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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 유라시아 지정학을 결정지은 위대한 전쟁
  • 지은이 | 서영교
  • 옮긴이 |
  • 발행일 | 2015년 07월 23일
  • 쪽   수 | 816p
  • 책   값 | 38,000 원
  • 판   형 | 160*223
  • ISBN  | 9788967352288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고
유라시아 지정학을 결정지은
살수대첩부터 나당전쟁까지, 7세기 국제전의 그날들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들, 전장에서 눈부시게 빛났다가 순식간에 쓰러져간 장군과 수만 병사들, 극적인 승리와 믿을 수 없는 패배가 교차하는 순간,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그날의 전쟁들이 새롭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유라시아 지정학을 결정지은 제1차 동아시아 세계대전

획기적인 고대전쟁사 연구서가 출간되었다. 서영교 중원대 한국학과 교수의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 유라시아 지정학을 결정지은 위대한 전쟁 612~676』이다. 중국의 수·당시대, 한반도의 고구려·백제·신라, 바다 너머의 왜국, 중앙 초원의 돌궐·설연타·고창국, 그보다 먼 티베트 등 동아시아 대륙과 해양에 걸친 각국이 근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치열하게 존망을 다툰 ‘전쟁의 시대’를 새롭게 조망한 저작이다. 무대를 중원에서 동쪽으로 옮긴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쟁이 잦았던 이 시기 두 차례의 고구려 침공을 대가로 수나라는 무너져내렸고, 당이 등장해 한반도 삼국과 뒤엉켜 복잡한 외교전·심리전·실지전을 벌였다. 결국 많은 나라가 종말을 고하고 한반도 가장 끄트머리의 작은 나라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한반도 통일국으로 등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그 속에 담겨 있는지는 1000년도 훨씬 지난 지금에야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번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의 저자 서영교는 이 복잡다단한 시대를 세밀하게 되짚어 복원하면서 이 전쟁들이야말로 그 당시로서는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워 귀추를 주목한 ‘세계대전’이었으며 오늘날 한반도의 지정학을 최초로 결정지은 ‘위대한’ 전쟁이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최근 들어 ‘임진왜란’을 조선과 왜국의 전쟁이 아닌 세계전으로 바라보는 학계의 인식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데, 사실 그보다 훨씬 앞선 제1차 동아시아 세계전쟁은 7세기에 이미 치러졌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저자는 이미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펴낸 『나당전쟁사 연구』(2007, 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서 “나당전쟁 당시의 국제적 연동성”을 주목해 이러한 주장의 개요를 확립했지만, 지난 8년의 연구기간을 거친 뒤에 그것을 세부적으로 입증해줄 다양한 증거자료가 백화점처럼 들어찬 800쪽이 넘는 대작을 완성시켰다. 그 과정에서 『고구려, 전쟁의 나라』(2007), 『전쟁기획자들』(2008),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2010), 『고구려 기병』(2012) 등의 저서와 논문을 펴내며 각국사의 디테일을 완성했다. 특히 가장 최근의 논문 「『문관사림文館詞林』에 보이는 장원창蔣元昌과 장씨가문의蔣氏家門醫」(『역사학보』, 2014)에서는 백제 의자왕이 말년에 위암으로 추정되는 질병(반위反胃)으로 고난을 겪었으며 길고 긴 투병생활이 통수권의 약화를 불러 백제의 사령탑과 전투 의지를 와해시키는 과정을 새롭게 입증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이런 연구를 토대로 『국방일보』에 ‘7세기 국제전의 양상’을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3년 6개월간(2011년 1월~2014년 7월)이나 연재하여 완성한 결과물이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이러한 ‘문제틀’ 때문만은 아니다. 눈에 보일 듯이 손에 잡힐 듯이 당시의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여타 고대전쟁 연구서와의 큰 차별점인데, 그런 구체성이 팩션적 기교에 의존하기보다는 사료의 치밀한 고증에 기반한 확대 관찰을 통해 이미 형성된 ‘역사 문맥의 그물망’을 크게 출렁거리게 함으로써 이뤄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모든 역사는 ‘이야기’이듯 따로 흩어져 있는 역사적 사실을 ‘세계전’이라는 얽히고설킨 거대 서사로 엮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시의 국제정세에 대한 정교하고도 세밀한 이해, 연대기적 선후관계를 넘어선 내재적 인과관계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능수능란한 공간이동과 시점이동을 통해 각국이 처한 각자의 긴박한 처지를 묘사하고 있는데 물이 웅덩이로 모이듯 이야기가 눈덩이처럼 저절로 불어나는 것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쟁과 인간’ ‘전쟁과 경제’ ‘전쟁과 외교’ 등에 대한 인류학적 통찰이 그 이야기들의 고리를 더욱 바짝 죄어 튼튼히 엮고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전쟁지형, 공격 시기, 공성전과 농성전, 장창보병 대형, 보급선, 리더십 등 전쟁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충실한 묘사를 통해 그만의 드라마를 완성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 책이 탄생하게 된 ‘문제제기’의 양상과 ‘진실 추구’의 과정에 대한 저자의 진술을 간략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진실은 단순하다

신라가 세계 최강국 당나라와 싸워 이겼다고 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천하의 당 태종을 패배시킨 고구려도, 만만치 않은 백제도 결국 당나라에게 멸망당했는데 어떻게 신라만 살아남아 한반도를 통합했는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당전쟁이 시작된 670년 당나라 최정예 군대 11만이 칭하이 성 방면 티베트 고원 대비천大非川에서 발발한 결전에서 토번吐藩(티베트)군에게 전멸당했다. 대비천 전투에서 참패한 당의 장군은 고구려 총독이었던 설인귀薛仁貴였다. 668년 당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평양에 지배기구인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했고, 그 도호에 설인귀를 임명했다. 하지만 669년 안동도호부는 한반도 북부 평양에서 남만주 신성으로 치소를 옮겨갔다. 당이 한반도를 포기하고 만주로 지배 거점을 옮겼을 뿐만 아니라 그해 말 설인귀는 고구려를 떠나 토번군과 싸우기 위해 칭하이 호 부근 대비천으로 향했다. 당 주력군의 축이 만주에서 서역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이듬해 해발 3000미터 이상의 고도에서 설인귀는 모든 병력을 잃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토번군에게 전멸당한 11만 병력은 당 휘하의 동돌궐 기병이었다. 그들은 당이 포획한 전쟁기계였다. 당은 그들을 이용하여 서역과 칭하이, 북방 초원을 모조리 정복했다. 하지만 고도가 높은 그곳에서 천하의 동돌궐 기병도 힘을 쓰지 못했다.

신라가 상대방과 싸우기 이전에 당은 토번에게 강타를 맞고 쓰러져 링 위에 올라오지 못하게 되었다. 아니, 670년 당군의 전력 투사 방향이 서역으로 바뀐 것을 알아차린 신라가 당과의 싸움을 결정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더구나 실크로드 경영권을 둘러싼 당과 토번의 전쟁은 이것으로 끝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교역의 이권을 둘러싼 그 전쟁은 이후 150년간 지속되었다. 실크로드 전쟁은 현재 우리 민족의 모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환경이 되었다. 통일신라는 당 제국의 힘이 서쪽으로 쏠리는 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25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물론 라싸에 있던 토번 국왕 손챈감포松贊幹布도 한반도와 만주에서의 전쟁 결과가 자국의 생존과 번영에 직결된다는 것을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645년 9월 18일 당 태종은 고구려에서의 철수를 선언했다.

646년 5월경 토번의 사자가 장안 궁정에 나타났다. 그는 3곡斛의 술을 담을 수 있는 7척 높이의 황금 거위 주전자를 바쳤다. 손챈감포는 고구려 전쟁의 전말과 태종의 패배를 훤히 알고 있었고, 그를 비아냥대고 있었다. 고구려를 멸망시켰다면 그렇게 빨리 귀국할 수 없지 않겠는가. 패전의 스트레스로 혈압이 상승하여 뇌혈관이 터져 반신불수가 된 태종은 노회한 사위, 토번 국왕의 서신을 읽고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확실한 것은 중풍 환자가 된 태종이 고구려 정벌에 대한 집착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은 세계를 변모시킬 수 있었고, 토번의 운명도 바꿀 수 있었다. 641년 태종은 문성공주文成公主를 토번 왕에게 시집보냈다. 고구려와 전쟁하기 위해 서방에서의 안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티베트 고원의 패권을 놓고 히말라야 카일라스(수미산) 부근에 있는 양동국洋同國과 치열한 전쟁을 벌여야 했던 손챈감포도 당나라와의 평화가 필요했다.

이후 태종은 토번에 문화사절을 거듭 보냈다. 당의 발달된 문물과 과학기술이 토번에 유입되었고, 그것은 토번의 시스템을 고도화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고구려가 빨리 굴복하면 토번의 장래도 어두워질 것이다. 전쟁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고구려가 당을 얼마나 오래 버틸지도 중요했다. 그럴수록 당의 전력은 동북방 요동에 묶일 것이고, 당은 서방 토번에게 더 많은 혜택을 베풀 것이다. 토번의 국왕과 군부 수뇌부들은 이렇게 외쳤을 수도 있다. “고구려여 영원하라!” 사실 당이 고구려와의 전쟁에 매달려 있는 동안 토번은 티베트 고원을 통일하고 중국과 접경한 칭하이 지역을 점령했으며, 실크로드 타클라마칸 사막 남로의 전략적 요충지를 모두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당의 지배를 받고 있던 토번계 민족들을 모두 포획했다.

2013년에 「연개소문의 대對 설연타薛延陀 공작과 당 태종의 안시성 철군」이란 논문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았다. 사마광司馬光은 『자치통감』을 찬술하면서 후세를 위해 자신의 견해에 상충되는 자료들을 모아 『고이考異』란 책으로 만들었고, 중국 중화서국 출판사가 그것을 시기에 맞춰 편년체인 『자치통감』에 주석으로 달았다. 『고이』에는 지금 사라진 당나라 시대 실록의 편린들이 남아 있다. 저자는 그 가운데 『태종실록』과 『고종실록』의 편린에서 연개소문이 몽골리아의 설연타 제국 매수에 성공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았다. 645년 당 태종이 안시성 앞에 있던 기간(6~9월)에 연개소문에게 매수된 설연타 유목기병 10만이 당의 수도권 북부인 하주夏州(오르도스)를 공격했다.(7월경) 이는 태종을 망설이게 했고 고구려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는 기세를 꺾었다. 설연타의 개입은 결국 태종을 고구려에서 철수하게 만들었다. 안시성이 살아남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안시성주가 아니라 연개소문이었다.

목차

머리말

제1부 태종의 등장과 동아시아
수나라에 고구려 공포증이 퍼져나가다│고구려는 이간질을 하고, 수는 전쟁을 준비하다│고구려의 획책에 수나라는 노심초사하다│신라가 고구려·백제·왜의 외교망에 갇히다│고구려 침공에 실패한 수나라 나락에 빠지다│이세민, 군웅할거를 수습하다│당나라, 저자세 외교로 생존하다│이세민이 아버지와 형을 몰아낸 뒤에 황제로 즉위하다│삼국에 희망과 기회, 두려움이 교차하다│고구려에 재앙의 전조가 덮치다│영류왕 대당의 암운 아래서 숨죽이다│중국 황제인 태종이 유목민의 칸이 되다│진평왕은 어떤 왕이었는가│덕만이 위기에 빠진 신라를 상속받다│‘해동의 효자’가 외척의 후원으로 왕위를 계승하다│실크로드를 손에 쥔 당, 서역국으로 달리다│돌궐의 용병이 토욕혼 정복을 이끌다│격변의 시대 장군들이 전면 활약하다│전란의 시대에 여왕은 종교로 빠져들다│선대왕의 복수를 꿈꾸며 전쟁을 하다│마 캐던 아이 서동, 왕족이 되다│백제가 지리산을 주파해 신라를 공격하다│패자는 침묵하고 승자는 통곡한다│백제 무왕, 신라전 연패의 사슬을 끊다│쇼토쿠 태자의 죽음 이후 전세가 변화하다│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제로 징집하다│낭비성에서 전세를 역전시키다│혼인을 놓고 토번·토욕혼·당이 전투를 벌이다│당군이 사막을 가로질러 승리하다│청렴이 아닌 능력으로 간택하다│외교사절이 스파이로 암약하다│중앙아시아와 몽골 초원에 파란이 일어나다│유목민에게서 배운 기술을 전술로 만들다│글필하력이 충성을 맹세하다

제2부 반란의 계절
쿠데타에서 모든 것은 속도가 좌우한다│연개소문이 왕권을 무력화하다│연개소문에게서 쿠데타 통치 비법을 배우다│고구려를 궁지로 내몬 시발점은 무엇인가│백제가 신라의 40개 성을 점령하다│성주가 비행을 일삼으니 지휘체계가 붕괴되다│여러 성이 차례로 함락되고 연기가 피어나다│신라 조정에 존망의 위기가 밀려오다│무명 노장 김유신 신라의 구원자로 등장하다│왕자 간에 권력 다툼과 쿠데타가 일어나다│반란의 물살이 동아시아를 휩쓸다│부전자전의 현실로 고통받다│이세적이 전면 부각되다│백제의 운명은 어디로 가는가│선덕여왕의 퇴위를 제안하다

제3부 연개소문과 태종의 전쟁
당나라, ‘무한전쟁’에 불을 붙이다│643년, 당과 고구려가 격돌하다│회원진에서 도발하고 몰래 요하를 건너다│보급이 필요 없는 유목민 기병을 동원하다│고구려의 천리장성 무용지물이 되다│적 접근로를 오판하여 핵심거점을 잃다│비사성 공략에 요동성이 요동치다│연개소문, 병력을 재배치하다│비장하게 사수하던 성이 적의 식량 공급길로 넘어가다│공병을 앞세워 지옥의 늪지대에 무혈 입성하다│요하 넘은 태종 돌아갈 길을 막고 ‘배수진’을 치다│장애물을 야금야금 제거하다│당나라의 포차 공격과 ‘일진일퇴’│물의 도시 요동성, 불에 쓰러지다│남풍이 불고 불화살이 날아오니 요동성에 불길이 번지다│성주는 공포에 떨었지만 군사들은 용맹을 떨쳤다│돌궐 기병, 고구려 기병에 맥을 못 추다│혈투를 벌이는 부하들 등 뒤에 백기를 꽂다│태종은 왜 입장을 바꿨을까?│황제 한 사람만을 노리다│말갈 기병이 돌궐 기병에 첫 패배를 안기다│군부의 수장 이세적이 지휘권을 반납하다│병사 1만 5천명을 미끼로 삼아 포위망을 만들다│태종은 포로를 어떻게 처리했나│당나라의 굳히기인가 고구려의 뒤집기인가│황제의 존재가 작전 수행에 걸림돌이 되다│설연타에서의 정권 교체가 당군을 압박하다│태종이 마침내 말머리를 돌리다│당이 패전하자 선덕여왕은 위기를 맞다

제4부 김유신, 유능한 독재정권 창출
김유신이 반란을 진압하고 신라를 장악하다│신라 신정권이 고비를 넘기고 뿌리를 내리다│김춘추의 문화적 접근이 환심을 얻다│나당동맹의 서곡이 울려퍼지다│김춘추와 그 아들 문왕이 대당외교를 펼치다│전쟁을 종식시킬 대안은 더 큰 전쟁이다│태종의 죽음은 비보인가 낭보인가│고구려, 말갈 기병을 이끌고 동몽골에 진출하다│장창보병이 서돌궐 기병을 격파하다│당과 고구려가 시라무룬 초원에서 마주하다│당나라가 백제 침공을 결정하다

제5부 당의 삼국통일전쟁 개입과 토번의 등장
신라를 품고 백제의 심장을 겨누다│계백이 처자식을 죽이고 전장에 나가다│반굴과 관창, 스스로를 바쳐 위국충절하다│백제, 당군의 함대에 질려버리다│당군 상륙 열흘 만에 백제 700년사가 무너지다│백제 부흥군이 생존을 위한 항쟁에 나서다│몽골에서 왜까지 반당공작을 펼치다│방효태와 그 아들 13명이 군사 수만 명과 함께 전멸하다│백제 부흥군의 내부 분열로 당군이 기사회생하다│위기의식에 휩싸인 왜가 백제 구원에 나서다│마침내 백제가 무너지고 삼국통일의 서막이 열리다│측천무후, 봉선의식을 기획하다│연개소문이 죽자 그 아들 삼형제가 내분을 일으키다│연남생이 휘하 세력을 이끌고 당에 투항하다│전쟁의 암운이 토번에서 당으로, 당에서 고구려로 이동하다│내부의 배신으로 16개 성이 차례로 무너지다│지배층의 분열·투항·배신으로 고구려가 멸망하다│혜성이 고구려의 하늘을 가로지르다│고구려, 50만 당군에 백기를 들다│고구려를 치고도 토번을 치지 못하다

제6부 약자가 선택한 전쟁, 나당전쟁
당 군사력이 서역에 묶이자 신라는 전쟁을 결심하다│전란에 휩싸인 백성들의 삶은 고통뿐이었다│고구려 부흥군을 동원하여 당과 맞서다│당나라, 토번에게 실크로드를 잃다│대동강에서 당 군량선을 격침시키다│석문에서 신라가 당에 참패하다│당 보급선단이 격침되자 말갈 군대가 퇴각하다│긴장관계가 왕권을 강화시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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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618년 9월 고구려 영양왕이 죽었다. 중국을 통일한 수 제국에 정면으로 맞선 그의 담대함은 불가사의할 정도다. 그는 일생을 수나라와의 끝없는 긴장과 전쟁 속에 보냈고, 결국 승리했다. 그는 사람을 잘 부렸다. 부하를 신임하고 전쟁터에서 전권을 위임했다. 612년 명장 을지문덕이 역사 전면에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영양왕의 동생이자 훗날 영류왕이 되는 건무가 대동강 어귀에 상륙한 수나라 보급선단을 격퇴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_39쪽

 

전투의 공간에도 적정 병력이 있다. 2인용 참호에 5명이 들어가면 효율이 떨어지듯이 백제는 신라가 요새화한 운봉 분지에 지나치게 많은 병력을 투입한 꼴이 됐다. 백제군의 대열은 신라군보다 밀집돼 있었다. 양측의 궁수들이 화살을 일제히 발사했다고 해도 백제군이 더 많은 피해를 봤을 것이다. 백제군의 퇴각이 시작됐다. _177쪽

 

진평왕은 함안에서 신료들과 함께 죽은 귀산을 맞이했다.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한 자들을 왕이 직접 보기 위해 왕경에서 함안까지 마중나간 것은 아니었다. 전쟁 중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중상을 당한 귀산 등이 진평왕을 만나기 위해 함안까지 갔다고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막성 전투 종료 후 그곳에 있던 상당수의 신라 병력이 왜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함안 쪽에 재투입되었고, 그 행렬 속에 귀산 등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때도 규슈에는 왜군 2만5000명이 배치되어 있었고, 언제 함안 지역에 상륙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당시까지도 신라에 대항하는 가야 세력들이 잔존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군이 왕경인 경주를 직접 침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왜군이 함안에 상륙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사실 이외에도 유력한 근거가 있다. 당시 신라에 대항하는 가야 세력들이 왜의 원군을 기다리며 잔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_182쪽

 

이듬해인 603년 왜국에 중요한 인사이동이 있었다. 그해 2월 신라 원정군 총사령관 구메황자가 죽었고, 4월 그 자리에는 다가마황자當摩皇子가 임명됐다. 하지만 백제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는지 아니면 패전의 상처가 매우 컸던 것인지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고구려가 군대를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_184쪽

 

김춘추는 독재자 연개소문을 보고 혁명을 꿈꾸게 됐다. 그는 이미 일사불란한 독재체제의 강력함을 뼈저리게 느낀 바 있었다. 그해(642) 대신과 왕족들을 추방하고 독재체제를 수립한 백제 의자왕이 신라를 급습해 신라 서부 지역 총사령부인 대야성이 함락됐고, 김춘추는 딸과 사위를 잃었다.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있는데도 신라는 다수의 귀족회의체 화백을 통해 만사를 처리하고 있었다. 분쟁의 소지가 많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느라 결정이 늦어졌다. _284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서영교

1967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동국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박사과정 중 「신라장창당의 신고찰」이란 논문을 발표하면서 전쟁사 연구에 몰입했다. 박사논문을 수정하고 보강한 저서 『나당전쟁사 연구-약자가 선택한 전쟁』은 2006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 고대사학자 중에서는 보기 드문 전쟁 전문가이며 전쟁 관련 다큐멘터리를 1000기가바이트 이상 소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깃발, 기병, 등자 등 고대 전투에서 중요했던 요소들의 쓰임새와 변천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으며, 6~7세기 중국·티베트·돌궐·한반도가 뒤엉킨 국제관계와 전쟁을 흥미롭게 그리는 『동아시아 세계전쟁』이라는 대작을 집필중이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지는 흥미로운 내용들을 토대로 국제신문에 「전쟁과 시장」이라는 시리즈를 매주 연재하고 있다. 충남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중원대학교 박물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고구려, 전쟁의 나라』, 『전쟁기획자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