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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자신으로 살아갈 길을 찾다 조선 여성 예인의 삶과 자취
  • 지은이 | 이지양
  • 옮긴이 |
  • 발행일 | 2009년 02월 24일
  • 쪽   수 | 240p
  • 책   값 | 12,000 원
  • 판   형 | 140*205
  • ISBN  | 9788996215523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예인들 12명의 삶 재조명
기생이 아니라 ‘예술가’로 평가한 새로운 여성사적 시각 

[나 자신으로 살아갈 길을 찾다-조선 여성 예인들의 삶과 자취]는 조선시대를 대표할 만한 각 분야 여성 예인藝人들의 삶을 추적하고 그들이 남긴 예술작품과 예술적 삶을 음미하는 책이다. 조선시대의 예인이라면 정확히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당시엔 예술가의 개념이 그다지 뚜렷하지 않았고 양반 사대부들이 예술과 같은 문화행위를 독점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예술가들이라면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그 외에 매창이나 황진이 같은 몇몇 기생들을 떠올리기 쉽다. 즉, 거론될 만한 여성 예인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예인이라는 것은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연예인’을 의미한다.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가지고 예술적 자아를 고취시킨 사람임과 동시에 음주가무의 풍류문화 속에서 뛰어난 기예로 이름을 날리며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톱스타’ 연예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황진이, 상림춘, 석개, 추월, 향란, 운심 등 책에 등장하는 12명의 예인들은 비록 그 당시에는 천한 기생으로 불려진 사람이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예술가와 연예인이라는 하나의 전문직으로서 그 삶을 재음미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이 갖는 특징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여성사적 관점에서 갖는 의미이다. 한말근초의 민속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이능화 선생이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1927]에서 기생을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고 각인시킨 이래 기생의 문화적 역할은 양반 풍류문화를 뒷받침하는 추임새 정도로 여겨져 왔다.
사실 기생이라는 존재는 엄격한 유교문화가 일탈하고 즐길 수 있는 합법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생이 양반들의 유흥과 특히 성적 욕구를 만족시킨 것으로 인식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 집단 속에서도 여러 가지 유형이 나뉜다. 창녀娼女, 의녀醫女, 침비針婢, 갈보, 유녀遊女, 사당패, 작부酌婦 등의 명칭이 많은 것도 그들의 직업과 역할이 세분화되어 있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책은 이런 기생들 중에서도 뚜렷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모색한 이들을 선별해서 다룸으로써 성적 보조물로 여겨진 기생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려 했다는 데 첫 번째 의의가 있다. 신분에 국한지어서 개별 인물들의 개별적 자질과 서로 다른 삶의 흔적을 보듬지 못하는 우리의 무심한 역사인식을 긴장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의 역할이 현모양처나 첩, 기생 등의 명칭에서 보이듯 가족이나 아들, 남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 ‘자신’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여인들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사의 인식 지평을 확장하는 역할도 충분하다고 보인다.
저자는 [어우야담]에 나오는 황진이의 사례가 이것을 잘 말해준다고 말한다. 황진이는 어느 날 천하의 명산이라는 금강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동행자를 물색해 재상가의 아들인 이생에게 하인 없이 그냥 단 둘이서만 산행을 하자고 제안했다. 의기투합한 둘은 길을 나서서 몇 달간 절에서 걸식하며 금강산 곳곳에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다녔다. 때로는 황진이가 중에게 몸을 팔아 양식을 충당하기도 했고, 같이 간 이생을 일컬어 “첩에게 종이 하나 있는데 몹시 굶주렸습니다”라고 해서 양식을 얻기도 했는데 이생은 이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둘은 1년 남짓 돌아다닌 끝에 다 떨어진 옷에 새까매진 얼굴로 돌아왔다. 아무런 형식도 걱정도 없이 자유롭게 여행한 그 풍류의 정신이 ‘담대하고 호쾌한 기생’이라고 일컬을 만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황진이가 노래 잘하기로 이름난 선전관 이사종과 우연히 만났다가 6년간 함께 사는 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 황진이는 3년간 첩의 예를 다하며 이사종의 집에서 그의 일가를 먹여 살렸고, 나머지 3년은 이사종이 황진이를 거둬 먹이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6년이 지나자 둘은 작별하고 서로의 길을 갔다. 저자는 황진이가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자 주도형 계약결혼’을 했던 것인데, 황진이도 이사종도 그야말로 쿨하기 이를 데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자 주도형 계약결혼’ 등
자기 주도적 삶으로 ‘복합마이너리티의 덫’ 떨쳐내 

제3장 ‘늙은 원숭이처럼 못생긴 명창 석개’의 이야기는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집요하게 추구해서 얻어내는 예술가적 자아를 조명하고 있다. 석개는 정말 못생겼다. 유몽인이 [어우야담]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늙은 원숭이 얼굴에다 좀 대추나무로 만든 화살같이 째진 눈을 한 여자 종”이었다. 석개는 송인이라는 세력 있는 부호의 집에 어려서 들어가 나무통을 이고 물 길어오는 일을 했다. 그런데 그녀는 물을 길러 우물에 가면 물통을 우물 난간에 걸어놓고는 종일 노래를 부르다가 저녁에 빈 물통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물을 캐오라고 하면 광주리는 들판에 놓아둔 채 노래를 불렀다. 작은 돌멩이를 많이 주워 모아놓고 노래 한 곡 부를 때마다 돌멩이 하나를 광주리에 집어넣었고, 다 집어넣으면 다시 노래 한 곡조에 돌멩이 하나씩을 들에 던지기를 반복해 날이 저물어서야 빈 광주리를 들고 돌아왔다. 매를 때려도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한 석개는 결코 쫓겨나지 않는다. 그 대신 주인 송인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노래를 배우게 됐고, 허균이 [성옹지소록]에 “노래로는 기생 영주선과 송여송의 여종 석개를 모두 제일이라 하였다”는 기록을 남기게 만든다.
자기 주도적인 결정으로 삶을 가꾸어나간다는 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예인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제9장 ‘함흥 기생 가련이’의 이야기는 그 정점을 이룬다. 함흥의 기녀로서 이름이 ‘가련可憐’이란 이가 있었는데,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으며 성격이 소탈하고 기개가 있었다. 시문을 잘 외웠고, 술을 잘 마셨으며, 노래를 잘할 뿐 아니라 검무에도 능하고, 거문고를 타고 퉁소를 품평하기도 잘하여, 바둑과 쌍륙에도 능하였다. 모두 그를 ‘재기才妓’라고 일컬었는데, 스스로는 여협이라고 자부했다.
저자는 예인으로서 가련의 진정한 매력은 그가 짝을 선택하는 기준에 있다고 말한다. 가련은 함흥에서 기녀 생활을 십 년 넘게 해서 요즘 식으로 치자면 고위 관료 및 정치인, 군 장성·재벌, 그리고 그들 자제들인 ‘오렌지 족속’들을 두루 경험했다. 하지만 가련은 그런 외적인 조건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자기 나름으로 자기 짝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이 ‘빛 좋은 개살구’인지, 무엇이 자기 삶에 ‘진정한 행복’인지, 혼란 없이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기준은 이랬다.

시에 능하면서 술을 마실 줄 모르는 자는 내 짝이 아니요, 술을 잘 마시면서 노래에 능하지 않은 자는 내가 좋게 여기는 바가 아니요, 노래에 능하면서 거문고를 타지 못하는 자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요, 거문고를 잘 타면서 바둑에 능하지 않은 자는 나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요, 바둑에 능하면서 춤에 능하지 못한 자는 나의 맞수가 아니요, 쌍륙과 퉁소에 이르기까지 모두 내가 능한 바를 능한 이후라야 바야흐로 ‘이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녀는 예인으로서의 최고의 맞수를 배필로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런 사람을 만나 둘이 밤새 퉁소를 불고 거문고를 타고 바둑과 쌍륙을 하며 맞수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자 남자가 구석에 가서 눕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의심스러워 확인해보니 고자였다. 어렵사리 찾았다 싶어서 한껏 좋아했다가 함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배필이 아님을 알게 되니 가련은 “하늘이여, 이 사람이여”라고 통곡을 했다. 조선후기의 문인 이옥은 자신의 저서에 이 이야기를 소개하며 특이하게도 가련을 “통곡을 잘한 기녀”라고 평하고 있다. 지금까지 황진이와 석개와 가련의 세 이야기를 잠깐 살펴보는 중에서도 드러나듯, 이 책에 소개되는 기녀들은 자신만의 개성으로 주변을 압도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갖는 의미를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렇게 자기 내면에서 뿜어나오는 정열로 변화의 파노라마를 펼쳐냄으로써 사람들을 압도한다. 그리고 그 힘으로 자신들이 처해 있던 온갖 악조건-천한 신분, 극단적인 가난, 차별 받는 여성, 배우지 못한 존재-을 훌쩍 뛰어넘어버린다. ‘복합 마이너리티의 덫’을 벗어나버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빠져나가 자유롭게 자기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성공한다.”
(/ 머리말 중에서)

 

조선의 가장 고급한 풍류·연예문화의 일단 엿봐
기생에게 바쳐진 문객들의 시가 쌓여 시첩을 이루다 

둘째, 풍류문화와 관련된 부분이다. 뛰어난 예술은 그것을 인정하는 문화적 풍토 속에서 성장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예인들이 고급한 풍류문화 속에서 충분히 존중받고 그들만의 길을 살아나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예술가로서의 기생들이 당대의 뛰어난 문인들과 어떻게 어울리면서 높은 수준의 교감대를 형성하고, 이것이 문화적으로 후대에 어떻게 계승되어왔는지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기생 개개인의 삶을 열전 형식으로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풍류문화와 연예문화의 일단을 밀도 깊게 묘사함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시한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풍류와 관련하여 흐르는 물도 차갑게 다독였다는 상림춘의 경우를 보자. 상림춘이 유명해지고 문헌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참판 삼괴당 신종호의 시 때문이었다. 상림춘이 종루 곁에 살고 있을 때 신참판이 그곳을 지나며 즉흥적으로 이렇게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제 오교 머리에 아지랑이 버들가지 비스듬한데 / 느지막이 바람 부는 날, 더욱 맑고 따뜻해지네 / 담황 비단 열두 주렴에 미인은 옥과 같고 /청색 패옥 찬 사신詞臣은 말이 가는 대로 지나간다.”

이 시는 금방 퍼져나가 애송되었고, 그에 따라 상림춘의 이름도 배나 값이 뛰었다. 시의 행간에 봄날의 정취와 설렘, 그리움과 관조하는 여유로움이 절묘하게 스며 있으니, 어찌 애송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시를 어떤 호사가는 그림으로 그리고, 그 그림 끝에 이 시를 써넣었다 한다. 그 뒤에 판부사 정사룡이 7언 율시를 지어주고, 우의정 정순붕, 영의정 홍언필, 우의정 성세창, 찬성 김안국·신광한 등 여러 공이 연이어 이 시에 화답하여, 결국에는 시첩을 이루었다. 상림춘에 바쳐진 양반들의 시로 책이 한 권 만들어진 것이다. 심수경은 [견한잡록遣閑雜錄]에 이런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나도 소싯적에 상림춘을 보고서 책 끝에 시를 쓴 일이 있으나,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적고 있다.
상림춘이 거문고를 타며 활동할 때 이렇게 최고의 문인들한테서 멋진 시들을 받았기 때문에, 그녀가 죽은 다음에도 그 시들에 차운하느라 쟁쟁한 문인들의 시가 또 쓰여졌다. 송인의 [이암유고?庵遺稿]에서 그리고 18세기의 학자 황윤석의 문집 [이재유고?齋遺藁]에도 상림춘의 이름이 거론된 시가 있는 것을 보면, ‘문필의 풍류’란 그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 것인가!
한 시대를 풍미한 이 쟁쟁한 시들은 모두 상림춘의 존재가 이끌어낸 것이다. 이 얼마나 긴요한 만남인가! 문필의 힘을 만나지 못했다면, 금기 상림춘의 존재는 역사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저자는 “그런 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술가와 애호가, 예술가와 후원자의 만남이란 보통 사건이 아닌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삶의 고통을 마비시켜버리는 듯한 노래
기녀의 것이라고 하기 힘든 ‘고급한 발상과 정서’ 

셋째, 양반들의 이런 열광적인 환호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저자가 머리말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이들 여성 예인들의 삶이 어떤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우리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남루한 차림에도 불구하고 동작이 아름다워 생기가 뿜어져 나오고, 노래를 시작하면 삶의 고통을 마취시켜버리곤 했다. 판에 박은 듯 되풀이되는 지루한 일상과 그저 무난하게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를 찌르며, 뭔가 통쾌한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들의 말과 행동은 반드시 유익하거나 도덕적이지 않았고, 반드시 진실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보통 사람들보다 생기가 넘쳐났고,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섯째, “삶의 고통을 마비시켜버리는 듯한” 노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저자는 여성 예인들과 그들과 교유했던 문인들이 남긴 시편들을 인용하면서 우리를 당대의 높은 풍류정신의 한가운데로 이끌고 있다. 황진이가 판서 소세양을 송별하는 자리에서 읊었다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누각 높아 하늘 아래 한 자요 / 사람 취하여 술은 천 잔이라 /흐르는 물은 거문고에 화답하듯 차갑고 / 매화는 피리 소리 속에 향기롭네 / 날 밝아 서로 헤어지고 나면 / 정은 푸른 물결과 길이 흐르리”

이 시에서는 눈물이 범벅되거나 매달려 징징거리는 그런 이별의 정서가 없다. 아쉬움이 담담하게 절제된 가운데 “정은 푸른 물결과 같이 길이 시간 속에 함께 흘러가리라”는 유유하게 큰 정서가 있다. 저자는 “이런 시가 어떻게 흔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기녀의 정서라고 하기 힘든 참으로 고급한 발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음식·차·바둑·골패의 달인이었다는 일지홍의 시에서도 이런 정조는 확인된다. 일지홍은 18~19세기 성천 교방에 있었던 기녀로 한재락은 [녹파잡기]에서 그녀에 대해 “눈동자가 샛별처럼 반짝이고 눈썹이 봄날의 산처럼 산뜻한데, 성품이 굳세고 곧아 속되지 않다”라고 캐리커처를 해두었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 날 일지홍이 이렇게 탄식했다고 말한다. “제가 천성이 남에게 굽히질 못합니다. 기생들 속에 묻혀 있으면서도 다른 이가 문에 기대어 웃음을 파는 꼴을 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싸늘해지고 꺼리는 기색이 얼굴에 드러납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별]이란 시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말은 강선루 아래에 매어놓고 / 은근히 다음 기약 물어보네 / 이별 자리엔 술이 다했는데 / 꽃 지고 새 우는 때로구나”

저자는 이 시 역시 눈물이나 원망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별을 담담하게 하고 다음 기약을 물어보는 정서는 황진이를 연상시키며, 모든 것이 끝난 듯 막막한 심정을 술도 다하고 꽃도 지고 새가 우는 풍경 속에 담아내고 있어 참으로 잘된 이별시라고 할 만하다고 평했다. 실제로 일지홍은 매우 품격 높은 시를 사랑했는데 당시의 선비들이 과거공부의 교과서처럼 사용했던 [당시품휘唐詩品彙]에 대해 “그런 것은 재치와 사고력이 없어서 볼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 유명한 에피소드다. 그런데 당시 관서 암행어사로 평안도 일대를 순시하던 심염조가 이 말을 듣고 일지홍에게 당시 청나라의 최첨단 유행 시풍이었던 종성과 담원춘의 시를 권해주었다고.
그런가 하면 비단을 펼쳐놓은 듯 신묘한 시를 쓰기로 유명했던 계랑은 자신을 유혹하려는 나그네에게 이런 시를 지어 보여서 떨쳐낸다. “시인이 그윽하고 한가한 뜻 미처 알지 못한 채 / 지나는 구름을 가리키며 잘못 이를 때가 많지요”라는 구절로 끝나는 시다. 즉, 계랑 자신은 고요히 한가롭게 살아갈 뿐, 정열적인 사랑을 나눌 만한 여인이 아니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다. 저자는 절조 있고 개결한 계랑의 성품과 한편으로는 애정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그녀의 깊은 철학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만나보는 조선 여성 예인들의 은근한 속정 넘치는 사랑 이야기와 “나 자신으로 살아갈 길을 찾는” 옹골찬 이야기는 여러모로 기생이라는 존재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여지를 안겨준다. 신분제와 각종 제약이 많았던 시대에도, 그 한계 조건 안에서도 이렇듯 멋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도 들게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그들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느낄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은 근대 이전의 신분사회에서 천민 신분으로 살던 사람들이기에, 요즘의 예술가나 연예인과는 확실히 다른 역사 현실 속에 살았다. 물론, 삶의 기본 조건은 뚜렷하고도 선명한 차이가 있다. 지금은 우선 신분사회가 아니고, 남녀 차별도 완화되었고, 경제적 생산 체제도 농경사회에서 후기 산업사회, 소위 말하는 지식정보사회로 진입했으니, 시대적 차이는 현격하다. 하지만 그들이 각기 자신이 처한 사회의 환경적 굴레랄까, 삶에 겹겹이 쳐진 굴레를 오직 자신의 예술적 역량으로 단숨에 벗어나는 점만은 공통된다. 그리고 오늘날 연예인들은 이들의 삶에서 뜻하지 않게도 많은 것을 배우고, 공감하고, 깨닫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예인의 정체성은 어떻게 가져야 좋을지, 예인의 정신과 인간적 풍모란 어떤 것인지, 느끼게 되고 배우게 되는 점이 있을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파편과도 같은 작은 조각들로 만들어진 책
예술가의 내면을 읽어내는 섬세한 심리묘사 

끝으로 이 책은 참으로 힘들게 모아진 정보들을 통해 어렵게 완성될 수 있었다. 기녀들은 하층 천민이었기에 직접 자기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기록을 별반 남기지 못했다. 그들에 관한 자료라는 것도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아주 조금씩, 극히 작은 파편으로 남아 있어서, 논증적 연구 대상으로 적합한 증거 자료가 되진 못한다. 저자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처음에는 이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노래 기생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으면 그가 불렀던 노래의 악보도 있어야 연구하기 좋으며, 춤춘 기생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으면 그가 춤춘 무보舞譜도 남아 있어야 연구가 될 텐데, 사실 그런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먹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인식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집의 처마 끝에 제비가 둥지 짓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제비는 정말 쓸모없어 보이는 허접한 것들을 물어다 날랐다. 지푸라기, 돌, 나뭇가지, 진흙덩이 같은 그런 쓸모없고, 보잘것없는 그런 것들을 물어다가 둥지를 지었다. 그런데 그 둥지가 막상 다 지어지고 나면 무척 견고했다. 폭풍을 견디고, 장맛비를 견디고, 가혹한 더위며 추위를 견뎠다. 제비가 둥지를 떠난 뒤, 동네 아이들이 그 둥지를 떼어내 밟고 올라서서 아무리 쿵쿵 뛰어도 부서지지 않았다.”
(/ 머리말 중에서)

저자 자신도 보잘것없는 지푸라기, 돌, 나뭇가지, 진흙덩이 같은 이런 자료들을 모아 둥지를 만들어보기로 생각한 것이다. 문학작품으로 연구되기도 어렵고, 음악으로 복원될 수도 없지만, 그냥 한번 읽어보고 다들 제외해버리는 이런 자료들을 모두 모으면 우리나라 여성 예인들의 삶과 예술활동에 대한 형체가 어느 정도 생겨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나라의 예인들에 대해 뭔가 이런 소박한 제비둥지라도 하나 만들어두면, 나중에 정말 솜씨 있는 분이 새로운 공법으로 멋진 빌딩을 올려주지 않을까 하는 저자의 바람은 겸양일 따름이다.
이 책은 어려운 내용도 없고 쉽지만 자극적인 내용들은 아니다. 물론 눈길을 끄는 일화들도 등장하지만 책 전체가 예술가의 내면을 읽어내고자 하는 의지로 추동된 것이어서 매우 팽팽한 긴장감까지 들고 있다. 그래서 속도내지 말고 천천히 조심조심 눈도 한 번씩 감아가며 읽어야 그 진정한 맛이 우러나온다.

목차

머리말

·가을바람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오
– 호쾌한 기녀, 황진이

·명공과 거경들의 시심을 울리다
– 금기 상림춘

·한 곡조 뽑으면 광주리에 돌 하나
– 늙은 원숭이처럼 못생긴 명창 석개

·높이 뜬 구름도 홀연 멈추어 서고
– 여자 명창의 대명사, 평양의 추월

·신묘한 글귀는 비단을 펼쳐놓은 듯
– 금과 함께 묻힌 계랑, 그리고 복랑

·홀로 춤추는 거울 속 난새
– 「사미인곡」 잘하는 추향이

·꾀꼬리, 향란의 새 곡조 질투하네
– 평안도 명창, 「관서별곡」 잘 부르는 향란이

·즐거움을 견딜 수 없어 뛰어내려 죽을 테요
– 밀양의 검무 기녀 운심이

·조선 여협의 이상형
– 함흥 기생 가련이

·능히 만남을 이룬 이 몇이나 있으리
– 노래 잘하는 기녀 계섬이

·성천 교방 능파선자의 취향
– 음식·차·바둑·골패의 달인, 일지홍

·시 읊조려 구름 멈추는 노래를 짓네
– 북관의 시인 취련이

·이런 아들이 있었구나, 기생 어미에게

참고문헌

미리보기

흔히 ‘황진이’하면, 재예가 뛰어나면서 색기가 자르르 넘쳐흐르는 여인을 떠올린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황진이는 모두 그런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런데 옛 문헌에 나오는 그녀는 딴판이다. 옛글에는 진이의 미모보다는 총명함, 총명함 보다는 호쾌한 성격이 더욱 뚜렷하게 그려져 있다. 그렇게 기록한 선비의 인간관이 그랬던 것인지, 여성관이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황진이 자신이 원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강렬한 개성을 뿜으며 자유롭게 생을 연소했기에 그 한 조각 파편이 그렇게 남은 것인지는 모른다. _13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이지양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국대학교, 부산대학교, 연세대학교에서 연구교수를 역임. 현재 성균관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 저서로 『홀로 앉아 금을 타고-옛글 속의 우리 음악 이야기』, 『나 자신으로 살아갈 길을 찾다 – 조선 여성 예인의 삶과 자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