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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가 민중이다 민초의 삶에 깃든 풀과 나무 이야기
  • 지은이 | 고주환
  • 옮긴이 |
  • 발행일 | 2011년 04월 05일
  • 쪽   수 | 416p
  • 책   값 | 18,000 원
  • 판   형 | 148*210
  • ISBN  | 9788993905564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추천의 글
책소개

산골마을 생활사와 구절양장의 현대사, 동양 전통 풍속을 긴밀하게 엮어낸
전인미답의 인문人紋 에세이. 산색은 강렬하고, 인간의 향기는 풍성하다.

· ‘노인’ 아버지와 화살나무 양밥, 겨울 산의 물참대 피리
· ‘눈이 발바닥’이셨던 어머니의 고광나무와 미나리물김치
· 도깨비집 소녀와 ‘가중나무’
· 법복, 군복, 미영치마 물들이던 ‘신나무’
· 누이의 못난이손톱 ‘살구나무’
· 부지런한 며느리의 홑잎나물 ‘화살나무’
· 작고 귀여운 애첩 같은 ‘고마리’
· 만이 누나의 방문 장식 ‘단풍나무’
· 청군 백군 칠하던 연필꽃 ‘붓꽃’
· 잡초 중의 잡초 ‘바랭이’

온대 활엽수림의 보고 치악산자락의 천연기념물인 성황림마을에서 태어나 나무에 대한 남다른 경험과 관심 속에 성장한 저자가 풀어내는 우리 일상속의 나무와 풀 이야기. 계절마다 치열하게 생명을 길어올리는 산천초목의 다양한 색채와 맛에 사람·역사·풍속·식물학 등의 지식을 얽어 풍성한 산색과 인간의 향취를 살뜰히 담아냈다. 수많은 씨앗과 함께 모체를 떠나 천신만고 끝에 이땅에 뿌리내린 나무와 풀들. 산천에 의연한 그 초록의 역사가 곧 청춘靑春의 표상이며, 생명력 있는 지식의 보고다.

 

우리가 아는 나무들의 몰랐던 이야기……. 새롭다, 친숙하다
강원도 치악산의 천연기념물인 성황림마을. 저자는 이곳에서 목수인 아버지와 나물꾼인 어머니의 늦둥이 아들로 나무에 대한 풍성한 경험 속에 자랐다. 요즘도 주말이면 저자는 물려받은 옛집 ‘엉클한 캐빈’으로 향한다. 그렇게 어린 날을 보낸 이 숲과 호흡을 같이하며 꾸준히 산을 누비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산길을 걸었다. 그렇게 나무와 벗으로 또는 스승과 제자로 지내는 동안 저자의 앎들은 이를 축으로 깊게 자라난 것 같다. 저자는 과거 기억들 속에 자리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나무, 꽃, 산채의 고유한 이미지와 섬세하게 엮는다. 각 꼭지의 제목인 나무와 꽃의 이미지는 구체적이고 생생하며, 그것과 얽어낸 각종 지식은 자유분방하고 폭넓다. 나무와 풀에 관련된 역사나 유래를 짚으면서 독자의 시야를 넓혀주기도 하고, 사이사이 관련된 시, 노래 가사를 실어 공통의 추억을 환기하기도 한다. 문헌 자료며 도감의 지식을 뒤적이다가도 산골 민초의 입장에서 반론을 제기하고, 오직 삶으로, 생활로만 익힐 수 있었을 어떤 앎들을 지나가듯 무심히 내놓는다.
산골 마을을 생활 터전으로, 숲이며 개울을 놀이터로, 산나물을 사철 반찬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다수였던 시절은 생각보다 가까운 과거지만 대중의 공감대에서 속수무책으로 멀어지고 있다. 때문인지 저자가 풀어놓는 이 숲향 진한 과거는 더없이 새롭고, 진귀하게 느껴진다. 산과 나무와 사람이 그대로 글이 된 것 같은 반가움과 신선함이 있다. 한편 책이 다루는 것은 우리 모두가 무심코 지나쳤을 풍경, 들었던 것 같은 이야기, 내 이웃이었을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공감대가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독자들이 각자 기억 속에 있는 나무의 모습을 만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노인’ 아버지와 ‘눈이 발바닥’이셨던 어머니의 기억
◎ 노인 아버지가 늦둥이 아들의 상처에 붙이려 어둔 산에서 꺾어온 화살나무 가지를 태워 만든 양밥
◎ 나물산행 다니시던 어머니의 커다란 보따리에서 굴러나오던 보물 같은 산채 두릅
◎ “농부의 산행에 빈손이란 없다”며 한손에 쥐어주시던 아버지의 물참대 피리
◎ 관상화로 각광받기 반세기나 전, 마당에 정성껏 고광나무꽃(쇠영꽃)을 기르시던 어머니의 선견지명

저자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크다. 아버지가 이미 환갑이 다 되었을 때 늦둥이로 태어나 고등학교 가던 해 여의었다. “태어날 때부터 노인이었던 아버지.” 여러 번 등장하는 이 표현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주름진 손으로 향나무를 깎아 초등학생 막내의 연필을 깎아주시던 모습, 돕기 싫은 집안일을 돕다 나무선반에 긁혀 가시 박힌 막내의 상처에 붙여주려 어둔 산에서 화살나무를 꺾어와 말없이 태우시던 모습……. 철없는 막내아들을 ‘고만이(집안의 재물이 쌓이는 것을 막는 귀신)’라 부르면서도 꼭 달라는 돈에 얼마씩을 더 얹어주셨다는 노인 아버지의 주름진 웃음은 저자의 나무에 대한 기억 어디에나 굳게 얽혀 자리한다.
나물꾼이었던 어머니는 마당에 정성껏 가꿔놓은 고광나무 꽃을 보는 것을 즐기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늦둥이 아들의 하숙비를 보태려 ‘눈이 발바닥(까막눈)’인 채 남의집살이를 시작하신 어머니를 저자는 아프게 기억한다. “늦둥이 고만이 아들”이었던 저자가 지천명의 나이에 시작한 나무 공부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도감에서 ‘날개를 태운 재가 살에 박힌 가시를 빼내는 효과가 있다’는 화살나무에 대한 설명을 읽고 어린 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삼키는 저자는 그제야 늦둥이 막내로서 아비 없이 살아갈 세상에 적응시키려는 뜻으로 엄한 모습을 보이려 하셨던 아버지를 이해한다. 한편 직접 두릅 채취에 나서면서는 두릅을 딸 적마다 나뭇가지 채 부러질세라 조심을 하시던 어머니를 떠올리기도 한다. 2~3일의 짧은 채취 적기에 알맞게 거둔 두릅이 쇨까 노심초사하던 어머니를 비로소 이해하면서.

 

유년의 추억과 마을사람들의 애환
◎ 도망간 언니 대신 시집온 곰보 흥식의 어린 신부가 경상도에서 가져온, 자라지 않는 감나무
◎ 뱀 잡기와 박쥐 사냥이 특기였던 거친 땅꾼의 아들 기태 형이 마을 코스모스 화단을 가꾸게 된 사연
◎ 술만 먹으면 산골마을이 떠나가라 울분을 토해내던 용식이 아버지의 밥줄 조릿대(산죽)

책은 성황림마을에 살았던 혹은 마을을 스쳐갔던 다양한 군상을 그리고 있다. 나이 많은 곰보 신랑이 싫어 하루 만에 도망쳐버린 언니를 대신하여 열일곱 나이로 약초꾼의 움막에 시집온 처녀가 있었다. 아들 춘덕이를 낳고 남편의 일을 헌신적으로 도우며 부지런히 일하던 어린 각시는 어느 날 말없이 사라지는데, 이 딱한 일화의 복판에 한 그루의 감나무가 있다. 대견한 어린 각시는 고향에서 가져와 울 밖에 심은 감나무를 돌볼 때에만 잠시 집 밖에 나오곤 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그 감나무는 어른 키 반만 한 채로 제대로 자라지를 않았다. 신부가 어떤 모진 맘을 먹었는지 어린 아들마저 두고 홀연히 도망친 뒤로, 홀로 남은 곰보 흥식은 신부가 혼수로 가져와 갖은 정성을 쏟았던 감나무가 죽은 자리에 대신 고욤나무를 심는다. 고대 중국의 농업 기술서에는 “감나무는 번식에서 대목으로 고욤나무를 쓴다”고 적고 있으나 우리 관용 표현으로는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 한다. 사립문을 열어놓고 신부를 기다리며 홀로 아들을 키우던 흥식은 마침내 고욤나무를 베어버리고 마을을 떠나고 마는데, 이 두 나무의 이미지가 어린 저자로서는 미처 알지 못했을 그들 사연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뱀 잡기며 나무 타기, 박쥐 사냥에 도가 텄으며 때로 신림양조장에서 져 올리던 술통의 술을 풀어 동네 애들을 먹이기도 했던 용감무쌍한 땅꾼의 아들 기태 형이 코스모스를 심던 사연 또한 인상적이다. 정부 지원 아래 마을 청소와 단장을 강권했던 시절, “본동 애향단장”이라는 완장을 손에 넣은 기태 형은 난생 처음으로 제도권 안에서 한자리 차지했다는 으쓱함 때문인지 돌연 말 잘 듣는 소년이 되어 동네 화단 조성에 열을 올리며 물주전자를 들고 분주히 뛰어다녔다. 당시의 블랙리스트와도 같았던 ‘불참자 명단’으로 아이들을 휘어잡고 권유 반 협박 반으로 애향단 활동에 매진하던 기태 형의 모습은 ‘관제구락부’가 전성하던 당시의 사회상과, 무서울 게 없어 보였지만 뱀 잡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느라 한글을 깨치지 못한 그의 은근한 콤플렉스와 슬픔을 짐작하게 하여 짠한 울림을 준다.

 

생생한 색채와 맛
◎ 여인네들이 목간을 하던 절골 항아리소沼 입구에 절묘하게 흐드러진 몽환적인 흰꽃 귀룽나무꽃
◎ 아이들의 봄철 놀이터였던 묘지 근처에 둘러 난 볼품없는 잡목 보리수나무 열매의 시큼한 맛
◎ 세 장의 꽃받침 안쪽으로 희고 노란 기하학의 메시지를 수놓은 미뚱지의 연필꽃, 아이리스의 강렬한 파랑
◎ 늦여름부터 늦겨울까지 먹는 제일의 간식 옥수수와 메옥수수로 만들던 노오란 별미, 올창묵

벚나무가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와 더불어 잎보다 먼저 화려한 연분홍 꽃을 피우고 사그라지면 곧이어 배나무, 야광나무, 조팝나무 등 잎과 함께 피는 흰 꽃들이 봄의 향연 2부를 이어간다. 흰 꽃 중에서도 느지막이 피어, 이미 풍성하고 짙푸르게 돋아난 잎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것이 바로 귀룽나무 꽃이다. 저자의 기억 속에 이 꽃나무는 여인들의 목간 장소라 동네의 금남구역이었던 절골 항아리소 입구에 드리운 발이다. 한편 조상들은 이 나무를 귀신 쫒는 용도로 궁궐과 대문 앞에 심기도 했으며 ‘귀룽’이란 이름 역시 ‘귀신이 놀라서 달아난다’는 의미로 추정된다. 이런 유래는 젖은 머리를 하고 귀룽나무 꽃더미 뒤 미지의 세상에서 걸어나오는 어머니와 누이를 기다리던 저자의 기억에 신비로운 색채를 더하며 눈부신 흰 꽃더미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밖에도 “미나리꽝에 앉았다!” 하던 놀이 장면에서 출발하여 부단히 푸른 새순을 틔워 우리 밥상을 채워주던 고마운 나물 미나리의 모습, 어머니의 미나리물김치에 툭툭 씹히던 돌나물의 감촉으로 이어지는 생생하고 소소한 색과 맛 이야기가 꼭지마다 오감을 자극한다.

 

다시 읽는 풍속과 문화, 시와 노래
◎ 가장 곧고 크게 자라는 일등 목재로 각종 농기구 만들던 고로쇠나무는 건강음료 열풍 이후 수액 채취로 봄마다 ‘고롭지’ 않을까
◎ 만고에 용처가 없어 이름조차 묻지 않았던 이 나무. 정말 시인 백석이 굳고 정하다 한 그 갈매나무일까?
◎ 초나라 굴원의 넋을 기린 저승밥 감싸던 소태나무 잎, 민초 어원연구가로서 이 이름의 유래를 따져본다!
◎ 뱃머리에 흔들리는 피마주초롱, 동백기름 비린내가 고향을 안다, [아주까리 선창]과 아주까리

“나는 너희들의 어머니니 / 내 가슴을 뜯어가 떡을 해먹고 배 불러라 (…) 봄이 오면 내 뿌리의 피눈물을 먹고 / 너희들은 다들 사람이 되라”

정호승 시인의 시 [고로쇠나무]에서 고로쇠나무는 인간들을 굽어보며 사랑인지 꾸짖음인지 모를 말을 던진다. 하지만 그 말투에는 분명 어딘지 비장하고 준열한 데가 있다. 이 시로부터 저자는 ‘고로쇠 수액’ 열풍에 시달리는 고로쇠나무에 대한 염려를 환기하는데, 도선국사가 고로쇠나무 수액을 먹고 굽은 무릎이 펴졌다는 등의 허황된 말보다 단풍나뭇과인 고로쇠나무 수액의 효능을 서양의 ‘메이플 시럽’ 활용 실태에 비춰본 것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이 나무의 어원이 뼈를 이롭게 하는 골리수骨利樹에서 왔다는, 이젠 거의 정설이 된 설명 또한 음운변화의 일반적 특징을 고려할 때 터무니없는 면이 많다. 이는 ‘소태나무’의 ‘소태’가 ‘소의 태반처럼 쓴 맛’에서 왔다는 설명도 마찬가지다. 어미소가 기력을 회복하려면 태반을 먹어치우도록 놔두어야 하는데, 이것을 사람들이 빼앗아 먹고 소의 태반이 쓴맛의 대명사로까지 굳어졌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수액이든 소의 태반이든, 무심히 지나쳐버려도 그만일 것 같았던 나무의 이름이며 이용 실태를 독창적으로 따져보면서 일상적으로 궁리한 생각들에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일제 강점기의 공업용 기름, 여인네 머리에 바르던 치장용 기름, 석유가 보급되기 전까지 이땅을 밝혀준 등불용 기름이었던 아주까리의 모습을 여러 노래, 산문, 시와 함께 묘사한 부분은 긴 여운을 남기며, 만고에 쓸 데가 없이 무성하게 자라나 산골 아낙들의 한숨을 자아냈던 바랭이를 ‘잡초 중의 잡초’라 부르면서도 정성스레 한 꼭지를 내어준 점 등도 우리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1. 아버지의 퉁소 구릿대
2. 오얏! 다 어디로 간고야?
3. 밟힐수록 무성해지는 길깡의 풀 질경이
4. 구황식량에서 동아줄까지 민초 삶의 끄나풀, 칡
5. 사약 부자탕의 재료 투구꽃
6. 쓸모없어 살아남은 백당나무
7. 귀신도 맞으면 죽는다는 몽둥이 박달나무
8. 한국형 바나나 으름덩굴
9. 국수에서 약재까지 껍질이 보배 느릅나무
10. 동서고금을 넘어선 꿈의 실현수 개암나무
11. 이밥에서 짚신에 초가까지 모·벼·쌀·밥
12. 꽃보다 아름다운 남빛 열매 누리장나무와 노린재나무
13. 아무데나 쑥쑥 자라 이 땅의 민초와 동고동락한 쑥
14. 향신료의 조상 산초나무
15. 야무진 아버지의 장기쪽 대추나무
16. 욕정 내음의 꽃 밤나무
17. 내 누님 같은 꽃 들국화
18. 나비가 내려앉은 듯 금은화를 피우는 괴불나무와 인동
19. 피나무, 끈에서 염주까지 안 되는 게 뭐니?
20. 불쏘시개에서 왕궁의 기둥까지, 삶의 동반자 소나무
21. 묵나물의 제왕 고사리
22. 한여름에 꺾어 삶던 나물 뚝갈, 소녀의 양산 마타리
23. 엄하셨던 아버지의 문설주 엄나무
24. 잎을 먹는 박쥐나무와 생강나무
25. 신선놀음에 썩던 도끼자루 물푸레나무
26. 보릿고개의 풀때죽 곤드레 딱주기
27. 가지가 칭칭 층층나무
28. 뿌리 찧어 천렵하던 가래나무
29. 극복과 상생의 지혜 헛꽃과 충영
30. 백년손님의 등짐멜빵 사위질빵
31. 야생의 유혹 산딸기
32. 슬픈 전봇대나무 낙엽송
33. 님도 주고 뽕도 주고 뽕나무
34. 오만의 극치 참나리꽃
35. 손대면 톡! 봉황을 닮은 여인의 자태 봉선화
36. 고향에서 부르는 청산별곡 다래
37.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 ‘지게’
38. 죽어서도 주는 참나무
39. 조국 근대화의 공신 앵두나무
40. 화촉신방에서 동토의 지킴이까지 자작나무
41. 봄과 동심의 랩소디 버드나무
42. 향수와 동심의 풋순 찔레나무
43. 머리에 돌을 이고 찧던 어머니의 디딜방아
44. 으악새 슬피 우니
45. 천 년 도료 옻나무, 흙벽의 뼈대 개옻나무
46. 입맛이 돌아오는 쓴 나물 씀바귀와 고들빼기
47. 봄의 나팔수 진달래
48. 절개와 모험의 민초 민들레
49. 님 그리워 잠 못 드는 밤 배나무
50. 소죽 위에 삶아먹던 열매 야광나무
51. 함초롬 이슬 먹고 핀 야생화의 제왕 함박꽃
52. 풋살 내음 살짝 병꽃나무와 국수나무
53. 향기에서 가시까지, 영욕의 아까시나무
54. 싸리, 그 많은 기억들
55. 성황림의 신목 전나무

미리보기

구릿대는 또 내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퉁소 가락이다. 아버지께서는 오래된 멋진 퉁소를 가지고 계셨다. 한눈에 보아도 윤이 반질반질 나고 오랜 세월과 품위가 스며든 퉁소였다. 아버지는 이따금 그 퉁소로 구곡간장을 녹이 듯 애끓는 가락을 연주하셨다. 어느 날 원주에 살던 이복형님이 오시고 무슨 일로던가 한바탕 집안에 고성이 오가던 날 아버지의 퉁소는 깨져버렸다. 깨진 퉁소에 아교를 녹여 붙인 뒤 불어보시고는 제 소리가 나지 않는다며 “이거 낭팰세!” 하고 난감해하시던 아버지의 표정이 잊히지 않던 그 해 겨울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 대문에 들어서니 귀에 익은 퉁소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아버지는 가을에 잘라서 말려두었던 구릿대로 퉁소를 만들고 계셨다. 화로에 찔러둔 불꼬챙이로 구멍을 뚫어가며 불어보시고는 간격을 넓혀도 좁혀도 보시다가 여러 개를 버린 후 드디어 완성된 하나의 퉁소! 전체적인 음색은 먼젓번의 대나무 퉁소보다 더 룩고 낮아졌지만 아버지는 만족해하셨고,. 고요와 적막에 싸인 긴 겨울밤 아버지의 구슬픈 퉁소 가락은 다시금 담 밖을 넘어 울려 퍼질 수 있었다.

_「아버지의 퉁소 구릿대」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고주환

온대활엽수림의 보고 치악산자락의 천연기념물 제93호 성황림마을에서 태어나 목수인 부친의 영향으로 나무에 대한 남다른 경험과 관심 속에 성장했다. 공대를 나와 수도권에서 사업가의 길을 가면서도 고향집에 꾸준히 텃밭농사를 지으며 애정 어린 눈으로 마을의 역사와 사람들 그리고 산천의 생태를 기록해왔다.
‘민초 작가이자 토속식물의 어원연구가’를 자처하며 풀과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민중의 생활 속 눈높이로 풀어낸 첫 번째 묶음인 『나무가 민중이다』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숲 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향후 치악산자락의 자연림과 역사유적 등을 연계한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주말마다 고향의 산야를 누빈다.

추천의 글

“또 하나의 나무 책이 나왔나 했는데, 내용을 살펴보니 땀 냄새가 많이 배어 있다. 제목이 좀 과격하다 싶었으나 읽어 보니 여기서 민중은 계급의 단위가 아니라 백성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래서 부제도 ‘민초의 삶에 깃든 풀과 나무 이야기’로 했다. 그러니까 풀과 나무 등의 생태를 현미경으로 들여보다가, 이런저런 예문을 들며 문화사적인 해석을 풀어놓은 뒤, 식물에 얽힌 구체적 삶의 애환을 덧붙이는 기술이다. 이 순서는 바뀌기도, 생략되기도 한다. 엄나무의 예를 들면 이렇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저자는 고려 말 문신 우탁(禹倬·1263∼1343) 선생의 시조에 등장하는 가시나무를 엄나무로 보고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이어 발음이 비슷한 음나무로도 불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봄철 나물로 사랑받는 두릅의 맛을 묘사한다. 다음으로 비를 잘 흡수하지 않은 엄나무의 습성을 들어 악기와 가구, 나막신의 재료로 쓰였다는 정보를 전하고,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체험을 덧붙인다. “아버지는 안방 앞에 집을 짓는 제비가 싫었다. 그래서 제비집의 흙을 긁어내고 엄나무 가시를 걸쳐 놓았다. 그런데도 제비들은 막무가내였다. 거친 가시에 흙을 붙이고 나섰다. 결국 아버지는 제비집 밑에 받침대를 달아주고 말았다.” 저자에 관해서는 소략하게 적어 놓아 신상을 자세하게 알 수 없고, 치악산 자락의 물려받은 집에서 오랫동안 텃밭농사를 짓는다고 하는데, 1960년생치고는 어린 시절 농촌살이에 대한 기억이 풍성하다. 엔지니어 출신이면서도 영화와 미술, 시문에 관한 조예가 깊고 독서량도 있어 보인다. 그것들이 잘 조합해 조화롭게 어우러지니 읽는 재미가 배가되는 것이다. 자료적 가치가 뛰어난 도판이 많은 것도 다른 책이 가지지 못한 장점이다.”

_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