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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과 밖 외국인의 조건
  • 지은이 | 기욤 르 블랑
  • 옮긴이 | 박영옥
  • 발행일 | 2014년 06월 30일
  • 쪽   수 | 303p
  • 책   값 | 15,000 원
  • 판   형 | 140*215
  • ISBN  | 9788967351137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외국인이란 것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통찰
실존적 접근으로 ‘안’과 ‘밖’의 개념적 미로를 생생하게 탐색

– 타자로서의 외국인 인식에서 출발해 자기 자신으로서의 외국인 발견으로 전이해가는 농밀한 지적 사유의 여정
– 현대 프랑스 철학과 후기식민주의의 다양한 개념을 원천으로 재구성한 외국인의 존재론
– ‘안’과 ‘밖’ ‘우리’와 ‘타자’라는 배타적 구별짓기를 해체해 타자를 환대할 수 있는 가능성 탐색

[이 책의 개괄적 내용]
* 외국인으로 지시된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그 실존이 들리고 보이는 영역 밖으로 추방된 파리아 집단의 구성원처럼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_제1장 외국인으로 지시된다는 것, 37쪽

* 외국인은 따라서 자신의 타자들과 함께 느끼는 자를 의미한다. 외국인은 더 이상 파리아처럼 지시된 외국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_제6장 외국인으로서 자기 자신, 261쪽

 

이 책은 외국인의 조건에 대한 상반된 위의 두 명제 사이에 놓인 여정이다. 카스트제도 밖의 개인이나 집단을 지시하는 말이었으나, 이제 한 제도 혹은 한 사회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를 의미하는 ‘파리아paria’로 규정된 외국인의 실존을 세밀히 분석해 들어가는 과정은 억압된 얼굴과 배제된 목소리로서 비가시적으로 존재하도록 강요받은 외국인의 삶의 형식을 낱낱이 현전한다. 이어서 외국인을 타자화함으로써 존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우리 자신’, 즉 근대국가의 국민 정체성이 허구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내는 비판적 성찰이 전개된다. 국가의 내재성에 대한 비판은 외국인의 외재성을 자기 자신 안으로 끌어들여 자기 안의 타자를 발견하며, 이를 통해 자기 밖의 타자를 환대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창조를 실천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의 가능성을 진단한다. 마침내 외국인의 조건은 유령 같은 삶의 비실재화에서 모든 타자에게 행해진 환대로 전복된다.

 

[이 책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
외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이 최초의 철학적 성찰은 푸코와 캉길렘, 버틀러를 비롯해 들뢰즈, 데리다, 레비나스, 발리바르, 랑시에르, 낭시, 사이드, 스피박, 바바 등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과 후기식민주의 연구자들의 다채로운 사유를 씨실과 날실 삼아 진행된다. 이 책을 관통하며 연대하는 철학적 유산은 특히 푸코와 캉길렘 그리고 무엇보다 버틀러의 논의다. 푸코의 ‘주체와 권력의 관계’, 캉길렘의 ‘정상과 병리’ 개념은 국가의 표준이 외국인의 주체성을 어떻게 불확실한 양태로 주변화하면서 스스로를 정상적인 질서로 형성하는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버틀러에게 헌사할 만큼 저자는 버틀러의 비결정적, 비본질적 구성주의 관점을 입론으로 삼아 자신의 기획을 설계해나간다. 저자는 버틀러의 젠더gender 이론을 확장해 외국인과 국민의 구분에 적용한다. 주어진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변적인 ‘사회적 성’인 젠더를 전유해, 주체와 규범과의 관계에서 우연적으로 규정되는 ‘사회적 범주, 유형’으로 장르genre(gender는 프랑스어 번역에서 ‘genre’로 옮긴다)를 설립해 주체들을 명명하는 것이다. 외국인, 국민, 국가는 장르라는 이름을 부여받아 각각 ‘수행적’임이 드러나고, 외국인이라는 나쁜 장르는 타자 환대의 조건으로서의 장르로 변모한다.

 

외국인은 ‘밖’에 속한 ‘안’이다

저자는 “치욕스러운 삶들의 전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진술로 이 책을 시작한다. 타자, 이방인, 삶에서 벗어난 삶, 불확실한 삶, 나쁜 주체, 들이닥친 자, 용인할 수 없는 자, 증이 없는 자 등은 ‘치욕스러운 삶들’로 묶일 수 있는 외국인의 다른 이름들이다. 이 모욕적인 명명들과 더불어 랑시에르가 말한 ‘몫이 없는 자’, 스피박의 ‘하층민’도 국가의 주변으로 내몰린 외국인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외국인이라는 언명은 ‘비정상’ ‘병리’라는 부정적인 정체성이 기입된 불순한 기표다. 국민이 사회적 장르의 법칙에 참여하는 긍정적인 극인 데 반해 ‘들이닥친 자’인 외국인은 국가적 판단에 의해 산출된 경멸적인 극으로 지각되며, 타자화되는 순간부터 박해를 받는다. 왜냐하면 동일자는 그의 언어와 국가의 법을 위협하는 타자의 ‘침입’ 정도에 따라 그의 집을 안전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동일자들이 끊임없이 타자로 규정하고 배제한 결과, 외국인은 결국 비가시적이 된다. 파리아가 된다.
외국인이 적극적으로 타자화되는 것은 외국인으로 지시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외국인을 나쁜 주체로 분류해 상처를 내는 ‘수행의 정치학’을 떠맡는다. 국경으로 추방하는 행정기관의 문서 기록에서부터 불량배, 범죄자로 낙인찍는 일상의 언어 행위까지, 언어적인 지시는 명명의 특권을 지닌 ‘우리’의 권력을 통해 외국인을 끊임없이 하위의 사회적 범주로 만들고 적으로 지시하는 증오의 담론을 키운다. 저자가 말하듯, 외국인의 실존은 그의 본질을 앞서지 않는다. 그 자신은 동화될 수 없는 국가적 집단에 단일성을 부여하는 임무가 외국인이라는 장르의 본질이기에, 그의 실존은 국민의 수행적 정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요청될 뿐이다. 따라서 외국인은 ‘밖’에 속한 ‘안’이다.

 

외국인의 세 유형: 망명자, 이민자, 이주자

외국인의 조건이 지시만으로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이동은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권장하면서 사람의 이동은 감시하고 처벌하는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들의 환대의 결핍은 외국인을 여백의 존재로 기각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외국인의 유형을 인구의 이동에 따라 ‘망명자’ ‘이민자’ ‘이주자’로 분류해 고찰한다. 외국인은 우선 ‘자신의 나라를 떠나온 자?migr?’, 즉 ‘망명자’다. 그런데 망명자는 국가를 떠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해악을 폭로하면서 구멍을 낸다. 망명자는 그 삶을 정당화하는 국가의 기본적인 지반과 단절한 삶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인 망명은 고국과의 연계를 끊지 않은 경제적 망명과는 달리 국가와 맺은 계약을 파기하고 국가의 규범들을 전복한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도착한 나라에서 난민의 지위를 얻지 않는 한 들리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다. 결국 대부분의 망명자는 이민의 논리 아래서 사라진다. 이주의 원인은 묻혀버린 채 도착한 나라의 자국민이 기피하는 일에 동원되는 주체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민자’는 ‘다른 나라에 들어온 자immigr?’로서 법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 주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불확실한 주체다. 저자는 이민자의 지위를 [고도를 기다리며]와 [소송]의 주인공에 빗대 날카롭게 표현한다.

고도를 기다리는 주인공과 요제프 K는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기를 기다리는 두 명의 불법이민자를 각자의 방식으로 육화한다. 전자는 순수한 기다림 안에서 자신을 상실하고, 후자는 소송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소송은 경우에 따라 행복을 가져다줄지도, 이민의 장애를 제거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제프 K는 고발의 압력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소송의 양태들을 스스로 설명할 수 없다. 하나는 기다리지만 아무것도 도래하지 않아 결국 세계 안에서 외국인이 되고, 다른 하나는 고발되어서 법의 외국인으로 남는다.
_44~45쪽

한편 ‘이주자’는 어느 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새처럼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migrant’다. 이주자는 망명자도 이민자도 아닌 상태다. 지시의 흐름을 초과한 파리아로서 존재하는 이주자는 역설적으로 창조적 주체로서 고양될 수 있는 삶의 형식이 된다. 즉, 도착한 나라에 동화되기 위해 망명자를 지우는 이민자와 자신의 고유한 이방성을 보존하기 위해 이민자의 지위를 포기하는 망명자 사이에서, 이주자는 국가의 논리를 초과해 국가 장치를 고발하는 생산적인 논리의 행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타자처럼 사는 외국인

외국인을 피지배자로 간주하는 한에서, 후기식민주의 담론은 외국인의 존재 양식을 설명하는 데 긴요하게 활용된다. 제임스 스콧은 한 존재가 거주하는 영역을 공적 텍스트와 사적 텍스트로 구분한 다음, 피지배자의 공적 텍스트는 지배자의 공적 텍스트의 거울로 기능하면서 자신의 사적 텍스트는 감춘다고 주장한다. 즉 외국인은 자신의 공적 텍스트를 규범적인 기대들에 부합시키려고 노력하는 한편 감추어진 텍스트를 통해 권력의 명령에 복종하는 내적 규율을 형성한다. 호미 바바가 상기시키듯, 피지배자는 식민자와 결합해 긍정적으로 지각되기 위해 식민자를 모방하려 한다. 타자의 규범과 자신을 주체적으로 일치시키는 것,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이 타자로서 산다는 것은 외국인의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러나 과연 하나의 언어적 주체가 국가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모국어를 제거한 뒤 국가의 규범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모국어 상실은 허구라고 판단한다. 다른 삶의 규범에 전적으로 기대 조정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모욕적인 명명과 그 명명의 반복이 생산하는 식민적 구조에 저항해 자신의 언어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주체로서 정립된 외국인은 이제 모욕적인 지시에 대항해 투쟁할 수 있는 하층민의 담론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사회적 의무들과 관계된 명령어들이 국가의 얼굴을 결정한다. 이 말들이 다수를 설립하고 권력의 모습을 형성한다. 명령어가 규범을 상기시키는 바로 거기에서, 이 명령어를 먹고 자라는 권력 그 자체가 자신의 얼굴인 국가를 해체하고 탈영토화할 수 있는 잡초, 기생적 돌출부가 되는 생동하는 기이한 변형이 도래한다. 이것은 지배에 대해 피지배의, 권력에 대한 하층민의 아주 이상한 설욕이다. 생존의 분노는 소수자 되기를 창출하고 국가라는 다수자의 상태를 흔드는 데 기여한다.
_169쪽

 

국민이란 외국인이 아닌 주체

국민과 외국인은 분리될 수 없는 샴쌍둥이와 같다. 국민은 ‘외국인이 아닌 주체’로 호명된다. 외국인을 타자화함으로써만 자신의 정체성을 성립하는 허구적 장르가 국민이다. 데리다의 ‘유령론’은 국민 정체성을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국가의 기획으로서 탄생한 외국인의 비가시적 실존 양식을 오롯이 드러내보인다. 국민 정체성의 집단인 국가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일련의 정치적인 수행의 반복들로 구성된 유동적인 장르다. 앞서 보았듯 망명자는 국가를 떠남으로써 국가의 토대를 폭로하고 탈자연화한다. 따라서 스스로 존립할 수 없는 국가는 비국가적 존재 양식으로 파악된 외국인을 필요로 하며, 국가의 공적 텍스트에 복종할 것을 그에게 명령한다. 외국인의 삶은 지속적으로 국가의 규범들을 모방하고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테스트를 강요받는다. 이로써 외국인은 수행적 가치를 지니는 장르가 된다. 테스트에 따라 리셋될 때마다 지속될 수 있는 삶이란 매우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강요는 전적으로 부적절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적 삶의 형식들에 합류하고자 하는 외국인의 욕망이 국가의 강요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의 공적 텍스트는 주변에 의존하며, 외국인의 감추어진 텍스트는 공적 텍스트에 반응한다.
그러나 지배에 종속하고자 하는 내적 규율인 피지배자의 감추어진 텍스트는 또한 지배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하는 코나투스의 형식이기도 하며, 더욱 중요하게는 보이지 않는 저항의 유형들을 생산해내기도 한다. 정치적 권리들이 박탈된 주체들의 정치학을 저자는 ‘하부정치학’이라 명명한다. 하부정치학은 비가시적인 하층민들이 구성한 하층문화의 제의들 그리고 은밀한 저항의 형식까지 포괄하며 가시적인 것의 정치학을 재정의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곧 하층민이 비가시적으로 되는 과정을 강조하며 드러내는 것으로, 가시적인 정치학이 세운 폭력과 배제의 보편성에 포섭되는 것을 거부하는 실천의 형식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을 비판한다. 랑시에르는 ‘증이 없는 자’들의 운동은 가시적이 되고자 하지만 “사회 그 자체의 구조를 가시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가 입증하듯, 증이 없는 외국인은 전적으로 배제된 자로서 생존을 위해 정치적 삶으로부터 멀어지도록 강제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교회를 점령하면서 증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에서 스스로를 가시화하면서 정치성을 전례 없이 드러낸다. 랑시에르의 언급과는 달리 외국인의 투쟁은 가시성의 패권주의적 형식들과 그것이 전제하는 비가시성의 기입들을 고발한다.

 

외국인을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외국인은 이제 다만 지시일 뿐 아니라 하이브리드화, 잡음 내기에 참여하는 삶의 잠재력이다. 저자가 정의하는 하이브리드화는 한 삶의 형식과 다른 삶의 형식들을 결합하는 생명의 전략의 일환이다. 억압적인 다수자들을 탈정체화하는 가변적인 소수자들의 결집이다. 불확실한 삶들을 연결하고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리좀과 같은 다양체를 지향하며, 노마드적 회로를 형성한다. 저자는 이 하이브리드화를 전제한 환대를 외국인을 포용하는 전략으로 제시한다. 이를 위해 데리다와 레비나스의 환대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저자가 보기에 환대는 레비나스를 참조한 데리다의 환대가 함의하는 도덕적 과제, 순수한 만남, 시적인 힘에 의한 ‘증여’라기보다는 평범한 삶들의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비판으로서 하층민들의 새로운 삶의 창조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단지 돌봄의 윤리적 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규범을 뒤흔들어 외국인의 삶의 형식들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창조성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라야 한다. 이러한 저자의 환대 이론은 특히 국민국가가 경제적인 이민자를 환대하는 경우 배태할 수 있는 제국주의적 환대를 경계하고 있다.
부당한 지시에 의해 상처받기 쉬운 한 삶이 겪는 타자화를 체험함으로써, 이제 환대의 경험은 자기 자신을 타자로, 외국인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내 안의 이방성들에 참여하기를 욕망할 때에만 모욕적인 지시들에 반해서 다른 삶들을 환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비로소 외국인의 조건은 자기 안의 타자와 자기 밖의 타자에 열리는 것을 의미한다.

목차

서문


제1장 외국인으로 지시된다는 것 

외국인이라는 이름 | 우리는 외국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이 된다 | 누가 누구의 이름으로 말하는가? | 국가라는 장르 | 반박들 | 국가의 허구들

제2장 지붕도 법도 없이

망명자들 | 영원한 이주자들 | 이민자, 따라서 외국인

제3장 번역 불가능한 삶

하층의 삶 | 모방의 삶 | 주변의 삶 | 타자처럼 살기 | 언어 밖에서

제4장 국가의 해체

국경 | 하층문화 | 하이브리드화

제5장 환대

가시적인 것의 정치학 | 환대를 환대하기 | 참여

제6장 외국인으로서 자기 자신

대안적 이야기 | 내가 되고 싶지 않은 외국인 | 자기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 자기와 함께하는 외국인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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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외국인’은 이방성에 대한 체험을 요약하는 일반적인 지시 이상의 것이다. 명명은 피할 수 없이 한 신체에 대한 부정적인 정체성을 낳고, 국가를 결핍한 주체들의 삶의 장르를 창출한다. 외국인이 현시하자마자, 그의 이름이 그를 앞서며, 그 이름과 더불어 안과 밖을 나누는 담론의 질서가 주변에 머무는 그녀들과 그들을 지시하면서 국가 장르의 법을 강화한다. (…) 외국인이란 이름 아래 외국인의 경험은 극화된다. 다시 말해 ‘우리’와 ‘그들’ 사이의 단절이 완성되며, 이 단절은 우리가 그들처럼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 타자는 마치 불순한 계보에 속한, 적출 k이 아닌 저주받은 주체로서 발명된다. 외국인은 ‘내’가 아닌 살아 있는 자로, 그 실존은 한마디로 ‘여기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 너는 여기 사람이 아니다는 너는 우리의 시민사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_25~26쪽

 

서류상의 외국인은 사회에 잘 통합될 수 있는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만 도착한 나라에서 환대받는 계약자다. 이 조건들, 특히 언어적인 명령(그 나라 말을 잘해야 함)과 경제적인 명령(일을 해야 함)은 이 계약의 공증을 가능하게 한다. 좋은 외국인은 말하자면 환대하는 나라와의 결혼에 부응하는 지참금을 가지고 오는 자다. 이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야 외국인과 그가 선택한 국가의 결합이 선언될 수 있다. _108쪽

 

만일 모든 한정이 국가의 기준으로부터 나온다면, 그리고 그 기준은 역으로 한정에 의해 재활성화된다면, 국가의 동기에서 태어난 모든 한정이 국민 정체성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국민 정체성은 국가 안에 존재해야 할 것으로, 명석 판명한 자연적 소질들을 솟아나게 하는 안정된 지반의 가치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국민 정체성은 외국인을 자신의 외국인으로 지시함으로써 국가라는 실체를 강화하는 한정에 의해 태어나는 허구일 뿐이다. _176~177쪽

 

환대를 가장 익명적인 일상성에서 다시 파악할 때, 그것은 하층민의 돌봄이 될 뿐 아니라, 국가 규범들의 패권적 질서에 대한 비판이 된다. 환대는 돌봄의 윤리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비판이라는 사실은 환대에 대한 고전적 담론 안에서―데리다가 그 부분에서 대표적인 수탁자인데―전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환대를 “이민자, 노동자라는 범주”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너”에게 건네진 실천으로서 파악할 때, 우리는 환대를 우선 유일무이한 말 건넴으로 이해할 뿐, 이 건넴이 국가 규범들의 폭력에 대한 비판 안에 삽입된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환대는 다만 윤리적 발명이 아니라, 한 국가의 규범들을 당황하게 하는 정치적 비판이어야 한다. 이 비판은 외국인의 하층문화와 지배적인 문화 간의 상호 충격에서 산출되는 하이브리드화의 실천을 가시적으로 만들며, 외국인의 삶의 형식들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발명성을 강조한다. _244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기욤 르 블랑Guillaume Le Blanc
‘평범한 삶’의 철학자 기욤 르 블랑(1966~)은 보르도 몽테뉴 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세계적인 인문철학 잡지 『에스프리Esprit』의 편집위원,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문철학 출판사 PUF의 총서 ‘이론적 실천’의 편집위원장으로 있다. ‘정상’과 ‘병리’ 개념을 전복적으로 재정립한 조르주 캉길렘 연구로 철학적 작업을 시작했고, 푸코, 들뢰즈, 드 세르토 등 반철학, 반문화, 반규범의 68세대 비판철학적 전통의 맥을 잇는 소장파 학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철학자의 역할은 ‘거대서사’ 내의 종말과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삶’ 안에 자리하는 철학적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믿는 그는 언제든지 ‘불확실한 삶’이 될 수 있는 평범한 우리 삶의 변화가능성과 그로 인한 고통에서 오히려 창조적인 삶의 잠재력을 발견한다. 『안과 밖』에서 저자는 ‘타자’로 지시되어 배제되는 외국인의 실존을 그 대립항으로서의 ‘우리’ ‘국가’와 함께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우리 안의 타자의 발견을 통해 타자를 환대하는 평범한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주요 저서로는 『평범한 삶과 불확실한 삶Vies ordinaires, Vies precaires』(2007), 『사회적 비가시성L’invisibilite sociale』(2009), 『우리의 상처받을 수 있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Que faire de notre vulnerabilite?』(2011), 『반문화로서 철학La philosophie comme contre-culture』(2014) 등이 있다.

 

옮긴이
박영옥
연세대 철학과에서 사르트르 철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에서 레비나스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미셸 앙리의 『물질 현상학』 및 『육화, 살의 철학』, 기욤 르 블랑의 『안과 밖: 외국인의 조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