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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적 마음의 탄생 마음心을 둘러싼 동아시아 철학의 논쟁들
  • 지은이 | 문석윤
  • 옮긴이 |
  • 발행일 | 2013년 12월 28일
  • 쪽   수 | 444p
  • 책   값 | 18,000 원
  • 판   형 | 152*217
  • ISBN  | 9788967350901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동아시아 마음 논쟁 3천년의
역사를 이 한 권에 담았다
양심, 수치심, 자비심, 질투심, 흑심 그리고 심장으로서의 마음心
마음과 몸의 관계, 이성과 감정의 긴장, 빈 마음과 가득 찬 마음
오래된,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체계적으로 재론하다

– 갑골문 ‘심장’의 발견에서 시작된 심에 대한 자연주의적 이해와 신비주의적 이해의 대립
– 불교의 절대적인 마음 개념
– 주희를 정점으로 하는 송대 신유학에서 마음을 둘러싼 이기론
– 조선 성리학과 호락논쟁에서 마음을 둘러싼 쟁점들
– 조선 후기 새로운 인간상에 도달한 심학

 

‘마음’ 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거의 같다. 요즘에는 점점 더 ‘몸’에 대해 묻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인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답해야만 할 질문이다.
‘마음’에 해당되는 동아시아의 전통 용어 중에 가장 중심 역할을 한 것이 ‘심心’이다. 이 책은 동아시아 전통에서 ‘심’이란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그리고 심이 오늘날의 ‘마음’의 이해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지니며, 또한 암시를 주는가 하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심’은 언제 생겨난 말이고 그것의 의미는 원래 무엇이었을까? 후한後漢 시대 허신許愼(약 30~약 124 혹은 약 58~약 147)이 만든 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인간의 심장이다. 흙土의 장기로서 신체身 중앙에 있다. 상형자다”라고 정의함으로써 심이 원래 심장의 상형자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허신은 같은 책에서 위의 설명에 덧붙여 “박사설博士說에서는 그것을 불火의 장기로 보았다”고 하여, 또 하나의 학설을 소개해뒀다. 불은 밝게 비추는 것이요, 인간의 인식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이미지를 제공한다. 타오르는 한 무더기 불에서 비치는 한 줄기 빛은 가려져 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하고 무지無知의 불안으로부터 인식자를 해방시켜 평안과 자유를 준다. 심장을 불의 장기로 보는 것은 그것이 피를 생성하는 기관으로서 지칠 줄 모르는 힘을 지녔음을 염두에 두기도 했겠지만, 밝음과 관련하여 외부세계를 인식하고 사유思하는 우리의 내적 사유 기관임을 표현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심’은 원래 ‘심장’을 의미했지만 또한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마음’의 의미도 아울러 갖게 되었다. 그렇게 된 뒤에는 두 의미가 하나의 용어에 공존하면서 서로의 의미 규정에 영향을 끼쳤다. 그것이 전국시대를 거쳐 한대에 와서는 오행론의 체계 속에서 자연주의적으로 해명되고 정리된 것이다. 허신의 설명은 그러한 해명의 대표적 사례로서, 심의 어원을 밝히는 동시에 후한대의 ‘마음’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몸의 중앙中
중심에 있다는 것은 단지 위치상 중앙에 있음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심에는 ‘질서’와 관련된 정치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심장이 신체의 장기 중 하나이지만, 신체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다른 부분인 사지四肢와 장기들에 대해 지배적인 위치에 있음을 일컫는다. 심이 군주라면 신체는 신하와 백성이다. 심은 명령하고 신체는 명령을 받아 그를 수행한다.7 심은 기본적으로 신체로서의 몸과 동일하고 연속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몸을 지배하는 존재로서 그 점에서는 몸과 구별되는, 몸을 넘어서 있는 일종의 초월적 존재로서의 ‘마음’이다.

사유思: 마음으로서의 심
문헌상으로는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에 심장으로서의 심만이 아니라‘마음’으로서의 심이 나타난다. 기쁨과 슬픔 등 우리가 내면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마음으로서의 심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시인은 그리운 임을 만나지 못해 “내 마음이 상하고 슬프다오我心傷悲”라고 노래하며, “다른 사람이 품은 마음 내가 헤아리고他人有心, 予忖度之”라고 말한다.
마음으로서의 심은 느끼고 생각하는 기관이다. 특히 생각 곧 사유가 중요하다. 마음의 이러한 특징을 포착하여 강조한 이가 맹자孟子(기원전 372?~기원전 289)였다. 그는 성선性善의 주창자였을 뿐 아니라, 심의 의의에 대해 주목하고 강조한 최초의 철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심은 그러한 사유와 적용의 능력이요 기관이다. 그것은 개인적·신체적 생명을 넘어, 가족에서 출발하여 천하 혹은 천지까지 이르는 공동체를 자신의 몸으로 삼는 그러한 의미에서 도덕적 능력이다. 그래서 맹자는 그것을 신체로서의 몸인 작은 몸小體과 구별되는 큰 몸이라는 뜻에서 대체大體라고 불렀다. 맹자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활약한 순자荀子는 심을 몸形의 군주요, 신명神明의 주인으로 보았다. 명령을 내리지만 명령을 받지는 않는 것이 바로 심이라고 했다. 심을 몸의 군주로 간주함으로써 신체에 대한 지배력이 맹자에 비해 더욱 명확해졌다.

맹자: 심학의 창시자
맹자는 인간에게 사단의 마음, 곧 양심良心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고 보존하며 확충하는 것이 학문의 중심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학學이란 ‘밖으로 나간 마음을 구하는 것求放心’이라 했고, 진심盡心(마음을 다함)을 통한 성性과 천天에 대한 실천적·이론적 이해, 존심存心을 통한 성과 천의 실천적 보존과 존중을 학의 핵심적 방법으로 제시했다.
맹자는 또한 당대의 학술적 개념인 언어言와 신체氣와 관련하여 심의 역할을 논했다. 심은 언어적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언어는 정치적 관계에서 핵심적 중요성을 띤다. 언어는 “마음에서 생겨나 정치를 해친다”는 것이다. 그는 부동심不動心을 주제로 언어와 마음과 기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도 사유를 펼쳤다.

심 내부의 긴장: 몸과 마음의 문제
맹자나 순자에게서와 같이 심을 신체의 주인으로 이해하는 것은 심과 신체의 상호 관계와 관련하여 모순되는 내용 혹은 긴장을 함축하고 있다. 즉, 심은 사유를 통해 신체의 주인이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신체의 한 기관으로서 이해되는 것이다. 신체의 일부분으로서의 심은 결국 신체에 의존한다. 그런데 당연히 심의 주인 노릇은 그러한 의존성으로부터의 탈피 혹은 독립을 전제로 한다. 신체에 의존하면서 동시에 신체를 주재한다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 아닌가? 그것의 물질성보다 공간성을 강조하는 방촌이라는 용어를 심에 해당하는 용어로 쓴다거나, 심장에 구멍이 있다고 말하는 것 등은 그 비물질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인간 심의 독특성을 말한다. 심의 관점으로부터, 인간은 기본적으로 연속적이면서 긴장 관계에 있는 몸과 마음의 유기적 통합체로 이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심과 신神
[관자]는 “마음心은 몸體에 있어 군주의 지위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도가적인 무위無爲의 군주이지, 유가에서처럼 유위有爲의 군주는 아니다. 심은 철저히 자기를 억제해야 절대적 위치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그전 시기의 문헌인 [장자莊子]의 ‘심재心齋’(마음의 재계) 개념을 통해서도 조금 다른 각도에서(훨씬 개인주의적 각도에서) 유사한 내용이 제시된 바 있다. [관자]와 [장자]의 이러한 측면은 또한 [순자]에 의해 유가적 관점에서 수용되었다. 그는 심에 의한 도道의 인식 조건과 관련하여 허虛, 일一, 정靜, 대청명大淸明 등을 제시했다. 이는 도가적 사유를 받아들이면서 신비적인 요소를 순화하여 활용한 것이다. 또한 순자는 마음을 신명神明의 집이 아니라 신명의 주인으로 표현했다. 신이나 신명과 관련하여 심을 이해하는 것은, 심장이라는 심의 신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극복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다.

심과 지배, 불평등
신체에 대한 심의 지배적 위치는 곧 유비적으로 피지배층에 대한 지배층의 지배와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국가의 지배와 피지배의 불평등 관계를 관리와 생산이라는 분업적 협업체계로 설명하고, 또한 신체에 대한 심의 지배를 통해 국가적 분업체계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맹자의 심학은 인간다워지려는 노력의 총체인 동시에 지배자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었다. 물론 한편으로 맹자의 그러한 시도는 과도하고 폭력적인 지배 방식을 제한하여 국가 지배를 인간화하고자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즉, 지배자는 마음의 노동을 해야 한다. 그 속에는 지배자로서의 실무적 지식 확충을 포함하여, 무분별한 욕망을 절제하고 백성과 재화를 나누며,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경제적·교육적 지원을 하는 인仁의 정치를 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유교가 가장 바탕에서 지향하는 것이었다.

한학漢學: 심에 대한 자연주의적 이해
한대에 이르러 동아시아 고대 문명은 한 차례의 결집을 이루었다.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통합적 이론을 구축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한 것이 기론氣論, 더 구체적으로는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이었다. 이러한 파악 방식은 인간과 마음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서도 다양하게 펼쳐졌다. 인간은 상승하는 정신적 요소인 혼魂과 하강하는 물질적 요소인 백魄의 결합으로 이해되었으며, 인간의 마음은 주어진 자연적 요소로서의 성과 정, 인위의 노력을 통해 변경 가능한 인간적 요소로서의 심과 욕의 결합으로서, 동적인 상태의 이발已發과 정적 상태의 미발未發로 펼쳐지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그 각각에서의 조화와 절제의 이상으로 중中과 화和가 언급되었다. 결국 한대의 포괄적 자연주의의 관점에서, 인간은 대립된 두 가지 지향 혹은 다섯 개의 순환적 요소(힘)의 통합이며, 삶의 최고 이상은 그러한 제측면의 대립과 충돌의 유기적 통합과 조절로서의 ‘조화’였다. 마음은 자신이 그러한 긴장과 대립을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그러한 조화와 양생을 위해 복무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불교와 심
‘의식’ 혹은 ‘마음’으로서의 심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마음으로서의 심을 자연과 인간, 더 나아가 불교세계를 아우르는 근원적인 개념으로 제시했다. 이제 심은 절대성을 가진 근원자로서, 전통적인 자연주의적 개념인 기氣 혹은 원기元氣보다 더 분명하게 자신을 부각시키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일견 자신의 방식대로 일원적 세계를 회복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불교적 세계는 결코 포기된 것이 아니며 심心과 기氣의 이원적 긴장 또한 결코 소멸될 수 없었다. 심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한대 이전의 전통적 심 개념, 즉 몸의 주인으로서 마음에 대한 도덕주의적 혹은 신비주의적 이해의 관점과 상통할 만한 점이 있었다. 특히 당말唐末에서 송대宋代에 걸쳐, 유교 교양에 기초하여 실천적?정치적 의지를 키워가고 있던 새로운 문인 계층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를 구축하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전통의 유산은 불교를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하는 데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

신유학에서의 심
신유학의 도덕적 이상주의의 핵심 개념은 이理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신유학은 종종 이학理學이라 불린다. 이는 인간과 자연세계 전체를 아울러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규제하는 원리이자 법칙을 의미하는 형이상적 개념이다. 이학으로서의 신유학은 그를 통해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포괄성과 깊이를 갖출 수 있었다.

주희의 심학
주희朱熹(1130~1200)는 심의 다양한 양상으로서 심心, 성性, 정情, 의意에 대한 이기론적理氣論的 해명을 시도했다. 주희는 심을 기氣라고 말한다. 그는 심이 원래 심장을 의미한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받아들였다. 또한 개체성을 기반으로 한 능동적 활동 주체로서 그것은 이가 아니라 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은 기氣이므로 늘 자연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한계에 직면한다. 그러나 종종 기의 개체성을 넘어서는 도덕적인 마음 곧 사단四端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모든 이理를 인식할 수 있고 그것을 자신의 실천의 기초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인 명덕으로 이해되기도 하며, 아직 외물과의 관계에서 발하기 이전인 미발의 상태는 사단과 마찬가지로 순선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때 심은 보편적 동일성으로서의 마음이다.
심에 대한 주희의 그러한 이해는 지각知覺에 대한 견해에도 반영되었다. 주희는 심을 지각이라고 말한다. 더 정확하게는 심이 하는 일이 지각이다. 심은 지각활동을 통해 외부세계와 소통한다. 인간의 심은 외부와 관계하면서 반응하는 중심으로서의 자아이며, 그 자아의 신체적·심리적 수용과
반응활동 전체다.
주희는 인간의 도덕적 활동은 바로 인심과 도심의 통합으로, 인심이 도심을 준칙으로 삼아 그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심은 신체를 가진 인간에게 없을 수 없지만 과도하거나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위태로운 것이므로, 의리에 입각하여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도심에 의한 인심의 제어가 곧 주재主宰다. 심은 이理 곧 성性을 인식하거나 발현하고 그것을 전유專有하여(도심) 현실세계에서(인심) 실현한다. 심의 주재활동은 일차적으로는 심이 기氣이기 때문에, 이차적으로는 심이 이理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먼저 주재는 현실적 활동이므로, 그리고 현실적 활동을 하는 것은 오직 기이므로, 심의 주재는 심이 기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심은 끊임없이 운동한다. 그것은 고요히 있다가 움직이며, 움직이다가 고요해진다. 결코 현실세계를 초월한 절대적 적멸의 세계로 비약하지 않는다. 고요히 있거나 움직인다. 기의 세계, 음양의 세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심은 어떤 경우든 그 자체가 이理일 수는 없다. 이와 기는 구별된다. 고요히 있는 것을 미발이라고 하고, 움직이는 것을 이발이라고 한다. 성性은 심의 근원에 자리잡고 자기를 실현하는 보편성이다. 그것은 일종의 성향 혹은 무의식(심층 의식)이다. 표층에서 그것은 기질지성의 성격을 지니고 개별적인 성향으로 현실화되지만, 심층에서는 본연지성의 성격을 지녔다. 즉 개별 성향을 넘어 전체를 지향하는 보편적인 마음, 무의식의 차원을 포함하여 마음 심층에 있는 사회(공동체)적이고 도덕적인 성향이다.

왕수인에서의 심
왕수인에 따르면 마음이 곧 이理다. 그 마음은 본심이며 주희적 의미에서의 기질로부터 자유롭다. 본심이 이이므로 본심을 실현하는 것이 곧 이의 실천이다. 이의 실천을 위해서 자각적 실천의 방식, 곧 마음속에서 성을 찾고 외부 사물에서 이를 찾아, 그것을 인식하고 나서 실천할(선지후행先知後行) 필요가 없으며, 순수한 우리의 본심을 인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발현하면 된다. 순수하게 발현된 마음이 곧 마음의 본래 모습이며, 그것이 곧 성이고 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자연적 자발성을 강화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실천 속에서 심과 성, 이와 마음의 간격은 없으며, 인식과 실천의 간격도 사라진다.(지행합일知行合一)

조선 성리학에서의 심
조선 초기의 심학은 삼봉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에게서 확인된다. 그는 호병문胡炳文(1250~1333)의 설, 곧 ‘성발위정性發爲情, 심발위의心發爲意’ 설을 수용하여, 심의 작용으로서 정情과 의意 두 가지를 인정하는 일체이용론一體二用論을 전개했다. 더 나아가 정은 이에 근원을 둔 것으로, 사단과 같아 무유불선無有不善이지만, 의意는 기에 근원을 둔 것으로 거기서 선악이 나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칠정七情을 의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했다.
이는 훗날의 사단칠정 논변에서 펼쳐진 논점에 근접한 것으로, 원대와 명대 초기까지 진행되었던 심학의 발전 성과를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자기 당대의 과제에 대한 숙고를 통해 도달한 것이었다. 그가 심과 성의 구분, 이와 기의 구분을 강조한 것은 불교의 그늘 아래에서 일부 그러한 흔적을 남기는 가운데 나름대로 새로운 세계관을 수립하려 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는 못했다.
주희의 심학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기반해 독자적인 심학을 구축하는 것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에 이르러서 비로소 가능했다.

호락 논쟁에서의 심
17, 18세기 조선의 율곡학파 학자들 내부에서 서울과 충청도 지역의 학자들 사이에 학문적 경향의 분기가 이루어져, 지역별로 서로를 의식하는 가운데 때로는 논변을 벌이면서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었다. 그것이 이른바 호락 논쟁湖洛論爭이다.
그들이 펼친 핵심 논점들은 다음과 같다. 심心의 지각을 지智의 발현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지의 발현과 구별되는 심의 발현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심의 미발에서 기질의 측면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심의 미발에서 지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의 성과 동물의 성은 같은가 다른가, 동물에게도 오상五常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성인의 명덕明德과 일반인의 명덕은 같은가 다른가. 이 논점들은 대체로 심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실학, 성호학파에서의 심
실학자들의 심학은 한편으로는 퇴계 이래 조선 성리학의 전통 위에 구축된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테오 리치를 필두로 17세기 동아시아에 소개된 서구의 종교적이고 학술적인 세계·인간 이해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이었다.
성호는 심에 혈기지심血氣之心과 신명지심神明之心이 있다고 구분하며 심의 고유성을 신명지심에 두었다. 또한 전래의 사단칠정 논변을 전면적으로 반성하는 과정에서 이와 기에 대한 세밀한 개념 분석을 시도했다. 그는 그를 통해 호락 논쟁에서 낙학 측이 강조한 심과 기질, 심기와 형기의 구분에 비견할 수 있는 이론상의 독자적인 진전을 이루었고, 서학의 혼삼품설魂三稟說이나 뇌낭설腦囊說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면서 그것과 전통적인 심장 위주의 이론의 절충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의견을 개진했다.

심과 영혼
동아시아 전통에서 심은 영혼과는 달리 육체에 대립하지 않고, 육체에 의존하고 그에 뒤따라 발전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앞의 논의를 통해서 어느 정도 확인했다. 심은 심장의 상형글자였고, 한대에 이뤄진 심장에 관한 과학적 해석인 오행론의 체계 속에서 심장에 부여된 화火와 토土의 특성은 심의 ‘의식’적이고 ‘주재’적인 특징, 곧 ‘마음’의 측면을 심장과의 관련 속에서 해명해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에서의 ‘마음’에 대한 이해의 근간을 구성했다.
심 개념의 전개와 발전의 역사, 곧 심학의 역사는 실학과 근대 시기를 거치면서 마치 폐기되고 정지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계속 진전되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자신에 대한 자기 규명, 곧 자연-사회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과 인간적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는 물음 속에 살아 있다. 그러한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이 지속되는 한 심학은 계속 존속하며 발전할 것이다.

목차

책머리에

 

1장 풀이하는 글

1 마음과 몸, 그리고 심心
2 ‘심’이라는 글자의 기원: 심장心臟과 심
3 몸의 중앙中
4 사유思: 마음으로서의 심
5 맹자: 심학의 창시자
6 심 내부의 긴장: 몸과 마음의 문제
7 심과 신神
8 심과 지배, 불평등
9 한학漢學: 심에 대한 자연주의적 이해
10 불교와 심
11 신유학에서의 심
12 주희의 심학
13 왕수인에서의 심
14 조선 성리학에서의 심
15 호락 논쟁에서의 심
16 실학, 성호학파에서의 심
17 심과 영혼

2장 원전과 함께 읽는 심心 

01 단계 _ 『설문해자說文解字』 『서경書經』
어원의 탐색_ 심장, 중심, 내면, 사유 기관

02 단계 _ 『시경』 『서경』
초기의 용례_ 인간의 정서, 의지, 마음

03 단계 _ 『논어論語』
공자의 심 개념_ 욕구의 주체, 도덕 주체, 계산하는 기관

04 단계 _ 『맹자孟子』 『순자荀子』
전국시대 유가에서의 심_ 마음에 대한 본격적 사유와 심학의 형성

05 단계 _ 『맹자』 『서경』
심 개념의 정치적 맥락_ 지배와 불평등의 정당화

06 단계 _ 『장자莊子』 『관자管子』 『예기禮記』(「대학大學」 「중용中庸」)
전국시대 심에 대한 관념의 전개_ 자연주의와 신비주의,
인식과 평정平靜의 문제

07 단계 _동중서董仲舒, 『관자』 『황제내경黃帝內經』 『예기』 『회남자淮南子』
한대漢代의 심_ 포괄적 자연주의 입장에서의 심 이해

08 단계 _원효元曉, 혜능慧能, 종밀宗密, 지눌知訥
불교에서의 심_ 중국 문명의 새로운 차원, 자연주의를 넘어서

09 단계 _장재張載, 정이程?, 주희朱熹, 왕수인王守仁
신유학新儒學의 심 이해_ 유교적 인간상의 회복 , 불교를 넘어서

10 단계 _삼봉 정도전, 양촌 권근
조선 전기 신유학자들의 심 이해_ 불교 비판과 새로운 인간 이해

11 단계 _퇴계 이황, 남명 조식, 율곡 이이
조선 중기 심에 대한 사색의 심화_ 심心, 성性, 정情, 의意에 대한
세밀한 도덕 심리학적 검토

12 단계 _송시열, 김창협, 김창흡, 김창집, 이간, 한원진, 현상벽, 윤봉구, 이재
17·18세기 호락 논쟁에서 심에 관한 이해_ 조선 성리학에서 심학의 본격적인 전개

13 단계 _이익, 정약용
실학에서의 심_ 심에 대한 새로운 이해,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전망

3장 원문 및 함께 읽어볼 자료

1 원문
2 함께 읽을 자료

 

미리보기

“인은 인간의 마음이요, 의는 인간의 길이다. 그 길을 버려두고 가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도 찾을 줄 모르니 슬프다. 사람들은 닭이나 개가 집을 나가면 찾을 줄 알지만, 집을 나간 마음은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의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집을 나간 마음을 찾아오는 것일 따름이다.” _「본문」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문석윤

1963년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朝鮮後期 湖洛論辨의 成立史 硏究”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에서 수학하였으며, 명지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湖洛論爭 형성과 전개》, 《인간과 자연》(공저), 《외암 이간의 학문세계》(공저)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退溪의 ‘未發’論”, “葛庵 李玄逸의 性理說”, “星湖 李瀷의 心說에 관하여: 畏庵 李栻의 <堂室銘>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유교 나아가 (조선) 성리학에 대한 철학적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