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아
2019.04.25
HOLY SHIT에 관한 여담들
편집을 하다 보면 책 뒤표지나 보도자료에는 못 쓰는 여담이 쌓인다. ‘실무자들’이란 제목으로 책이라도 내고 싶을 만큼 기상천외한 이 대모험담들은 지나고 보면 정말 (여러… 의미로…) 재밌다. 그렇다고 이 재밌는 이야기들이 책의 재미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대개는 편집자들끼리 떠들 때나 재밌는 것들이니까. 여담들과 책의 재미는 정말이지 아무 상관이 없다. 딱 한가지 경우만 빼고: 그 여담들이 책 자체에 관한 것일 때.

 

『HOLY SHIT: 욕설, 악담, 상소리가 만들어낸 세계』를 작업할 때 그랬다. 이따금 메신저로 동료 편집자나 친구에게 책 구절, 구절을 퍼나르곤 했다. 가령 이런 부분들:
악담을 하며 상대를 “똥대가리shithead”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테지만, 좀더 정교한 방식으로 저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이디시어권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그대의 이가 하나만 남고 몽땅 빠지기를. 그리고 그 하나 남은 이는 꼭 치통을 앓기를”이라는 문구처럼 말이다.(22)
고백하건대, 이 신박한 악담은 언젠가 (속으로라도) 써먹을 날이 있을 듯했던지 내 뇌가 읽자마자 외워버렸다. 또한:
이것들은 입으로 짓는 죄악의 목록이다. 무절제하거나 불법적으로 시음하거나 식사하거나 음주하기, 한가하게 잡담하기(수다 떨기), 매춘과 관계된 용어로 말하기,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무의미하게 입에 올리기, 거짓말, 거짓(약속), 무의미한 맹세하기, 거짓으로 맹세하기, 모략하거나 멸시하기, 저주하기(악담하기), 험담하기, 불화의 씨 뿌리기, 그릇되게 판단하기(판결하기), 잘못된 비난하기, 비밀이나 조언을 어리석게 들춰내기, 책망하기, 위협하기, 과시하기, 위증하기, 유해한 충고 건네기, 아첨하기, 악행을 찬양하기, 선행을 왜곡하기, 그리스도나 그리스도의 말이나 그리스도의 종들을 멸시하거나 모략하거나 경멸하기, (법정에서) 서투르게 변론하기, 부질없이 언쟁하기, 바보처럼 소리 내 웃기, 멸시조로 조롱하기, 오만하게 지레짐작하여 말하기, 즐겁고 명랑하게 찬송하기(제멋대로 행복하게 노래하기), 노래로 하느님보다 인간을 더 찬양하기.(180)

15세기 초에 출간된 어느 책에는 ‘혀로 인한 곤경’들이 세세하고도 꼼꼼하게 정리돼 있다. 21세기 사람인 내 눈에는 너무도 평범한, 또는 그때나 지금이나 죄악인 이 일들을 비장미 넘치게 주렁주렁 써놓고 두려워한 중세 서양 사람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면서도 “유해한 충고 건네기” “서투르게 변론하기” “부질없이 언쟁하기” “오만하게 지레짐작하며 말하기” 같은 뜻밖의 디테일함에 놀라게 된다. 또 “바보처럼 소리 내 웃기”나 “(제멋대로 행복하게 노래하기)” 같은 것은 귀엽기까지 하다. 같은 시기에 나온 또 다른 책에는 오만의 한 모서리로, ‘지레짐작의 모서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나는 이런 말들을 친구에게 써먹은 적이 있다. “오만의 모서리가 뾰족하게 솟고 있어. 특히 지레짐작의 모서리에 빠졌군!” 같은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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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구절 가운데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여기다.
한 젊은 병사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집으로,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할머니가 병사에게 물었다. 군대에서 어떻게 지냈느냐고. 진실은 이러했다. 그는 아군과 적군의 수많은 장정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고,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귀환했다. 하지만 가족에게 마음의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재미있는 녀석들이었어요, 할머니. 농담을 어찌나 잘하던지.” 이에 가족들은 간청했다. “우리에게도 하나 들려주렴, 하나만 들려줘.” 그러자 병사는 말했다. “오, 그럴 순 없어요. 그게, 끔찍한 욕설bad language이 너무 많이 섞여 있거든요.” 하지만 가족들은 완강했고, 욕설이 나올 때마다 대신 “빈칸”이라고 말하라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병사는 농담 하나를 들려주었다. “빈칸 빈칸 빈칸 빈칸 같은 빈칸. 빈칸 빈칸 빈칸 빈칸 빈칸 같은 빈칸하는 빈칸 빈칸. 빈칸하는 빈칸 같은 빈칸하는 빈칸, 빈칸 빈칸 빈칸 빈칸 씨발.”(364-365)
저 마지막 단어는 초교, 2교, 3교를 거치면서 Fuck → 씹할 → 씨발로 바뀌었다. 어떤 씨발들은 “엿 먹어”에서 “좆까”로 바뀌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나를 괴롭힌 단어는 “수음쟁이wanker”였는데, 결국 어떤 말로 넣었는지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앞의 두 문장을 쓰면서 ‘오 편집 후기에 이런 단어들을 쓸 수 있다니’라는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저자 멀리사 모어의 말대로 상소리에는 특별한 신경작용이 있는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언어는 자발적 활동과 합리적 사고를 통제하는 상위뇌에서 담당하는 데 반해, 비속어는 감정과 심박수,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는 하위뇌의 변연계에 저장된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책의 몇몇 군데를 교정 보면서 (역자는 곤욕스러웠다고 했지만) 남모르는 상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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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SHIT』은 영어 비속어의 3000년 역사를 다룬다. 그 긴 역사만큼 걸친 주제도 음탕하고 더럽고 상스럽고 모욕적이고 난삽한 온갖 분야에 걸쳐 있다. (이 내용은 보도자료에서 다루었기에, 뉴스 기사나 서점 책 소개에 잘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책이 정말 재미있는 건, 그 온갖 분야에 대해서, 심지어는 그런 말들을 입에 담을 수 없던 시기에 대해서조차 헛웃음이 날 정도로 세밀하고 우아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모어는 주제 자체와 그것을 학문의 대상으로서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 특유의 능청스런 유머 감각을 묘하게 조화시키는 데 있어서도 탁월한 듯하다. 『옵서버』에서 “끊임없이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일말의 공격성도 없이 그것을 해낸다”고 썼는데, 이 책이 다루는 주제와 그 디테일함을 생각하면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 서평이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게 이것은 표현할 수 없는 것(1793), 묘사할 수 없는 것(1794), 잡다한 것(1794), 언급할 수 없는 것(1823), 형언할 수 없는 것(1823), 없어서는 안 되는 것(1823), 이름을 내걸 수 없는 것(1834~1843), 설명할 수 없는 것(1836), 뒤이은 것(19세기 중반)이었다. 이것은 무엇일까?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1867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다음 예문을 인용한다. “신발을 벗고, 형언할 수 없는 것은 걷어 올리시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그럼 1823년의 이 예문은 어떤가? “리스턴은 다리 절반까지 내려오는, 언급할 수 없는 것을 입고 있다.” 이제 감이 잡히는가? 그렇다. 이것은 바지trousers였다. (…) 대체 바지라는 말의 무엇이 문제였을까? 가장 큰 문제는 바지를 벗을 때 사람이 벌거벗게 된다는 점이었다. 또한 바지의 모양은 남자의 다리를 드러내는데, 남자가 다리를 가졌다는 것은 그 위에 다른 신체 부위를 가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런가 하면 다리leg 역시도 정중한 사회에서는 사용하지 않아야 마땅한 단어 중 하나였다.(307-308)
정중한 사회에서는 사용하지 않아야 마땅한 단어. 오늘날에는 어떤 단어들이 그에 속할까. 한 사회가 상말하고 욕하고 낮잡는 대상이 그 사회의 의식과 무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저역자가 지적하듯 오늘날 “씨발” “빌어먹을” 같은 상소리나 욕설보다 더 금기시되는 혐오 표현들이 보여주는 비속어의 미래는 꼭 영어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언젠가부터 막돼먹음이나 외설함보다 인종, 젠더, 장애 여부 등과 관련된 표현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점은 우리가 그것을 고대 로마의 외설함, 중세의 성스러움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로 여기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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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제목이 『HOLY SHIT』이냐고? 어쩌다 검색하기도 불편하게 영어 제목으로 갔는가? 여기에도 여담이 있다. 애초 번역을 마친 역자가 제안한 부제는 ‘상소리의 성스러운 역사’였다. 이 부제가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똥’과 ‘성스러움’이 한 단어로 엮여서 그와는 문자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는 ‘젠장’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 편집부가 고민한 ‘이런 X발’ ‘*발’ ‘젠장’ 같은 한국말 상소리 제목들은, 상스러움과 성스러움이 결합된 수천 년 역사를 말해주는 영어 원제인 HOLY SH*T의 절묘함을 어떻게도 대신하지 못했다.(그렇다고 ‘홀리 싯’으로 가기도 그렇잖아요?) 그래서 이 책을 보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길 저 제목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는 입에 착 달라붙는 제목이기를 기대하면서 원제를 i만 살려 그대로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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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편집자의 여담.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에 실린 여담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성서부터 법정 기록, 신경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제를 망라하는 동안 저자가 느낀 불안, “혼자 있을 때조차 상소리를 입에 올리면 죄책감에 시달리는 심약한 성격”이라는 옮긴이의 영어 상소리 번역기를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페이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