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 숲의 인문학
  • 지은이 | 김담
  • 옮긴이 |
  • 발행일 | 2013년 03월 18일
  • 쪽   수 | 440p
  • 책   값 | 18,000 원
  • 판   형 | 145*216
  • ISBN  | 9788967350437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추천의 글
책소개

20년째 숲에서 산 한 사람의 이야기……
앓음알이로 얻은 것들이 단아한 숲으로 태어나다

 

좀 엉뚱하지만 제목에 대한 변명 먼저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소설가 김담의 세 번째 책에 ‘숲의 인문학’이란 제목을 붙이면서 든 생각이다. 요즘 반짝하는 ‘인문학’ 트렌드에 편승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요즘은 꼭 인문학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니 말이다. 하지만 ‘숲의 인문학’이라는 짝만큼 잘 어울리는 제목을 끝내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청대 김난생金蘭生이 편찬한 [격언연벽格言聯璧]에 나온 구절을 만나게 되었다.

“성현의 도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는 쉽지만, 성현의 도로 자신을 다스리기는 어렵다. 성현의 도를 입에서 꺼내기는 쉽지만 성현의 도를 몸소 실천하기는 어렵다. 성현의 도로 분발하여 시작하기는 쉽지만, 성현의 도를 끝까지 유지하기는 어렵다.以聖賢之道敎人易, 以聖賢之道治己難. 以聖賢之道出口易, 以聖賢之道躬行難. 以聖賢之道奮始易, 以聖賢之道克終難.”(번역 김영문)

격언의 도道를 일종의 인문정신으로 보자면 요구하는 인문학은 쉽지만 요청받는 인문학은 어렵다. 입으로 말하기는 쉽지만 몸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몸으로 익히는 것도 분발하여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까지 유지하기는 어렵다. 공부가 삶이 되지 않으면 도에 이르기는 애초에 글렀다. 그러면 평생 그림의 떡처럼 도를 걸어놓고 구경만 할 것인가. 이쯤 되자 도시에 살다가 젊은 날 훌쩍 귀향해 20년간 도시를 멀리 숲을 가까이 두고 생활한 한 사람의 생애야말로 어딘가 저 말과 어울렸다. 그 기간 얼마나 운기조식하며 다스려야 했을까. 매일 숲을 오가며 노루, 배암, 멧돼지와 마주치기도 하고, 땅에 포복해 풀꽃들을 만날 때 그의 머릿속을 반짝이며 채운 것은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불가피하게 마주하게 되는 추위와 고독, 총천연색 삶과 죽음 등 자연이 주는 거대한 압박을 그냥저냥 받아내기까지의 시간은 스쳐지나가는 게 아니라 낙엽처럼 한 해 두 해 쌓였던 것이리라.

 

고요함 속에 천변만화하는 글의 표정

[숲의 인문학]은 2007년 가을부터 2012년 가을까지 강원도 고성 인근의 숲이 한 사람의 내면에 쌓인 기록이다. 집과 숲을 오가는 산책에서 만난 생명들에 대한 사색이다. 손톱 위의 반달보다도 작은 풀꽃들을 정월 보름달보다 더 크게 끌어당긴 미시적 관찰이다. 두세 뿌리와 대여섯 뿌리 사이를 방황하는 약초꾼의 욕심과 풀꽃엄마의 마음이 교차하는 연속이다. 산골짜기 배추농사에서 약을 두 번이나 치고 콩나물국에 미원을 풀어 넣는 시골 어른들의 변화된 삶에 대한 허탈감이다. 고욤나무를 기어 올라가고 성동격서 식으로 살모사를 따돌리는 타잔의 모험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를 그린 풍경화이면서 느닷없는 낭떠러지에 간 떨어지고 늘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숲의 마술과 진화에 대한 놀라움이다.
[숲의 인문학]은 에세이면서 일기체다. 강원도 사투리겠지만, 보다 내밀하게는 인간이 숲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의성어, 의태어들이 날것으로 살아 움직인다. “작벼리에 짐승이 매닥질 친 흔적” “나뭇가지와 줄기들이 에넘느레하게 흩어져 있었다” “무두룩무두룩 한 바퀴를 돌아도”와 같은 구절에서는 가만히 눈을 감게 된다.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몰라도 눈을 감고 그려보면 모두 이해되는 게 이 책의 방언이다. 인간의 몸에 내재된 숲의 유전자가 이 책을 읽기 위한 사전인 셈이다. 그리고 저자의 산문이 보여주는 감칠맛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일종의 불규칙성의 규칙에서 오는 쾌감이다.

“눈길 위에는 왜뚤비뚤 술 취한 걸음걸이 같은 내가 지나간 발자국이 얼어붙고 들뜬 채 고스란했다. 내 지나간 자리가 저렇구나, 한참을 망연히 바라다봤다. (…) 눈길 위를 걸어온 신발 바닥은 눈과 같이 희었다.”(113~114쪽)

인용한 대목은 이 책의 산문미학의 일단을 드러낸다. 잘 다듬어진 단아한 산문이기보다는 어딘지 글이 “왜뚤비뚤”하다. 물 흐르듯 잘 나가다가 갑자기 나타나 새초롬하게 뚝 끊어버리는 단문 때문에 마치 산길을 오르는 것처럼 호흡 조절을 해가며 읽어야 한다. 이것은 저자가 머릿속에 염두에 둔 풀이나 나무를 찾아가는 여정과 글이 닮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도라지든 청미래덩굴이든 보이면 발이 멈추며 글도 멈춰 그때는 글에 배어든 사념의 농도가 줄어들며 묘사에 집중한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사태, 예를 들어 “베어 넘어진 엄나무 줄기가 발치에 놓여 있었다. 나무 둘레가 두 뼘 남짓 되었으며 무슨 일인지 껍질을 홀라당 벗겨냈다. 무릎 높이에서 톱도 아닌 낫으로 수십 번 찍어 줄기를 넘어뜨렸다. 왜 그랬을까”와 같은 문장에서는 사념이 짙어진다. 학살자가 남긴 흔적을 갈무리하는 문체에서 잘 감춘 증오가 묻어나온다.

 

숲길 끝에는 매번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다

보통 인문학 한다는 사람들은 도시와 가깝고 숲과 멀다. 사람들이 어울리는 도시야말로 인문人紋이 일렁이는 공간일 것이다. 어찌 보면 인문학은 카페에서 지식과 담론을 펼치는 향연의 부산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에 세상과의 불화를 생리화한 글쓰기가 다락방처럼 자기 존재를 얻을 때 인문학은 꼭 ‘무관의 제왕’처럼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 영광스러운 지적 성취만은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은 ‘과정으로서의 인문학’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면이 있다. 그 과정이 전개되는 공간 역시 확연하게 상징적이다. 숲의 길은 때로 단조롭지만 여러 갈래로 펼쳐진 잎맥을 닮았다. 이파리를 주워 그 귀퉁이와 촉감을 구분하는 인간의 눈길이 섬세해질 때 우리 내면에서 두 배 세 배로 확장되며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이룬다. 그리고 그 잎맥과 꽃잎의 굴곡 위를 걸어가는 인간의 발길이 스스로의 쟁기질로 실핏줄 같은 길을 내다가 열고 나오는 문이 참으로 다양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해준다.
“얻으려면 먼저 줘야 하고, 너무 곧은 것은 굽어 보인다”라고 노자가 말했다. 몸에 각인된 앎, 이른바 ‘체식體識’을 익혀가는 일은 강인함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마음의 보드라운 속살이 계속 자라날 수 있다. 저자의 산책길 따라 매일매일 마음의 보드라운 살이 새싹처럼 계속 자라나는 모습이 우리에게 인문학하기의 가치를 충분히 되새겨주게 하리라고 믿는다.

목차

머리말

가을 꽃잎 말리는 시간
몹시 놀라 넋을 잃다

봄 봄꽃들
노루귀 꽃밭에서 노루 울음소리를 듣다
뱀을 만나는 사이 나무는 베이고
봄빛에 물들다
감자난초
열쭝이는 어디로 갔을까
‘목우산방’ 나들이

여름 줄풀
중복물 지다
봉숭아물을 들이다

가을 싸리버섯
능이버섯 사이로 노인 모습이 어른거리고
머루는 어디에도 없고
초롱단은 용담
송이전골 냄비를 가운데 두고

겨울 항아리를 얻다
패름이 돌듯
설해목
생활 속 속도

봄 직박구리 떼 날다
물장구치는 수달
멧돼지
산불
찔레꽃머리

여름 쌍무지개
벌과 곤충이 사라진다면
멧돼지 새끼를 사로잡다
복달임
꾀꼬리 한 쌍
아무렇지 않게 전해진 부음

가을 고기를 먹는다는 것
벌에 쏘이다
저녁산책
대포알이 날아가도
가을가뭄
만산홍엽
‘추곡수매’하던 날
어이딸

겨울 콩 두 말로 메주를 쑤다
프랑켄 푸드(유전자 조작 작물)
화진포호수 한 바퀴

봄 건봉사 가는 길에
생강나무 꽃
진달래꽃
아무도 찾지 않는 나물들
솔 싹
간장을 달이고 된장을 담그다

여름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가을 단호박 두 통에 얹힌 인정

겨울 겨울 입새
죽임을 당하는 짐승들
말똥가리 날다
어정섣달
가든한 삶
그때 그 동무들은 다 어디로 떠났는지

봄 봄이다
어린 나무를 심다
산개구리들
공사 중
꽃샘잎샘
제비 돌아오다
꽃 무덤
귀룽나무는 구름나무
삼지구엽초
학생學生 하나에 유인孺人이 둘
비안개
조화 붙은 날씨
꽃배암들
참나물
천마

여름 장마 예보
구름타래
고양이는 나비를 쫓고 나비는 꽃을 탐하는 사이

가을 더넘바람
한가위 보름달
죽은 복작노루
오후 두 시
새품, 갈품
착살스럽다
신생이 탄생하는 순간
김장김치 260포기

겨울 선물 받은 도루묵

봄 불알고비
노란 고양이, 검은 고양이
송홧가루 날리고

여름 산작약 흰 꽃을 그리워하다
뽕나무 심다
개똥장마
잘고 어린 꽃들에게도 눈길을
까막까치
언젠가는 그리워질 한여름

가을 구름버섯(운지버섯)
죽은 이들은 어디로 가는지
기이한 하수오

미리보기

아무리 춥다고 웅크리고 있어도 밖은 어느 사이 슬몃슬몃 겨울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겨울 가면 봄이 온다는, 아니 이맘때는 겨울과 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리를 내주고, 자리를 받아들이는 그 어떤 경계도 없는, 다만 그러한 완충지대로써 겨울이 가고 봄은 오고 있었다. _「머리말」

지은이/옮긴이 추천의 글

“김담 씨는 나를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말의 무게가 의심스럽다. 실은 우리 모두는 제각각의 성숙과 비움을 통해 ‘동무’의 묘맥苗脈을 나누어 지닐 수밖에 없지 않나? 나는 김담 씨에게 그 흔한 ‘선생’이란 호칭을 달지도 않지만, 내게 정녕 선생이라는 말의 무게를 얻는 쪽은 그일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의 교우 속에 내가 그를 통해 배우고 도움을 얻은 쪽은 대략 두 가지다. 내가 김담 씨를 일러 내 ‘꽃선생’이라고 하듯 그는 야생화나 산야초, 약초나 나무 등속에 동뜨게 해박한 지식, 아니 ‘체식體識’을 지녔는데, (내가 한때 우스개로 ‘김담은 발담’이라고도 하였듯이) 이 모든 지식 또한 알음알이, 아니 스스로 몸을 통해 앓아 얻은 ‘앓음알이’다. 또 하나는 그의 한글 실력이다. 그가 부박하고 모난 세상을 만나 소설가로서 크게 입신하지 못하긴 했지만, 소설 속에 요령 있게, 실답게 부리는 한글을 읽노라면 그 재조才調야 당대 최고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 김담이 내는 산문집은 바로 이 두 가지 재조를 한껏 버무린 결실이니, 어느 독자가 그 보람과 가치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있겠나?”

_김영민, 철학자

 

“산책과 인문학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걷는 자야말로 쓰는 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근대 인간 루소의 산책에 대한 예찬을 보면 알 수 있는 일. 김담의 산문은 이런 산책의 의미에 자신을 밀착시키고 있다. 이렇게 생생하고 풍성하게 산책자의 감성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의 산책은 도회인의 만보와 엄연히 다르다. 만보가 목적 없는 걷기라면 그가 추구하는 산책은 목적을 가진다. 그는 마을에서 나와서 숲으로 들어간다. 그의 행보는 언제나 일정하고, 그 과정은 단아한 산문으로 복기된다. 코로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그의 산문은 이런 맥락에서 근대 이전의 세계에 대한 향수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향수어린 감상이 그의 산문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산문은 마치 잔잔한 수면을 가진 개울물 같다. 그 아래로 수많은 물살이 바위틈을 가르며 달린다. 현실에 대한 맹렬한 자세가 드러나는 것이다. 유유자적하는 ‘은둔자’가 아니라 이 세계를 살아가는 ‘고독자’의 형상이 산문이라는 형식을 빌려 태어났다.”

_이택광, 문화비평가, 『경희대학교』영미문화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