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 숲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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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가을 꽃잎 말리는 시간
몹시 놀라 넋을 잃다
봄 봄꽃들
노루귀 꽃밭에서 노루 울음소리를 듣다
뱀을 만나는 사이 나무는 베이고
봄빛에 물들다
감자난초
열쭝이는 어디로 갔을까
‘목우산방’ 나들이
여름 줄풀
중복물 지다
봉숭아물을 들이다
가을 싸리버섯
능이버섯 사이로 노인 모습이 어른거리고
머루는 어디에도 없고
초롱단은 용담
송이전골 냄비를 가운데 두고
겨울 항아리를 얻다
패름이 돌듯
설해목
생활 속 속도
봄 직박구리 떼 날다
물장구치는 수달
멧돼지
산불
찔레꽃머리
여름 쌍무지개
벌과 곤충이 사라진다면
멧돼지 새끼를 사로잡다
복달임
꾀꼬리 한 쌍
아무렇지 않게 전해진 부음
가을 고기를 먹는다는 것
벌에 쏘이다
저녁산책
대포알이 날아가도
가을가뭄
만산홍엽
‘추곡수매’하던 날
어이딸
겨울 콩 두 말로 메주를 쑤다
프랑켄 푸드(유전자 조작 작물)
화진포호수 한 바퀴
봄 건봉사 가는 길에
생강나무 꽃
진달래꽃
아무도 찾지 않는 나물들
솔 싹
간장을 달이고 된장을 담그다
여름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가을 단호박 두 통에 얹힌 인정
겨울 겨울 입새
죽임을 당하는 짐승들
말똥가리 날다
어정섣달
가든한 삶
그때 그 동무들은 다 어디로 떠났는지
봄 봄이다
어린 나무를 심다
산개구리들
공사 중
꽃샘잎샘
제비 돌아오다
꽃 무덤
귀룽나무는 구름나무
삼지구엽초
학생學生 하나에 유인孺人이 둘
비안개
조화 붙은 날씨
꽃배암들
참나물
천마
여름 장마 예보
구름타래
고양이는 나비를 쫓고 나비는 꽃을 탐하는 사이
가을 더넘바람
한가위 보름달
죽은 복작노루
오후 두 시
새품, 갈품
착살스럽다
신생이 탄생하는 순간
김장김치 260포기
겨울 선물 받은 도루묵
봄 불알고비
노란 고양이, 검은 고양이
송홧가루 날리고
여름 산작약 흰 꽃을 그리워하다
뽕나무 심다
개똥장마
잘고 어린 꽃들에게도 눈길을
까막까치
언젠가는 그리워질 한여름
가을 구름버섯(운지버섯)
죽은 이들은 어디로 가는지
기이한 하수오
아무리 춥다고 웅크리고 있어도 밖은 어느 사이 슬몃슬몃 겨울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겨울 가면 봄이 온다는, 아니 이맘때는 겨울과 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리를 내주고, 자리를 받아들이는 그 어떤 경계도 없는, 다만 그러한 완충지대로써 겨울이 가고 봄은 오고 있었다. _「머리말」
“김담 씨는 나를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말의 무게가 의심스럽다. 실은 우리 모두는 제각각의 성숙과 비움을 통해 ‘동무’의 묘맥苗脈을 나누어 지닐 수밖에 없지 않나? 나는 김담 씨에게 그 흔한 ‘선생’이란 호칭을 달지도 않지만, 내게 정녕 선생이라는 말의 무게를 얻는 쪽은 그일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의 교우 속에 내가 그를 통해 배우고 도움을 얻은 쪽은 대략 두 가지다. 내가 김담 씨를 일러 내 ‘꽃선생’이라고 하듯 그는 야생화나 산야초, 약초나 나무 등속에 동뜨게 해박한 지식, 아니 ‘체식體識’을 지녔는데, (내가 한때 우스개로 ‘김담은 발담’이라고도 하였듯이) 이 모든 지식 또한 알음알이, 아니 스스로 몸을 통해 앓아 얻은 ‘앓음알이’다. 또 하나는 그의 한글 실력이다. 그가 부박하고 모난 세상을 만나 소설가로서 크게 입신하지 못하긴 했지만, 소설 속에 요령 있게, 실답게 부리는 한글을 읽노라면 그 재조才調야 당대 최고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 김담이 내는 산문집은 바로 이 두 가지 재조를 한껏 버무린 결실이니, 어느 독자가 그 보람과 가치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있겠나?”
_김영민, 철학자
“산책과 인문학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걷는 자야말로 쓰는 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근대 인간 루소의 산책에 대한 예찬을 보면 알 수 있는 일. 김담의 산문은 이런 산책의 의미에 자신을 밀착시키고 있다. 이렇게 생생하고 풍성하게 산책자의 감성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의 산책은 도회인의 만보와 엄연히 다르다. 만보가 목적 없는 걷기라면 그가 추구하는 산책은 목적을 가진다. 그는 마을에서 나와서 숲으로 들어간다. 그의 행보는 언제나 일정하고, 그 과정은 단아한 산문으로 복기된다. 코로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그의 산문은 이런 맥락에서 근대 이전의 세계에 대한 향수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향수어린 감상이 그의 산문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산문은 마치 잔잔한 수면을 가진 개울물 같다. 그 아래로 수많은 물살이 바위틈을 가르며 달린다. 현실에 대한 맹렬한 자세가 드러나는 것이다. 유유자적하는 ‘은둔자’가 아니라 이 세계를 살아가는 ‘고독자’의 형상이 산문이라는 형식을 빌려 태어났다.”
_이택광, 문화비평가, 『경희대학교』영미문화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