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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손엔 공자 한손엔 황제 중국의 문화굴기를 읽는다
  • 지은이 | 이유진
  • 옮긴이 |
  • 발행일 | 2012년 08월 20일
  • 쪽   수 | 200p
  • 책   값 | 11,000 원
  • 판   형 | 140*215
  • ISBN  | ISBN : 9788967350086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오늘날 공자孔子와 황제黃帝는
중화문명이라는 ‘이기적 유전자’를 실어나른다

중국에서 공자孔子는 최고最高의 상징이며 황제黃帝는 최고最古의 상징이다. 이 두 요소가 시공의 좌표에서 만날 때 그것은 과거의 영광을 오늘에 재현하려는 ‘욕망의 덩어리’가 된다. 그것은 마치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거나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될 수 있는 ‘밈meme’이 되어 전염병처럼 계속 되살아난다.

글항아리가 새롭게 준비한 ‘아케이드 프로젝트’ 시리즈의 제1권으로 [한손엔 공자 한손엔 황제]가 출간되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시리즈는 학계에 발표되는 양질의 논문 한 편을 대중을 위한 단행본 한 권으로 연결시킨 학술 무브먼트의 일종이다.(자세한 설명은 맨 끝장의 첨부 참조.) 시리즈의 첫 권으로 나온 이번 책은 아시아의 맹주를 넘어 세계적 제국의 위상을 회복하고 있는 중국의 ‘문화적 굴기’를 들여다보았다. 중국 신화학을 전공한 저자는 최근 대륙에서 열풍처럼 불고 있는 ‘공자孔子’ 성인 만들기 등 유가 이데올로기의 확장과 CCTV에서 6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중화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는 한족의 시조 ‘황제黃帝’를 중화 내셔널리즘의 핵심 자원으로 보고, 중국의 문화적 프로파간다가 어떤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지, 그것이 과거 오랜 시간 중국의 그늘 밑에서 살았던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심도 깊게 살펴보고 있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앞두고, 주목하는 컬처코드

“중국은 앞으로 더 발전하더라도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
2012년 7월 7일 베이징에서 세계평화포럼이 열렸다.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개막연설에서 중국은 평화외교의 방침을 견지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에 내정되어 있는, 바야흐로 13억 중국을 이끌고 갈 최고 지도자의 이 발언은 중국의 ‘화평굴기’를 재천명한 것이다. 시진핑의 이 발언은 ‘중국위협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 2010년 중국이 GDP에 있어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면서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경계심으로 가득하다. 중국의 군사적 팽창주의, 주변 국가와의 영토분쟁, 아프리카의 자원독점 등은 중국 위협론이 그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음모론이 아님을 말해준다.
세계은행을 비롯한 주요 관련 기관의 예상에 따르면, 2020년경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는 세계 일등 국가가 되겠다는 야심찬 플랜을 세워놓고 있다. G2에서 G1으로의 도약이 과연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현재로서 분명한 것은,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발언권이 강화되면서 중국과 미국의 협력 시스템인 ‘차이메리카Chimerica’가 균열 조짐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미국의 경쟁과 갈등은 ‘베이징 컨센서스’와 ‘워싱턴 컨센서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의 대명사인 워싱턴 컨센서스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면서, 베이징 컨센서스로 대변되는 중국식 발전 모델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와 베이징 컨센서스는 초강대국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 사이의 이념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베이징 컨센서스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전 분야에 걸쳐서 중국이 추구하고 있는 ‘중국식’ 발전 모델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베이징 컨센서스의 확산은 중국적 가치와 규범의 확산과 연동되어 있다. 중국이 소프트파워 강화에 열을 올리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적 가치와 규범의 확산’이라는 명제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의 뿌리 깊은 중화사상과 잇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자 최고라는 중화사상은, 중국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컬처코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차이나 스탠더드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만들고자 하는 중국의 욕망은 ‘중화中華’라는 망탈리테의 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에 맞설 초강대국을 지향하고 있는 중국이, 국가통합의 이데올로기로 선택한 것이 바로 ‘중화 내셔널리즘’이다. “중화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슬로건은 G1을 향한 중국에 강력한 추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공자와 황제는 중화 내셔널리즘의 핵심 자원이다. 중화 내셔널리즘의 근저에는, 최고最高이자 최고最古라는 중국 문명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 그리고 공자와 황제는 이를 대변하는 코드다. 2021년의 중국, 2049년의 중국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이 코드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건국 이후 30년과 개혁개방 이후 30년을 지나온 중국이 이제 새로운 30년을 펼쳐가고 있다. 계급투쟁과 경제발전이 각각 앞의 두 단계 30년의 모토였다면, 향후 30년의 모토는 ‘위대한 중화의 재현’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드파워에 부합하는 소프트파워의 제고가 요구된다.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을 꿈꾸는 중국은 이제 문화강국이 되는 길을 걷고자 한다. 유교문화와 다원일체로서의 다민족문화가 문화강국으로서 중국의 핵심 자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공자와 황제가 있다. 공교롭게도 공자와 황제는 그 속성상 중국 내부 구성원들이 의사擬似 혈연관계를 통해 강고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앞의 두 단계 30년의 명분이 각각 ‘투쟁’과 ‘발전’이었다면, 지금 중국은 대내외적으로 ‘화해(조화-평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게 될 것이고, 그 한쪽에서는 영토분쟁과 역사분쟁과 자원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일방적인 영향력의 행사가 가능해진 오늘날, 중국이 과연 ‘화해’라는 명분을 어떻게 실천해나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세계를 책임지겠다”는 자신감과 세계 질서의 재편 

지미知美의 물결 대신 지중知中의 물결이 일면서 국내에서도 중국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관심의 초점은 대부분중국의 경제 동향과 정치적 이슈에 맞춰져 있다. 그에 비해 역사-철학-언어-예술 등 문화적 차원에서 서서히 강화되고 있는 중화 프로파간다를 다룬 책들은 보기 힘들다. 사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문사철文士哲 전통을 해외에 알리는 데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고 있으며, 나라 안으로도 출판-언론-학술을 통한 중화이데올로기 고취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중국의 문화굴기는 “한 손에는 공자, 다른 한 손에는 황제”라는 명확한 로드맵을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에 그물망처럼 뻗어나가는 공자학원은 중국어가 세계 보편어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유가적 문화 논리를 정치적 보편사상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담론들은, 근대화가 서구화라는 기존의 등식을 깨뜨리고자 한다. 이것은 민족국가의 틀을 벗어나 중국적 시야에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지적 움직임과도 관련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대표하는 자오팅양趙汀陽은, 제국주의적 세계체제를 대신할 개념으로서 고대 중국의 천하 관념을 재조명하며 ‘천하체계天下體系’라는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중국이 세계를 위한 새로운 이념을 창출하여 세계를 책임지겠다는 포부가 담긴 개념이다. 즉 천하체계라는 개념에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던 시기의 역사적 경험을 오늘날의 대안적 세계질서 모델로 보편화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국가를 뛰어넘어 천하라는 인식을 온 인류가 공유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지, 그리고 세계를 책임지고자 하는 중국은 과연 국가를 뛰어넘어 세계를 볼 수 있을지,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황제와 공자라는 맷돌, 아시아의 다양성 균질화 우려

중국의 굴기로 인해 중국의 문제가 세계의 문제가 된 오늘날, 중국은 “이미 무대에 올랐으니 말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의 내함은 “이미 무대에 올랐으니 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리라. 즉 중국의 발언은 그들이 말한 의무라기보다는 권리 주장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론적인 전략 외에도 유가사상은 내부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모순에 대한 효과적인 처방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즉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넘어선 제3의 길인 ‘화해사회’의 정치적-문화적-사상적 자원을 유가로부터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한 손에는 ‘공자’가 있다. 한편 56개 민족을 아울러야 하는 다민족국가로서 중국은 민족의 통합이야말로 국운의 열쇠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56’이라는 숫자는 국가와 관련된 모든 기념비적인 사건의 상징으로 활용된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각자의 전통 복장을 입은 56개 민족의 어린이들이 오성홍기를 들고 입장했고, 상하이엑스포 중국관 지붕에는 56개 민족을 상징하는 56개의 들보가 얹혔다. 물론 이들 56개민족은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중국의 다른 한 손에서는 ‘황제’라는 맷돌이 돌아가고 있다. 중국의 다양한 민족이 황제라는 맷돌을 통과하며 하나의 가루처럼 균질화되어가는 것이다. “중화민족中華民族 모두가 황제의 자손”이라는 구호는 정치-언론-학술 등 각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평평화f latism’라는 개념으로 세계화의 동력을 설명했는데, 그의 분석에 따르면 관용과 포용력을 지닌 다민족문화야말로 세계화에 적합한 구조다. 프리드먼은 세계를 지속적으로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문화를 포용하는 힘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거시적인 평평함은 미시적인 ‘울퉁불퉁함’을 받아들임으로써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황제와 공자를 내세우는 중국의 움직임이 우려스러운 것은, 그것이 다양한 울퉁불퉁함을 밀어내려는 게 아닌가 해서이다. 황제를 내세워 이뤄내려는 신화적-역사적 균질화, 공자를 내세워 펼쳐내려는 문화적-사상적 균질화는 울퉁불퉁한 목소리들을 잠재울 것이 분명하다.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균질화, 이어서 향후 아시아에서 벌어질 균질화, 그 한가운데에 황제와 공자가 자리하고 있다. 한편 “한 손에는 공자, 다른 한 손에는 황제”라는 로드맵은 문화 종주국으로서 중국이 보여주려는 ‘표상representation’을 겨냥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세계를 모두 품을 수 있는 문화, 가장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가라는 표상을 통해, 중국이야말로 국제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지닐 자격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자와 황제, 적에서 동지로 극적인 화해… 둘을 내세운 중국의 국가적 프로젝트 분석

이 책이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것은 이상의 내용과 관련된 공자와 황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자와 황제라는 문화적 기제가 어떻게 작동하면서 위대한 ‘중화’라는 명제를 서서히 강화해나가고 있는가를 이야기하려 한다. 중국이 공자와 황제로부터 끌어내고자 하는 다양한 자원, 즉 논리-정서-권력 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을 때 그것을 지탱했던 힘은 돈과 문자와 제도였다. 향후 공자와 황제로부터 뽑아내려는 것 역시 세계 중심으로서 중국의 기초를 강화해줄 보강제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중국이 문명의 중심을 자부할 수 없었던 시기는 불과 100년 남짓에 불과하다. 100여 년 전 만청晩淸 시기에 엄청난 나락을 경험한 중국은, 오늘날 그 추락의 속도와 깊이에 상응하여 비상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두 역사적 시점에서 모두 공자와 황제가 나란히 불려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공자와 황제, 이 둘은 중국인에게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일까? 100여 년 전, 만청 시기 만주족의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자 했던 혁명파革命派는 ‘한족漢族’만으로 구성된 중국을 주장했다. 반면 유신파維新派는 중국 영토 안의 모든 민족을 중국인으로 아우르고자 했다. 즉 종족 민족주의를 내세운 혁명파와 문화 민족주의를 내세운 유신파가 팽팽하게 대립했다. 이때 혁명파가 내세운 아이콘이 ‘황제’이고, 유신파가 내세운 아이콘이 ‘공자’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은 ‘다원일체多元一體’로서의 중화민족을 부르짖으면서 그 시조로 황제를 불러들였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과거든 현재든 ‘황제’ 그 자체는 동일한데, 지금은 전혀 다른 소임을 띠고 소환된 것이다. 한족만의 시조가 어느새 중화민족 전체의 시조로 변신한 것이다. 게다가 만청 시기에는 황제가 서아시아에서 기원했다는 담론이 유행하다가, 지금은 황제의 근거지가 중국 동북의 홍산紅山문화 유역이었다는 주장이 대두하고 있다. 이처럼 황제가 한족만의 시조였다가 중화민족 전체의 시조가 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게 된 것은 모두, 황제가 ‘현재’의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부활한 결과다.
한편 100여 년 전 문화 민족주의의 아이콘이었던 공자는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자로 대표되는 문화, 즉 유가 문화가 지닌 시공간적 광범위함 때문에 공자가 지닌 문화적 힘은 단순히 중국 안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혹여나 공자가 문화 패권주의의 선봉에 나서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를 하게 된다.
공자의 이름을 내세우고 이루어지는 작업들이 공자의 ‘화和’를 내걸고 있긴 하나 그 속에는 패권적 ‘중화’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학원, [유장儒藏] 프로젝트, 공자평화상……. 유교문화권이었던 한국으로서는 오늘날 중국이 공자의 이름을 앞세워 진행하고 있는 작업들과 무관하기도 어렵게 됐다. 중국의 말처럼, 유가사상은 동아시아 공동의 자산이다.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그래도 마음이 켕기는 이유는 그 동아시아 공동의 자산이 중국의 문화 패권주의에 동원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관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년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우리는 역사의 시간좌표를 장악하려는 욕망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기년의 문제가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과 얼마나 깊은 관련이 있는지도 알게 된다.

 

기년紀年 논쟁, 중화 프로파간다의 온도를 재기 위한 시금석

이 책에서는 공자와 황제를 둘러싼 복잡다단한 역사적 의미를 ‘기년紀年’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들여다보려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만청 시기에는 왕조의 ‘연호年號’에 맞서서 ‘민족’의 역사를 시간화하는 방식을 두고 공자기년과 황제기년이 서로 경쟁했다. 오늘날에는 서력기원이 보편화된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며 공자기년과 황제기년에 관한 담론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처럼 시대의 격변기마다 기년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기년에는 그 속성상 권력관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년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우리는 역사의 시간좌표를 장악하려는 욕망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기년의 문제가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과 얼마나 깊은 관련이 있는지도 알게 된다.오늘날 기년에 관한 담론들을 통해 우리는 공자와 황제에 얽힌 중국의 문화심리를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황제를 통해 내부의 응집력을 강화하는 한편 공자를 통해 외부로 뻗어나가려는 문화 논리의 하나다. 또한 여기에는 황제로 표상되는 중국 역사의 유구함과 공자로 표상되는 유가 문화를 통해, ‘문화 주체성’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기도 하다. 이렇듯 황제와 공자는 중층적으로 결합된 채 ‘중화’라는 코드와 공명하고 있다. 최고最古인 동시에 최고最高인 이 ‘황제-공자’의 복합체는 중화의 문화유전자 밈meme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빚어질 중국은 서구를 모방한 대국이 아닌 고유의 문화로 우뚝 선 대국이다.
만청 시기 양쯔위안楊子元이 쓴 [신기원新紀元](1908)이라는 과학소설에서는, 1999년에 중국이 이듬해부터 황제기년을 쓰도록 세계의 동종同種 국가에 알리자 곧이어 백인종의 국가들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기원]에서 중국이 황인종의 대표 주자로 표현되었던 것처럼,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서구에 대항할 수 있는 아시아의 대표 주자가 바로 중국이라는 생각은 중국의 굴기와 더불어 계속 강화되고 있다. 이런 틀 속에서 중국 외 아시아 국가들은, 아시아의 대표 주자인 중국의 조력자 역할을 맡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중국이 아시아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한, ‘동아시아의 공동 문화’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담론들이 문화(특히 유가 문화)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문화 논리에 휘둘릴 가능성은 매우 높다. 정치-경제-군사에 이어 문화에서도 ‘중화’의 시대가 도래하려는 지금, 황제와 공자의 부활을 단순히 남의 집 잔칫상 쳐다보듯 할 수 없는 건 그 되살아남의 배경과 결과가 전 세계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목차

책머리에_이 컬처코드를 직시하라

서론
1. 100여 년 전의 꿈
2. 굴기
3. 공자와 황제
4. 기년

제1장 강희제는 왜 대명세의 목을 베었나 
역린의 책, 『남산집』 사건
캉유웨이의 『강학보』 폐간되다

제2장 기년의 경쟁 
공자기년 vs 황제기년
공자기년의 논리
·량치차오의 「신사학」에 대하여
황제기년의 논리
·쑨원의 오족공화론과 량치차오의 대민족주의

제3장 황제와 공자의 부활
생생한 역사 인물로 부활한 황제
·예수셴의 해명과 여전히 남는 의문
세계의 스승으로 되살아난 공자

제4장 낡고도 새로운 논쟁 
문화 주체성과 기년
·중국의 문화 주체성에 대한 자각, 그 곁에서 생각해볼 거리
100년 뒤의 세계는 몇 년도일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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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중국은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게 될 것이고, 그 한쪽에서는 영토분쟁과 역사분쟁과 자원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일방적인 영향력의 행사가 가능해진 오늘날, 중국이 과연 ‘화해’라는 명분을 어떻게 실천해나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_「책머리에」

 

이 책이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곳은 공자와 황제다. 공자와 황제라는 문화적 기제가 어떻게 작동하면서 위대한 ‘중화’라는 명제를 서서히 강화해나가고 있는가를 이야기하려 한다. 중국이 공자와 황제로부터 끌어내고자 하는 다양한 자원, 즉 논리·정서·권력 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을 때 그것을 지탱했던 힘은 돈과 문자와 제도였다. 향후 공자와 황제로부터 뽑아내려는 것 역시 세계 중심으로서 중국의 기초를 강화해줄 보강제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 _「서론」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이유진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의 전문연구원. 오늘날 우리 시각으로 중국 역사와 문화를 읽어주는 인문학자로, 복잡한 중국 역사를 대중적인 언어로 소개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여섯 도읍지 이야기』에서는 중국 이해의 심장부인 여섯 도읍지 곳곳을 종횡무진 아우르며, 그 안에 깃든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중국신화의 역사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화의 상징성 및 신화와 역사의 얽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중국 문화와 역사, 문학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신화와 역사를 이해할 때,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를 강조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중국의 역사』 『한손엔 공자 한손엔 황제』 『차이나 인사이트 2018』(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고대 도시로 떠나는 여행』 『중국 철학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미의 역정』 등 다수가 있다. EBS 라디오 <니하오 차이나>의 ‘중국 신화전설’ 코너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