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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
  • 지은이 | 강판권
  • 옮긴이 |
  • 발행일 | 2010년 02월 08일
  • 쪽   수 | 1136p
  • 책   값 | 78,000 원
  • 판   형 | 152*225
  • ISBN  | 9788993905151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양화소록]과 [임원경제지] 초목편의 전통을 잇는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나무인문학 백과사전”

[나무열전] [중국을 낳은 뽕나무] 등 역사학자로서는 드물게 꾸준히 나무에 관련된 책을 펴내온 강판권 교수가 자신의 나무 연구를 중간 결산한 큰 작업을 선보였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217종의 나무에 얽힌 역사적인문적 정보를 조선시대 백과전서의 전통을 잇는 형식 속에 담아낸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고문서에 언급된 나무 관련 기술들을 끌어 모아 나무이름의 유래, 식생의 특성, 쓰임새, 인간의 삶과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체계적으로 모았다. 또한 저자가 10여 년간 발품 팔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벼 찾아낸 나무들의 특징을 이러한 문헌 속에서의 서술과 비교하여 고증했다. 그럼으로써 나무에도 역사가 있고, 인간과 매한가지로 그 삶의 특징이 있으며, 우리가 한 그루의 나무를 하나의 존재로서 총체적인 느낌을 갖고 대할 수 있게 의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강조해온 “나무인문학”의 한 완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식물학적 접근과 토목학약초학적 접근을 넘어선
나무의 역사와 철학을 지향하는 나무인문학 사전

근대 이후 학문분과가 나뉘고 그런 와중에 나무는 자연과학의 영역으로만 다루어져왔다. 인문학이 도외시하거나 혹은 넘볼 수 없었던 영역이다. 그런 까닭에 나무는 문명의 반대편인 자연의 대표자로서, 집을 짓는 목재와 몸에 좋은 약재를 연구하는 토목학과 약초학의 대상으로서 부각되었다. 도구적 쓰임새는 나무에서 신화적인 생명력이나 혹은 인간과 관계 맺으면서 새겨온 나무의 역사성을 지어왔다.
하지만 인류가 나무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고작 일이백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긴 세월 동안 인간은 나무를 경외의 존재로 여겨왔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사는 생명에 예의를 지켰다. 당목과 신수는 마을마다 넘쳐났다. 나무로 만든 생활도구들은 정신을 맑게 해준다고 믿었고, 머리맡에 심고 평생의 친구로 삼을 줄도 알았다. 나무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이 글과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것들이 쌓여 정신문화의 한 축을 이루었다. 나무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사람은 나무에 얽혀 있는 다양한 문화적 표식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어느새 나무의 고고학과 계보학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나무의 존재를 되살려 역사를 통해 나무를 보고 나무를 통해 역사를 읽는, 총체적인 나무 공부의 한 시도이다. 나무와 관련된 동아시아 고대 문헌과 국내외 연구서들 속에 남아 있는 나무 관련 자료들을 오랜 기간 모으고 비교연구해왔던 저자는 나무마다 붙어 있는 학명의 유래와 그 의미를 풀어주고, 오랜 세월 함께한 인간들이 붙인 나무의 여러 한자 이름과 그 이름이 배태된 역사적문화적 배경, 건축물부터 구황식품, 병을 없애는 굿의 도구로까지 쓰이지 않는 데가 없을 정도로 생활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었던 나무의 흔적을 체계적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존재감이 높고 꼭 알아야 하는 217종의 나무를 이런 식으로 다루면서 저자는 동아시아 문명이 나무를 통해 어떤 사유와 정서를 표출해왔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이아] [범승지서]에서 [임원경제지] [송남잡지]까지
나무와 관련된 고문헌에 실린 정보 총망라

이 책은 나무로 역사 읽기의 시도로서 나무와 관련한 동양의 고전들은 될 수 있는 한 모두 참조하려 했다. 우선 [사기] [한서]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같은 통사류와 실록류는 기본이다.
나무와 관련된 고문헌의 종류는 다양하다. 가장 우선적으로 꼽히는 건 인류 최초의 낱말풀이사전인 [이아爾雅]와 같은 사전류다. 나무의 어원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알려면 반드시 이 책을 참조해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농서農書가 있다. 나무는 인류가 등장한 이래 주요한 농작물이었다. 쓰임새는 많지만 쉽게 죽어버리는 나무를 제대로 가꾸기 위해 동원한 방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서향을 예로 들면 이 나무는 물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지만 뿌리가 가늘고 맛이 달아서 지렁이가 잘 파먹었다. 그런 까닭에 닭이나 오리를 털을 뽑기 전에 삶은 물을 주변에 뿌려서 지렁이를 물리쳐야 잘 자랄 수 있었다. 또 어떤 나무는 촘촘하게 심어야 했고, 어떤 나무는 간격을 벌려서 심어야 했다. 자연 속의 나무를 인간의 밭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그 나무가 애초에 어떻게 번식해왔는지를 연구하고 적용해야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쓰는 데에도 인류 최초의 농서인 [범승지서氾勝之書]에 실린 것으로 전해지는 내용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합농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을 비롯해 [사시찬요四時纂要] [농상집요農桑輯要] 등 조선전기의 농서와 [산림경제山林經濟]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등 조선후기의 자료를 두루 활용했다. 이렇게 많은 자료를 활용하는 이유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서 나무에 대한 인식과 활용도가 다 달랐기 때문이다. 농서 이외의 자료로는 백과전서류가 있다. 나무와 관련된 신화와 전설, 문학, 고사성어 등을 통해 옛 조상들의 생각과 그 풍속을 엿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호사설星湖僿說]이나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송남잡지松南雜識] 같은 백과전서류의 초목편을 활용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현재에도 남아 있는 우리나라 각 지역의 나무 관련 풍속이나 전설, 나무 문화재 현황 등을 살피기 위해서는 읍지邑誌도 탐독할 필요가 있다. 전염병이 창궐한 조선후기 나무를 태워 그 기운을 쐬어 잡귀를 물리치려다 오히려 사람을 잡는 이야기는 읍지를 통해서나 만날 수 있다. 나무와 관련된 지식인들의 내밀한 통찰이나 감상은 개인 문집에 손을 뻗게 한다. 특히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가 펴낸 [시명다식詩名多識]이나 이옥의 [백운필白雲筆] 등은 최근에 번역까지 이뤄져 유용하게 참조가 된다. [시명다식]은 [시경詩經]을 비롯한 동양고전류에 나온 식물들을 추려내 그 섭생을 고증한 지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성이 있고, [백운필]은 감수성 예민한 문인이 근접한 거리에서 오랫동안 나무를 직접 관찰해온 바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자료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두번 부활한 젓나무
성호 이익은 왜 “무덤에 젓나무 심지마라” 했던가 

고대 중국에서 젓나무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성스러운 나무로 받들어졌다. 젓나무가 왜 성스러운지는 [성호사설] ‘성회시말聖檜始末’에 나와 있다. 유가의 성인 공자를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인 문묘, 그 중에서도 찬덕전贊德殿 앞에 두 그루의 마른 젓나무가 있었다. [궐리지闕里志](공자의 출생지인 궐리의 사실을 기록한 책)에 따르면 그 모습이 이러했다.
“이 젓나무의 높이는 여섯 길이 넘고 둘레는 한 길 넉 자다. 가지는 왼쪽의 것은 왼쪽으로, 오른쪽의 것은 오른쪽으로 연결되었다. 한 그루는 행단杏亶(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 동남쪽 모퉁이에 있어, 높이는 다섯 길이 넘고 둘레는 한 길 석 자이며 그 가지는 이리저리 서리고 굽은 것이 용의 모양과 흡사한데, 세상에서 이를 ‘다시 살아난 젓나무’[再生檜]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공자 사당의 젓나무들은 진晉나라 때인 309년에 말라 죽었다가 수隋나라 의령 원년인 617년에 다시 살아났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아마 원래 고목은 죽고, 그 옆에 떨어진 씨앗이 다시 싹을 틔웠거나 누가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심은 것이 몇백 년 후에 옛날 나무의 위용을 되찾아 이렇게 전설로 정착한 것이리라. 또 한번은 금나라 정우 갑술년인 1222년에 북쪽 오랑캐가 문묘를 침범했는데 이때는 세 그루 모두 불에 타버렸다. 그런데 마침 공자의 49대 후손이 공교롭게도 사당에서 병화를 피하고 있다가 이 나무가 불타는 것을 보고, 불타버린 나머지를 가지고 궐하闕下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로부터 80년 후인 원 세조 때 옛 동무東蕪(1222년에 불 탄 건물)가 없어진 자리의 벽돌 틈바구니에서 젓나무 싹이 터져 나왔다. 이것을 장자張?라는 사람이 옛터에 옮겨 심었고 이듬해 봄이 되자 젓나무 푸른빛이 아주 무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질긴 생명의 젓나무의 기구한 운명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1499년 공자의 문묘에 다시 큰 화재가 나서 불에 홀랑 타버렸던 것이다. 이 불을 마지막으로 젓나무는 다시는 재생하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유교의 나라 조선의 양반들도 조상의 무덤가에 젓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런데 성호 이익은 이에 반대했다. 젓나무가 높이 자라는 나무라서 오래 묵으면 벼락을 맞기 쉽다는 게 이유였다. 실학자로서의 이익의 면모가 이런 데서도 드러난다.

 

사찰의 오랜 벽화를 보존해준 향나무 

향나무는 불교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절이나 사찰을 향계香界, 극락세계를 향국香國, 불사에 올리는 돈을 향전香錢, 부처 앞에서 향을 피우고 서약하는 것을 향화정香火情이라 불렀다. 중국 선종의 창시자 달마가 태어난 곳도 남인도의 향지국香至國이었다. 향나무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결국 이 나무로 향을 피웠기 때문이다. 향나무는 우리나라 불교의 문화유산을 보호한 나무이기도 하다. 그중 사찰의 오랜 벽화는 향나무의 도움으로 남아 있다. 향나무가 벽화를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은 매향埋香 때문이었다. 매향은 글자대로 ‘향나무를 묻는다’는 뜻이다. 향나무를 잘라 포구에 묻으면 오랜 세월이 지나 나무가 녹아 돌처럼 단단해진다. 이것에 다시 향을 피우면 그 향이 벽화에 붙어 벽화를 보호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매향을 기념하는 비석이 고성(북한)의 삼일포와 경남 사천 등 몇 군데 남아 있다.

 

바둑판 만드는 으뜸재료 비자나무

영조는 왜 제주특산물 비자나무 공물을 정지시켰는가
비자나무는 단단할 뿐 아니라 탄력성도 뛰어나며, 목색이나 그 아름다운 줄무늬도 격이 있고, 휘거나 갈라지는 성질이 없어 예부터 바둑판 재료 중 으뜸으로 꼽았다. 또 그 단단함 때문에 지위가 높은 사람의 관과 배는 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이야기는 [이아주소]에 나온다. 더욱이 비자나무 열매는 한약재로 우수해 조선시대에는 제주 특산물로서 공물貢物로 바쳐졌다. 하지만 제주에서 조정에 바치는 비자나무 목재량이 너무 많아 백성들은 힘들어했다. 1763년(영조 39)에는 제주에서 바치는 비자나무 판[榧板]을 정지시키라는 왕명이 내려졌다. 제주에서 해마다 비자나무 판 10부部를 바쳤는데, 재해가 든 해라 5년을 한정하고 바치는 것을 정지하게 한 것이다.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이해한 검소한 왕 영조다운 판결이었다.

 

목왕木王 가래나무

죽으면 청양靑羊으로 변해서 1600년을 더 살아
가래는 나무의 왕, 즉 ‘목왕木王’으로 불릴 만큼 그 재질이 우수해 이것으로 천자의 관을 만들었다. 한자는 재梓이다. 이에 천자의 관을 재구梓柩, 재관梓棺 재궁梓宮이라 한다. 2005년 7월 마지막 남은 조선 왕실의 관棺인 재궁梓宮이 영친왕의 외아들인 이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창덕궁 안 의풍각에서 공개된 바 있다. ‘재궁부동梓宮不動’이라는 말도 있다. 노산군(단종)의 어머니 능인 소릉을 폐하여 옮기려 할 때, 사신이 먼저 가서 석실을 부수고 관을 끌어내려 했으나 관이 무거워 움직일 수 없었다. 군사와 백성들이 해괴히 여겨 즉시 글을 지어 제사를 지내자 비로소 움직였다. 이에 백성들이 예에 맞게 거두어 장사 지냈는데, 바로 이자李?의 [음애일기陰崖日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천자의 관뿐 아니라 국가의 주요한 물건, 즉 악기를 달아매는 순?과 거?, 또 음기飮器, 사후射侯 등을 만드는 관직인 재인梓人이 있었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재경梓慶은 나무를 깎아 순과 거를 아주 잘 만들었는데, 이는 [장자莊子] ‘달생達生’에 나와 있다. 그런 까닭에 재인을 일반적으로 ‘목수’라 부른다. 이렇게 일컫는 예는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재인전梓人傳]이나 원나라 설경석薛景石의 [재인유제梓人遺制]에서 찾아볼 수 있다. 책 출판을 ‘재행梓行’ ‘상재上梓’, 판본版本을 ‘재본梓本’이라 부른 것도 판목에 가래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가래나무가 있는 마을, 즉 재리梓里는 고향을 의미한다. 이는 부모가 자손을 위해 가래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후손들이 소나무와 더불어 가래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김시습의 [서書]). 이렇듯 귀한 나무였기에 중국 남조시대 임방任昉(460~508)의 [술이기述異記]에 따르면, 가래나무의 정령이 청양靑羊으로 변해서 100년은 홍紅색, 500년은 황黃색, 또 500년은 창蒼색, 500년은 백白색으로 살았다고 한다.

 

추사를 밀수업자(?)로 만든 백송

명의 숭정제가 자살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
추사 김정희는 1810년 2월 초 두 달여간의 북경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수많은 서적과 함께 백송의 솔방울 몇 개를 몰래 가져와 예산 본가에 위치한 고조할아버지 김흥경의 묘 옆에 심었다. 현재 이곳의 백송은 이백 살쯤 됐다. 이 나무에서 추사의 백송에 대한 애정과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추사가 북경에서 가져온 백송은 자금성 뒤편의 경산공원景山公園에서 볼 수 있다. 이곳은 명대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자결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자성의 군대가 북경 성을 포위하자 황제를 보호한 사람은 하나 없이 전부 도망가버렸다. 숭정제는 어쩔 수 없이 경산에 올라 구중궁궐 자금성을 바라보며 목숨을 끊었다. 산 정상 ‘만춘정萬春亭’에서 고궁을 바라보면 명청시대 중국 황제들의 권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만춘정에서 동편으로 내려오면 한국에는 드문 아주 키 큰 백송을 여러 그루 만날 수 있다.

 

화살에서 회초리로, 빗자루로 전락한 싸리나무

동명성왕 주몽은 싸리로 만든 화살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화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싸리다. 중국 [진서晋書]에 따르면 주周나라 무왕武王 때 만주지역의 읍루?婁 사람들이 싸리 화살을 바쳤다. [삼국사기]에도 고구려 미천왕美川王이 중국의 후조後趙에게 싸리 화살을 선물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싸리 화살을 ‘호시?矢’라 한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 즉 동명왕東明王은 일곱 살 때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 번 쏘면 백 번 모두 적중할 만큼 활솜씨가 뛰어났다. 주몽이 사용한 화살이 어떤 재료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고구려에서 중국에 싸리로 만든 화살을 보낸 점을 감안하면 그가 사용한 화살도 싸리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도 싸리로 만든 화살대를 즐겨 사용했다. 싸리는 교육용 회초리로도 그만이었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어느 산골에서 부인을 겁탈하려다 그 부인에게 싸리로 만든 회초리를 맞고 정신 차렸다는 얘기가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싸리로 때리는 게 형벌 중 하나였다. [사설邪說]에 따르면, 고려의 국법에 죄를 지으면 그 사람의 두건을 제거하지 않고 도포 띠만 빼앗고 몸뚱이를 회초리로 때렸다고 한다. 이때 묶은 싸리를 던져주면서 스스로 패牌를 가려서 몇 대를 맞을 것인지 숫자를 적게 하여 자신의 손으로 바치면 그 죄를 헤아려 처리했다.

 

팥배나무와 정치

팥배나무(감당나무)는 중국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즉 팥배나무를 사랑한다는 말은 곧 정치 잘하는 자에 대한 사모를 의미한다. 주대周代 연燕나라의 시조인 소공召公은 섬서지역을 다스릴 때 선정善政을 베풀어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후侯와 백伯 같은 귀족에서 농사에 종사하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분에 맞게 일을 맡겨 직무나 직업을 잃은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했다. 특히 시골 마을이나 도시를 순시할 때마다 감당나무를 심어놓고 그 아래서 송사를 판결하거나 정사를 처리했다. 이것을 ‘감당지애甘棠之愛’라 한다. 이런 소공이 죽자 백성들은 그의 정치적 공적을 사모하며 감당나무를 그리워했다. 이에 백성들은 감당나무를 길렀으며, ‘감당甘棠’이라는 시를 지어서 그의 공덕을 노래했다. [시경詩經] ‘국풍?소남召南’의 ‘감당甘棠’에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한다.
“싱싱한 팥배나무를 자르지도 베지도 마라, 소백님이 멈추신 곳이니 소백님이 쉬신 곳이니, 싱싱한 팥배나무를 자르지도 휘지도 말라, 소백님이 머무신 곳이니”

 

황제가 싫어하고 양반이 좋아한 나무

황매화, 산수유, 능소화
중국 황제들이 가장 싫어한 꽃은 황매화로, 속칭 ‘출단화黜壇花’라 한다. 출단화는 단壇에서 쫓겨났다는 뜻이다. 중국의 황제들은 음양오행으로 나를 다스리곤 했고, 황제란 스스로 하늘의 명을 받아 권좌에 오른다고 여겼다. 이에 정권 교체는 단순히 사람의 교체가 아닌 하늘의 운이 바뀌는 것이라 생각했다. 당나라 황제는 음양오행에 따라 물의 명, 즉 수명水命을 받았기 때문에 황색을 꺼렸다. 이 때문에 궁궐이나 사찰에 심었던 황색의 황매화를 제단에서 없앤 것이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후집 권3에도 이러한 얘기가 실려 있다.
그렇다면 양반들이 가장 좋아한 나무는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 산수유와 능소화를 빼놓을 수 없을 테다. 양반집에 가면 예외 없이 뜰에 산수유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봄에 일찍 피는 노란 꽃이 아름답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 나무의 붉은 열매를 얻기 위해 심었다. 이 열매는 강장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도 산수유가 등장할 만큼 그 재배 역사는 길다. 능소화가 또한 ‘양반꽃’으로 불린다. 천민들은 이 나무를 함부로 탐하지 못했다. 김시습은 [매월당집] ‘유관서록遊關西錄’에서 뱁새를 능소화조차 그리워할 수 없는 존재로 보았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살면서 이익과 명예에 매달리고 생업에 바쁜 것이 마치 뱁새가 능소화를 그리워하고, 박이 나무에 매달려있는 듯하다. 그러니 어찌 고달프지 아니한가?”

 

북한의 국보, 목란(함박꽃나무)에 얽힌 이야기

함박꽃나무는 북한 국화로, 북에서는 목란木蘭이라 부른다. 고대로부터 공예품을 만드는 데 잘 쓰였다.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 목공예술이 대단해 중국의 헤파이스토스라 할 법한 노반魯般이란 자가 있었다. 그가 나무로 깎은 새는 날아갔으며, 성을 공격할 때 쓰는 높은 사다리인 운제雲梯를 만들면 적군의 성이 함락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육조시대 양나라 임방이 지은 [술이기述異記]에는 그가 심양강 칠리주에서 자라는 목란나무를 깎아 정교한 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칠리주에는 목란섬이 있었는데 70리 밖에까지 향내가 날 정도였다. 이처럼 목란은 꽤 고급한 목재였다. 이는 [한비자]의 ‘매독환주買?還珠’ 고사에도 나온다. 초나라 사람이 정나라에 구슬을 팔러 가 비싸게 팔려고 향내 나는 목란으로 궤짝을 만들고 그 안에 주옥과 비취를 넣어 내놓았다. 그런데 정나라 사람은 궤짝만 사고 주옥과 비취는 돌려주었다. 구슬은 별볼일 없고 궤짝은 정나라에서 구할 수 없는 진귀한 것임을 알아봤던 것이다. 이는 초나라 사람은 겉이 번지르르한 것만 좋아하고 정작 본질을 무시하다가 큰 코 다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목란의 심재에서 향기가 나서 고급 목재로 인식됐음을 알 수 있다.

 

환웅과 김홍도의 나무, 박달

박달나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조선의 풍속화가 김홍도이다. ‘단원檀園’이라는 그 호의 뜻은 바로 ‘박달나무 있는 뜰’로, 김홍도가 명나라 때의 화가 이유방李流芳을 존경해 그의 호를 따온 것이라 한다. 이유방은 고매한 성품과 높은 학식으로 유명했고, 김홍도 역시 “용모가 아름답고 속에 품은 뜻이 밝”았으니 박달나무의 성품을 두 사람에 비해 짐작할 만할 것이다. 사실 곤장을 칠 때 쓰던 것도 부드러운 버드나무가 아닌 박달나무였다. 이런 것으로는 10대만 맞아도 살이 터져나가며, 30대쯤 맞으면 고통을 이기지 못해 기절하거나 그 후유증으로 엉치뼈가 주저앉을 수도 있었다. 경상북도 문경새재는 박달나무의 고장으로 불린다. 재가 하도 높아 새도 못 넘는다 하여 ‘조령’이라 불렸던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급제의 풍운을 안고 한양으로 오가는 관문이었다. 그 문경새재의 구비구비를 지켰던 박달나무는 이들 선비의 꿈과 회환을 말없이 들어줬던 나무이기도 하다. 한때 문경새재가 철광촌으로 각광받자 개발 논리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쓰러져 나갔던 박달을 되살리기 위해 20여 년 전부터 어린 묘목을 다시 심고 있다.

 

공자, 한 무제와 측백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는 측백나무를 보면서 뭔가를 깨달았다. 그것은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나오는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이다. 이 말은 “날씨가 추운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에 시든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한 고사가 조선시대 조재삼이 지은 [송남잡지]에 실려 있다. 신라 효성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 신충信忠과 측백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다가 말했다. “훗날 내가 자네를 잊지 않을 것이니 자네 역시 절개를 꺾지 말라. 저버리면 이 측백나무처럼 될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효성왕이 즉위해서 책록할 때 그만 신충信忠을 빼놓았다. 이에 원망을 품은 신충이 노래를 지어 예전에 바둑을 두었던 측백나무에 붙였더니 나무가 갑자기 말라죽었다. 왕이 크게 놀라 뒤늦게 깨닫고 신충을 불러서 벼슬을 주니 측백나무가 다시 소생했다는 이야기다.
측백나무로 만든 대들보는 백량대柏粱臺라 불렸다. 한나라 무제는 자신이 세운 백량대에서 신하들을 모아놓고 한시를 짓게 했다. 이곳에서 지은 한시를 백량체柏粱體라 한다. 이처럼 한 무제는 측백나무를 아주 좋아했다. [태평어람太平御覽]의 [태산기泰山記]에 따르면 그는 태산묘泰山廟 옆에 1000그루의 측백나무를 심을 정도였다. 아울러 측백나무는 대들보만이 아니라 배도 만들었다. [시경] ‘국풍國風패풍’에 측백나무로 만든 배, 즉 ‘백주柏舟’가 나온다.

 

옻나무와 장자 

옻나무의 한자는 칠漆, 혹은 칠수漆樹다. 이런 옻나무는 장자莊子를 생각나게 한다. 유유자적 은둔하며 세상을 향해 야유와 쓴소리를 던진 장자가 옻밭을 관리하는 관직에 몸담았다는 점은 그리 강조되지 않는다. 춘추전국시대 칠원漆園은 국가에서 직접 관리를 할 정도로 중요한 곳으로, 칠원리漆園吏 역시 중요 관직이었다. 칠원이 이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먹이 발명되기 이전 칠은 중요한 필기도구였기 때문이다. 죽간이나 갑골에 쓰여진 고대 문자는 대개 칠액을 이용해서 작성된 것이다. 이때 사용한 것은 붓이 아니라 죽정竹挺이라는 대나무로 만든 펜이었다. 대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다른 나무를 깎아서 옻나무 액을 찍어서 글씨를 썼다. 이렇게 쓴 글씨를 죽첩과두문이라 불렀다. 대나무가 처음 닿은 부분은 굵고 끝은 가늘어서 얼핏 보면 올챙이처럼 생겼기에 붙은 이름이다. 이렇게 작성된 문서가 바로 죽간칠서竹簡漆書다.

 

일편단심 배롱나무 

당나라 현종은 배롱나무를 좋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삼성三省(중서성, 상서성, 문하성) 중 자신이 업무를 보던 중서성에 배롱나무를 심고, 개원원년(713)에 중서성을 ‘자미성紫薇省’으로 고쳤다. 그런 까닭에 중서성을 미원薇垣(배롱나무가 있는 관청)이라 부른다. 고려 태조 왕건을 위해 목숨 바친 신숭겸 장군의 유적지에 배롱나무가 있다는 것 또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붉은 배롱나무의 꽃은 곧 신숭겸의 충심을 드러내는 단심丹心이다. 일편단심은 곧 배롱나무 꽃과 같은 붉은 마음이다. 아울러 배롱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껍질이 없다. 즉 겉과 속이 같다. 무덤가나 사당 근처에 배롱나무를 심는 것도 이런 특징 때문이다.

 

물푸레나무와 공문 사건 

물푸레나무와 관련하여 고려 때의 ‘수청목공사水靑木公事’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걸 번역하면 ‘물푸레나무 공문 사건’으로, 물푸레나무로 만든 몽둥이를 관아의 공문에 비겨서 이르는 말이다. 고려 우왕 때의 권신權臣 임견미, 이인임, 염흥방 등이 물푸레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백성들을 위협하여 재물을 마구 빼앗은 사건으로부터 유래했다. 물푸레나무는 죄인을 다루는 몽둥이로 많이 만들어졌다. 당나라 때의 후사지侯思止가 죄수를 처벌하는 큰 몽둥이를 ‘맹청孟靑’이라 부르고, 송나라 위번魏?이 큰 칼을 미미청彌尾靑이라고 한 것에는 모두 물푸레나무 청靑이 들어 있다.

 

복사나무와 조선의 민간 풍속 

복사나무는 전염병이 창궐한 조선시대 민간에서 무수한 풍속을 만들어냈다. 경북 지방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리면 복숭아나무 잎사귀 스물한 장을 일곱 장씩 3등분하여 ‘호룡황虎龍皇’이란 문자를 흑서黑書한 후 봉투에 넣는다. 그리고 받는 이의 성명을 ‘송생원댁입납宋生員宅入納’이라 써서 길가에 떨어뜨려 놓으면 이것을 주운 자에게 병이 옮아가 환자가 완쾌된다고 믿었다. 경남지역에서는 복숭아 나뭇가지를 잘라 일곱 군데를 묶어 환자 몰래 밤에 베개로 사용케 하고 다음 날 새벽 통행로에 이것을 묻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신앙은 곧잘 비극을 부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경성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강원도 금화군 금성면 김형필은 그의 형 김상필이 정신이상 질환을 일으켜 헛소리를 하자 귀신이 붙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귀신이 붙었을 때는 복숭아나무 가지로 때리면 액병신을 쫓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믿고, 3월 15일부터 2일간 계속 때려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한 사실이 발각되어 김형필은 그곳 금화헌병대에 검거, 경성지방 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1917년 4월 1일자)

 

나무에 얽힌 오해들을 밝히다 

이 책은 그간 민간에서 흔하게 나무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정보나 지식뿐 아니라, 나무 이름이나 그 특성 등에 대해 전문적인 역사서나 농서 등에서도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바로잡고 있다. 특히 잘못된 한자 사용이나 혼동으로 인한 것은 오역으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음을 밝힌다.

[측백나무] 많은 사람이 측백나무의 한자인 백柏을 잣나무로 해석하지만, 이는 중국의 나무를 잘 모르는 데서 비롯한다. 측백나무에 대한 오해는 중국 불교의 유명한 화두 가운데 하나이자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주 인용하는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뜰 앞의 잣나무가 아니라 “뜰 앞의 측백나무”다. 이 화두를 낳은 중국의 백림사栢林寺 관음전觀音殿 앞에는 오래된 측백나무가 아직도 살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측백나무를 의미하는 한자를 ‘잣나무’로 풀이하고 있다.

[싸리] 싸리와 관련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은 부석사를 비롯한 유명한 사찰의 기둥을 싸리로 만들었다거나, 송광사의 나무밥통인 구시를 싸리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런 내용은 싸리가 갈잎 키 작은 나무라는 점을 알면 잘못된 것임을 금세 알 수 있다.

[피나무] 피나무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나무 중 하나다. 특히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피나무를 보리수나무로 여기고 있다. 몇 군데 사찰에서는 보리수나무라는 이름표까지 버젓이 달아놓았다. 그렇듯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이 나무의 열매로 염주를 만들기 때문이다.

[젓나무] 젓나무는 예전엔 ‘전나무’라 불렀다. 물론 지금도 어떤 식물도감에는 전나무로 표기하고 있다. 전나무를 젓나무로 부르는 것은 이 나무에서 우윳빛의 액이 나와 그런 것이다. 이 이름은 한국 식물학계의 거목인 이창복 교수가 붙였다. 과거에 젓나무를 전나무로 부른 것은 아마 [훈몽자회]나 [물명고物名攷] 등에서 보듯 젓이 전으로 바뀐 데서 유래할지 모른다. 최세진의 [훈몽자회]에 따르면 젓나무의 한자 이름은 ‘젓나모 회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는 젓나무를 흔히 삼杉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중국에서도 젓나무를 송삼松杉 혹은 냉삼冷杉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원산의 삼나무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젓나무가 지금의 삼나무일 순 없다. 젓나무의 또다른 한자는 종?이다. 이 한자는 곧게 자라는 젓나무의 모습을 본뜬 글자다. 중국의 허신許愼(30~124)이 편찬한 [설문해자]에는 젓나무의 잎은 소나무, 몸은 측백나무를 닮은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시경詩經] ‘대아大雅영대靈臺’에도 젓나무를 언급하고 있다. [훈몽자회]에서 젓나무를 회로 풀이한 것은 이 나무가 측백나무와 닮아 오해한 것인지도 모른다. 회는 [삼재도회]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측백나무를 의미하는 백柏자와 연칭하여 백회柏檜로 사용한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사전 대부분은 회를 노송나무로 풀이하지만, 노송나무는 측백나뭇과의 편백이다.

[사철나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사철나무 한자를 ‘화두충和杜沖’ ‘동청위모冬靑衛矛’ 등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정확하진 않다. 사철나무를 두충동청이라 하는 것은 강심제로 사용하던 두충과 동청이 귀하여 사철나무로 대신하면서 생긴 오해이기 때문이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유암 홍만선이 편찬한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도 사철나무를 두충, 동청, 겨우살이로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오동나무와 벽오동나무] 한자 오동의 오梧는 일반적으로 벽오동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식물도감에도 벽오동의 한자를 오동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아주소]에서는 ‘츤?’을 오梧로 풀이하면서 오동과 같은 의미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아주소]보다 늦은 [제민요술]에는 오동을 벽오동으로 풀이하고 있다. 박상진 교수는 [본초강목]에 나오는 오동을 벽오동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본초강목]에서는 가사협의 [제민요술]을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본초강목]의 오동 항목에서는 오동의 껍질을 백피白皮로 풀이하고 있고, 동을 백동으로 풀이하고 있다. 백동은 우리나라에서 참오동을 말한다. 사료에 나오는 오동나무는 분간하기 어렵다. [삼국유사]에서도 ‘동수桐藪’ 혹은 ‘동지야桐旨野’ 등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나무를 일컫는지 알기 어렵다. 어쨌든 대체로 한국에서는 오동을 벽오동과 구별하고 있다. 문제는 한자 오동을 벽오동으로 볼 것인가이다. 중국의 고대 자료에서는 벽오동을 청동靑桐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도 청동을 오동으로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어느 주장을 일방적으로 따르기가 어렵다.

[가죽나무] 가죽나무를 의미하는 한자는 가승假僧 외에 호랑이 눈을 의미하는 호목수虎目樹, 호안虎眼이 있다. 이는 가죽나무의 잎이 떨어진 자국이 마치 호랑이 눈처럼 생겨 붙인 것으로, 중국 강동에서 불렀던 명칭이다. 또다른 이름은 저수樗樹, 취춘수臭椿樹, 산춘수山椿樹 등이다. 한자 중 저樗는 상수리나무 역?과 함께 ‘쓸모없는 나무’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러나 이런 뜻을 가진 가죽나무를 중국의 지식인들은 호로 즐겨 삼았다. 예컨대 원대의 저은樗隱(胡行簡), 명대의 저암樗菴(鄭潛), 청대의 저암樗菴(何其仁), 청대의 저암樗菴(方薰), 청대의 저옹樗翁(史致儼)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중국 사람들은 이 나무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겼을까. 그렇게 만든 인물은 바로 전국시대의 장자莊子이다. 그가 [장자] ‘소요유逍遙遊’편에서 이 나무를 쓸모없는 존재로 묘사한 이래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이 나무의 존재를 ‘쓸모없음’의 상징으로 표현해왔다. 그렇다면 장자는 왜 그렇게 표현했던 것일까. 그가 파악한 가죽나무는 다음과 같다. “줄기는 울퉁불퉁해서 먹줄에 맞지 않고, 잔가지들은 꼬불꼬불해서 잣대에 맞지 않다. 그래서 네거리에 내놓았더니 목수들도 그것을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장자는 이 나무가 전혀 가치 없다고 뜻한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전국시대 인재 등용의 문제점을 이 나무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도 이후 사람들은 단지 이 나무를 쓸모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무와 관련된 전통회화조각공예품 눈길
이 책엔 이외에도 저자가 지난 수년간 전국 각지를 답사하며 찍은 사진들도 실려 있지만, 사실 그보다 옛 문인들의 시와 옛 화가의 그림들이 더 비중 있게 실려 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결코 식물도감의 한 종류가 아니라 인문학과 역사를 품은 사전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중국 명청대의 화가들이 남긴 그림에서부터 우리 역사 속에서 나무를 소재 삼아 남겨진 예술작품들, 그리고 가까운 나라 일본에 이르기까지 나무와 관련한 예술작품의 흥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철과 소철 |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뭇과 은행나무 | 동방의 성자
소나뭇과
소나무 | 어머니와 같은 존재
반송 | 쟁반같이 생긴 나무
곰솔 | 소금을 머금고 있는
리기다소나무 | 잎이 세 개
리기테다소나무 | 강해진 종자
백송 | 추사는 밀수업자
잣나무 | 백성의 원성을 사다
일본잎갈나무 | 빨리 자라는 팔등신
개잎갈나무 | 반만년 사는 설송
젓나무 | 우유를 흘리다
구상나무 | 완벽한 크리스마스트리
낙우송과
낙우송 | 새의 깃털처럼
삼나무 | 하늘로 쭉쭉 뻗는다
금송 | 물이 지나는 길이 되다
메타세쿼이아 | 1946년 부활하다
측백나뭇과
측백나무 | 혼자 서쪽을 본다
향나무 | 향기로운 연기
가이즈카향나무 | 고흐의 사이프러스처럼
주목과
주목 | 심이 붉다
비자나무 | 아주 더딘 성장
가래나뭇과
가래나무 | 천자의 관
호두나무 | 오랑캐 나라의 복숭아
굴피나무 | 세로로 갈라지는 껍질
콩과
회화나무 | 학자수
등 | 감아 올라가다
칡 | ?에서 칡으로
아까시나무 | 오해받는 나무
주엽나무 | 검은 코뿔소 같은 가시
조각자나무 | 독락당의 오랜 벗
자귀나무 | 강렬한 꽃
박태기나무 | 꽃이 나무를 덮다
싸리 | 청소하는 나뭇가지
골담초 | 노란 비단을 입은 닭
보리수나뭇과 보리수나무 | 석가모니와 관계없는
피나뭇과 피나무 | 그물에서 미투리까지
장미과
장미 | 종 다양성의 으뜸성
매실나무 | 생각하면 침이 도는
살구나무 | 씨앗이 개를 죽인다
자두나무 | 입하 때 먹으면 얼굴이 고와지는
복사나무 | 퇴계 이황도 흠모했던
벚나무 | 봄의 여왕
앵두 | 탄환처럼 생긴 열매
능금 | 처용가에 나오는 머자
사과나무 | 빈과의 방언
돌배나무·산돌배나무 | 이화에 월백하고
장미과
산사 | 영국말로 ‘퀵Quick’
모과나무 | 놀부가 흥부에게 빼앗은 화초장
명자꽃 | 향나무 옆에 키우면 병드는
해당화 | 모든 꽃의 기준
찔레꽃 | 장미를 낳은 어머니
귀룽나무 | 아홉 마리의 용
비파나무 | 쫑긋한 긴 귀 이파리
조팝나무 | 꽃이 보조개다
마가목 | 울릉도 성인봉에서 고고하게
아그배나무 | 새끼 배나무
팥배나무 | 자르지도 베지도 마라
황매화 | 출단과 어류
병아리꽃나무 | 하얀 병아리처럼 옹기종기
국수나무 | 꽃은 진주, 줄기는 국수
복분자딸기 | 요강을 엎어?
피라칸타 | 붉은 가시 같은 열매
부처꽃과 배롱나무 | 백일홍의 우리말
팥꽃나뭇과 서향 | 상서로운 천리향
회양목과 회양목 | 세상에서 가장 야무진
노박덩굴과
노박덩굴 | 서리 내릴 때 붉게 읽는
화살나무 | 창을 막는 귀전
참빗살나무 | 참빗을 만들었을까?
사철나무 | 생울타리용으로 각광
현삼과
오동 | 그 복잡한 유래
참오동 | 안쪽에 무늬가 있는
벽오동과 벽오동 | 봉황이 앉는 나무
단풍나뭇과
단풍나무 | 치우를 죽인 형틀
고로쇠나무 | 뼈를 이롭게 한다
홍단풍 | 늘 붉게 조작된
세열단풍나무 | 공작 꼬리를 닮은 잎
은단풍 | 실버 메이플이 있는 정원
설탕단풍 | 수액으로 설탕을 만들다
중국단풍나무 | 잎이 오리를 닮은 삼각
신나무 | 잎에서 염료를 얻는 색목
복자기 | 껍질 벗겨져 너덜너덜한
무환자나뭇과
무환자나무 | 근심을 없애는 열매
모감주나무 | 여름을 아름답게 만들다
두릅나뭇과
두릅나무 | 새순이 나물의 일품
음나무 | 채마밭을 보호하다
송악 | 소가 잘 먹는 소밥나무
황칠나무 | 황금빛 염료의 탄생
오갈피 | 금과 옥에 비유된 약효
팔손이 | 손이 여덟 개
협죽도과 협죽도 | 멀리서 보면 대나무
마편초과
작살나무 | 물고기를 잡는 무기
누리장나무 | 근처에만 가도 고얀 냄새가
가지과 구기자나무 | 강장제 식물의 대표선수
층층나뭇과
층층나무 | 아파트처럼 층을 이룬 모습
말채나무 | 말을 달리게 하다
산수유 | 양반들이 즐겨 심은 이유는?
산딸나무 | 하얀 옷을 입은 천사
서양산딸나무 | 도깨비방망이가 매달린
멀구슬나뭇과
멀구슬나무 | 배 안의 세 가지 충을 죽이다
참죽나무 | 1만6천 년을 살아 참죽
버즘나뭇과 버즘나무 | 플라타너스 혹은 방울나무
석류나뭇과 석류 | 페르시아에서 온 붉은 구슬
차나뭇과
차나무 | 중국인가 인도인가
동백나무 | 옮기면 잘 죽는
노각나무 | 해오라기의 다리
운향과
탱자나무 | 주막집 담장을 희게 물들인
초피나무 | 꽃잎이 없는 향신료
귤 | 파랗고 노란 것이 어지럽게 섞여
유자나무 | 누렇게 익어가는 냄새
황벽나무 | 온통 노랗다
머귀나무 | 새순과 열매가 귀한
쉬나무 | 기름을 짜서 불을 밝히는
매자나뭇과 매자나무 | 조개껍질을 닮은 잎
뽕나뭇과
뽕나무 | 사랑과 연애의 기원
꾸지뽕나무 | 인기 있어 괴로운
닥나무 | 부러뜨리면 딱 소리 나는
무화과 | 잎겨드랑이에 열매가 숨었네
옻나뭇과
옻나무 | 나전칠기의 탄생 650
붉나무 | 단풍만큼 아름다운 단풍
안개나무 | 꽃이 피면 안개가 낀 듯
소태나뭇과
소태나무 |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가죽나무 | 먹을 수 없어 거짓이 된
감탕나뭇과
감탕나무 | 활과 수레바퀴의 재료
호랑가시나무 | 호랑이 발톱을 닮은 잎
꽝꽝나무 | 몸을 태워 얻은 이름
느릅나뭇과
느릅나무 | 한없이 늘어지는 느름
느티나무 | 매끈한 줄기와 넓게 퍼진 가지
팽나무 | 팽 하고 날아가는 팽총의 추억
풍게나무 | 몽둥이를 만들어 봉봉목
푸조나무 | 이국적이면서 거친 잎
시무나무 | 20리마다 한 그루씩 심었다는
비술나무 | 어린 가지가 아주 많은
다래나뭇과 다래 | 원숭이의 복숭아
꼭두서니과 치자나무 | 손잡이가 있는 술잔
참나뭇과
졸참나무 | 참나무 중에 잎이 가장 작은
상수리나무 | 임금님 상에 오른 도토리
갈참나무 | 매미가 붙어 우는 나무
떡갈나무 | 송편을 찔 때 깔았다
신갈나무 | 짚신 만들어 신었던 잎
굴참나무 | 두꺼운 코르크가 발달한 껍질
핀오크 | 도시환경에 강한 가로수
밤나무 | 밤알 자체가 씨앗이랍니다
감나뭇과
감나무 | 옛사람들이 과분할 정도로 칭찬한 나무
고욤나무 |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
물푸레나뭇과
물푸레나무 |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
들메나무 | 아이누족이 숭상한 고급 목재
이팝나무 | 이씨 성을 가진 사람만 쌀밥 먹는다
목서 | 나무 코뿔소
구골나무 | 껍질이 개뼈를 닮은
광나무 | 잎에서 윤기가 나는
쥐똥나무 | 익은 열매가 마치 쥐똥 같다
개나리 | 열매가 터지면 꼬리를 만드는
미선나무 | 부채처럼 아름다운 열매
수수꽃다리 |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
위성류과 위성류 | 일 년에 두 번씩 담홍빛 꽃
아욱과
부용 | 서리를 무릅쓰고
무궁화 | 無窮인가 無宮인가
겨우살이과 겨우살이 | 다른 나무에 기대어 겨우 살다
능소화과
능소화 | 하늘을 능가하는 꽃
개오동 | 잎보다 더 길쭉한 열매
벼과 왕대 |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버드나뭇과
버드나무 | 거꾸로 꽂아도 산다
능수버들 | 천안삼거리 흥~ 능소야 버들은 흥~
왕버들 | 구멍에서 불이 비치는 나무
용버들 | 파마머리를 한 버들
갯버들 | 강가에 살아서 갯버들
이태리 포플러 | 이탈리아, 미국, 오랑캐
갈매나뭇과
갈매나무 | 시인들이 사랑한 말과 침묵 사이
대추 | 계란만 한 것에서 익으면 하얀 것까지
망개나무 | 번식력 약하지만 싹 틔우면 잘 자라
헛개나무 | 열매가 달아서 새를 부른다
녹나뭇과
녹나무 | 귀신을 쫓는 향기
육계나무 | 약효 뛰어난 두꺼운 껍질
후박나무 | 고기의 배를 가르자 씨가 나왔다
생강나무 | 어린 가지와 잎에서 생강 냄새
비목나무 | 껍질이 희어서 보얀 나무
조록나뭇과 풍년화 | 풍년을 가늠하는 꽃
목련과
목련 | 북녘에선 목필로 남녘에선 영춘으로
백목련 | 향이 난초 같아 목란
자목련 | 공주 때문에 죽은 왕비
일본목련 | 계란을 엎어놓은 꽃잎
튤립나무 | 녹황색 꽃보다 노란 이파리
태산목 | 목련보다 높고 목련보다 크다
함박꽃나무 | 주로 산에 살며 때론 천사같이
모란과 모란 | 화중지왕이요 국색천향이라
미나리아재빗과 사위질빵 | 일꾼들은 사위가 부러워
이나뭇과 이나무 | 열매와 껍질이 오동나무 같다
두충과 두충 | 고무질 껍질이 귀한 나무
포도과
포도 | 중국도 기원전부터 포도주 마셨다
머루 | 천남성과 싸워 이기다
담쟁이덩굴 | 구부정한 어린이
오미자나뭇과 오미자 | 다섯 가지 맛이 나는 열매
범의귀과 수국 | 산수국, 탐라수국, 등수국
때죽나뭇과
때죽나무 | 땅을 향해 종처럼 열리는 꽃
쪽동백나무 | 열매를 찧어 물에 풀면 물고기를 기절시킨다
노린재나뭇과 노린재나무 | 불에 태우면 누런 재가 남는다
칠엽수과 칠엽수 | 마로니에로 더 많이 알려진
자작나뭇과
자작나무 |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거제수나무 | 거제도에는 절대 자라지 않는
사스래나무 | 껍질이 종잇장 벗겨지듯
서어나무 | 서쪽을 향한 대표적 음수
개서어나무 | 풍수의 지형적 결함을 보완하다
개암나무 | 희고 두꺼운 신라의 것이 최고
오리나무 | 이정표 역할을 다하면 농기구로
박달나무 | 산 정상에 우뚝 서다
소사나무 | 해안에 사는 작은 서어나무
인동과
인동 | 겨울을 잘 견딘다
아왜나무 | 산호수 혹은 법국동청
가막살나무 | 박달보다 먼저 베는 나무
불두화 | 스님 머리같이 생겼다
백당나무 | 무성화와 유성화가 함께 달리는
백합과 청미래덩굴 | 요깃거리로 넉넉해 우여량
대극과 오구나무 | 늙은 나무의 뿌리가 절구를 닮은
돈나뭇과 돈나무 | 파리가 찾아와서 똥낭
진달래과
진달래 | 두견새의 피 토한 자국
철쭉 | 머뭇거리게 하다

 

참고문헌
이 책에 실린 나무 목록

미리보기

살아 있는 화석

소철은 아열대 지방의 나무이다. 더워야 잘 자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살 수 없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거실 화분에 키울 만큼 인기가 있다. 소철과에 하나밖에 없는 외로운 존재인 소철은 천 년 이상 생존하는 ‘살아 있는 화석’ 이다. 겉씨식물에 속하는 소철蘇轍은 여느 나무와 달리 가지가 없다. 그런 까닭에 나무이면서도 목재 가치는 없다. 이처럼 독특한 모습을 지닌 소철의 장점은 사철 푸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인함이 특징이다. 암수가 따로 있는 이 나무는 이름부터 강한 느낌을 준다.

중국 명대 왕기王圻가 편찬한 『삼재도회三才圖會』에 따르면 한자 이름인 소철은 ‘못질해도 살아난다’는 뜻이다. 소철의 이름은 일본 사람들이 붙인 것으로 중국 동남부와 일본 남부가 소철의 원산지 중 하나이니 근거가 있는 소리다. 이수광李睟光(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도 같은 내용이 언급된다.”왜국에 사는 이 나무는 소철이다. 줄기가 곧고 곁가지가 없으며 잎은 끝에서 자라 우산처럼 사방으로 펼쳐진다. 나무가 불에 그을려 바싹 말라도, 뿌리째 뽑혀 3~4일 볕을 쬐어도, 나무 전체에 못을 쳐도 땅에 심기만하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고로 소생한다고 이름했다”라고 하는 대목이다. 소철나무가 쇠약할 때 철분을 주면 다시 살아난다는 전설은 이런 이야기의 변형인 셈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소철나무가 철분히 풍부한 땅에서 잘 자란다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녹슨 못이나 고철 등을 관상용 소철 화분에 묻어두면 나무가 잘 자란다.

_20~21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지은이

강판권

1961년 경남 창녕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농사일을 거들며 살았다. 1981년 계명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역사학도의 길에 들어선 뒤 같은 대학원에서 중국 근대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99년 여름, 농사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전공 분야를 접목한 중국 청대 농업경제사를 연구해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금은 자신만의 학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인문학과 식물을 결합하는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 『나무예찬』 『나무철학』 『회화나무와 선비문화』 『선비가 사랑한 나무』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 『청대의 잠상기술과 농업변동』 『세상을 바꾼 나무』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나무열전』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 『은행나무』 『최치원, 젓나무로 다시 태어나다』 『중국을 낳은 뽕나무』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 『자신만의 하늘을 가져라』 『나무를 품은 선비』 『중국 황토고원의 산림훼손과 황사』 『생태로 읽는 사기열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