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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지도의 비밀 중국 고지도의 경이로운 이야기와 세계사의 재발견
  • 지은이 | 류강
  • 옮긴이 | 이재훈
  • 발행일 | 2011년 01월 10일
  • 쪽   수 | 728p
  • 책   값 | 45,000 원
  • 판   형 | 175*230
  • ISBN  | 9788993905472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중국이 서양보다 100년 먼저 아메리카대륙 발견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할, 세상을 놀라게 한 지도!

이 지도를 계기로 드러나는 중국 고지도와 지리학의 경이로운 세계

“이 책은 너무나 많은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준다. 중국의 지도 및 천문학, 중국인의 세계관 등 다른 책에서 발견할 수 없는 내용들을 원문과 더불어 제시하기 때문에 학문적으로도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저자의 상상력과 탐구 능력, 그리고 동서양의 고지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놀랍다. 비록 저자의 주장에 대한 검증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지도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향후 지도학계의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저서라 할 수 있다.”_ 감수 및 해제자 정인철 부산대 지리교육과 교수

 

이 책의 내용 개요

콜럼버스는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했다. 마젤란 함대는 1519년에 항해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세계 일주를 최초로 완성했다. 대항해, 대탐험으로 ‘지리상의 발견’이 이뤄졌다는 것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 역사의 상식이다. 그러나 2001년 어느 날, [천하제번식공도天下諸番識貢圖] 모사본인 [천하전여총도天下全與總圖]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1418년 이전에 이미 중국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갔고 세계 일주를 마쳤다는 사실이 부각되었다. 이 책 [고지도의 비밀]은 [천하제번식공도]가 그려진 때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 중국인이 세계를 발견한 수수께끼의 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11세기 때 축조된 고분古墳에 묻혀 있던 세계지도는 당시의 중국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이미 측량했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해안선을 항해했다고 말해준다. 저자는 1093년에 죽은 장광정張匡正이라는 사람의 묘실 천정에 나무로 만든 세계지도의 흔적이 발견된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그리고 마르코 폴로가 남긴 여러 폭의 고지도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일부 윤곽을 보여주었다. 이 고지도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에 관한 정보를 얻었음을 증명했다. 마테오리치와 자신이 제작한 세계지도는 중국의 지도역사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가 그린 지도는 깜짝 놀랄만한 비밀을 숨겨놓고 있다. 즉 마테오리치는 옛 중국의 항해가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사실을 알리는 지도 자료를 참고했던 것이다. 그리고 중세에 만들어진 지도 가운데 일부는 남극대륙의 윤곽선을 표시하고 있는데, 이 또한 중국의 옛 탐험가가 남극대륙을 측량했음을 말해준다…….
[고지도의 비밀]에는 고대 중국과 세계의 진귀한 지도 수백여 폭을 수록했다. 이들 지도 중에는 수천 년 전의 것도 있고 수만 리 떨어진 지역을 표시한 지도도 있다. 그리고 고분에 묻혀있던 고지도가 세상에 나온 것도 있다. 중국 고지도와 서양 고지도를 비교하던 중 저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서양 고지도에 남겨진 중국 고지도의 여러 가지 흔적들이다. 이에 저자는 중국의 전통 과학기술사를 꼼꼼하게 연구했다. 그 결과 콜럼버스와 마젤란이 태어나기 수백 년 전에 옛 중국이 원양 항해, 천문 관측, 수학 계산, 지도투영법 그리고 경위도 측정 등의 분야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 중국의 옛 탐험가들이 성공리에 세계를 탐사하도록 도왔음을 밝혀냈다. 정화는 이들 탐험가들이 남겨 놓은 지도의 안내를 받아 전 세계 항해 일주를 마쳤다. 이후에 동학서진東學西進이 일어나 옛 중국인이 제작한 세계지도가 유럽으로 전해졌다. 이들 지도가 바로 유럽의 항해가들이 신대륙을 ‘발견’하도록 방향을 가리켜 준 것이다.
영국의 개빈 멘지스는 자신의 베스트셀러인 [1421?중국, 세계를 발견하다1421: The Year China Discovered the World]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고지도의 비밀]이 새로이 제기한 역사학적 관점은 더욱 신선하다. 즉 16세기 이후 중국이 유럽에 뒤떨어지게 된 원인을 분석하여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과 함께 폭넓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본문 구성과 주요 내용]

이 책은 1418년에 ‘만들어진’ [천하제번식공도]가 역사와 충돌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저자가 세상에 이 지도의 존재를 알리게 한 주인공은 [천하전여총도]로서, 1763년에 제작되었으며 [천하제번식공도]를 베껴 그렸다. 그런데 [천하전여총도]에 쓰인 주석을 보면, [천하제번식공도]는 1418년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지도에는 아메리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남극대륙의 윤곽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각 대륙에 대한 주석도 내용이 상당히 정확하다. 즉 이 지도가 위작이 아니라면 ‘지리상의 발견’ 이전에 중국의 누군가(중국인)가 이미 세계 일주를 마쳤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의 지도추리 여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서양고지도는 왜 15세기에 이르러 갑자기 향상되었나
[천하제번식공도]가 ‘제작된’ 1418년, 당시 유럽에서 제작된 지도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유럽인이 만든 지도를 찾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발트제뮐러의 세계지도](1507), [마르텔루스의 지도](1489), [비르가의 지도](1415), [마우로의 지도](1459), [피리 레이스의 지도](1513), [빈란드 지도](1440), [도팽 지도](1545) 등은 모두 콜럼버스와 마젤란을 비롯해 유럽인이 아무런 지도도 없이 항해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아메리카 대륙과 남극대륙 등 세계의 지형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유럽과 이슬람 세계에서 제작된 수많은 지도를 살펴보면, 재미있게도 15세기에 거의 동시에 지도의 방향 배치가 바뀌고 지도의 제작 수준도 갑자기 크게 향상되었다.
저자는 시선을 중국으로 돌려, 요나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장세경의 [채색성상도](1116)와 장광정의 [세계지도](1093)에 주목했다. 장세경의 채색 성상도는 중국의 전통적인 28개 별자리와 서양의 황도십이궁이 대응되어 있다. 이는 중세시대 천문학 분야에서 동·서양의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묘실 꼭대기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장광정의 [세계지도]에는 오늘날의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포함한 5대륙의 윤곽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당시의 중국은 세계의 지형을 한 폭에 표현하는 방법과 지도투영법을 고안했음을 의미한다. 세계 지형의 윤곽을 장광정의 [세계지도]와 매우 유사하게 그린 지도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천하전도](1722)인데, 이 지도에 표현된 지리 정보는 13세기의 용어로 표기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수에즈운하(기원전 5~8세기)가 표시되어 있으며 지중해와 페르시아 만은 잘못 그려졌다. 다시 말하면 1722년에 만들어진 [천하전도]에 표기된 13세기의 지명, 세계일주 항로, 그 외 지도에서 보이는 오류 등으로 볼 때 지도에 표시된 5대륙의 윤곽은 훨씬 옛 시기에 기원하며, 지도에 채택된 투영법 역시 매우 오래된 것을 암시한다.

 

기원전에 이미 [주비산경]에서 지도투영 개념 등장
지도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술 문제는 공 모양의 지표면을 평면에 표현하는 투영법이다. 우리는 메르카토르도법(1580)을 세계 최초의 투영법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기원전의 문헌인 [주비산경]에 지도투영 개념이 등장했고, 3세기경 서진시대의 인물인 배수가 ‘제도육체制圖六體’로 투영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그 후 송나라 때의 [화이도], 심괄의 [수령도守令圖]가 모두 투영법을 채택하여 지도를 제작했다. 1418년의 [천하제번식공도]와 1093년 장광정의 [세계지도], 원나라의 주사본이 1320년에 제작한 [여지도] 역시 투영법을 채택했다. [여지도]에 대한 기록은 안타깝게도 명나라 때의 사료에서 간접적으로 전해지는데, 세계를 동반구와 서반구로 나눈 세계지도로 추정된다. 나홍선은 [여지도]의 제작 방법을 계승·발전시켜 1541년에 지도집인 [광여도廣輿圖]를 제작했다. 여기에 수록된 [서남해이총도西南海夷總圖]와 동일한 출처로 추정되는 명나라 말기의 [서양해이제도西洋海夷諸圖]는 흥미롭게도 대륙의 윤곽이 [피리 레이스의 지도](1513)와 유사하다. 다시 말하면 [피리레이스의 지도]가 어쩌면 1320년에 제작된 원나라의 [여지도]를 참고하여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원나라 지리학자, 육지와 바다 7:3 비율 알고 있었다
이 책에 인용된 원나라의 주요한 문헌인 [대원일통지](대부분 전해지지 않음), [진랍풍토기] [도이지략] [원사]를 보면, 원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교역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원나라 때 만들어진 지구의가 현대의 지구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는데, 이는 원나라 때 과학자가 지구상의 육지와 바다의 면적 비율이 7:3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동반구와 서반구로 나눈 주사본의 세계지도, [원사]에 기록된 지구의의 육지와 해양의 면적 비율, 그리고 원나라 때의 다른 사료를 통해서도 원나라 사람들이 전 지구를 무대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전 세계를 표현한 원나라의 지리학과 지도는 명나라에 전해졌다. 정화의 대원정이 그것을 말해준다. 정화의 대원정을 설명하는 공식 자료는 현재 전해지지 않아 항해를 실시한 배경, 대원정의 범위 등은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정화 대원정의 종교적 이유 밝혀
저자가 정화의 대원정이 추진된 이유로 영락제의 정통성 확립과 황권 강화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문화에 기반을 둔 종교적인 목적이 있었다고 지적한 대목은 흥미롭다. [천하제번식공도]가 세계 종교에 관한 정보를 주석으로 붙인 것을 보면 정화의 종교적 사명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화는 어떤 지도를 보면서 세계를 항해했을까? 영락제는 대원정을 위해 대대적인 지리 정보 수집 작업을 지시했다고 한다. 1389년의 [대명혼일도], 1402년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역시 대원정에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명혼일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천하제번식공도]가 모두 1093년의 [장광정 세계지도]와 비슷한 윤곽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정화의 대원정에 관해 개인이 쓴 문헌인 [영애승람] [성차승람] [서양번국지] 등은 “홀로모사忽魯謨斯”라는 지명을 제각각 설명하고 있다.

 

정화 대함대, 동남아를 넘어 남아메리카까지 세계일주
저자는 그 원인을 페르시아 만이 표시되지 않은 당시의 세계지도를 참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정화가 과연 어디까지 항해했는지에 대해 [영외대답]이 답해준다고 했다. 특히 [영외대답]에 등장하는 “목란피”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매우 흥미롭다. 이에 따르면 목란피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파타고니아 고원Patagonia Plateau과 남아메리카의 팜파스 초원Pampas Steppe 일대이다. 즉 정화가 세계일주를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하나 있다. 즉 지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총체라는 사실이다. 선박 제조, 실지 탐사, 방향 판단, 천문학, 투영법, 경위도 계산, 고등 수학 등 여러 형태의 과학기술이 종합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14~16세기 세계지도, 경위도 측정에서 중국 고지도 참조
14세기에서 16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등장한 세계지도를 보면, 이들 지도에 표시된 세계의 범위와 대륙의 윤곽은 높은 과학기술 수준을 반영한다. 특히 경위도 측정이 정확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이때 유럽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이러한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즉 유럽인이 직접 측량하여 지도를 그린 것이 아니라 다른 고지도를 참고했으며, 당시에 유럽인이 참고했던 지도를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중국의 지도학자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당나라와 송나라, 몽골 제국을 드나들며 활약했던 아랍인을 비롯한 수많은 외국인들, 1245년에 시작된 유럽 출신 선교사들의 방문과 마르코 폴로를 비롯한 수많은 상인의 손을 거쳐 옛 중국의 과학기술이 아랍세계와 유럽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유럽으로 건너간 것은 화약, 나침반, 종이뿐만이 아니었다.

 

[곤여만국전도] [황여전람도] 등은 서양 과학기술 산물 아니다
저자는 또 동서양의 문화 교류에 따른 지리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았다. 현대 지리학이 중국에 뿌리내리게 된 계기는 마테오 리치이고, 그가 1602년에 제작한 [곤여만국전도]가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는 [곤여만국전도]에 표기된 지리 정보는 중국을 중심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중국의 고지도와 지리서를 많이 참고했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지도역사학에서 매우 중요한 마르티니의 [중국지도첩中國新圖誌]은 청나라의 토지대장인 어린도책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럽 출신의 선교사들이 서양의 선진 지리학을 중국에 전수하고 서양의 경위도 측정법을 중국이 채택했다고 하는 [황여전람도]에 대해, 저자는 사료를 근거로 들어 중국의 천문학자와 지리학자가 주축을 이루어 지도를 제작했고, 유럽에서 온 선교사는 보조 역할만 맡았으며 중국의 옛 지도가 참고가 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오히려 유럽에서 온 선교사들이 유럽으로 돌아갈 때 중국의지도와 그 밖의 지리 정보를 가지고 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18세기 초만 해도 유럽의 지리학자는 분명히 경도를 어떻게 정확하게 측정해야 할지 몰랐다는 것이다.

 

15세기 말 이후 중국 과학기술 쇠퇴 해명
그리고 저자는 중국 전통 수학을 포함해 과학기술의 발전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15세기 말부터 중국의 과학기술이 쇠퇴한 배경을 설명했다. 기원전 2세기부터 7세기까지 중국은 수학 분야에서 엄청난 성취를 이루어 뛰어난 수학자를 다수 배출하는 한편 수많은 수학 저서를 남겼다. 당나라 초기에 학자들은 황제의 명에 따라 과거의 수학 저서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송나라에 이르면 수학의 연구와 교육이 더욱 중시되어 정부 기구 안에 산학관을 계속 두었을 뿐만 아니라 관리의 수도 대폭 확대했다. 민간 차원에서도 수학 연구가 활기를 띠었다.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송나라에 이어 원나라에서도 중국의 전통 수학이 계속 발전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송나라 시기는 중국의 전통 천문학의 전성기였다. 정부 차원에서 천문학을 중시하여 천문 관측을 전담하는 기관인 ‘천문원天文院’이 설치되었으며 민간에서도 천문 연구가 활발했다. 송나라의 과학자인 소송蘇頌이 쓴 [신의상법요新儀像法要]에 따르면, 11세기의 송나라 때 여러 가지 투영법이 만들어졌고 경도와 위도를 측정하는 기술과 자료를 확보했다. 이른바 ‘메르카토르 투영법’이 중국에서 출현한 시기는 메르카토르가 태어난 해보다 400여 년이나 앞서서 천문학과 지도학에서 역사학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도교에서 유교로, 외부에서 내부로 
한편 저자는 당송시대에 찬란하게 꽃피웠던 중국의 과학기술이 15세기 말부터 정체된 배경으로 도교 철학의 변화를 지적했다. 화약 제작법, 나침반에 관한 기록이 도교의 저술에 등장한다. 종이 발명가인 채륜 역시 도교에 심취한 인물이었다. 또 수많은 중국의 과학자와 기술자 역시 도사이거나 도교를 숭배한 사람이었다. 과학기술이 발전했던 당송시대에는 도교가 크게 숭상되었다. 그런데 원나라에 들어와서 종교가 통치 수단으로 사용되어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때부터 도교에 유교와 불교가 융합되었고 유교가 번성했다. 그 후 학자들의 관심이 객관적인 자연세계에서 개인의 내면세계로 옮아가게 되었고, 그 결과 과학기술이 쇠퇴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유교 철학의 핵심 내용과 폐해를 지적하는 한편, 저자는 자연주의 철학의 핵심인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따르는 노자 철학이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며 책을 마무리했다.
이 책을 번역한 이재훈 선생은 “지도의 근원에 관한 한 편의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동양사학을 전공한 역자는 “물론 저자가 제시한 증거가 믿기 어려운 부분도 간혹 있지만, 중세시대에 옛 중국의 지리 자료가 아랍 세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진 것에 대해 수많은 정황 증거를 의미 있게 엮어가는 작업이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옛 중국의 과학자와 지리학자가 실제로 탐사하고 측량하여 제작한 세계지도가 콜럼버스, 마젤란 등 유럽의 항해가들에게 탐험할 방향을 가르쳐주었고, 이를 계기로 현대 문명이 태동되었다고 하는 저자의 주장이 공허하지만은 않다. 이제 이런 공들인 추측과 추정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서양지리학 전문가의 꼼꼼한 검증과 해제
“중국 고지도로 대안의 역사를 제시하다”

글항아리 편집진은 [고지도의 비밀]이 제기하는 여러 가지 주장과 그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문헌 및 발굴 자료가 신빙성이 높고 저자의 논지 전개방식이 매우 치밀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다만, 저자가 중국인이라는 점, 중화문명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는 점, 동서양 지리학을 골고루 활용하지만 혹시라도 고대 지리학의 과학성과 정합성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부분은 없는지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감수와 해제를 맡은 정인철 부산대 교수(지리교육과)는 서양 고지도에 대해 많은 논문을 발표한 이 분야 전문가이면서 이를 바탕으로 동양권 고지도에 대한 관심도 갖고 있는 연구자이다. 정 교수는 아래와 같은 요지의 해제를 통해 이 책의 학문적 의의, 인문학으로서의 지리학에 대해 기여하는 바와 조심해서 읽어나갈 부분 등을 명확히 제시해주었다.

 

이 책의 저자 덕분에 개빈 멘지스의 책이 가능했다 
고지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의 초대장이다. 고지도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으며, 과거의 역사를 다시 해석해보기도 한다. 근래에 지도를 통해 현재의 세계사를 수정해보려는 움직임이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고대 해양왕의 지도]로 유명한 찰스 햅굿과[1421-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의 저자 개빈 멘지스가 이 분야의 선두 주자이다. 이들은 지도를 통해 아메리카와 남극대륙의 발견, 정화의 원정 등에 대한 현재 주류 역사학계의 기존 이론에 대해 도전장을 던졌다. 그런데 여기에 중국 전통지리 사상과 중국 고지도를 무기 삼아 류강劉鋼이 새롭게 합류한다. 류강이 보유한 1418년 [천하제번식공도]의 모사 지도는 멘지스의 저서에 소개된 바 있다. 멘지스가 저서에 이 지도를 처음 소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 상하이 둥타이루東臺路 고서점에서 지도를 최초로 발견해 그에게 제공한 이 책의 저자 류강 덕분이다. 류강은 책에서 이 지도가 진본을 모사한 것이라는 점을 다양한 논거를 들어 주장한다. 만일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15세기의 세계사는 완전히 새로 쓰여져야 할 것이다.

 

[천하제번식공도]와 [성차승람] 관계 신빙성 높아
일반적인 역사와 마찬가지로 지도의 역사에서도 어떤 가설이 정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보완적인 자료의 확보가 필요하다. 이 지도의 사실 여부를 여기서 단정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이 책의 가치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1418년의 [천하제번식공도]를 1763년에 막역동이 모사한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1763년에는 이미 남극과 아시아 북동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탐사가 거의 완료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세계지도는 오늘날과 유사한 형태를 띠었다. 그런데 이 지도에 반영된 세계의 모습은 1418년에 그려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정확하다. 그간 학계에서는 1389년 중국의 [대명혼일도]와 우리나라의 1402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아프리카 대륙이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원나라 시대에 동서 간 문화 교류가 이뤄져 방대한 지리정보 수집이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당시는 희망봉이 발견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유럽의 지도에는 희망봉이 표시되지 않았다. 결국 중국이 직접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명혼일도]를 그렸다는 것인데, 과연 중국의 지도 수준이 아프리카 해안을 표시할 정도인가에 대한 의문은 많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천하제번식공도]의 출처를 15세기 중반에 저술된 비신費信의 [성차승람]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남아메리카 윤곽 정확한데 비해, 일본과 한국은 조악해
그리고 베링해, 사할린, 오스트레일리아, 남극 등 18세기까지도 세계 지도학계의 관심거리가 되었던 지역의 윤곽이 매우 상세한 것은 [천하제번식공도]를 모사한 이 지도가 그만큼 많은 지역의 자료를 참조했거나 아니면 직접 탐사를 했음을 의미한다. 지도의 형태가 정확하다는 것은 또한 경도와 위도의 측정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특별히 놀라운 것은 남북 아메리카의 윤곽이다. 남아메리카는 유럽의 16세기 초반 지도, 그리고 북아메리카는 유럽의 18세기 초반 지도를 연상시킬 정도로 형태가 정확하다. 그러나 중국의 지척에 있었던 조선이나 일본, 오키나와의 위치와 형태는 왜곡의 정도가 매우 심하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그려진 조선의 형태와 비교해볼 때 조선에 대한 묘사는 매우 조악하다.

 

낙읍중앙설, 원중첩 투영법에 대한 음양조화설 등 흥미로움
두 번째, 이 지도가 진본임을 주장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중국의 전통사상에 대한 소개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지도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수평중심이 모두 북위 35도 부근을 지난다는 낙읍중앙설은 향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연구를 위해서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교차하는 두 개의 원이 약간 중첩되도록 한 투영법 선택을 음양의 조화로 해석한 것 역시 매우 흥미롭다. 유럽에는 양반구형의 세계지도는 많아도 이렇게 원을 겹치게 표현한 지도는 없다. 그리고 중국에서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북쪽을 위에 둔 지도를 제물로 사용한 내용 역시 매우 흥미롭다. 고대 중국에서는 음계와 양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지도가 했다는 것은 고대의 지도 해석에 참고가 될 수 있다.

 

포르톨라노 해도에 나타난 직선 재해석 주목돼 
셋째, 서양 고지도와 중국 지도를 연관시켜 해석함으로써 콜럼버스 이전의 시대에 대한 대안적인 역사를 제안하였다. 그는 성상도星象圖(별자리 지도)를 토대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400년 전에 중국인이 이미 아메리카 대륙을 측량하였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앞으로 저자가 많은 반론이나 이견에 직면하겠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고분의 아메리카 지도는 매우 흥미로운 사례로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넷째, 포르톨라노 해도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포르톨라노의 직선이 기존의 이론인, 방향을 지시하는 ‘풍향선’이나 항로를 나타내는 ‘항정선’이 아니라 별자리의 고저 변화에 따라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표시한 측량선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 대해서는 학계의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매우 흥미로운 가설임에는 틀림없다.

 

지도의 종교적 세계관 간과, 주관적 사료인용 등 아쉬움도 있어
이 책의 내용은 거대 담론의 성격을 지닌다. ‘지리상의 발견’으로 대변되는 세계사를 완전히 바꾸어놓기 위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 논거에는 비약도 상당히 있어 보인다. 이제 이 책의 성과와는 별도로 이러한 부분들을 직시하고 비판적으로 읽기 위한 몇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지도가 무엇이냐는 지도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다. 지도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지도가 단순한 ‘공간의 과학적 표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지도에는 저자가 있으며 저자의 의도가 지도의 표현에 내재되어 있다. 특별히 세계지도는 저자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접하는 메르카토르 투영법의 세계지도는 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 지도는 유럽과 같은 중위도 이상에 위치한 국가들의 면적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그려 세계에서 차지하는 유럽, 미국, 러시아의 면적을 실제보다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고지도의 경우는 이러한 세계관에 종교가 결합되어 있다. 특히 서양 중세의 세계지도는 기독교 세계관의 표출로 [창세기]의 ‘에덴동산’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종말의 민족인 ‘곡과 마곡Gog and Magog’을 표시하여 시간의 시작과 끝을 공간을 표현하는 지도에 나타낸다. 그리고 그리스의 전통이 지도에 결합되어 지브롤터해협에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결국 지도의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위치하고 동쪽에는 에덴동산을 그렸다.
이 지도들에 나타나는 지명과 대륙의 윤곽을 오늘날의 지도와 비교하여 보면 도저히 정확성을 논할 여지조차 없음을 알게 된다. 에덴동산을 그린 지도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누가 지도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당시에는 엄연한 지도였고 종교적 또는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류강은 이러한 지도를 근거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예를 들어 1415년에 제작된 [비르가 지도]에 나타나는 남아메리카 또는 오스트레일리아 형상이 중국의 지도를 인용하여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르가 지도]의 아프리카 남쪽에는 에덴동산이 크게 그려져 있다. [비르가 지도]의 주된 주제는 부활절 계산이다. 따라서 종교적 목적을 지닌 지도에 부분적으로 표현된 형상, 그것도 남아메리카 대륙인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인지도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형상을 가지고 중국 지도의 영향을 논하는 것은 비약이다.
둘째, 서양의 지도 제작기술의 낙후성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다. 필자는 18세기까지도 유럽은 경위도 측량과 기술이 없었으며, 세계지도를 제작할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7세기에는 이미 삼각측량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정확한 경위도 측정 역시 가능하였다. 예를 들어 17세기 말에 제작된 프랑스의 카시니Cassini 지도의 경우는 후일 프랑스 국립지리원의 조사 결과 오차 범위가 70미터에서 500미터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유럽에서 투영법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주장 역시 잘못된 것이다. 일부 투영법은 이미 기원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투영법이 경도와 위도를 호도법으로 변환하는 Plate Carree(plane chart) 투영법이다. 이 투영법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에라토스테네스(기원전 276~194)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자들도 일부 지점의 경위도 좌표를 엑셀이나 넥셀과 같은 프로그램에 입력한 다음 이를 라디안 값으로 변환하여 경도를 가로축, 위도를 세로축에 산포도 형식의 그래프로 표시해본다면 이 투영법이 쉬우면서도 대륙의 형태를 얼마나 정확히 표현하는지 알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3개의 투영법 역시 지도학 교과서에 실려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15세기와 16세기에는 많은 투영법들이 유럽에서 발표되었다.
셋째, 저자는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때로 학문적 입장보다는 주관적인 견지에서 자료를 인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트제뮐러의 세계지도]와 [산해여지전도]의 남아메리카 대륙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톰슨 박사의 주장이 담긴 책은 학술서가 아니다. 본문에 실린 도판80에서 두 지도에서의 남아메리카 대륙의 형태가 비슷하다는 주장은 매우 주관적인 것임을 알수 있다.
넷째, 류강은 이 책에서 모든 지도는 알려진 정보에 근거하여 그려졌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남극대륙을 그린 서양 고지도들의 남극 표현에 대해 이미 남극을 탐사한 자료 또는 남극을 이미 그린 지도를 참조하여 그렸다고 본다. 그러나 서양 근대 지도의 제작자들 역시 반드시 확인된 사실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에 의해 지형을 표시한 경우도 많았다. 서양 고지도에 표현된 남극의 경우 지구가 자전을 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균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남반구에 큰 대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남극대륙을 그렸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러한 추정에 의한 지도는 18세기 후반까지도 발견된다. 따라서 남극을 그렸다고 남극에 대한 탐사 정보를 가지고 그렸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역사가는 실제로 일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기록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때론 사료가 뒷받침되더라도 역사를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이 책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서구에 의한 지리상의 대발견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류강의 가설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이 이루어진다면, 학문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 책은 너무나 많은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준다. 중국의 지도 및 천문학, 중국인의 세계관 등 다른 책에서 발견할 수 없는 내용들을 원문과 더불어 제시하기 때문에 학문적으로도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저자의 상상력과 탐구 능력, 그리고 동서양의 고지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놀랍다. 비록 저자의 주장에 대한 학문적인 검증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지도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향후 지도학계에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저서라 할 수 있다.

목차

제1부 신비로운 고지도 

1장 「천하제번식공도天下諸番識貢圖」
우연히 「천하제번식공도」의 모사본을 만나다 | 「천하제번식공도」 모사본의 수수께끼 | 「천하제번식공도」모사본을 세상에 내놓다

2장 근대 이전 유럽에서 제작된 세계지도에 대한 의혹
「발트제뮐러의 세계지도」의 문제점 | 1489년에 제작된 「마르텔루스의 지도」에 표시된 남아메리카 대륙의 수계水系 | 「비르가의 지도」와 「마우로의 지도」 | 「피리 레이스의 지도」에 표시된 남극대륙 | 「빈란드 지도」의 의문점 | 제임스 쿡 선장과 함께 있었던 「도팽 지도」 | 상호 관련된 의문점들

3장 북쪽을 최초로 지도에서 위쪽에 둔 사람은 누구일까?
동쪽을 위쪽에 둔 근대 이전의 세계지도 | 남쪽을 위쪽에 둔 근대 이전의 세계지도 | 중국 고지도의 걸작들 | “상하가 서로 화합하여 하늘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지도 | 중국 고지도의 방위 규칙 | 북쪽을 위쪽에 둔 지도에서 파생되는 문제점

제2부 중국의 역사적 유산

4장 고분에서 발견된 아메리카 지도
고분에 그려진 성상도 | 1093년의 세계지도 | 「장광정 세계지도」와 비슷한 「천하전도」 | ‘비대칭투영법’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 「산해여지전도」의 ‘비대칭투영법’ | 비대칭투영법과 마르틴 발트제뮐러

5장 12세기에 대서양을 횡단한 상선
당나라 사람들의 세계 | 대서양을 횡단한 ‘목란피木蘭皮’ 상선

6장 중국의 전통 지도투영법
중국의 전통 우주관 | 「주비산경」에 나타난 지도투영 개념 | 고대 중국의 지도투영법의 기원 | 배수의 ‘제도육체’ | 가탐의 「해내화이도」 | 송나라 때의 「화이도」 | 심괄의 「수령도」 | 중국 전통 투영도법의 몰락

7장 동서반구로 구분한 세계지도의 비밀을 풀다
주사본의 「여지도」가 망라하는 범위 | 「여지도」의 ‘비밀’이 풀리다 | 나홍선의 「광여도」 | 「광여도」에 표시된 남아메리카 대륙 | 주사본의 「여지도」가 남긴 흔적 | 원나라 사람의 세계 견문

8장 정화의 대원정의 밀명
영락제의 찬탈 | 영락제의 속내 | 정화가 가지고 있던 지도

9장 세계 각지의 측량, 지도 제작, 과학기술 문명
근대 이전 중국의 항해 | 근대 이전 중국의 천문 관측 | 중국의 전통 수학 | 경위도의 측정 | 동학서진東學西進

제3부 동·서양의 교류

10장 중세 시대 동·서양 교류의 유산- 마르코 폴로의 북아메리카 지도
중세 시대의 두 강대국 | 동학서진의 길을 휩쓴 몽골족 기마병 | 마르코 폴로에게서 전해진 북아메리카 지도

11장 유럽 고지도에 나타난 중국적 특색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에 나타난 동양의 흔적 | 「빈란드 지도」의 베일을 걷어내기 | 「비르가의 지도」와 「마우로의 지도」에 나타난 중국의 ‘유전자’ | 옛 남극 탐험자의 흔적을 찾아서

12장 포르톨라노 해도의 불가사의한 진실
포르톨라노 해도의 신비로운 면모 | 포르톨라노 해도에 나타난 난제 | 포르톨라노 해도의 기원을 찾아서 | 나침반, 나반 그리고 대지 측량 | 유럽의 지도학계가 북쪽을 위쪽에 두는 것을 받아들인 이유

13장 유럽 선교사와 중국의 고지도
『마테오리치 중국찰기』와 「곤여만국전도」 | 마르티니의 『중국지도첩』 | 「황여전람도」

제4부 역사의 본보기

14장 조지프 니덤의 난제: 중국의 근대 과학은 왜 낙후되었는가?
중국 전통 과학기술의 발전 원동력-도교 철학 | 중국의 전통 과학기술이 쇠퇴한 주요 원인

15장 역사의 거울

부록 / 해제 / 저자후기 / 역자후기 / 찾아보기

미리보기

내 소장품 가운데 일부 고지도는 역사의 교과서가 되어주기도 했다. 지도 위에 보이는 지역의 윤곽들, 각 도시의 분포, 문자로 쓰인 주석은 수많은 사실을 담고 있었다. 어떤 고지도는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였다. 지도 속에 서정시의 운율처럼 펼쳐진 산과 강은 마치 큰 예술가가 남긴 필획같이 살아 숨 쉬는 듯했다. _15~16쪽

 

지도의 주석을 둘러싸고 있는 붉은 선은 주사 먹으로 그린 것이다. 청나라 때 사용된 주사 먹은 오늘날에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200년도 더 전에 종이에 휘필된 주사의 붉은색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오래된 주사로 고지에 그린 붉은색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원나라 사람인 하문언이 『도회보감』에서 “옛사람이 그림을 그린 먹의 색은 모두 명주실에 배어들지만 위조된 것은 겉보기에는 같아 보여도 분묵이 흰 비단에 떠버린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붉은 테두리 선의 주사 먹 색깔이 ‘모두 명주실에 잘 배어’ 있는 것을 보면, 옛사람이 남긴 흔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지도에서 세 귀퉁에 찍힌 붉은 김장인[수집가가 감식 수장한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서화에 찍는 도장]이 ‘하얀 명주에 떠 있는 것’을 보면 근현대에 들어와 찎힌 것임을 알 수 있다. _19~22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류강劉鋼

1983년 베이징대학교 법학과 졸업. 현재 변호사이자 수집가이며 지도역사학 연구가로 활동 중이다. 『지도 포럼Map Forum』과 『측량학 연구E-Perimetron』 등 지도역사학 간행물에 논문을 발표했고, 여러 차례 VIP 자격으로 국내 및 국제 세미나에서 강연했다. 2006년 1월 저자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천하전여총도」(「천하제번식공도」의 모사본)를 공개해 관련 분야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코노미스트』 『타임』 『뉴욕타임스』, CNN, BBC, 로이터, AFP 등 수십여 곳의 해외 언론이 전 세계로 보도했다. 홍콩 봉황위성TV는 <문화대관원文化大觀園> 프로그램에서 특집 인터뷰를 편성하여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2009년 9월 중국의 국영방송인 CCTV에서는 <고지도의 비밀을 찾아서固圖秘密>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세 편 방영했다. 그 후 저자와 함께 「천하전여총도」가 재차 많은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고지도의 비밀>이 있다.

 

옮긴이

이재훈

고려대 동양사학과와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중국어 통역과 번역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 《하버드 정치경제학》《고지도의 비밀》《공자, 최후의 20년》《진시황 평전》《노자, 인생을 말하다》《13억의 충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