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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르메르, 방구석에서 그려낸 역사 예술가의 삶과 진실 4
  • 지은이 | 귀스타브 반지프 정진국
  • 옮긴이 | 정진국
  • 발행일 | 2009년 02월 17일
  • 쪽   수 | 232p
  • 책   값 | 13,000 원
  • 판   형 | 145*216
  • ISBN  | 9788996215516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베르메르의 삶을 가장 처음으로 가장 완벽하게 복원해낸
귀스타브 반지프의 이 탁월한 저서는 20세기 내내 베르메르에
대해 한마디 해야 할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벨기에의 미술평론가·극작가·소설가인 귀스타브 반지프의 저서 [베르메르 데 델프트][1925년 개정신판]를 완역한 것이다. 베르메르를 이야기할 때 누구든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최초의 전기이자, 간략하지만 그의 삶과 예술을 놀랍도록 설득력 있게 함축한 책이다. 그 뒤로 출간된 전기들은 사실 그의 삶이 온통 수수께끼이므로 그다지 참신하고 현저하게 이 첫 번째 전기를 능가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J. M. 몬티아스의 전기는 방대하지만, 주로 금전에 얽힌 인간사와 사회사로서 접근한 바람에, 베르메르 자신과 그 예술은 거의 조역에 불과한 꼴이 되어버렸다.
저자 반지프는 이 책에서 베르메르의 삶에 대해서는 그의 선배들이 이뤄놓은 성과를 약간씩 수정하고 가감하는 방식으로 정리한다. 그 대신 그렇게 수정된 베르메르의 삶의 자취를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음미하는 데 온 정열을 다 쏟아붓는다. 이 책은 분명 베르메르의 삶의 윤곽을 정리하고, 그의 고장 델프트까지 방문해서 햇살과 물결과 건물의 외벽에 묻은 흔적 하나하나까지 음미한 전기이지만, 동시에 베르메르의 붓을 펜으로 필적하고자 한 무한한 표현의 모험을 감행한다. 바로 이 점이 반지프의 이 책을 베르메르에 관한 최고의 고전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번역서의 제목은 베르메르가 실내의 가재도구와 정적인 인물들을 통해 17세기 네덜란드를 지배한 문화적·심리적 정조와 그 시대정신까지 그려냈다는 점에서 ‘베르메르, 방구석에서 그려낸 역사’라고 붙였다.]

 

1. 누가 베르메르의 스승인가-청색靑色이 알려준 비밀
베르메르는 일찍 죽었고 그래서 간신히 자취만 남겨놓았다. 미술사에서는 그의 사생활에 대한 규명이 중요한 문제였는데, 그 중에서도 과연 누가 베르메르의 스승인가 하는 점이 첨예한 쟁점이었다. 저자 반지프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특징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그에게 영향을 미친 ‘스승’을 찾아나가는 방식을 드라마틱하게 활용한다.
베르메르에 대한 연구가 비로소 시작된 19세기, 가장 먼저 제기된 것은 ①가장 당연한 추정이면서도 형편없는 지지를 얻었을 뿐인 렘브란트설이다. 처음 이 주장은 그럴듯하게 제기되었다. [화류계 여자] 등 베르메르의 몇몇 초기작이 렘브란트 그림과 비슷한 분위기를 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함으로 인해 여기저기 헐값에 팔려나간 베르메르의 그림이 대략 모아져서 하나의 아카이브를 이루었을 때, 둘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저자는 몇몇 작품의 기계적인 유사성에 개의치 않고, 두 사람이 사제관계로 엮일 수 없는 이유를 순수하게 작품 분석만을 통해 이끌어내고 있다. 반지프에 따르면 우선 렘브란트의 빛은 환상적이다. 그것은 인물을 감싸지 않는다. 그것은 인물을 몽상 속에서 후광처럼 밝힌다. 초상 몇 점을 제외하면, 이런 빛은 부드럽게 퍼지면서 생기를 돌게 하지 않는다. 색에 광채를 주지도 재질감을 도드라지게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반사광이다. 그 속에서 색채는 약해지고 뒤섞이며, 재질은 거칠게 대조된다. 반면 베르메르의 작품에서, 빛은 야외의 신선함과 맑은 하늘의 청명함과 그윽한 숨결을 실내로 끌어들이며, 오직 반짝이게 하려고 색채를 건드리고, 재질을 더욱 도드라지고 부드럽게 한다. 렘브란트는 항상 신비로운 반면 베르메르는 항상 투명하고, 만져질 정도로 밝은 생활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렘브란트는 소박한 시각을 말년에 가서야 되찾았다. 파산하고, 자신이 쌓아온 부를 다 날려버려야 했을 때였다. 그때야 그는 꾸밈없는 인간을, 그 은밀한 위대함을, 그 소박한 아름다움을, 황금 옷을 걸치지도 예언자처럼 거창한 복장을 하지도 않은 그런 인간을 다시 보았다. 만약 베르메르가 그의 제자라면 베르메르가 화가조합에 가입한 1650년 전후일 텐데, 바로 렘브란트라는 거장의 영광이 절정에 달했던 때이고 모든 인위적 표현이 그가 주시했던 막막한 신비로 뒤덮여 있을 때였다. 바로 여기가 저자 반지프가 도달한 결론이다. 게다가 나중에 찾아낸 자료는 베르메르의 집이 그를 렘브란트의 화실로 보낼 돈도 없었다고 입증했다. 이로써 렘브란트가 베르메르의 스승이라는 설은 기각되었다.
②어둠 속에 완전히 갇혀 있던 베르메르를 최초로 부활시킨 이는 서유럽 최초의 미술평론가라고 할 수 있는 토레 뷔르거[1807~1869]다. 바로 이 뷔르거가 베르메르를 파브리티위스의 제자라고 여겼다. 이런 추측은 아주 흥미로운 자료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파브리티위스가 사망한 후 아르놀트 본은 이 요절한 화가를 애도하면서 베르메르를 파브리티위스가 키운 재간꾼이라고 인용했다. 미술사가 이메르체일도 이 견해를 채택했다. 그런데 저자는 파브리티위스는 베르메르보다 단 한 해 전에 거장으로 등록했으므로, 베르메르가 그 제자일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파브리티위스가 베르메르의 동료였을 수는 있다. 파브리티위스가 베르메르의 청소년기에 선배로서 그에게 조언을 하고, 그렇게 베르메르가 간접적으로 가볍게, 파브리티위스가 꿰뚫고 있던 렘브란트의 가르침을 따랐을 수는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추정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③미술사가 아바르는 또다른 추측도 했다. 얀 베르메르의 출생신고서에 브라메르라는 이가 대부로 적혀 있는데, 이 사람의 형제인 화가 레오나르트 브라메르가 그 당시 델프트에 살았으니까 그가 스승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도 여기에 신빙성을 둔다. 하지만 그는 그런 가족사적 정황이 아니라, 브라메르의 몇몇 작품은 그의 제자로 추정되는 베르메르의 작품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베르메르의 청색은 독특한데, 무어라 정의하기 어렵고 경이로운 파랑으로,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색이다. 다만 빈 미술관에 있는 브라메르의 그림에서는 볼 수 있다. 바로 [바니타스]라는 정물화다. 화면 구성은 귀중품이 그득한 탁자 한구석에 앉은 여자를 보여준다. 그녀는 금목걸이를 걸고 있다. 탁자 뒤로 한 사내가 서서 류트를 연주하고 있다. 저자는 이 주제가 베르메르가 그린 수많은 연주회와 치장하는 여인상과 비슷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또 베르메르의 작품에서나 고유한 실내 인물의 멋진 스타일이나, 경건한 마음을 일으키는 소재와 비슷하다고도 주장하지 않는다. 단지 작품의 주제가 환하게 드러나는 과정, 화면 한복판에서 옷자락 끝에 칠한 파란 물감 자국의 찬란함만을 주목한다. 바로 이 청색은 오직 베르메르에게서만 다시 볼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베르메르의 도제시절의 비밀을 풀어보려는 저자 반지프의 최종적인 결론은 아니다. 그는 이 장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의 스승은 누구였을까? 베르메르 데 델프트는 누구도 닮지 않았다. 그는 당대의 홀란드 미술과 뿌리부터 다르다. 단지 작품의 표현과 스타일과 시각만이 아니라, 솜씨에서도 그렇다. 그는 정말 열광할 만큼 자신이 그린 개성적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들을 끌어냈던 것을 아무것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자신만의 시선과 사고 외에는.”

 

2. 분명히 홀란드가 만들어냈지만 홀란드와는 너무나 다른
이 책은 베르메르를 홀란드라는 정치·경제·문화 환경과 나아가서는 그렇게 형성된 민족성의 가장 내밀한 특징과 밀접하게 결부시켜서 파악하고 있다. 17세기 홀란드 미술은 네덜란드 연합주가 정치적으로 독립하면서 의식이 해방되고, 결국 감탄할 만한 상업적 번영을 이루었을 때에 맞추어 만개했다.
이 민족은 자신들의 땅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랜 시간 투쟁해왔고 더디고 고된 간척을 견뎠다. 그래서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연과, 현실에 각별하게 결부되었다. 꿈을 꿀 시간이 없었던 민족이다. 또한 자신들에게는 너무 추상적 상징에 불과했던 종교에서 벗어났던 민족이요, 끈질기게 탐색하는 학자들을 거느렸던 민족이자 결국 신중한 지혜로써 지상의 작물을 훌륭하게 거래로 연결하는 결실을 거두었던 민족이다. 그들은 눈앞의 현실에 결부된 예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노력과 희생을 대가로 치르면서 정복한 것을 믿어야 했다. 삶을 사랑해야 했고, 그 따뜻함을 고양시키고 그 기쁨과 자부심과 열광을 드높여야 했다. 이런 때에, 이런 신념과 역사적 사건이 과거의 신앙을 뒤흔들어놓은 바로 그 시간에, 살아 움직이는 본능으로서 인간 그 자체의 신념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단순하고도 강력하며 낙관적인 예술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이런 낙관적인 예술은 모두의 입맛에 맞는 것인 만큼 꽤 조잡했다. 저자는 렘브란트, 프란츠 할스, 볼, 라벤슈타인, 반 데어 헬스트 등의 화폭에서 의무적으로 그린 시민의 초상화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으면, 상당한 영화榮華와 영웅성이 드러나는 반면, 사소한 현실에 휘황찬란한 복장을 입히거나 일종의 거친 입맛을 다시며 그릴 뿐이고, 삶에 대한 욕구와 선망을 고취시킬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들은 색채와 동작을 즐겼을 뿐이다. 그들은 오로지 사실주의자였을 뿐이다. 때로는 그림의 촉감이 너무 가깝게 느껴지는 나머지 격렬하고 거친 육감적 느낌만 남아, 과연 예술이라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묻게 될 지경이고 반지프는 말한다. 홀란드의 소장파 대부분은 이런 것이나 그리고 있었다.
베르메르는 자기 나라에 훌륭하게 속해 있으면서도 그 나라에서 월등히 벗어나 있었다. 베르메르는 가장 평범한 것을 그렸고 또 친숙한 생활만 주목했다. 하지만 그는 맨 처음으로 자기 주변을 주목하면서 생각한 화가였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그린 렘브란트와, 오로지 사람들이 보는 것만을 전적으로 그린 다른 화가들 사이에서, 오직 베르메르만이 눈에 띄는 현실의 겉모습을 간직하면서 더욱 키우고 변모시킨 사람이다. 당시 홀란드 사람들은 순수하고 즉각적이며 밀접한 객관성으로써 더욱 고양된 예술을 필요로 했다. 실용적이지만 개방적인 지성과 정치적 자유를 쟁취한 사람들의 자부심에 가득한 정신은, 끈덕진 고집으로 세계를 탐험하고 과학을 존중하며 저명 학자들로 넘치는 대학들을 뿌듯하게 사랑하던 이런 지성적 상태에 어울리는 고상함을 열망했다. 더구나 홀란드 사람들은 기꺼이, 시장과 선술집에서 시끌벅적한 휴식과 따끈따끈한 연애를 조용히 즐기거나 가정생활의 미식을 만끽하면서, 또다른 것이 있음을 알고 원했다.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지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넘어서는 곳으로 이끌어줄 그 무엇 말이다. 반지프는 바로 이런 것이야말로 베르메르 데 델프트가 그들에게 주려 했던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렘브란트와 그 추종자들은 꿈속에서 살았다. 또다른 홀란드 화가들은 그를 완전히 배척했다. 그들은 미의 창조라는 임무를 부인하면서 충실하게 재현했다. 이 두 개념 사이에서, 베르메르는 하나의 방향을 찾는다. 그리고 그 시대, 그 환경에서 완전히 혼자 자기 예술을 지켜나간다.”

 

3. 삶 부근을 어슬렁거리는 수수께끼
본문 중간쯤에서 반지프는 베르메르의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특징을 ‘예외적 예술’이라는 말로 집약시키고 있다.
[화류계 여자]는 베르메르의 초기작품이다. 반지프는 이 그림이 “진지하고 화려한 장인정신이 발휘된 좋은 그림”이지만 “여러 해 뒤에 베르메르가 그린 걸작들과 반드시 비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성과 색채에서도 나중에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홀란드 소장파의 것과 현저히 다르게 해줄 통일성이 보이지 않는다. 미소와 심지어 추근거리는 몸짓에서조차 의식적이며 묵직한 인간성의 율동을 부여하게 될 그런 순수성, 흠잡을 데 없이 심오해지는 기품과 고귀한 평정 같은 것이 여기에는 아예 없다.
[디안의 화장]은 실내를 그리는 베르메르의 그림 중에서는 특이한 작품이다. 실내를 그리는 이 화가가 고대적 몽상에 그토록 근접하는 우아하고 힘찬 이런 찬가를 구상하고 그려냈다는 것은 정말이지 굉장하다. 이탈리아에 체류했던 홀란드 화가들 가운데 누가 이처럼 빛나는 색채와, 이렇게 은은한 빛과, 이런 디안의 노란 옷과 특히 그 살결을 빚어내는 눈부신 물감을 그릴 수 있었을까? 게다가 반지프는 베르메르가 이탈리아를 직접 본 적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어서 반지프는 [디안의 화장]에서 등장인물의 고상함은 힘으로써 표현된다고 말한다. 잘 들여다보고 따져보면, 이 여자들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그림에서 보게 되는 여자들과 매우 다른, 나무처럼 사지가 튼튼한 여자다. 바로 바로 신들의 왕국에 모인 홀란드의 수수한 여자들이며, 그 살과 옷의 황홀한 재질감 속에서 빛나는 지상의 기쁨이다. 반지프는 이 작품에서 베르메르의 개성이 처음으로 또렷이 드러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그림은 17세기 홀란드 미술의 두 개념, 즉 렘브란트의 번민하는 꿈과 소장파의 충실하고 입맛을 돋우는 사실성의 중간을 정확하게 대변한다. 그 한쪽에서 보는 쓰라린 불안도, 다른 쪽의 태평한 관능성과 단견도 없다. 그것은 부지런하고 힘에 넘치며, 자부심에 가득한 민족의 건강한 이상주의, 즉 인간에게 낯선 상상미를 응시하지 않고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로 여길 수 있는 아름다움을 주시하는 낙천적 이상주의의 표현이다.”

[디안의 화장]과 같은 시기의 작품 [마르다와 마리아 집의 예수]에서 반지프는 “마르다라는 인물상보다 더 인간적이면서도 인간성을 뛰어넘는 상을 결코 보지 못했다”고 찬탄한다. 수수한 옷차림에 고전적 옷주름의 장려하게 부풀린 형태, 무한을 응시하는 그 얼굴의 차분한 표정, 몸통의 폭넓은 움직임, 큰 율동에 담긴 겸손함, 감흥이 살아나는 부드러운 빛으로 끌어올려진 초인적 위엄을 짚어가며 감탄하는 반지프는 이 작품에서 “빛의 분위기는 감각적이다. 그렇지만 황당하거나 공상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미와 사물의 아름다움은 고스란히 지켜지고 오직 빛으로써 미화된다”며 베르메르 작품이 갖는 고유한 특성을 처음으로 드러낸다.

부다페스트의 초상화는 지금까지의 모든 탁월한 인물화가들을 넘어 그들을 압도하는 작품이라고 반지프는 말한다. 반지프는 이 작품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수수께끼’를 불러온다. 사실 수수께끼는 초상화에서 작위적일 정도로 많이 사용되어 온 수법이다. 초상화의 막연한 고뇌와 끝없고 착잡하며 불안한 인상은 심오한 심리적 웅변의 환상을 던진다. 어둠 속에서 모호하게 규정된 그 무엇보다 더 꿰뚫어보는 힘의 모습을 주는 것도 없다. 하지만 반지프는 수수께끼는 구체적인 삶 주변에서 살아 숨 쉬지 않을 때 공허하다고 강조한다. 수수께끼가 감동을 불러일으키려면, 그것은 명백하고 생생하게 환기된 삶 부근을 어슬렁거려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여인상]이 그런 경우인데 반지프는 “빛과 어둠이 그토록 친밀하게 서로 침투하고, 자명성과 보이지 않는 것이 그토록 도도하게 맞서며, 그토록 명확하게 삶을 순간적으로 단단히 끌어안는 작품을 결코 보지 못했다”고 감탄하고 있다.[그러나 반지프 때까지만해도 베르메르의 것으로 여겨졌던 이 작품은 현재 그의 작품이 아닌 걸로 판명되었다.]

“이 나이 지긋한 여자는 완고하고도 차분한 자기 삶의 명증성을 내세워 수수께끼에 저항한다. 눈부신 육체와 조용한 눈길 앞에서 그것을 물리친다. 견고하고 정확한 이 두상 둘레에 불확실성이 감돈다. 그 머리는 야무지다. 그 두뇌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조용한 생각이 살아 숨 쉰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생각에서 모호성은 그녀가 그런 인상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요동친다.”

 

4. 사물에 대한 존경을 이토록 끝까지 밀어붙인 화가
베르메르의 전성기 때의 작품을 언급하면서 저자는 단호한 어조로 “베르메르가 홀란드 사실주의 화파 가운데서 가장 막강하고, 가장 많이 탐색하고, 가장 성실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누구도 사물에 대한 존경을 그처럼 밀어붙이지 않았고, 누구도 모든 것을 충실하게 환기시키고, 자연과 대등하게 하고, 어떤 것 앞에서도 무기력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솜씨를 적절히 응용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우유 붓는 여인]이 대표적이다. 그토록 겸손한 진실로써, 그 방과 그 질그릇과 그 버들가지 바구니와 그 구리 양푼[그릇]의 재질감을 감동적으로 재현하고, 사실성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다. 다른 화가들은 사물 앞에서 즐긴다. 하지만 베르메르는 그것을 존경심으로 꿰뚫는다. 사실에 충실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번쩍이는 색과는 다른 그 무엇을 환기시키는 완전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아주 특별한 일감을 찾고 또 찾아냈다.
저자는 베르메르가 형태의 표현, 색의 감정, 빛의 진동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자연에는 그의 언어에 참여하는 또다른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재질’이라고 강조한다. 마치 각각의 사물을 비추는 빛의 흡수와 굴절력을 물리학자로서 연구하듯 했던 베르메르는 모든 것의 무게를 재고 더듬어보았고 이것이 반지프를 감동시킨 가장 큰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우유 붓는 여인]의 정물은 이런 점에서 어떤 것도 필적할 수 없는 걸작이다. 버들가지 소쿠리에 빵을 그려 넣기 전에, 그는 그것을 작은 조각들로 잘게 자른다. 또 이를테면 그 파삭한 반죽을 더욱 잘 그려내려고, 매끈하고 새틴처럼 애무하듯 빚어진 부분들에, 그의 그림에서 자주 나타나는 작은 입자 같은 모양을 상상해냈다.

“베르메르가 이토록 독특한 잘게 자르는 솜씨를 사용한 것은, 빛을 떨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재질감을 생동하게 하기 위함이다. 살결은 옷감보다 더욱 부드럽고, 옷감은 장신구보다 더욱 유연한다. 이렇게 모든 것에 고루 생기가 돌게 되고, 농염한 흥취로서 어우러지는 삶을 과시한다.”

 

5. 인간과 사물이 어떻게 균형을 찾게 되는가
베르메르가 화면구성과 해석에서도 17세기 홀란드 사실주의 화가들과 달랐다. 베르메르는 자기 주변만을 주시하면서 생각한 첫 번째 화가였다.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여자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한 그 얼굴을 응시하면서…. 다른 화가들도 다른 곳을 주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증명했듯이, 그들은 색과 운동을 즐겼다. 그들은 그것을 선택하거나 완화하거나 해석하지도 않고, 그저 약간의 해학을 뒤섞기나 하면서 몸짓을 그렸다. 그들은 장터와 난투극과 희희덕대거나 정중하게 구애하는 장면과 우연한 일상의 사건, 단편화하고 잘게 나누고, 더욱 큰 의미 작용을 외면한 사건을 그렸다. 그런데 베르메르가 주시한 바로 이런 평화와 고요 속에서 어떤 특이한 몸짓을 지어내지도 않는 사람이 인간성의 일부로서, 비장하게 그 의미를 환기시키는 듯하다.
렘브란트도 명상적인 인간들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그는 신비 속에서 보여주었고, 절대로 우리 일상과 비슷한 무대에서 보여주지 않았다. 테르뷔르흐도 마찬가지였다. 종종 그렇게 했지만, 더욱 제한적이었으며 서사시적 성격이 덜하다. 피터 데 호흐 등 여러 화가들이 인간을 그가 사는 무대를 배경으로 삼아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들 작품에서는 무대가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실생활과 거리가 먼 장식적 부품 같아 보인다. 그 정당한 중요성을 띠지 못한다.
그 시대에 오직 베르메르만 인간과 사물의 균형을 찾았다고 반지프는 결론짓는다. 그의 그림 속에서만, 인물들은 주변의 물건을 축소하거나 무시하지 않은 채 지배한다. 당대의 화가들 중 몇몇 작품에서 인간만이 등장한다. 그런데 삶은 없다. 또다른 어떤 이들에게서 인간은 세부일 뿐 다른 것들을 능가하지 못한다. 즉 그 중심이 아니며, 구경거리의 한 조각이다. 이 또한 삶이 아니다.

 

부록: 서유럽 최초의 미술평론가 ‘토레 뷔르거’를 만나다
어둠 속에 완전히 갇혀 있던 베르메르를 최초로 부활시킨 이는 서유럽 최초의 미술평론가라고 할 수 있는 토레 뷔르거[1807~1869]였다. 원래 민주주의 혁명가이자 진보적 운동가였던 그는 보수반동 정권에 쫓겨 브뤼셀로 망명하던 중 베르메르를 찾아내게 되었다. 당대의 평론가로서는 드물게, 그는 쿠르베의 사실주의와 테오도르 루소의 자연주의 등 현대미술의 이정표가 된 경향을 일찍부터 지지했던, 확고한 사상을 바탕에 깔고 열정적인 실천으로 일관한 미술비평의 시조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드니 디드로가 문학적 여담으로서 미술비평을 했을 뿐이고 단지 철학적 이론에 끌렸었다면, 뷔르거는 화가들의 기법을 공부했고, 화가들을 만나보며 진정한 회화작품의 가치를 따지려 했다. 따라서 디드로조차 결코 뷔르거에게 비할 순 없을 것인데,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된 바가 없다. 이 책의 부록은 본문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띠고 있는 토레 뷔르거에 대한 내용으로, 앙드레 블룅의 [베르메르와 토레 뷔르거][1964] 일부를 싣고 있다. “델프트의 거장 베르메르와 나란히 토레 뷔르거를 되살린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매우 유익할 것”이기 때문이다.
토레 뷔르거에게 베르메르는 “스핑크스”였다. 즉 베르메르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미궁 속에 빠져 있었는데, 온갖 어려움에도 결국 그는 베르메르의 걸작 여러 점을 찾아내고야 만다. 식스 가에서 처음 베르메르 작품 두 점을 접한 그는 연구를 계속하면서 1969년 5월 경매에 나왔던 베르메르 작품 21점을 되찾으려 애쓴다. 이 책이 씌어질 당시 80여 년간 지속된 조사에도 불구하고 베르메르 작품은 40여 점만이 전할 뿐인데, 그중 뷔르거가 3분의 2를 찾아냈다는 공로가 있다.
토레 뷔르거가 베르메르에게 감탄한 이유는 처음으로 현실을 그린 화가에 속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물론 친근한 그림을 그린 홀란드 화가들이 있었다. 피터 데 호흐, 메취, 헤라르트 도우, 마스, 얀 스테인 등등. 하지만 그 군단에서도 최고로 독창적인 인물은 단연 베르메르였다. 당대 그 고장의 풍습을 재현하는 친숙한 장면을 그리면서도 표현과 포즈가 정확한 것은 놀랍기만 한 솜씨였다. 게다가 그는 여타 화가들처럼 주제에 집착하지 않았다. 시적 언어로써 그 표현에 집중했던 그는 인간 현실에서 유리되지 않고서, 그는 등장인물들을 위대하고 편안하게 한다. 그의 비밀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고, 뷔르거는 성실한 일꾼이자 탐구자였던 베르메르를 성공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목차

I. 모르는 사람
II. 한 줌의 빛
III. 환경
IV. 예외적 예술
V. 솜씨
VI. 그의 안목
VII. 표현
VIII. 델프트에서
IX 걸작

부록-베르메르의 부활·앙드레 블룅
I. 베르메르와 토레 뷔르거
II. 토레 뷔르거의 일생
III. 베르메르의 발견
IV. 토레 뷔르거가 본 베르메르
V. 베르메르의 기법
VI. 베르메르의 광채
VII. 토레 뷔르거와 미술비평의 혁신
VIII. 베르메르와 오늘의 미학
결론-오늘의 베르메르

미리보기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그린 램브란트와, 오로지 사람들이 보는 것만을 그려낸 화가들 사이에서, 베르메르만이 맨 처음으로 자기 주변을 주목하면서 생각한 화가였다. 다른 화가들은 사물 앞에서 즐겼지만, 이 사람은 그것을 존경심으로 꿰뚫었다.

_「본문」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귀스타브 반지프Gustave Vanzipe
벨기에 미술평론가, 극작가, 소설가. 브뤼셀 사람으로 애당초 <본능> 등의 소설을 발표하면서 출발했으나, 곧 방대한 벨기에 현대미술가 평전 3부작을 내놓으며 미술평론가로서 활동했다. 특히 베르베르의 첫 번째 전기작가로서 그는 미술사에 기념비적인 자취를 남겼다. ‘독립 벨기에’ 지의 주간을 역임하면서 분쟁지역을 탐사하는 등 확고한 필력으로 권위를 다지기도 했다. 왕립미술학교에서는 그의 저서들을 교재로 채택해왔다. 왕립아카데미 회원이 된 만년에도 활발한 저술활동을 했는데, 대표작으로 단편선 <부르주아 이야기>, 희곡 <타인>, <얼굴> 등과 평전 <피터 폴 뤼벤스> 등이 있다. 어머니가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세 나라를 똑같은 동포의 나라고 믿고 생각했다. 이런 그의 사고와 신념이 베르메르의 이 모범적 전기를 낳은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옮긴이
정진국
미술평론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프랑스 파리 1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고 졸업했다. 《여행 가방 속의 책》, 《사진가의 여행》, 《유럽의 괴짜 박물관》, 《포토 루트 유럽》, 《유럽 책마을에서》 등을 저술했다.
옮긴 책으로는 빅토르 타피에의 《바로크와 고전주의》를 비롯한 미술사, 다니엘 지라르댕의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를 비롯한 사진사 분야, 그리고 에밀 부르다레의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세르주 브롱베르제의 《한국전쟁통신》을 비롯한 현대사의 기록들을 다룬 책들이 있다. 또 쥘 미슐레의 역작 《마녀》, 《바다》 등과 더불어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 《이해받지 못한 사람, 마네》, 《비제 르 브룅: 베르사유의 화가》 등 예술가들의 전기를 다수 작업했다.