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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와 백성 사이의 한 현대의 고전 4
  • 지은이 | 히하라 도시쿠니
  • 옮긴이 | 김동민
  • 발행일 | 2013년 11월 11일
  • 쪽   수 | 648p
  • 책   값 | 35,000 원
  • 판   형 | 160*225
  • ISBN  | 9788967350826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는 중국 사상사에서의 수많은 철학 사조를 크게 네 가지로 압축하고, 그중 하나로 한대漢代 경학經學을 꼽았다.([청대학술개론]) 그리고 펑유란馮友蘭(1895~1990)도 한대 동중서董仲舒를 기점으로 한 전후 시대를 ‘자학시대子學時代’와 ‘경학시대經學時代’로 구분했다.
([중국철학사]) 시게자와 도시로重澤俊郞는 중국 사상사 연구의 합리적인 시대 구분 방법으로 ‘비경학시대非經學時代’와 ‘경학시대經學時代’를 제시했다.([원시유가사상과 경학]) 이처럼 ‘경학經學’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한대 사상은 수천 년 동안 진행되어온 중국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 학계에서는 한대 사상과 관련된 연구 성과물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전문 연구가가 매우 드물 뿐만 아니라, 외국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에 대한 소개나 번역도 거의 전무한 상태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한대 사상과 관련된 국내의 폭넓고 깊이 있는 전문 연구를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히하라 도시쿠니의 이 책은 한대 사상사의 주요한 흐름과 특징에 대한 분석, 그리고 대표적인 사상과 인물들에 대한 소개 등 한대 사상 전반을 폭넓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한대 사상사 연구 분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히하라의 [국가와 백성 사이의 漢](원제는 漢代思想の硏究)은 한대 사상사 연구의 필독서이자 최고의 연구서로 인정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대 사상은 선진 유학의 변질이나 왜곡, 또는 신비주의적이고 미신적인 요소로 가득 찬 종교 신학으로 여겨졌고, 심지어 중국사상사의 암흑기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리쩌허우李澤厚는 진한秦漢 사상을 유학의 몰락으로 폄하하는 현재 학계의 풍토를 강하게 비판했는데([중국고대사상사론中國古代思想史論]), 그것은 역으로 한대 사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반증한다. 이 책은 그러한 부정적 평가에 대해 반박하거나 또는 긍정적으로 옹호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는 기존의 선입견을 배제한 채 당시의 지배권력과 지식인들의 인식과 그들의 사상이 도출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특수성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 시대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했던 그들의 노력과 진지함을 매우 역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일본에서 출판되었을 때 당시 편집위원회에서는 저자의 원문을 그대로 싣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한국어판도 그 원칙에 따라서 되도록 저자의 글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번역하였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부터 저술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저자의 주요 논문들을 선별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논문들 사이에 비슷하거나 중복된 부분들이 종종 눈에 띈다. 번역에서는 중복된 부분도 그대로 두고 삭제하지 않았다. 각각의 글이 한 편의 완성된 논문이어서 중복된 부분을 삭제해버리면 글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지나치게 중복된 문장은 독자들의 가독성에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한두 군데 정도는 내용을 조금 수정하거나 줄이기도 했다.

 

한대 사상 연구의 대부大父, 히하라 도시쿠니

히하라 도시쿠니日原利國(1927~1984)는 중국 한대 사상사 및 춘추공양학 분야의 선구적인 학자이자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이 책은 1984년에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동료와 제자 등으로 편찬위원회가 구성되어 1986년에 출판된 것이다. 편찬위원회의 대표인 도가와 요시오戶川芳郞의 [발문]에 따르면, 이 책은 저자가 평소 학계에서 발표했거나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중에서 그의 주요 연구 테마였던 한대 사상 관련 대표작을 엄선하여 엮은 것이다.

한대 사상사 연구의 대가인 다나카 마사미田中 麻紗已는 이 책에 대한 서평에서, 저자는 한대 사상사 연구의 선학先學이며, 이 책은 그의 다양한 연구 업적의 정화精華로서 “한대 사상 연구에 수많은 공헌을 한 탁월한 성과의 집적集積”이라고 극찬했다. 이러한 평가는 조금의 과장도 없는 진실이다. 한대 사상사 전반의 주요한 흐름과 학술적 특징에 대한 접근과 해석, 핵심적인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예리하다.
일본의 중국 학술 전문 잡지인[중국연구집간中國硏究集刊] 제2호(1985)에 히하라 도시쿠니를 추모하는 세 편의 특별 기고문이 실려 있다. 그 글 중에 그가 오사카大阪 대학 교수로서 중국철학연구실을 맡고 있을 때, 그의 수업을 들었던 오가타 도루大形 徹라는 사람의 회고가 매우 인상에 남는다.

“선생님의 말씀은 종종 춘추필법春秋筆法처럼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일씨춘추日氏春秋]라고 제목을 붙인 선생님의 언행록을 만들고, 게다가 주소注疏까지 만들려고도 했습니다만, 아쉽게도 미완성으로 끝났습니다.”

춘추공양학 대가의 언설이 춘추필법과 같다는 비유는 매우 의미심장하면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춘추필법 속에는 미언대의微言大義가 담겨 있다고 한다. 특정한 시대나 사건, 그리고 인물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명확한 이해가 없으면 춘추필법과 같은 글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책은 한대 사상사 전반의 핵심 내용을 마치 춘추필법과 같은 형식으로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책의 구성과 특징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분야, 한대 사상사에 대한 거시적 해석과 미시적 분석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모두 13개의 세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한대 사상사 전반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으로 해석한 7편의 글, 제2부는 한대의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미시적인 관점으로 분석한 6편의 글이다. 세부 주제 중 12편의 글은 각각 다른 시기에 저자가 직접 쓴 글들이며, 제1부의 [화이 관념의 변용]만은 그가 병마에 시달리면서 집필한 최후의 작품으로, 생전에는 소개되지 않았다가 그가 죽은 지 1년 뒤인 1985년에 유고로 발표된 것이다.

 

한나라 시대의 지식생산: 왜 “국가”와 “백성” 사이인가?

백성 중심의 덕치는 이미 국가 이념으로 확립되었기 때문에 법과 형벌의 사용 방법과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덕치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법이나 형벌은 덕치를 보조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최소화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문제는 법과 형벌을 최소화했을 때 현실 정치의 원활한 운용이 어렵다는 점에서 이상과 현실이 심각하게 괴리될 수밖에 없다. 결국 표면적으로는 덕치를 통한 백성의 교화를 표방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법과 형벌의 효과적인 운용을 통해 국가 질서의 확립을 도모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배 권력과 유교 지식인 사이에 의견 충돌과 대립이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유교 지식인들은 덕치에 기반한 백성의 교화를 요구하지만, 지배 권력은 강력한 형벌에 기반한 국가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유교 국교화 이후 60여 년이 지난 이후에, 선제宣帝가 “한나라에는 한나라만의 일정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본래 패도覇道와 왕도王道를 적절하게 조화하는 것이니, 어떻게 순수하게 덕교德敎에만 맡겨서 주나라 시대의 정치를 채용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말이 한나라 정치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선제 이후에는 국가주의적 경향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덕치를 통한 백성 교화나 친친親親 등의 유교적 이념이 퇴행하고, 형벌과 존존尊尊 등을 강화하는 국가주의적 통치 형태로 지배의 중심축이 점점 기우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대립과 논쟁의 과정에 국가 권력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이다. 국가 권력의 주도하에 국가적 규모의 토론 집회가 기획되었고, 그 속에서 지식인들은 국가 질서의 확립을 위한 담론을 생산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와 백성, 덕치와 형벌은 새로운 형태로 재해석되어 정치적으로 활용되었고, 백성을 중심에 둔 유교의 덕치주의도 때로는 현실과 타협하고, 때로는 국가주의로의 왜곡까지 감행함으로써 끊임없는 변용을 거듭했다. 바로 이 점이 저자가 파악한 한대 사상사의 가장 큰 특징이며,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일관된 시각이다.

 

각 장의 주요 내용

1장에서는 한 무제 때부터 후한 말까지의 사상의 흐름을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유교의 국교화가 당시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요청에 의한 시대적 추세라는 점에 주목하고, 대일통의 정치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런 다음 동중서 재이설의 출현부터 시작하여, 후한 참위설이 유행하게 된 배경을 황제의 예교적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후한 고문경학의 형성 그리고 고문경학과 금문경학의 투쟁 양상 및 예교 국가에 반기를 들었던 비판철학의 계보, 즉 환담-장형-왕충-왕부로 이어지는 반예교 사상의 전개 과정도 두루 살피고 있다.

2장에서는 한대 사상사 연구 전반의 현황을 분석했다. 저자는 한나라 초기의 동향, 국가적 규모의 학술 토론회, 신비이론, 이단 사상 등으로 항목을 나눠 그와 관련된 연구 성과를 소개하거나 분석했다. 한대 사상사 연구의 주요한 흐름 및 이 분야 전문가들의 저서와 논문의 주요 내용을 핵심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3장에서는 한대 사상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인 재이災異와 참위讖緯를 다루었다. 동중서로부터 시작된 재이설의 시대적 추이에 따른 변화양상, 그리고 후한 시대 참위설의 형성 및 정치와의 관계 등에 대해 주도면밀하게 논증하고 있다.

4장에서는 한대의 형벌과 경학의 관련성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특히 춘추공양학 이론과 형벌의 결합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한대 형벌의 사상적 배경을 이와 같이 공양학으로부터 찾은 것은 매우 독창적인 접근 방법이다. 나아가 저자는 [한서]와 [후한서] 등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공양학을 중심으로 한 경학이 형벌뿐만 아니라 국가 중대 사안의 처리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된 사실을 밝힘으로써 유교 국교화의 실체를 매우 현실적인 차원에서 보여주고 있다.

5장에서는 공양학의 성격과 특징을 국가 권력과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공양학의 존재 방식은 두 가지의 상호 대립적인 요소, 즉 국가 권력의 강력한 독재권을 인정하는 국가주의적인 측면, 그리고 무제한의 국가 권력을 억제하려는 유교주의적 측면 사이에서 둘의 타협적 공존을 추구한 것이라고 파악하였다. 저자는 국가주의와 유교주의의 결합을 도모했던 공양학의 이러한 시도가 결국 실패로 끝났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6장에서는 춘추전국시대부터 한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전개된 왕패론王覇論의 변화 양상에 대해 다루었다. 특히 공양학의 시각에서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에 대한 성격 규정이나 내적 변화의 원인 등을 규명한 것이 기존의 연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7장에서는 전국시대 이후 확립된 유가의 화이론華夷論이 모두 [공양전]에 근거해 확립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공양전]에서는 문화적 우열을 화華와 이夷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이적이라는 말은 결국 문화적인 개념이라고 단언한다. 이러한 기본 인식 아래 [공양전]의 화이론을 구성하는 요인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는 이적이라고 하더라도 문화가 화하華夏의 수준으로 향상되면 화하의 문화권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두 번째는 화하의 일원이더라도 인륜의 측면에서 수준이 떨어질 때면 언제든지 이적으로 강등시킬 수 있다는 강도 높은 권계주의勸戒主義다. 마지막으로 이적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양이攘夷 논리다.

8장에서는 전한 소제昭帝 때 열린 염철 논의에서 대립한 두 집단, 즉 권력 집단을 대변한 법가 집단의 대부와 피지배층을 대변한 유가 집단의 문학 사이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토론의 주제는 당시 국가 운영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었는데, 이 책에서는 크게 형벌사상, 정치사상, 경제사상 세 가지를 서로 대비하면서 분석했다. 이 글은 중국 사상사 연구 분야에서 [염철론]에 관한 초기 연구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9장에서는 동중서와 [춘추번로] 전반을 개괄적으로 다루었는데, 이 분야의 연구를 위한 좋은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동중서라는 인물에 대한 소개와 [춘추번로]가 저술된 배경을 다루었고, 다음으로 유교 국교화의 실체와 그것의 이론적 토대가 된 춘추학의 특징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중서와 춘추학 그리고 한 왕조의 관계를 간략하게 다루었다. [춘추번로] 자체의 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하지 않았지만, 동중서와 [춘추번로]가 한대라는 특정 시대에 차지했던 역할과 의미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10장에서는 예교 국가의 확립을 도모한 장제章帝의 정치적 의도와 관련지어 [백호통의]의 사상적 성격을 규정했다. [백호통의]는 후한 장제시기에 거행된 백호관 논의의 결과물로서, 이 회의는 장제가 직접 당시의 대표적인 경학가들을 소집하여 국가적 규모로 개최한 경학 회의였다. 장제는 천자의 권위 확립과 지배 이념의 통일이라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이 회의를 소집했는데, 학문적으로는 금문경학과 고문경학의 이론적 대립이라는 구도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 글은 금ㆍ고문의 대립과 논쟁을 국가 권력의 정치적 의도와 결부시켜 해석함으로써 한대 경학이 지닌 특질을 정확하게 밝힌 연구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11장에서는 앞의 10장에 근거하여 백호관 논의가 지닌 사상사적인 의의를 제시했다. 저자는 양한 시대를 대표하는 논쟁을 크게 염철 논의, 석거각 논의, 백호관 논의 세 가지로 파악했다. 이 세 논의의 발생 배경이나 주요 쟁점은 여러 측면에서 접근과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저자는 학술적인 측면에서 이 논의들을 경학 논쟁으로 규정하고, 금문경학과 고문경학의 대립, 그중에서도 특히 춘추학 내부의 상호 대립과 투쟁으로 파악했다.

12장에서는 왕부王符의 법法 사상이 지닌 특질과 그 한계를 매우 날카롭게 파헤쳤다. 왕부는 후한시대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 사람으로, 당시의 세태를 비판한 [잠부론潛夫論]의 저자다. 장형張衡이나 왕충王充 등과 같은 비판적 철학가로 알려져 있으나, 그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매우 적으며, 이 글은 왕부에 대한 초기 연구 성과에 해당된다. 후한 말기 화제和帝와 환제桓帝 사이에 살았던 왕부는 비천한 신분과 올곧은 성격 탓에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사회와 정치에 대한 비판에 몰두하여 [잠부론]을 지었다고 한다. 따라서 저자는 그의 책을 울분의 발로이자 저항 의식의 결정체라고 묘사했다.

13장에서 다룬 순열荀悅도 왕부와 마찬가지로 관련 연구가 매우 드물다. 그는 왕조의 멸망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유가적 규범의식을 지키면서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한 지식인이다. 저자는 그가 지은 [신감申鑒]에 대해, 헌제獻帝에 대한 충성과 유가적 당위의 소산이라고 평가했다. 즉 당시 전횡을 휘두르던 조조曹操에 대한 저항 의식의 발로이자, 정의감과 비판 정신의 결정체라고 했다.

목차

역자 서문
해제

 

제1부

1장 한대 사상의 흐름
유교의 국교화 | 천인합일과 예교 | 경전의 정리 | 비판의 철학
2장 한대 사상 연구의 현황
한나라 초기의 동향 | 국가 주도의 학술 대토론회 | 신비 이론 | 이단 사상
3장 재이와 참위: 한대 사상으로의 접근
4장 한대 형벌의 주관주의: 『춘추』와 형벌
5장 춘추공양학의 한대적 전개
6장 왕도에서 패도로의 전환
7장 화이 관념의 변용

제2부

8장 『염철론』의 사상
9장 『춘추번로』의 탄생
10장 『백호통의』와 예제
11장 백호관논의의 사상사적 의미
12장 왕부의 법사상
13장 순열의 규범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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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말씀은 종종 춘추필법처럼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일씨춘추』라고 제목ㅇ르 붙은 선생님의 언행록을 만들고, 게다가 주소까지 붙이려고도 했습니다만, 아쉽게도 미완성으로 끝났습니다.” _「제가 오가타 도오루의 회상」

 

히하라 도시쿠니(1927~1984)는 중국 한대 사상사 및 춘추공양학 분야의 선구적인 학자이자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이 책은 1984년에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동료와 제자 등으로 편찬위원회가 구성되어 1986년에 출판된 것이다. 한대 사상사 연구의 대가인 다나카 마사미는 이 책에 대한 서평에서 “한대 사상 연구에 수많은 공헌을 한 탁월한 성과의 집적”이라고 극찬했다. 한대 사상사 전반의 주요한 흐름과 학술적 특징에 대한 접근과 해석, 핵심적인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예리하다. _「해제」

 

대체로 국가 권력을 노골적으로 발동해서 굴종을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설득에 의한 복종, 혹은 권위의 승인에 의한 순응이 좀더 바람직히다. 권위에 대한 승인을 구하고 복종할 수 있는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첩경은 국가 권위와 유교적 권위를 살짝 환치시키는 것이다. 이것에 성공하면 국가 의지에 대한 복종이 곧 규범에 대한 경건한 순응으로의식됨으로써 권력의 요구가 ㄱ돋 유교적 당위라고 착각하는 상태에 이른다. 그렇기 때문에 학혹한 검찰 관료는 “큰 사건을 판결할 때 유학의 옛 의리를 끌어들이려고 한” 것이며, “유술로 법령의 조문과 관리의 사무를 치장하는” 자는 ‘통달하고 명석한 재상’으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권력의 독이빨이 ‘유술 또는 유가의 옛 의리’로 ‘치장’됨으로써 지배 의지의 강제적 집행이 곧 유교적 당위의 실천이라는 형태로 원활하게 수행되어갔다. 유교가 국교로 표장되어 그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_「한대 사상의 흐름」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히하라 도시쿠니日原利國
1948년 교토대학京都大學 철학과에서 시게자와 도시로重澤俊郞의 지도로 한대 사상을 연구했고 「鹽鐵論の思想的硏究」를 졸업 논문으로 냈다. 1973년 오사카대학에서 『春秋公羊傳の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이치교육대학愛知敎育大學, 오사카대학大阪大學, 교토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중국철학사연구실 주임, 일본중국학회 평의원·이사·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984년 6월 21일 병으로 사망했다. 저서로 『漢文學』(1972), 『春秋公羊學の硏究』(1976), 『中國思想辭典』(1984), 『漢代思想の硏究』(1986) 등이 있고, 역서로 『譯注中國歷代刑法志』(1964), 『中國古典文學大系-荀子』(1970), 『世界文學全集-春秋公羊傳』(1970),『譯注續中國歷代刑法志』(1970), 『世界古典文學全集-孟子』(1971), 『中國古典新書-春秋繁露』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春秋公羊學の倫理思想」 「春秋公羊傳における俠氣の禮讚」 「中國的思惟の特質」 「復?の理論と倫理」 「公羊傳の夷狄觀」 「王符の人間觀」 「中國の家族主義」 「漢代思想史はいかに硏究されてきたか」 등이 있다.

 

옮긴이

김동민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한대 춘추공양학의 성립과 전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징 대학 고급진수과정(연강재단 중국학연구원)을 수료했으며,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연구원을 거쳐 현재 성균관대 학부대학 대우전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저로 『우리들의 세상, 논어로 보다』 『동양철학의 자연과 인간』 『동양사상』 등이 있고, 역서로 『국가와 백성 사이의 漢』 『공자개제고(전5권)』 『중국고전명언사전』(공역), 『동양을 만든 13권의 고전』(공역) 등이 있다.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