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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기이한 문장 항해 홍길주 산문 연구
  • 지은이 | 최식
  • 옮긴이 |
  • 발행일 | 2009년 06월 08일
  • 쪽   수 | 439p
  • 책   값 | 23,000 원
  • 판   형 | 153*225
  • ISBN  | 9788996215585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추천의 글
책소개

천하의 지극한 문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보여준
19세기의 기이한 문장가 항해 홍길주의 삶과 문장을 집중 조명한다.
과거를 포기한 채 독서하고 사색하는 것에만 평생을 바친 지식인이
바루어놓은 사물의 질서, 그리고 삶의 내밀한 정서들…

 

항해 홍길주에게 바쳐진 당대 문장가들의 찬사
“고문에 특장特長이 있어 그 기이함을 드러내니 천년 위로 장자·사마천과 어깨를 겨룰 만하다.”_연천 홍석주
“신령한 생각과 기묘한 구상이 텅 빈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것 같다.”_대산 김매순
“의장意匠이 모인 곳은 마치 공중의 누각을 오르는 것 같아, 삼라만상이 좌우에 드러나 응접할 겨를이 없다.”_경산 송백옥

 

1. 이 책에 대하여
이 책은 19세기의 문장가 항해沆瀣 홍길주洪吉周(1786~1841)의 삶과 문장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국내 첫 연구서이다. 항해는 풍산 홍씨 문한세가의 집에서 태어난 19세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좌의정을 지낸 큰형 홍석주, 숙선옹주에게 장가든 아우 홍현주와는 달리 외척의 정치 참여에 반발하여 과거를 포기한 채 평생 독서와 글쓰기만으로 일관한 비판적 성향의 독서지사다. [현수갑고] [표롱을첨] [항해병함] [숙수념] [서림일위] [수여난필·수여연필·수여방필]등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미 당대에 장자·사마천과 겨룰 만한 문장이라는 평가를 받은 항해의 글은 경전에 대한 재해석,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 사물의 내부를 파고드는 철학적 상상력의 소산까지 매우 다양한 폭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항해의 저술들에 대한 접근이 용이치 않았고, 문집이 방대해서 포괄적인 접근이 어려운 바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인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저자 최식은 이 시기 홍길주에 대한 연구를 주도하면서 2007년 박사논문을 펴내기에 이른다. 이 책은 그것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최근 홍길주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뜨겁다”고 할 정도다. 연신 논문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현수갑고] [표롱을첨] [항해병함]을 비롯해 수여방필 4부작이 최근 완역되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관심은 늦었지만 홍길주라는 한 문장가의 면모를 파고드는 방식이나 속도가 자못 치열하다.
홍길주의 무엇이 이토록 매력적인가. 수여방필 4부작 번역을 주도하고 홍길주 관련 논문 몇 편을 집필한 바 있는 정민 한양대 교수는 “그의 글 속에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생기가 넘쳐흐른다. 그의 사고는 대단히 현대적이다. 도대체 200년 전의 인물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 이 말에 그 핵심이 들어 있을 것이다. 실제 항해는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의 대상으로 삼는 지독한 회의주의자였으며, 문장은 책에 있는 게 아니라 물과 공기와 산천과 사람들이 바로 “문장”이며 그것을 보고 듣는 게 “독서”라는 특이한 주장들을 펼쳤는데 엄격한 경전의 체계에 머물렀더라면 나올 수 없었던 신선한 발상이 많다. 특히 그의 나이 44세(1829년)에 완성한 [숙수념]은 풍부한 식견과 기발한 구상으로 내용과 체제가 독특하고 참신하여 그에게 “독창적”이라는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2. 각 부의 주요 내용
따라서 당대에 떨쳤던 문명에 비해 오늘날 너무도 알려지지 않은 그의 저술세계와 철학 및 감수성의 기원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 책 [조선의 기이한 문장]은 홍길주의 생애와 교유관계를 상세히 파악해 체계적으로 그 문학과 사상의 형성과정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저자는 제1부에서 수학기, 몽은기, 사환기, 은일기 등 네 단계로 홍길주의 삶을 구분하고 각 시기에 홍길주가 읽은 책, 교유한 친구와 그 내용, 저술한 책의 동기와 내용 등을 곳곳에 흩어진 자료를 통해 한데 모아서 전기적 삶을 복원해냈다. 홍길주 문장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 코스로서 전체적인 윤곽을 제시한다.
수학기의 교유 인물은 큰형 홍석주와 아우 홍현주를 제외하고 정세익, 서충보, 서우보, 김홍운, 상득용, 이정리, 이정관 등이 대표적이다. 항해는 이들과 시문을 왕래하며 교유를 맺을 뿐 아니라, 그의 저술을 비롯한 학문과 문학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이 시기 저술로 [범전장초구선문凡錢章?求扇文]과 [효경주해고孝經註解藁]는 일실되어 전하지 않고, [십이루기]는 회문의 일종으로 [숙수념]에 전한다.
16년간의 복거(몽은)기에 교유한 인물들은 세상에서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항해와 대부분 처지가 비슷하다. 임덕경, 홍희인, 이희하, 김영, 김소행, 이헌명 등이 대표적인데, 김영은 그의 [기하신설幾何新說]을 비롯한 수학 관련 저술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헌명은 그의 문하에서 20여 년간 동고동락한 제자로 누구보다 그의 삶과 저술을 깊이 이해한 인물이다. 이 시기 저술로 [대동문준] [해동제명가문선]은 [현수갑고]에 그 서문만 전하고, [춘추묵송] [시언] [상우서]는 [현수갑고]에, [진장경] [회언]은 [숙수념]에 전한다. [장설]은 일실되어 전하지 않고, [소비집少鄙集] [속수사續?詞]는 [표롱을첨]에 그 서문이 전한다.
사환기에 교유한 인물로는 박규수, 윤정진, 이명오, 이만용 부자, 정약용, 정학연, 정학유 부자가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무렵에 [연암집]을 읽고 연암의 문장에 경도되고, 다산 부자와의 교유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1829년에 완성한 [숙수념]에선 연암과 다산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시기 저술로는 [고진경전皐津經傳] [삼학조례존고三學條例存藁] [화식전서지고貨殖傳敍地考] [삼약기례三約記例]가 [표롱을첨]에 전하고, [동우보독東郵補牘]은 일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서림일위]와 [숙수념]은 필사되어 널리 유통된다.
만년에 해당하는 은일기에는 김정희, 서유구, 김매순 등과 교유한다. 그는 추사가 불서를 즐겨 읽었고, 풍석이 만년에 번계에 은거하며 [임원경제지]와 [동국총서] 등 자신의 저술을 수집하고 보충하는 상황을 전한다. 또한 대산과는 40여 년 만에 재회하여 시문을 왕래하며 교유를 맺는다. 그는 대산의 학문을 연천에 견줄 만큼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이 시기 저술로는 수여삼필이 대표적이다.
항해가 주로 활동한 순조·헌종 때는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가 맹위를 떨치던 무렵이다. 그는 당시 외척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과감히 과거를 포기하여 세도정권에 대한 항거의 뜻을 표출한다. 또한 일생을 저술활동에 매진하며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등 현실 비판적 자세를 견지한다. 이러한 면모는 당시 경화세족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다.

제2부 ‘인식의 논리와 방향’에서는 진지眞知와 진각眞覺을 추구하고 실질과 일상을 중시하는 홍길주의 인식론을 조명했다. 홍길주의 문장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보여주지만 화려한 기교나 말장난에 매달리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초반부터 “진짜 앎과 진짜 감각”에 기초한 글쓰기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밝혀낸다. 이것이 바로 진지와 진각이다. 특히 홍길주는 “척촌尺寸의 지知를 갖고서 스스로 모두 안다[盡知]”고 여기는 가벼운 지식인들을 비판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굳혀나간다. 자만하는 순간 앎은 멈추고 진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것은 그의 끊임없는 학구열을 설명해주는 증거가 된다. 또한 홍길주의 진지, 진각론은 장자의 호접몽과 유사한 깨달음의 구조를 거느리고 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진짜가 아니냐는 기준은 결코 단정지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인데, 꿈과도 같은 허황된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충동질해서 나쁜 길로 들어서는 자들을 앞에 두고 홍길주는 더욱 회의적인 자세를 견지해나간다. 허황된 것을 물리치고 사물의 핵심과 사태의 인과를 정확하게 꿰뚫고자 하는 그의 인식론은 그를 실질과 일상을 중시하는,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인간들이 이루어내는 풍경[世態]에 주목하도록 만든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런 관찰과 글쓰기는 오랜 시간 그의 내면에 쌓여 현실을 분석하고 진단하고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3부 ‘독서의 함의와 내용’에서는 항해의 독서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취향, 독서와 관련된 언급 및 저술세계를 다루고 있다. 홍길주는 “경전이 아니면 유익함이 없다”는 딱딱한 경전주의를 비판하고 세상 사람들이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치부하여 깔보는 책들도 개방적인 태도로 두루 읽었다. [요재지이] [신제해] 등의 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유익한 깨달음을 얻어낼 수 있어야 훌륭한 지식인라는 것이 항해의 생각이었다. 그는 [설부]를 읽다가 시렁에 얹어두었는데 손님이 그 내용 일부를 보고 채소 심는 장면이 나온다 하여 “농서農書”라고 말한 것을 두고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폐단에 대해 지적하기도 한다. 이것은 자신이 아는 것만 알고, 옳다고 믿는 것만 수용하는 편협한 태도에 대한 반발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일상의 경험들과 함께 당시 청나라로부터 유입된 많은 장서들은 항해로 하여금 책의 바다에서 헤엄치게 했다. [열미초당필기] [산해경] [태평광기] [권희원가] 등 그의 장서 목록에는 각종 중국 서적이 풍성하다.
항해는 “당대에 교유할 벗이 없다면 차라리 천고의 벗을 사귀겠다는 의도로 [상우서]라는 책을 짓는다. 그는 여기서 엄광·도연명·이비 등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가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논평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하여 당시의 혼란한 국정과 사대부의 무능력, 인재 등용의 문제 등을 비판한다. 정자와 주자의 책을 논평하면서 ”이들의 가장 큰 공은 사람으로 하여금 예의를 알도록 해준 것인데 후학들은 심성이기의 분변에만 골몰하여 오히려 정·주자를 알지 못한다“라고 비꼬기도 한다. 서적으로 한 해를 엮은 [서림일위]는 항해의 대표적인 유희한묵遊戱翰墨으로 일컬어지는데, 1년을 360일로 나누고 날짜마다 읽어봄 직한, 어울리는, 연관되는 책의 목록을 만들어나가는 매우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이 책은 항해의 독서에 대한 관심과 취향을 보여주는데, 그중에서도 소동파와 육유의 문헌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그는 소동파를 높이 평가하는데 ”만년에 지는 글은 횡설수설하여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그때그때 돌아보고 깨달은 것을 내키는 대로 적은 것이 이와 같은데도 글은 모두 활발히 변화하고 살아 움직인다“라며 그 신령함을 찬탄한다. [상우서]는 수학기의 독서 관련 저술로 항해의 학문과 사상은 물론 경세제민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서림일위]는 독서에 대한 관심과 취향을 보여주는 중년기의 저술로, 19세기 경화세족의 학술과 문예의 특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서림일위]는 그의 주변 인물들이 두루 탐독하는 한편 그 내용을 소재로 시를 창작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제4부 ‘문장론의 성격과 양상’에서는 진문장으로 대변되는 홍길주의 문장론을 시기별로 세분하여, 그 성격과 양상의 미묘한 변화와 차이를 해명했다.
홍길주는 심心->지志->기氣->언言->문文의 단계를 거쳐 문장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많은 문장이 빠지는 오류가 너무 옛것을 따르거나 너무 따르지 않는 데서 온다고 본 항해는 “독서하여 내 마음을 보존하고 도를 구하여 내 뜻을 받들며, 용기를 걸러 내 기에 짝하고 이치를 밝혀 내 말을 꿰어내며, 육경의 법도를 근본으로 하고 제자의 방도를 참고하면 만변에 이르더라도 적중하지 않음이 없는 문장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당시의 모방적 글쓰기가 만연한 문단 상황을 개탄했다. 장자가 말한 “군께서 읽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라는 것이 홍길주의 당대 문장에 대한 인식이었다. 처음부터 육경의 문장을 배우는 행위는 혈기 방장한 사람이 늙은이처럼 양생하다가 폐질에 걸리는 꼴이라는 비판을 가한 것이 그 예다. 저자는 홍길주가 이에 반하여 진문장을 주장하고, 이후 문장의 내용과 법도에서 선변善變(재료가 나빠도 요리를 잘하면 맛있는 음식)을 강조하는 한편 문자와 문장에 대한 인식을 더욱 심화시켜 “모든 문장은 살아 있다”(문시활물)는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고찰한다. 문시활물이란 홍길주의 인식은 다음 인용문에 그 일단이 드러난다.

“문장은 살아 있는 물건이므로 크게 할 수도 작게 할 수도 있으니, 저마다 그 제목을 따를 뿐이다. 가령 매우 비속하고 더러운 물건을 제목으로 한다면, 모름지기 그 비속하고 더러운 모양과 똑같아지도록 힘써, 사람으로 하여금 그 실물을 보는 것처럼 해야지 문장이 우아하고 화려하지 않을까 근심하지 않아야 한다.(/ p.174)……산천운수조수초목山川雲物鳥獸艸木 사이와 일용의 자질구레한 사무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독서다. 이 두 번의 여행에서 천하의 기문을 읽은 것이 수십 수백 편이어서 나도 모르게 손과 발이 춤을 추었으니, 반드시 책을 펼쳐 몇 줄의 글자를 옹알옹알 소리 내어 읽은 연후에 독서했다고 여기는 자는 어찌 이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 p.176)……나는 사물을 대할 때 문장으로 접한다. 산이 우뚝하고 강이 흐르는 것, 구름이 일고 연기가 사라지는 것, 음악·여색·재물·가래·웃음·꾸짖음에 이르기까지 나의 문장이 아님이 없다.
(/ p.177)

문장으로 만물을 보는 이문관지以文觀之의 논리다. 이것은 문시활물과 일맥상통하고 나아가 독서와 창작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식은 ‘문장중원론’에 와서 더욱 심화된다. 그는 만년에 육경이 전하지 않더라도 다시 지을 수 있다고 자부할 만큼 “나 자신의 문장”(吾之文章)을 강조한다. “문장의 지극함은 음서淫書와 패설稗說로 하여금 모두 시례詩禮로 변화시킬 수 있다. (…) 문장의 지극함은 벌레 소리, 귀신 소리, 괴이한 목석, 아득하고 괴이하며 그윽하고 은밀하여 끝내 따져 물을 수 없는 것으로 하여금 서로 이끌고 와서 조문하고 그 추악함을 감추고 그 능한 것을 바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문장의 중원이니 어찌 도리어 진짜 중원보다 큰 것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홍길주의 문장론은 청초 고문삼대가로 불리는 위희와 동성파 문론을 완성한 요내의 주장과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항해가 중국의 학술과 문예동향에 대한 남다른 관심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항해의 문장론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의 학술과 문예를 바탕으로 형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5부 ‘현실비판적 산문’에서는[춘추묵송]과 [의발책]을 심층 분석했다. [춘추묵송]은 홍길주가 비판적 현실 인식을 토대로 당시 사대부의 세태를 춘추대의에 견주어 비판의 칼날을 휘두른 것이다. 이에 춘추대의를 천명하여 당대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나아가 인재를 중용하여 붕당을 배척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집중한다. 이는 [춘추]에 대한 가학을 계승하는 한편, [춘추]의 내용을 재해석하여 현재적인 의미를 부여한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춘추묵송]이 당대의 총체적인 문제를 집약시켜 춘추대의에 견주어 논의를 전개한 반면, 이후 현실 비판적 산문은 사안별로 구체화하여 논의를 확장하고 심화시킨다. 즉, [춘추묵송]은 그의 현실 비판적 산문을 이해하는 데 단초를 제공한다.
18세기 중국 서적의 대량 유입과 유통은 신지식을 생성하고 문예와 학술의 새로운 방향을 열기에 이른다. 이는 특히 한학과 고증학의 유행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데, 19세기 한학과 고증학의 성행과 풍미로 인해 홍석주와 성해응 사이에 벌어진 한송 논쟁은 한학과 송학은 물론 고증학에 대한 당대 지식인의 비평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증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당시 학계의 일반적 현상으로 읽히는 반면, 한학에 대한 견해는 상이하게 나타난다. 당시 학계의 한송 논쟁은 이후 홍길주의 [의발책]에서 한학과 송학의 논의로 집중된다. [의발책]의 내용 또한 한학에 대한 홍석주의 견해를 충실히 이행하는 한편, 한학과 고증학의 성행과 풍미를 우려하는 시각을 여실히 보여준다. [의발책]은 항해의 고증학에 대한 비판적 견해, 한학과 송학에 대한 비평적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더욱이 조선후기 특히 19세기 고증학의 성행과 한송 논쟁이 학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즉, 홍석주와 성해응의 한송 논쟁과 홍길주의 [의발책]은 18세기 이후 고증학적 학풍이 성행하고 19세기에 실사구시적 학풍이 성립되었던 학계의 상황을 검토하고 이해하는 데 일조한다고 하겠다.

제6부 ‘철리적 산문’에서는 그의 세계관이나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검토했다. 특히 초기의 저술에 해당하는 [진장경]을 비롯한 [시언]과 [회언]은 철학적 내용을 담아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문세계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는 고도의 유추능력을 발휘하여 사물을 인식할 것을 강조하고, 꿈의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등 꿈을 중시하며, 절대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만물을 인식한다.
[진장경]은 30세 이전의 우언소품으로 [숙수념]을 이해하는 중요한 관건이기도 하다. 그는 진지와 진각으로 무장하고 고도의 유추능력을 발휘하여 사물의 진리와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는 18세기 이용휴와 박지원이 감각기관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순된 세계 속에서 마음이나 이성 인식을 무엇보다 중시한 것과 연관이 깊다. 이러한 고도의 유추능력은 ‘지知’의 문제를 거론한 [오로원기吾老園記], 유추를 통해서 사물의 진리와 본질에 이르는 과정을 ‘진眞’으로 표현한 [장재정기壯哉亭記], 고도의 유추능력을 발휘하여 청부정의 아름다움을 찾거나([청부정기淸芙亭記])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읽어내고 창작해야 함을 강조한 [동계정기東溪亭記]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접근법은 홍길주 산문 전반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시언] 역시 30세 이전의 저술로 [숙수념]의 세계와도 관련 깊다. 특히 [물언]은 세계는 반복되고 순환한다는 순환적 세계관을 피력한 글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꿈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깊은데, 그는 꿈을 현실과 밀접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순환적 구조로 인식한다. 이에 그는 순환적 세계관을 차용하여 ‘꿈과 현실이 어우러진 신유의 세계’가 바로 [숙수념]의 세계라고 단언한다.
[회언]은 상대적인 관점에서 만물의 가치를 인정한다. 이는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우리말과 문헌의 상대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 [숙수념]이나 여타 산문에 두루 반영된다. 췌贅와 서瑞를 상대적 관점에서 인식하여 각각의 존재를 인정한 [췌서贅瑞],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광廣’도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광거기廣居記], 누구나 병신이라 조롱하는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도리어 삶을 이롭게 한다는 논의를 펼친 [농아재기聾啞齋記] 등은 상대적 관점으로 만물을 다르게 인식한다. 더욱이 [곤요린기崑瑤隣記]는 상대적 인식이 가장 정채를 띠는 글로, 고금이란 시대적·시간적 구분은 무너지고 원근이란 공간적 의미도 무의미해진다.

제7부 ‘우의적 산문’에서는 그의 산문에 자주 활용되는 우의적 수법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우언과 희문의 창작뿐 아니라, 필기류 저술에 해당하는 [숙수념]은 전체가 우의적 산문에 해당한다. 그는 우언에 빗대어 세상의 부조리를 말한다. 배우라는 가공인물을 등장시켜 모방만을 일삼는 당시 학자들의 행태를 풍자한 [힐우詰優], 사냥꾼의 입을 빌려 당시 현실 세태를 비판하고 선비들의 무능을 날카롭게 지적한 [기렵자대記獵者對], 의원이 등장하여 병을 고치기보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거나 천하의 병폐를 지적하는 [부총復聰]과 [양의문답良醫問答]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에는 모두 가공인물이 등장하여 항해의 논리를 대변한다.
또한 희문의 창작은 권위적 글쓰기에 도전적 성격이 짙다. [장자]의 내용과 문체를 패러디한 [독장자讀莊子]와 [하퇴헌기何退軒記] [독맹산독엽후讀盟山讀葉後] 등의 유희문자를 비롯하여, [대학]의 구성과 체제를 연상시키는 [고진경전]은 단순한 여행기에 불과한 내용임에도 과감히 ‘경전’이라 명명한다. 또한 [책수향후구석冊睡鄕侯九錫]은 조령문에 해당하는 책문으로, 상제가 제후를 책봉하면서 아홉 가지 은전을 하사한다는 내용을 교묘하게 패러디하여 기존의 글쓰기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다.
1829년에 완성한 [숙수념]은 황주성의 [장취원기]에 영향을 받아, 체제를 크게 ‘환탈-환골탈태’하여 전혀 다른 거대한 세계다. 이는 연암 문학에의 심취와 선변을 중시하는 문장론과 연관이 깊은데, [십이루기]를 연암의 [방경각외전]에 견주는 대목에서 확인된다. 추론한다면 연암이 연행을 통해서 [열하일기]를 저술했다면, 항해는 연행이란 실유實遊가 아닌 신유神遊를 통해서 [숙수념]을 저술한 셈이다. [숙수념]의 10념念 16관觀은 기존 저술과 전혀 다르다. 10념의 주제 설정과 16관의 구성은 십간十干의 뜻에 부합하도록 상호간에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연관을 맺는다.
또한 독특하고 참신한 구성과 체제는 그가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대비하여 구상한 내용과 [치가설治家說]의 연장선상에 있다. [숙수념]의 세계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듯이 하나씩 차근차근 단계를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신유의 지침서로 [숙수념]을 거론하는데, 이는 천天,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 꿈, 담澹(虛)과 지地, 인식하는 세계, 현실, 농濃(實)의 반복되고 순환하는 세계관과 연관이 깊다. 따라서 [숙수념]의 세계는 신유(꿈)에 치우쳐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바탕하여 신유(꿈)가 펼쳐지는 이른바 ‘꿈과 현실이 어우러진 신유의 세계’다.
더욱이 유사룡의 [오유원기]의 내용을 요약하여 저술 취지를 밝힌 [숙수념] 제사, [숙수념]은 중국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저술임을 자부한 [동사강목서], 이후 내용을 보다 세분하여 그 의미를 부여한 [제숙수념후] 등은 기존의 저술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상하고 설계한 [숙수념]의 특징적 면모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살펴본 결과 항해의 산문은 당대 현실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연암과 다산 등 실학파 문인들의 영향뿐만 아니라 당시 경화세족의 학술과 문예 동향 등을 두루 반영한다. 즉, 항해의 산문은 조선후기 문학사에서 이전 실학파 문인들의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 경화세족의 일반적 경향과는 달리 현실 비판적 자세로 시종일관 저술에 매진하여 항해만의 독특하고 참신한 문학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머리말
서론- 사마천과 어깨를 겨루는 문장

제1부 생애와 저술
1. 방대한 독서와 치열한 습작-수학기
2. 선비에게 벼슬은 함정이다-몽은기
3. 개혁 의지와 상상력의 변증법-사환기
4. 붓의 천변만화 속에 은거하다-은일기

제2부 인식의 논리와 방향
1. 진지와 진각을 추구하다
2. 실질과 일상을 중시하다

제3부 독서의 함의와 내용
1. 독서의 범주와 취향
2. 천고의 벗을 사귀다: 『상우서』
3. 서적으로 한 해를 엮다: 『서림일위』

제4부 문장론의 성격과 양상
1. 진문장을 지향하다: 탈모방과 진문장
2. 문장은 살아 있는 물건이다: 선변과 문시활물
3. 문장의 중원을 차지하다: 오지문장과 문장중원

제5부 현실 비판적 산문
1.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다: 『춘추묵송』
2. 한학과 고증학 비판에 앞장서다: 「의발책」

제6부 철리적 산문
1. 유추하여 본질에 접근하다: 『진장경』
2. 세계는 반복되고 순환한다: 『시언』
3. 만물은 상대적이다: 『회언』

제7부 우의적 산문
1. 우언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우언
2. 권위적 글쓰기에 도전하다: 희문
3. 누가 내 꿈을 이루어줄 것인가?: 『숙수념』

결론 /각주 /부록 /참고문헌

미리보기

문체는 진실로 하나 일 뿐이다. 지금 내가 사람마다 배우고 말마다 본받고자 한다면, 이것은 바람이 하나의 기로 초목애곡산택(草木崖谷山澤)의 변화를 따라서 그 소리를 모두 얻는다는 것을 알지 못함이다. 비록 내가 종신토록 서책 가운데 골몰하더라도 반드시 성취하는 것이 없음을 알 것이다. 독서하여 내 마음을 보존하고 도를 구하여 내 뜻을 받들며, 용기를 길러 내 기에 짝하고 이치를 밝혀 내 말을 꿰어내며, 육경의 법도를 근본하고 제자의 방도를 참고하면, 가리키는 바에 따라서 궁구하지 못한 것을 넓혀서, 입에서 나와서 붓을 따르고 만변(萬變)에 이르더라도 가는 곳마다 적중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또한 어찌 사람마다 배우고 말마다 본받겠는가? _158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최식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및 동대학원 한문학과를 졸업했다. 19세기의 대표적 문장가인 항해沆瀣 홍길주洪吉周의 산문을 연구해 국내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BK21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의 박사 논문은 그간 연구자조차 접하기 어려웠던 홍길주의 저서들을 본격적으로 개관하고 그의 삶과 교유관계를 추적해 작품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혀 그 이후에 활발해진 홍길주 연구의 초석이 되었다.

그동안 조선후기 한문학, 특히 19세기 경화세족의 학술과 문예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왔으며 주요 논문으로 「항해 홍길주의 사유방식」 「항해 홍길주 산문 연구」 「홍길주의 꿈과 『숙수념』」 「홍길주의 실험적 글쓰기」 「『구두해법』, 한문의 구두와 현토, 구결」 등이 있다.

 

추천의 글

“고문에 특장特長이 있어 날로 그 기이함을 드러내니 천년 위로 장자·사마천과 어깨를 겨룰만하다.”

_연천 홍서주

 

“신령한 생각과 기묘한 구상이 텅 빈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것 같다.”

_대산 김매순

 

“의장意匠이 모인 곳은 마치 공중의 누각을 오르는 것 같아, 삼라만상이 좌우에 드러나 응집할 겨를이 없다.”

_경신 송백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