산문답』(공역) 등이 있고, 논문으로 「명청소설과 팔고문」 「『유림외사』 평점評點의 구조론 시탐: 팔고문법과의 관련성 탐색을 중심으로」 「과거제도의 관점에서 본 한중소설 시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