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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을 낳은 뽕나무 사치와 애욕의 동아시아적 기원
  • 지은이 | 강판권
  • 옮긴이 |
  • 발행일 | 2009년 06월 30일
  • 쪽   수 | 382p
  • 책   값 | 19,800 원
  • 판   형 | 152*223
  • ISBN  | 9788993905021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뽕나무를 통해 그린 오천년 중국의 욕망지도
중국 문명을 잉태한 사치와 애욕의 뿌리를 찾아서

이 책은 중국 문명이 발전하는 데 있어서 뽕나무가 미친 영향이 무엇이냐를 살펴본 문화사다. 뽕나무는 널리 알려진 대로 비단의 원천이다. 뽕과 누에가 만든 비단으로 인해 중국은 세계 최고의 문명국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그런데 뽕과 누에가 중국인들의 삶과 더 넓게는 동아시아 문명의 형성에 미친 구체적인 영향, 그 영향의 경로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살펴진 바가 없었다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문제의식이다.

중국은 수천 년간 잠상업蠶桑業을 해오면서 그 기술을 거의 독점했다. 이것이 비단의 가치를 더욱 증폭시켰고, 비단을 중심으로 하는 조공무역 체계를 만들었다. 세계 만방의 국가들이 중국에 와서 조공을 바치며 황제에게 예를 다하는 조공의식은 한漢나라에서 시작되어 청淸나라까지 이어지면서 중화의식을 형성했다. 조공국은 조공을 빌미로 중국에 와서 장사를 해 큰 이익을 얻어 돌아갔다. 중국이 가운데 있고 오랑캐가 사방을 둘러싸는 이 오래된 세계질서는 정치적·군사적 힘의 우위를 넘어 이익을 위해 굴욕을 감내하는 인간의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비단은 의복의 소재이면서 동시에 문화를 퍼뜨리는 매체였다. 중국은 의복의 질서를 통해 나라를 다스렸다. 예치禮治의 근본은 신분과 남녀구별에 따른 옷감과 디자인의 차별화였다. 일반 백성들이 입는 값싼 비단과 다섯 겹을 껴입어도 “젖꼭지”가 보였다는 고급비단의 존재는 여러 측면에서 고대사회의 통치이념을 제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종이가 없던 시절 비단이라는 평면 공간의 확보는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돌과 구리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복잡한 문양은 추상과 상징이라는 문명의 표현법을 낳았다. 페르시아의 화풍까지 바꾸어놓았던 중국 회화의 질감을 책임진 것도 바로 비단이었다.

비단은 세계의 중심이었던 당나라의 장안長安과 남송의 항주杭州의 도시문화를 수놓는 핵심 아이콘이었다. 비단은 배의 돛폭에서 술집 난간을 휘감아 꾸미는 데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다신신앙과 결합되어 사회적으로 유행한 뽕나무 밭에서의 야합野合까지 더해진다면 비단과 관련된 사치와 애욕의 문화사는 책이 열권이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 책에는 이런 풍경들이 담겨 있다. 제1부에서는 고고학 자료들을 근거로 중국 잠상업의 기원을 추적했고, 대략 3천 년 전부터 잠상업이 번성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중국의 신화와 문학에 자리를 잡게 되는지를 살폈다. 또한 고문헌에 등장하는 뽕과 누에, 비단의 여러 상징들을 파헤쳤으며 초나라와 한나라의 무덤에서 발굴된 화려한 비단예술을 미학적으로, 재료학적으로 분석했다. 1부의 마지막에서는 『범승지서』에서 시작되는 대표적인 농서農書들을 통해 뽕나무 재배법과 누에 기르는 법이 시대별로 지역별로 어떻게 달라지는 지 짚었으며 이와 함께 뽕 농사를 짓는 농사꾼, 실을 뽑고 천을 만드는 여인들, 대형 공장의 직공들, 유통시키는 상인들의 삶을 함께 살펴보았다.

제2부는 뽕나무가 낳은 중국문명의 가장 완숙한 경지를 다루고 있다. 비단 제국이 탄생하는 과정, 화이질서에 기반을 둔 중화문명이 오랑캐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어떻게 비단의 의복문화가 관련되는지, 가내수공업적인 잠상업이 대형공장에서의 생산으로 변해가면서 여성의 지위가 점차 하락하고, 남경여직의 질서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살펴보기도 한다. 그리고 당송시대의 수도를 치장한 화려한 장식품으로서의 비단을 남녀간의 사랑과 연애, 목욕이나 유희문화와 관련지어서 내밀하게 살펴보았다.

제3부는 청나라 시기의 잠상업을 통시적으로 꿰뚫어보면서 뽕나무의 사회경제사를 농가의 수입과 지역별 인구밀도 등과 관련지어 밀도깊게 서술했다. 특히 중국의 잠상업이 면화의 수입이나 여타 무역품들에 밀려 그 경쟁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청의 쇠퇴와 연관지어서 성찰했다.

목차

머리말

제1부
01. 중국 문명의 가장 오래된 상징
02. 저주받은 여인, 누에의 신화
03. 고문헌으로 바느질하는 잠상의 계보학
04. 고대 비단예술의 화려한 귀환
05. 농서를 통해 보는 잠상의 사회사

그림으로 보는 뽕과 누에의 비단 생산 과정

제2부
06. 세계의 중심, 비단 제국의 탄생
07. 뽕나무는 어떻게 오랑캐를 발명했나
08. 뽕나무와 중국 여인들의 운명
09. 사치와 애욕의 문화사

제3부
10. 운하 타고 북쪽으로 간 강남의 비단
11. 못다 이룬 꿈
12. 경제 지도를 바꾼 뽕나무 호상

맺음말
부록_강희제 <어제경직도>
참고문헌

미리보기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태어난 주나라의 시조 후직

주나라의 시조의 성姓은 희姬이고, 이름은 기다. 시조의 이름이 버릴 ‘기’라니 요즘 사람들에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작명이다. 그러나 고대사회의 위대한 인물은 언제나 상식을 벗어난다. 그것은 일종의 법칙이다. 갑골문에 딩장하는 ‘기’는 아이를 버리는 모습이다. 그러니 주족周族의 시조는 버려진 존재였다. 『사기』「주본기酒本記」에는 그가 유태씨有邰氏의 딸이자 제곡帝嚳의 아내였던 강원姜願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해 낳은 아딜이라고 나와있다. 이러한 탄생 이야기를 ‘감생설화感生說話’라 부른다. 그는 탄생 자체가 불길하다 여겨져 세 차례나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구조되었다. 그는 농경에 뛰어난 재주를 가져 직稷에친거됏다. 이 때문에 기를 후직后稷으로 부를 뿐 아니라 오곡의 신인농경신農耕神으로 추앙했다.  후직의 탄생설화는 곧 주나라가 농경사회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후세 사람들의 지혜다. 후직의 ‘직’ 자체가 기장을 의미한다. _23쪽

지은이/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