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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망에 반항하라 왕후이의 루쉰 읽기
  • 지은이 | 왕후이
  • 옮긴이 | 송인재
  • 발행일 | 2014년 06월 23일
  • 쪽   수 | 572p
  • 책   값 | 30,000 원
  • 판   형 | 155*225
  • ISBN  | 9788967351175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최고의 역설적 인간 루쉰魯迅
지금 그를 다시 읽는다
‘절망’에 대한 반항은 하나의 생존태도다
고독하고 황당해하면서도 ‘어둡고 허무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개체-
왕후이의 탁월한 지적 탐사로 그 생성의 순간이 포착된다

“나는 가야만 해, 아무래도 가는 게 좋아…….”
거절할 수 없는 목소리가 황량한 광야를 유람한다. 저 묵직한 가쁜 숨은 영원히 침묵하는 우주에서 온 듯하다.
또 인간의 알 수 없는 마음속에서 온 것도 같다!
(/ ‘책머리’ 중에서)

루쉰 연구는 개인적으로 내 학문 생애의 기점이다. 이 점은 내게 지금까지도 아주 중요하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석·박사과정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줄곧 루쉰과 관련 문제를 연구하는 데 힘을 쏟았다.
(/ ‘재판 서문’ 중에서)

우리는 살아 있는 루쉰, 오늘날 깊은 계시적 의의를 지닌 루쉰을 찾는다. 우리는 루쉰의 복잡성을 발견했고
시대의 복잡성도 발견했다. 우리는 루쉰을 진실하게 이해하려 애쓰지만 우리가 루쉰을 이해할 때 스스로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이 사실을 숨기려 할 필요도 없다.
(/ ‘초판 서문’ 중에서)

 

책의 운명
왕후이의 [반항절망反抗絶望]이 출간된 지 거의 30년 만에 한국에 번역되었다. 국내에서 왕후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아시아는 세계다]를 번역한 바 있는 송인재 한림대 연구교수가 번역한 한국어판 제목은 [절망에 반항하라]다. 루쉰을 다룬 이 책의 가치와 출간 의의를 논하기 전에 책의 운명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만약 이 책에도 운명이 있다면 그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이 책은 왕후이의 박사논문이고 1988년 봄에 탈고했다. 그해 중국은 거대한 변혁을 앞두고 있었고 문화계는 아주 활발히 움직였다. 논문 심사를 마친 뒤 이 책은 곧바로 ‘문화: 중국과 세계’ 총서의 한 권으로 1989년에 출판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89년은 매우 뒤숭숭한 시절이 될 운명이었다. 4월부터 6월까지 학생운동이 급작스럽게 일어나고 그 후 거대한 변화가 몰아쳤다. 이에 따라 이 총서와 편집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편집장도 멀리 해외로 떠났다. 1990년에 뜻밖에도 타이완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타이완에서 막 조용히 출판된 같은 해 [문학평론]에 격렬한 비판이 실렸고 1년 뒤 상하이인민출판사가 첫 번째 대륙판을 출판했다. 그 뒤 이 책은 루쉰 연구계에서 ‘신시기’ 루쉰 연구의 대표작 중 하나로 늘 거론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왕후이가 이미 중국사상사를 연구하기로 관심을 돌린 때였다.

초판이 출판되고 10년이 지난 뒤 허베이교육출판사에서 2000년에 3판이 출간되었다. 2판을 낼 때 왕후이는 이전 판의 제4장을 없애고 그중 1절만 제3장에 편입시켰다. 종전의 문학적 부분에 대한 분석이 정제되어 있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 밖에 1996년 [천애]에 발표한 [‘죽은 불’ 다시 살아나]를 이 책의 이끄는 글로 넣었다.(이 글은 국내에 번역 출간된 [죽은 불 다시 살아나]라는 책에도 실려 있다.) 이 글이 루쉰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개괄하고 있으며 이 책에 없는 내용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문학평론] 1988년 8호에 발표한 [루쉰 연구사 비판]을 부록으로 책 뒤에 넣어 독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베이징 싼롄서점이 2008년에 4판을 냈는데, 부록으로 한 언론과 루쉰을 주제로 나눈 대담인터뷰를 수록했다. 이번 한국어판은 이 책의 다섯 번째 판본이자 첫 번째 번역본이다.

이 책을 쓸 때 왕후이는 20대 청년이었다. 그런데 루쉰은 서른 살이 안 된 사람은 자신의 책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 2008년 싼롄서점에서 이 책을 다시 찍어내기로 기획했을 때 왕후이는 다시 ‘젊은 시절의 글’을 읽으며 루쉰의 사상과 문학세계에 빠졌던 청춘 시절이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읽는 과정에서 느낀 괴로움과 기쁨, 집필 과정의 매 순간이 뜻밖에도 이토록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그가 대학 시절부터 박사과정생 시절까지 루쉰과 관련 저서를 읽는 데 쏟아 부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이미 헤아릴 수 없다.

이 책이 출판되고 20여 년이 흐른 2010년 이 책을 둘러싼 표절시비가 일었다. 중국의 미디어가 갑자기 이 책을 공격하는 흐름을 조성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발표한 견해들을 둘러싸고 미디어는 거의 쉬지 않고 왕후이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날조와 왜곡을 동원해서 이 책이 ‘표절’을 했다며 공격했다. 이는 현대 중국 미디어사의 진풍경이다. 그 규모는 지난 30년 동안 중국 문화사상계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온갖 사람이 연이어 탈을 쓰고 무대에 등장했다. 그들에게 검증은 필요 없었다. 단지 공격할 구실만이 필요했다. 이 책을 포위해서 토벌하려는 목적은 분명하다. 저자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그 사람이 오늘날 중국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일을 막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방운동에서는 악의적으로 날조하고 왜곡하는 것 외에도 1980년대와 현재 학술 규범과 주석 방식상의 차이를 이용해 저자를 공격하기도 했다. 이 비방운동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1990년대에 출판된 이 책이 다시금 주목받게 했다. [절망에 반항하다]는 루쉰 전기의 사상과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1930년대 루쉰의 문학활동, 그리고 그것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는 깊이 다루지 않았다.

[절망에 반항하라]를 한국어로 번역하겠다가 왕후이에게 제안했을 때는 마침 표절을 둘러싼 미디어 투쟁이 가장 격렬했을 때였다. 한국어판을 위해 왕후이는 일부 틀린 글자를 고쳤으며 2판 편집 단계에서 주석과 단락이 분리되었던 것을 바로잡았다. 동시에 출판사가 삭제한 참고문헌 목록 중 일부를 주석에 넣어 오늘날 통용되는 학술 규범에 맞추었다. 원래 이 책은 왕후이가 1984년에 쓴 석사논문 [루쉰과 아나키즘]으로부터 잉태되었다. 이 논문에서 저자는 루쉰의 사상·문학과 슈티르너, 니체, 아르치바셰프의 관계를 집중 탐구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왜 변혁을 추구하고 과학을 창조하며 휴머니즘을 주장하고 공화혁명과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동시에 프랑스혁명과 자유평등 원칙에 대해서는 깊이 회의하고 산업혁명의 부작용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집체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국가·사회·보편주의 윤리와 이타주의 원칙을 결연히 부정했는가? 왜 이 위대한 사상가가 니체식 초인, 바이런식 영웅, 슈티르너식 유일자에 열광했는가? 왜 이 진화론자가 역사는 편향되거나 윤회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는가? 왜 ‘인생을 위하고’ ‘국민성을 개조’하는 것을 취지로 한 그의 문
학 창작이 ‘안드레예프식 음산함’과 현실세계에 대한 단절로 가득 찼는가? 왜 이 현실주의 소설가가 [들풀]과 같은 실존주의적 작품을 썼는가?

1983년, 왕후이는 아직 젊었다. 이 질문들에 확실히 답하기에는 축적된 지식도 지나온 개인적 경험도 부족했다. 루쉰의 이런 사상들은 사람들에게 이해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들은 왕후이를 줄곧 괴롭혔다. 결국 그는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다시 이 질문들로 돌아갔다. 한 번은 지도교수가 “너는 문학과 대학원생인데 네 논문은 철학과나 역사학과 학생이 쓴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이 영향으로 이 책의 후반부는 문학의 문제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책을 더 위대하게 만들어준 징검다리가 되었다.

2012년과 2013년에 왕후이는 루쉰의 텍스트를 해설한 작은 책을 두 권 펴냈다.
한 권은 [소리의 선악聲之善惡]이다. 이 책에서는 루쉰의 초기 텍스트인 [파악성론]과 [[외침] 자서]를 정독함으로써 루쉰 사상과 문학의 핵심에 접근하고 있다. 다른 한 권은 [아Q 생명의 여섯 순간]이다. 이 책은 [아Q정전]에 대한 해석이고 혁명에 대한 루쉰의 태도를 재조명했다. 이를 두고 왕후이는 스스로 질문한다.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내가 어떻게 루쉰으로 되돌아가 젊은 시절 그토록 깊이 빠져들었던 사상과 문학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루쉰은 자신의 저작이 ‘빨리 썩어 없어지기速朽’를 바랐다. 1927년, 그러니까 4·12 정변(장제스가 1927년 4월 12일 상하이에서 정변을 일으켜 공산당원과 혁명 인사들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각지에서 당내의 반대자들에 대한 숙청 작업을 전개해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루쉰은 [들풀] 책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을 위해 벗과 적, 인간과 짐승,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위해 나는 이 들풀이 죽고 썩을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애초부터 생존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사실 죽는 것이나 썩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다.”

왕후이는 ‘빨리 썩어 없어지기’를 바랐던 루쉰을 연구한 이 책 또한 잊혀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련에 완강히 맞서고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운명을 마주하니 이미 책을 떠나보낸 저자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왕후이에게 이 책은 적어도 청춘의 흔적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닐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모든 책에는 그만의 운명이 있다.

 

이 책은 어떻게 루쉰에 접근하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루쉰과 그의 소설을 분석하면서 어떤 ‘통일성’을 찾으려 하지 않고 루쉰의 의도나 임무를 통해 그 자신이나 그의 예술세계를 파악하려 했다. 그와 반대로 루쉰의 주관적 정신 구조의 모순성을 이해함으로써 이런 모순성을 루쉰의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로 삼는다. 이 책에서는 루쉰의 소설을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한다.

첫째, “역사적 ‘중간물’”이다. 여기서는 ‘중간물’을 해부함으로써 창작 주체의 복잡한 문화심리 구조와 그것이 소설에서 구현되는 측면에서 루쉰 소설의 정신적 특징을 인식하려 했다. 왕후이는 ‘중간물’ 개념이 루쉰 개인의 객관적인 역사적 지위를 보여줄 뿐 아니라 깊이 있는 자아의식, 세계를 파악하는 구체적인 체감의 세계관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중간물’ 의식은 자신의 모순성·역설성·과도기성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확립된다. 그것이 있기에 루쉰은 모든 환각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실한 역사성으로 돌아왔다. 루쉰이 이런 독특하고 복잡한 눈으로 이 세계를 관찰할 때 그의 예술세계의 정신적 특징, 감정 표현방식, 스타일상의 특징, 언어는 모두 일종의 복합성과 모순성을 띤다. 이 모두는 창작 주체의 복잡하고 모순된 특징을 드러내고 창작 주체의 복잡한 주관적 정신 구조와 관련되어 있다.

사상적 차원에서 흔히 휴머니즘·개성주의·진화론이 루쉰 계몽주의의 기본적인 특징 혹은 주된 내용이라고 간주된다. 그러나 루쉰은 결코 18세기의 계몽적인 학자나 19세기의 이성철학에서 사상적 원천을 직접 흡수하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그는 주로 19세기 말엽의 근대 사조, 중국의 전통(가령 위진 시대의 품격), 민간 문화에서 사상적 자원을 찾아 중국의 현실 속에서 이성적 계몽주의로 전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루쉰은 개인의 독립성이나 개체성의 문제를 사고의 중심에 두었다. 이처럼 루쉰의 인도적 이상과 개성원칙, 역사발전관에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휴머니즘·개성주의·진화론과는 다른 사상적·문화적 배경이 있다. 따라서 루쉰 소설의 계몽주의적인 내용은 그의 독특한 개체성 원칙으로부터 발전된 것이며 개인의 체험과도 얽혀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절망에 반항’하는 인생철학”이다. 여기서는 주로 루쉰의 인생철학과 근대적인 인본주의 사조의 내재적 연관에 착안해서 루쉰 소설의 이성 계몽주의 구조 속에 담긴 개체 생존에 대한 논구와 ‘절망’에 대한 개체의 태도를 분석한다. 이 부분을 통해 루쉰의 깊이와 다른 동시대 작가를 뛰어넘는 부분이 사회생활에 대한 그의 인식의 깊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로서의 지식인의 생존 태도에 대한 그의 엄격한 사고에 있음을 볼 수 있다. 휴머니즘·개성주의·진화론이 그 시대의 보편적 의식의 추세를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면, 루쉰은 개체만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충돌, 가령 죽음·고독·절망·불안·두려움·당혹감·죄의식·공포 등을 사회문화적 문제에 대한 탐색과 긴밀하게 결합시켜 개체 생존에 대해 동시대인이 범접할 수 없는 깊은 이해에 도달했다. ‘절망에 반항’하는 그의 인생철학은 일반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닌 ‘절망’에 맞선 생존 태도를 제공한다. 이런 인생철학은 서양의 실존철학과 다르다. 그렇지만 사유 방식에서는 내재적인 정신적 연관이 있다. 루쉰 문학세계의 ‘근대’적 색채는 결코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왕후이는 “나는 루쉰을 키르케고르, 니체, 안드레예프Leonid Nikolaevich Andreev(1871~1919) 등 비이성주의자의 후계자로 그릴 생각은 없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관계는 근대 문제에 관한 루쉰의 민감성과 공감을 설명해준다.

이 책의 세 번째 부분은 루쉰 소설의 서사 원칙과 서사 방법에 관한 연구다. 그중 핵심적인 문제는 루쉰이 어떻게 주체의 정신 구조와 그 내재적 모순을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묘사와 융합시켰느냐는 점이다. 루쉰 정신구조의 내재적 모순을 이해하고 있기에 루쉰의 서사 형식에 대한 내 분석은 결코 ‘순수’ 형식적인 분석이 아니다. 왕후이는 형식 자체에서 세계와 자아 그리고 그 상호 관계에 대한 주체의 이해가 드러나고 있다고 파악하면서, 주체의 정신구조가 내재적 분열을 드러낸다면 반드시 이런 분열된 형식을 반영하거나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주체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면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형식도 필연적으로 변화된 형식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주로 루쉰의 정신 구조, 그것과 문학의 관계를 규명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의 연구 시각은 이전의 루쉰 연구와는 많이 다르다.

 

시대의 모순구조와 맞물린 루쉰의 복잡성
루쉰은 전사이고 사상가이자 문학가다. 동시에 살아 숨 쉬며 길을 찾는 사람이다. 그의 일생에는 모순과 방황이 가득 차 있고 내면에는 애증이 얽혀 있다. 계몽주의 입장에서 그를 관찰하면, 그의 저작에 인도정신, 과학이성, ‘사람 세우기’ 사상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게 된다. 정치적 해방의 입장에서 관찰하면, 그가 신해혁명, 10월 혁명, 북벌전쟁, 그리고 각종 사회 해방운동에 관심을 가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 중국 사회의 신분제도, 계급적 억압, 사회적 불공정에 대한 분노와 깊은 해부도 만나게 된다. 20세기 문화 사조의 변천이라는 각도에서 그의 문화철학·인생철학·예술관을 해부하면, 그가 생명철학과 실존주의 선구자의 예견 및 자각에 공감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20세기 중국 문화변혁의 각도에서 그의 선구적 위치를 인식하면, 이 변혁 속에서 그 개인이 어떻게 몸부림치고 반항했는지를 고통스럽게 발견하게 된다. 그의 정신 구조는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희망을 부정했지만 절망도 부정했다. 그는 역사의 진보를 믿는 동시에 역사의 ‘순환’도 믿었다. 그는 민족 해방에 헌신하면서도 이런 민족은 멸망해야 한다며 저주를 퍼부었다.

구생활을 가차 없이 부정하면서 구생활을 비판하는 이들(루쉰 자신)도 가차 없이 부정했다. 루쉰은 자신의 인격 전체로 20세기 중국이 맞닥뜨린 아주 복잡한 문제를 짊어졌다. 그는 자신의 복잡성으로 당시 중국과 세계의 곤경 및 선택이 힘겨웠음을 증명한다.

그는 자신이 처한 시대의 이상을 대표하면서 이런 이상의 곤혹도 표현했다. 달리 말하면, 루쉰은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그에게 닥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복잡한 세계를 마주하고는 스스로를 ‘복잡’하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세계와 중국, 민족과 개인, 이론과 경험, 역사와 미래라는 상반된 시각에서 이 광활하고 깊숙한, 변동하는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는 중국의 사상혁명과 정치혁명 과정에서 신문화의 대표자가 되었다. 동시에 사상혁명과 정치혁명의 구체적인 목표도 뛰어넘었다. 그는 민족 문화의 변혁 과정에서 진정한 ‘민족혼’이 되면서 개체로서만 대면할 수 있는 수많은 깊은 충돌도 체험했다.

그는 낙관적이면서도 비관적이고 흥분하면서도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가야 한다. 아무래도 가는 게 좋아.”([길손]) 그래서 그는 하나의 두려움과 당혹감에서 또 다른 두려움과 당혹감으로, 하나의 모순에서 또 다른 모순으로, 한 가지 고통에서 또 다른 고통으로 향했다. 생활과 세계의 복잡성, 세계의 내재적 모순성, 마음속 깊은 곳의 절망과 허무, 저 멀리 떠나가버린 붙잡을 수 없는 청춘, 무상無常·여조女吊1의 신비한 매력…… 이 모든 것은 진리를 좇는 그의 용기를 없애버릴 수 없었다. 반대로 그가 ‘절망에 반항’하는 데 힘을 불어넣는 동력이 되었다. 그는 ‘길손’의 귓가에서 오랫동안 맴돌던 아득하면서도 어디에나 들리는 외침을 들을 뿐이었다. 루쉰이 또 어떻게 고독·충돌·동경·허무가 없이 정의를 위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가’겠는가? 모순·충돌되고 순리를 거스르는 생각들은 쉽사리 버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복잡한 눈으로 세계를 관찰하고 체험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그는 복잡하고 모순되고 역설적인 방법으로 복잡하고 모순되고 역설적인 세계를 파악해서 아주 깊은 경지에 도달했다.

루쉰은 평온한 학자가 아니다. 더군다나 단순한 전사도 아니다. 그는 살아 숨 쉬는 자신의 영혼 전부를 쏟아 부어 탐색했다. 그의 인격은 그의 세계 안에 녹아들었다. 따라서 그의 세계는 더 이상 평온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으며 주관 정신 구조의 복잡성·모순성·역설성을 이루었다. 우리는 이런 복잡성·모순성·역설성이 루쉰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20세기의 세계와 중국 그리고 둘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도 해당되고 루쉰이 처한 ‘소재하되’ ‘소속하지는 않은’ 두 사회의 ‘중간물’이라는 자리에도 해당됨을 보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루쉰이 자신의 이러한 모순적이고 복잡하며 역설적인 정신 구조에 대해 깊이 있게 내적으로 성찰하며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을뿐더러 세계의 복잡함과 혼란을 통찰할 때처럼 냉혹하고 깊이 있는 자세로 자아의 분열과 모순을 통찰했다는 사실이다. 자아분열을 이해한 결과 이성적 차원에서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토대 위에서 수립된 ‘역사적 중간물’ 의식이 형성되었다. 이런 의식은 자신을 역사의 과정 속에 놓인 평범한 과도기적 인물로 ‘환원’시킴으로써 세계를 이해하고 느끼는 독특한 방식을 수립한다. ‘중간물’은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역사와 가치, 경험과 비판, 계몽과 계몽 초월 등의 조화 및 절충이 아닌 병존과 투쟁을 상징한다.

 

왜 루쉰인가
시대·경험·관점에 따라 사람들은 루쉰의 형상과 루쉰의 세계를 각기 달리 이해한다. 그래서 루쉰 자신의 복잡성은 더더욱 다중적 이해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현대 해석학의 관점에 따르면, 한 시대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만 이전 시대 사람과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 사람이 이전 시대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도 이전 시대 사람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과 차이를 보인다. 어떤 시대에 속했든 자기 이해의 중심적 요소는 그 역사적 지위에 대한 형상화이기 때문에 그에 뒤따르는 역사적 현실화는 이 형상을 아주 크게 바꿀 수 있다. 뒤 세대는 앞 세대의 희망, 공포, 모호한 동경을 지식과 사실적 인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 따라서 루쉰을 취추바이나 마오쩌둥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 못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사람들은 취추바이와 마오쩌둥 이후에야 루쉰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가다머의 해석학은 텍스트의 효과 혹은 영향Wirkung이 그 함의의 주성분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 영향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것에는 역사와 전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루쉰이라는 복잡한 역사적 인물을 정치혁명·사상혁명·문화비판·문학사 등의 시각에서 해석한다면 그의 역사적 의미를 어느 정도는 드러낼 수는 있겠지만 그의 의의 전부를 규명할 수는 없다. 이 책은 좀더 넓은 의미의 문화, 역사적 배경에서 루쉰의 복잡성을 규명하려 한다. 그래도 이런 복잡성을 완전히 드러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며 왕후이는 시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구자가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결코 역사 밖에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자신의 독특한 ‘시계視界’에서 연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 세대 사람이든 우리든 모두가 ‘이해’의 역사성을 벗어날 수는 없다. 이와 동시에 이해는 일차적 사건이 아니라 부단히 변화하는 과정이다. 바로 이해의 역사적 변천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를 부단히 심화시키고 풍부하게 만든다.

“루쉰으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는 ‘이해’를 가로막는 왜곡과 반드시 버려야 할 편견을 시정하는 데는 필요하지만 역사적 서술은 아니다. 사실상 이 구호는 연구자가 루쉰으로 ‘돌아가기’를 진정으로 도와줄 수 없고 오히려 ‘객관성’의 이름으로 특정 연구자의 루쉰 형상과 루쉰 세계에 가두고 만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루쉰을 실제에 부합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 시대의 넓은 배경에서 루쉰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실제로 꼭 그리고 충분히 이해의 선판단과 선구조를 모두 제거하고 연구 대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성을 벗어나서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고 해서 임의적이거나 왜곡해서 이해함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이 이해한 루쉰의 형상과 루쉰의 세계가 역사성과 시간성을 가진다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역사주의적 태도다. 이와 반대로 전통적 관념과의 접속 여부를 연구 성과의 ‘객관성’을 측정하는 잣대로 삼는 것이 바로 반역사적인 태도다.

왕후이는 말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루쉰, 오늘날 깊은 계시적 의의를 지닌 루쉰을 찾는다. 우리는 루쉰의 복잡성을 발견했고 시대의 복잡성도 발견했다. 우리는 루쉰을 진실하게 이해하려 애쓰지만 우리가 루쉰을 이해할 때 스스로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이 사실을 숨기려 할 필요도 없다. 이것 또한 일종의 ‘역사적 중간물’ 의식 아닐까?”

목차

한국어판 서문
책머리에
초판 이끄는 글_ 복잡성을 찾아서
재판 서문이끄는 글_ ‘죽은 불’ 다시 살아나

 

제1부
사상의 역설: 개인과 민족, 진화와 윤회
이끄는 글_ 사상의 역설

제1장 개인과 자아, 계몽주의 역사관에 대한 부정과 확인(1903~1924)
1. 개인 관념과 근대사에 대한 회의
2. 개성·천재·자아, 편향된 역사관, 철학적 낭만주의
3. 개인 관념의 사회정치적 의미
4. 고독한 개체, 죽음, 죄의 자각과 절망에 대한 반항

제2장 자아의 곤경과 사상적 역설―‘소재’하나 ‘소속’되지 않은 두 사회(1920~1936)
1. 반전통과 근대적 정체성 탐색의 곤경
2. ‘역사/가치’의 이분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
3. 윤회의 심리적 경험은 어떻게 진화론적 시간관념을 와해시켰나?

제2부
루쉰의 문학세계-어두침침하면서도 빛나는

제3장 역사적 중간물
1. ‘중간물’이라는 개념
2. 영혼의 분열과 유동
3. ‘애증의 동반’과 시적 정취의 저류
4. 부정성과 루쉰 소설의 세 가지 이미지
5. 루쉰 소설의 격정 유형
6. 루쉰 소설의 언어적 특징

제4장 ‘절망에 반항하는’ 인생철학
1. 『들풀』의 인생철학
2. 밝음과 어둠 사이에서의 ‘절망적 항전’

제3부
루쉰 소설의 서사 원칙과 서사 방법

제5장 주체 정신사의 객관적 현현
1. 이중적 1인칭 독백에서 표출되는 논쟁성
2. 1인칭 비독백 서술
3. 1인칭 비허구 소설

제6장 객관적 묘사에 대한 주관의 침투
1. 장면 문체―‘극적’ 서술
2. ‘파노라마’ 문체―‘심리 분석’ 소설
3. 인칭과 비인칭 서사의 혼합

 

주요 참고문헌
옮긴이 참고문헌
후기

 

부록 1_ 루쉰 연구사 비판
부록 2_ 진정으로 근대성에 맞선 근대적 인물―왕후이 인터뷰
개정판 후기_ 루쉰과 ‘아래로의 초월’
옮긴이의 글_ 절망적 항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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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은 전사이고 사상가이자 문학가다. 동시에 살아 숨 쉬며 길을 찾는 사람이다. 그의 일생에는 모순과 방황이 가득 차 있고 내면에는 애증이 얽혀 있다. 계몽주의 입장에서 그를 관찰하며, 그의 저작에 인도정신, 과학이성, ‘사람 세우기’ 사상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게 된다. 정치적 해방의 입장에서 관찰하면, 그가 신해혁명, 10월 혁명, 불벌전쟁, 그리고 각종 사회 해방운동에 관심을 가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 중국 사회의 신분제도, 계급적 억압, 사회적 불공정에 대한 분노와 깊은 해부도 만나게 된다. 20세기 문화 사조의 변천이라는 각도에서 그의 문화철학·인생철학·예술관을 해부하면, 그가 생명철학과 실존주의 선구자의 예견 및 자각에 공감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20세기 중국 문화변혁의 각도에서 그의 선구적 위치를 인식화면, 이 변혁 속에서 그 개인이 어떻게 몸부림치고 반항했는지를 고통스럽게 발견하게 된다. 그의 정신 구조는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희망을 부정했지만 절망도 부정했다. 그는 역사의 진보를 믿는 동시에 역사의 ‘순환’도 믿었다. 그는 민족 해방에 헌신하면서도 이런 민족은 멸망해야 한다며 저주를 퍼부었다. 구생활을 가차 없이 부정하면서 구생활을 비판하는 이들(루쉰 자신)도 가차 없이부정했다. 루쉰은 자신의 인격 전체로 20세기 중국이 맞닥뜨린 아주 복잡한 문제를 짊어졌다. 루쉰은 복잡한 세계를 마주하고는 스스로를 ‘복잡’하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세계와 중국, 민족과 개인, 이론과 경험, 역사와 미래라는 상반된 시각에서 이 광활하고 싶숙한, 변동하는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는 중국의 사상혁명과 정치혁명 과정에서 신문화의 대표자가 되었다. 동시에 사상혁명과 정치혁명의 구체적인 목표도 뛰어넘었다. 그는 민족 문화의 변혁 과정에서 진정한 ‘민족혼’이 되면서 개채로서만 대면할 수 있는 수많은 깊은 충돌도 체험했다. _「이끄는 글」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왕후이汪暉
1959년 장쑤성 양저우 출생. 이른바 중국 ‘신좌파’의 이론적 리더로 알려진 저명한 학자이다. 현재 칭화 대학 중문학과 교수이자, 같은 대학 인문ㆍ사회과학고등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2013년부터 제12기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6개월 정도를 임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1978년 양저우사범대학에 입학했고, 난징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베이징의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루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하버드 대학, 워싱턴 대학, 홍콩 중문 대학, 베를린 고등연구소, 볼로냐 대학, 컬럼비아 대학, 도쿄 대학 등에서 연구원과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1996년부터 <독서(讀書)>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독서>를 중국에서 최대의 영향력을 지닌 잡지로 성장시켰다. 최근에는 칭화 대학 인문ㆍ사회과학고등연구소를 기반으로 중국의 정치개혁 담론을 주도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근본적 재인식을 목표로 하여 ‘지역연구’라는 새로운 어젠다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절망에 반항하라: 루쉰과 그의 문학세계>(1990), <죽은 불 다시 살아나>(2000), <중국현대사상의 흥기>(2005), <아시아적 시야: 중국 역사의 서술>(2010) 등의 저작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옮긴이
송인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교수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중국 사상계의 해빙 분위기에서 진행된 후스(胡適) 재평가, 1990년대 자유주의 논쟁, 2006년의 1980년대 붐을 접하면서 중국 현대 사상 연구에 입문했다 중국 현대 사상에 대한 비판적 독해, 중국 지식계와의 생산적 대화, 현재성을 가진 사상 담론 형성을 목표로 삼고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2009년부터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인문한국(HK) 연구부의 일원이 되어 현대 사상의 뿌리가 되는 근대의 정치, 사회, 문화 개념을 연구하고 있다. 아울러 정보 기술과 인문학 연구를 접목한 디지털인문학 연구도 국내외 파트너와 협력해 추진하고 있다. 박사 논문은 『1978년 이후 중국의 계몽, 민족국가, 문화 담론 연구: 간양과 왕후이의 비판 담론을 중심으로』다. 후속 연구로 문명, 천하, 유학, 전통 등 과거의 역사적 기억으로 중국의 비전을 모색하는 담론을 다룬 논문을 집필했다. 번역서로 최근 중국의 사상 동향을 보여 주는 『단기 20세기: 중국혁명의 논리』(왕후이 저, 가제, 근간), 『문명, 국가, 대학』(간양 저, 근간), 『권학편』(2017),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2016), 『절망에 반항하라: 왕후이의 루쉰 읽기』(2014), 『왕단의 중국현대사』(2013),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 현대 지식인의 사상적 부활』(2013), 『아시아는 세계다』(201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