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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구혼과 처녀간택부터 첫날밤까지 국왕 혼례의 모든 것
  • 지은이 | 임민혁
  • 옮긴이 |
  • 발행일 | 2017년 04월 04일
  • 쪽   수 | 336p
  • 책   값 | 20,000 원
  • 판   형 | 160*220
  • ISBN  | 9788967354206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조선 팔도가 들썩거린 중요한 가례
왕은 어떻게 짝을 찾았고, 혼례를 치렀는가
조선 국왕의 결혼식, A부터 Z까지 재구성!

때론 정치적 고려에, 때론 개인적 욕망에 휩싸인 국왕의 결혼
맹인 동원해 처녀 찾기… 문벌 가문 초비상!

“조선의 국왕이 점지된 짝을 찾는 방식은 권위적이다. 그는 초월적인 존재로서
특수한 방식의 정혼을 요구했다. 가가호호 미혼 양반 규수들의 신상에 정통한 중매쟁이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광고를 내 후보 신청을 받는 공개 구혼이었다. 왕실에서는
국왕의 배필이 될 만한 규수를 구한다는 사실을 공론을 통해 조정에 널리 알렸다.
국왕이 모든 미혼 여성의 신랑감 후보임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 국왕 혼례의 눈길 가는 내용들

ㆍ인조 이래 왕비 배출 가문은 대부분 ‘서인西人’
ㆍ처녀단자 제출 기피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ㆍ내정된 상태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도 벌어져
ㆍ신부 조건을 놓고 빚은 영조와 벌열 가문의 갈등
ㆍ예비 왕세자빈에게 내려진 화려한 예단
ㆍ초간택, 재간택, 삼간택 등 세 차례에 걸쳐서 피 말리는 선택 과정
ㆍ가례도감은 육조의 속아문과 같은 지위의 거대 행정 조직
ㆍ혼례 전 한 달 이상 별궁에 머물며 극한의 ‘신부 수업’

 

조선 왕조는 왕실의 모든 행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국왕의 혼례로 대표되는 가례嘉禮부터 장례로 대표되는 흉례凶禮까지 남김없이 기록화하여 후세에 전해주었다. 조선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창은 조선왕조실록이나 각종 의궤다. 그중 국왕의 혼례는 늘 관심의 대상이어서 이를 다룬 책을 선보이기도 했다.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와 같은 책이 그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역시 의궤와 연관 자료를 통해 국왕의 혼례를 들여다본다. 기왕의 책들이 특정 국왕의 특정 혼례를 다루거나 이를 통해 정치ㆍ문화적 논의를 펼쳤다면,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는 부제가 말해주듯 “구혼과 처녀간택부터 첫날밤까지 국왕 혼례의 모든 것”을 세세히 다뤄 그 과정을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하고자 한 ‘기록 의지’의 산물이다.

책의 구성은 국왕의 가례라는 게 무엇이고 조선사회에서 차지한 위상이나 성격 등이 어떠했는가를 먼저 논한 뒤 바로 국왕이 전국에 공개 구혼하는 ‘제1절차’로 포문을 연다. 지난한 처녀 간택 과정이 지나가고 낙점을 받은 ‘비씨’는 별궁생활을 시작하는데, 궁궐에 들어와서 온갖 낯선 절차와 뭇사람의 시선을 받아내야 했던 그들의 생활을 재구성했다. 이어 본격적인 혼례 준비에 들어가는 궁궐은 납채와 고기 등 신랑과 신부가 주고받아야 했던 물품 및 잔치에 들어갈 돈과 물품까지 챙기는 등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한 여인이 궁궐로 들어와 왕의 부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바로 ‘왕비’로 책봉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왕비는 왕과 ‘동급’의 지위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야 했고 이를 위한 권위와 상징 부여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윽고 왕과 왕비가 얼굴을 마주하는 친영과 백관이 참석하는 동뢰연을 거쳐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가면서 세부적인 절차와 거기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역할, 실제 사례에서의 돌발사태 등을 설명해나간다.

지금까지가 제1부의 얼개라면 제2부에서는 ‘후궁’ 들이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역대 조선 국왕은 대부분 후궁을 두었는데, 그들은 ‘첩’이기보다는 ‘왕비가 될 수 있는 존재’이자 예비 주자로서 그에 걸맞은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 책은 후궁을 보는 기존 시각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후궁의 간택과 육례의 모든 것을 밝히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서 국가 가례로 치러진 숙의의 국혼을 다뤘고, 후궁을 높이기 위한 영조의 정책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목차

서문

제1부 군자의 좋은 짝 요조숙녀
1장 아름다운 모임, 가례
만민을 친히 하는 가례 | 군자의 좋은 짝 요조숙녀

2장 국왕이 전국에 공개 구혼하다
국왕의 공개 구혼 | 국혼의 시기와 연령 | 처녀단자의 제출 | 맹인 동원해 처녀 찾기 | 왕실과 양반의 국혼에 대한 문화 심리의 차이 | 처녀들의 첫 대궐 나들이 | 달기와 포사 같은 여인을 멀리해야 | 서인의 ‘물실국혼勿失國婚’의 목표는 달성되었는가
[부록] 간택 때 처녀들의 선물 | 화순옹주 부마 월성위 김한신의 초간택 참가기 | 혜경궁 홍씨의 삼간택 참가기

3장 별궁생활과 육례六禮 준비
어의동본궁이 국왕 가례의 별궁 | 옥교를 타고 별궁으로 향하는 비씨 | 비씨의 별궁생활 | 길
흉을 점치며 육례를 준비하다

4장 납채에서 고기까지
국왕의 혼수 비용 | 육례의 거행을 명하다 | 비씨 집에서 납채를 받아들이다 | 선온 잔치와 그
후의 납징, 고기

5장 왕비 책봉은 혼례의 한 절차인가
국왕은 동등한 지위의 여성과 혼인해야 | 왕비의 권위와 상징 | 왕비의 명복, 적의

6장 존비가 같아져서 친해지다
음이 양을 따르는 친영이 자연의 법칙 | 관소에서 친영하다 | 동뢰연으로 한 몸 되다 | 국왕과
왕비의 첫날밤

7장 국가의 주부가 조상을 뵙다
왕비가 시가 어른들을 뵙다 | 왕실의 며느리가 되려면 종묘를 알현해야

제2부 후궁은 부인인가, 첩인가
8장 국혼으로서의 후궁 간택
후궁을 보는 시각 | 후궁은 왕비가 될 수 있는 존재 | 숙의는 왕비의 예비 후보 | 숙의의 왕비 불가론 대두 | 숙의 가례는 국혼이었다 | 국왕이 부인으로 사랑한 후궁

9장 중흥 군주 영조가 후궁을 높인 이유
후궁의 아들, 영조 | 숙빈 최씨의 출신 | 어머니 숙빈 최씨를 왕비로 높여라

10장 후궁의 간택과 육례
후사를 넓힐 목적의 후궁 간택 | 숙종 12년의 숙의 가례 | 헌종 13년의 경빈 가례 | 숙의와 빈의 차별 및 그 의미

미리보기

ㆍ국왕의 가례는 조선 문화의 상징적 의례
가례는 일생 의례와 상호 교류의 장을 인간사회의 아름다운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가족과 사회, 나아가서 국가의 통합과 안정 및 질서를 꾀하는 문화의 상징 용어다. 그런데 특별히 국왕과 왕비의 혼례를 가례라 칭한 것은 다양한 종류의 가례 중에서 윤리도덕적ㆍ사회적 가치가 가장 큰 의례이기 때문이다. 이 대례는 인륜의 시초이며, 만화萬化의 근원이고, 강기綱氣의 으뜸이며, 왕도王道의 큰 단서라 했다. 이것은 국왕 가례의 이념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목적을 담은 표현들이다.

ㆍ금혼령의 남발에 드러난 왕의 조급증
시중에서는 곧 대혼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으로 민심이 들떠 있기보다는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은 듯이 보였다. 기년 전에 속속 딸들을 시집보내거나 모면할 방안을 은밀히 강구하느라 여념 없었다. 어떻게서든 처녀단자 제출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다각도로 행해졌다. 이러한 양반가의 동향을 간파하고 있던 왕실에서는 일찍이 금혼령을 내리지 않으면 처녀들이 동날 판이라는 조급증을 드러내곤 했다

_ 「아름다운 모임, 가례」

 

ㆍ국왕은 모든 미혼 여성의 신랑 후보
조선의 국왕이 점지된 짝을 찾는 방식은 권위적이다. 그는 초월적인 존재로서 특수한 방식의 정혼을 요구했다. 가가호호 미혼 양반 규수들의 신상에 정통한 중매쟁이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광고를 내 후보 신청을 받는 공개 구혼이었다. 왕실에서는 국왕의 배필이 될 만한 규수를 구한다는 사실을 공론을 통해 조정에 널리 알렸다. 국왕이 모든 미혼 여성의 신랑감 후보임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도발에는 국왕이 가장 인기 있고 매력 있는 남성임을 자타가 인정해주리라는 생래의 욕구가 은연중 도사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_ 「국왕이 전국에 공개 구혼하다」

 

ㆍ예비 신부는 어떤 대우를 받았나
간택된 여성에 대한 예우는 초간택 직후부터 적용되었다. 처녀의 호위와 행색을 그 지위에 걸맞게 왕실과 정부에서 담당해왔던 터라, 비씨는 신변 보호는 물론 왕비에 준하는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전의 준비를 기했다. 생활용품에서부터 탈것, 복색, 궁녀의 시중, 관원과 군사들의 호위 및 별궁의 파수, 평상의 보고 체계, 신임 관료의 숙배, 별궁 출입 인원과 물품의 검사 등 모든 예우와 보안이 철저했다. 또 묘선된 날을 기점으로 공상 물종과 의전衣纏 등을 시행했다.

ㆍ예비 신부를 보호하라
비씨의 별궁생활은 바깥출입을 전혀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금궁禁宮이었다. 별궁 내외의 환경은 비씨를 위협하는 어떠한 여건도 허락하지 않았다. 무단출입이 불가능한 위수처衛戍處였던 별궁은 파수꾼들의 검문검색이 철저하여 출입패를 소지한 자에 한해 출입을 허용했다. 친인척이라 해도 예외를 두지 않아, 비씨는 그들을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별궁과 신부의 본가 주변에도 특별 조치가 취해졌는데, 여염집에 상중이거나 질병을 앓는 자가 있으면 가차 없이 내쫓았다.

ㆍ왕실과 가까운 곳으로 신부 본가 ‘강제이사’
도감의 업무 중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신부의 본가를 별궁에서 가까운 곳에 마련하는 일이었다. 별궁과의 거리에 관계없이 실제 본가는 육례를 거행하는 데 많은 불편이 뒤따랐으므로 한성부에 명하여 사가私家를 임대해 신부의 본가로 삼도록 했다. 인조 16년 장렬왕후(인천 부사 조창원趙昌遠의 딸) 가례 때에는 별궁인 봉림대군의 집 남쪽 담장 밖인 고판서 박정현朴鼎賢의 집으로 정했다. 그리고 인현왕후 가례 때에는 그전에 쓰였던 전현감 박세웅의 집이나 유학 박세만의 집이 행례하기에 좁고 불편하다고 하여 어의동 홍중보洪重普 정승댁으로 정했다.

_ 「별궁생활과 육례 준비」

 

ㆍ‘왕의 결혼식’에 국가 예산은 얼마나 들었을까?
『국혼정례』의 편찬은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절약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가례도감과 내수사에서 사용하는 국왕의 국혼 예산은 각각 2억2000만 원과 4억5000만 원이었다. 이 두 기관에서만 자그마치 6억8000여 만 원을 국혼 예산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호조에서 양 기관에 보낸 예산을 쌀 1800석으로 어림잡았을 때, 1년 예산의 약 2퍼센트에 해당된다. 호조의 1년 운용 예산은 영조 22년(1746)에 9만 석이라 한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_ 「납채에서 고기까지」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임민혁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가례』를 번역해 출간하고, 관료제에 눈을 돌렸다가 미지의 무엇에 홀린 듯 다시 의례 분야를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장서각에서 의궤를 탐독할 수 있는 연구 사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지금도 의례 관련 등록들을 1차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예禮의 정치적 성격에 주안을 두고 조선시대 왕실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제대로 깊이 있게 그리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이번의 국왕 혼례를 비롯해 종묘와 신주, 국왕의 상장례인 국장, 예의 기초인 용례와 위의威儀, 왕자녀들의 삶과 문화 등 다양한 예 관련 주제를 섭렵하여 대중에게 역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보일 예정이다.

저서로는 『조선의 예치와 왕권』 『영조의 정치와 예』 『영조어제 해제 2』 『왕의 이름, 묘호』 『조선시대 음관 연구』 등이 있고 공저로는 『조선의 역사를 지켜온 왕실 여성』 『영조어제 해제 10』 『조선의 왕ㆍ왕비ㆍ왕세자로 살아가기』 『대한제국』 『조선 왕실의 가례 1ㆍ2』 등이 있다. 역주서로는 『주자가례에서 통치이념을 배우다』 『주자가례』 『추봉책봉의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