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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 2000년 사유의 티핑포인트를 읽어야 현대 중국이 보인다
  • 지은이 | 미조구치 유조 이케다 도모히사 고지마 쓰요시
  • 옮긴이 | 조영렬
  • 발행일 | 2012년 06월 25일
  • 쪽   수 | 368p
  • 책   값 | 18,000 원
  • 판   형 | 152*223
  • ISBN  | 9788993905991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이 책은 목적은 중국사상을 통해
중국을 아는 데 있다”
중국을 역사적.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네 가지 변화의 힘

서구의 눈으로 볼 때 중국은 한낱 덩치 큰 신기루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재적 눈으로 객관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더듬어보면 우리는 놀라운 역사의 변혁과 동력의 힘을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은 중국사상 연구의 거장으로 얼마 전 타계한 故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가 책임편집한 중국 사상과 중국에 관한 책이다.(원제: [中國思想史], 2007) 그간 고대이든 근대이든 중국이라는 것의 표상을 만들어온 것은 주로 서구적 시선이었고 약간의 일본적 관점이었다. 이 책은 이런 외부적 시각에서는 필연적으로 중국사회의 역동성을 놓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한다. 이 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내재적인 사상사를 제안한다. 그 방법은 중국 역사상의 네 가지 커다란 변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서 어떠한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는지를 해명하려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책은 총 4장으로 이뤄졌으며 이케다 도모히사池田知久가 제1장 ‘진한제국의 천하통일’을, 고지마 쓰요시小島 毅가 제2장 ‘당송의 변혁’을 마지막으로 미조구치 유조가 제3장 ‘전환기로서의 명말청초’와 제4장 ‘격동하는 청말민국 초기’를 집필했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는 일본 최고의 전문가들이며 이 셋은 수많은 토론과 윤독을 거쳐 “중국사상의 내재적 변동”을 잡아내고 “중국사상을 통해 중국을 깨닫게 되는” 역작을 만들었다. 서구적 시선에서 탈피함은 물론 일본 특유의 관점에서도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중국의 공산혁명이 16세기부터 이어져온 중국 향리 공간의 상호부조 전통이 무르익은 가운데 출현할 수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비롯해 현대 중국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공존하는 세계 최강국 현대 중국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회적 변혁의 힘을 이해할 수 있다.

 

네 가지 변동기에 초점, 새로운 역사의 탄생
이 책은 사상사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철학적인 담론을 하나하나 서술하거나, 사건이나 고유명사를 늘어놓는 통사의 구성을 취하지 않았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도대체 중국은 ‘무엇이 어떻게’ 변화했고, 그것이 어떻게 ‘현재’에 이어지고 있는가. 그 변화의 단면斷面에 입각해서 역사의 숨겨진 동력을 드러내는 방법을 사상사에 적용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이 과제로 삼은 지점은 중국의 사상을 아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을 통해서 중국을 아는 데 있다 해도 좋다.
내부에 시점을 두고 보면, 중국에도 단조로운 왕조 교체사로밖에 비치지 않는 시대의 근저에, 느릿하기는 하지만 거대한 역사의 변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왕조사 스타일을 버리고 변동의 원리로
이 책은 서구중심주의를 거부함과 동시에 사항의 나열로 시종하기 십상인 왕조사 스타일을 취하지 않고, 커다란 변동기에 입각하여 역사의 변화상을 서술하기로 했다. 서양의 원리와 다른 중국의 원리를 가설적으로 상정하면서, 전환기 역사의 격동을 서구의 눈이 아니라 중국의 눈으로 서술하는 이 책의 작업은 아마도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특색이 될 것이다. 실제 당송 변혁기나 명말청초 시기에서의 변동은, 이제까지 자본주의 맹아기로 취급하는 것이 통례였던 데 비해, 그 변화의 맥락, 그것을 산출한 동력을 중국사 자체 내에서 찾는다(예를 들면, 명말청초의 담론은 안이하게 유럽의 조기早期 계몽주의에 끌어다붙이지 않고, 여기에서는 향리공간이라는 전통적인 말로 생각하려 했다).
세 번째로, 저자들은 책의 전반에 걸쳐 열린 서술을 하려 애쓰고 있다. 중국의 역사원리에 선다고 하면 중국이라는 특수세계의 용어로 내향적으로 말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저자들이 의도한 것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서양중심주의를 벗어난다는 것은 서양세계를 상대화하고 동시에 중국세계 그 자체도 상대화하는 일이고, 그것은 일본인인 우리 자신도 상대화하여 대상으로서의 중국세계를 타자화함을 의미한다. 세계 안의 중국으로 보려고 노력한다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는 것이 저자들이 서 있는 지점이다.

“지금 만약 중국 자체의 원리 틀을 통해 그 역사상을 빚어낼 수 있다면, 적어도 일본인을 비롯하여 서양인, 아니 당사자인 중국인조차도 그것에 의해 침식당해온 서양 시각에서 본 중국관은 서서히 융해될 것이다.”

 

과연 중국은 무엇이 독자적인가?
이 책의 가장 논쟁적인 토론 지점은 근대시기에 몰려 있다. 제4장을 여는 미조구치 유조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다시 논하지 않는다
16-17세기는 세계사적인 규모에서 역사의 변동기이지만, 중국에서도 이 시기 즉 명말청초 시기는 단순히 왕조의 교체(1644)에 그치지 않는 각양각색의 새로운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그것이 청대에 계승.발전되었던, 그 변화의 획을 긋는 시기이다.
다만 여기에서 추적하려는 변화는 이른바 서구형 근대와 비슷하게 여겨지는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송대 이후의 사상사 상의 흐름 속에서 추출된 변화이고, 더구나 명말청초의 변동을 거쳐 청대에 계승되면서 청말의 격동을 산출하는 데 이르는, 중국의 독자적 변화가 걷는 장도長途의 궤적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중화라는 다민족.다문화가 뒤섞인 더구나 원대元代 이후는 통일적인 왕조가 통치한 역사세계에서, 당대부터 송대에 걸쳐 무엇이 새롭게 태어나고, 옛것이 어떻게 변화했으며, 그 변화가 원대.명대에 걸쳐 어떻게 계승되고 명말청조 시기에 이르러 어떻게 새로운 국면을 산출.전개하여 청말의 격동을 불러왔느냐 하는 궤적, 그 궤적을 명말청초 시기에 있어 자본주의의 맹아라든지 초기 부르주아 계몽사상이라든지 유럽을 기준으로 한 역사현상이나 원리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며, 더더군다나 거기에서 유럽과 비슷한 단편을 탐색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명말청초에 있어서 변화의 궤적을 유럽형 근대과정과는 다른 또 하나의 과정으로 변별하려는 입장에서, 그 궤적을 중국의 ‘독자적 근대’(다케우치 요시미, “현대 중국문학의 정신에 대하여”, [전집]14, 지쿠마쇼보) 과정이라 부른다면 그것도 하나의 입장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현시점에서는 그렇게 부르려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의 하나는 그 과정이 유럽 근대의 과정과 아주 크게 다르기 때문에, ‘근대’ 개념에 대해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어 쓸데없는 혼란이 생기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그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중국 역사상의 다양한 개념이나 그것들이 전개되는 과정이 유럽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미리 최소한도의 합의가 성립되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합의가 성립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서 세 번째로, 아무리 ‘중국의 독자적인 것’이라 말하려 해도 일단 ‘근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저항의 근대’이든 ‘반격의 근대’이든, 그 독자성이라는 것은 유럽근대와의 연관에 이미 속박되어 ‘독자적’이라는 말이 본래의 실질을 상실하거나, ‘근대’라는 정형화된 이름의 장애에 부딪혀 자립된 중국의 세계상이 그 자립성을 침해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편전쟁=근대’라는 관점을 버려라
생각건대 현 단계에서는 아편전쟁(1840-1842) 이후를 중국에 있어서 근대과정이라 보는, 이미 정해진 시기구분 그대로 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아편전쟁 이후 이른바 ‘중국근대과정’을 보는 관점 상의 편향을 16-17세기 이후의 중국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의 궤적을 매개삼아 드러나게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편전쟁=근대’라는 관점에 따르면, 서양중심주의적인 관점으로 인해 공동주의적.상호부조적相互扶助的인 종족제나 유교윤리는 근대화의 방해물로 비친다. 한편 16-17세기의 관점에 따른다면, 종족제나 유교윤리에 포함된 공동주의적.상호부조적인 측면은 민국民國 시기의 사회주의 운동 속에 수렴되어 현대에도 살아 있는 것으로 비친다. 혹은 훨씬 기주적基柱的인 지점에서 보면, 아편전쟁 관점에서는 철저한 부르주아 혁명으로밖에 평가되지 않는 신해혁명(1911)이 16-17세기 관점에 따르면 2천 년 이래의 왕조제를 붕괴로 이끈 획기적인 혁명이라는 평가를 얻게 된다.
16-17세기 관점은 그 변화를 신해혁명의 맥락에서 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한 맥락으로 보는 것은 우선 16-17세기에 보이는 그 변화가 하나의 역사시대를 구획할 만큼의 변화라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변화의 실태가 청대 내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신해혁명에 이르는 것이어야만 한다. 즉 이전부터의, 16-17세기에 싹튼 초기 부르주아사상이 청 왕조의 억압으로 인해 지하로 숨어들고, 청말에 신해혁명의 형태로 분출했다고 보는 유의 이른바 ‘궁지에 몰려 지하로 스며든 수맥’ 구도가 아니라, 청대 내내 변화가 표면에서 지속되고 성숙을 이룬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는 것은, 명말에서 청말까지를 하나의 연속태로 부감할 수 있고 나서야 비로소 명말의 양상이 청말의 신해혁명의 의의를 규정하고, 거꾸로 청말의 혁명적 양상이 명말에 일어난 변동의 의미를 규정한다, 즉 중국의 역사상이 전체적으로 형태를 드러낸다. 바꾸어 말하면 중국 역사의 변화가 왕조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의해 왕조가 규정된다. 즉 중국의 역사가 그 역사상을 자기의 것으로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바람을 굳이 말한다면, 유럽의 역사상이 근대상을 드러내려는 작업으로서 고대 그리스의 역사상을 창출해내고 고대의 양상으로부터 근대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유럽이 하나의 역사이야기를 지어냈던 것처럼, 우리도 중국에 대해서 또 하나의 역사이야기를 지어내는 것 또한 가능한 것이다.

 

신해혁명의 성격 재규정하기
나아가 제5장에서 미조구치 유조는 중요한 관점을 제출한다. 신해혁명으로 왕조가 무너졌을 때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지점이다. 그것은 “쇠락한 왕조 대신에 대두하여 각 성의 독립이라는 형태로 신해혁명을 실현시켰던, 그 각 ‘성의 힘’이다.” 각 성이 독립한 배경에는 그만큼의 성숙한 힘이 있었던 것인데, 그에 대해서는 4, 5장에 걸쳐서 ‘지방공론’이라는 형태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아무튼 기존의 시각에서는 신해혁명을 어중간한 혁명, 일탈.역주행으로 이루어진 혼돈으로 보는 반면, 1949년의 건국혁명을 반봉건.반식민지에 철저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미조구치 유조는 신해혁명과 건국혁명 이 둘은 그 운동의 방향성 면에서는 (분권화와 집권화의) 서로 반발하는 관계에 있으면서 또한 인과관계(부서지면 다시 세운다)로 이어진, 짝을 이루는 혁명이라고 재인식한다.

 

당송시대의 사대부들이 꿈꾼 것인 무엇인가?
앞으로 돌아가 제2장 ‘당송의 변혁’에서는 사대부의 등장과 그들이 구축한 그들만의 사상세계를 분석한다. 송대의 사대부들은 이 시대의 새로운 학문을 소유함으로써 새로운 사상.분위기를 낳았다. 그것은 단적으로는 주자학의 탄생이라는 현상이다. 그 배경에는 인쇄출판이라는 기술혁신이 있었다. 저자는 그 경위를 다루면서 이전 학문 양상과 비교하며 서술했다. 사대부들의 새로운 학문은 정치제도의 변화와 연동되어 있다. 그 상징적 사례로 이 책에서는 국가의 정점에 위치한 왕권에 대한 이론의 변질을 다룬다. 저자는 당시의 사상가들이 ‘천天’이나 ‘리理’ 등의 개념을 통해 옛날과는 다른 정치적.사회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본다. 그것은 사대부가 자기들의 일상적 생활공간을 장으로 삼은 ‘새로운 담론’을 산출한 데에 당송 변혁의 사상적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향리공간’이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진한제국의 천하통일

1. 천인상관과 자연
은의 상제에서 주의 천명으로 | 하늘의 이법화理法化-선진先秦 유가 | 하늘과 도-전국시기 도가 | 천과 인의 분별分-순자 | 천인상관설과 재이설 | 자연사상의 발생과 전개
2. 천하 속의 인간
성 사상의 발생 | 성삼품설의 성립과 전개
3. 국가체제를 둘러싸고
봉건제의 이념 | 현실의 군현제 | 유교화된 봉건제
4. 유교국교화와 도교·불교
학문의 탄생 | 여러 학파의 통일에 대한 구상 | 유교국교화 | 박사제도와 여러 학파의 통일 | 새로이 등장한 도교와 불교

 

제2장 당송의 변혁

1. 새로운 경학
인쇄기술의 등장 | 삼교정립三敎鼎立과 『오경정의』| 경학의 변화
2. 군주상의 변화
선양의 소멸과 상제의 변질 | 삼교 위에 선 왕권 | 전제專制이면서 자유로운 사회 | 송대 이후는 군주독제제인가
3. 정치질서의 연원
왕권의 변질 | 천견론天譴論이 의미하는 것 | 정통론과 화이사상
4. 마음을 둘러싼 교설
‘리理’ 자의 애용 | 천리라는 사고방식 | 이기론의 탄생 | 양명학의 ‘이관理觀’
5. 질서의 구상
향리鄕里 공간 | 경학과 사회 | 사묘祠廟 정책

 

제3장 전환기로서의 명말청초

1. 정치관의 전환
민본관, 군주관의 변화 | 백성의 ‘자사자리自私自利’와 황제의 ‘대사大私’ | 왕토관과 민토관의 변화
2. 새로운 전제론田制論과 봉건론
정전론의 전통 | 민토관에 선 새로운 전제론 | 명말청초 시기의 새로운 ‘봉건’
3. 사회질서관의 전환
주자학·양명학·예교를 보는 시점 | 새로운 천리인욕관 | 공사관公私觀, 인관仁觀의 변화
4. 인간관·문학관의 변화
인간관의 변화-이원적 관점에서 기질일원氣質一元의 관점으로 | ‘습론習論’의 등장 | 대진의 새로운 인성론 | 문학관의 변화
5. 삼교 합일에 보이는 역사성철리哲理 상의 합일 | 도덕실천 차원에서의 합일 | 향리공간의 특질과 그 역사성

 

제4장 격동하는 청말민국 초기

1. 청말의 지방 ‘자치’
황종희와 ‘향치’ | 선거善擧·지방공사·향치 | 청말의 ‘자치’ 역량 | 성省의 독립을 향해
2. 서구 근대사상의 수용과 변혁
근대정치사상의 수용 | 청나라 말기 민국民國의 ‘봉건’
3. 전통 속의 중국혁명
청대 중엽의 전제론 | 토지국유론과 공유론-청나라 말의 전제론 | 공의 혁명公革命으로서의 중국혁명 | 쑨원의 삼민주의
4. 현대중국과 유교
청대의 예교 |『신청년』의 반예교 | 유교윤리와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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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황제질서는 예에 의한 통치, 즉 예치禮治 시스템이었다. 그렇기에 서양식 정치학의 눈으로 보면 ‘전제인데도 자유’라는 얼핏 보기에 기묘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교사로서의 왕’이 군림하고 있다.

_165쪽

 

서양정치사상사에서는, 중세 가톨릭세계에 있어서 정치가 신과 교회의 지배에서 자립하여 ‘정교분리’ 노선 속에서 국민국가가 등장하는 길을 근대화라 여겨왔다. 그것을 그대로 중국사상에 적용시키면, 천인상관을 부정하는 사상이야말로 합리적·진보적이고, 천인상관설을 보강·재편하는 방향으로 작용한 주자학·양명학 같은 사상 조류는 결국 사상 면에서의 근대화를 방해했다는 평을 듣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표층적인 분석이 아니라 좀 더 깊은 차원으로 눈을 돌리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틀을 강화한 것은 그때까지 하늘(자연계)에 포섭되어 존재했던 사람(인간사회)이 그 범위를 확장하고, 바깥의 틀로써 기능하는 하늘과 일치하는 데 이른 까닭에, 오히려 인간의 주체성이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_173쪽

 

한편 화이사상은 이 정통론과 연동되어 송나라가 요에 대해 가졌던 굴절된 우월의식을 형성한다. 세계제국이었던 당나라는 화이를 구별하는 데 엄격하지 않았다. 당나라 사람들에게 호胡나 이夷는 이국적인 어떤 것으로서 인기를 누렸다. 그에 비해 서방·북방에 이르는 영토를 소유하지 못하고, 호한胡漢 융합체제가 아니었던 송나라의 경우 자타의 구별은 도리어 엄정하게 이루어졌다. 요를 이적이라 여기고 자기를 중화라 여겼기 때문이다. 남송과 금의 관계에 오면 그것이 더욱 증폭되어 한족 내셔널리즘이 발생한다.
다만 그것을 서양의 근대적 의미에서 말하는 내셔널리즘과 동질의 것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중화의 인간이라 자부하며 타자에 대해 우월한 느낌을 갖는 것은 자기들이 선왕의 가르침을 충실히 계승하는 유서 깊은 집단이라는 자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요나 금이 이적인 것은, 그들이 선왕의 제도와는 다른 풍속·습관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들도 그럴 마음이 있다면 중화에 동화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경우 그들의 정치체제를 방기하고 덕이 있는 송의 황제에게 무릎을 꿇어야 할 터이고, 결국에는 송에 의한 세계제패가 실현되는 것이니 그것을 자민족 중심주의의 한 예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보편적 진리에 비추어 자기들이 바로 유일하고 절대적이라고 보는 사고방식. 중화사상이란 그러한 것이었다. 거기에서 자타 관계는 (현실의 역학 관계는 어떠하든 간에 이념적으로는) 대등할 수 없다. 이것은 몽골 세계제국을 대신하여 탄생된 명왕조에도 적용된다.

_180~181쪽

 

이에 비해 재지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대부가 자기 주변을 향리공간으로 조직화하고, 말하자면 질서를 쌓아올리는 형태로 천하국가를 밑에서 지탱하는 구상을 『대학』의 팔조목에 기초하여 고안한 것이 주자학이고, 그것을 계승한 것이 양명학이었다. 거기에서는 향리공간의 핵을 이루는 존재로서 인격적 유덕자가 요청된다. 향리공간은 원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수창首唱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창화唱和함으로써 형성된다. 그 인격적 유덕자는 지방관이어도 좋고 그 지역의 명사여도 좋다. 본래 어느 인물이 관료가 되면 지방관이고, 복상服喪이나 은퇴 등으로 귀향하면 명사가 된다. 즉 둘 사이에 질적인 차이는 없다. 이것을 전자는 관료이기 때문에 국가를 대표하고 후자는 자산가이기 때문에 사회를 대표한다고 보고 거기서 모순항쟁을 찾아내려 하는 것은, 서양 근대에서 이념화된 이항대립 ‘국가와 사회’를 중국에 끼워맞춘 것일 뿐이다. 중국 자체에 본래 이러한 대립관념은 없다. ‘국가와 사회’를 전제로 하면 로컬 엘리트는 양자를 연결하는 매개자 혹은 그 중간영역을 담당하는 자의 위치에 해당되는데, 아마도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대부로서 당연한 역할이었고 이념적으로는 천하국가를 위해서였다.

_203쪽

 

황종희는 『명이대방록』 「전제田制」 편에서 관전官田을 포함한 전 경작지를 전호全戶에 배분할 것을 주장했고, 그것에 따르면 관전은 전 경작지의 3분의 1에 이른다고 되어 있는데, 황장과 왕부는 그 관전의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적어도 황종희가 증대일로를 걷고 있던 황장이나 왕부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으리라는 것은 추정할 수 있고, 황제의 ‘대사’가 백성의 ‘자사자리’를 억압한다고 보는 그의 비판의 배경에는 조정의 이러한 사산私産이 ‘민토民土’의 신장을 저해하는 사태가 자리하고 있었다. 조정의 사산을 ‘대사’라고 부른 것은, 다른 한쪽에 그것을 대사라고 느낄 만큼 백성의 사유재산에 대한 어떤 ‘권리’ 의식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권리라고 해도 서양류의 ‘개인의 사유권’과는 다른 것이지만(이것에 대해서는 후술), 이 권리의식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것은 이제부터 서술할 왕토王土 관념에 대한 민토民土 관념의 출현이다.

_223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미조구치 유조溝口 雄三
1932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고, 중국 사상사를 전공하였다. 도쿄대학 중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나고야대학 대학원을 거쳐 규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 문학부 중국철학과 교수와 다이토분카대학 교수를 지냈다. 도쿄대학 명예교수를 역임하고 2010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지은 책으로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 『방법으로서의 중국』, 『중국의 공과 사』, 『중국의 사상』, 『중국사상문화사전』(공저) 등 다수의 책이 있다.

이케다 도모히사池田知久

1942년생이며 1965년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1991년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 교수로 부임했고, 현재 대동문화대학 교수와 도쿄대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 『노장사상』(2000), 『곽점초간 유교연구』(2003), 『노자』(2006) 등이 있다.

 

고지마 쓰요시小島 毅

도쿄 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 교수. 중국 사상사를 전공했다. 1962년에 군마현에서 태어났다. 도쿄 대학 중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유교사와 양명학, 동아시아 왕권론을 주제로 하는 책을 다수 펴냈으며,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송학의 형성과 전개』와 『사대부의 시대』,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이 있다.
옮긴이
조영렬
역자 조영렬(曺榮烈)은 1969년 경기도 여주 출생. 1995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0년 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 수료. 현재 고려대학교대학원 중일어문학과 일본문학 박사과정 재학.
주요역서로 『하루사메 모노가타리』 『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요시카와 고지로의 두보 강의』 『요시카와 고지로의 공자와 논어』 『문화편력기』 『이슬람: 종교, 법 그리고 정신의 내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