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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고전으로부터 배운다
  • 지은이 | 윤천근
  • 옮긴이 |
  • 발행일 | 2012년 08월 15일
  • 쪽   수 | 302p
  • 책   값 | 15,000 원
  • 판   형 | 152*223
  • ISBN  | 9788967350079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공자, 맹자, 정호.정이, 주자, 퇴계, 남명, 율곡, 김시습
그들은 왜 하나같이 ‘부끄러움’을 말했는가 

앎이 실천이 되고, 먹고살 길이 되며, 백성을 교화하는 것이 됨은
바로 모두 부끄러움과 관련 있다
마음이 부끄러움의 노선에 순응한다면 모든 행위가 적절하게
바람을 갖출 것이다

 

유가儒家의 ‘치恥’사상 현대인의 윤리로 재탄생

한국국학진흥원이 펴내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시리즈 제4권으로 [부끄러워야 사람이다]가 나왔다. 이번 책에서는 동양의 선현들이 스스로를 향해 수없이 던졌던 ‘치恥’라는 질문, 즉 ‘부끄러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권모술수가 일종의 경쟁논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후흑학’이 자기합리화의 보루로 여겨지는 요즘, ‘부끄러움’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질문으로 던진다는 것은 왠지 퇴화한 꼬리뼈를 만지작거리는 멋쩍음마저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처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꼬리를 치켜드는 때가 없다. 정의의 실종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지난 2-3년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갔으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젊은 세대에 대한 나이든 세대의 안타까움으로 세대간 소통을 이뤄냈다. 만약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정의’를 묻지도 못했을 것이며, 타인에게 손을 내밀지도 못했을 때문이다. 따라서 부끄러움은 진화론의 법칙을 따르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마음의 물리학에 속하는 듯하다. 부끄러움이라는 꼭지점이 없으면 마음이라는 구조물, 더 나아가 사회라는 구조물 또한 허물어지는 그런 존재.
[부끄러워야 사람이다]는 부끄러움이 배면으로 밀려난 시대, 다시 한 번 그것을 개인과 사회의 윤리로 제대로 제시해보고자 한 시도이다. 그러기 위해 저자 윤천근 교수는 윤동주의 “서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부끄러움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펼치고 있다. 그것을 오늘날의 삶 속에서 재개념화하고 실천 윤리로 설계하고 있다. 이어서 [논어], [맹자], [대학.중용]부터 [근사록]과 [주자어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매월당과 퇴계 등으로 이어지는 유가儒家의 ‘치恥 철학’을 계보적으로 세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부끄러움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감정의 하나다. 윤동주에게 그 부끄러움은 그가 자청하고 있는 삶의 어떤 조건이다. 윤동주는 이 감정이 자기 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 그는 그것이 자기 마음속 모든 영역에서, 이를테면 잎새에 이는 바람을 느끼는 지점에서도 움직일 수 있도록 그 의식을 설계하고 있다. 윤동주의 마음속에서 부끄러움이란 모든 가치를 드러내는 유일한 조건으로 설정되어 있는 셈이다. 마음이 부끄러움의 지도 노선에 철저하게 순응한다면, 일어나는 모든 생각이나 구현되는 모든 행위가 적절하게 바름을 갖추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러움이란 목표와 현실 사이에 드러난 결핍으로부터 파생되는 정서다. 이것을 부끄러움이라는 감성으로 떠올리는 것은 총족을 전제로 하여 그 부족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이 짓는 태도다. 충족을 바람직한 것으로 전제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그 결핍이 부끄러움을 길어올리지 않는다. 따라서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그 결핍을 결핍으로 확인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을 충족으로 채워놓고자 하는 다음의 노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태도라고 하겠다.
나아가 저자는 “부끄러움은 잘못을 범한 자리에서만 기능하는 자기반성의 소극적인 기제가 아니라 아무 잘못을 범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 적극적인 기제”라고 말한다. 마음에는 완성된 성인의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한 내용을 갖는 것으로 지금의 마음을 잘 떠올리기 전에는 원래 성인의 마음이란 없다. 그러므로 지금 잘 생각하고, 잘 행동하는 방법밖에는 최선의 도리가 없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부끄러움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전전긍긍하는 규율 작업을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생각이 움직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부끄러움의 잣대가 작동하여 선의 씨앗이 꺾여 없어지지 않도록 길러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서 있는 존재들이고, 같이 나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지향하는 도덕의 세상이 결국은 아름다운 인간사회라는 것을 전제하게 한다. 이런 전제가 실제로 움직인다면 우리 자신에게 주는 사랑만큼 타자에게 사랑을 표명하지 않는 지금의 내 마음은 우리 속에서 부끄러움을 불러내 그것에 의한 규율과 지도를 자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강성한 의지’와 ‘나약한 실천’ 사이의 부끄러움을 화두로 제시한다. 굳건한 의지를 마음속에 들여세우는 데 있어서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많이 있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이 굳건한 의지를 빈틈없이 끌고 나가는 실천력이다. 세월은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원흉이다. 처음에는 날을 세웠던 의지도 시간이 흐르면 바래고, 무뎌진다. 인생은 찰나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생과 사 사이의 오랜 시간 속에 있다. 인생의 긴 시간 속에서 굳건한 의지가 언제나 기능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나약한 인내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역시 그 인생 속에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부끄러움은 어떤 도덕적 자아의 구현에 성공했다고 해서 우리 곁을 떠나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각오를 새롭게 하는 반성력으로 작용해야 하고 모자라는 인내력을 추슬러 세우는 채찍으로 작용해야 한다. 우리의 도덕은 이 의지와 부끄러움 사이에서 출렁거리며 형체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치恥의 사상사적 전개

– 공자가 말했다. “옛사람의 말은 ‘몸소 행하는 것이 민첩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벗어나지 않는다.”(“이인”)
저자는 성인의 말씀은 우리가 앎을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에 집중된다고 강조한다. 우리 자신 속의 앎이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은 우리 마음이 실천하지 않고 있는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태도를 갖는 것에서 마련된다.
– 공자가 말했다. “다스리는 것으로 이끌어가고, 형벌로 바르게 하면 백성들은 벌을 피하기만 하면 부끄러워하지 않게 마련이다. 덕으로 이끌어가고, 예로써 가지런하게 만든다면 백성들은 언제나 부끄러움을 느끼고 스스로 바로잡아나갈 것이다.”(“위정”)
도덕은 최소한의 규율을 통해서는 자라나지 않는다. 도덕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규율할 때만 성장할 터전을 만들어낸다. 부끄러워할 만한 모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부끄러움, 우리 인격을 바르게 만들어나가는 부끄러움이 될 수 없다.
– 맹자가 말했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공경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시비를 따지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인자함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로움이고, 공경하는 마음은예를 갖춤이고, 시비를 따지는 마음은 지혜로움이다. 인의예지가 나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디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구하면 얻을 것이고 버리면 잃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고자” 상)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자기애와 타자애 사이에서 소통되는 도덕정신이 그 조화와 균형의 질서를 갖추어내기 어렵다는 점과 연관되어 있는 덕목이다. 사람은 사적 존재이므로 자기애에 치중할 가능성이 언제나 크게 확보되어 있다. 그것을 타자애를 받아들여 희석시킴으로써 객관적인 인간애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작동하는 덕목이 바로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은 인간의 자기애 속에 마련되어 있는 위대한 인간이 되려는 근원적 지향, 즉 인간에게 도덕적 자아를 이루고자 하는 덕성을 견고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반성력이다. 이러한 반성력은 자아의 마음속에서 그 마음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는 덕성이라고 할 수 있다.
– 군자에게는 ‘자신을 미루어 생각하는 도리’(혈구지도?矩之道)가 있다. 윗사람이 싫어할 것은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않고, 아랫사람이 싫어할 것은 윗사람에게 하게 하지 않고, 앞에서 싫어할 것을 뒷사람에게 먼저 하게 하지 않고, 뒤에서 싫어할 것은 앞사람에게 따르게 하지 않고, 우측에서 싫어할 것을 좌측에 바꾸어주지 않고, 좌측에서 싫어할 것은 우측에 바꾸어주지 않는 것, 이것을 ‘혈구지도’라고 한다.([대학])
다스리는 자의 도리는 매우 간단하다.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도 갖고 싶은 법이고, 자기가 하기 귀찮은 일은 다른 사람도 귀찮아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도리는 이미 다스리는 자의 경험에 드러나 있다.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 다스리는 자의 위세를 써서 좋은 것은 자기가 가지려 하고, 싫은 것은 신하와 백성들에게 미루어버린다면, 그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부끄러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다스리는 자의 마음이 부끄럽다면 바른 다스림이 행해지기 어렵고,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따라서 행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다. 군왕의 마음속에 자리잡는 부끄러움 속에 정치는 실종되기 마련이다.
– 사람이 적절한 수준을 넘어섬에 있어서는 각각 그 종류가 다르게 나타난다. 군자는 항상 도탑게 대하는 데에서 절도를 잃고, 소인은 항상 야박하게 대하는 데에서 절도를 잃는다. 군자는 사랑이 넘치기 쉽고, 소인은 사랑을 너무 참아서 상처를 입힌다.([근사록] 권12 “함근”)
군자의 마음은 도덕인의를 중심에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낼 때 그 도덕적 의지의 지원을 받아서 과도하게 드러내는 약점을 노출할 수 있다. 과도하게 드러난 사랑하는 마음은 군자의 부끄러움이 되고, 그러한 군자의 과도한 감정은 군자다운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다. 그렇게 흘러넘치는 사랑에 군자의 지향은 있으되 도덕은 없다. 이렇게 사랑의 도덕을 구현하는 데에 실패한 군자는 진실로 군자를 이루었다고 할 수 없다. 소인의 마음은 자아의 이익으로 기울어 있다. 그러므로 그 감정은 사랑을 길러내는 데에 항상 야박하다. 그 야박함은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순자가 말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다. 어리면서 어른을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 것, 천하면서 귀한 이를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 것, 어리석으면서 현자를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 것, 이것이 사람의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소학] “명륜”)
순자가 말하는 위의 세 가지 인간답지 못한 일에는 계급주의의 논리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상황에 맞춰 조정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속에서 움직이는 정신은 언제나, 누구에게서나, 도덕을 배워서 닦는 것이 인간다운 일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오늘날에 가져다놓는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덕목은 오늘날 더욱 중요성을 지닌다고 할 수도 있다. 요즘 시대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도덕의 눈으로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도덕적 행위를 보고도 우리의 도덕적 약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도덕이 사라지고 이익이 앞서서 끌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 시대를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이익이 앞세워지는 시대가 편리함은 보장해주겠지만 평안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평안은 도덕이 구현되는 사회에서만 주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도덕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지 못하는 오늘의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시와 술을 벗하여 30년을 지내왔네. 주변 사람들은 잘못 보고 선으로 도망갔다 하지. 푸른 구름 한 덩이 한유한 날에 던져놓고 한바탕 맑은 생활 즐기며 온전하지 못할까 걱정하네.([매월당집] 권1 “자소”)
풍류의 인물 김시습, 그는 현실의 벽에 갇혀 스스로 울타리를 넘어 뛰쳐나가는 선택을 한다. 그의 벗은 술과 시다. 김시습의 그런 생활은 그의 현실적 능력을 주목하는 이들에게는 비극적인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고작 선으로 도망한 것인가 묻는다. 그 손가락질 앞에서 부끄러운 이는 김시습이 아니다. 그렇게 손가락질하는 자가 부끄러움을 갖는 사람이다. 손가락질하는 이는 그런 부끄러움을 통해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에게 지시한다. 현실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그는 분명히 하는 셈이다. 그의 부끄러움이 온전히 제 길을 찾아갔다면, 그는 그저 현실의 사람에서 그치지 않고 좋은 현실의 사람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의 손가락질 밖에 자리잡고 있는 김시습이 그냥 울타리를 넘어간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울타리 밖에서 온전한 삶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래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손가락질당하고 있는 사람이 온전한 삶의 미덕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는데 손가락질한 사람은 더욱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목차

책머리에_029

제1부 부끄러움이 이끌어가는 도덕의 길

1.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
2. 부끄러움의 권능
3. 생각의 목표와 부끄러움
4. 바름의 목표와 부끄러움
5. 통합된 인격과 부끄러움의 잣대
6. 다른 이의 시선 앞에 세운 나의 부끄러움
7. 자신의 내면을 지향하는 비판의 칼날, 부끄러움
8. 부끄러움과 우리의 욕망
9. 함께하는 부끄러움
10. 강성한 의지와 나약한 인내 사이의 부끄러움

제2부 원전과 함께 읽는 ‘부끄러움’

제3부 원문

미리보기

식민지의 청년 윤동주는 이렇게 자기 속에 절대적으로 배타하는 두 인격을 동행시키고 있는 불행의 주인공이다. 「서시」는 식민지 사람이라는 인식을 받아들이고 있는 청년 윤동주의 심리적 풍경을 절절하게 그린 시다. 역설적으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환희의 감정’이 떠들석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청춘의 시기를 살고 있으므로, 윤동주는 임새에 이는 사람에도 ‘괴로워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매순간이 환희로 떠오를 수 있는 청춘이므로 그때마다 부끄러움을 내걸로 자신을 검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_「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

 

부끄러움이란 목표와 현실 사이에 드러난 결핍으로부터 파생되는 정서다. 이것을 부끄러움이라는 감성으로 떠올리는 것은 총적을 전제로 하여 그 부족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이 짓는 태도다. 충족을 바람직한 것으로 전제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그 결핍이 부끄러움을 길어올리지 않는다. 따라서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그 결핍을 결핍으로 확인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을 충족으로 채워놓고자 하는 다음의 노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태도라고 하겠다. _「생각의 목표와 부끄러움」

지은이/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