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어느날 과학이 세상을 벗겨버렸다
  • 지은이 | 이종필
  • 옮긴이 |
  • 발행일 | 2009년 04월 21일
  • 쪽   수 | 272p
  • 책   값 | 13,500 원
  • 판   형 | 152*223
  • ISBN  | 9788996215561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추천의 글
책소개

소장 이론물리학자가 한국 사회에 내놓는 발칙한 정치학적 상상력!

1. 과학대중화에 대한 대담한 역발상
오늘날 역사나 철학도 비슷한 처지이지만, 과학만큼 대중에게 말을 걸면서 일종의 ‘강박관념’까지 느껴야 하는 분야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좀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과학의 원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과학 대중화 담론의 화두는 이것이 대세였다. 즉 어떻게 꼬드길 것인가였다.
혹시 그것은 착한 선생님 같은 생각은 아니었을까? 가르치려 드는 순간, 설명하려 드는 순간 오히려 대중은 과학과 더욱 멀어졌던 것은 아닐까? 일상생활의 용어와 사례로, 코믹한 상황 설정으로 과학의 원리를 알려줘봤자 그때만 반짝할 뿐이었다. 과학적 지식과 사유가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접근법이 너무 획일적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대중이 과학의 원리를 깨닫기만 하면 그 효용성은 알아서 느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 면은 없었을까?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세상에 나온 책이다. 우리는 왜 과학을 ‘설명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길까? 오히려 과학은 세상을 보는 렌즈로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는 아닐까? 세상을 뒤집어보는 뒤집개로, 해부하는 메스로 써야하는 게 아닐까?
이 책 또한 과학을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과학자의 조급증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접근법이 다르다. 저자 이종필은 과학을 험한 정치판에, 복잡한 경제나 미묘한 문화판에 가져와서 마구 굴린다. 과학이 과연 실험실을 벗어나서도 의미를 가질 것인지, 물리학적 공간의 현상이 세상 속의 권력이나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대칭성을 띠게 될 것인지를 알아보고 있다. 반대로 세상의 현상들이 과학적으로 볼 때 어떤 운동인지, 끊어짐과 연속인지 등도 살펴보고 있다.
그 출발점은 입자물리학자인 저자가 보기에 세상에 불합리한 것, 합리성을 가장한 합리화가 너무나 많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저자는 과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과학자가 생각하는 ‘합리성’의 잣대로 사회를 재기 시작했다. 결코 과학을 설명하고 알리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이 하나의 비유로, 거울로 세워지고 야유와 풍자의 그물로 짜여진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은 과학자의 사회비판서이면서 동시에 사회에 개입된 ‘정치화되고 관점화된 한 사람의 과학지식’에 대한 소개서의 성격도 띤다. 그 역발상이 가져다주는 역동성과 낯설음이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가 갖는 새로움이다.

 

2. 두 문화의 ‘결합’이 아닌 ‘융합’
80년대 학번의 막차에 올라탄 저자는 대학시절 운동권이었다. 앞에 나서서 대중을 이끄는 활동가는 아니었지만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물리학 전공은 뒷전이었다. 10여 년 뒤 지금 그는 이론물리학자가 되었다.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며 사회에 대해 고민한 것은 그에게 추억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물리학자의 시각에서 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주었다.
따라서 이 책은 사회에 대한 과학자의 훈수두기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좀더 내밀하고 적극적인 ‘자아의 정체성’이 많이 반영된 글이다. 지금껏 과학자가 문과와 이과로 나뉜 두 문화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한 책을 내놓은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짝사랑하거나 비난하는 일방향 담론이었지, 그것을 한 몸에 육화시켜 글로 뽑아낸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 책이 과학과 사회의 기계적 결합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저자는 정치, 문화, 사회, 인간의 네 영역에서 때로는 현상학적인 분석을 때로는 철학적인 질문과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책의 목차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각 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정치’에서는 -과학적 사고의 ‘불능’이 초래할 위험성을 예시하고 대통령에게 왜 ‘물리학적 사고’가 필수인지를 설파한다, -부패한 정치인이 한 방에 검증되지 않는 까닭을 과학에서의 이론과 실험의 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2007년 대선 당시 터진 BBK사건을 엔트로피 이론으로 설명한다. -나아가 정치에 대한 객관적 관찰이 불가능한 이유를 과학의 ‘이론의존성’ 문제로 해명한다. -마지막으로 진화론과 우주론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제도인 ‘1인1표’ 원리를 들여다본다.
제2부 ‘문화’에서는 -물리학에서의 ‘위계 문제’를 해결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여성물리학자 랜덜에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러브콜을 하고 있는 이유 -물고기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참여해 대박 스펙타클을 만들어낸 외국 영화의 사례 -완벽한 과학이론과 웰-메이드 텔레비전 드라마의 시나리오가 갖고 있는 다섯가지 공통점을 살펴본다. -그리고 한국의 [태왕사신기] [주몽] [신기전] 등의 블록버스터 드라마 및 영화에서 2% 부족했던 점을 ‘과학적’으로 찾아낸다. 판타지와 실사의 부조화, ‘미세조정의 문제’, ‘인식’ 없는 ‘수식’으로만 존재하는 과학 등이 그것이다.
제3부 ‘사회’에서는 -최근 발견된 우주의 암흑물질이 왜 인류의 무지를 증명하는지, 나아가 이를 글로벌 경제 영역에 적용해서 하우스만과 스투제니거의 암흑물질 설이 미국경제 부활 프로젝트로 도입되었다가 실패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사주·풍수에 대해서 과학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무조건 비과학적으로 배격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것들을 ‘정량적’으로 모형화하고 실험하려는 시도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최근 기업들의 신입사원 연수에 도입되는 등 유행하는 ‘과학화 전투훈련’을 통해 정치·외교에 과학이 필요한 이유, 게임으로 분석하는 쇠고기 협상 문제 등을 선보인다.
제4부 ‘인간’에서는 -과학에서의 인류원리가 세상을 다스리는 원칙과 닮은 점, -양자역학의 세계를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확률’뿐이라는 점, -중력 이론이 없으면 우주연구도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통해서 한국의 기초과학 현황을 비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리학 방정식의 하나인 ‘우주상수’를 통해 미로에 빠진 현대사회의 미적 질서화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한다.

아래에 본문의 몇 대목을 통해 이러한 저자의 시도가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를 살펴본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에는 ‘미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이란 강좌가 있다. 버클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이 강좌는 과학과 전혀 관계없는 전공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강의의 첫 번째 주제는 에너지와 폭발물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이 내용을 소개하며 “세상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의 첫 번째 시간으로는 매우 적합하다”라고 시니컬하게 말한다. 물론 그런 강의가 존재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그런 부러움과 필요성에 대한 자각이 이 책의 제목을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로 만들었다.
대통령들의 비합리성이 국민들에게 주는 고통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즈가 2004년 대선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가리켜 “우리는 그가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안도한다”라고 썼을까.
저자는 우리가 정치인들과 대통령으로부터 고통받는 이유는 이들의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 두뇌’가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까운 일례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거나, 2007년 합의 이혼으로 잠깐 국민들의 눈을 속인 예전의 통합신당도 합리나 이성보다는 야만에 훨씬 가까웠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암흑물질도 살리지 못한 미국 경제
분명히 존재하지만(존재한다는 증거가 10개도 넘음) 빛을 내지 않아 관측되지 않는 우주의 물질을 과학자들은 ‘암흑물질’로 부른다. 은하의 회전곡선을 관찰한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암흑물질은 우주가 계속 팽창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그 실체를 알 수는 없다. 이 암흑물질을 끌어들여 미국의 경제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버드 대학의 하우스만과 스투제니거는 2005년 「미국과 세계의 불균형」라는 논문을 발표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암흑물질)가 미국의 엄청난 적자를 메워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주장한 암흑물질은 바로 미국이 해외에 직접 투자할 때 지식과 기술, 브랜드 등에서 얻는 지식 서비스를 말한다. 또한 미국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국이기 때문에 갖는 프리미엄, 즉 미국 자산의 안전성이 담보하는 보험 서비스나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발권력 등도 암흑물질로 보았다. 이들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의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는 2조 5천억 달러이지만, 암흑물질을 고려해서 다시 계산하면 미국이 같은 기간 2조 8천억 달러를 더 수출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관찰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암흑물질을 고안했다면, 경제학자들은 미국 경제의 안정성이라는 일종의 신념이나 희망 사항을 설명하기 위해 암흑물질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말한다. 두 저자는 암흑물질을 상정하지 않은 기존의 설명들은 매우 혼란스러운데, 그것은 톨레미의 천동설을 받아들여 행성궤도를 설명하려면 임의의 주전원을 여럿 도입해야 하는 것과도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3년여가 지난 현 시점에서 본다면 그들의 이론은 틀렸다. 암흑물질은 미국 경제를 구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전체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은 매혹적이라고 말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말이다. 하우스만과 스투제니거의 암흑물질설도 그런 매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보자. 과학자들은 생물체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에서 눈에 보이는 유전자가 존재하는 영역에 전체 DNA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DNA의 이 어두운 부분을 ‘게놈의 암흑물질’이라고 부른다. 다행히 게놈의 암흑물질은 우주의 암흑물질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심지어 이 게놈 암흑물질들을 떼어다가 다른 곳에 조립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놈 암흑물질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일종의 쓰레기다. 사람의 게놈 암흑물질에서 무언가 역할을 하는 영역은 2~3%에 불과하다.
그렇다. 과학자들도 우주의 암흑물질에 바라는 것이 많고, 경제학자들도 경제의 암흑물질에 바라는 것이 많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매력으로 보이는 것을 상쇄시키면 어떤 결과가 오는 지는 DNA 암흑물질과 현 미국경제의 위기가 잘 말해주고 있다고 저자는 환기시킨다.

 

과학화 전투훈련과 전작권 회수 문제
한국은 아직 디지털화(정량적 분석)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아날로그적인 경험치가 수치화된 근거보다 더 신뢰를 받는 경우가 있다. 한 국가의 국방과 외교에서는 정량화와 모형화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형태로 가능할까?
이와 관련한 좋은 예가 육군에서 운영 중인 육군 과학화 전투 훈련장Korea Combat Training Center, KCTC이다. 훈련을 받으러 온 부대에게는 ‘마일즈MILES, Multiple Integrated Laser Engagement System, 다중통합레이저 교전체계’라는 장비가 지급된다. 마일즈 장비는 레이저를 쏘거나 감지한다. 각 병사들은 자신의 몸 곳곳에 마일즈 장비를 부착한다. 이 장비는 자신의 몸으로 발사된 레이저를 감지해서 경상, 중상, 사망을 판정해 표시한다. 소총뿐만 아니라 지뢰나 포격, 전차 등도 레이저를 발사한다. KCTC에는 훈련부대에 맞서 대항군이 있다. 대항군은 전문적으로 양성된 부대로 훈련부대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스파링 파트너다. 2005년 KCTC가 문을 연 이후 대항군은 압도적인 전적으로 훈련군을 이겼다.
이 모든 전투 상황은 실시간으로 훈련통제 본부로 전해진다. 모든 전투 병력의 위치와 움직임은 물론 전투 행동 하나하나가 일일이 다 보고된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공격을 했고 누가 누구의 총에 맞아 어떤 부상을 입었는지 낱낱이 드러난다.
실전 같은 훈련의 결과와 그 성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병사들의 사망률은 물론 각급 지휘관의 사망률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한 자료에 의하면 지휘관의 사망률이 일반 사병의 사망률보다 크게 높아 전투 상황에서 지휘 체계의 혼란에서 생기는 피해가 막심했다. 반면 대항군은 지휘관이 사망하더라도 곧 그 권한의 승계가 비교적 순조롭다. 북한의 이른바 전군의 간부화가 실전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는 셈이다. 그 밖에 주야간별, 공격·방어 시의 희생률이나 아군 간 오인 사격 등에 대한 자료도 얻을 수 있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훈련군의 어이없는 사망률이 낮아지는 추세는 KCTC의 큰 성과 중 하나다. KCTC를 ‘과학화’ 전투 훈련장이라고 명명한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과연 KCTC의 무엇이 ‘과학’과 관련 있을까? 저자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정량화’를 꼽는다. KCTC가 성공한 중요 요소 가운데 첨단 장비의 역할도 크지만, 그 장비들과 전체 체계를 구성하는 근간에는 교전 때 각 병력이 입는 피해 정도에 대한 정량적 설계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적인 마인드는 “총에 맞았다”가 중요하지 그 정도가 얼마인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을 모사하기 위해 모형을 만들고 이를 통해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자료를 모아 새로운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정량화는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정량화의 과정이 얼마나 믿을 만한가, 현실과 얼마나 가까운가, 전반적인 체계가 논리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들이다. 이는 과학적 분석의 과정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저자는 KCTC의 교훈을 좀 더 넓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중국-대만과 함께 거의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 할 수 있다. 남북한을 통틀어 200만의 군대가 휴전선 155마일에 대치하고 있다.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는 분명 남한에게 가장 큰 군사적 위협이다. 때문에 우리는 연간 20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방비를 투자하고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항상 친북이니 빨갱이니, 북한의 위협이니 하는 말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왔다. 이 논리의 밑바탕에는 북한의 군대가 남한의 군대보다 우세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남한군만으로는 북한의 전쟁 기도를 억지하지 못한다는 논리는 주한미군의 가장 큰 존재 이유다. 그렇다면 한번 이렇게 질문해보자. “정말 그런지 어떻게 알지?”
국방부나 언론들은 지난 50년간 북한군이 우세한 이유를 병력과 군장비의 수적 우위에서 찾았다. 숫자놀음은 그 자체로 수치화나 정량화이니까 무척 과학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장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KCTC가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훈련군과 대항군의 병력 수와 확보한 무기만 비교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엄청난 돈을 들여 훈련장을 만들어서 병사들을 굴려보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이 우스개 같은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 숫자와 더불어 각자가 보유한 장비의 성능을 함께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남한군이 북한군에 밀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방력을 더 강화해야 하고 주한미군 또한 여전히 주둔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또다른 이들은 남한군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전쟁 억지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원래 주둔 목적은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런 논란은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환수할 일정을 정하면서 더욱 커졌다.
만약 국방부에서 정말로 믿을 만한 전쟁 시뮬레이션을 여러 차례 해보았다면, 그리고 그 결과를 솔직하게 공개했더라면 남북한의 군사력 차이에 대한 항간의 논란은 이미 가라앉았을 것이다. 저자는 아직까지 한국 정부가 신뢰성 높은 전쟁 시뮬레이션을 해볼 만한 역량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 때문에 남북한 군사력 격차나 전쟁 억지력은 항상 뜨거운 이슈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언론에서 공개된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은 미국의 작품이었다. 1994년 핵 위기가 발생했을 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폭격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당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하여 김일성 주석과 극적인 담판을 짓고 급기야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때 미국에서 영변 폭격을 검토하며 시행한 전쟁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개전 초기 3개월 내 미군 5만 명 사망, 한국 민간인 100만 명 사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지금 이라크 전에서 겨우 3천 명 정도의 미군이 사망한 것으로 부시 행정부가 곤욕을 치르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국으로서는 미군 5만 명 사망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가 국가 안보의 근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전쟁 시뮬레이션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안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따라 대처할 마인드가 없었던 것도 큰 이유이다.

 

선거의 이론의존성
과학에서 경험주의적 오해에 타격을 가한 뒤엠-콰인 명제라는 것이 있다. 즉 어떤 실험이 기존에 확고하게 위치를 점했던 이론과는 다른 결과를 도출시켰다 해도그 이론이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뉴턴 역학이 발표된 이후 그와 반하는 숱한 천문학적 관측들이 제기됐지만, 모두 기각됐다. 뉴턴 역학은 아인슈타인에 와서야 비로소 깨졌는데, 그것은 실험 결과 때문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뉴턴의 이론보다 더 완벽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과학에서의 이론과 실험의 이러한 관계를 환기시키면서 동시에 이런 이론에의 의존성은 대통령 선거 때 후보 검증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보통 유권자가 특정 후보를 지지할 때, 그 후보에 대한 흠결이 드러난다 해도 지지를 철회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오히려 그 검증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거나 후보가 적극적인 해명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론을 가장 잘 갖춘 후보”였다. 그에 대해 수많은 의혹과 검증 공세가 있었지만, 그걸 다 뿌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이명박을 물리칠 ‘이론’이 부재했고, 한두 가지 반격으로는 휘청하지 않을 만큼 이명박이라는 ‘이론’이 강고했음을 입증한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물리학의 용어로 ‘검증에 의한 후보의 과소결정’이라고 표현한다.
정치에서도 물리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론이 없는 관측이나 실험, 그리고 검증은 무의미할 뿐이다. 오히려 한두 가지 의혹으로 ‘이명박 이론’이 반증되지 않으면 그것은 그 이론이 옳은 것이라는 더욱 강력한 신뢰를 심어주게 된다. 다른 예로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역시 훌륭한 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회창 후보는 대통령이 되진 못했지만, 근소한 표차로 2위를 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렸던 상황변수들은 심각했다. 자기 아들의 병역 문제가 제기됐을 뿐만 아니라 IMF라는 환란, 이인제 후보의 출마, 김대중-김종필 연합 등 녹록치 않은 변수들이 계속 발생했다. 그럼에도 그가 그만큼의 표를 획득한 것은 당시 당선됐던 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훌륭한 이론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자신이 맡은 주제들을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풍성하면서도 유려하게 펼쳐나간다.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보완하면서 현실을 ‘두껍게’ 묘사한다는 것이 이 책의 큰 매력이라고 할 것이다. 저자는 과학을 사회로, 사회를 과학으로 환원시켜서 생각하지만 자신이 환원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결코 망각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지적 모험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목차

머리말

제1부 정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1
– 대통령 지망생에게 ‘물리학’은 전공필수
과학적 사고의 ‘불능’이 초래할 위험성 | 정치와 종교의 분리만 알아도 훌륭한 대통령감?
| 최소한의 상식과 최소한의 원칙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2
– 부패한 정치인이 한 방에 검증되지 않는 까닭
한두 가지 반격은 이론을 흔들지 못한다 | 이명박은 가장 ‘잘 갖추어진 이론’ | 정치에서의 뒤엠-콰인 명제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3
– 터무니없이 낮은 엔트로피, BBK 사건
과학자들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믿는 이유 | 엔트로피 이론으로 이해할 수 없는 BBK 사건
엉터리 과학논문보다 솔직한 고백이 낫다

정치에 대한 객관적 관찰은 가능한가?
-관찰의 이론 의존성
실험이 이론을 이길 수 없는 이유 | 새로운 실험결과는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 무능한 좌파정권이 나라를 망친다?

1인 1표는 자연의 원리?
-진화론과 우주론
우주는 팽창한다 | 비균질성에서 불평등성으로 | 1인 1표가 갖는 의미

제2부 문화

스필버그를 매혹시킨 물리학자
– 랜덜과 선드럼, ‘위계 문제’의 돌파구를 찾다
다섯 번째 차원이 모습을 드러내다 | 스토리 생산에서 자연과학이 절실한 이유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 생물학자가 만들어낸 영화
물고기 전문가의 강의로 만들어진 영화 | 인문학이 도와줘야 과학이 그럴듯해진다

과학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 과학 이론과 아름다운 스토리라인의 5가지 상관관계
과학과 TV 드라마의 공통점 | 과학의 아름다움을 떠받치는 다섯 가지

미세조정의 문제를 넘어선 한국 드라마
– 「태왕사신기」와 「주몽」의 차이점
판타지와 실사의 부조화 | ‘위계 문제’ 혹은 ‘미세조정의 문제’ | 스토리 일관성 없는 「디 워」
| 가장 과학적인(?) 김수현의 드라마

한국 영화, 제작비 100억 원에 과학 자문료는?
– 고전역학이 부족했던 「신기전」
‘인식’ 없는 수식으로서만 존재하는 과학 | ‘과학적’이지 않고 ‘무협적’이었던 「신기전」

제3부 사회

인류의 무지를 증명한 물질
– 우주상수가 정말 암흑 에너지일까?
인류의 무지를 극명하게 입증하는 물질 |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정체 | “왜 하필 지금 우주가 팽창할까?”

암흑물질도 살리지 못한 미국 경제
– 하우스만과 스투제니거의 암흑물질 설
해외투자가 바로 ‘암흑물질’ |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

과학자와 사주·풍수
– 과학적 원리로 설명한 배산임수
반증이 가능해야 ‘과학’ | 음양오행은 보편적 환경을 코드화한 것 | 사주에는 정량적 분석이 없다
과학이 말할 수 있는 풍수의 문제

정치·외교에도 과학이 필요하다
– 정량화와 모형화, 그리고 시뮬레이션
언론사는 왜 과학적이지 않은가 | 과학화 전투훈련이 이뤄낸 것 | 북한 군대가 정말 한국보다 뛰어날까?
국가 간 갈등은 과학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게임이론으로 분석한 미국산 쇠고기 협상
– 수학 이론이 말하는 성공적인 위협
협상의 과학적 조건에 대한 고찰 | 한국은 합리적인 플레이어인가? | 전문화해야 통합적 시야를 키울 수 있다

제4부 인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확률뿐이다
– 양자역학의 세계
에너지 덩어리로서의 빛의 성질 입증한 광자가설 | 양자역학의 정신을 실현하다 | 코펜하겐 해석의 탄생

중력 이론 없이 우주 연구가 가능할까?
– 한국의 첫 우주인
태곳적부터 짊어졌던 한국인의 ‘천형’ | 근본이 밑바닥인 한국 과학 | “우주여행은 보여주기식 운동경기”

양자역학과 관찰자
– 관측자의 중요성과 고착되지 않는 고유 상태
관측의 결정적인 역할 | “관측 없인 고양이도 어정쩡하게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리학 방정식
– 우주상수와 인류원리
질량이 있으면 시공간은 휘어진다 | 양자역학과 중력을 꿰뚫을 이론 | 미로에 빠지는 듯한 인류원리

‘인류원리’가 실종된 한국 정부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교훈
시스템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 자율성 | 로마 천 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여백’
| ‘인류원리’가 빠져 있는 쇠고기 협상

미리보기

부패한 정치인이 한 방에 검증되지 않는 까닭

관찰의 이론의존성과 더불어 과학에 대한 경험주의적 오해에 타격을 가한 것이 바로 뤼엠-콰인 명제다. 이에 따르면 하나의 실험적 사실에 대해 원칙적으로 무한한 이론과 가설이 존재할 수 있고 그 층위 또한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실험이 이론과 다른 결과를 냈다 하더라도 그 어긋남이 이론의 제1가설에서 기인한 것인지 혹은 하부의 수많은 보조 가설에 의한 것인지 논리적으로 확증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뒤엠-콰인 명제는 ‘증거에 의한 이론의 과소결정’으로 불린다. _28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이종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입자 물리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고등 과학원, 연세 대학교, 고려 대학교 등에서 재직했다. 현재 건국 대학교 상허 교양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번역서로 『최종 이론의 꿈』 ,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이 있다.

추천의 글

“인간은 도구적 이성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귀재들이다. 자연과학도가 경제를 넘나들며 쓴 이 책은 합리성이 아닌 합리화로 포장된 인간과 사회의 속살을 들춰내 현상 너머 본질을 꿰뚫어보려면 과학의 냉철함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곳곳에 쉽지 않은 내용들도 있지만, 독자가 반드시 이를 독파 해야만 하는 이유는 한국의 사회현상들을 과학 이론으로 설명한 것에 머물지않고, 사고체계의 차원을 한단계 높여주기 때문이다.”

_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

 

“국내 물리학계에서 인문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하는 소장학자들이 최근 몇 년 새 속속 등장하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이종필 박사는 그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탄탄한 이론 물리학으로 무상한 그이지만, 전형적인 물리학자들과는 달리 한국사회를 향한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전공을 통해 문제들을 짚어보려는 통섭적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이 책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물리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맛보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울 웃고 울고 고통하고 기뻐하는 여기 한국 사회에 왜 지금 당장 과학적 마인드가 필요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과학이 문화로 자리 잡지 못하고 사회를 겉도는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책이다.”

_장대익, 『동덕여대』 교수,『다윈의 식탁』저자, 『동섭』공동번역자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 사이에 명박산성보다 험준한 장벽을 가로놓는 이 험한한(?) 나라에서 인문·사회·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은 참으로 진귀하면서 소중하다. 그는 자연과학의 개념과 방법론을 직접 우리시대의 문제에 적용하고, 그럼으로써 전혀 의외의 방향에서 사고의 확장과 전환을 일으킨다. 종횡무진 이어지는 그의 탐구와 도전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_이범 교육평론가,『이범 공부에 1등하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