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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 문인이 쓴 문인의 삶 1
  • 지은이 | 앙드레 지드
  • 옮긴이 | 이효경
  • 발행일 | 2015년 01월 08일
  • 쪽   수 | 120p
  • 책   값 | 9,000 원
  • 판   형 | 120*185
  • ISBN  | 9788967351403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는 앙드레 지드(1869~1952)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에 대하여 쓴 몇 편의 글을 모은 것이다. 지드가 와일드와의 추억을 담아 그를 추모하며 발표한 에세이와 와일드가 수감 시절 애인 더글러스에게 썼던 서신인 [심연으로부터]에 대한 담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에서도 출간된 [심연으로부터]([옥중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에 포함되지 않은 서신의 일부도 별첨으로 엮었다.

지드가 와일드를 처음 만난 것은 1891년이었다. 둘은 15살 정도 차이가 나니 결코 친구는 아니었다. 당시 오스카 와일드는 영국에서 유명한 희곡작가였고 성공한 문화계 인사였다. 지드는 처녀작도 발표하지 못한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말라르메의 집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대단한 능변가로 회자한 터라 그를 꼭 만나보고 싶었지만 딱히 만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실은 내 소망을 전해 들은 친구의 주선으로, 우리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와일드를 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우리는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를 포함하여 네 명이나 모였는데 말은 와일드가 다 했다.

친구 셋과 함께 스타를 식사 자리에 모슨 지드는 오스카 와일드의 엄청난 말솜씨와 유아독존적 태도, 그것의 묘한 영혼 없음에 독특한 인상을 받는다.

“그는 대화를 몰랐다. 오로지 해설을 했다. 불어를 뛰어나게 구사했음에도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단어 앞에서는 시간을 끌며 일부러 헤매기도 했다. 저녁 내내 그의 이야기는 두서없이 이어졌고 어느 하나 크게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우리를 경계했고, 그래서 시험했던 것이다. 지혜담도 실수담도 우리가 음미할 수 있을 만큼만 빚었고 각자의 입맛과 취향에 맞춰 냈다.”

하지만 곧 지드와 와일드는 둘만 남았고, 둘 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바로 그날이었다. 그때서야 와일드는 특유의 재치로 와일드의 존재가 맘에 들었음을 표현했다.

“자네는 눈으로 듣더군.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나르키소스가 죽자 들판의 꽃들이 그를 위해 울 수 있도록 강물을 조금 달라고 부탁했네. 그러자 강이 대답하길, ‘아! 내 강물이 전부 눈물이라도 나르키소스를 위해 흘리기에는 부족해.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다고!’ 이에 꽃들이 대답했지.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니! 그는 진정으로 아름다웠지.’ 그러자 강이 물었어. ‘나르키소스가 아름다웠다고?’ ‘그걸 누가 너보다 잘 알았겠니? 날마다 너의 강둑에 엎드려 누워 너의 강물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담았으니…….’ 그때 강이 이렇게 대답했다네. ‘내가 그를 사랑한 것은 그가 내 강물 위로 몸을 기댔을 때 그의 두 눈에 비친 내 강물을 봤기 때문이지.’”

와일드는 지드를 쳐다보는 지드의 눈빛을 읽고, 동류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지드가 볼 때 와일드는 거짓 가면 뒤에서 사람들을 놀라고 즐겁고 때로는 당황하게 했다. 남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는 법이 없었고,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에 동조자라도 생기면 이내 관심을 잃었다. 그는 혼자만의 각광이 꺼지면 즉시 몸을 숨겼다. 다시 그를 마주하려면 오붓이 둘만 남아야 했다.

“난 자네 입술이 마음에 안 들어. 생전 거짓말 하나 안 해본 올곧은 입술이야. 자네에게 거짓말을 가르쳐주고 싶네. 그래서 그 입술을 전통가면처럼 아름답게 일그러뜨리고 싶네. 예술의 작품과 자연의 작품이 각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나? 둘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예술작품만큼이나 수선화의 꽃봉오리도 아름답지. 따라서 아름다움으로는 둘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어. 그렇다면 무엇이겠는가? 예술의 작품은 반드시 유일무이해. 반면 자연은 자신의 영원하지 않은 작품을 보존하려고 끊임없이 복제를 하네. 그렇게 셀 수 없이 만들어낸 수선화는 또 그 이유로 하루도 못 넘기고 시들어 죽지. 더욱이 자연이 어쩌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면 즉시 복제를 해둔다네.”

이 책은 아주 아주 얇은 책이다. 지드도 오스카 와일드를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다. 와일드의 전성기 때는 제법 만났지만, 그가 어려움을 겪고 재기를 하려 할 때, 그리고 완전히 망가졌을 때 서너 번을 스치듯 만난 것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와일드의 인간적 면모와 예술적 가치를 아주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어느 날 시인 에레디아의 집에서 와일드는 내게 말했다. ‘비밀 하나 알려줄까?’ 사람들로 북적대던 거실에서 나를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비밀이니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약속해주게나…… 예수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은 이유를 아는가?’ 와일드는 귓속말로 부끄러운 듯 속삭였다. 잠시 멈칫하며 내 팔을 잡더니, 손을 놓고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어머니가 처녀라 그랬다네!’”

그 후 3년이 지나도록 지드와 와일드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지드와 와일드의 인연은 기막힌 우연으로 다시 이어졌다. 때는 1895년 1월이었다. 앙드레 지드는 여행 중 호텔을 나서다가, 투숙객 명단이 적힌 안내판에 눈길이 우연히 멈췄다. 그런데 그의 이름 바로 옆에 와일드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드는 조용히 혼자 지내고 싶었기 때문에 곧바로 지우개를 들고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기차역에 다다를 때쯤 지드는 자신의 행동이 비겁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길로 호텔로 되돌아가 가방을 다시 부탁하고는 내 이름을 안내판에 다시 써넣었다.

“만나지 못한 3년 사이에(지난해 피렌체에서 잠시 스친일은 제외하고) 그는 많이 변해 있었다. 표정에서는 부드러움이 사라졌고, 웃음소리에는 텅 빈 요란함이, 기쁨에는 묘한 억지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상대의 기분을 맞추는 데 자신감은 더 있어 보였지만, 그럴 의지는 상실한 듯 보였다. 그는 더 당당하고, 강하고, 건실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더는 우화를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와일드는 태양에 대하여 말했다. 태양을 숭배한다는 것은 바로 삶을 숭배한다는 것인데, 와일드의 숭배는 걷잡을 수 없는 집착에 빠져들고 있었다. 치명적인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는 이를 피할 방법도 의지도 없어 보였다. 자신의 운명을 과장하고 더 깊은 구렁에 빠지려고 전심을 다했다. 쾌락을 의무처럼 받들었다. “내 의무는 나 자신을 아주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고 와일드는 말했다.

“‘행복이 아니지! 결코, 행복은 아니네. 쾌락! 우리가 평생 추구해야 할 것은 가장 비극적인……’ 이 말을 들은 후로는 니체도 내겐 전혀 놀랍지 않았다. 알제의 거리에서 와일드 주변에는 언제나 부랑자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걸며 즐겁게 대했고 그들에게 거리낌 없이 돈을 뿌렸다. ‘내가 이 도시를 문란하게 만들고야 말겠네.’

이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와일드와 퀸스베리 후작의 재판 및 그에 뒤이은 결과로 인해 온 세상이 와일드를 지탄하며 멀리할 때 지드는 끝까지 의리를 지키면서 와일드를 구명하려고 진정서에 서명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아꼈던 친구 와일드는 지드에게 단순한 애증을 넘어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랬기에 지드는 그를 이렇게나 회고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 책에서 저자 지드는 와일드가 위대한 작가는 아니었으나 뛰어난 이야기꾼일 수 있었던 이유를 헤아려 보이며 와일드라는 인물 자체를 재조명한다. 와일드의 인생 여정은 결코 우리의 동정을 얻을 만한 비극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영원한 명성에 이르게 한 위대한 삶이었다. 그러니 지드의 말대로, 경멸보다 더 모욕적인 동정의 눈으로 와일드의 인생을 바라보지 말자. 그는 진정으로 인생의 제왕이었다.

목차

서문

 

1부 추모하며

1장 첫 만남
2장 슬픈 기억
3장 세바스찬 멜모스
4장 인생의 제왕
5장 파리

2부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

1장 심연으로부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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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와일드는 결코 위대한 작가가 아니어싿. 그랬기에 친구들이 내준 생명의 줄은 끝내 그의 파멸로 이어졌다. 그의 목숨을 살려내려고 내던진 작품들은 도리어 그와 함게 침몰했다. 몇 명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결국 세파는 그를 집어삼켰다. 파멸이 오고 말았다. (…) 그의 작품을 앞세우는 대신 처음부터 그가 경탄할 만한 인물임을 내세웠어야 했다.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이다. 그는 위대한 작가가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위대한 삶의 애호가였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그랬듯이, 와일드 또한 자신의 지혜를 글보다는 말로 나누고, 삶으로 직접 나타냈다. 물 위에 기록하듯 인간의 유한한 기억력에 자신의 내맡긴 셈이다. 그러니 그를 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들의 그의 이야기를 전해야만 한다. 그의 이야기를 가장 경청했던 친구로서 그와의 개인적인 추억을 이곳에 조금 풀어놓으려 한다. _「서문」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앙드레 지드André Paul Guillaume Gide

1869년, 파리 법과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루앙의 유복한 사업가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격정적인 성격에 몸이 허약했던 지드는 11세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와 외사촌 누이들에게 에워싸여 엄격한 청교도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는데, 이 무렵부터 신경 쇠약에 시달렸다.

1891년 청년기의 불안을 담은 자전적 소설 《앙드레 왈테르의 수첩》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고, 이후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가 주도하는 ‘화요회’를 통해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93년 북아프리카 여행 중 결핵을 앓고 나서 처음으로 삶의 희열과 동성애에 눈을 뜬 그는 마침내 모든 도덕적·종교적 구속에서 해방되어 귀국한다. 1909년 친구들과 함께 문예지 《N.R.F.》를 창간하면서 그의 엄격하고 고전적인 스타일은 20세기 전반 프랑스 문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894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첫사랑이자 《좁은 문》(1909)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 영향을 미친 사촌누이 마를렌 롱도와 결혼했다. 1896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노르망디 라로크 자치구의 시장으로 당선되었고, 이 시기에 젊음의 열광과 자유의 삶에 대한 고백록인 《지상의 양식》(1897)을 집필, 동세대 작가들에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908년에는 문학평론지 《신프랑스평론》을 창간, 프랑스 문단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 한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장 콕토 등의 주요 작가를 발굴하기도 했다. 탁월한 서정성과 문체로 문학적 성공을 거둔 《좁은 문》을 필두로 《배덕자》(1902), 《바티칸의 지하도》(1914), 《전원 교향곡》(1919), 《사전꾼들》(1925) 등의 작품들을 발표하는 한편 에세이와 평론들, 사회 비판적인 기행문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1947년 진정한 도덕성의 탐구를 통해 새로운 인간 정신의 풍토를 만드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11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0년 문학적 노정과 삶의 기록이자 1938년 아내가 사망한 후 일생 동안 꾸준히 써 온 《일기》의 마지막 권을 발표 후, 이듬해 파리의 자택에서 폐 충혈로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이효경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영통역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리랜서 통번역가로 활동하다 한국문학번역원을 거쳐 현재 전문번역가로서 우리말을 영어로,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