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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 지은이 | 이택광
  • 옮긴이 |
  • 발행일 | 2010년 04월 12일
  • 쪽   수 | 350p
  • 책   값 | 18,000 원
  • 판   형 | 148*210
  • ISBN  | 9788993905243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포스트구조주의 이후 형성된 새로운 이론 지형 본격 해부

마르크스, 프로이트, 하이데거, 사르트르, 루카치, 벤야민은
라캉, 데리다, 랑시에르, 지젝, 바디우에 와서 어떻게 변형됐는가!

‘이론의 죽음’에 맞서 ‘이론의 복원’을 요청한다
교환가치로 전락한 ‘인문학’에 맞서 ‘인문좌파’를 요청한다

‘가이드guide’라는 꼬리표가 붙은 다소 생뚱맞은 이 책은 ‘이론의 종언’에 맞서 ‘이론의 복원’을 요청하는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본격적인 이론적 퍼스펙티브가 담긴 저작이다. 지난 십 년 한국사회를 배회한 각종 패배주의와 냉소주의 중에서도 ‘이론 무기력증’이란 것이 있었다. 이것은 지력으로 사물의 본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지성주의’와 지성과 이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먹고사니즘’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고 곧 전면화되었다. 저자는 이런 태도에 종지부를 찍고, 마르크스주의 비평과 정신분석 이론이 결합한 이론 공부와 이론적 글쓰기가 생산성과 비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저자는 푸코와 들뢰즈 이후 등장한 지젝과 랑시에르 같은 새로운 사상가들의 이론이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유산에 발을 디디고 있으며 그들이 과거의 이론과 오늘의 정치 지형 속에서 서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분석함으로써, 2000년대 후반 이후 다시 범람하기 시작한 유럽 발 이론의 백가쟁명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독자들에게 ‘거시적 안목’을 마련해주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동시대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론적 사유를 다룬다. 주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라 불렸던 이론들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등장한 경향들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흐름들은 ‘주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욕망과 주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을 제시한다. 단순한 소개의 차원을 넘어 한국의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렇다면 ‘인문좌파’란 무엇인가. 이 책이 단순히 사상가들의 소개에 머물지 않고 저자의 독특한 ‘정치적 기획’인 까닭은 바로 이 단어가 한국사회에서 의미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즉 지젝과 랑시에르, 바디우 등이 설파해온 핵심 사유가 왜 한국 사회에 “인문좌파”라는 말로 수용되고 변형되었는가.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문좌파’는 저자가 철학자 김영민과 대화하던 중에 나온 개념이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현재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에 속하는 기존의 지식인 유형과 다른 윤리와·정치적 실천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존재라는 점이다. 이 책은 그런 ‘다른 주체’를 구성하기 위한 ‘근육’을 키우기 위해 섭렵해야 할 기본적인 인식론, 사유의 ‘티핑포인트’들을 망라했다고 볼 수 있다.
진보운동이 진보정당이라는 합의제 민주주의에 갇혀 있고, 소통의 담론이 진보 세력의 전략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민주주의보다 정치적인 것을, 소통보다는 불통을 설파하는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갈등과 모순을 강조하고, 고정성보다 우발성에 주목하는 이론들을 통해 진보정당이나 소통의 담론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가시적 정치’를 찾아내는 것이 인문좌파의 임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이론의 복원을 요청하는 저자는 먼저 마르크스를 불러온다. 마르크스가 출발점이다. 데카르트도 헤겔도 아닌 마르크스가 출발점인 이유는 그가 ‘근대 이론’의 창시자이며, 현재까지는 ‘불멸의 텍스트’라 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의 메커니즘을 관찰하고 사유하고 추상화하는 과정을 가장 완벽하게 달성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학 비판 방법론의 원형이 마르크스에게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이러한 면모는 다양하게 학습되었다. 저자는 루카치, 그람시, 알튀세르를 거치며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론’이 어떻게 발전·변모되는지 살피고 스튜어트 홀에 와서 문화이론으로 출구를 찾아나가는 과정까지를 살펴보고 있다.
한편 마르크스의 자본 분석이 왜 정신분석 이론과 만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욕망’의 문제다. 마르크스의 가장 큰 발견은 무엇인가? 교환가치다. 모든 상품은 다른 상품과 교환될 만할 때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교환되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 상품은 폐기되고 사람은 구조조정 된다. 상품소유자는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용가치를 갖는 다른 상품에 대해서만 자신의 상품을 양도하려 한다. 여기서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것은 상품이고, 욕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저자는 “이 욕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자 동시에 돈에 대한 수전노의 사랑처럼, 과잉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상품을 지배하는 논리인 욕망을 다루는 학문은 정신분석학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바로 마르크스가 정신분석이론을 요청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정신분석 이론과 어떻게 만나는가. 서론을 지나 본론으로 진입하면서 이 책은 헤겔, 라캉, 프로이트, 벤야민, 사르트르를 불러온다. 이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 이론이 만나는 ‘장場’이며 ‘매개’들이다. 헤겔은 라캉과 사르트르에게 ‘숨어 있는 1인치’로 거론된다. 벤야민은 마르크스 읽기를 감행한 끝에 프로이트와 손을 잡는다. 전혀 별개의 이론가처럼 보이는 라캉과 사르트르 사이에 ‘변증법’의 창시자 헤겔의 공분모가 존재한다는 것, 마르크스가 미처 다하지 못한 정신분석 이론과의 만남을 후대에 실천하고 있는 벤야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 이론의 가교 역할을 맡은 저자가 섬세하게 다리를 놓는 장면들이다. 그 과정에서 프로이트는 ‘실패한 정치적 기획’으로 비판받고, 마르크스적 사유의 단초를 풍부하게 내장한 라캉과 데리다가 그 이후의 이론가들과 만나기 위해 ‘과거’에서 ‘현재’로 재호출된다.
그 과정이 제6장 ‘무의식의 자식들과 과학 쟁탈전’에서 실감나게 다뤄지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거의 종교적 역할을 하고 있는 과학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과학을 성찰의 대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이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정신분석학이 정상과학에서 말하는 ‘유사과학’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그것은 “육체”에 대한 과학이 아니라 “주체가 무엇인지 추측하는” 과학이며, 자연적 법칙과 다르게 작동하는 주체의 문제를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 적절하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과학은 무의식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뽑아낸다. 그렇다면 라캉과 마르크스의 차이는 무엇일까. 저자는 말한다.

라캉의 후계자들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철학적 상대주의의 돌연변이가 아니며, 오히려 라캉을 통해 기존의 정치학이나 임상을 더욱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저자는 슬라보예 지젝 등의 작업은 정신분석학의 정치화를 통해 기존의 이론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지적 도전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후반부는 바로 라캉이 집대성한 정신분석 이론을 활용한 지젝, 랑시에르, 바디우 등의 활약상을 다룬다.

 

“지젝의 이데올로기적 판타지와 라캉의 변형”
슬라보예 지젝 : 지젝의 공로는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을 대중화시킨 점이다. 라캉을 정치적으로 전유한 지젝은 주체구성의 이론을 해명하기 위한 새로운 분석 도구 ‘이데올로기적 판타지’를 발명했다. 이것은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집단적 판타지를 말하는데, 지젝은 이 판타지를 “거세 공포를 방어하기 위해 자아가 만들어낸 고정된 이미지”라고 정의한다. 마치 종교가 인간의 채울 수 없는 결여를 채우듯, 이 판타지가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그 사실을 은폐한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된 것”이 아니라 주체의 구성에 필연적인 기원이면서 동시에 실체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지젝은 “큰 주체”가 사실은 “작은 주체들”이 날조해낸 것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시차적 관점’을 통해 데리다의 ‘차연’ 개념과 접속하면서 정신분석학의 정치적 지평을 넓혀나간다.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은 데리다로부터 비롯되었다”
자크 데리다 : 저자가 보여주는 데리다는 서구 철학을 해체한 전기 데리다가 아니라‘정치’와 ‘힘’에 대해 사유하는 후기 데리다이다. 알려진 것과 달리 데리다는 일관적으로 정치적 문제를 고민했고, 마르크스 다시 읽기 작업을 통해 정치경제학적인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마르크스주의를 정치철학의 영역으로 복권한다. 또한 서구 철학에 토대를 제공한 ‘존재론’을 대체하기 위해 ‘유령론’을 펼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령은 존재의 가상이 아니라 그 존재의 밑바닥에 가로놓인 더욱 근원적인 어떤 사태의 출몰”이라는 것은 데리다의 정치적인 것이 정신분석 이론과 만나는 지점이다.

 

“네그리의 미학 이론과 다중 개념은 들뢰즈보다 단순하고 선언적이다”
안토니오 네그리 : 저자는 예술의 창조적 상상력에서 반자본주의적 정치의 원동력을 발견하는 네그리에 반대한다. 네그리는 노동에 잠재하고 있는 창조성을 구현하는 활동으로 예술을 보기 때문에 결국 노동을 통한 인간 개조라는 마르크스주의적 인간주의의 정식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예술에 대하여 칸트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말했고 헤겔은 ‘목적은 이미 수단에 내재되어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랑시에르와 아감벤이 칸트의 명제를 변주한다면 네그리는 헤겔의 생각을 계승한다고 본다. 네그리의 다중 개념을 두고 랑시에르가 “생산력 개념의 확대”라고 한 것에 저자도 동의한다. 네그리는 정치를 ‘상상의 형이상학’으로 보고, 아름다운 것이 혁명적이라는 명제를 통해 예술은 혁명적일 때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결국 이런 네그리에 대하여 저자는 “들뢰즈보다 단순하고 선언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국내 네그리주의자들과의 논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 미학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바꾼다”
자크 랑시에르 : 저자는 랑시에르를 매우 주목할 만한 이론가로 상세히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랑시에르는 랑그와 파롤이라는 오래된 구조주의적 명제를 철폐하고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구분을 와해시켜 계급과 위계에 복무할 것을 요구하는 공동체의 윤리에 반하는 새로운 주체의 철학을 제공한 이다. 랑시에르에게 미학은 전문가 집단의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촛불집회에 나선 십대들은 “십대는 어른들과 다르다”는 공동체의 합의를 넘어서는 감각을 서로 나누고 있다. 미학은 서로 다른 계급이 고흐의 그림을 보고 같은 언어로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 “혼란의 공간”이며 그렇기에 민주주의와 통한다. 랑시에르에게 미학적인 공간과 민주주의 공간은 모두 “극장의 체제”로 통한다. 그 가운데 감각의 나눔이 일어나고 무정부적인 미학의 차원이 공동체의 의미로 ‘기입’되는 순간 이 차원에서 얻어진 감각은 미학적이기를 멈추고 앎의 차원으로 체계화된다는 게 바로 랑시에르의 전망이다.
민주주의는 종종 효율적인 제도와 이탈하는 것들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동일시된다. 랑시에르는 안정된 상태를 추구하는 합의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라 말하지 않는다. 그는 몫 없는 자들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통치 형태도 사회적 삶의 방식도 아니며, 정치적 주체들이 존재하기 위해 거치는 주체화 양식”이라고 말이다. 저자는 촛불집회에서 이 양상을 예시로 꺼내서 보여준다. 한국사회에서 십대는 몫 없는 자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집단적으로 ‘평등’을 외치고 나섰다. 그것은 감각적인 나눔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랑시에르적 의미에서 주체화의 과정이다.

 

“철학자는 존재의 사건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밝혀내는 진리의 수사관이다”
알랭 바디우 : 바디우는 인식론적 상대주의가 무력화시킨 철학의 역할을 복원한다. 바디우에게 철학의 위기는 ‘보편주의에 대한 폐기’이다. 그가 볼 때 기존의 포스트담론(차이의 철학)은 특이성에 대한 신학적 숭배를 통해 보편적인 것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부정함으로써 철학의 지위를 세계로부터 퇴거시켰다. 그렇다면 바디우의 철학과 기존의 철학은 동일한가. 그렇지 않다. 시, 수학, 정치, 사랑이 있다고 하자. 바디우 이전까지 철학은 진리적 절차들을 평등한 관계로 파악하지 않았고, 네 가지 중 하나를 우월한 지위에 놓았다. 특정한 진리 생산이 다른 진리 생산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이렇게 되면 철학은 봉합된다. 즉, 닫혀버린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세기에 과학적 실증주의가 철학을 봉합했고, 마르크스주의는 철학을 정치와 과학에 봉합시켰다. 하이데거는 과학에 반대하여 철학을 시에 가두어버렸다. 바디우는 그동안 실증주의나 마르크스주의의 봉합은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하이데거적인 시적 봉합은 문제시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기술로 변해버린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에 철학의 지위를 시에 넘겨준 것은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지만, 너도나도 시를 쓰면서 시가 진리의 최종 거처라고 말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게 바디우의 입장이다.
시라는 우물에 빠진 철학을 구하기 위해 바디우가 마련한 개념이 ‘사건’이다. 그가 말하는 사건은 “다른 것이 출현하는 모든 시간과 장소”이다. 특히 그에게는 역사적인 것이 중요하다. 철학은 이 사건들에 개입해서 명명하는 작업이다. 개입과 명명을 통한 ‘조사’에서 철학은 사건에서 드러난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을 구분해낸다. 바디우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촛불집회를 예로 들자면 이런 정치의 출현을 다시 일자의 작용으로 수렴시키는 게 아니라, 진정한 철학적 개입은 이 정치적 주체의 실체를 조사해서 그 해방적 측면을 발견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부록으로 마련된 386세대 한 이론가의 자서전
이 책에는 장과 장 사이에‘간주곡’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쉬어가기 코너가 마련돼 있다. 본문이 이론들의 대결로 팽팽하게 긴장돼 있다면, 이곳은 학문과 공부, 글쓰기와 현실 개입에 대한 저자의 자유로운 단상들이 펼쳐져 있어 이완의 기능을 한다. 대학 시절, 유학 시절 저자를 사로잡았던 책읽기를 돌아본 [사상지형도의 비밀] [다시 루카치를 읽다] [나의 철학책들]에서는 인문좌파라는 새로운 주체 이론의 모색에 나선 저자의 지적 궤적을 고백적인 문체로 만나볼 수 있다. 1990년대 붐을 이룬 ‘세미나 문화’의 배경에 “남보다 더 크고 강하게 되기 위한” 힘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는 것, 요즘 한국에서 목도되는 인문사회과학 담론의 지형도는 이때 형성된 세미나 분파들에 근거한다는 것, 용도 폐기된 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루카치에 대해 “앞으로 그와 함께할 공산이 큰 나의 유령”이라는 고백도 듣게 된다. 그 이유는 “루카치의 리얼리즘은 자연주의와 같은 사물에 대한 정밀묘사가 아니라, 그 대상과 인간의 의지 또는 서로 적대적인 힘들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그 상황 공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가 인문학을 구한다]에서는 프랑스 철학이 독일 철학을 받아들이는 수준을 넘어서서 독창적인 차원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로운 지식인 공동체 때문이었다며 에콜 노르말대학의 30년 세월을 소개한다. [냉소주의 시대의 인문학자]에서는 지식인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 인터넷의 글쓰기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부하는 대중의 냉소주의 등이 불러오는 문제를 짚었고, [폴라니 그리고 인문학의 개입]에서는 진화생물학이나 경제학이나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다분히 경쟁의 구도라는 점 등 인문학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을 통찰했다. 그 외에 [시장과 학문] [술과 말과 공부] [학문하는 자를 위한 처세술 5계]를 통해서는 이 책의 제목 “가이드”에 걸맞게 공부와 글쓰기에 대한 단상들과 경험적 충고를 담고 있다.
저자의 이런 치열한 글쓰기와 현실에 대한 분석과 통찰은 모두 이론적 토대와 고민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즉, 이 책에 개입된 [간주곡]은 단순히 쉬어가기를 넘어 이론의 복원을 요청하는 저자의 자기증명이기도 한 것이다.

목차

서문_이론은 근육이다

제1장 마르크스를 죽여? 살려? 
1. 좌파의 위기, 바로 당신 이야기
2. 마르크스에서 출발하기
3. ‘마르크스주의’들의 싸움
4. 정신분석이라는 망치로 내려치기
간주곡① 사상지형도의 비밀

제2장 보수적인 리비스주의 비판 
1. 이론의 종언?
2. 1980~90년대 이론 수용의 사회사
3. 이론의 운명, 이론의 임무
간주곡② 다시 루카치를 읽다

제3장 무언가를 교란하는 정치적 기획의 탄생 
1. 프로이트주의, 실패한 정치기획
2. 아감벤의 착각
간주곡③ 나의 철학책들

제4장 벤야민, 프로이트와 손잡다 
1. 비평의 탄생-아름다움에 대한 집중
2. 읽기의 정치학-아케이드 프로젝트
간주곡④ 네트워크가 인문학을 구한다

제5장 헤겔, 라캉과 사르트르의 숨어 있는 1인치 
1. 응시의 욕망과 근대적 주체
2. 사르트르와 응시
3. 헤겔이 주선한 사르트르와 라캉의 만남
간주곡⑤ 냉소주의 시대의 인문학자

제6장 ‘무의식의 자식들’과 과학 쟁탈전 
1. 정신분석학은 과학인가 아닌가
2. 칸트와 사드의 중요한 차이
3. 애매모호함을 떨쳐버린 라캉주의의 현전성
간주곡⑥ 라캉에 대한 비판?

제7장 지젝이 부풀린 유물론이라는 빵 
1. 지젝이 프랑스로 건너간 까닭은?
2. 새로운 분석 도구, 판타지의 원리
간주곡 ⑦ 폴라니 그리고 인문학의 개입

제8장 유령이 되어 귀환한 데리다 
1. 데리다에 대한 애도
2. 차이의 정치학
3. 데리다의 마르크스 읽기
4.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성
간주곡⑧ 개념에 대하여

제9장 먹기 힘든 네그리의 비빔밥 
1. 정치 이론과 예술
2. 다중과 예술
3. 예술의 반자본주의성
간주곡⑨ 시장과 학문

제10장 모든 지식은 감각이라는 DNA를 남긴다
1. 민주주의, 극장의 체제
2. 정치와 치안
3. 주체와 참여
4. 랑시에르, 반미학을 넘어서
5. 아무나 가진 능력의 현실화
6. 랑시에르의 미학적 무의식
간주곡⑩ 술과 말과 공부

제11장 존재의 사건을 쫓는 철학적 수사관 
1. 알랭 바디우, 철학의 복권
2. 철학의 조건들과 진리의 다수성
3. 사건과 존재
간주곡⑪ 학문하는 자를 위한 처세술 5계

미리보기

마르크스에서 출발하기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말은 가능할까? 뭔가 이상한 질문처럼 들린다. 앞서 실컷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떠들다가 갑자기 생뚱맞게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말이 가능한가 하고 물으니 말이다. 그러나 성립 불가능해 보이는 이 물음이 마르크스주의에게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가라타니 고진 식으로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자는없고 ‘마르크스의 독자’가 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주의자는 결국 마르크스를 읽는 사람이다. 마치 교회에 가지 않으면서 성서를 읽는 독자처럼, 마르크스주의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에 가담하지 않더라도 마르크스를 마르크스 입장에서 읽고 공감한다면, 스스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_28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이택광

워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셰필드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에서 문화비평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마녀 프레임》,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등이 있다.

자기 자신과 주변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분석하여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세계에 관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 이는 버지니아 울프를 설명하는 말인 동시에 이택광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문화평론가이자 영문학자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이 시대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들려준다. 그에게 울프는 가장 현대적인 작가이자 선구적 페미니스트, 어떤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당대를 직시한 비평가이기에 그녀의 글에서 21세기 한국 사회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선을 찾아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