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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나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춘추오패의 우두머리, 제나라의 번영과 몰락
  • 지은이 | 장웨이
  • 옮긴이 | 이유진
  • 발행일 | 2011년 03월 07일
  • 쪽   수 | 512p
  • 책   값 | 22,000 원
  • 판   형 | 152*223
  • ISBN  | 9788993905540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추천의 글
책소개

잊혀진 제나라를 통해 중국 문명을 다시 읽는다

– 대륙 진나라와 해양 제나라의 문명충돌과 융합의 문제제기
– 춘추오패 우두머리였던 제나라의 문명을 심층적으로 조명
– 중원이 중화문명의 요람이라는 생각은 단편적이고 부정확하다
– 평론가들이 새로운 눈으로 제나라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20년 넘게 몸소 경험한 것과 글쓰기 경륜이 만나 생존적 깨달음으로 가득한 걸작을 탄생시켰다. 평론가들이 새로운 눈으로 제나라를 다시 보게 만든 작품이다.” _ [중화독서보]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차고 용기와 책임감으로 넘치는 위대한 책이다.” _ [연태만보]

“저자의 내면에 농밀하게 스며들어 있는 비극적인 정서는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진정한 정신의 여행이자 문화의 여행이며 문명의 여행이다.” _ [연조도시보]


춘추오패의 우두머리, 제나라 이야기

제齊나라는 춘추시대 오패五覇이자 전국시대 칠웅七雄의 하나로 약 825년 간 번영했다가 진시황에 멸망된 중국의 고대국가 중 하나이다. 제나라는 비록 중국을 통일하지는 못했지만 환공桓公 때는 중원의 지배적 지위에 올라본 경험이 있는 큰 나라다.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나 한漢나라 급은 아니지만, 남방의 강국 초楚나라 정도의 존재감은 확보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의 활동무대로서, 사마천 [사기열전]의 주요한 배경 시대로서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하다. 유명무실해진 천자국 주周나라를 뒤로 하고 제후국의 영웅호걸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속에서 사상과 문화의 거대한 변혁이 일어나고 고대 문명의 여러 제도가 난숙해진 이 시기를 한 축으로 이끌어간 나라가 바로 제나라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지성적인’ 작가의 한 명으로 통하는 장웨이張가 내놓은 [제나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원제: 방심사화芳心似火)는 바로 이 제나라를 다룬 책이다. 장웨이는 과거 제나라의 영토인 산동성 출신 작가로 오랫동안 제사齊史를 몸과 마음으로 탐구해왔고 작품에도 녹여왔다. 이 책은 작가의 내면에 쌓이고 쌓인 제나라 이야기를 작심하고 3년 동안 다시 직조해낸 역사평설이자 인문에세이이며, 과거로 떠나는 인문지리적 탐험이자, 동시에 역사를 통해 오늘의 삶을 돌아보는 문명비판 등의 복합적 성격을 갖고 있다. 제나라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풍부한 역사문화적 정보를 제공하며, 그러면서도 에피소드들의 나열이 아니라 이야기를 벽돌 쌓듯이 쌓아나가면서 제국의 번영과 몰락이라는 전체적인 역사상을 그려낸다. 특히 수많은 장면들을 저자의 내면에 자유자재로 불러들여 곱씹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삶과 그 욕망을 깎아내고 걸러내는 끌과 채로 만들기도 한다. 이 역사이야기에 ‘인문에세이’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분서갱유의 발단, 동서문명의 충돌

그렇다면 한-당-송-명-원-청 등의 통일왕조를 중심으로 중국사를 인식해온 우리가 새삼 제나라를 다시 살펴볼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매우 중요한 ‘역사인식’의 문제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진秦나라와 제나라의 문화충돌이라는 현상이다. 장웨이는 이 책 전반에 걸쳐 고대 중국에서 동서 문명 충돌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흔히 프랑스인은 재기발랄하면서 수다스럽고 독일인은 무뚝뚝하고 진중한 이미지가 있듯이,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와 제나라 사람들은 극과 극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역시 내륙문명과 해안문명의 차이이다. 바다와 접해 일찍이 상업적으로 번영했던 제나라는 호방하고 활달한 기질인데 비해, 진나라는 자로 잰 듯한 엄숙함과 단순함이 특징이었다. 제나라의 도성 임치는 당나라의 장안長安과 같은 대도시였다. 천하에서 가장 많은 부상富商, 가장 긴 상가, 가장 큰 축구장, 그리고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직하학궁稷下學宮, 매력적인 소악韶樂 연주, 기예와 몸을 파는 가희들이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 비단업과 제철술이 최초로 발명된 곳도 바로 제나라 해안 지역이었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식량 창고와 가장 많은 준마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논벼를 최초로 재배한 나라이기도 했다. 풍부한 물질문명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특이한 옷차림을 하고 다녔으며, 신선사상이 발달해 방사方士들이 넘쳐났다. 제나라 사람들의 대화술은 당해낼 사람들이 없었다. 저자는 제나라 출신이었던 순우곤淳于과 동방삭東方朔의 우스꽝스러운 익살기를 재미나게 풀어내고 있다. 경박함과 농담 뒤에는 강력한 내재적 논리가 있었다.
반면 진나라는 순수한 농경국가이자 엄격한 형법을 고수한 나라였다. 제나라에서 춤과 노래와 성대한 연회가 끊이지 않던 시절에 진나라의 음악은 어땠을까? 기록에 따르면, 왕과 신하의 버젓한 연회에서 펼쳐진 노래와 춤이란 것이 놀랍게도 질항아리를 두드리며 넓적다리를 치면서 그 박자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는 게 다였다. 상앙商의 변법變法을 거친 이후의 진나라는 모든 면에서 더욱 이성적으로 변했고 치밀해졌다. 장웨이는 농업 입국의 보수성과 견고성을 바닷바람이 뚫고 들어가기는 어려웠다고 말한다. 진나라의 수도 함양이 세계의 중심이 되면서 많은 제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들어왔지만 이는 그 당시에 상대적으로 폐쇄적이었던 진나라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많은 제나라 인들이 진나라의 정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정권을 쥐고 있던 인물들과의 접촉이 잦았고, 심지어는 진시황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이로써 한동안 그들의 말이 전폭적으로 수용되기도 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휘돌아다니는 게 습성이었고 제멋대로 놀고자 하는 마음도 아주 강했다. 그런데 이런 기질은, 순수한 농경국가이자 엄격한 형법을 고수한 진나라 사람들의 기질과 충돌을 빚었다. 그러므로 후에 발생했던 분서갱유 사건 역시 정치적인 배경에서만 그 원인을 찾으면 안 된다. 거기에는 비록 미미하지만 직시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바닷가 사람들과 서쪽 사람들 간의 기질의 충돌이다.


제나라의 뒤에 내萊나라가 있었다

제나라 이전에 산동반도에서 번영을 구가한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내萊나라다. 제나라의 핵심 문화 저력은 바로 이 내나라에서 왔다. 고고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내나라 사람들은 아주 먼 옛날 바이칼호 이남에서 이 광대한 교동반도 지역으로 왔으며 용맹한 유목민족에 속한다. 혹한지대에서 줄곧 남하하여 사계절이 분명하고 토지가 비옥한 교동반도 지역에 정착했다. 새로운 지리환경 속에서, 준마를 몰던 민족은 점차 마음을 다잡고서 뽕나무 심고 농사지으며 정밀농업의 초창자가 되었다. 같은 시기 다른 지역의 것들과 비교했을 때, 이곳에서 출토된 도기陶器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답다는 것이 고고발굴을 통해 계속해서 증명되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내나라를 세웠다. 가장 흥성했던 시기의 내나라 영토는 매우 광활했다. 오늘날의 교동반도 동쪽을 포괄했을 뿐만 아니라 서쪽으로는 황하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태악泰岳에 이르렀다. 이는 후에 제나라가 가장 강성했을 때의 강역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제나라는 바로 이 내나라를 병탄함으로써, 해양문명의 수혈을 받았다. 한번에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국경을 맞대고 교류했으며, 점차적으로 병합했다. 그래서 제나라는 내나라의 고급문명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바로 이 내나라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역사, 신화, 민담 속에서 길어올린 통찰

이 책은 제나라 역사를 일관되게 서술하는 책은 아니다. 사방에 흩어진 제나라 관련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정교하게 성찰하고 있다. 도교와 신선술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 진시황을 속이고 3천명의 동남동녀를 배에 태우고 먼 바다로 떠난 서복徐福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서복은 어떻게 진시황을 속일 수 있었을까? 라는 게 저자의 궁금증이었다. 아무리 불로장생을 꿈꾸며 3번이나 동쪽을 순행하고 방중술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진시황이었지만 방사들의 속임수에 호락호락 넘어갈 인물은 아니었다. 저자는 서복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장엄한 임무인 만큼 매우 특별한 의식이 필요하니 적당한 때에 가장 성대한 인간 희생제의를 올려야 한다”고 둘러댔기 때문이라는 게 역사학계의 최근 해석이라고 소개한다. 진시황은 서복의 말을 시험하기 위해 해안에 도착해 배를 타고 나가 활을 쏘아서 상어를 쏘아 죽이기도 했다. 수평선 끝에 신비로운 왕국처럼 여겨지는 신기루를 보았을 수도 있다. 1980년대부터 산동반대 해안일대에서는 수평선 끝에 빌딩 숲처럼 보이는 신기루가 일어나 카메라에 포착되었는데, 이는 제나라 사람 중에 신기루를 보고 신선의 나라가 있다고 믿었다는 역사기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 외에 저자는 [요재지이]의 저자 포송령이 전한 여우이야기, 등불마을 이야기, 꽃으로 만들어 먹는 간식 천년고 이야기, 소매 안에 물건을 넣어다니는 문화, 거문고,거북이,향떡 등 제나라 역사민담 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들려준다. 모두 감탄사가 터지는 이야기들이지만 특히 ‘새’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제나라에는 새가 유난히 많았다. 해안지역 하늘을 가득 메우는 그 장엄한 새떼의 광경. 저자는 이것이 [장자]의 들머리에 실린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그 크기가 너무나 커서 몇천 리에 달하는지 알 수 없다. 이 물고기가 별안간 붕鵬이라는 새로 변하는데, 이것 역시 너무나 커서 그 등이 몇천 리에 달하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의 근거가 되었으리라고 본다. 즉, 발해만渤海灣에서 날아다니는 큰 새에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커다란 새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을 불러 일으켰다. 옛사람들은 ‘홍곡지지鴻鵠之志’, 즉 ‘기러기와 고니의 뜻’이라는 말로 위대한 사람을 형용했다. 그리고 제나라 이전의 내나라 사람들은 큰 새를 자신들의 토템으로 삼아 봉새, 제비, 두견이, 메추라기, 꿩 등을 각각 춘분, 추분, 하지, 동지, 입춘, 입하를 관장하게 하고 가마우지와 새매는 군사와 법률을 관장하게 했다. 새의 이름으로 관직명을 삼았다.


책 전체에 진동하는 방심芳心의 향기

제나라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우선, 오늘날 중화문명이라는 것이 내륙기질과 해안기질의 주고받음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이며, 궁극적으로는 제나라 지역 옛사람들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을 잡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원제에도 쓰인 방심芳心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 단어가 주로 십대 여성을 형용하는데 쓰이지만 그 내밀한 의미를 살펴보면 꽃이 막 피어나기 직전의 단계를 가리킨다고 본다. 활짝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활짝 피기 전의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마음이 바로 방심이다. 모든 욕망을 불태워버리면 남는 것은 재뿐이다. 문명도 마찬가지다. 제나라는 그 역사의 마지막에 환락을 불태웠다. 그리고 결국 진나라에 망했다. 진나라도 마찬가지다. 끝도 없는 제국의 욕망은 가장 짧은 통일왕조라는 오명을 남겼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이야기들이 바로 ‘방심의 테크놀로지’이다. 그 가운데 ‘바둑의 형세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예로부터 산동반도의 바닷가 동래東萊 지역에는 바둑과 거문고의 고수들이 많았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의 바둑 고수들은 바둑에 이기고도 긴 탄식을 내쉴 때가 있었다. 그 이유는 바둑에서 이기려고만 한 것이 아니라 보기에도 좋은 바둑 형세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판이 끝나는 시점에, 바둑 형세가 보기에 좋지 않으면 바둑에서 진 것보다도 더 유감스러워 했다. 한 제나라 노인은 바둑의 형세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연신 지고 말았다고 전설은 전한다. 저자는 말한다. “아름다움을 극도로 추구하며 의리를 지키려는 관념은, 생활에 굉장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뿌리가 깊고 튼튼한 문화가 되어 한 시대의 정치와 경제의 틀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이다.


동이東夷의 우수성에 대한 이야기

앞서 내나라 이야기를 했지만 저자는 예전에 동이東夷라고 불린 동쪽 해안가 문명이 중화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계속 강조한다. 당시의 ‘단각도蛋殼陶’는 박태고병배薄胎高柄杯의 경우, 배 부분의 두께가 겨우 0.5밀리미터이고 주둥이 부분은 그 두께가 1밀리미터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처럼 얇은 기물은, 지금의 현대 기술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따라 만들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도기는 형태와 기술에 있어서 전 세계 상고시대 도기예술의 정화라고 할 수 있다. 작업 과정에서 당시 내나라는 이미 물레를 사용하는 기술을 보편적으로 채용했는데, 이는 질적/양적 비약이었다. 어쨌든 도기의 과학성, 예술성, 다양성 등의 여러 방면에서 내나라의 도기는 중국 신석기말기의 최고 수준을 대표한다. 고고발견에 따르면, 일찍이 칠천 년 전에 내이 사람들은 이미 반도 동쪽에서 유구한 문화를 창조했다. 내이의 고문화는 나름대로의 발전 순서가 있었으며 중원의 고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전해졌으며, 상·주 시기까지 쭉 이어졌다. 이로써 내이문화가 중원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뚜렷한지를 알 수 있다. 이곳의 도문陶文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문자로 공인되었으며, 상대의 갑골문甲骨文보다도 천여 년이나 앞선다.
이로써 볼 때 이전에 형성되었던 전통 관념, 즉 중원이야말로 중화문명의 요람이라는 생각은 단편적이고 부정확한 것이다.
저자는 제나라의 온돌 문화도 소개한다. 중국 중원의 문화는 탁자에 앉아서 식사했지만 제나라 지역은 방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모여 앉아서 식사했다. 바닷가는 바람과 추위와 습기가 심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집집마다 대형 온돌을 설치했다. 널찍하고 견고한 온돌 위에다 갈대를 엮어 만든 자리를 깔고, 그 위에 다단식 서랍장 같은 목제 공예품을 두면 어느덧 집안에 온기가 가득해진다. 이러한 내용은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지를 잘 말해준다. 즉, 제나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단순하게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가 책의 전반에 걸쳐 말하는 제나라 동래東萊라는 지명이 한국의 남쪽 동래東萊라는 지명에도 남아있듯이 말이다.

목차

여는 글 : 방심이란?

제1장
오랜 연애와 같은 인생 / 고대의 지자 / 사람과 향기로운 풀 / 꺼지지 않는 연단 화로 / 제나라의 괴인 / 서복 / 동쪽을 향하다

제2장
옛 등주 / 평온의 힘 / 익살꾼들 / 휘돌아다니다 / 많은 여우들 / 큰 새 한 마리 / 바닷가의 다섯 신 / 동래와 서래

제3장
바둑의 형세가 좋지 않다 / 간식과 천년고 / 부끄러움 / 소매 안에 물건을 넣다 / 천년선 / 허망한 미식

제4장
그들에게 미안하다 / 한 그루의 나무 / 세 번 되돌아갔다가 눌러살다 / 향 떡을 선사하다 / 거문고를 부수다 / 등불 마을을 잃다 / 거북이 또 찾아오다

제5장
중의를 찾기 어렵다 / 온갖 풀과 문장 / 서생 / 상인이 인재를 추천하다 / 은사의 자식들 / 토착어에 대하여 / 말없음과 언어의 낭비

제6장
발 구르며 노래하는 소리 / 위대한 나무수레 / 동이의 동쪽 /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다 / 동방과 서방 / 차가운 실용주의 / 축적의 어려움

제7장
제나라를 그리워하다 / 잔인함과 호기로움 / 화려한 수레와 술잔 / 가장 번화한 도시 / 가장 오래된 케인스 / 직하학궁 / 최고의 대언

제8장
패자라 칭하다 / 오래된 공사 / 여색을 좋아한 왕 / 환락의 집단 / 방종의 대가 / 상대와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리다 / 양화와 음독

닫는 글 – 아름다운 달빛
제나라 연표
옮긴이의 말 – 제나라는 왜 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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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장웨이张炜

산둥성 룽커우시에서 태어났다. 고교 진학 대신 고무공장에서 일했으며, 나중에 중등교육과정을 이수한 뒤에도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단편소설을 발표해온 장웨이는 「음성(聲音)」(1982)과 「어떤 맑은 연못(一潭淸水)」(1984)이 중국작가협회 주최 전국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하면서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즈음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 소설 · 시 · 평론 · 시평 등 다방면의 작품을 발표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만물의 융화를 강조하고 고도성장기 중국의 사회 모순과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시대상을 비판하는 단편을 주로 써온 장웨이는 1986년 첫 장편 『고선(古船)』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홍콩의 권위 있는 시사지 『아주주간(亞洲周刊)』 선정 ‘20세기 세계 100대 중국어 문학’에 선정되고 프랑스 문화과학센터 대입 교재로 채택되었다. 2010년, 20여 년 만에 탈고한 장편 『그대는 고원에』(전 10권)는 『아주주간』 선정 ‘2010년 세계 10대 중국어문학’ 1위에 오르고 중국 4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마오둔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외에도 여러 작품으로 중국 국내외에서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다.

근대문학이 달성한 고전적 의의와 그것의 초월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장웨이의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영국 · 독일 · 프랑스 · 일본 ·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옮긴이

이유진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의 전문연구원. 오늘날 우리 시각으로 중국 역사와 문화를 읽어주는 인문학자로, 복잡한 중국 역사를 대중적인 언어로 소개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여섯 도읍지 이야기』에서는 중국 이해의 심장부인 여섯 도읍지 곳곳을 종횡무진 아우르며, 그 안에 깃든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중국신화의 역사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화의 상징성 및 신화와 역사의 얽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중국 문화와 역사, 문학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신화와 역사를 이해할 때,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를 강조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중국의 역사』 『한손엔 공자 한손엔 황제』 『차이나 인사이트 2018』(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고대 도시로 떠나는 여행』 『중국 철학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미의 역정』 등 다수가 있다. EBS 라디오 <니하오 차이나>의 ‘중국 신화전설’ 코너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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