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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태후와 궁녀들 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가 직접 들려주는
  • 지은이 | 진이 선이링 룽얼
  • 옮긴이 | 주수련
  • 발행일 | 2012년 11월 19일
  • 쪽   수 | 639p
  • 책   값 | 24,000 원
  • 판   형 | 152*223
  • ISBN  | 9788967350284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노궁녀 ‘룽얼’은 누구인가?

걸작 논픽션이라는 말이 전혀 손색없는 『서태후와 궁녀들』은 “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가 집적 들려주는”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책을 읽기 전에 반드시 노궁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저자들은 노궁녀의 구술口述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그들은 1940년대 초반에 만났다. 노궁녀는 이미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한족 성은 ‘허何’이고 짐작컨대 본래의 만주 성은 ‘허서리赫舍里’ 씨다. 궁에 있을 때는 ‘룽얼榮兒’이라 불렸고 서태후는 ‘룽’이라 불렀다.

노궁녀는 원래 시청西城 징지다오京畿道에 살았다. 아버지는 여느 기하인들(만주족)처럼 딱히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냈고 10살 이상 많은 오빠는 아마추어 희곡 배우였다. 룽얼은 열세 살에 황궁에 들어와 저수궁儲秀宮[청대 서태후가 거처했던 곳]에서 일을 배우고 서태후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주로 담당했던 일은 담배를 올리는 것이었다.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서태후의 명으로 류 씨 성인 태감에게 시집을 갔다. 그는 서태후의 심복이었던 환관 리롄잉의 양아들로 베이츠쯔北池子에 살면서 광서제의 이발을 담당하던 환관이었다. 그러나 불구덩이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는 혼인생활 속에서 1년도 채 못 되어 태후를 그리워했고 다시 궁으로 들어가기를 청했다. 다행히 서태후의 특별허가를 받아 궁으로 돌아왔는데 이것은 청대에 매우 드문 일이었다. 궁의 관례상 궁녀는 한번 궁을 떠나면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혼인한 몸으로 태후 곁에서 시중을 든다는 것은 태후의 각별한 애정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900년(경자년), 서태후를 따라 시안으로 피신했을 때는 출발 직전 진비珍妃가 처참하게 죽는 일을 현장에서 겪었다. 신축년, 시안에서 환궁했을 때는 나이가 들어(청대 궁의 관례에서 궁녀는 25세 이전에 궁을 떠나 혼인을 해야 했다) 궁을 떠나 베이츠쯔로 옮겨와야 했다. 서태후의 시중을 든 햇수는 무려 8년이었다. 남편이었던 류 태감은 아편쟁이로 도박에 빠져 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는 고난의 세월이었다.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룽얼의 구술을 책으로 정리해낸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이 궁녀의 생활, 서태후의 일상, 광서제에 관한 일화, 기타 사소한 이야기들 등 네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자신이 지면에 옮기는 문제에 있어서 투철한 책임의식을 갖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공자는 일찍이 ‘전하기만 하고 짓지 아니하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는 것은 마음속으로 노팽老彭을 본받고자 함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마도 이 노팽이라는 분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대하고 거기에 기름이나 식초를 첨가하지 않은, 즉 실제 상황만을 전한 분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노팽 선생을 따라보고자 한다.”
저자는 글을 쓰면서 모든 근거 없는 과장, 임의로 신비감을 더하는 것, 암암리에 기만하는 것, 현실성 없이 허황된 것을 배제하고,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아는 것처럼 쓰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에 들어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소중하고 귀중한 것이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이야기는 온전히 서태후 만년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며 그녀가 백성의 고혈을 돌아보지 않고 극도의 사치로 향락을 누리던 궁중생활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서태후의 일상이라든지 연회와 유람, 먹고 마시고 자는 등의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모두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런 생활 속에서 궁중의 체제를 대략적으로 엿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봉건사회 통치계급이 정한 삼엄하고 잔혹한 제도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위엄이 하늘 아래 만백성 위에 자리하고, 한 사람의 사욕이 나라와 민족이 망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것을 말이다.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가을이 왔음을 안다”, 누구나 아는 이 말처럼 서태후가 추구했던 바를 보고 그녀의 속마음이 무엇을 향했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청나라 말기 기록에 이런 시가 있던다. “삼십삼천 하늘 위 하늘, 가장 높은 곳, 옥황상제의 머리 위 왕관, 왕관 위에 깃대를 꽂고, 나 부처는 그 깃대 꼭대기에 있노라.” 스스로 ‘서천의 태후 부처님’의 나라 씨라 칭하던 서태후였으니 그 높고 높은 지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는 그 지위를 신랄하게 비꼰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풍자시는 풍자를 하기에는 충분하나 세세한 진상을 알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도대체 그녀는 어떻게 고귀함을 유지했는지, 어느 정도의 고귀함이었는지? 먹는 것은 어떻게 먹었는지? 자는 것은 어떻게 잤는지? 또 무엇을 하면서 즐겼는지? 이런 생생하고 사실적인 일들은 바로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모두 생생하고 충실하다. 궁녀들이 입궁해서 배치를 받고, 자고·먹고·입고 하는 모든 습관을 교육받는 법, 잘못했을 때의 체벌, 태감들과의 관계, 서태후의 일과가 어떻게 시작되어 마무리되는지, 그녀의 식사습관, 방의 모양, 세수하고 머리빗고 치장하는 데 들이는 공, 궁 전반의 청소, 음식준비 등 세세한 이야기들을 읽은 독자들은 책을 덮고 절로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강대한 이웃 나라들이 국경까지 밀어닥치며 호시탐탐 나라를 노리고 나라가 열강에 쪼개질 지경에 이른 상황임에도 고군분투하여 나라의 힘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권좌에 취한 권력자의 실제 모습을. 아마 착취를 당한 중국인들이나 역사에 밝은 이들은 더욱 비통한 심정에 사로잡힐 지도 모르나, 동시에 이 책을 보며 궁중의 법도와 풍속의 화려한 모습에 정신을 잃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서태후 만년에는 외세를 배척하던 것에서 외세의 비위를 맞추는 쪽으로 바뀌었다. 소위 ‘중국의 물력을 계산해 외국의 환심을 산다’는 태도였다. 제국주의자들에게 굴복하고 자주 연회를 열어 각국 공사관 부인들을 초청하고 웃는 낯으로 열강의 비위를 맞추려 했다.
대체로 궁녀의 생활, 서태후의 일상, 광서제에 관한 일화, 기타 사소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이 책은 굳이 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손가는 대로 독자들이 연상하기 쉽도록 배려한 게 큰 장점이다. ‘네 명의 금강역사, 500명의 아라한’ 부분은 물론 서태후의 일상에 속한다. 그리고 ‘다보보’ 이야기는 확실히 기타 사소한 이야기에 속한다. 하지만 이 두 이야기를 연이어 보면 궁 안에서 태후는 천하제일의 연회를 즐기지만 궁 밖에서 팔기 자제들은 다보보를 먹는 꼴사나운 모습을 알 수 있다. 만주인이 세운 청 왕조의 기둥, 기하인들이 말이다. 이 두 모습을 대조해보면서 독자들은 자연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서태후의 팔옥누대八玉樓臺 역시 모래 위에 세운 성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아예 이 두 이야기를 함께 배치했다. 또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궁에서 연지를 제작하는 이야기를 쓰고 나니 이는 늦봄의 일이라 펜이 가는 대로 초여름의 익모초 연고를 만드는 이야기까지 썼다. 또 중간에 냄새나는 대마 이야기들을 발견해서 장푸의 거세 이야기에 연결해서 썼다. 서행길 이야기를 쓸 때는 피란의 긴 여정 중 서태후의 가마 이야기 외에도 태후를 따라 서쪽으로 함께 피란한 사람들 이야기까지 써야 했다. 그래서 ‘서행길’ 부분에 황태자 이야기며 ‘광서제가 머리를 깎다’ 편 등을 수록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궁녀생활
서막 | 저수궁에 들어가다 | ‘마마님’을 알현하다 | 때릴 수는 있지만 욕은 할 수 없다 | 얼굴은 때리지
않는다 | 잠자는 자세 | 방귀 뀔까 무서워 배불리 먹을 수 없다 | 아침식사 | 점심식사 | 저녁식사와
야식 | 사계절 음식 | 의복, 치장 | 행동거지 | 궁녀는 글을 배우지 못한다 | 과일 항아리 | 가장 기쁜
일-가족과의 만남 | 전달 신호 | 담배를 올리는 일 | 제기차기

제2장 서태후의 일상
서태후의 일상 | 저수궁과 체화전 | 야간 당직 | 여담 | 조회 이전의 풍경 | 머리 빗기 | 분주한 아침 |
가장 고된 일 | 화장지와 관방 | 상소문 읽기 | 식사 준비 | 취침 | 식사를 올리는 일 | 네 명의 금강역사,
500명의 아라한 | 음식을 권하지 않는 예 | ‘다보보’가 불러온 이야기 | 가장 먼저 설 소식을 전하는
납팔일 | 수많은 메뚜기의 날갯짓 | 주사위 놀이와 검은 원숭이 | 발에는 비단 신발, 입술에는 붉은
앵두 | 발 씻기, 목욕, 손톱 손질 | 이허위안 | 이허위안 지춘정 | 옥당춘 부귀 | 호수 위의 신선

제3장 청 황궁의 풍속
무당과 식육제 | 2월 2일, 용이 머리를 드는 날 | 바느질 솜씨를 구하는 날 | 악귀를 쫓는 중원절

제4장 서태후와 광서제의 시안 피란
시안으로 가기 전에 죽은 진비 | 피신하기 전 두 개의 손톱을 잘라내다 | 시관스西貫市에서의 하룻밤
-고난의 첫 행선지 | 창핑에서 화이라이까지 | 서행길 | 광서제가 머리를 깎다 | 신저우의 가을밤 |
타이위안에서 게를 먹으며 술잔을 들다

제5장 내궁의 소소한 이야기들
서태후의 친정 | 장모가 사위를 때리다 | 광서제와 룽위 | 광서제 | 부모가 준 골육은 버리지
않는다-어느 태감이 전하는 이야기 | 리 피석에서 은제장에 이르기까지-내가 알고 있는 리롄잉 |
추이위구이가 다시 궁에 돌아오다

후기
부록 1 내가 아는 ‘노궁녀’ _류야오신
부록 2 작은 정성으로 가난한 사함을 도왔던 50년: 진이와 함께한 날들을 돌아보며 _선이링
옮긴이의 말

 

미리보기

궁녀는 똑바로 누워 잘 수 없다
“첫 번째는 자는 것이에요. 궁 안의 규범 중 유난히 엄격한 규범이 하나 있어요. 궁녀들은 잘 때 바로 누워 하늘을 보고 자면 안 된답니다. 반드시 몸을 옆으로 돌리고 다리를 구부린 채 자야 했어요. 궁 안의 사람들은 모두 신을 믿어요. 전해지기로는 궁마다 신이 있어서 밤이 되면 궁 밖으로 나와 그 궁을 지킨다고 해요. 태후마마와 황상[재위 중인 황제], 황후마마를 보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궁녀들은 밤에도 아무렇게나 잘 수 없었어요. 신이 보는데 사지를 벌리고 팔자 모양으로 누워 있으면 얼마나 보기 싫겠어요! 그랬다가 만약 신의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하면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않겠지요. 자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몰라요. 그때 습관 때문에 지금까지도 몸을 옆으로 돌리고 잠을 자요. 얼마나 맞았으면 그러겠어요.” _24~26쪽

 

‘한 편의 행위 예술’과도 같은 담배 시중
“태후마마가 편한 자세로 앉아 나를 한번 흘깃 쳐다보시면 나는 곧바로 알아듣고 부시를 준비했어요. 부싯돌과 부들솜까지 잘 준비한 다음 뒤돌아서서(반드시 몸을 돌리고 했어요) 부시로 부싯돌을 긋지요. 부싯깃에 불이 붙으면 종이에 옮겨 붙이고 입으로 불어서 불길을 일으킨 다음 불길을 아래로 향하게 해서 손으로 조심스럽게 끌어 모아요.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한 손으로 담뱃대를 받쳐 올리지요. 태후마마가 담뱃대를 무시기 편하도록 태후마마 입에서 3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말이에요. 태후마마가 담뱃대를 무시면 서둘러 왼손으로 종이를 내리고 다시 불길을 모으지요. 그렇게 태후마마가 담배를 한 차례 피우시고 나면 대통을 새것으로 바꾸어드려요. 이것이 대략 담배 시중을 드는 일련의 과정이에요.” _55쪽

 

‘서태후의 스캔들’을 해명하다
허 아주머님의 말에 나는 완전히 설득당하고 말았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샤오안쯔에 관한 이야기는 확실히 허무맹랑한 데가 있다. 처음에 거세를 하고 궁에 들어가기를 청했을 때부터 여러 기관의 검사를 거쳐야 했을 텐데 세력을 얻고 나서 갑자기 거세한 부분이 자랐다는 것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인 듯하다. 허 아주머님은 가끔 장황하게 하소연을 하는 일도 있었다.
“중화민국 이래로 수많은 사람이 내게 묻더군요. 리롄잉이 야간 당직을 설 때 태후마마가 침실에서 기침하는 소리를 듣고 태후마마를 깨울까봐 두려워 무릎을 꿇고 기어서 침전으로 들어갔다고 말이지요. 들어와서는 태후마마께 마실 물을 따라드렸더니 마마가 무척 감격했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렇게 따지면 태후마마는 주무실 때 궁에 홀로 계셨다는 말이 되잖아요? 아무도 태후마마를 돌보지 않고, 밤에 기침을 하시는데도 물 한 그릇 떠다줄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게 무슨 황궁의 태후겠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_83~84쪽

 

상소문에 손톱으로 가부를 표시한 서태후
“상소문을 읽으신 뒤에는 종이 위에 엄지손가락 손톱으로 꼭꼭 눌러 무언가를 표시하셨어요. 어떤 때는 수직선을 그리시고 어떤 때는 ×자를 그리시고 어떤 때는 V자 표시를 하셨지요. 어쨌든 군기처의 장경[청대의 문서를 관리하는 문관]들은 모두 알아보겠지만요. 상소문을 읽는 이 짧은 시간 동안 태후마마의 손톱이 한 번 움직이는 대로 어떤 이는 승진을 하고 어떤 이는 목이 날아가고 어떤 이는 귀양을 가게 되는 거예요. 그동안 나는 문에 서서 ‘룽얼, 담배를 가져오너라’ 하는 말씀이 들리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이 말이 떨어지면 궁녀들을 관리하시는 마마님은 내가 ‘네’ 하고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궁문을 나가 궁녀들에게 일을 지시하셨지요. 태후마마가 이 큰일을 마치신 것을 알면 비가 한 차례 왔다가 갠 것처럼 궁 전체가 다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각자 맡은 일을 시작한답니다.” _114~116쪽

 

진심으로 미신을 믿는 청 최고 권력자
“태후마마는 미신을 깊이 믿는 분이었어요. 안 믿는 것보다는 믿는 게 낫다는 식으로 대충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믿고 계셨지요. 7월 10일이 지나면 잃어버린 물건이 있어도 찾지 못하게 하셨어요. 예를 들어 태후마마가 부채를 어느 곳에 떨어뜨려도 절대 찾으면 안 되었어요. ‘찾지 말거라. 며칠 후에 다시 보자꾸나’ 하고 말씀하셨지요. 며칠이 지나서 정말 찾으면 태후마마는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내가 찾을 필요 없다고 했잖니. 며칠이 지나면 돌아오니까 말이야.’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였어요. 태후마마는 이 며칠 동안 도처에 귀신이 있어서 무언가 아끼는 물건을 발견하면 며칠간 가지고 놀기 때문에 찾지 말아야 한다고 믿으셨거든요. 귀신들을 대할 때는 속 좁게 굴지 말고 대범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만약 사람이 조급해하면 그것들은 도리어 물건을 망가뜨려 외진 구석에 던져버린다고 하시면서요. 이는 곧 화가 났다는 표시이지요. 우리 현세에 사는 사람들이 귀신들을 화나게 할 필요가 뭐가 있나요. 태후마마의 이런 세심함과 넓은 도량은 사람들을 대할 때는 많이 볼 수 없었어요. 오직 귀신들에게만 이렇게 큰 아량으로 자비를 베푸셨지요.” _317쪽

 

진비의 죽음
“‘태후마마는 그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어. ‘서양인들이 성안으로 쳐들어오려 한다. 바깥은 난리가 나서 누구도 제 한 몸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야. 만일 그들에게 치욕을 당하면 황실의 체통은 전부 끝장이고 선대 조상들께도 얼굴을 들 수 없다는 것쯤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매우 강경한 어조셨어. 말씀을 마치시고는 턱을 치켜드시고 진비마마에게 눈길 한번 주시지 않은 채 조용히 대답을 기다리셨지.’” “‘진비마마는 잠깐 말이 없다가 이내 이렇게 대답하셨어. ‘알고 있습니다. 선조의 체면을 깎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태후마마가 다시 입을 여셨어. ‘너는 아직 젊어서 말썽이 나기 쉽다. 우리는 잠시 몸을 피신하려 하나 젊은 너를 데리고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진비마마가 대답하셨어. ‘마마는 몸을 피하시옵소서. 황상을 베이징에 두시어 정세를 돌보도록 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 말이 태후마마의 심기를 건드렸어. 태후마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색이 변하시더니 큰 소리로 꾸짖으셨지. ‘당장 죽음을 코앞에 둔 것이 감히 뭐라고 지껄이는 게냐!’” “‘그러자 진비마마도 외쳤어. ‘저는 죽을죄가 없사옵니다!’ ‘죄가 있든지 없든지 너는 죽어야 할 것이다!’ ‘황상을 한번 뵙게 해주시옵소서. 황상은 저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황상도 너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저 계집을 우물 속으로 집어넣어라! 게 누구 없느냐?’’” “‘이렇게 해서 나랑 왕더환이 같이 진비마마를 붙들어서 정순문貞順門 안 우물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지. 진비마마는 계속 황상을 뵙게 해달라고 외치다가 결국에는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지. ‘황상, 베풀어주신 은혜, 내세에서 갚겠나이다.’”(태감 추이위구이가 룽얼에게 해준 말,) _348~349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진이, 선이링

진이와 선이링은 <서태후와 궁녀들>의 구술자인 노궁녀 룽얼과 이웃으로 지낸 지식인 부부다. 두 사람과 노궁녀는 말년을 이웃으로 함께 보내며 서로의 살림을 돌봐주었고 이런 오고감 속에 청 황실 깊숙한 곳의 이야기가 풀려나왔다.

진이는 허베이 성 위톈玉田 현 사람으로 본명은 왕시판王錫?이다. 진이와 선이링은 1939년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처음 만났고, 대학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진 학구파다. 1940년대 초반 결혼하고 대학을 졸업한 둘은 해방 전의 베이징에서 궁핍한 신혼생활을 이어나갔다. 곧 지도교수의 배려로 진이가 히로시마대학 문리과대 교수로 초빙되면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앞둔 일본에서의 생활은 큰아들이 심각한 영양실조로 불구가 되는 아픔을 남긴 채 끝나버리고 말았다. 귀국 후 1947년 진이는 베이징 제2중학, 선이링은 베이징 제25중학에 문학교사로 부임하면서 생활은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남편 진이가 콩팥수술 후유증으로 요양에 들어가는 바람에 두 사람은 가정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고, 지인의 소개로 노궁녀 룽얼과 첫 인연을 맺게 된다. 선이링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노궁녀가 살림을 돌보고 남편 진이의 말 상대가 되어주었다. 노궁녀를 ‘허 아주머님’이라 불렀던 진이는 그녀가 들려주는 청 황실의 세부적인 이야기에 빠져들며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화는 오래 지속되었다. 진이·선이링 부부는 이때의 이야기를 틈틈이 기록으로 남겨 나중에 책의 토대로 삼았다. 진이는 1950년대 초에 고전문학에 대한 오랜 연구와 조예를 인정받아 란저우 사범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문학적 조예와 비상한 기억력은 1980년대 후반 『자금성』 잡지에 ‘궁녀담왕록宮女談往錄’이란 제목으로 청 황실의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빛을 발했다. 중국에서 이 책은 1990년대 초반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진이는 안타깝게도 1992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룽얼榮兒

1880년생. 자금성 저수궁儲秀宮에서 서태후를 모신 청 황실의 궁녀. 만주 기하인旗下人으로 열세 살에 궁에 들어가 8년간 서태후에게 담배 올리는 일을 했다. 서태후가 매우 아낀 몇 안 되는 궁녀 중 하나였으며 8국연합국 군대가 자금성을 함락시키고 서태후가 광서제와 함께 급히 시안으로 피난할 때도 동행하여 모실 정도로 측근이었다. 즉, 룽얼은 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이자 서태후의 권세가 최고조로 올랐다 추락한 노년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산증인이다. 『서태후와 궁녀들』은 궁을 나온 그녀가 평범한 신분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1940년대 말 이 책의 저자인 진이·선이링 부부를 만나 당시를 구술하면서 이뤄졌다.

 

옮긴이

주수련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U&J 에이전시에서 중 국어책을 번역하고 교정하는 일을 겸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기억을 잃은 소년》, 《서태후와 궁녀들》,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