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 정조의 생각 조선 최고의 개혁 군주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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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장 왕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생각
경춘전 동쪽 벽의 용 그림 -「경춘전기」
궁궐은 정치를 하는 곳이다 -「경희궁지」
먼 곳을 바라보며 정치를 구상하다 -「용양봉저정기」
제2장 가족과 친지에 대한 생각
양녕대군, 사양하는 덕 – 「지덕사 기문」
백성들이 춥고 찌들었기 때문이다 – 「검암기적비」
딸의 집을 방문한 영조 – 「국왕 가마를 수행하여 옹주의 집에 행차한 기록」
왕은 가족을 어떻게 사랑하는가 – 「영종대왕행록」
길을 잃은 어린아이의 편지 – 「빈전에 직접 향을 올리다」
윤리는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 – 「홍 봉조하에게 답함」
두 기러기가 남쪽으로 날아갔다 – 아우 이진을 위해 지은 제문
고모부 박명원에 대한 고마움 – 「금성위박명원신도비명」
왕세자의 나라를 위한 대사면령 – 「왕세자 책봉일의 윤음」
제3장 학문과 독서에 대한 생각
여덟 가지 잠箴에 대한 기억 – 스승 남유용의 『뇌연집』에 부쳐
쳐다보면 더욱 높아지고, 뚫어보면 더욱 단단해진다 – 스승에게 보낸 편지 「답빈객」
밖에서 빌린 것은 끝내 약해진다 – 동궁 관리에게 보내는 「답궁료」
『춘추』를 완독한 날의 ‘책씻이冊施時’ – 정조의 독서기
제4장 지식과 책에 대한 생각
국왕이 열람하는 실록을 완성하다 – 『국조보감』 서문
정조는 왜 즉위한 뒤 『보감』부터 만들었을까 – 「명편국조보감윤음」
율곡의 친필을 보고 감흥을 살려 쓰다 – 『격몽요결』 머리말
정문正文만을 취하다 – 『경서정문』 편찬
국정의 기본 방향에 대한 신념 – 『주자대전차의』 발문
정조가 인정한 두 명의 성인 – 『양현전심록』 서문
제5장 신하들에 대한 생각
위기를 함께 넘긴 동지들에 대한 마음 – 『동덕회축』 서문
한밤중의 종소리를 차마 듣지 못한 이유 – 「정민시 치제문」
충신의 기준은 무엇인가 – 「장릉 배식 신하들 의견에 대한 비답」
국가의 죄인, 단종을 도운 엄흥도 – 「장릉배식록」
귀국길에 사망한 한 외교관을 위한 글 – 「경릉과 창릉에 참배한 날의 윤음」
말이 후세에 전해지면서 국가를 이롭게 한다 – 『유성룡 서화첩』 서문
명나라 제독의 자손들 조선으로 이주하다 – 「제독이공사당기」
주자[朱]로 인해 거미[蛛]도 사랑하다 – 「이여송의 후손인 이원을 발탁함」
조선의 체면을 살린 ‘가짜 대포’ – 「포수 이사룡을 성주목사로 추증함」
송시열 같은 신하를 기다리며 – 대로사大老祠 비문
정조의 생각을 150년 전에 읽은 선비 – 「유형원에게 성균관 좨주를 더하라」
제6장 정치에 대한 생각
세손과 우상의 아슬아슬한 대화 – 『존현각일기』 한 편
첫 조회에서 밝힌 통치 구상 – 「초원조참일윤음」
인재를 배양하는 근본 – 「강제문신을 설치하라」
변화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 「과제변통윤음」
우리가 10만 명의 기록을 세웠구나 – 춘당대의 과거시험
호남이 어사 얼굴을 보지 못한 지 십 년이 되었구나 – 암행어사 심진현에게 내리는 밀서
보고 듣는 데에 마음을 다하라 – 암행어사 정약용에게 내리는 밀서
경은 어찌 그렇게 마음을 몰라주는가 – 「송환기를 부르는 명령」
반짝반짝 빛나는 은하수가 하늘을 도는 것 같다 – 「효종 밀찰의 발문」
정적과도 협력하는 정치적 수완 – 심환지에게 보낸 밀찰
제7장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생각
관청에 바칠 세금을 내기도 부족하구나 – 새해의 권농 윤음
농사는 땅의 재화를 기르는 것이다 – 「농사에 관한 책문」
서울은 의정부에 바치고 지방은 감사에 바쳐라 – 「농사를 권장하고 농서를 구하는 윤음」
남단을 환구단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노력 – 「남단의절문의대신윤음」
“지난번에 유사가 두 궁궐을 수리하자고 청했지만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곤궁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춘전은 수리하지 않으면 무너질 터였고, 무너지면 내가 그곳을 돌보고 아끼는 마음이 아니기에 유사에게 명하여 수리하게 했다. 그렇지만 서까래 몇 개를 갈고 주춧돌 하나를 바로잡아, 기울어지는 것을 받치고 비가 새는 것을 막는 정도였고, 칠이 낡아 벗겨지거나 문창살이 삐뚤어진 것은 그대로 두게 했다.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옛 모습을 보존하여 추모하는 마음을 붙이려는 것이다.” _13쪽
“궁궐이란 국왕이 거처하면서 정치를 하는 곳이다. 사방에서 우러러 바라보고 신하와 백성들이 향하는 곳이므로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함을 보이고, 이름을 아름답게 하여 경계하고 송축하는 뜻을 붙이는 것이지, 거처를 호화롭게 하고 외관을 화려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국 초기에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처음으로 경복궁을 짓고 다시 창덕궁을 지은 것은 국왕이 수시로 이동할 것에 대비한 것이다. 지금 비록 경복궁은 불탔지만 세 궁궐(창덕궁, 창경궁, 경희궁)이 있어 정치를 하는 장소로는 부족할 것이 없는데 어찌 다시 건축을 하겠는가.” _18~19쪽
“무슨 덕德이 제일 높을까? 사양하는 덕이다. 무슨 사양이 가장 지극할까? 명예를 사양하는 것이다. (…) 양녕대군은 우리 태종대왕의 맏아들로 10세에 세자에 책봉되어 훌륭한 요속僚屬들의 도움을 받아 성취를 이루었다. 16, 7세가 되었을 때 세종이 성덕聖德을 타고나서 하늘과 사람들의 마음이 그리로 쏠린 것을 알고, 술에 빠지고 기생과 어울리며, 거짓으로 미친 척하기를 십 년을 하루같이 했다. 그러자 대군은 폐위되었고, 세종은 드디어 세자 자리를 거쳐 왕위에 올랐으며, 예와 악을 정비하여 무궁한 기반을 다져놓았다. 이는 태백이 계력季歷에게 양보하여 주나라 왕업을 이루었던 일과 비슷한 점이 있다. (…) 그는 명예를 사양하기를 잘한 것이니, 태백 이후 수천 년이 지났지만 ‘지덕至德’이란 이름을 대군이 아니면 누가 받을 수 있겠는가?” _30~31쪽
“얻기 어려운 것이 형제이고, 그만둘 수 없는 것이 윤리입니다. 지금 사람을 보내려는 것은 실로 그만둘 수 없는 정리情理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인聖人은 인륜이 지극한 곳이므로 비록 국왕을 번거롭게 하더라도 어찌 굽어 살피시는 도리가 없겠습니까? 또한 죄명罪名은 죄명이고 은애恩愛는 은애입니다. 성상께서 이미 불쌍하게 여기시는 하교가 있었으니, 외손이 어찌 형제간의 친분을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가 죽은 것이 제주도라 느끼는 감정이 남다릅니다. 만일 외손이 돌봐주지 않으면 이 어찌 인정상 차마 할 일이겠습니까? 인정상 차마 할 수 없는 일인데 스스로 본래의 인애仁愛를 막아버린다면 또 도리상 어찌 편안하겠습니까?” _60쪽
“실록實錄과 보감寶鑑은 모두 역사서이지만 그 체제는 다르다. 크고 작은 일의 득실을 모두 기록하여 명산에 간직하고 만년 이후를 기다리는 것은 실록이고, 선대 국왕의 말씀이나 행적 가운데 훌륭한 것을 뽑아서 특별히 기록하고 밝게 드러내어 후대 국왕들의 모범이 되게 하는 것은 보감이다. 이 때문에 실록은 비밀스럽지만 보감은 드러나고, 실록은 먼 훗날을 기약하지만 보감은 현재에 절실하다. 둘 다 없어서는 안 될 책이다.” _98쪽
“나는 이 책으로 인해 특별히 느낀 바가 있다. 지난번에 영남에서 이문순李文純(이황)공이 직접 쓴 『심경』을 구했는데, 이번에는 또 이 책을 얻었다. 두 현인은 한 시대에 태어났고, 두 책이 나온 것도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마치 기다린 것 같으니,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유학의 기풍은 점차 멀어지고 성인의 말씀은 날로 사라져, 경연에 나갈 때마다 그들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못했다는 한탄을 멈출 수가 없다.” _109쪽
지은이
김문식
서울학연구소. 단국대 사학과 교수. 저서로 『조선후기 경학사상 연구』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정조의 제왕학』 『조선후기 지식인의 대외인식』 『정조의 생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