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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장들의 녹음현장 카라얀, 굴드, 음반 프로듀서
  • 지은이 | 이사카 히로시
  • 옮긴이 | 최연희
  • 발행일 | 2010년 06월 22일
  • 쪽   수 | 320p
  • 책   값 | 16,000 원
  • 판   형 | 140*205
  • ISBN  | 9788993905298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유럽통 프로듀서가 들려주는 클래식 녹음현장 40년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한 명녹음 명음반 명연주!

연주자, 지휘자, 레코딩 프로듀서―
음반의 완성도는 누구 손에 달려 있는가

레코드를 프로듀싱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프로듀서는 무엇보다도 음악 자체를 다루기 때문에
연주해석은 물론이고 연주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그 연주자의 가능성까지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또 녹음에 임해서는 최종적으로 녹음할 음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엔지니어에게
지시할 수 있도록 미리 결정해둬야 하며, 그것을 엔지니어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때로는 마이크 세팅과
관련한 아이디어까지 내며 도와야 한다. 그리고 일단 녹음에 들어가면, 굴드 같은 문제아라도
기분 좋게 이끌며 아무런 트러블 없이 테이크를 거듭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본문 중에서)

 

40년에 걸친 음반제작 현장의 경험담-거장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 책은 일본인으로서는 유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프로듀서가 쓴 클래식 녹음현장 이야기이자 일종의 프로듀서론이다. 지은이 이사카 히로시는 그동안 베를린과 빈을 거점 삼아 활동해온 음반 프로듀서로, 베를린 필의 카를 라이스터(클라리넷), 외르크 바우만(첼로), 클라우스 슈톨(콘트라베이스) 등의 아티스트들과 손잡고 여러 명반을 선보여왔다. 현재는 ‘카메라타 토쿄’의 대표로서 음반제작과 콘서트 등의 소프트 산업을 통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www.camerata.co.jp).
음반 프로듀서라는 직업에 관한 지은이의 생각은 예컨대 “프로듀서는 ‘지휘자 뒤에서 지휘자에게 지시를 하는 존재(Conductor behind the conductor)’여야 한다”는 언급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가령 오케스트라와 녹음을 할 때는 프로듀서가 지휘자 이상으로 음악적으로나 시간 배분 면에서 두루 리더십을 발휘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세션 레코딩을 진행할 수 없고 좀 더 높은 차원의 연주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지금까지 40년에 걸친 음반제작 현장의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특별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글렌 굴드 등 한 시대를 주도한 아티스트들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레코딩 철학이 어떻게 해서 형성되었는지, 그들과 음반 프로듀서들은 어떤 관계 속에서 열정과 애증의 드라마를 펼쳐왔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은 한 장의 음반이 출시되기까지 연주자, 지휘자, 프로듀서, 녹음기술진 등의 그룹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생생하게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릴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CD 한 장을 접하더라도 연주가나 지휘자뿐만 아니라 프로듀서의 면면에도 눈길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카라얀, 최고·최악의 녹음과 그를 둘러싼 에피소드들 
먼저 이 책은 ‘음반 프로듀서로서의 눈으로 본 최고의 거장’ 카라얀을 거론하면서 시작된다. 카라얀이야말로 음반 덕에 널리 알려졌고, 그의 작업의 본령은 레코딩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세기를 통틀어 ‘음악 매체의 총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카라얀이 평생에 걸쳐 네 번 녹음했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비롯해 1970년대를 넘어가면서부터 변질된 그의 녹음세계까지, 프로듀서의 눈으로 그의 녹음활동을 냉정히 재검토하고 있다. 그가 보기엔 가령 베토벤 교향곡 전집 중 모노럴 녹음인 필하모니아와 작업한 최초의 음반이 최고의 작품이다. 고전파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며 템포나 아티큘레이션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베를린 필과의 녹음은 오케스트라의 막강함과 앙상블 능력을 과시하는 재미에 빠져서인지 템포가 소홀했고 “음악은 마치 돌진하는 증기기관차처럼 치닫는” 대목이 많다.
예민한 음악 애호가라면 벌써 눈치 챘겠지만, 왜 이렇게 같은 지휘자인데도 연주의 질에 차이가 나는 걸까? 저자는 문제 원인을 ‘음반 프로듀서’에서 찾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최고의 음반 뒤에는 프로듀서 레그가 있었다. 카라얀은 레그와 녹음할 때면 언제나 남들이 작업한 레코드를 가져와 스튜디오에서 듣고 지휘대로 돌아가길 반복했다고 한다. 베토벤 교향곡 녹음 때는 토스카니니의 레코드를 가져와 지휘대에 서기 직전까지 들었다. 레그는 그것을 알고 토스카니니 이상으로 템포가 빨라지지 않도록 늘 신경 써서 카라얀을 제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로 초부터 녹음예술을 중시하던 카라얀의 태도는 ‘변질’되었다. 카라얀은 녹음의 미세한 고려사항들을 무시한 채 수정 없이 한 번에 끝내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건 카라얀 입장에선 “음악의 흐름을 중시한다”는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겠지만, 레코딩의 완벽을 기하려는 프로듀서나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완벽하지 못한 음반을 시장에 내놓게 되는 것이다.
사실 녹음은 끝없는 부분녹음과 수정으로 완성되는 예술 장르로, 콘서트홀에서의 음악과 차별되는 지점은 바로 ‘완벽’을 기한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좀더 많은 사람의 감성과 지혜가 모여 객관성을 확보하고, 듣는 사람을 납득시킬 만큼 가다듬어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프로듀서론인데, “카라얀의 비극은 자신의 결과물은 모든 사람이 좋아할 것이고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될 거라고 자만한 데에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베를린필과 프로듀서 글로츠와의 레코딩을 들으면서 저자는 “카라얀 녹음예술에서의 최대 위기를 감지하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음반사가 레코딩의 주도권을 카라얀에게 빼앗겨 그의 뜻대로만 작업이 이뤄지는 게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레코딩 작업에서 어마어마한 예산을 대는 쪽은 음반사이다. 음반은 예술이면서 동시에 엄연한 비즈니스이므로, 경제적인 면에서든 예술적인 면에서든 음반사가 작업을 진두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프로듀서 글로츠는 카라얀에게 고용된 듯, 아티스트의 종복이 되었다. 이는 카라얀의 가장 큰 장점이 새로운 매체(녹음기술)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잘 활용했던 데 있었으면서도, 말년으로 갈수록 모순적이게도 편집을 피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서 드러난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한번은 녹음을 할 때 완벽하지 않아 프로듀서 글로츠가 카라얀에게 부분녹음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를 카라얀이 거절하자, 글로츠는 결국 부지휘자에게 부분녹음을 지휘하도록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저자는 카라얀은 분명 위대한 지휘자였지만,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보는 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식대로만 처리하려 들었다”고 평한다. 더군다나 카라얀의 경우는 순수한 예술상의 판단이었다기보다는 언제나 녹음 작업에 ‘돈’ 문제가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판을 비껴나갈 수 없을 것이다.

 

첼리비다케, 녹음을 거절한 진짜 이유 
세르지우 첼리비다케는 음반녹음을 완강히 거절한 것으로 유명한 지휘자다. 2차 대전 후 매체 전성의 시대에 한쪽에서는 카라얀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녹음의 대히트를 이어간 반면, 첼리비다케는 시대에 등을 돌리기라도 하듯 애써 라이브 연주에 매달리며 일체의 녹음을 거절한다고 선언했다. 그로 인해 첼리비다케는 ‘환상의 지휘자’로 부각되며 열광적이고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몇 안 되는 마에스트로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콘서트라는 살아 있는 음악의 아우라를 지키기 위해 시대에 저항한 신념의 주인공이었을까?
음반 프로듀서인 저자의 눈에 비친 거장의 진실은 사뭇 다르다. 카라얀과 붙어 베를린 필 수석지휘자의 자리를 빼앗겼고, 또 레코딩 때 그에게 주어진 ‘개런티’가 너무 형편없는 수준이어서 이후 음반녹음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사실 첼리비다케가 스스로 음반 녹음을 꺼린 이유를 명쾌하게 토로한 적은 없다. 저자는 “첼리비다케는 냉정한 객관성을 중시하면서 울림에 더욱 신경을 쓰는 방식으로 팀을 이끌어나갔기에, 레코딩 지휘자로서 작업을 했다면 대단히 훌륭한 녹음을 남겼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연주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텍스처(서법, 살결)가 흥미롭게 드러나, 마침내 음악은 거대한 클라이맥스와 침묵으로 인도된다. 그러나 그는 녹음을 거부했다. 그는 녹음의 전문영역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직 방송국에서 와서 촬영하는 것만 허락했는데, 그는 방송국의 톤마이스터(음향감독)와도 좀처럼 의견을 나누지 않았다. 이런 그를 두고 저자는 “영화감독이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장면을 배우와는 아무런 의사소통도 없이 촬영하고 있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라고 말한다. 사실 그가 활동하던 무렵의 녹음 기술은 여전히 빈약한 모노럴 녹음이었고, 콘서트홀에서의 연주에 버금갈 정도의 매력을 갖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저자가 보기엔 “첼리비다케의 생각은 그 시대로부터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것이다.” 그는 그가 존경하는 스승인 푸르트벵글러가 레코딩 작업을 하지 않은 것을 본받아 사람들로 하여금 첼리비다케 또한 그것을 전통으로 이어받는 것처럼 여겨지게 행동했다.

 

굴드, 스튜디오에 틀어박힌 천재 
음반 프로듀서의 입장에 서면 글렌 굴드는 첼리비다케와 정확하게 대척점에 위치한 음악가다. 고고한 피아니스트 굴드는 1964년에 “일체의 콘서트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숨을 거둘 때까지 오직 음반녹음을 통해서만 활동했다. 연주뿐만 아니라 편집 작업까지 직접 참가해 녹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연주들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했다. 그런 굴드에게 과연 음반 프로듀서는 어떤 존재였을까?
굴드는 테이프 편집으로 시공을 초월한 완전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음반 작업의 이점을 실감했다. 보통 레코딩은 녹음되기까지 프로듀서와 아티스트가 거듭해서 템포, 밸런스, 아티큘레이션의 세부까지 들어보고 주의 깊게 체크하며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재녹음은 물론이고, 미스 터치나 왼손·오른손의 균형과 같은 세부 사항을 수정하는 데는 부분녹음이라는 수단을 활용하는 이점이 있다. 이렇게 해서 일종의 ‘몽타주 예술’이 탄생하는 것인데, 세부에 얽매이기 시작하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작업이 될 만큼 한 음을 잇는 것조차 가능한 세계가 바로 음반예술의 세계인 것이다.
콘서트나 청중 앞에서의 연주보다는 음악의 완전성에 몰두했던 굴드였기에 그의 음반들은 오늘날 다른 음반들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인기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프로듀서를 “울게 만드는”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굴드 음반을 들어본 이라면 그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흔히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프로듀서나 제작자 입장에서는 곤욕스러운 소음인데, 굴드는 ‘낮게 흥얼거리는 소리’로 테이프에 노이즈를 만들었고, 프로듀서는 그걸 제지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굴드에게는 ‘수다스러움’도 있었다. 그는 피아노에서 손가락을 떼기도 전에 “이번 것은 좋았어!”

“역시 저 전개부는 시원찮아” 등의 말을 내뱉곤 했다. 하지만 어떤 녹음이든 간에 곡이 끝나고 나면 2~3초간은 침묵해야 후속 편집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잡음으로 인해 테이프의 커팅 포인트에서 노이즈가 생기고 만다. 굴드와 같이 작업했던 프로듀서 카즈딘은 이런 점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는데, “굴드가 아무리 유명하고 막강한 아티스트였다고 해도 프로듀서가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주장하지 못했기에 ‘공범자’라는 비난을 비껴갈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편 완벽을 기했던 굴드였던 만큼 그의 녹음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는 ‘반복’ 부분을 결코 다시 연주하지 않고 녹음된 것을 사용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테이프 편집의 함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굴드는 반복부를 앞에 연주된 부분과 똑같게 하고 싶어서 잘된 연주의 반복부 전체를 복사한 후 다음 연주에서 같은 부분이 나오면 반복부를 그대로 바꿔치기했다고 한다. 이처럼 확고하게 가다듬어져 있는 굴드의 음반이건만, 저자는 오히려 작위성이 다분히 느껴지는 그의 음반들보다는 라이브로 남겨져 있는 1954년의 CBS반 등에서 굴드 예술의 매력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프로듀싱, 또 다른 예술가 
음반을 프로듀싱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프로듀서는 무엇보다도 음악 자체를 다루기 때문에 연주 해석은 물론이고 연주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그 연주자의 가능성까지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또 녹음에 임해서는 최종적으로 녹음할 음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엔지니어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때로는 마이크 세팅과 관련한 아이디어까지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녹음에 들어가면 까다롭게 구는 연주자도 잘 구슬러가며 테이크를 거듭해야 한다. 이것이 지은이가 강조하는 음반 프로듀서의 기본 자세이자 덕목이다.
이 책에는 위에 언급한 세 명의 아티스트 외에 존 컬쇼, 미셸 글로츠, 피터 앤드리, 한스 히르슈, 레이 민셜, 귄터 브레스트, 고든 패리, 빅터 올로프, 앤드루 카즈딘 등 한 시대를 주름잡은 수많은 명 프로듀서들을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그들에 얽힌 에피소드가 읽는 재미를 한층 더 돋우는데, 아래 존 컬쇼의 예에서 그런한 극적인 한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존 컬쇼는 ‘우리는 최후의 최후까지 노력해서 최고의 녹음을 남기고 싶지, 적당한 선에서 작업을 마치고 싶지는 않다’며 오케스트라 쪽에 협조를 당부했다. (…) 예정대로 [라인의 황금] 최후 부분은 45분쯤 걸려, 밤 11시 45분에 오케이가 났다. 그러고는 모두들 집중해서 서두의 전주곡에 매달렸다. 호른 주자들은 지쳐 있었다. 몇몇 테이크는 역시 프레이즈의 정점에서 음이 벗어나는 바람에 바로잡았다. 어쨌든 50소절, 첼로가 들어서기까지는… 스태프 쪽에서도 침을 삼키며 집중했다. 이러한 씨름을 거쳐 [라인의 황금]은 이튿날 10월 9일 새벽 1시 2분에 드디어 작업을 마쳤다.

이 책에는 레코딩 현장에서 모든 책임을 맡고 지시를 내리는 프로듀서, 녹음 엔지니어인 ‘톤마이스터’,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고 음을 체크하면서 밸런스를 맞추는 ‘밸런스 엔지니어’에 이르기까지 프로듀서들의 면면이 실제 음반녹음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역할했는지 에피소드들과 함께 섞여 펼쳐지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음악녹음에 관한 전문서는 아닌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듯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글을 시작하며

제1장 카라얀
― 제왕을 떠받친 프로듀서들
1. EMI의 명감별사 월터 레그
2. 젊은 준재, 데카의 존 컬쇼
3. 도이체 그라모폰 ― 오토 게르데스의 작업
4. 예술의 위기 ― 프로듀서의 난립과 부재
5. 대량생산의 1970년대 ― 히르슈(DG)와 민셜(데카)
6. 글로츠 ― 카라얀의 ‘분신’ 프로듀서는 무엇을 했는가
7. 영상제작에 대한 야심과 집착
8. ‘제왕’의 황혼

제2장 첼리비다케
― 거장이 녹음을 거절한 진짜 이유
1. 베를린 필과의 작업과 첫 녹음 체험
2. 레코드와 라디오 방송

제3장 글렌 굴드
― 스튜디오에 틀어박힌 천재 피아니스트
1. 굴드와 5인의 음반 프로듀서
2. 녹음현장의 굴드
3. 프로듀서 지망의 아티스트?
4. 굴드가 꿈꾼 레코드 예술
5. 《골드베르크》 데뷔반을 검증하다
6. 《골드베르크》 재녹음에서 노린 것

제4장 어느 프로듀서의 궤적
― 존 컬쇼
1. 1951년, 데카의 《신들의 황혼》
2. 레코드 혁명과 카라얀
3. 숄티, 플라그슈타트, 그리고 《반지》
4. 빈 필의 세례
5. 《라인의 황금》의 획기적 성공
6. 음의 세계의 영원성을 믿으며

글을 마치며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주요 인명 일람

미리보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글렌 굴드. 클래식 음악에 다소 친숙한 사람이라면 이 세 인물에 공통되는 뭔가를 떠올릴 법하다. 레코드 혹은 녹음. 210세기에 등장한 위대한 음악매체로, 음악의 수용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복제예술. 그것에 대해 이 세 거장은 저마다 나름의 행보를 보였고, 그렇게 해서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또 한 사람. EMI의 월터 레그와 함께 데카의 명 프로듀서로 많은 명녹음을 남긴 존 컬쇼. 비록 두 사람의 이름은 모를지라도 그들이 만든 레코드나 CD를 한 장도 들어본 적 없는 클래식 팬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 녹음 현장을 누빈 이런 거장들과 음반 프로듀서들은 레코드라는 예술에서 무엇을 꿈꾸고(혹은 무엇에 환멸을 느끼고) 어떤 일을 했을까? 이 책은 저자의 본업인 음반제작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한 일종의 프로듀서론이다.

_「글을 시작하며」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이사카히로시井阪紘

1940년 일본 와카야마 출생. 클래식 음악 프로듀서로 현재 (주)카메라타 토쿄의 대표이다. 도시샤同志社대학 경제학부를 나와 1964년 일본 빅터에 입사했고, 영업 부문을 거쳐 프로듀서로 일하며 1978년 퇴사할 때까지 150매 이상의 음반을 제작했다. 1980년부터 군마현 구사쓰草津 여름 국제음악아카데미 & 페스티벌 사무국장으로 활동해왔고,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도쿄예술대학 응용음악학 특수연구과에서 강의했다. 오스트리아 문화예술훈장(1995년), 브루크너 골드메달(오스트리아 브루크너협회, 1996년), 신니테쓰新日鐵 음악상 특별상(2004년) 등을 수상했고, 저서로 『한 장의 디스크에: 음반 프로듀서의 일』(제19회 뮤직 펜클럽상, 2006년) 등이 있다.

 

옮긴이

최연희

1961년생으로 성균관대 졸업. 한울 등의 출판사에서 스무 해 가까이 편집 및 기획 일을 해왔고, 음악 관련 책으로 『트리스탄 코드』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등을 국내에 소개한 바 있다. 업무 특성상 눈을 많이 쓰는 출판편집자들에게 눈감고 음악듣기를 권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